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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달을 닮은 사나이

2021.02.17 10:2802.17

<달을 닮은 사나이>

 

 

달이 창백한 밤이었다. 달 주위로는 회색 구름이 벗겨진 페인트처럼 흉하게 흩어져 있었다. 노안 탓인지, 별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하늘은 저 홀로 적막했다. 땅 위에 발을 붙인 사람들은 멈추어 있지 않았다. 모두가 바삐 제 갈 길을 오갔다. 어쩌다 한 자리에 머문 이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웃거나 울거나 화를 내고, 말하거나 노래하고, 담배를 피우거나 먹은 것을 게워냈다. 곳곳에 즐비한 상점 간판이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사람들의 몸을 붉고 푸르게 물들였다. 모든 것이 다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같았다.

바람결에 실려 온 한기가 나를 세상 속으로 불러들였다. 작고 허름한 식당을 나와 바깥바람을 쐰 지 십 분도 되지 않았는데, 연탄불의 매캐한 연기와 바싹 탄 돼지고기 냄새가 벌써 그리워졌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온갖 빛의 그림자가 다 몰려든 것처럼 유독 어두컴컴했다. 그늘지지 않은 곳으로 발을 내디디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내 몸 위에는 김 차장이 늘어져 있었다. 나는 그의 뺨을 연신 두들겼다.

이봐, 정신 좀 차려봐.”

김 차장은 눈을 뜨지 못했다. 가늘디가늘어 허깨비 같은 체격이라지만, 힘을 잃고 기대어 온 전신의 무게는 버거웠다. 어쨌든 저나 나나 내일모레면 쉰 하고도 다섯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좀처럼 사무실을 벗어날 일이 없던 탓에 얇기만 한 종아리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기지도 못할 술을 왜 이렇게 마셨어?”

짜증을 내다가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뺨에 얹은 손에 뜨끈한 물기가 느껴진 탓이었다. 꼭 감은 그의 눈가에서 시작된 물기였다. 오늘이 그의 마지막 회식 날이었다.

고작 두 시간 이어진 술자리인데도 남아 있던 사람은 그와 나를 포함해 딱 셋뿐이었다. 그는 회사에 있을 때도 별 볼 일 없었고 회사를 나가서도 별 볼 일 없을 사람이었다. 여덟 시 오십오 분이 되자, 그때까지 시계만 보던 후배 녀석이 벌떡 일어서더니 계산대로 향했다. 가게주인에게서 법인카드를 돌려받자마자 어찌나 홀가분한 표정이던지, 김 차장에게 미안해질 정도였다.

처음부터 나한테 카드를 맡기지 그랬어?”

박 차장님께 그럴 수야 있나요? 잃어버리면 골치 아프기도 하고.”

골치를 아프게 할 대상이 카드라는 건지 나라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후배 녀석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나서 영수증을 챙겨 사라졌다. ,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난 것도 같았다. 사람이 하나 줄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시야가 더 좁아지고 공기도 더 무거워졌다. 가슴이 답답했다. 헛기침 소리만 불판 위를 떠돌았다. 줄곧 말이 없던 김 차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 소주 세 병 더 주세요!”

 

일렬로 서 있는 택시 중 가장 앞에 있는 택시 문을 열었다. 그 앞 차량에는 김 차장을 태워 보낸 참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자마자 눈을 감았다. 택시가 출발하기도 전에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이건 아닌데, 이건 진짜 아닌데.”

김 차장이 웅얼거리던 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울렸다. 그때 나는 그의 등을 토닥이면서, 연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한을 토하고 싶거든 차라리 식당 안에서 하지, 대로 한복판에서 왜 이러는 거지? 그러나 김 차장에게는 상관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회사 밖인 건 마찬가지니까. 흐느낌을 가로막던 김 차장의 검붉은 입술이 점점 위아래로 벌어졌다. 어깨의 떨림이 격해지고 목소리가 커지는 것으로 보아 그의 처연함은 곧 추함으로 바뀔 예정이었다. 가엾음, 의미 없는 고함, 지나가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눈초리를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집에 가지 않겠다는 김 차장을 택시 안으로 구겨 넣으면서 꽤 애를 먹었다. 택시에 타지 않으려고 발악을 해대는데, 김 차장이 그렇게 힘이 센 줄 오늘 처음 알았다. 하긴 버티는 거 하나는 끝내주던 그였으니까.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 김 차장은 마지막까지 큰소리로 외쳤다.

그럼 우리 집에 가자. 마시고 같이 죽자!”

글쎄, 그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죽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겁 없이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둔 가장이었다. 늦둥이 아들은 돌도 지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금슬이 좋다느니, 다 늙어 주책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심심찮게 해댔다. 짓궂은 농담이야 넘기면 그만이었지만 앞으로 수년간 아이들을 키워낼 일은 아득하기만 했다. 힘도 달리고, 돈도 달렸다.

게다가 지난번 김 차장의 집에 무심코 따라갔다가 마주친 제수씨의 눈빛이 떠올랐다. 검은 동공 일부는 분명 김 차장과 나를 본척만척 지나쳤으나 얇은 핏줄에 붙잡힌 새하얀 흰자에는 살기도, 살기도 그런 살기가 없었다. 그때부터 달걀프라이 흰자만 마주해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집에서는 김 차장이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긴, 버틸 필요도 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김 차장은 형수와 아이들을 서울에 남겨둔 채 고향으로 갈 것이다. 작은 밭뙈기에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울 것이다. 다 된 농사에 숟가락을 얹는 수준일 테지만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깟 대학 가지 말고 땅이나 지키자고 할 걸.”

김 차장의 부모는 그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농사짓던 땅들을 조금씩 팔았다고 했다. 지금 그 땅은 거대한 관광단지의 일부가 되어 번쩍거리는 건축물을 이고 있다. 몇십 배는 더 받고 팔 수 있었을 넓은 땅을, 그는 항상 입에 올렸다. 오늘만 빼고.

 

합승 괜찮으시죠?”

택시기사가 묻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차를 세웠다. 속이 울렁거려 눈을 뜨지 않고 있을 뿐인데, 내가 잠든 줄 알았던가 보다. 부담스러운 침묵을 피하고자, 멀쩡해지려는 정신을 자꾸만 술잔에 밀어 넣었더니

경쾌한 음악 사이로 어디까지 가세요?”, “타도 될까요?” 같은 말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속이 진정된 후 눈을 떴을 때는 낯선 이가 택시기사의 옆 좌석에 앉아 있었다. 뒤통수가 제법 반듯했다. 나는 뒷좌석에 몸을 바싹 붙였다. 택시는 유유히 제 갈 길을 달렸고, 나는 이곳에 몸을 실은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택시가 그의 행선지를 먼저 경유해서 갈까 봐 걱정스럽기는 했다. 나는 눈을 억지로 치켜떴다. 차창 밖으로 사라지고 들어서는 풍경들에 집중하면서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바깥의 무엇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또 속이 메슥거렸다. 시선을 안으로 돌려 앞에 앉은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내는 여전히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언뜻 보이는 새하얀 뺨에 뽀얀 젖살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야심한 밤에 이런 한적한 곳엔 왜 왔을까? 저렇게 팔팔할 나이에는 더 활기차고 시끄러운 곳에 있어야 하지 않나? 속으로 외쳤다.

늙기 전에 좀 더 즐겨두지 그래? 나이가 들수록 발밑에 묶인 돌덩이가 늘어날 테니까.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나? 버겁다고 속을 털어놓아도, 도움을 요청해도 안 된다는 거야. 약점을 드러내는 게 될 뿐이니까. 잠시만 쉬었다가 걸어도 비웃음을 사는 곳이 이곳 세상이라네.”

때마침 차가 미끄럼 방지 턱을 넘는 바람에 그의 어깨가 살짝 움찔거렸다. 그는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더니 귀를 탈탈 털었다. 내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것인가? 실실 웃음이 났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훔쳐보았다.

콜록. 갑자기 젊은 사내가 헛기침을 했다. 내 몸에 밴 술 냄새 때문인가? 괜스레 창문을 열고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달은 둥그스름한 보름달이었다. 넉넉한 달빛이 옅은 구름 사이를 뚫고 나왔다. 달에 대고 오래도록 소원을 빌고 싶었다.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김 차장을 위해.

 

김 차장은 나보다 일 년 먼저 입사한 선배였다. 하지만 금방 허물없이 가까워졌다. 동갑내기에다가 비슷한 점이 유독 많았다. 소위 나보다 잘 난 아내를 가진 점, 정작 본인은 남보다 뒤떨어진 업무실적을 가진 점, 늦은 승진으로 자존심을 구긴 점, 은근슬쩍 아랫사람에게 일을 미루고는 공적을 따질 때만 슬쩍 이름을 얹는다는 점.

그런 것들이 우리를 단단한 유대감으로 묶었다. 능력 있는 선배들은 우리를 대놓고 무시했고, 영리한 동기나 후배들은 우리를 피했다. 아부를 받아주던 윗사람들은 하나둘 퇴직하더니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차장이 회사를 떠나다니, 텅 빈 놀이터에 홀로 남겨진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집에 갈 때까지 김 차장만은 함께 남아주었으면 했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 차장도 노력했다. 세련되게 리모델링되어 낯설기만 한 놀이터에서 버텨보려 했다. 자신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보려 했다. 쪼그려 앉을 인조 잔디 조금이면 충분했다. 냉랭한 시멘트 바닥이어도 상관없었다. 그 자리가 쓰레기통 옆이더라도, 이따금 잘못 던져진 쓰레기에 얼굴을 맞더라도 상관없었다.

해가 넘어가면서, 김 차장은 부품업체에 지불해야 할 금액을 실수로 두 번 입금했다. 하지만 그는 세 장에 달하는 경위서 안에 구구절절이 사죄의 뜻을 밝혀 그래도 본성은 착하다라는 평을 끌어냈다. 다시 몇 달 뒤 그의 착오로 고객업체에서 의뢰한 물량보다 다섯 배의 물품을 제작했지만, 그 역시 며칠간의 석고대죄로 그래도 사람이 불쌍하지 않냐는 평을 끌어냈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 실수는 회식 자리에서 갑질로 유명한 고객 업체 팀장에게 된장찌개를 쏟은 일이었다. 열 살은 족히 적어 보이는 상대에게 김 차장은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상대가 고개 숙인 김 차장의 뒤통수를 세 번째 툭 내리쳤을 때, 그가 읊조리고야 말았다.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정말.”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맨정신으로는 그런 말을 뱉을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또한 술 때문에, 그 말은 욕설이 섞인 거친 다툼으로 이어졌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김 차장은 뒤통수를 맞았을 때 이마나 뺨까지도 내밀었을 것이다.

일찍 말린 덕인지 서로 조금씩 밀치긴 했어도 김 차장의 팔꿈치가 조금 까졌을 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안 좋은 소리는 조금 들었지만, 거래도 계속되었다. 그동안 해온 실수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명예퇴직 권고가 날아왔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그는 버티고 또 버텼다. 어차피 회사에서 해온 일이 그것뿐이었으므로 평소와 다를 것도 없었다. 다만 회사의 대응이 평소 같지 않았다. 김 차장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느라 휴가를 쓴 다음 날이었다. 출근한 김 차장은 사무실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자신의 책상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책상이 있던 자리는 부서 사람들이 조금씩 넓힌 여유 공간과 깔끔히 정리된 사무집기들로 자연스럽게 메워져 있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리를 찾는 그에게, 팀장은 복도 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텅 빈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컴퓨터도, 전화도, 서류철도 없었다. 휴대폰 사용과 자리 이동이 금지되었다.

그는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 시선을 허공에 둔 채 온종일 그곳에 앉아 있었다. 책상에 앉아 잡생각을 좇는 것은 그의 오랜 취미였다. 나는 그가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복도 끝은 화장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직원들은 화장실을 드나들 때마다 그를 흘끗댔다. 그가 놓여있는 화장실에서는 윗사람의 뒷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민감한 비밀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저 허리가 아프거나 머리가 지끈거려 산책 삼아 화장실을 가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화장실 하나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해서야.”

대놓고 빈정거리는 소리가 잦아졌다. 언젠가부터 그는 허공 대신 책상 모서리 상단 오른쪽 귀퉁이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날에는 책상 모서리 하단 왼쪽 귀퉁이를 바라보기도 했다.

아무도 그와 말을 섞지 않게 되었다. 나조차 그랬다. 그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내 책상까지 그의 옆자리로 옮겨질 것 같았다.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 엷은 미소라도 지어 보였던 그는, 어느 순간 표정을 모두 지워냈다. 핏기가 사라진 얼굴에서는 어떤 생각이나 감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성냥개비 같던 김 차장의 얼굴이 이쑤시개쯤으로 보인 지 이 개월 하고도 보름이 지난 어느 날, 최 이사가 찾아왔다. 김 차장의 고등학교 선배로, 그가내가 최 이사 라인이잖아라며 거들먹거리곤 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김 차장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김 차장의 눈에 잠시 초점이 돌아왔다. 최 이사는 김 차장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반듯한 종이 위에는 명예퇴직용 사직서 양식이 단정히 출력되어 있었다. 김 차장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날, 김 차장은 사직서를 냈다. 예상보다 늦은 사직서 제출을 보상받으려는 듯, 회사는 후속 절차를 서둘렀다. 김 차장이 사직서를 낸 지 이틀도 되지 않아 인사발령 공문이 돌더니,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김 차장의 후임을 뽑는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어느 날 복도에서 인사부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최 이사를 보았다. 묵례하고 지나치는데, 등 뒤로 최 이사의 목소리가 꽂혀왔다.

그 친구가 항상 한 발 느려서 고생 좀 했지.”

 

김 차장의 앞날은 어찌 될까? 그와 그의 부모가 무탈하기를 빌려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내가 빌 대상은 달이 아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주칠 아내를 생각했다. 그녀에게 빌어야 했다. 돌도 되지 않은 막내둥이를 두고 늦어서 미안하고, 그 늦은 이유가 술인 것은 더 미안하고, 술에 만취했으므로 늘 잠이 부족한 아내 대신 두 시간 단위로 깨서 울어댈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것-반쯤은 그러려고 마신 술이지만-은 더더욱 미안하다고. 짜증이 울컥 솟았다. 대체 삶은 왜 이렇게 늘 굽실대야 하고, 비굴해야 하고, 고단해야 하는가?

어디까지라고 하셨죠?”

택시기사의 말이 나를 향한 것인지, 합승한 젊은 사내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멀뚱멀뚱 택시기사를 바라보자, 그도 나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성북동 햇살 아파트요

두 분이 같은 곳에 사시나 보네요. 혹시 아는 사이세요?

택시기사의 말에 나는 젊은 사내를 보았다. 젊은 사내 역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좁은 택시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

나는 나도 모르게 멈추었던 숨을 뱉어내며 낮은 신음을 토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매일 보던 얼굴처럼 익숙했기 때문이다. 아니, 바로 전까지 보았다는 말이 맞겠다.

젊은 사내의 얼굴은 딱 달만큼 둥글고 딱 달만큼 창백했으며 딱 달만큼 누르스름했다. 그리고 달을 닮은 사내는 내가 사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기사 양반. 이 청년!”

청년이 왜요?”

택시기사는 무심히 대꾸했다. 택시기사의 태도로 보아 사내가 달을 닮았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사내를 알아보았다면, 지금 그는 나를 흘끗거리는 대신 사내를 흘끗거려야 했다.

하늘에 달이 있던 자리는 먹구름이 들어서 있었다. 무언가 기묘한 일이, 나만 아는 특별한 일이 생긴 기분이었다. 달이라니! 나만 알아보는 달이라니!

오랜 친구를 만난 듯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 실제로 그는 나의 오랜 친구였다. 어린 시절 할머니 등 뒤에 업혀 달과 함께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때부터. 사회라는 전쟁터에 떨어져 모두가 나를 외면하고 업신여길 때, 밤마다 나를 지긋이 바라봐 주던 존재는 누구였던가? 늦은 밤까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다가 바라보던 달도, 까다로운 고객을 접대하고 나서 바라보던 달도 모두 나를 비추고 있었다. 달은 유일한 내 편이었다. 태양보다 친근하고 별보다 가까운 존재, 그가 바로 달이었다.

청년. 혹시 이름이 뭐요?”

이주영입니다.”

달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평범한 이름을 내뱉었다. 달도 가명 정도는 하나 만들어 두는 모양이로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이는 어떻게 되나?”

스물넷입니다.”

군대는 다녀왔나?”

면제입니다.”

이해가 되었다. 달이 군대에 가서 낮은 포복을 하고 화생방 훈련을 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는가? 눈물과 콧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그를 어렵게 떠올렸다. 달의 체면에는 맞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잡다한 질문들을 늘어놓았다. 그는 귀찮아하면서도 제법 성실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인간을 대표하는 사절단이 된 기분이었다. 오늘부터 나는 달을 달로서 맞이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아내에게 전화라도 걸까 생각했다. 여보! 나 오늘 달을 만났어!

대화가 길어지자 택시기사가 내 말을 잘랐다.

요즘 젊은이들은 누가 꼬치꼬치 묻는 거 싫어해요.”

안면이 있는 청년이어서 그래요.”

나는 달의 입장을 생각해 둥글려 대답했다. 택시기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몰라요?”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기사 양반, 모르는 게 아니고, 모르는 척하는 거요. 나는 저 양반과 이심전심하는 막역한 사이외다. 평범한 사람은 알 수가 없겠지요.

그러나 눈치 없는 택시기사는 곧바로 청년을 향해 물었다.

정말 아는 사이 맞아요?”

알고말고. 나와 그의 인연이 얼마나 깊은데.

택시에서 내리는 대로, 그에게 안겨 구겨진 신세를 한탄해야지. 굳이 내가 탄 택시에 동승한 데에는 그도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 이유가 나를 향한 위로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친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소원 한두 개 정도는 들어줄지도 모르지. 뭘 빌지? ? 명예? 그냥 정년퇴직?

아니요. 처음 보는데요.”

달을 닮은 사내가 건조하게 말했다.

날 모른다고?”

비명 같은 물음이 튀어나왔다.

 

나는 사내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또 한편으로는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창백한 그의 얼굴에 일순 홍조가 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그의 심사를 파악해 냈다. 그의 위장에는 나란 존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니 그의 진로를 방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외침을. 그의 눈이 내게 조용히 하라고 차갑게 말했다.

한껏 들뜬 기대가 바람 빠진 바퀴처럼 털털대며 배 속으로 가라앉았다. 소원은커녕, 특별한 인연은커녕 그는 나를 알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매일 그에게 내 마음을 터놓았는데, 남몰래 위로받았는데, 그가 나를 본 적이 없다니 말이 되는가?

그가 나의 호의를 무시하고, 나를 밀어냈다. 마음이 헛헛했다. 이럴 거면 내가 탄 택시는 왜 잡아타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가? 그러면 그렇지. 내 인생에 나만 아는 특별한 사건은 무슨. 나는 실망했고, 그래서 화가 났다. 나의 씩씩대는 숨소리가 택시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저를 안다고요?”

어이가 없다는, 의심 가득한 목소리였다. 뛰어난 연기력이었다. 잠시 그가 나를 진짜 모른다고 생각할 뻔했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알았다.

그래. 이 새끼야!”

갑작스러운 반말과 막말에 그가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 보름달 같은, 아니 보름달 새끼야! 내가 너한테 빌어 재낀 소원이 몇 갠지나 알아? 그러고 보니 너는 소원 하나를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어. 아내보다 먼저 승진하고 싶다고 빌었을 때, 너는 뭐 하고 있었어? 아내가 임신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빌었을 때 넌 뭐 하고 있었냐고?”

그가 표정이 당황에서 황당으로 넘어가 있었다. 능청스러운 연기가 이제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나는 온 힘을 배에 모으고 소리쳤다. 지나친 흥분 때문인지, 억울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몸이 다 떨렸다.

아내에게 육아휴직이 더는 없어야 한다고 빌었을 때, 김 차장이 회사를 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을 때 넌 뭘 하고 있었냐고?”

그는 .’하고 한숨을 뱉더니 애매하게 답했다.

글쎄요. 그때 제가 뭘 했을까요?”

넌 알았지? 김 차장이 잘린 게 내 탓이라는 걸.”

김 차장이 마지막 접대를 나가기 전에 내가 말했다. 당당하게 좀 살라고. 젊을 때 열심히 일했고 지금껏 잘 버텼으니 꿀릴 것 하나 없다고. 가장의 자존심을 잊었냐고.

김 차장이 쓴 경위서 어딘가에 내 이름 석 자가 있을까 봐 얼마나 전전긍긍했던가? 김 차장이 나를 보고 힘없이 웃어 주었을 때 얼마나 안도했던가? 오늘 그의 집에서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썼던가?

오늘이야말로 달의 위로가 절실한 날이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네가 남달리 비겁한 게 아니라고, 그저 김 차장의 운이 거기까지였다고 내 등을 토닥여주어야 했다.

저는 선생님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입 닥쳐! 넌 항상 날 바라보기만 했어.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었지. 내가 혼자 남겨지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내가 얼마나.”

더는 속에 담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내 친구가 아니니까. 저쪽은 한 번도 나를 가까이 여긴 적 없었을 테니까. 그럼 왜 착각하게 둔 것인가? 원망스러웠다.

나한테 왜 그랬어? 왜 그랬냐고!”

내가 아는 모든 욕을 날리고는 내친김에 그의 머리채까지 잡아 쥐려고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가 무슨 능력을 쓴 건지 내 손은 도무지 그의 머리까지 가 닿지 못하고 허공만 맴돌았다. 택시기사의 얼굴에는 운이 나빠 미친놈을 태웠다는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달을 닮은 사내는 오히려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비웃던 그가 말했다.

빌기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하셨어야죠. 승진하고 싶으면 성과를 내면 되고, 임신이 싫었으면 정관수술이라도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남겨지기 싫으면 먼저 떠나면 될 일이고요.”

알아서 해결할 수 있으면 미쳤다고 소원을 빌겠냐? 내 손으론 못하겠으니까 너한테 비는 거 아니야? 기획안 소리만 들으면 심장이 쿵쾅대는데, 어떻게 성과를 내? 애를 안 낳았으면, 제삿밥 차려줄 손자 놈 생겼다고 좋아하시는 우리 부모님은? 회사를 그만두면 아파트 대출금은?”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사님. 여기서 세워주세요. 이쯤에서는 걸어가도 될 것 같으니까요.”

달을 닮은 사내, 아니 달이 택시를 세웠다. 그리고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 방향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달에게도 택시비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잔돈을 다소 꼼꼼히 챙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 나는 얌전해졌다.

오 분쯤 달렸나? 아파트 단지 정문에 택시가 도착했다. 달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달이 했던 것처럼 택시기사에게 택시비를 내고, 잔돈을 꼼꼼히 챙겼다. 폐를 끼쳐 죄송하다며, 술 때문에 다소 과하게 행동했다며 비굴한 미소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늘 짓던 표정을 짓자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기사의 혓바닥 차는 소리와 함께, 택시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후덥지근한 매연이 싸늘한 밤공기를 덥혔다.

아파트 단지 정문은 고요했다. 곧 사라질 것 마냥 흐리멍덩해 보이는 아파트에서 습한 곰팡내가 났다. 벽면에 칠해진 아파트 이름은 반쯤 지워져 있었다. 이름이라도 새로 칠하면 떨어진 아파트값도 좀 오르려나? 아파트 이름을 향해 양손을 올렸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비틀어 네모를 만든 뒤 자 옆에 슬며시 얹었다. -. . 오십견이 온 어깨 탓에 팔이 금방 툭 떨어졌다.

 

집에 돌아오니 역시나 막내 아이는 칭얼대고 있었다. 아내는 내게 아이만 떠안긴 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이 깊이 잠들어 있을 방이었다. ‘하는 문소리에 아이가 더욱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이의 울음을 진정시키고 나서야 인쇄기에서 나는 경고음이 들렸다. 인쇄기 밖으로 반쯤 나오다 만 종이 옆에, ‘용지 걸림표시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인쇄기 뚜껑을 열고 걸려 있던 종이를 빼냈다. 아내의 부서 전출을 알리는 공문이 인쇄되어 있었다. 억지로 뜯어낸 탓에 종이가 찢기고 글자가 짓이겨졌지만, 내용은 알아볼 수 있었다. 본사 기획팀에서 지사의 영업팀으로, 팀장에서 팀원으로, 아내의 자리가 바뀐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있는 지사와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었다. 인쇄기 코드를 뽑다가 발밑에 서걱대는 감촉이 느껴져 옆으로 눈을 돌렸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분유통이 분유 가루 위에 엎어져 있었다.

새벽 세 시와 네 시 사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눈앞에 들어왔다. 아이를 어깨에 메고 어르면서 창가로 다가섰다. 훌쩍이는 소리가 잦아들자, 아이의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듯했다. 그런데도 힘이 들었다. 잠시 방심한 순간, 얕은 잠에서 깬 아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창문에 비친 아이의 뒤통수는 열과 성을 다해 우느라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내 하반신도 열과 성을 다해 취한 몸뚱이를 바로잡느라 땀에 흠뻑 젖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들여보냈다. 어느덧 아이가 잠잠해졌다.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아이의 얼굴을 반쯤 가린 턱받이를 조심스럽게 내리고, 눈가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한 줄기 빛이 아이의 얼굴을 향해 흘러들어 왔다. 놀라웠다. 빛이 스며든 아이의 얼굴이 딱 달만큼 둥글고 딱 달만큼 창백하며 딱 달만큼 누르스름한 것 아닌가? 빛이 아이의 얼굴 위를 넘어 벽을 비추었다. 벽에 걸린 액자 속에서는 크기가 다른 다섯 개의 달이 나를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실로 무표정한 웃음이었다.

마침내 해가 완전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부셔 고개를 돌렸다. 거울이 보였다. 거울 안에서는 오른쪽 소매에서 떨어져 나온 단추가 얇은 실 하나에 매달린 채 힘없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올렸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거울 속에는 초라한 달의 얼굴이 구겨진 셔츠 위로 둥둥 떠 있었다. 달은 닳고 거뭇한 한쪽 셔츠 소매를 다른 한 손으로 붙잡고 거울을 향해 다가왔다. 다리가 제멋대로 흔들렸다. 모든 것이 제 빛깔을 찾았는데, 해의 그림자가 드리운 달만이 자리를 찾지 못해 사라지고 있었다.

 

 

차영

모두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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