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삼색 고양이

2021.01.10 20:0701.10

이도 저도 아닌 기분일 때가 있다. 그땐 내가 행복한지 우울한지도 헷갈린다. 심리상담으로 유명한 유튜버는 그럴 때 자신의 감정을 낱말로 적어보라고 했다. 나는 수첩을 펴고 글자를 적었다. 기쁨, 슬픔. 둘 중 무엇? 그러나 그렇게 온도 차가 선명한 낱말마저도, 익숙한 옛날 노래처럼 느껴진다. 분명 아는 노랜데, 노래방에 가면 가사를 안 보고도 줄줄 부르는데. 가만, 이게 이런 내용이었나?

하긴, 극적인 제목과 썸네일로 조회수나 흥정하는 유튜버 따위가 뭘 알겠나. 차라리 인공지능이 낫다. AI가 추천한 것은 고양이 영상이다.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가 크고 투명한 눈을 깜빡이며 운다. 오, 그건 그냥 ‘야옹’이 아니다. 내게 그것은 감정의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낱말론 표현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의사소통. 일종의 정신감응이랄까. 어쩌면 그것은 사람의 말보다 훨씬 두꺼운 여운을 남긴다.

다음 동영상이 자동으로 이어진다. 태어나 처음으로 집사를 간택한 고양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고양이를 입양했더니 강아지가 왔네요. 엄마가 사라졌을 때 고양이 반응! 5분 남짓한 영상 3개를 보고 나서야 이러지 말아야지, 정신을 차린다. 메일을 확인한다. 별다른 소식은 없다. 이젠 인터넷을 꺼야 한다. 그러나 뉴스에 눈이 간다. 아주 잠깐 망설인다. 아니, 괜찮다. 이건 도움이 된다. 작가라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아야지. 국회에서 누가 누구랑 싸운 얘기. 근거도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주식 개미들의 한탕주의. 스포츠 하이라이트. 또 졌다. 올해도 유광 점퍼는 꺼낼 일이 없겠다. 뭔가 이야깃거리가 없을까? 사회 이슈를 살핀다. 어떤 남자가 코로나에 걸린 채로 클럽에 갔다. 맥주를 마시고 철 지난 농담을 지껄이며 이 여자 저 여자 들쑤시고 다녔겠지. 아니, 그 남자만 문젠가. 요즘 같은 시국에 클럽이라니? 한심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어떤 어머니는 갓 태어난 자식을 지하철 화장실에 버렸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뉴스까지. 나도 버림받았다. 그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쯧쯧. 가볍게 혀를 차는 것으로 내가 할 소임을 마친다.

노트북을 닫고 거실로 빼꼼 얼굴을 내민다. 아버지는 소파 앞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다. 아버지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거기에 몰입하셨길 바란다. 담배를 챙기고 도둑처럼 걸어 나간다.

“어디 가냐?”아버지는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묻는다.

“잠깐 바람 좀 쐬러요.”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부끄러워진다.

아버지는 대답이 없다. 티브이에 몰입하신 건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내가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마다 꼭 어디 가냐고 묻는다. 알면서 항상 그런다. 쓸데없이 아들의 죄책감을 긁는 건 아버지의 권리라는 양. 슬리퍼에 발을 밀어 넣는다. 아무것도 훔치지 못한 도둑의 기분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밖으로 나간다. 담배를 꺼냈다가 뒤로 숨긴다. 젊은 여자가 유모차를 끌고 다가오는 탓이다. 흡연도 엄연한 권리지만 아이 앞에선 가린다. 아무튼, 저 여자는 항상 저러고 다닌다. 꼭지가 드러나는 슬립만 걸친 채 유모차를 끌고 아파트 단지를 도는 것이다. 섹시한 아기 엄마의 이미지는 언제나 남자들에게 어필한다. 그러나 편협하게 생각하지 말자. 꼭 그런 의도는 아닐 것이다. 외국에 오래 살아서 몸에 밴 습관일 수도 있다. 문득 남편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남편도 성기가 불룩 드러나는 팬티를 입고 조깅을 할까? 두 사람은 유럽 같은 데서 나고 자란, 부모의 고향 땅에 잠시 머무는 외국인 부부일지도 모른다. 매사 자신감이 넘치고, 남에게 피해 안 끼치면서 개인주의를 누릴 줄 아는 진짜 어른들. 쪼잔하게 뒤에서 불평하는 동네 아저씨들보단 훨씬 낫다. 드러난 가슴을 한참 쳐다보다가 여자가 지나가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쪽 말이다.

그녀를 지나쳐 흡연 구역으로 간다. 스테인리스 쓰레기통 하나와 벤치 두 개가 있다. 웬 꼬맹이 하나가 벤치에 앉아서 코를 파먹고 있다. 빨간색 로봇의 관절을 이리저리 꺾으며 입으로 파열음을 뱉는다. 보호자는 안 보인다. 야, 저리 가서 놀아. 꼬맹이는 들은 채도 안 한다. 포기하고 반대쪽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뱃잎을 태운 허연 연기를 명치 쪽에 오래 담았다가 꺼낸다. 머리가 어질 하다. 그때 꼬맹이와 눈이 마주친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연기를 뿜는다. 꼬맹이 녀석은 나를 빤히 보며 코앞에서 손을 흔든다. 나는 또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담배를 끄진 않는다. 녀석은 벌떡 일어나더니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속은 더 답답해진다. 폐 속에 연기가 가득한데 당연하지.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말은 순 헛소리다. 몸도 마음도 더 피로해진다. 그런데도 굳이 눈치를 보며 피우는 이유는 뭘까? 어떤 일이든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전에 만났던 애인은 말했다.

“한숨을 쉬려고 담배를 피워. 그냥 한숨을 쉬면 사람들이 꼭 물어봐.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난 아무 일도 없는데. 그냥 입으로 길게 숨을 쉬고 싶을 뿐인데. 걱정스러운 눈빛과 살짝 찡그린 미간을 보면 없는 우환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담배를 피워. 그러면 왜 한숨을 쉬냐고 묻지 않거든. 오히려 피하는 경우가 더 많지.”

그녀는 단정 짓는 걸 싫어했다. 마음속에 잘 구축된 틀 하나 들고, 거기에만 맞춰 속전속결로 판단하고, 태그를 붙여 정리해버리는 사람들의 습성을 증오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면이 없어서, 뭐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좋다고 했다.

“작가라서 그런가? 글 쓰는 사람들은 생각이 많잖아. 그러니까 쉽게 판단하지 않겠지.”

그럴지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분명 반항적인 기질이 있었고 그런 자기 자신을 좋아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냥 겉멋이랄까. 진짜 제대로 된 반항은 평생 해본 적 없는 범생이가 이제 막 성인 됐다고 딴에 부리는 투정 같은 거. 연약하고 위태로운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 센 척하는 학기 초 남자아이들의 태도 같은 거. 그녀는 유명하진 않지만 견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둘째 딸이었다. 아빠와 싸우고 가출했지만, 엄마가 구해준 전셋집에서 자취를 하고 아빠 카드로 생활비를 썼다. 언니는 사학과 교수가 되는 코스를 차곡차곡 밟고 있었고 그녀는 미술을 전공했다. 몇 년 허송세월 하다가 유학을 다녀오거나 자비로 개인전 같은 거 몇 번 하고 화가라며 싸돌아다니겠지. 그쪽 집안에선 천덕꾸러기 딸내미 취급받을지 몰라도 누구 눈에는 축복받은 인생이다. 어떤 사람들은 캔버스에 물감 좀 찍으려고 몸까지 판다.

물론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그것 말고도 안 한 말이 많다. 예민한 여자 친구에겐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나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세 헤어졌다. 그녀는 카페에서 헤어지자고 말했다. 나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놀란 척했다.

“우리 만난 지 아직 얼마 안 됐잖아. 적어도 일 년은 만나봐야 잘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녀의 자취방에 얹혀사는 처지라서 갑자기 짐을 빼기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미안해. 여기서 끝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줘.”

아침드라마 같은 멘트 하고는. 그래도 그런 면이 귀여웠다. 속이 잘 보이고, 부탁이라면 뭐든 속절없이 들어주고, 남의 이야기에 잘 공감하며 눈물도 많았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사랑했다. 상대의 마음을 충만하게 만드는 능력은 아무나 가진 게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순수하고 원초적인 사랑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이별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유가 뭐야?”

“언젠가 헤어질 거니까.”

“그러면 만날 필요도 없어?”

뒤돌아서 사뿐히 떠나는 그녀의 하이힐 소리는 경쾌했다. 한 시간 뒤에 나는 그녀가 있는 자취방으로 돌아가 짐을 쌌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쉬었고 곧 눈물을 흘렸다. 위로하다가 뒤엉켜 격정적인 섹스를 했다. 그렇게 이틀을 더 보냈지만 결국 떠났다. 그녀는 나 이후로도 몇 명의 자유로운 영혼들과 교류할 것이다. 사람 보는 눈이 별로니 맞거나 돈을 뜯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걱정은 없겠지. 가족이 기다리고 있으니 돌아가면 그만이다. 나? 나는 돌아갈 가족이 없다. 나는 그저 글을 쓸 것이다. 언제나 내게 남는 것은 그것뿐이다.

내가 글을 쓰기로 한 건,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전날 점심시간이었다. 자다 깼는데 불현듯 소름이 돋았다. 내 앞날이 너무 캄캄해서. 중고등학교 내내 잠만 잤는데 앞으로 뭘 해 먹고살지? 아버지가 사는 꼬라지를 보면서도 어떻게 그때까지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는지 나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친구와 저녁에 게임을 하며 이런 얘길 했더니 녀석이 말했다.

“작가는 어때?”

“작가?”

“그래, 니 머리로 공부는 틀린 거 같고. 기술이나 예체능 쪽으로 가야 하는데. 맨날 잠만 처자서 몸도 약하니까 기술이나 운동도 안 되고. 음악이나 미술이나 글쓰기 뭐 그런 예술 계통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음치니까 뮤지션은 글렀고. 그림을 그려볼까?”

“미술은 돈 많이 들어.”

“그럼?”

“그럼은, 여태 뭐 들었냐? 작가 하라고.”

“좆까라고?”

“그래, 까자. 대.”

그날 새벽까지 게임으로 담판을 지었는데 내리 다섯 판을 졌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고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 판타지 소설을 많이 읽었으니,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요강 같은 걸 살피다가 입시 과외를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문창과 졸업생이 일대일로 족집게 과외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돈만 내면.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다. 글을 쓰고 싶어요. 예술 대학에 가고 싶은데 과외를 받았으면 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40만 원이요. 나는 정성 들여 문자를 써 보냈다. 아버지는 그때 캐나다에 있었다. 답 문자는 없었다. 하루 이틀 기다리다가 금세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이주 뒤에 생활비 계좌로 40만 원이 띡- 날아왔다. 3개월 남짓 과외를 받고 실기시험에 지원했고 덜컥 합격했다.

그러나 학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글을 쓰면 다들 주제가 뭐냐고 물었다. 과외를 받으며 몇 가지 기술과 패턴을 익혔지만, 주제는 다른 문제였다. 처음에 안고 있던 주제가 뭐든 다 쓰고 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뭐가 뭔지 몰랐다. 오히려 교수님, 동기들 모두가 그럴듯한 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게 놀라웠다. 그들은 섬세하고 숙련된 기술자였고 나는 혼자 외눈박이 섬에 표류한 원숭이일 뿐이었다.

소설집을 낸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전역하고 복학했을 때만 해도 글쓰기를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나마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광고, 마케팅 쪽으로 취업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강의하러 오신 작가님이 나를 알아봤다. 정확히는 아버지를 알아본 것이었다. 오랜 지인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오래 짝사랑했었어요. 초기에 썼던 소설에 나오는 나쁜 남자는 다 그쪽 아버지가 모티브랍니다.”

“글로 쓸 정도면, 엄청 미우셨나 봐요.”

“이젠 고맙죠. 그때 썼던 글이 좀 팔리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쓰고 있으니까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보지 않기로 했다.

작가님은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해했다. 지금 쓰는 글이 완성되면 보여드리겠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자취방에 돌아와 자소서를 수정하다가 문득, 예전에 쓴 소설을 다시 꺼내봤다.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이것도 분명 주제가 있었을 텐데. 대체 어디로 간 건지.

토요일 내내 집에 틀어박혀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밤부터 무언가 써지기 시작했다. 월요일 새벽에 작가님이 주신 메일로 초고를 보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젠가 내 글의 진실을 알아봐 주리란 믿음이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그 순간이 온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학잡지에 실리고 사진을 찍고,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주제가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작가님은 이틀 뒤에 메일을 읽었다. 그러나 종강 때까지 한 번도 아는 척을 하지 않으셨다.

계절학기가 절반쯤 지난 어느 날, 초저녁에 작가님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거였다. 장소는 무척 혼잡한 곳이었다. 10차선 도로를 가득 채운 크고 긴 차들. 양쪽으로 거대한 빌딩의 계곡이 줄줄이 이어졌다. 거리엔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모델처럼 걸어 다녔다. 나는 주눅이 들어 괜히 걸음이 빨라졌다. 검은 대리석으로 된 계단을 올라가 도착한 곳은 한우 오마카세 집이었다.

“오마카세는 스시 아닌가요?”

“한우로도 해요. 재료야 상관없죠. 물고기든 소고기든.”

그리고 바로 덧붙였다. “비싼 건 똑같아요.”

작가님의 연락에 냉큼 달려온 건 아버지의 지인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소설가이고 예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별의별 얘기를 다했다. 나는 계속 듣기만 했다. 원래 작가들은 이렇게 말이 많은가, 생각했다. 나중에 책을 내고 모임 같은 데 오가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났는데 모두 비슷했다. 그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따지면 수치스러운 과거도 손쉽게 이야기했다. 아니, 정확히는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어 안달 난 사람 같았다. 그들 사이에선‘누가 더 부끄러운 삶을 살았나.’ 라는 게 ‘누가 더 의미있는 삶을 살았나’로 치환되는 것 같았다.

“실은 이번 책 좀 밀어달라고 대접하는 자리였어요. 근데 편집장이 펑크를 내네요. 그것도 약속시간 10분 전에. 여긴 셰프 혼자 하는 백 퍼센트 예약제라 무를 수도 없어요. 처음엔 미친 듯이 화가 났는데 가만 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구요. 화가 나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답답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누구든 만나고 싶기도 하고. 감정이 뒤엉켜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나? 지나친 긴장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나사가 풀린 사람처럼, 내 안에 뭔가 풀어져 버린 건 아닌가? 그런 걱정이 막 드는 거예요. 그때 딱 생각이 나는 거 있죠.”

“뭐가요?”

“보내준 소설. 거기 나오는 첫 문장.”

우리는 침묵 속에서 각자 입을 오물거렸다.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질긴 고기가 엉키고 찢겼다. 다져진 채 침과 뒤섞인 고기가 목젖을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첫 문장을 떠올려봤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별거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가 느꼈다. 뭐라고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분명 뭔가 있었다. 이상하게 아버지 생각이 났다.

밥을 다 먹고 그녀가 자주 가는 칵테일바에 갔다. 보디빌더 같은 주인장은 팔을 걷은 채 능숙한 손길로 칵테일을 만들어냈다. 술은 질색하지만 칵테일은 달라 보였다. 예쁘고 달콤해서 깜빡 속았다. 나는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곧바로 취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속이 메슥거려 바에 엎드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끝도 없이 술을 마시고 쉬지 않고 떠들었다.

“난 칵테일이 참 좋아.”

“왜요?”

“섞여버리는 게 좋아. 알 수 없게 되잖아. 원래 뭐였는지. 이 색깔 봐. 얼마나 역겹고 더러운 거였는지. 누가 그런 걸 알 수나 있겠어?”

“역겹고 더러운 짓, 해봤어요?”

엎드려 있어서 그녀가 어떤 표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웃고 있는 건 확실했다.

“나랑 하고 싶은가 보네?”

그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유가 뭔지. 그녀가 멋지고 예쁜 소설가라 그런지. 아버지를 오래 짝사랑한 여자라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려 했지만 세상은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진짜 닮았단 말이야.”

그녀는 손을 뻗어 엎드린 나의 뒷목을 주물렀다. 처음엔 아팠고 다음엔 시원했다. 곧 편안해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집에 어떻게 기어들어갔는지 기억이 없었다. 일주일 뒤에 작가님과 다시 밥을 먹었다. 그 자리엔 수염을 예쁘게 기른 대머리 남자가 동석했다. 이 친구야? 응, 글 잘 쓰게 생겼지? 얼굴로 작가 할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네. 와하하. 두 사람은 무척 친해 보였다. 서로만 아는 얘기를 늘어놓으며 크게 웃었다. 나는 뭔지도 모르면서 분위기를 맞추느라 진땀을 흘렸다. 남자는 헤어지면서 연락처를 하나 줬다. 주말에 번호를 눌렀더니 편집자가 잠 묻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말씀 많이 들었다며 써놓은 소설을 모조리 보내라고 했다. 그로부터 4년 뒤에 소설집이 출간됐다.

졸업하고 1년은 마냥 매달렸다. 글을 쓰다가 생활비가 떨어지면 단기 알바를 하고 다시 방구석에 박히는 식이었다. 계절이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재능이 없단 걸 깨달았다. 정확히는 인정한 것이라 해야겠다. 그래서 동시에 하기로 했다. 날이 풀리고 작은 온라인 마케팅 회사에 들어갔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기약 없는 야근과 수당 없는 특근이 반복됐다. 나도 모르게 소설에 실컷 욕을 지껄여댔다. 밤늦게까지 마케팅 실적을 조작하면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이직이 반복됐다. 어딜 가든 일 년을 채우지 못했다.

그 사이 편집자도 계속 바뀌었다. 못지않게 이직이 잦은 직업이었다. 그래도 출판사는, 그리고 수염 난 대머리 남자의 영향력은 그대로였다. 나는 계약서도 없이 묶여 있었다. 딱히 갈 곳이 없기도 했다. 글은 계속 썼지만 책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신입 편집자가 거치는 일종의 튜토리얼이 되었다.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아보고 연습하는 훈련 상대. 얼빠진 신입 한 명이 눈치 없이 나에게 얘기해줘서 알게 됐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딱히 나쁠 것도 없었다. 아니, 나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편집자를 처음 만났을 때도, 당연히 초짜인 줄 알았다. 카페에서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나의 글에 대한 자기 생각을 설명했다. 한국 문학의 계보와 경향, 흐름, 나의 포지션 등등.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분석한 합리적인 피드백이었다. 내용의 좋고 나쁨을 떠나, 뭔가 준비해 온 사람 자체가 처음이었다. 나는 뭐든 알겠다고,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외국 대형 출판사에서 스카웃된 능력 있는 편집자였다. 주어진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했다. 입사 후 한 달간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본 그녀는 가장 먼저 나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글쎄, 자신의 첫인상과 능력을 뽐내기 좋은 건수라고 생각했나?

3개월 만에 초고가 정리되고 그로부터 2개월 만에 소설집이 출간됐다. 그녀의 조언과 일정에 따르다 보니 자연스레 책이 완성됐다. 대형 출판사치곤 무척 빠른 전개였다. 문제는 홍보였다. 번듯한 수상내역이나 경력, 학벌, 인지도 아무것도 없는 작가. 게다가 기획 도서도 아니고 소설이라니? 홍보비가 있었지만 명목상일 뿐이었다. 편집자는 애초부터 온라인 마케팅을 노렸다. 따로 비용을 책정해 진행하는 게 아니라 출판사가 원래 가지고 있던 파워블로거와 SNS 인플루언서 인맥을 활용했다. 연말이면 그들에게 올해 이슈가 된 베스트셀러들을 묶어 선물하는 일이 있다. 매년 반복되는 관행이었다. 거기에 내 소설집이 섞여 들어갔다. 편집자 추천의 말과 함께. 그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은 확실히 해외파였다.

물론 충분하지 않았다. 편집자가 일하던 곳과 한국은 독서의 형태가 달랐다. 일단 소설을 읽는 사람이 드물었다. 인플루언서들은 책 옆에 안개꽃 같은 것을 두고 사진을 찍어 올리거나 인상적인 구절을 태그해 올리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책은 팔리지 않았다. 편집자는 틀어박혀 문제를 분석하느라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 방송을 탔다. 티브이도 아니었다. 유명 아이돌의 라이브 방송. 잠들기 전 한 시간 남짓 수다를 떠는 컨셉이었다. 카메라는 책상에서 비스듬히 그녀를 비췄다. 노메이크업 같은 화장에 편해 보이는 끈나시를 입고 시답잖은 얘기를 늘어놓는 그녀. 화면 모퉁이에 그녀의 침대가 보였다. 그 위에 고양이 베개와 노트, 연필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내 책이 시옷자로 누워있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효과는 분명했다. 대한민국 아이돌 팬덤의 힘은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꼼꼼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왜 유명하지도 않은 내 소설을 읽었을까? 아니, 읽기는 했을까? 그저 준비된 컨셉이었을지도. 그렇다면 소품팀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어쨌든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덕분에 자그마한 아파트를 구해 독립할 수 있었다. 편집자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출판사로 가니 개인 사무실에서 나를 맞았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다음 책 준비하고 계시죠?

물론 더 나은 소설을 써보려 노력했다. 재능이 없더라도 계속 쓰다 보면 나아질 거란 모호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뭘 어떻게 쓰든 간에 결과물은 이전과 똑같다는 걸 깨닫게 됐다.

“작가님, 이거… 아무리 봐도 너무 비슷한데.”

“그런가요? 잘 모르겠는데…….”

“여기 보세요. 이 문장도 그렇고, 전체적인 구성이나 문체도, 저번에 쓰신 ‘삼색 고양이’랑 너무 비슷하잖아요?”

대화는 그때마다 다른 식이었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내 소설은 똑같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정체되어 있다.

“나아지겠죠, 뭐.”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편집자는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작가님, 나가서 사람들 좀 만나고, 전시 같은 거도 좀 보고 하세요. 영감이 부족하신 거 아니에요?”

“아, 예…….”

문득, 평생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일단 4년째 맞고 있다. 그 사이, 내 책을 팔아줬던 아이돌은 그룹 활동을 그만두고 연기자로 선회했다. 초반엔 불분명한 발음과 딱딱한 표정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러나 공동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대박이 나면서 연기력 문제는 조용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다.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왜?

하루는 편집자가 다짜고짜 나를 불렀다. 꼬치구이가 나오는 맥주집이었다. 예의상 근황을 물어도, 왜 보자고 했는지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꼬치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나는 한동안 혼자 떠들다가 결국 카운터 위쪽에 있는 티브이로 시선을 돌렸다. 패전 처리 투수가 붉은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승부가 이미 기울어진 경기였다. 투수의 역할은 이대로 게임을 끝내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팔이 끊어질 듯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그럼에도 타자들은 아주 손쉽게 공을 쳐냈다. 그러면 투수는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마찬가지로 다시 전력을 다해 공을 던졌다. 어쩐지 안쓰러웠다.

“넌 글을 너무 못써.” 갑자기 편집자가 말했다.

죄송하다고 말할 뻔했다. 그러기 전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왜 그런지 알아?”

“왜요?”

“인생이 너무 평탄해서 그래.”

그녀는 닭고기와 파가 다 떨어져 나간 빈 꼬치로 나를 가리켰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눈은 빛나고 있었다.

“어려움이 없으니 고뇌가 없고, 고뇌가 없으니 깊이가 없고, 깊이가 없으니 진실이 없어. 그래서 안 되는 거야.”

편집자는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홀 안쪽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와서 곧바로 나를 지나쳐,

“고양이가 나오고, 소설가가 주인공인 게 최악이야. 병신 새끼.”

하고는 나가버렸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야구를 봤다. 삼십 분 뒤에 경기가 끝났다. 승리팀 MVP 인터뷰 뒤에 패전처리 투수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는 나이가 많았다. 평생 야구를 했지만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다.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야구가 잘 됐다. 오늘은 그의 프로 데뷔전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그는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아버지가 위암 말기라고, 돌아가시기 전에 데뷔를 보여드려 다행이라고 말하며 울었다. 다시 또 웃다가 또 울었다. 병신 같았다.

꼬치 한 세트와 맥주를 주문했다. 주인이 와서, 아까 일행분이 결제하고 가셨는데, 이건 추가로 결제하실 건가요?,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요? 아니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하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왜 멍청이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쭈그리고 있었는지 후회스러웠다. 깊이가 뭔지, 진실은 대체 뭔지, 왜 물어보지 못했을까.

 

나는 검지를 털어 담배를 끈다. 하나 더 태우기로 한다.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켠다. 라이터는 늘 한 번에 켜지지 않는다. 두 번째 불이 붙는다. 한숨과 함께 하얀 연기를 토해낸다. 들어가면 아버지가 물을 게 뻔하다. 어디 갔다 왔냐? 잠깐, 바람 좀 쐬러요. 나갈 때와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내가 어딜 다녀왔는지 알면서 또 묻는다. 대체 왜 그러는지 따지고 싶지만 어떻게 아버지에게?

얼마 전 아버지는 실직했다. 코로나가 들이닥치고 손쉽게 잘려나간 사람들 중 하나다. 학원 버스 두 개를 번갈아 운전하던 아버지는 모아놓은 돈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가벼운 가방을 들고 4년 전에 독립한 아들을 찾아왔다. 아버지는 짐가방을 내려놓고 소파 앞에 앉았다. 리모컨을 들고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거기서 자고, 거기서 라면을 먹고, 거기서 티브이를 봤다. 꿈쩍도 하지 않고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모아이 석상 같다. 어쨌든 나는 꽤 불편해졌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반대편 벤치 아래에 웅크리고 앉는다. 이 동네엔 은근히 고양이가 많다. 누가 설치했는지 모르지만 드문드문 고양이집이 있다. 겨울이면 거기 낡은 담요가 깔리기도 한다. 녀석은 파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다가간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녀석은 조금 지쳐 보인다. 나는 바로 곁에 쪼그려 앉는다. 세 가지 색깔이 제멋대로 뒤섞여있다. 녀석은 흔해빠진 삼색 고양이다. 어제 보고 내일 봐도 구분하기 힘든 길고양이일 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삼색 고양이가 행운의 상징이라고 한다.

가까이서 보니 녀석의 배에 기다란 상처 같은 게 있다. 어쩐지 썩은 내가 풍기는 것 같다. 녀석은 얕은 호흡을 가쁘게 쉰다. 나는 그래야 할 것 같아 담배를 끈다. 녀석은 나를 보다가 힘이 풀렸는지 고개를 숙여 두발 위에 얹고 눈을 감는다. 나는 황정은의 소설을 떠올린다. 혹시 녀석도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잔인한 사람들의 행태에 치가 떨린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없다. 나는 그저 또 담배를 피우고 싶어진다.

문득, 세상에 버려진 것들을 생각한다. 자기도 모르게 태어났다가 자기도 모르게 상처 입고 자기도 모르게 사라지는 쓸쓸함을. 어머니는 왜 나를 버렸을까? 아버지 때문일까? 그런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그녀가 했던 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보건소 앞 의자에 앉은 나를 떠나며 어머니는 말했다.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안 기다리면 영원히 엄마 못 보는 거야.”

나는 시킨 대로 꼼짝없이 잘 기다렸다. 그러나 영원히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는 나를 버리고 아버지를 버렸다. 자동차 엔진 부품을 다루는 중견 기업에서 최연소 부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느라 모든 걸 잃었다.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캐나다까지 다녀왔다. 둘째 이모가 거기 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둘째 이모도 어머니가 어디 갔는지 몰랐다. 어머니는 우리의 세상에서 완벽히 사라졌다. 아버지는 처음엔 그녀가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한 거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지쳐 포기할 무렵엔 다르게 생각했다. 그년이 바람이 나서 우리를 버린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흔적도 없을 리가 없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뭐라고 생각해야 할까? 나는 웅크린 채 덜덜 떠는 고양이를 물끄러미 본다. 편의점에 들른다. 담배와 캔참치를 사서 얼른 돌아온다. 그러나 그 짧은 사이에 어디로 간 건지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멍하니 벤치에 앉아있는데 슬립만 입고 유모차를 끄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담배를 꺼낸다. 나는 아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려는 엄마가 조금 불편하지만 굳이 간섭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주머니를 뒤진다. 그러다 나에게 눈인사를 한다.

“혹시…….”

“아, 예…….”

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건넨다. 그녀는 받아서 라이터를 켠다. 칙칙, 두 번째에 불이 붙는다. 그녀가 라이터를 돌려주려고 상체를 숙이자 가슴이 훤히 드러난다. 나도 모르게 그걸 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괜찮다는 듯 씩 웃는다. 그리고 담배를 멋지게 피운다. 외국물을 먹어서 그런지 쿨하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남달라 보인다. 그때, 벨이 울린다. 그녀는 유모차 뚜껑을 열더니 거기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거기엔 갓난아기 대신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있다. 여자는 전화를 받고 내 눈치를 보더니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까지 멀어진다. 나는 가만히 고양이에게 다가간다. 녀석은 꼼짝 않고 나를 빤히 본다. 어쩐지 아까 봤던 녀석 같다. 배에 상처 같은 것도 똑같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건 상처가 아니라 색깔이 구분된 라인이었다. 삼색의 배열이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이 녀석은 그 녀석인가? 아닌가? 세상은 온통 구별하기 어려운 일들 투성이다. 그때, 녀석이 운다.

야옹-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온다. 캔참치을 슬며시 내민다. 녀석은 개처럼 코를 킁킁 댄다. 따지 않은 참치로 한참 놀린다. 녀석은 야옹- 하고 한번 더 운다. 나는 실실 쪼개며 녀석의 코앞에서 뚜껑을 딴다. 그런데 뚜껑이 열림과 동시에 녀석이 앙칼진 소리를 내더니 내 손을 세게 문다. 나는 캔을 떨어뜨리고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를 듣고 여자가 얼른 달려온다. 그녀가 오자마자 녀석은 내 손을 놓고 그녀의 가슴에 폴짝 안긴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있다. 왼손 도톰한 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쏟아진 참치 덩이 위로 떨어진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미간을 찡그린 채 중얼거린다.

“뭐야, 씨발. 변태 새끼가…….”

그녀는 유모차에 삼색 고양이를 태우고 쏜살같이 사라진다. 나는 엉거주춤 벤치에 앉는다. 신음을 흘리며 상처를 살핀다. 선명한 이빨 자국에서 검붉은 피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다. 고통 탓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난다. 동시에 황당해서 웃음도 난다.

벤치에 올려둔 휴대전화가 진동한다. 액정에 편집자의 이름이 떠 있다. 불현듯, 이걸로 소설을 하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또 누구는 주제가 뭔지 묻겠지. 누구는 왜 저번이랑 똑같냐고 묻겠지. 왜 러시안 블루나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삼색 고양이냐고.

어지럽다. 머리를 좌우로 턴다. 오른손만 더듬어 담뱃갑을 집어 든다. 거꾸로 드는 바람에 개비들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진다. 그중 하나를 집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급하게 연기를 마시다 사레가 들린다. 마치 처음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발작적인 기침이 쏟아진다. 따갑다. 담배 연기가 눈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걸 쫓으려고 얼굴 앞에서 손을 휘휘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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