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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세 배우 이야기

2021.02.19 22:5302.19

 

1-1

“큭....”

또다. 분명히 들었다. 날 비웃는 소리를.

 

나는 연극배우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할 때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무대 위에 서면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고, 분노를 일으켰다 안타까움에 맞잡은 두 손을 박수갈채로 이끌어내는 것이 나의 일이다. 하지만 모든 관객이 내 연기를 보고 울고, 웃고, 화내고, 아쉬워하는 건 아니다. 박수갈채 대신 휴대폰이 들린 손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잡담하는 소리. 쩍 벌어진 입에선 감탄이 아닌 하품이 길게 늘어지고, 뒤잇는 코골이는 환호성을 대신해 공연장 안을 울린다. 그 밖에도 진동하는 음식물 냄새, 화장실에 갔다 오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 그런 관객들의 천태만상은 연기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배우다.

무대 위에 올라섰다면 연기를 멈춰선 안 된다. 기대와는 다르고 예상하지 못했던 관객들의 반응이 터져 나오더라도 감수해야 한다. 사람들의 여러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내 일이니까. 하지만 유일하게 바라지 않는 반응이 있다. 나를 보고 비웃는 소리라면. 

“크큭!”

객석에서 누군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터트렸다고 표현할 정도로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내 귀에는 그 어느 소리보다 또렷하게 들려왔다.

뭐가 웃기지? 이 장면에서 웃을 만한 내용은 전혀 없다. 내 연기가 웃기다는 건가? 같잖다는 건가? 콧방귀를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올 만큼? 비웃고 싶을 만큼?

온갖 정신 사나운 소음 속에서도 아주 조그맣게 들리는 비웃음은 어디서건 귀에 날아와 콱 박힌다. 한참 대사를 치는 도중 객석에서 그 소리가 들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초조할수록 대사는 꼬이고 다음 장면을 까먹고 허둥댄다.

“큭....”

신경 쓰지 말자. 어쩌면 재채기 소리였는지 모른다. 잠꼬대거나. 연기에 집중하자. 그러지 않으면 또 대사가 꼬일 거다. 다음 장면 연기를 잊어버릴 거다. 그러면 그때는 진짜 비웃음을 사버리고 말 거다. 나는 배우다. 연기자다. 프로처럼 대처해야 한다. 아마추어처럼 굴지 마.

“큭!”

또다. 그만해. 누구야?

뒤이을지 모를 조소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아니, 진짜 고요하다. 일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다. 왜 갑자기 조용해졌지? 상대 배우가 이상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벌써 대사가 끝났나? 그런데 내가 받아칠 대사가 뭐였지? 가만히 있지 말고 도와줘, 같은 동료끼리. 공연을 망치고 싶어?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봐? 너도 날 비웃는 거야? 저 관객처럼? 내 연기를? 비웃지 마. 비웃지 말라고. 아무도 날 비웃지 못해!

“딱!”

몇 초가 흘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일 분도 넘는 숨 막히는 침묵의 시간이었다. 순간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하고 터트린 소리인 줄 알았다. 다행히 내가 낸 소리는 아니었다. 그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고, 내 실수는 상대역의 애드립으로 재치 있게 넘어간 뒤였다. 식은 땀이 절로 났다. 하마터면 날 비웃는 듯한 얼굴을 향해 폭발해버릴 뻔했다. 마침 그 순간 뭔가 둔탁한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정신 차리라고 스탭이 보낸 신호였을까? 별 대수롭지 않은 소리였을지 모른다. 뭔가 떨어졌거나 부러졌거나.

 

1-2

“혹시 조명 귀신이었던 거 아냐?”

공연 때 실수로 잔소릴 들을 새라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핑계를 댄 게 오히려 조명 귀신 이야기를 또 꺼내게 만들고 말았다.

뜨거운 조명 열기 때문에 달아오른 내 얼굴을 가리키며 귀신을 보고 놀라 상기된 거며 아주 신이들 났다.

“조명 뒤에 항상 서 있다는 그 귀신?”

공연장에는 이런저런 괴담이 떠돈다. 어떤 이들은 직접 경험한 거라며 확신에 차 귀신 이야기를 늘어놓고, 그런 이야기들은 수많은 귀와 입을 거쳐 부풀려지고 변형되어 전승된다. 전설의 고향같이.

우리 극단에도 전승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누가 처음 그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몇 기수 위의 선배에게 일어난 비극이라며 진짜 있었던 일임을 강조하.

조명 사고였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한창 연기를 하고 있던 배우의 머리 위로 조명이 떨어진 것이다. 머리에 조명을 맞고 즉사를 했는지, 병원으로 실려 간 뒤 얼마 동안 사경을 헤맨 건지, 아니면 조명에 맞고 얼마 동안은 괜찮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버전은 들려주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망가진 자신의 얼굴에 신세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조명에서 옮겨붙은 불로 극장 전체에 심각한 화재로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까지. 어느 이야기가 사실이든 중요한 건 조명 사고로 죽은 배우가 귀신이 되어 공연장 안을 떠돈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조명 뒤에 숨어 다음 대상을 고르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누구의 머리 위로 조명이 떨어질까, 궁금해하며. 그래서 조명을 정면으로 마주 보면 안 된다고.

“그러면 조명 뒤 귀신과 눈이 마주치고 말 거든. 다음번 순서는 바로 너구나? 하고 당첨되는 거지.”

그런 충고와 괴담을 진지하게 나누는 동료들이 한심하기만 하다. 단이 높은 무대에서 조명빛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 게 무슨 대단한 경고라고? 사망한 선배 배우의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렇게 큰 불이 났었다면 기사에라도 나왔을 텐데 찾아볼 생각들은 전혀 없어 보인다.

물론 그러니까 괴담을 즐기는 거겠지. 사실관계를 따지고 들면 누가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려 하겠는가? 시시한 이야기로만 전락할 뿐이지.

이러니 내가 들은 비웃음 소리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버린다. 웃음소리를 언급했다간 귀신의 웃음소리가 아니냐며 또 괴담으로 흘러가 버릴 테니. 괴담이 진짜든 아니든 관심 없다. 귀신은 무섭지 않다. 무서운 건 관객들의 반응뿐이다.

남들은 내가 고정된 팬층만 믿고 연기를 설렁설렁 한다고 쉽게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연기에 대한 욕심이 많다. 누가 봐도 잊을 수 없는 명연기를 펼치고 싶고 누구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연습 시간 이외에도 매일 혼자서 연습을 한다. 언제 이렇게 연기가 늘었냐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해질 반응을 기대하며, 그런 날을 손꼽으며. 그러니 내 연기에 대한 조소와 조롱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거니까. 날 비웃는 듯한 소리와 얼굴참을 수 없는 적개심을 느끼며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도 몰랐을 뻔했듯이.

 

1-3

조명 뒤에 뭔가가 있다.

“딱, 딱, 딱.”

빈 공연장에서  소리가 난다면 정체는 하나 뿐이다.

“야옹.”

그럼 그렇지. 귀신이 있을 리 없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천장 높이 설치된 조명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공연장 근처에 상주하는 녀석일까? 단원들이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던 걸 몇 번 본 적이 있다.

어쩌면 호들갑들 떨던 조명 귀신의 정체는 길고양이였을지 모른다. 까만 몸을 조명 뒤에 숨기고 눈빛만 형형하게 빛내고 있다면 귀신으로 오해할 만도 하다. 어이가 없다. 매일 밥 챙겨주는 고양이도 알아보지 못하고 귀신이라고 착각들  건가?

딱, 딱, 딱.

저것 봐라.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정도로 저렇게 불안한 소리가 나는 걸 보면 공연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잦다는 말들도 다 무대 장비 관리를 제대로 안 한 탓을 귀신 핑계로 대왔던 거지.

그렇다면 비웃음 소리도 고양이의 짓일까? 차라리 그렇다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하지만 고양이가 그런 소리를 낼 것 같진 않다.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심어주려는 게 분명한 악의에 찬 그런 웃음소리는.

“야옹.”

“어슬렁거려봤자 여긴 너 먹을 거 없어. 불쌍한 척은 나가서 해. 내 연습 방해하지 말고.”

청소를 끝내고 연습도 하려면 고양이와 놀아 줄 시간은 없다.

딱, 딱, 딱.

하지만 어쩐지 검은 고양이는 놀고 싶거나 배가 고파서 서성이는 것 같진 않다.

딱, 딱, 딱.

고양이가 움직일수록 불안한 소리도 이어진다.

딱, 딱, 딱, 딱, 딱, 딱... 큭!

고양이가 비웃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면 모두들 내가 미쳤다고 하겠지. 자기네들은 귀신 얘길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하지만 그게 맞다. 고양이가 비웃을 리 없잖아?

쿠쿡....

잘못 들은 거다. 지금 여긴 관객도 없고 사람은 나 혼자다.

“딱, 딱, 딱.”

바닥을 밀던 물걸레 막대기 위협적으로 두드려 보였다.

“내려 와. 너도 조명 귀신 신세 되고 싶어?”

하지만 검은 고양이는 약 올리듯 휘적이는 내 막대기질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비웃는 소리를 내며.

키킥.

감히 날 비웃어? 고양이 주제에?

딱!

힘껏 막대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영악한 녀석은 잽싸게 도망간 뒤였고, 막대기로 후려친 것은 조명이었다. 놀라 뒤로 물러섰다. 혹시 조명이 떨어질까 걱정되어 한동안 미동도 않고 지켜보았다. 다행히 큰 타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빈 공연장에는 더 이상 아뭇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적막함을 무서워 검은 고양이의 뒤를 이어 재빨리 공연장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큭....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1-4

조명이 꺼졌다. 객석에서 약간의 동요가 있었지만 극의 연출이라 여기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연기하는 중간중간 내 눈은 절로 조명으로 향했다. 하필 내가 휘둘러 친 그 조명이다.

너무 힐끔거린 탓일까?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었다. 설마 검은 고양이가 또 들어왔나? 빨리 내쫓지 않으면 다른 조명도 건드릴지 모른다.

딱.

다른 조명들까지 망가뜨리려고 저러나? 하지만 검은 고양이는 쉽사리 조명 빛에 제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딱, 딱, 딱.

아니, 소리는 객석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평소에는 조명 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뒷줄 좌석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어렴풋이 움직이고 있었다. 꺼진 조명 때문에 진땀을 빼며 수습하러 돌아다니는 우리 스탭일까? 한자리에 앉아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관객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저렇게 정신 사납게 몸을 흔들지? 다른 관객들한테 방해되게? 연기하는 데에 방해되게? 팔을 들어 올리는가 싶더니 이상한 각도로 팔꿈치가 돌아갔다. 팔이라도 빠졌나? 왜 저러지? 팔 뿐만이 아니었다. 상체의 오른쪽과 왼쪽도 균형이 맞지 않고 어긋나 보였다. 몸이 불편한 사람인가?

딱.

입을 한 번 벌리자 턱관절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딱, 두 번. 딱, 세 번. 딱,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어디까지 입을 벌리려는 거지? 그것보다 사람 입이 저렇게까지 벌어질 수 있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 믿을 수 없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커먼 동굴 같이 벌어진 입안에서 꾸물거리는 혓바닥은 무언갈 말하려는 듯했다.

“뭐라고?”

잘 들리지 않았다. 무대 앞으로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혀뿌리에서부터 끌어올리는 소리가 내 귀에 박혔다.

큭!

비웃는 소리가.

큭, 큭크크... 키키키키....

아래위로 벌어진 입은 점차 양옆으로 길게 늘어지며 완벽하게 웃는 표정을 지었다.

“웃지 마... 웃지 말라고.”

비웃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아니, 내가 무대 앞으로 다가가서 그런 거다. 이죽대는 저 입을 당장이라도 틀어막기 위해.

“딱.”

갑자기 웃는 얼굴이 사라졌다. 빛에 어둠이 가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웃음소리는 들려왔다. 바로 내 머리 위 조명 뒤에서 비웃고 있기라도 한 듯.

고개를 치켜들고 정면으로 조명 빛을 마주 보고 말았다. 꺼졌던 조명은 어느새 다시 불이 들어와 있었다. 순간적으로 앞을 볼 수 없어 비틀다. 그리고 조명 불빛이 돌아온 것도 인지하지 못했듯 내가 무대 앞 끝쪽으로 얼마나 다가와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악!”

처음에는 관객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발을 헛디디며 무대 앞으로 떨어지는 나를 보고 지른 소리인지, 아니면 방금 전 내가 서 있던 자리 위로 떨어진 조명이 위태롭게 매달린 채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지른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놀란 관객들이 안내를 받으며 출구로 빠져나가는 소란스러움 속에서 또다시 소리를 들었다. 비웃는 소리를.

 

1-5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높지 않은 무대 위에서 떨어진 나는 팔이나 다리가 아닌 목을 삐했다. 쑥덕이는 동료들의 심란한 얼굴은 그날 공연을 통으로 날려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갑자기 조명이 꺼진 것과 내가 무대 위에서 떨어진 것과 동시에 조명이 아슬하게 떨어진 것과 하필 내가 목을 다친 이유는 이미 조명 귀신의 농간이라고 기정사실이 돼 있었다.

귀신 같은 소리들 하고 앉아 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귀신이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조명 귀신이 아니라고 하려면 내가 조명에 충격을 가해 떨어진 걸지도 모른다고 이실직고해야 할 테고, 관객석에서 본 기이한 모습의 사람에 대해 말을 꺼낸다면 그것 또한 또 다른 귀신의 모습으로 엮으려 들 테니까.

어이없게도 조명 사고는 공연장 괴담과 엮여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표는 연일 매진되었다.

모두들 진짜 귀신이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관객이 더 많이 들 테고, 관객들은 즐거워할 테니까. 모두들 귀신을 목격한 다음에는 조명이 떨어지길 바랄 테고, 그다음에는 그 조명에 머리를 맞기를 바랄 테고, 그 뒤에는 목이 꺾이든, 화상을 입든, 신세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든 나의 죽음으로 괴담이 완성되기를 바라겠지. 괴담의 저주는 반복되어야만 하니까.

하지만 정기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 아직은 더 써먹을 필요가 있으니 공연 중 조명 불빛이 수시로 깜빡이는 정도로만 조작해놓았을까? 그것이 신호처럼 곧 귀신을 목격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섞인 관객들의 동요와 비명소리를 유도하려고? 그 깜빡이는 불빛 속에서 내가 뭔갈 잘못 보기라도 바라면서?

들켜버린 기대감에 민망한 듯 웃는 관객의 웃음소리와 귀신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관객들의 모습은 비웃음 소리와 사지가 꺾인 형체와 분간할 수 없었다.

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차피 내 연기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귀신을 보고, 넋을 잃고, 불안해하는 모습만을 원할 뿐이다.  

나의 연기는 실패했다. 내 연기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괴담 속 주인공 역일 뿐이었다. 언젠가 괴담의 결말을 완성시켜 줄.

 

1-6

사람들이 날 괴담의 주인공으로 이용한다면 나도 사람들을 이용하지 못할 것 없지.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쉴 틈도 없이 다음 무대에 올릴 극이 잡혔다. 대놓고 공포 심리극이라고 한다. 나는 당당히 주연 역으로 오디션을 보겠다고 요청했다. 주연을 맡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럴 깜냥이 된다고 스스로도, 주위에서도 생각한 적 없으니까. 하지만 이젠 나도, 저들도 안다. 무대 위에는 내가 꼭 있어야 한다는 걸. 빛나는 조명을 받으며.

“그래. 잘 준비해 봐. 우리도 이번에는 실수 없도록 꼼꼼하게 준비할 거야. 또 사고가 나면 곤란하니까. 우리 배우님 얼굴도 중요하고 말야?”

이번에는 얼굴이 아닌 다른 곳을 노리려고? 하지만 호락호락 당하진 않을 거다. 이번에야말로 내 연기를 선보일 기회니까. 괴담 속 주인공이 아닌 괴담 연극 무대 위 진짜 주인공으로.

 

빈말은 아니었던지 조명의 배치가 달라졌다. 적어도 머리 위로 조명이 떨어질 걱정은 없었다. 조명도 새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 아직도 고양이가 문제인 걸 모르나? 고양이가 공연장 안을 드나들지 못하게 막는 게 가장 시급할 텐데?

“고양이? 무슨 고양이? 누가 고양이 데려와? 뭐? 길고양이? 밥 챙겨주던 길고양이들은 사라진 지 꽤 되지 않았나? 그 일 뒤로?”

동료들이 밥을 챙겨주는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안면이 익은 길고양이들은 항상 그리로 와 밥을 먹었다. 그래서 약을 탄 밥도 고양이들은 의심하지 않고 먹은 모양이다. 그날 밥을 챙겨줬던 단원은 밥그릇 앞에 죽은 채 널브러진 고양이들 체에 충격을 받고 극단에서 나가기까지 했다. 누가 약을 탄 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 소문이 났는지 어떤 길고양이도 이 공연장 건물로는 얼씬하지 않는다고. 이 괴담은 왜 아무도 나에게 들려주지 않았을까? 만약 고양이가 다시 찾아왔는데 하필 검은 고양이라 잘 보이지 않아서 다들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나만 본 게 아닐까,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조명 귀신에 이어 고양이 귀신까지 보는 배우라, 이번 공연도 관객몰이 좀 하겠는걸? 라 쾌재를 부를 모습이 눈에 선했으니까.

 

1-7

조명은 모두 꺼져있다. 조명을 켤 필요는 없으니까. 조명을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손에 쥔 대본만 그대로 읽으면 된다. 연습한 대로, 간절한 나의 소망만큼. 객석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관객도 없고, 이건 오디션일 뿐이니까. 나를 비웃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심사하는데 내 대사는 듣지도 않고 왜 저렇게 저희들끼리 속닥거리는 거지? 설마 검은 고양이를 눈치챘나? 다음에는 조명 대신 고양이를 어떻게 이용할까 벌써 작당들을 모의하려고? 하지만 지금은 오디션 자리야. 객석 맨 앞줄에 앉아 배우를 앞에 두고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라고.

젠장, 살짝 말을 버벅거렸다. 눈치챘을까? 긴 공연 중에 이 정도는 흠도 아니지. 대본에 집중하자.

딱.

소리 아니길 바랐다. 하지만 대사를 멈추고 마주 본 얼굴들은 무슨 문제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두 번째 실수. 삼세번까지는 봐주길 바라며 다시 급하게 대사를 이어갔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멈선 안 된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눈앞에 공포가 도사린대도, 무대 장치에 문제가 있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대도, 그리고 비웃는 소리가 들린대도.

큭....

조명 귀신도, 고양이 귀신이 내는 소리도 아니다. 누구야? 누가 장난치는 거야? 아니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테스트해 보려고? 대사 따위는 애초에 중요하지도 않았던 거다. 내가 어떤 연기를 하든 상관없었던 거다. 연기를 바란 게 아니니까. 내 연기에 기대조차 없었으니까?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내가 무슨 귀신의 집 귀신인 줄 알아? 그리고 귀신의 집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건 귀신 역을 한 배우지 손님이 아냐. 나를 놀래켜서 뭐 하려고? 겁을 줘서 뭐 어쩌겠다고?

“쟤 뭐야? 대본 하나 못 읽어? 이 역할 보겠다고 자기가 부탁한 거라며?”

이미 주어진 삼세번의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말하는 얼굴들이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혀를 차고, 백안시하거나 아예 시선을 회피하며.

딱, 딱, 딱.

하지만 출구 쪽 좌석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완전히 뒤로 돌아가 있는 목과 함께 몸의 모든 관절이 꺾이기라도 한 듯 도저히 사람이 취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자세로 앉아 있었으니까.

왜 다들 모르는 척하는 거지? 관절이 꺾일 때마다 들리는 저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야? 비웃는 소리가 안 들려? 저게 안 보여? 뒷줄 어둠 속에 숨어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는 또 다른 저 얼굴이?

“왜 저래? 내려 와. 네 차례는 끝났어.”

나는 배우다. 배우는 무대 위에 올라섰다면 연기를 멈춰선 안 된다. 기대와 다르고 예상하지 못한 관객들의 반응이라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내 연기를 비웃는참을 수 없다.

“웃지 마.”

“뭐?”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 너머로 내 경고가 우습다는 듯 더 크게 입을 벌리며 웃고 있다. 내 연기뿐만 아니라 내가 웃기다는 듯이. 내 존재 자체를 조롱하듯이.

“웃겨? 내가 웃겨? 그렇게 웃고 싶어? 그럼 내가 평생 웃게 해주지.”

무대 아래로 뛰어내려 좌석을 뛰어 넘을 때까지만 해도 관계자들과 스탭들은 저희들에게 달려드는 줄 알고 피하기 급급했다. 그러다 내가 누군가의 입을 찢을 듯한 기세로 양손으로 붙들고 늘어지자 그제야 나를 떼어내려 여기저기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미쳤어? 왜 그래? 그 손 놔. 정신차려!”

“웃지 마. 웃지 말라고. 내 연기를 비웃지 말란 말이야!”

 

2-1

나는 광대다.

우스꽝스럽고 기발한 연기로 구경꾼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주는 것이 내 일이자 나의 기쁨이다. 하지만 나를 보고 웃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커스야? 마술사야? 코미디언이야, 뭐야?”

라고 묻거나,

“삐에로야, 삐에로.”

라고 가리키며 잘못 외친다. 그나마 넓은 광장에서 하고많은 길 놔두고 통행에 방해된다는 양 내 소품들을 차고 지나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냥 광대라고, 코미디든 마술이든 서커스든 뭐든 다 하는 광대라고, 삐에로는 아니라고, 삐에로는 웃지 않지만 나는 이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지 않냐고 일일이 설명하면서 연기를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부분은 내 연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웃는 얼굴을 우는 얼굴로 착각하거나, 아예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리고 만다. 투명 인간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내 연기를 보고 웃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라고 하면 가까운 친구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 얼굴로? 차라리 귀신의 집 귀신 연기나 해라. 그럼 꼬박꼬박 귀신 알바비는 받을 수 있을 거 아냐?”

나도 안다. 사실 내 얼굴은 한눈에 보기만 해도 웃음이 빵 터지는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 큰 눈과 큰 입과 큰 코의 이목구비는 광대 분장을 하기에는 아주 잘 어울지만, 화장을 지운 맨얼굴은 무뚝뚝하다 못해 무섭고 험상궂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기를 바라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러지 말고 귀신의 집 알바나 같이 하자니까? 네 얼굴이면 분장할 필요도 없. 마주치기만 해도 비명을 질러댈걸? 알바비도 꼬박꼬박 받을 수 있고 얼마나 좋냐?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잖아?”

그러면서 나보다 무서운 얼굴을 귀신의 집 알바생 중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일이 끝나고 나서야 자신과 같은 구역에서 귀신 연기를 한 알바생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기가 직접 겪은 일임을 강조하며 진부한 귀신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진짜 귀신을 봤을 때보다 더 무서운 경험이 뭔 줄 알아? 언제 날라올지 모를 사람들의 주먹과 발길질.”

지들이 귀신 경험하고 싶어서 제 발로 들어와 놓고선 역할에 충실해 놀래키면 오히려 화를 내고 공격을 한다며 푸념도 잊지 않고 늘어놓는다. 가끔은 머리카락을 잡아 뜯고 목까지 조르는 통에 제 비명소리가 더 크게 날 때가 있다며.

그렇게 얻어맞고 서럽게 번 돈을 길거리 공연으로 땡전 한 푼 벌기도 힘든 친구를 위해 술값으로 내놓아 주는데 귀신 연기를 권하는 건지 말리는 건지 모를 투덜거림 잠자코 들어주는 건 일도 아니지.

그러고 보니 나도 얼마 전에 공격을 당한 적이 있었다. 어처구니없게 내 공연 중에 구경꾼에게 당한 것도 아닌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무대 위에서 연기 중이던 배우가 뛰쳐 내려와 달려들어 내 입을 찢을 듯 잡고 늘어진 일이었다.

 

2-2

연극을 관람하려고 공연장 안에 들어갔던 건 아니었다. 마침 그 공연장 건물 앞을 지나가던 내 단골손님과 우연히 마주쳤기 때문이다.

“야옹.”

길거리 공연 때마다 찾아오는 검은 고양이는 내 연기에 웃지도, 관람료를 던져주지도 않지만 언제나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고마운 관객이다. 정말 공연을 감상하기라도 하듯 집중하며 앉아있는 고양이의 기특한 모습에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길이 멈추기도 하고, 그런 날은 관람료가 쏠쏠하게 모이기도 한다. 그러니 검은 고양이는 나에겐 단골손님이자 행운의 손님이기도 했다.

“왜 혼자 돌아다니는 거야? 집 나왔어? 주인 잃어버렸어?”

집고양이치고는 너무 자유롭게 길거리를 돌아다니긴 하지만, 길고양이라고 하기에도 상처 하나 없이 매번 깔끔한 모습이다. 목욕을 즐기는 이 동네 대장 고양이까?

“혹시 여기가 네 집이야?”

공연장에서 키우는 고양이인가 싶었다가, 이내 건물 입구에 붙어있는 ‘고양이 출입금지’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박정하기도 하지. 반려동물이나 다른 길거리 동물의 출입을 전부 금하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만 콕 찍어 막는 이유는 뭘까?

하지만 글씨를 읽을 수 있을 리 없는 녀석은 눈치 없이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저런 문구를 출입문에다 커다랗게 붙여놓은 건물 주인이라면 고양이가 눈에 띄자마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혹여 소중한 단골손님이 안락사라도 당할까 싶어 초조해진 나는 건물 안으로 뒤따라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표도 없이 공연장 안까지 들어간 나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은 게 이상하긴 다. 어쩌면 분장한 옷 때문에 공연하러 온 배우인 줄 알았을 수도 있고. 공연장은 너무 깜깜하고 조용했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들 공연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두운 곳은 딱 질색이다. 친구 녀석의 귀신의 집 알바 제안을 거절한 이유도 귀신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어둡고 폐쇄적인 공간은 싫어서다.

열린 문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검은 꼬리를 발견했다. 조심히 따라 들어간 곳은 다행히 많이 어둡지 않았다. 하지만 환한 대낮의 길거리에서가 아니라면 검은 고양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좌석 사이를 오가며 수색을 펼치고 있던 중, 갑자기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고 무대 쪽을 바라보니 누군가 서 있었다. 본공연 같지는 않았지만 리허설이더래도 외부인이 들어와 있는 걸 들키면 곤란할 테지. 우선 눈치껏 맨 뒷자리 어두운 구석으로 가 앉아 빠져나갈 틈을 엿보기로 했다. 물론 검은 고양이도 빨리 찾길 바라며.

순간 들킨 줄 알았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 앞줄에 앉아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분장 때문에 내가 불청객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양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나도 연극배우인 척 자연스럽게 앉아 있어야 하나? 아니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갈까? 그런데 왜 저렇게 계속 쳐다보지? 저렇게 목을 돌리고 있으면 결리지도 않나? 아예 목을 꺾을 기세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대 위 배우도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보이지 않을까? 무대와 여긴 꽤 거리가 머니까. 어두우니까.

그때 내가 웃었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부담스러운 시선들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무대 위 배우가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와 양 입가를 붙들고 잡아당기며 그런 말을 외쳤으니까.

“웃지 마! 웃지 말라고! 웃지 말란 말이야!”

그 배우는 미친 사람처럼 횡설수설 지껄였다. 웃지 말라고 소리치다가 갑자기 평생 웃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을 바꾸더니, 다시 비웃지 말라며 귀청이 떨어지도록 새된 소리를 질러댔다. 어찌나 힘이 세던지 뜯어말리는 그 많은 사람들 중 내 입을 붙들고 있는 배우의 손을 떼어낼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정말 내 입을 찢어버리기 전까지는 절대 놓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똘똘 뭉친 아귀의 힘을.

 

2-3

아직도 입이 얼얼하다. 찢어진 양쪽 입꼬리는 건드리기만 해도 쓰라려 화장을 하기도 힘들다. 다행인지 며칠간 비가 내렸고 그 핑계로 길거리 공연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며칠 동안 집에만 있으니 그날 사건이 시시때때로 떠올라 괴로웠다.

공연장에 몰래 들어간 게 그 정도로 화가 날 일이었을까? 화가 나더래도 욕을 하거나 그냥 쫓아내면 될 걸, 왜 그렇게까지 폭력적인 반응을 보인 걸까? 어색한 내 웃음에 험상궂은 인상이 한몫하여 심기라도 건드려서? 친구의 말이 맞는 걸까? 나는 광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부류인 걸까? 사람들에게 행복한 웃음은커녕 불쾌한 기분만 들 게 만드는 걸까?

어이없게도 찢어진 입은 언뜻 보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따라 웃어보았다. 하지만 웃음을 계속 유지하기에는 아직 아프다.

 

입이 완전히 나은 건 아니었지만 괴로운 생각만 하며 방바닥에서 뒹굴고 있을 바에야 거리로 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비가 오고 난 뒤라 광장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야옹.”

하지만 역시나 내 단골손님은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주었다. 녀석을 다시 보게 되어 안심이었다. 그날 공연장에서 놓친 뒤로 혹시 잡혀가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됐었는데, 녀석도 자기 구역에서 잘 숨어 지냈던 모양이다.

오늘도 유일한 구경꾼은 검은 고양이뿐이었다. 여느 때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연이 끝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내일도 와.”

골목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왜인지 아쉬웠다. 꼭 마지막 모습인 것처럼. 내일도 올 거야. 분명히. 내일은 고양이 통조림 사료라도 하나 챙겨줘야겠다. 소중한 단골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서비스는 기본이지.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분장을 지우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여전히 무표정하기만 하다. 입꼬리 때문에 덜 무서운 인상이 됐긴 하지만 이런 얼굴이라면 사람들도 웃을 순 없겠지.

 

2-4

오늘은 웬일로 공연 준비를 할 때부터 관객 한 명이 계단에 앉아있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거나 금방 자리를 뜰 거라 예상했는데,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자리를 뜨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신이 나서 더 열심히 연기를 했다. 하지만 그 관객은 전혀 웃지 않았다. 혹시나 다른 연기를 원하나? 내가 가진 레퍼토리는 전부 보여주었다. 그래도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실망한 건가? 졸리나? 왜 저렇게 무표정하지?

마지막 연기를 마치고 인사를 건넨 뒤에도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동전 한 닢 떨어지는 소리조차.

이상한 사람이었다. 툴툴대며 공연 도구를 챙기다 슬쩍 돌아봐도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앉은 자리에서 꼴까닥 숨이라도 넘어간 모양이네.

“야옹.”

실망한 나를 위로하려 다가온 검은 고양이는 눈을 깜빡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라도 와서 다행이다.

평소와 달리 내 다리 사이를 뱅글뱅글 도는 걸 보니 배가 고픈 걸까? 하필 오늘은 공연비도 벌지 못했다.

“미안하다, 야옹아. 오늘은 나도 저녁을 굶어야 해. 친구들한테 찾아가서 맛있는 저녁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물어봐. 괜히 너도 굶지 말고.”

그리고 아직 앉아있는 관객을 괜히  번 더 흘겨보 귓속말을 했다.

“그리고 저 사람한테 양심이 있으면 천 원짜리라도 한 장 내놓고 가라고 전해줘라. 보아니 갈 곳도 없고 시간 때우려고 앉아있는 모양인데, 재미는 없었더라도 광대놀이 구경했으면 성의 표시는 해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고 말야.”

고양이에게나마 넋두리를 늘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녀석은 야옹, 대답하 관객이 있는 쪽으로 어슬렁 다가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사람 없는 골목으로만 골라 가면서 오늘따라 왜 낯선 사람 쪽으로 가는 거야?

괜히 뒷담을 하다 걸린 것 같은 기분에 급하게 짐을 챙겼다. 왜 그 순간 곁눈질을 해본 걸까? 얼마나 뻔뻔하게 생긴 사람인지 그 면상을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걸까? 발길을 재촉하며 옆을 지나칠 때 눈길은 자동적으로 그 사람에게로 향했다. 여전히 움직임은 없었다. 앉아있는 자세는 처음과 똑같았다. 단지 원거리에서는 눈치채지 못했던 기이하게 몸이 꺾인 채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름이 끼쳤다. 당장 뛰어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미동도 없이 앉아있던 몸을 움직여 도망치는 나를 붙잡을 것만 같았다. 지하철역까지 앞만 보고 걸어갔다. 지하철 의자에 앉고 나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잘못 본 걸 거다. 나도 연기할 때 이런저런 자세로 몸을 꺾곤 하지만 사람이 그런 자세로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혹시 다친 걸까? 하지만 그랬다면 도와달라고 했겠지. 맞다. 인형일지도 모른다. 설치미술 같은. 광장에선 누구나 공연을 하고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귀신을 본 거라고 하기에는 이상하잖아? 아직 해도 지지 않은 광장 한가운데서?

 

2-5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꿨다. 나는 관객이 되어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치는 또 다른 나의 분신을 향해 환호를 하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 위 나는 관객석의 나에게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며 웃지 말라고 경고했다.

‘웃지 마. 그 입을 관자놀이까지 찢어 버리기 전에.’

하지만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손은 제멋대로 손바닥끼리 맞부딪쳤고, 발바닥으론 바닥을 구르고 앞 좌석을 차댔다. 웃을수록 양 입꼬리는 점점 관자놀이까지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 몸인데 내가 조종할 수 없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다른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앞 좌석에도 누군가 앉아 있었다. 몸은 무대를 향해 있었지만 얼굴은 뒤로 꺾인 채. 아니, 사지 전부가 꺾인 채 축 늘어져 있었다. 꺾여진 사지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사람도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걸까?

“쩝쩝쩝.”

검은 고양이가 그 사람의 몸을 핥기 시작했다. 

“쩝쩝쩝.”

핥는 로는 모자라는지 맛까지 보았다.

“쩝쩝쩝.”

검은 고양이의 발톱에, 이빨에 할퀴고 물어뜯기는 대로 몸은 이리저리 휘청였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하지만 꿈은 현실과 반대라고 하지 않았는가? 전날 밤까지 쓰라리던 입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깜짝 놀랐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지저분하던 딱지도 떨어져 나가 새살이 올라와 있었다. 어쩐지 입이 예전보다 더 길어진 기분이었지만 원래도 작던 입은 아니었으니 대수로울 건 없었다.

처음이었다. 분장을 하지 않은 내 얼굴을 보고 아이가 웃은 건. 지하철 안에서 엄마 품에 꼭 안긴 채 말똥말똥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던 아이는 방긋 웃으며 내릴 때는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유리창에 희미하게 비치는 내 얼굴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웃고 있지 않는데도.  

혹시 그 관객이 또 왔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의심스러워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역시 잘못 봤던 모양이다. 그런데 공연을 시작하려는데도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좀 늦으려나 싶어 먼저 공연을 시작했지만 고양이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녀석이 없이 공연한 날 중 가장 많은 공연비가 모였다. 편의점에서 가장 비싼 고양이 캔과 간식을 사 와 좀 더 기다려보았다. 오늘은 자랑할 거리가 많으니까.

비닐봉지에 든 캔과 간식을 그대로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설마 다른 재미난 공연을 발견해서 단골집을 바꾼 건 아니겠지? 오늘 공연을 봤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피로와 아쉬움 때문인지 입꼬리가 축 졌다.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올려 보려는데 상처가 아문 자리에 굳은살이 박였는지 아침보다 덜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또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의 연기를 보는 또 다른 나는 여전히 박장대소를 하느라 바빴다. 더 크게 웃어주기 위해 입꼬리를 한없이 올리며.

 

2-6

똑같은 나날이 반복되었다. 꿈속에서 입이 찢어져라 웃고 나면 그날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현실에서 만족스러운 공연을 할 수만 있다면 꿈속의 기괴한 공연은 참고 봐줄 수 있었다. 잠들었을 때도, 잠이 깬 뒤에도 연속으로 광대 연기를 하고 구경하느라 피로가 쌓여갔지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검은 고양이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려울 때 찾아준 고마운 단골손님이었는데.

하지만 발길을 끊은 단골손님에 아쉬워하고만 있을 겨를이 없었다. 새로 몰려든 손님들을 위해 공연 끊임없이 선보여야 했다.

그러다 보면 끼니때를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다.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에서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는 와중에도 가게 안 사람들은 광대 분장에 이벤트라도 있는 줄 착각하고 하나둘 사진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미소를 지으며 요청하는 셀카에 정색하며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남의 가게 안에서 호객행위라도 하는 줄 의심을 사면 곤란하니 우선 화장실로 가서 화장이라도 먼저 씻어내자.

“앗, 따거!”

상처가 완전히 나은 게 아니었나? 급하게 얼굴을 문지르다 입가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피는 물로 씻어낼수록 얼굴 전체로 더 번지기만 했다.

“헉!”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은 귀신이라도  표정이었다. 방금 전까지 매장에서 화기애애하게 사진을 찍었던 사람인데. 대충 휴지로 핏물을 닦아내고 상처 부위를 누른 채 어색하게 알은체를 해보지만, 너무 놀랐는지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물만 묻히곤 화장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곁눈질로 나를 보던 그 표정은 분명 찡그리고 있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오늘도 피곤함에 입꼬리가 한껏 내려가 있다. 그래, 피 때문에 놀란 거지, 화장을 지운 내 얼굴을 보고 놀란 게 아닐 거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내일 아침 개운하게 공연하자.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급히 매장 밖으로 나왔다.

 

2-7

상처는 낫다가 도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관객들에 통증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내 연기에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을 보면 아픔조차 잊을 수 있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또 한 구경꾼이 자지러지게 웃는다. 저렇게나 재미가 있을까 싶으며, 더 열심히 광대 짓을 해 보인다.

“푸하하하....”

너무 웃겨서 웃음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양 허리를 제끼고 배를 감싸쥐며 웃는다.

“하하... 하....”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숨은 쉬면서 웃어야 할 텐데, 저러다 숨넘어가겠네.

아니나 다를까, 정말 뒤로 넘어가 버렸다. 웃음소리 이제 멈췄다. 하지만 웃음 자체는 멈출 수 없는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웃는 건지, 숨을 헐떡이는 건지 모르게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눈은 뒤집힌 채.

구급차가 오고 어떤 상황이었냐는 질문에 구경꾼들의 시선 일제히 나를 향했다. 내가 저 사람을 웃겨서 발작을 일으킨 거라고 비난하는 듯.

‘사람이 쓰러진 게 웃겨? 왜 자꾸 웃고 있는 거야?’

아니다. 나도 미안하고 걱정된다. 그냥 분장이 이래서 웃고 있는 걸로 보이는 것뿐이다.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 애초에 웃기지 않았으면 됐잖아?’

하지만 나는 광대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을 웃기는 거다. 사람들을 웃기지 못한다면 광대일 수 없다.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다. 웃다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더라도.

 

2-8

나를 둘러싼 구경꾼들 사이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화장실로 달려갔다. 분장만 지우면 웃고 있다고 보이진 않을 거야. 그리고 꼭 내 잘못인 것만은 아니잖아? 모든 사람이 웃다가 쓰러지진 않잖아? 그냥 그 사람이 평소보다 더 격하게 웃은 걸지도 모르잖아?

화장을 지운 거울 속 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 밖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이 얼굴이 네가 원했던 얼굴이잖아? 사람들이 언제나 네 얼굴을 보고 웃기를 바랐잖아? 웃다 죽어도 상관없을 만큼.’

아니야. 내가 원한 건 행복한 웃음이. 고통 속에서도 멈출 수 없는 웃음이 아니야.

이죽거리는 거울 속 내 모습에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낼수록 거울 속 나는 더욱 웃을 뿐이었다. 입이 찢어지도록.

거울 속에서 뭔가 거뭇한 것이 지나갔다. 혹시 검은 고양이일까? 역시나 나를 걱정해서 찾아와 준 걸까? 고개를 돌려 화장실 안을 훑어보았다. 거뭇한 것이 안쪽 구석에 비죽이 나와 있었다.

나야. 광대야. 우린 친구잖아. 겁먹지 말고 나와봐. 네 도움이 필요해.

분장을 지운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까 봐 조심스레 다가갔다. 하지만 구석에서 꿈틀대며 나오는 것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뭐지? 사람인가? 그런데 왜 저렇게 바닥을 기고 있는 거지? 어디 다치기라도 했나? 어쩌면 내 공연을 보다 갑자기 이상 증세를 느낀 또 다른 구경꾼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내가 도와주자. 일부러 사람들이 다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고,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라고 알려줘야 한다.

“저기, 괜찮으세요? 많이 아파요? 걸을 수 있겠어요? 구급차라도....”

딱, 따닥, 딱다다다닥, 딱, 딱.

바닥을 기어 나오는 사람의 몸에서는 움직일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났다. 사람 몸에 있는 모든 뼈 부러지는 듯한.

 

2-9

귀신에 홀린 거다.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헛것이 보인 거다. 요즘 계속 악몽을 꿔서 헷갈린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곤 했으니까. 아니면 지하철 안에서 졸다가 꾼 꿈일 수도 있잖아? 그래. 집에 가서 쉬면 괜찮아질 거다. 한숨 자고 나면 나아질 거다. 하지만 꿈속에서 또 그걸 보면 어떡하지? 그러면 깨어있을 때와 다를 바가 없지 않나? 꿈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하지?

그렇지만 꿈을 꾸지 않으면 웃을 수 없다. 웃기 위해서는 꿈을 꿀 수밖에 없다. 광대가 웃지 않으면 사람들도 웃지 않는다. 꿈을 꿔야만 다시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내 얼굴을 보고 웃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

 

또 꿈을 꾸었다. 광대인 내가 웃었고, 구경꾼인 나도 따라 웃었다. 광대가 더 크게 웃자 구경꾼도 질라 더 크게 웃었다. 광대가 뒤로 넘어갈 듯 웃어제끼면 구경꾼은 떨리는 목젖이 훤히 보일 만큼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더 크게 웃기 위해 입리를 살짝 찢어보았다. 따끔하긴 했지만 참을 만했다. 웃는 얼굴이 만족스러웠다.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으악!”

하지만 다른 구경꾼은 거울 속에 비친 웃는 얼굴을 보고 따라 웃지 않았다. 오히려 비명을 지르고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귀신이라도 봤다는 양.

꿈이 아니었다. 화장실 거울 속 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 입에선 피를 흘리며, 그 피가 묻은 통조림 뚜껑을 한 손에 쥐고.

 

나는 광대다. 사람들이 내 연기를 보고 행복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이 내 일이자 기쁨이다.

하지만 나를 본 사람들이 악몽에 시달리는 것처럼 비명을 지른다면 나는 광대가 맞을까, 아닐까?

 

3-1

내 꼭두각시 인형들이 부러져 버렸다.  

“이건 뭐야? 다 큰 어른이 인형이나 가지고 놀아? 놀지 말고 일을 해, 일!”

고주망태로 비틀거리며 지나가던 취객 무리가 괜히 시비를 걸었다.

“건설적인 일을 하란 말야. 내 세금이나 갉아 먹는 쥐새끼 같은 것들. 아무 쓸모 없는 이 쓰레기들아!”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의 화풀이 대상으로 하필 목각인형이 눈에 띈 거다. 등을 떠밀며 말리는 둥 마는 둥 한 동료들을 뿌리치 인형을 발로 차고 냅다 던져버린다. 그러곤 미친 듯이 웃으며 도로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걸 동료들은 뒤쫓는다는 핑계로 모두들 사과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불쌍한 인형들은 길바닥 여기저기 널브러졌다. 다음 공연이 막막해져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꼭두각시 인형을 다루는 배우다. 꼭두각시 인형이 없으면 공연을 할 수가 없다.

 

3-2

다행히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다. 급한 대로 고쳐 무대 위에 올릴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내 속도 모르고 인형들은 내 손길을 따라와 주지 않는다. 움직임은 평소보다 부자연스러웠고 너무 힘을 줬다가 이어붙인 부분이 다시 부러지고 말았다.

절로 진땀이 났다.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갔을 때부터 꿈나라로 가버린 아이나, 저희들끼리 싸우다 우는 아이들이나, 오줌이 마려워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며 눈을 흘기는 아이의 엄마나, 자꾸만 시계를 확인하는 도서관 직원이나 전부 망쳐버린 공연 탓인 것 같았다.

사실 혼자서 인형극을 꾸리기엔 무리이긴 했다. 내가 속했던 인형극 극단 운영이 어려워져 결국 해체되었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잠시 쉬기로 한 옛 단원들은 나에게 혼자 인형극을 꾸릴 필요는 없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딱히 해체된 극단을 유지하려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건 아니었다. 이 일이 아니면 할 일도,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어서 계속 공연을 하는 것뿐이다.

고맙게도 아직은 예전 우리 인형극을 올렸던 곳에서 종종 공연 문의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 아직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공연을 망쳐버린다면 조만간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넌 잘 얻어먹고 다녔나 본데? 살이 더 찐 거 같다?”

오랜만에 검은 고양이와 만났다. 인근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고양이다. 간만에 본 녀석은 어쩐지 몸이 불편해 보였다. 살이 찐 게 아니라 부은 건가?

“설마 너도 다친 건 아니지?”

유유자적 길바닥에 몸을 뒹구는 녀석이 부러우면서도 걱정되었다.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사고를 당할 확률도 높았다. 

“길거리 생활이 너무 힘들면 아무 동물 병원 앞에라도 가서 기웃거려 봐. 혹시 알아? 어느 마음씨 좋은 새 주인이 나타나 널 입양해 갈지? 그럼 따뜻한 집에서 삼시 세끼 맛있는 거 먹을 텐데?”

하지만 먹을 것에는 관심이 없는지 목각인형만 앞발로 툭툭 치며 논다.

데구르르.

부러진 인형 머리가 도로 쪽으로 굴러가고 고양이 머리를 쫓아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방금 나온 자동차가 금방이라도 고양이를 칠 것만 같았다.

“안 돼!”

차를 멈추려 무턱대고 앞을 가로막고 섰다. 차에 부딪진 않았지만 오히려 달려오는 기세에 놀라 뒷걸음치다 넘어졌다.

“괜찮으세요?”

놀란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며 나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차에 부딪지도 않았고 다치지도 않은 걸 확인하자 놀란 얼굴은 갑자기 차 앞으로 돌진한 나를 원망하는 낯빛으로 바뀌었다.

“조심해요. 하마터면 치일 뻔했잖아요?”

민망함에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넘어지면서 발목 접질는지 바로 설 수가 없었다. 툴툴거리며 차를 돌리는 운전자의 뒷좌석에 앉아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창문 너머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아이도 놀란 표정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손을 들어 흔려는데 손목까지 삔 건지 또 욱신거렸다. 그러자 아이는 이번에는 입까지 동그랗게 벌리며 한층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주 무서운 걸 보기라도 한 양. 사고가 날 뻔해서 놀란 게 아닌가? 아이는 차가 떠날 때까지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인형극 중 내내 졸기만 하던 아이가 여전히 악몽을 꾸고 있는 줄 아는 걸까?

“하아, 완전히 절단났구나.”

나 대신 차에 치이기라도 했는지 목각인형은 사지가 제멋대로 꺾인 채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어쩌면 아이가 보고 놀란 것도 내가 아니라 목각인형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는 졸음이 싹 가셨겠지.

 

3-3

인형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도로에 떨어진 건 갯수까지 다 확인해서 챙겨 온 것 같은데. 혹시 고양이가 가지고 놀려고 몰래 물고 가버렸나? 아니면 자기네 공연 소품인 줄 알고 연극 관계자가 가지고 가버린지도 모른다. 소극장 건물 창고에 얹혀 지내는 신세라 가끔 다른 공연 물품과 내 꼭두각시 인형이 뒤섞일 때가 있다. 마음대로 가져가 놓고선 찾기도 힘든 곳에 처박아두는 일도 다반사다. 어쩔 수 없이 눈치밥을 먹는 쪽이 찾으러 나설 수밖에 없다.

오늘따라 복도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다. 휴일인가? 공연도 없는데 왜 쓸데없이 남의 인형을 가져가는지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아무 문이나 열고 들어가 확인하기도 망설여지는데, 마침 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가니 문이 열린 곳을 발견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나 내 인형이 관객석에 앉혀 있었다. 리허설 중인가? 그 와중에 관객 역할을 할 인형까지 동원한 걸 보면 꽤 이를 갈고 준비하는 극인가 본데? 괜히 어떤 내용일지 궁금다. 나도 저런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싶다. 지금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인형극만 할 뿐이지만, 언젠가는 어른들도 몰입하고 즐길 수 있는 인형극을 선보이는 게 꿈이다. 좀 더 자세히 들으려 문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억!”

그때 하필 문밖으로 튀어나오는 사람과 정면으로 부딪며 뒤로 나뒹굴었다.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이나 넘어지는 건지. 쏜살같이 건물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다. 도망치는 놈 얼굴이 중요한 게 아니다. 코피나 나지 않았나 얼얼한 얼굴을 쓸어내려 보았다. 그런데 공연장 안은 아직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라도 났나? 혹시 인형이 망가졌을까 봐 허겁지겁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수선하게 무대 뒤로 우르르 사라지는 사람들 뒤로 꼭두각시 인형은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단지 얼굴만 뒤쪽으로 돌아간 채. 악취미이기도 하지. 관객 대용으로 놔둔 거면 얼굴은 왜 무대 반대쪽으로 향해놓았지?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배우라도 기분 나빠서 박차고 나오겠네.

일진 사나운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3-4

넘어지고 접질린 탓에 며칠이 지나도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아팠다. 아픈 티를 내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절뚝이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내 모습을 보고 누가 인형을 조종하는 연기자라고 보겠는가?

“꼭 꼭두각시처럼 움직이시네요? 인형을 오래 다루다 보니 동기화된 거 아니에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 부자연스러운 내 움직임에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원래 같이 사는 사람들끼린 행동거지가 닮아 간다고 하잖아요? 사람 대신 인형이랑 하루종일 같이 있다 보면 닮아가게 되나 봐요? 하긴 인형이 사람을 닮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진짜 무섭겠다.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마트 공연 담당자는 내 모습이 꼭두각시 인형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이상하게도 공연 시작 전까지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차피 망가진 인형들을 고치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 인형들을 대신해 내가 꼭두각시 연기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걷는 것조차 꼭두각시 인형의 움직임처럼 보일 정도라면?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졸던 아이도 환호 소리에 눈을 번쩍 떴고, 화장실에 가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학부모들도, 공연 관계자들도 모두 만족한 얼굴이었다. 공연을 마친 후 처음으로 연장 요청도 받았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얼떨떨했다. 내 연기가 그렇게 자연스러웠나? 아니, 부자연스러웠으니 인형처럼 보였겠지. 단지 아픈 것뿐인데. 그래도 불편한 몸으로나마 공연을 할 수 있는 데에 마음이 놓였다. 부서진 인형들을 수리하는 동안 당분간 꼭두각시 인형 대행을 하면 되니까.

할 일을 뺏긴 부서진 인형들이 슬퍼 보인다. 걱정하지 마.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새것같이 고쳐줄 테니까. 그러면 너희들도 다시 연기를 펼칠 수 있을 테니까.

 

3-5

비가 내리자 다 나은 줄 알았던 몸 여기저기가 다시 쑤셔왔다. 창고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줄기 때문인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도 살이 흘러내리는 듯 으스스하게 보였다. 괜히 이곳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형과 소품을 보관할 곳을 급하게 찾다가 지인에게 소개받은 이곳은 원래 연습실이었다고 한다. 꽤 널찍한 크기 창고로만 쓰기에 아까워 보이긴 했다. 하지만 이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싶어 하는 배우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연습을 하다 목이 꺾인 귀신을 목격한 이들의 성화로 할  없이 창고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귀신은 원래 이곳에서 연기하던 배우였는데, 연습실 창문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목이 부러지며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역시나 싼 곳은 다 이유가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귀신보다 굶어 죽는 게 더 무섭다. 그러니 싸고 넓은 이 공간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거기다 그 소문은 딱 봐도 지어낸 얘기 같았다. 2층 높이 창문에서 떨어진다고 목이 그렇게 쉽게 부러질까? 재수 없어서 다리나 팔 하나 부러지는 정도면 몰라도? 게다가 창문 턱 높이는 일부러 창밖으로 몸을 숙이지 않는다면 쉽게 떨어질 높이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배우가 왜 창문 밖으로 떨어진 건지를 궁금해해야 할 것 같은데? 물론 창밖으로 떨어져 목이 꺾여 죽은 사람이 정말 있기는 하다면 말이다.

문득 여기서 뛰어내려 다리 하나가 부러진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깁스를 한 다리는 정말 목각인형의 다리처럼 보이겠지? 그런 상상을 하는 내 자신이 어이없어 머리를 저었다. 예전에는 꼭두각시 인형이 내 몸과 같아져서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기를 바랐었는데, 이제는 내가 꼭두각시 인형이 되길 원하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빠질 시간에 연기나 더 연습하자.

 

3-6

다행인 건 이제 더 이상 몸이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인 건 아프지 않은 몸으로 연기하는 내 꼭두각시 인형 흉내는 최악이라는 것이다.

불편한 몸으로는 의도하지 않아도 인형과 같이 움직이는 데에 힘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몸으로는 일부러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려는 몸짓이 오히려 더 연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니, 시큰둥한 정도가 아니었다. 형편없었다. 멀쩡한 내 몸뚱아리는 누가 봐도 꼭두각시 인형처럼 보일 리 없었다. 공연은 대실패였다. 기운이 빠진 채 뒷정리를 하는데, 인형극인 줄 알았는데 왜 인형은 별로 등장하지도 않냐고 공연 담당 직원에게 따지는 어느 학부모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귀에 꽂혔다. 그리고 슬쩍 눈이 마주친 직원의 눈빛에선 공연 연장 제안을 후회하는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알고는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인형극을 놓지 않는 나를 위해 단장님 몇 군데 공연을 부탁해놓았던 걸. 그래서 단장님과 상관없이 내 힘으로 처음 공연 연장을 따냈을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하지만 이제는 그 기회조차 날려버렸다. 아니, 스스로 놔버린 걸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인형극을 보고 즐거워하는지 알면서도? 연기자로서 자격이 없는 걸까? 스스로 인형이 되어 연기할 배짱이 없다면? 그렇다면 진정한 꼭두각시 인형극의 배우라고 말할 수 없을까? 인형과 내가 한 몸이 되어도 좋다는 마음을 먹지 못한다면?

 

밤이 내리 도로 위는 집으로 향하는 차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다. 창고에선 귀신만 나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겠지. 아니면 귀신에게 목을 꺾는 재주라도 가르쳐달라고 빨리 돌아가야 할까? 아니, 그런 재주는 고양이에게 부탁하면 되지.

밤늦은 시간에 검은 고양이가 길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자유자재로 몸을 구부리고 늘이며 철제 난간 사이의 좁은 틈새도 쉽게 지나다닌다. 고양이는 어쩜 저렇게 유연할까?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타격도 없다. 내 인형들도 고양이와 같이 움직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면 나라도....

까만 고양이는 도로 위를 지나가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 옆을 스쳐 지나가는 차들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들 사이를 검은 고양이는 잘도 피해 다닌다. 도로 한가운데에 서서 두 눈빛 빛내고 있는 고양이는 밤의 얼룩처럼 보인다. 두 개의 조그만 눈빛이 깜빡이며 말한다.

‘이리 와. 잠깐이야. 많이 아프진 않을 거야. 공연을 하고 싶잖아? 넌 인형을 조종하는 배우잖아? 네 연기를 보여줘.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 네 몸을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해서.’

그렇다면 나도 고양이처럼 움직일 수 있을까? 꼭두각시 인형으로 다시 연기할 수 있을까?

연석 아래로 발을 내디디며 차도 쪽으로 걸어갔다. 아직은 내가 검은 고양이처럼 보이지는 않을 테니 경적을 울리며 욕설을 퍼부으며 차들은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하지만 나도 곧 고양이처럼 될 거다. 자유자재로 몸을 구부리고 늘이며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다. 잠깐이다. 잠깐만 아프면 된다. 나는 배우니까, 연기를 해야 하니까.

 

운전자는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었었다.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고양이를 잡으려 같이 뛰어든 내 잘못이라고, 살짝 부딪친 정도라고, 뼈가 부러지거나 피가 나는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걸음질 치며 사고 현장을 도망치듯 떠났으니 귀신에 홀린 건가 의심이 들 만도 하지. 몸은 욱신거렸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자신감이 넘쳤다. 다음 공연에서는 실수할 일 없다고, 실망과 비난과 후회의 눈초리들이 환호와 선망과 인정의 눈빛들로 바뀔 거라고 스스로에게 자신할 수 있었다.

 

3-7

몸을 움직일 때마다 딱딱거리는 관절 소리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관객들 귀에 들리지 않는 듯 모두 공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내가 진짜 인형인지 아닌지 서로 주장하며 투닥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조차 방해가 되기는커녕 뿌듯했다. 긍정적인 반응에 아픈 줄도 몰랐다.

공연이 끝나고 한 아이가 쭈뼛대며 다가왔다. 귀여운 아이가 재미있게 본 공연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걸까? 다른 아이들처럼 감사 인사라도 하려고? 중요한 질문이라는 듯 한 손으로 가린 입을 귀에 대고 속삭였다.

“등 뒤에 푸른 요정은 피노키오처럼 사람이 되고 싶어서 같이 다니는 거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아이는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푸른 요정이라고? 내 등 뒤를 말하는 건가? 내 등 뒤에 뭐가 있었나? 검은 고양이라도 봤나? 하지만 검은 고양이를 푸른 요정으로 착각할 리는 없잖아? 아이는 뭘 본 거지?

아이가 말한 푸른 요정이 뭔지는 곧 알게 되었다.

 

“나는 꼭두각시 인형... 목덜미를 틀어쥐고, 사지에 철줄을 묶고, 벙긋거리는 입에 맞춰 목소리를 내는 건 누구지? 누가 날 조종하고 있지? 나는 살아있나? 죽었나? 나는 꼭두각시 인형... 혼자선 움직일 수 없지만 나를 조종하면 움직일 수 있지. 이렇게....”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 어깨 위에 걸터앉아 있는 형상은 핏기도 없이 시퍼렇게 질린 피부가 꼭 시체 같았다. 하지만 시체가 내 어깨 위에 있을 리 없잖아? 귀신이라면 빨리 떼어내고 싶었지만 몸은 마비라도 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안힘을 쓰며 꿈틀거리면 그 방향으로 똑같이 귀신도 흐느적거렸다. 조롱이라도 하듯이. 아니, 조종하듯이. 귀신과 나는 한 몸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귀신이 나를 조종하는지, 내가 귀신을 조종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가위에 눌렸던 거야. 그러니까 움직일 수 없었지.”

그때의 공포가 다시 떠올라 몸을 부르르 떨며 고양이에게 처음으로 눌려 본 가위 경험담 늘어놓았다. 하지만 녀석은 관심도 없는지 인형만 가지고 놀기에 바쁘다.

긴 터가 안 좋은 모양이야. 귀신이 한둘이 아닌 거 같애.”

내가 본 건 극단 사람들이 말하는 목이 꺾인 귀신이 아니었다. 어쩌면 잠결에 깼다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몸 이곳저곳에 시퍼렇게 든 멍 자국이 불빛에 번져 보였을 수도 있고. 설마 벌써 저승사자가 찾아왔던 건 아니겠지? 요즘 따라 몸이 굳거나 뼈마디가 뒤틀리는 느낌이 잦긴 한데. 차 사고 후유증일까? 아직까진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어떡하면 좋겠냐? 네 의견은 어때? 너도 공범이잖아? 자해공갈단 단원으로서 돈벌이에 이 방식이 맞는 거 같애?”

인형 놀이도 지겨워진 검은 고양이는 기지개를 크게 키더니 밖으로 향했다. 한담은 그만하고 어서 오늘 할 일을 끝내자고, 며칠 뒤 공연에서 또 환상적인 인형 연기를 선보이려면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는 듯 문밖에서 나를 기다렸다.

 

3-8

“아, 깜짝이야. 마네킹인 줄 알았네.”

잠시 쉬느라 가만히 앉아 있던 것뿐인데 마네킹이라니, 과장도 심하다. 공연을 하고 나면 피로감이 몰려와 쉬어줘야 한다. 어떨 때는 숙소까지 갈 기력도 없어 앉을 만한 곳이 있으면 아무 데고 몸을 늘어뜨린 채 쉬고 본다. 분명 졸았던 건 아닌데 시간을 확인하면 어느새 몇 시간씩 훌쩍 지나가 있곤 했다. 너무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정말 마네킹이라도 된 양 온몸이 굳어 버려 바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의아해하는 눈초리와 한심해하는 시선을 받으며 몸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 망가진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도 주워가고 싶어 하지 않을.

 

잠깐이지만 인형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새로운 연기 연습을 봐주는 건 좋은데, 무서우니까 인형 주제에 눈알은 굴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설마 네 몸에 목이 꺾인 귀신이 들어간 건 아니겠지? 죽어서도 목이 꺾인 채 돌아다니긴 싫으니까 인형 몸에라도 들어가서 지내려고?”

대답이 없다. 이왕이면 눈이라도 한 번 깜빡여 주면 진짜 귀신이 있다고 믿어줄 텐데. 실없는 농담은 그만하고 연습이나 하자.

“나는 꼭두각시....”

“뭐라고?”

“....”

잘못 들은 건가? 분명히 그렇게 들렸다. 등 뒤에는 꼭두각시 인형뿐이다. 헛것으로 모자라 이젠 헛소리까지 들리나? 빨라지는 심장 박동 때문인지 가슴이 뻐근했다. 담이라도 온 듯 목도 뻣뻣해졌다. 그리고 팔도, 다리도, 입까지. 그래, 이건 가위가 눌리려는 전조인 거야. 몸이 마비되기 전에 풀어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건물 밖이라면 귀신도 쫓아오지는 못할 거다. 하지만 다리가 너무 아팠다. 정확히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내 생각은 틀렸다. 귀신은 거기까지 나를 따라왔다. 이번에는 목이 꺾인 귀신도, 시퍼런 피부의 귀신도 아니었다. 웃는 귀신이었다. 입이 찢어질 듯 웃는 귀신은 내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기괴한 몸짓으로 움직였다. 꼭두각시 인형이라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손수 보여주겠다는 양. 그 자리에 그대로 붙박 귀신의 놀음을 전부 지켜봐야만 했다.

그것 또한 가위에 눌렸던 것뿐이었을까? 내 옆에 다가와 있는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을 땐 기분 나쁘게 웃던 귀신도 사라진 뒤였다.

 

3-9

그때가 멈췄어야 할 기회였을지 모른다. 나는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지, 내가 인형이 될 수는 없다. 그런 연기는 잘하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잖아? 연기가 아닌 불편한 몸을 이용하고 있었던 뿐이라는 걸. 

그런데 왜 하필 가장 원하는 건 가장 좋지 않은 시기에 찾아오는 걸까? 소극장에서 새로 올리는 연극에 내가 참여해줄 수 있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배우의 독백 부분에 잠깐 나오기만 하면 된다며, 인형극에서 원래 하던 연기를 그대로 팬터마임으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배우들이 직접 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전문가의 인형 연기가 극의 완성도를 더 높이지 않겠냐며.

솔깃했다. 아동극이 아닌 정극에서 내 연기를 보여주는 첫 무대가 될 수 있었다. 시간당 출연료를 따져 봐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다시 없을 기회일지도 몰랐다. 한 번만 더 인형이 되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이번이 정말 딱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어둠 속에서 인형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기쁨에 입을 벌리고, 슬픔에 눈물을 흘리고, 분노의 발길질을 하고, 좌절하여 바닥으로 엎어진다.

“나는 꼭두각시 인형이다.”

저건 목이 꺾인 귀신이나 파리한 시체나 웃는 얼굴이 말하는 게 아니다. 진짜 배우의 대사다.

“목덜미를 틀어쥐고....”

조명 불빛이 켜지고 곧 무대 가운데로 배우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내 연기는 끝이다.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 된다.

“나는 살아있나? 죽었나?”

하지만 조명은 자꾸만 나를 비춘다. 내 연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양. 몸을 숨길 곳이 없다. 사방이 불빛이다. 내 연기를 더 자세히 봐야겠다는 듯 온갖 불빛이 달려들고 훑고 지나간다. 더 연기를 해야 하나? 이 정도 인형 연기로는 만족하지 못하나? 왜 저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왜 놀라는 거지? 왜 공포에 질린 얼굴로 다가오는 거지?

왜냐하면 나와 부딪칠까 봐, 나를 치고 말까 봐. 왜냐하면 저건 무대 위 조명 불빛이 아니라 내가 앞을 가로막은 자동차 불빛이니까.

 

뼈가 부러졌는지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내동댕이쳐진 인형처럼 도로 한쪽에 널브러졌다.

“이봐요. 괜찮아요? 정신 들어요?”

운전자는 내 기색을 살피며 연신 통화를 다. 많이 다치지 않았으니 구급차를 부를 필요 없다고, 자해공갈이 아니니 보험사나 경찰에 신고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하다.

도로 건너편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불빛이 번뜩였다. 무대 위 조명이 비추면 연기를 시작하는 배우처럼 나는 그 빛에 홀린 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도로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운전자가 붙들고 막았다. 그러자 붙잡힌 팔에서 딱딱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운전자가 손을 떼자마자 나는 만족한 얼굴로 팔을 팔랑이며 도로 밖으로 나갔다. 귀신이라도 본 듯한 그 얼굴이 계속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부러진 인형 같은 몸 상태로는 멀리 도망칠 수 없다. 우선 몸을 숨기자.

다행히 화장실 안은 비어 있었다. 하지만 곧 다시 몸이 마비가 되려는 듯 굳기 시작했다. 인기척이 들린다. 저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할까? 하지만 나를 쫓아온 운전자면 어쩌지? 어차피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잘못이 아냐... 내 잘못이 아냐... 난 내 일을 한 것뿐이야.”

역시나 운전자일까? 가까스로 고개를 꺾어 세면대 앞 거울을 확인해보았다. 거울 속 고개를 숙인 채 자책하듯 중얼거리는 사람의 입은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름끼치는 그 얼굴을 잘못 본 것이길 바랐다. 그리고 그때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검은 고양이도 제발 잘못 본 것이길 바랐다. 고양이는 꼬리를 흔들며 저것의 뒤로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하마터면 뒤돌아보는 저것에게 들킨 뻔했다. 도망쳐야했다. 저것이 귀신인지 사람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잡혀선 안 될것 같았다.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렸다. 차라리 이것도 가위에 눌리는 꿈이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움직이지 못하더라고 현실이 아닌 꿈이니 언젠가는 깰 테니까. 

하지만 몸은 완전히 마비되지 않았다. 바닥을 길 정도로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는 저 얼굴도 분명 현실일 거다.

그렇다면 거울 속에 비치는 목이 꺾이고, 푸르스름한 낯빛에, 사지를 뒤틀고 있는 저 모습도 진짜 나라면, 누가 나를 조종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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