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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상희와 산희

2021.01.25 15:0901.25

 

이 집의 문들은 모두 닫혀있다. 모든 방들이 산성처럼 굳건하고, 침묵한다. 상희는 곧 문을 교체할 거라고 말한다. 더 튼튼하고 빈틈없는 문으로. 그는 문들이 하도 오래 돼서 새가 뜨고 빈틈이 넘쳐난다고 덧붙인다. 그게 아주 골칫덩이라고 토로한다.

나는 무엇을 정리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밥부터 먹고 하자. 정리할 게 겁나 많거든. 검, 나.”

상희는 겁나, 라는 표현을 자주 썼는데 발음은 검나, 였고 사람들이 대개 그렇게 발음하겠지만 거기엔 그가 좋아하는 배우 박보검의 박보‘검나’라는 의미도 들어있다. 한 결 같이 변하지 않는 순애보-내 글엔 절대로 등장하지 않고 등장하지 않을 것인-가 어딘가 부럽고 한편으론 안쓰럽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관심 갖고 사랑한다는 건 종일 시계를 쳐다보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지치는 일이므로.

연예인이라서 가능한 건가,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쉽게 곁을 주지 않고 또 다가오는 이도 없는-내가 알기론-그이기에 궁금증이 인다. 그러나 상희에게 물어볼 순 없다, 아니, 내겐 그럴 자격이 없다. 아닌가, 그래도 내가 형인데, 친형인데, 물어볼 수 있지 않나. 나는 죽은 부모에게도, 이혼한 아내에게도, 잠깐 살았던 뱃속의 아이에게도 사랑을 주지는 못했다. 사랑 비스무리한, 일종의 중국제 짝퉁 같은 거랄까, 흉내 낸 거랄까, 그런 것을 주었다. 상희에게는 그 비슷한 것도 주지 못했다, 않았다. 나는 문지방을 넘는다.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어?”

상희가 나를 쳐다본다. 상희는 상희로 서 있다. 원래는 산희, 산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깨가 살짝 벌어지고 무른 가슴을 쫙 편 상체 위로, 머리가 볼록 솟아있다. 은테 안경의 두꺼운 렌즈를 통해 나를 건너다본다. 182센티미터의 큰 덩치는 바람에 단단히 단련된 나무 같다. 나는 입맛이 없다고 우물거린다. 언제나처럼. 언제나, 라고 하기엔 상희를 못 본지 꽤 되어서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언제나처럼 그렇게 언제나처럼.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상희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은 부정적 의사를 띤 말 밖에 없다. 없어, 아니, 싫어, 안 가, 맛없어, 그만해, 정말이지 지금처럼.

“나는 짜장면 먹고 싶은데. 이사 가는 건 아니지만 이사 가는 기분으로.”

돈 주는 사람 맘이지,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집안 정리를 도와주면, 상희의 남편이-상희는 언제나 자신의 동성 파트너를 남편이라 불렀고, 남들에게 그러기를 강요하진 않았지만 그러도록 하라는 양 남편, 남편, 남편, 을 강조하곤 했다-출장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까지의 사흘간의 노동의 대가로 100만원을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는 아내에게서 받은 위자료를 갉아먹으며 생활을 영위했다. 일체 일은 하지 않고 소설만 쓰니 점차 삶의 균형이 어긋났다. 꽤 되었고, 그래서 100만원이 필요하고,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상희에게 소설을 쓰고 있다, 수입이 없다, 굶어죽긴 싫어서 왔다, 라는 말을 꺼내진 않았다. 문예지나 신춘문예 최종심은커녕 본심에도 턱걸이를 하는 주제에 이 같은 처지를 자랑스레 늘어놓기는 싫으므로. 그는 탕수육을 먹을 거냐고 물어본다. 나는 안방으로 쓰이는 방의 문을 가만히 바라보나. 노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들어간다. 한 번 더 내 이름이 불리고, 대답이 없자 상희는 세트 2번, 이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 모양새를 보니 20년 전, 10년 전, 수 년 전에 많이 시켜먹었던 그 중국집인 듯싶다. 아직도 영업을 하는구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내심 없어지기를 바랐던 마음 한 편을 달랜다. 지금까지의 삶을 논하는데 상희가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중국집 역시 빠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 짬뽕 먹는다? 형은 많이 먹었잖아. 물릴 때도 됐다. 괜찮지?”

질문의 저의가 무엇인지 곱씹다 뒤늦게 그래, 난 아무래도 좋아, 하면서 널따란 킹사이즈 원목 침대를, 새까만 침대를 바라보았다. 문득 상희와 그 남자-상희가 남편이라 부르는-를 되짚는다. 그 아린 관계의 신음은 닫힌 문의 뜬 새로, 틈으로 기어나가 어딘가에 고이고 고이다 썩어 지린내인 양 진동할 것이다. 아니면 내 후각에 문제가 있거나. 나는 괜히 코를 킁킁 들이킨다.

문을 바꾸면 나아지려나. 나는 물으려다 역시 관둔다.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에. 알아서 짬뽕을 가져가고 짜장면을 남겨준 것처럼. 부모는 항상 내게 1000원 더 비싼 짬뽕을 먹으라고 했고, 상희가 자기도 먹고 싶다고 하면 넌 몸에 열이 많아서 안 돼,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걸, 하며 짜장면을 내밀었다. 나는 붉은 기름이 둥둥 뜨는 짬뽕의 매운 맛, 뜨거운 맛 속으로 침잠하는 기분이었다. 상희는, 짜장면의 재료들처럼 자신을 들들 볶는 부모의 잔소리, 잔소리를 넘어선-어떤 혐오에 가까운 말들에 질렸겠지, 짐작한다. 여전히 나는 입술을 여민 채 소화되지 않는 말을 뱉고 삼키고 뱉기를 반복했다.

“여기 와서 좀 앉아. TV 볼래? 얼마 전에 스마트 TV로 샀는데 괜히 샀나 싶어.”

상희의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에서 맴을 돈다. 울린다. 거실로 와 새 TV를 바라본다.

“스마트해질 필요까진 없는데. TV는 TV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거지.”

나는 상희의 이름을 부르려다 아차, 한다. 산, 으로 굳어진 혀를 입술 밖으로 살짝 내밀다 만다. 크게 입을 벌려 상, 이라고 울려야 하는데. 개명을 했다고는 들었는데 언제 바꿨니, 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다. 어쩌면 화를 낼 수도 있고,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며 집에서 나가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 100만원은, 100만원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나는 그 돈이 필요하다....... 먹을 것이 필요했고, 월세도 밀렸다.

“엄마가 늘 하시던 말이잖아. 사람은, 태어난 대로 주어진 것에 충실하며 살면 된다고.”

채널을 돌린다. 복근을 자랑하는 남성 모델들의 런웨이가 이어지는 모델 쇼가 나온다. 나는 흘깃 상희를 쳐다본다. 그는 홀린 듯 화면을 응시하다 이내 채널을 다시 바꾼다. 영화를 틀어주는 채널이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가 방송 중이었다. 무너지는 퀴디치 경기장이 보이고, 호그와트가 눈에 들어온다. 7년간의 지난한 세월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기분이 든다. 몇 번이나 본 거지만 다시 보니 더 재미있다.

나는 이끌리듯 소파로 가 상희 옆에 앉는다. 해리포터를 보고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라는 제목의 인터뷰를 떠올린다.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꽤 큰 청소년 문학상을 받아 우연히 잡힌 지역신문의 인터뷰였다. 상희는 축하해주었다. 부모는 더 축하해주었다. 상희는 다시 축하해주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더 높은 등수잖아, 왜 내가 인터뷰를 하느냐고, 누구에게 묻고 싶었지만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부모가 기자에게 전화해서 둘째 말고 첫 째 애를 인터뷰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을 것이었다. 그 이유를 나름 짐작해보았다. 둘째가 워낙 숫기도 없고, 좀 신비주의? 를 고집해서요. 그런 애예요. 그리고 아직 인터뷰 같은 걸 하기엔 어리기도 하고요. 주어진 게 그 정도이기도 하고.

잠시 영화의 소음이 예고된 침묵을 덜어낸다. 나는 빨려 들어가듯 70인치의 커다란 스마트 TV를 바라본다. 돈도 많네, 하다가 아내가 가져가버린 80인치 스마트 TV를 떠올린다. 애가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잖아. 그러니까 우리한테 TV는 꼭 필요해. 당신은 어차피 글 쓰느라 노트북만 있으면 되고. 내 말이 틀렸나? 따지다시피 말하던 그녀의 말에 나는 조용히 보고 있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껐다. 한순간에 찾아온 정적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내가 상희 얘기를 꺼낸 건 그때였다. 조만간 한 번 만났으면 한다고. 왜냐고 묻자 글 잘 쓰잖아, 당신 동생. 그러면 국어도 잘할 것이고, 애한테 국어 공부 맡겼음 해서.

이혼하는 마당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더군다나 아버지가 글을 쓰는데 아버지는 뒀다 뭐하느냐고 따지려다 역시 관두었다. 그녀가 말한 사실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냥 입을 다물고, 세게, 피는 나지 않을 정도로, 한숨을 쉬려다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애가 있는 방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일그러진 기억 속 상희가 문틈을 비집고 나왔다, 그러니까 상희는 저 한 치의 틈도 없이 잠긴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홀로. 새삼 모든 걸 상희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금씩 번지는 적막을 깬 건 화면에 ‘더 스마트해진 삼성 스마트 TV로 업데이트 하시겠습니까?’ 라는 안내 문구가 뜬 순간이다. 어떤 버튼을 눌러도 문구 창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희는 짜증을 내며 TV를 꺼버린다. 요새 저런다고 했다, TV가. 뭘 좀 진득이 보려고 하면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면서 시청을 방해한다는 얘기다. 영화를 보든 뉴스를 보든 예능 프로그램을 보든 드라마를 보든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면서.

“뭐부터 정리할까. 정리할 게 하도 많아서.”

나는 정리할 게 하도 많다니, 뇌까린다. 방들은 거의 텅텅 비다시피 했다. 정말 최소한의 가구만 놓고 살아가는, 언제고 떠날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집이었다. 남겨진 것들은 남겨진 대로 살아갈 것이고. 계절이 바뀌어 정리를 하는 건 우리 집의-그러니까 어렸을 적 부모가 살아있었을 적-연례행사였다. 가구의 배치를 바꾸고,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곰팡이를 지워내고 닦았다. 그때마다 상희는 제외되었다. 버릴 것과 남겨둘 것 사이에 서서 멍청히 혼자 놀았다. 부모는 브랜드 과자를 사기엔 적고, 불량식품을 사기엔 또 아까운 정도의 돈을 주며 나가 놀라고 했다. 마치 당신들도 갈등한다는 듯이, 상희를 버릴 지 말지. 극단적인 망상인가 싶어 나는 상희를 돌아본다. 여전히 떠들고 있다. 무엇을 바꾸고 버리고 남기고 사야 할 지, 남편의 취향이 어떤지...... 등등.

“글은 계속 쓰지? 그러고 보니 형 글 못 본지 꽤 됐네.”

나는 노려보듯 상희를 쳐다보다 이내 그렇지, 계속 쓰고는 있지, 늘, 이라고 속삭이듯 대답한다.

쓰는데 남지를 않아. 그게 문제야. 다 공중으로 연기처럼 흐트러져서 문제야.

나는 말을 되삼키며 고개를 슬쩍 까닥였다. 어떻게 한 집안 아들 둘이 다 소설가가 꿈이었지, 상희는 중얼거린다. 나는 가까스로 유지하던 평정심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소리를, 당사자도 모르게 그어지는 어떤 선의 경계를 마주한다. 네겐 ‘꿈이었겠지만’, 아직도 내게는 ‘꿈이라는’ 사실. 책상과 책장 저변에 널린 네 책들을 볼 때면 사르트르의 <구토>에 나오는 남자 마냥 토를 하고 싶어져. 내가 싸인본 줄게, 라는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고 떠벌려도 나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필요한 책 있으면 가져가도 되고. 사놓고 안 읽은 게 절반이지만.”

책들은 이미 많다고 대답하려다 나는 머리를 내리 흔든다. 나는 철저히, 100만원에 고용된 피고용인이다. 상희는 고용인이다. 서로의 경계를 굳이 넘겨다 확인할 필요는 없잖아, 그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웅얼거린다. 입금은 언제 해줄 거야? 오늘, 아니 지금 당장 줘도 상관없지 않니, 너한텐. 아마 100만부가 팔렸을 거다, 상희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 나도 사서 읽었고, 분노했다. 이 주인공은 너무도 부도덕하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감히,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해서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인물을 떡하니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는지. 비위도 참 좋다, 마음껏 조롱하고 싶은 생각이 알람소리처럼 땡그르르르 울려 퍼진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늘 온 두 번째 목적이 그것임을 깨닫는다. 이 사람, 아니 이 주인공, 이 인물 언제 죽느냐고. 나와는 하나 닮은 게 없지만 묘하게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에 속이 거북했다. 그렇다. 나는 100만부가 팔린 상희의 세 번째 장편소설 주인공 남자에게 화를 내려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마땅한 타이밍을 잡기 힘들다. 주린 배를 문지르며 소파에 엉덩이를 걸쳐 앉는다.

“왜 짜장면이 오질 않-”

상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인종이 울린다. 상희는 불쑥 내게 지폐를 쥐어주며 턱짓으로 현관을 가리킨다. 그리고는 부엌 식탁으로 사라진다. 배달원이 철가방에서 짜장면과 짜장면과 탕수육과 탕수육 소스와 짬뽕 국물과 양파와 단무지, 춘장이 담긴 일회용 용기 두 개를 내려놓는다. 나는 두 번씩 왔다갔다 하며 음식을 나른다. 그동안 상희는 짬을 내어 책을 읽고 있다. 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라는 소설집이다.

나는 짜장면을 상희에게 내밀었고, 상희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왜 짜장면이야? 난 짬뽕인데.” 라고 말을 내뱉는다. 내가 우물쭈물하며 그러게, 중얼거리자 상희는 곧바로 중국집으로 전화를 건다. 나는 그렇게 상희가 화를 내는 걸 처음 본다. 난 분명히 짬뽕을 시켰는데 왜 짜장면을 주나요, 가격은 똑같이 받았으면서, 짜장면도 아직 녹지도 않은 냉동 덩어리 같다고, 다신 주문하지 않겠다면서 다시 가져가라고, 돈은 더러워서 필요 없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는다. 그러고는 나를 보더니 싱긋 웃으며 잘하는 데가 있는데 거기가 오늘 휴일이라서, 변명하듯 말을 덧댄다.

“아무래도 침대를 버려야 할 것 같아. 마룻바닥에서 자는 게 더 편해.”

어렸을 때처럼? 이라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나는 간신히 물린다. 부모는 상희에게 넌 알레르기도 없고 아토피도 없고 그러니까 침대에서 자렴, 네 형은 아프니까, 라고 말했다. 상희는 좋아했지만 그것도 콩알만 한 진드기가 매트리스 사이에서 발견되기 직전까지만, 이었다. 매트리스에 진드기가 서식하기 딱 좋다는 소리를 들은 그날로 부모가 잠자리를 바꾼 건데, 일종의 범죄행각이 탄로 난 마냥 부모는 네가 침대를 좋아하니, 둘러대다 진드기가 나와도 너는 낫지만 형은 아니잖니, 횡설수설했다. 그때 상희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말았다. 오른손잡이인 그가 왼손을 주먹 쥔 걸 나는 보았다. 보았다....... 본다.

“산희야.”

“응?”

우리는 둘 다 퍼뜩 정신이 깬다. 산희라고 상희를 부른 나나, 산희라는 이름에 반응한 상희나 놀란 건 마찬가지다. 산희, 상희의 옛 이름이다. 우리 집은 돌림자를 썼다.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는 돌림자, ‘상’ 이었다. 모두가 가진 그 이름을, 나도 가진 ‘상’이라는 이름을 상희는 가지지 못했다. 예정에 없던 아이였고, 부모는 예정에 없던 사랑까지 준비하기엔 벌어먹고 살기가 벅찼다. 입이 하나 더 늘었으니 두 배로, 세 배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먼저 마음을 짓눌렀다. 커다란 혹이 하나 배에 붙은 것 같다고 엄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든 아니든 이따금 불평했다. 언제는 태교에 좋다며 중고 클래식 CD를 잔뜩 사서 듣다가 질리겠다고, 애절한 이별 노래가 좋다며 씨야나 백지영이나 SG워너비의 노래 등을 종일 틀어놓고 살았다. 아이 이름을 산희라고 지은 이유는 알 수 없다. 왜 처음부터 상희가 아니고 산희였는지, 산희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불렀어? 나?”

상희가 되묻는다. 나는 고개를 흔든다.

“저녁도 먹기 글렀네. 정말 지금부터 정리해야 하나."

상희가 기지개를 폈다. 굴곡 없이 평탄한 배가 살짝 들린 옷에 내보인다.

나는 언제 화를 낼까, 언제 100만부가 팔린 ‘초베스트셀러’인 그 책에 대해 따질까 고민하다 100만원이 먼저, 라는 데 생각이 다다른다. 100만부와 100만원은 참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글자 하나 차이로 이렇게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데 놀라면서도 놀라는 나를 멍청하다고, 병신 같다고 자해한다.

“뭐부터 정리하면 좋을까? 하기는 해야 하는데 말이지.”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답한다. 침대를 버릴 거면 지금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 일찍 동사무소에서 스티커를 사다 붙여 내다버리는 게 낫다고도 덧붙인다. 일단, 상희가 입을 열고, 옷하고 장난감들부터 정리하자, 선언하듯 말한다. 옷은 당연한데 장난감이라니, 나는 애라도 입양했느냐고 묻고 싶었다. 비겁하게, 비열하게. 하지만 상희가 먼저 선수를 친다. 나도 다 아는 장난감들일 거라고, 왜냐면 형이 또래 애들한테서 훔친 것들이니까, 내게 그것들을 떠넘기듯 선물인듯 주고, 야단은 내가 다 맞고, 안 그래? 드디어 본론이구나, 시작 됐구나, 나는 각오하며 그런 적 없다고 일갈한다. 모두 내 돈 주고 산 거라고.

“지금까지도 거짓말 하는 거 보면 형도 아직 정신연령은 애다, 애.”

상희가 깔깔 웃는다. 나는 무심코 웃으려다 그런 내가 불쌍하고 참을 수 없이 수치스러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부여잡는다. 상희의 웃음이 끝날 때까지 나는 기다린다. 그 사이 무심코 산희라고 부른 내가 병신 같다고, 소화되지 못할 말들을 속으로 지껄인다. 산희가 상희라고 발음되기 시작한 건 상희가 개명 신청을 하기 훨씬 이전부터였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입학 때였나, 예고 문예창작과를 가려다 감당할 수 없는 학비와 떨어진 실기 탓에 인문계로 진학하기로 최종 결정한 그날, 상희는 자신이 산희가 아니라 상희라 불리길 원한다고, 앞으로, 지금부터 그렇게 불러달라고 선포했다. 부모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부모가 기껏 지어준 이름을 갖다 버리겠다는 거냐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럼 나도 상희로 지어줬어야지. 산희가 아니라. 안 그래, 김상현?”

내 이름 석 자가 불리고, 깬다. 무슨 얘기를 나는 중이었나. 나는 열심히 듣고 있었던 척 턱을 살짝 위아래로 젓는다. 언제 현관에 갖다놓았는지 앞엔 단무지와 양파 용기만 남아있다. 상희는 그걸 생으로 주워 먹는다. 아삭아삭, 김상현아, 안 그래? 들리지 않는 말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돌림자이름 논쟁’은 더 크게 번지진 않았지만, 상희와 부모 사이의 연이 끊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름 하나 가지고, 그렇게 외로웠나 싶어 나는 아내에게 그 얘길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당연히 나 같아도 열 받겠다, 하면서 평소엔 아예 꺼내지도 않는 시부모를 들먹이며 화를 뱉었다.

남이란 거 아냐, 그 뜻은. 겉도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잖아. 당신은 그걸 몰랐어?

나는 알았다고, 그때 상희를 지지해주었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쪽 집안도 참으로 복잡하고 번잡하네.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차별을 받아왔는지 뻔히 알겠다. 내가 예단하지 말라고, 부모님은 가부장제 제도 아래서 산 옛날 사람들이라고, 장남을 더 우대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하자 아내는, 이제 남이 된 그녀는 그러니 내가 너랑 이혼하려고 하는 거야, 의미 모를 말을 툭 던져놓고 빠르게 새벽 깊숙이 가라앉았다. 산희, 상희, 산희, 상희. 나는 여러 번 두 개의 이름을 반복해 불렀다. 니은이나 이응이나. 뭐 그리 큰 차이가 있다고.

“김상현!”

다시 한 번 내 이름이 불렸고, 그것도 크게, 상희는 장난 가득한 미소를 띠면서 언제 형 이름을 제대로 불러보고 싶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나는 이제 정말 집안 정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선회한다.

“그러게. 뭐부터 건드리면 좋을까.”

상희는 마치 젠가 놀이를 하듯, 어디부터 건드리고 빼고 넣어야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을까 고심하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는 옷, 신발, 장난감-나는 다시 움찔했다-과 각종 운동기구들, 그리고 신문 더미를 언급한다. 나는 화를 낼 타이밍을 다시 한 번 놓치고, 잠시만 더 미뤄두자, 하며 밀어둔다. 상희를 따라 이 방 저 방을 분주하게 오간다. 아무도 내가 ‘훔친’ 장난감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지만 사방의 이름 모를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과거의 장면들을 눈앞에 들이밀며 자책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훔친 것, 어떤 여자애를 성추행 한 것, 우산을 가지고 놀다 한 살 어린 아이의 눈을 찔렀는데 가까스로 실명을 면한 사건, 부모 돈에 손을 댄 것, 고등학교 때는 죽고 싶다면서, 유서를 흉내 내고 죽음을 흉내냈던 것, 잇자면 끝이 없는 이야기들을 이 낯선 집구석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상희는 자꾸 나더러 이 옷, 저 옷이 잘 어울리겠다며 뭔가를 주려고 열심이었다. 맞다 조카, 형 조카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김상혁이라고 대답했고, 상희는 입을 이죽이다 이름 예쁘네, 중얼거린다. 그래, 상혁이한테 이 장난감들 주면 어때. 화를 낼 수 없어 화가 났다. 나는 알겠다고, 장난감들을 한 데 꾸려놓는다. 너무 낡았나, 상희는 머리를 긁적이다 금방 다른 것으로 주의를 돌린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그토록 내몰았던 집에서 이렇게 시원하게 도망쳐 나와 성공했으면서, 왜 개명을 했는지, 굳이 돌림자를 넣어 개명을 해야 했는지. 그럼에도 속하고 싶은 게 가족이란 건가, 그런 건가, 싶다가도 그러기엔 상희의 어떤 가치관과 상충되었다. 상희는 그런 애가 아닌데. 아니, 상희의 ‘그런 애’는 어떤 애일까. 어쩌면 자비롭고 배포가 크고 뒤끝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추측한다. 지금까지 내게 어떠한 책임을 묻지도 않고, 100만원을 주고 밥도 먹이고. 간단한 집안 정리에 불과한데도. 나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그 남자에 대해, 가족들을 죽음 앞에 내치고 저 혼자 도망가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색을 탐하고, 부모의 비호 아래 동생을 나쁜 일에 끌어들여 실종자로 만들고, 나아가 본인 목숨도 아낄 줄 몰라 자살한 그 남자 말이다.

이건 누구와도 상관없는 얘기라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던 날 새벽, 나는 매듭지었다. 어떤 이가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를 떠올리진 않을 거다.......

나는 이렇게까지 부덕하진 않았다, 않다. 모를 것이다.

이게 어쩌면 상희 나름대로의 복수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돈도 받고 밥도 먹여주는 그런 복수라면 나름 견딜 만 하다고, 구차하지만 지금 내 처지가 그렇고 그런데 이 정도야 감지덕지 아닌가, 생각의 공회에 휘말린다. 동시에 이는 바람이 머릿속을 환기시킨다. 상희가 가출한-이라고 해야 할 지, 독립이라고 해야 할 지 여전히 헷갈리지만-이후 어느 때부턴가, 집에 매달 100만원을 부쳐왔다고 부모가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나도 독립해서 살던 때였다. 부모는 어쨌거나 돈이니까, 하면서 100만원을 넙죽넙죽 받아왔다고 말했다. 조금은 비겁하게, 수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약간 기듯.

그때 처음으로 나는 부모가 부끄러웠다.

“저녁 안 먹어서 배고플 텐데. 술이나 한 잔 할래?”

상희의 집에 온지 수 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나는 무심코 손목시계를 보려다 시계마저 팔았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꽤 값을 하는 거였는데, 아내가 알아서 팔고 알아서 판 돈을 주었다. 눈치를 챘는지,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는지 상희는 조그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시계야. 옛날에 딱 하루 쓰고 여태껏 모셔놓았던 거라서, 쓸 만 할 거야. 시계를 찬다. 손목에 꼭 맞는다. 그런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 나는 괜스레 당황하며 상희네 벽에 걸린 시계와 손목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상희는 시간 조절하는 기능이 고장 난 것 같다며, 술 마시러 가는 길에 금은방에서 고치자고 말을 더한다. 나는 가타부타 말없이 손목시계만 응시한다. 잠깐의 정적 뒤로 상희의 말이 다시 들린다.

“사실 남편이 출장 간 나라 시간대로 맞춰놓은 거야. 그러다 내가 고장 낸 거고.”

그 애의 말 하나하나가 자랑처럼 들리고, 나의 치부를 들추고, 나의 부족한 면을 끊임없이 건드리고 찌르고 헤집고 파헤치는 것 같아 가만히 있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이 방에서, 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는 강박에 붙들린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술이나 한 잔 하자, 하자며, 하고 말한다.

상희는 그런 나를 멀찍이서 바라보다 그래, 술이나 하자, 따라 몸을 일으킨다.

 

상희는 술을 못한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진드기 알레르기 때문에, 라고 답했다. 그럼 술집을 왜 왔어. 다른 곳 가지, 말을 하고 싶은데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걸 아는 듯 모르는 듯 상희가 말을 꺼낸다.

“난 이 분위기가 좋아. 그래서 술집에 오는 거야. 술은 못 마셔도 그 기분이나 느낌은 나눌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요즘 어떨 땐 노트북 갖고 술집 와서 글 써. 술은 안 시키고 모히또 같은 음료나 안주 같은 거 잔뜩 시키고. 형은 술 잘 하나? 같이 마셔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왠지 잘 마실 것 같아. 옛날, 그치, 옛날이지, 옛날에 아버지가 형 대학 합격 했을 때 비싼 양주 준 것 같은데, 나는 알레르기 때문에 못먹고 옆에서 안주만 집어먹으면서 지켜만 봤나, 아무튼 그랬어. 근데 형 잘 먹은 걸로 기억해. 내 기억이 맞나?”

나는 맞는다고도 아니라고도 하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한다.

“천천히 마시면서 정리하자.”

여기서 무얼 정리하느냐고 묻자 지금까지 했잖아, 상희는 웃으며 나를 건너다본다. 솔직히 상희네 집에서 정리할 건 많지 않고, 버릴 물건도 딱히 없다. 억지로 끄집어내 산 채로 내다버리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이름 모를 양주 하나와 식사가 될 법한 메뉴 두어 개를 주문한다. 상희는 주스나 다름없는 자몽 소주 한 캔을 시킨다.

안주가 나오고, 말없이 집어먹다 상희가 다시금 대화를 이끈다. 나는 맥주를 연거푸 들이키며 리필하기 바쁘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는다. 나는 동성애자의 삶이란 어떠한가, 라는 주제로 강연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자료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하는 강연자처럼 상희의 표면을 톡톡 건드리다 마중 나온 그의 속마음에 한 걸음씩 파고들어간다.

“아빠인가, 엄마인가, 아님 둘 다 그랬나. 내가 계획에 없던 애라서 미처 태교를 제대로 못해서, 그래서 내가 게이로 태어났다고 했나, 그랬나. 울면서 말이야. 나 태어났을 때도 미역국은 고사하고 아무 것도 안 드셨다는데. 엄마 말이야.”

네 말처럼, 임신 중이었던 엄마는, 그녀는 썩어가는 생선 눈알 같은 두 눈을 껌벅이며 자신이 아직 살아있느냐고 주기적으로 물었고, 왜 그런 말을 하느냐는 질문엔 배가 너무 허해, 라며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리고선 사흘 내리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먹기 시작했다. 라면 한 젓가락이 남았나, 그 즈음에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블라우스에 걸친 보풀이 잔뜩 인 스웨터의 감촉을 내 손끝, 손끝들은 기억한다. 입원병동 휴게실에서 손가락에 달라붙은 보풀을 하나씩 떼어내던 내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형상은 상희의 모습과 은근히 겹쳐지려다 말고, 말다 겹쳐진다. 혼란하다. 나는 상희의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해외출장을 가 여행까지 하고 온다는 걸 보면 꽤 괜찮은 직업을 가진 것도 같고, 그런데 혼자 여행까지 하고 오다니, 왜, 같이 여행하면 더 좋지 않나, 머릿속 수면 위를 떠다니는 상념들을 건져낸다.

“맞다. 내가 결혼식 얘기 해줬나? 안해줬지? 그렇지?”

마침 안주가 나온다. 나는 대답 대신 맛있겠네, 말한다. 상희는 수도권 외곽의 한 작은 호텔에서 소박하게 치른 결혼식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책이 이렇게 많이 팔릴 줄 알았다면, 많이 팔린 당시였다면 저기 보이는 힐튼 호텔이라든가, 플라자 호텔이라든가, 호텔신라에서 할 걸, 후회보다는 미련, 미련보다는 자랑에 가까운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떠벌린다. 나는 안주를 먹는 데 집중한다. 맵다. 나는 그릇 가장자리에 소스를 최대한 덜어내며 야채를 몇 개 집어먹는다.

“왜 이렇게 안 먹어? 형 매운 거 잘 먹잖아.”

나는 그러다가 위염으로 한 고생 치렀다고 대답한다. 그러니까, 네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지. 뒷말은 목젖을 간질이다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체질이 바뀌었나봐. 말하지 않지만 말하는 눈빛을 내보인다. 왜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어느 날 갑작스레 네가 떠난 것처럼 그렇게 바뀌더라, 눈을 깜박인다.

상희는 창가 너머를 내다본다. 3층 테라스에서 보이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서로 부대끼며 잔잔하지만 높은 파도의 한 결로 횡단보도를 향해 몰려간다. 나는 다문 입술을 풀어헤치다, 만다. 상희가 봉투를 내밀었다. 설 세뱃돈 봉투다. 뭔가 공손히 받아야할 것 같아 나는 괜스레 살짝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받는다.

“200만원. 아직 정리 다 안 했지만 잊어버릴까봐. 현금이 좋지? 카드로 하면 복잡해.”

상희가 블루에이드를 주문한다.

“기록이 남잖아. 정리는 깔끔하게 해야지.”

나는 거의 아무 것도 없다시피 한 그 집에서 대체 뭘 정리해야하는지, 정리할 게 남았는지 의아했지만 의아함으로 내버려둔다. 나는 덤으로 얹은 나머지 100만원에 대해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인간답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떠한 상징이고 비유인지 골몰한다. 하지만 상희는 틈을 주지 않는다. 늘 아버지의 서재와 나의 방과 어머니의 안방이 굳게 닫힌 집을 홀로, 60인치 TV로 한국인의 밥상이나 극한직업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견뎌야 했던 상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는 중인데.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나는 이해가 아니라, 공감이 아니라 오히려 적대시 할, 너와 내가 다르고 네가 ‘틀린’ 이유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왜 100만원을 더 줬느냐고 묻지 않는다.

“근데 형. 내가 소설에 형 조금 빌려서 썼는데, 괜찮지?”

그의 눈길은 나와 내가 양 손으로 꼭 쥐고 있는 세뱃돈 봉투 사이에 머무른다. 나는 당연히, 괜, 찮지, 말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봉투를 가슴 안주머니에 넣는다. 어디에 내가 있고 없는지 따질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러기엔 보너스 팁이 너무 두둑하다...... 잘 들어가지 않아 반을 접어야 했다.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애가 타는지, 두려운지 모른다. 미소를 지어 보인다. 상희에게. 어차피 그건 소설이잖아. 내 말에 상희는 박수를 짝, 치며 그래 맞아, 그건 소설이니까 상관없지, 그리고 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없잖아. 옛날 친구들이야 다 떨어져나갔지. 그렇지? 나는 머리를 까닥거리며 그렇지, 대답한다.

우리는 술집을 나온다. 길을 걷는다. 맥락 없는 걸음은 제자리에서 계속 맴을 돌 뿐이다. 희뿌연 스모그가 낀 노을은 싯누렇다. 어딘가 퇴색 된 붉은 빛을 은은히 반짝이다 소리 소문 없이 검보랏빛 어둠에 스며든다. 스며들었다고 하기 보다는....... 집어삼켜졌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 나는 여전히 언제 화를 내야할 지, 아니 애초에 화를 낼만한 일인지 알 수 없다. 누가 봐도 그 인물은 내가 아닌 동시에 나였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나는 멍청히 걷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처럼 가만히 두 발을 멈춰 세운다. 버스 정류장이다. 고개를 돌리니 버스 노선을 살피는 상희가 눈에 들어온다. 벌써 여기네, 나는 혼잣말을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상희의 집으로 돌아가려면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을 지나야 했다. 내놓았지만 팔릴 기미라곤 보이지 않는 내 집으로 가려면 그 반대 방향으로 여덟 정거장을 지나야 했다. 나는 정리는 다 끝난 거냐고 물으려다 멈칫 한다. 아직 나의 정리가 남아있음을,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버스가 휑 지나가버린다. 상희는 저게 형 집으로 가는 버스가 아니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려다 가는 버스 많아, 황급히 말을 덧씌웠다.

“진짜? 내가 알기론 저 번호 하나인데.”

“상희야.”

나는 분명 상, 희, 라고 발음했고 소리는 허공에 번지면서, 한편으론 또렷하게.

상희의 동공이 약간 커졌다가 줄어든다. 나는 그의 입술에 시선이 닿는다. 바싹 말라있는.

“정리 다 끝난 거 맞아?”

“아니. 더 해야지. 피아노 버려야지.”

“버린 거 아니었어?”

“아니, 아직 안 버렸는데.”

나는 어색하게, 아까 전만 하더라도 비굴하다, 생각했을 법한 웃음을 터뜨린다.

“다시 집에 가야지.”

상희가 말한다.

“진짜 정리를 해야지. 남편 오기 전에 말이야.”

우리는 돌아온 길을 되짚어서 가기 시작한다. 두 곳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상희의 아파트 단지로 접어드는 골목에 들어선 찰나, 그가 입을 연다. 처음과 같이 나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렇지, 맞장구를 친다. 나는 어쩐지 상희에게 소설 속의 ‘나’가 아니라 ‘상현’이라는 이름의 형으로 남고 싶었다. 산을 상으로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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