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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섭식장애

2020.12.19 21:2912.19

 

1

수조가 딱 알맞아 보였다.

밋밋한 벽 한 면을 장식하기에 액자는 너무 진부했고, 탁자는 그 위에 올려둘 또 다른 장식품을 고르느라 골머리를 앓을 게 뻔했다. 물고기를 다른 반려동물 대용으로 삼기에도 적당해 보였다. 정신 사납게 집안을 돌아다닐 일도 없을 테고, 손도 덜 갈 거다. 조용히 앉아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무리를 해서 이사 온 집이 넓기만 하고 삭막하다며 투덜대는 남편의 입맛에도, 차분한 성격의 딸 아이에게도, 올해부터 일을 시작하면서 집안일을 돌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았다.

 

2

처음 불안을 느꼈을 때가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조 앞에 앉아 멍하니 물고기 구경을 하는 딸 아이의 모습이 유독 눈에 자주 띄었을 때부터였을까? 아니, 그때만 해도 오히려 평온한 풍경이라며 만족했었다. 우리 세 가족은 모두 수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수조 속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머릿속은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아이로부터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한 마리가 비어.”

수조 속을 구경하고 있던 딸이 그렇게 말했다.

보기 좋으라고 여러 종류의 물고기를 한 수조 속에 넣은 게 화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초나 돌멩이 사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잘 찾아봐.”

한참 동안 수족 속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다시 말했다.

“그래도 비어.”

나도 합세해 물고기 수를 세어 보려 했지만 요리조리 정신없이 헤엄쳐 다니는 녀석들의 정확한 숫자를 세기는 어려웠다.

“물고기들이 숨바꼭질하는 모양이다. 술래 몰래 꽁꽁 숨었나 본데? 배고프지? 저녁밥 먹자.”

딸은 금세 내 말에 수긍을 하고 식탁으로 가 앉았다. 아니, 그랬다고 스스로 믿었을 뿐이다.

* * *

“또 한 마리가 비네?”

책가방까지 둘러메고 학교 갈 준비를 모두 마친 딸 아이는 아직 집을 나서기까지 남아있는 시간 동안 여느 때처럼 수조 속을 들여보다 또 그렇게 말했다.

그때는 나도 슬슬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마침 물을 한 번 갈아줄 때도 됐으니 퇴근 후 남편과 함께 확인해 볼 요량이었다.

“몇 마리는 이사 갔나 봐. 여긴 다 같이 살기 좁으니까. 그치? 그래서 우리도 이렇게 큰 집으로 이사 왔잖아?”

그런 말을 해서인지 그날따라 수조 속과 대비해 집안은 더 썰렁하게 느껴졌다. 화분을 몇 개 더 들여놓아야겠다.  

“학교 갈 시간 다 됐네. 가자.“

손을 내밀며 아이가 물고기에 관심을 끊도록 재촉하자 순하고 착한 아이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순순히 내 손을 맞잡고 엄마 아빠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이는 학교로, 남편은 직장으로, 나는 내 새 일터로, 우리 세 가족은 각자 하루를 보내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3

딸의 말이 맞았다. 수조 물을 갈며 양동이 속에 옮겨둔 물고기의 수는 한두 마리도 아닌 벌써 다섯 마리나 줄어 있었다.

“잡아먹었나 본데?”

쓴맛을 다시며 남편이 말했다. 물고기는 크고 힘센 녀석이 작고 약한 녀석을 잡아먹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키우는 물고기가 서로 잡아먹고 먹힌다고 생각하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뭐야? 감상하기 딱 좋은 평화로운 물속 세상이라더니? 호러영화도 아니고 무서워 죽겠네.”

아이에겐 사실대로 말해주기 잔인할지도 모르니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고민이었다.

“호들갑은? 그게 동물의 세계 아닙니까? 사람의 관점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

“그럼 서로 다 잡아먹을 때까지 놔두잔 말이야? 애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도 미리 말해뒀으니까 충격은 안 받겠지. 오히려 이런 건 애들이 더 순수하게 받아들일걸?”

“무슨 소리야? 애한테 벌써 다 말했어? 그걸 말하면 어떡해?”

“교육용으로 좋다고 했던 건 당신이다?”

어이가 없다. 이럴 때만 잘도 내 말을 기억하고 인용한다.

“땅 위에 사는 초식동물이 풀을 뜯어 먹고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것처럼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도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거다, 그러면서 생태계가 돌아가는 게 자연의 이치다, 사람도 물고기를 먹으니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이만큼 교육적인 설명이 어디 있어? 부모가 미리 알려주는 게 받아들이기 더 쉬울 테고. 그리고 솔직히 요즘 애들은 우리 때랑 비교하면 안 돼. 더 빨리 자라고 많이 안다고. 정보를 얻는 창구가 얼마나 많은데? 애들이 마냥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로만 언제까지 머무르진 않아.”

혼자 이성적인 부모인 척 잘난 척해대는 남편이 얄미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침착하고 똑똑한 아이이니 남편의 말을 잘 이해했기를 바랄 수밖에.

 

4

“당신, 애가 잘 알아듣도록 설명한 거 맞아?”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 남편은 필시 며칠 지나지도 않은 대화를 다 잊어먹은 모양이다. 혼자 속 편한 양반이다.

딸 아이는 평소 잘 먹던 생선 반찬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생선 살을 발라 밥 위에 얹어 주어도 빤히 쳐다만 볼 뿐, 식사를 다 마친 그릇 바닥에는 생선 살만 손도 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역시나 남편이 애한테 괜한 소리를 해서 생선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게 틀림없다. 물고기들에게도 정나미가 떨어졌을까?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인지 밥을 다 먹고 나면 으레 수조 앞으로 가 물고기 바라기를 한다. 하지만 수조 속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저 눈빛이 남은 물고기의 수를 확인하고 있는 것만 같아 불안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물고기들은 조금씩,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난 또 뭐라고? 요즘같이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에 음식 한두 가지 편식하는 게 대수야?”

오히려 편식으로 아이를 다그치는 게 더 좋지 않다며 남편은 핀잔을 놓았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잘 먹던 음식을 갑자기 거부하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원래 자라면서 입맛은 수십 번 바뀌잖아? 어렸을 때는 싫어하고 못 먹었던 걸 커서는 없어서 못 먹을 만큼 즐겨 먹게 되고, 예전에는 좋아했던 음식을 예전만큼 찾지 않게 되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당신도 어렸을 때 생선 싫어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은 장 볼 때마다 생선은 항상 꼬박꼬박 사잖아. 당신을 쏙 빼닮은 딸내미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네요.”

지금도 생선 비린내는 싫어한다. 그래서 생선을 조리할 때는 최대한 냄새를 빼는 게 일 순위다. 똑같은 요리가 싫증 난 걸까? 그래서 생선까스나 버터구이 등 다른 다양한 요리법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다시 끌어보려 시도도 해봤지만, 한번 거슬리기 시작한 입맛은 좀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말이 맞다. 입맛은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이가 생선을 먹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편식 때만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아빠도 네 나이였을 때 우유가 그렇게 먹기 싫었다, 그런 자신에게 우유를 먹이려 일부러 빵에는 꼭 우유만 마시도록 강요했던 할머니가 그렇게 미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유를 마셔야 키가 큰다는 얘기에 귀가 번쩍 뜨여 그때부턴 누가 억지로 먹이지 않아도 알아서 우유를 찾아 마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아빠 키가 이렇게 큰 거다, 그러니 너도 좋아하는 발레를 열심히 하려면 뼈가 튼튼해야 하는데 뼈에는 생선이 아주 좋다, 너도 언젠가는 맛이 아니라 몸을 위해 다시 생선이 먹고 싶어질 때가 올 거다, 그러니 조급해하거나 마음을 닫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면 시간이 해결해준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따위의 말을 늘어놓으며 남편은 아빠 노릇을 하려는 모양이지만, 자신을 옆에 끼고 늘어놓는 아빠의 일장 연설을 아이는 귀담아듣고 있지 않는 눈치였다. 그동안에도 시선은 오로지 수조로만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곧 알게 되었다.

 

5

딸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근 아이의 태도가 염려스러워 연락을 하게 되었다는 담임선생님은 급식 시간에 일어난 일을 언급했다.

며칠 전 급식 시간이 끝날 때까지 딸 아이는 요지부동 앉아있기만 했다고 한다. 급식 판을 가져오라는 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직접 가서 확인해보니, 아이는 생선 반찬만 남은 급식 판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고 한다. 혹시 생선 반찬을 남긴 게 걸려서 그러나 싶어 안 먹어도 된다고 다독인 후 급식 판을 가져가 음식 쓰레기통에 생선 토막을 버리려는데, 갑자기 아이가 소리를 질러 급식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워낙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라 그날 일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었지만, 오늘 또다시 일을 내고 말았다고 한다. 반찬으로 나온 생선을 이번에는 화단으로 가져가 흙 속에 묻고 있었다며. 단순한 장난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아이들이 보고 따라 할지도 모르고, 사실 얼마 전에 정수기 물에서 비린내가 나서 소동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고, 그 이후로 음식 문제에 대해선 학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딸 아이의 식습관에 대해 집에서 지도를 좀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이 어쩐지 정수기 일까지 아이의 짓으로 의심하는 듯한 뉘앙스로 들렸다. 모범생이라고 칭찬할 때는 언제고, 고작 한두 번 치기 어린 행동을 했다고 해서 벌써 불량 학생 취급인가?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면서 무슨 선생 노릇을 하겠다는 거냐며 혼자 속으로 욕을 하고 기가 막혀 했지만, 사실은 이미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는 불안과 의심의 싹을 숨기기 위해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 단순한 생선 기피나 편식이 아니라면 뭐가 문제일까?

* * *

섭식장애.

섭식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했다. 하지만 섭식장애 분류 중 딸에게 해당되는 유형이 무엇인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딸 아이는 원래 음식에 예민한 편이 아니었다. 가리는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특정 음식을 꺼리는 반응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없던 편식이 갑자기 생겼으니 맛이나 식감 때문은 아닌 듯했다. 혹시 생선을 먹다 목에 가시가 걸렸거나 찔린 경험이 있는 걸까? 학교라면 몰라도 집에서는 그런 기억이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이가 나에게 말했을 것이다. 몸이라도 아픈 걸까? 생선만 딱 꼬집어 먹을 수 없을 만큼 아픈 병이라는 게 있을까? 시도 때도 없이 키 얘기와 건강해야 된다고 강조하는 남편의 발언이 적절치 못했던 걸까? 아이에게 부담을 씌운 걸까? 아니면 반대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걸까? 애정결핍? 아니,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해도 식사 시간은 항상 함께하려 노력한다. 아이가 엄마나 아빠 없이 혼자 밥을 먹게 하지는 말자는 게 남편과 나의 약속이었다. 올해 일을 시작하면서 저녁밥을 차려주는 시간이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약속이 어긋난 적은 없었다. 딸 또한 바쁜 엄마를 위해 기꺼이 기다려주고 상차림을 도와주는 기특한 아이다. 유아기 때부터 잘 울기는커녕 떼를 쓴 적도 거의 없는 순한 아기였다. 하교 후에는 시간에 맞춰 학원을 다녀오고, 제가 할 일도 미루는 법 없는 부모의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 성실한 아이다. 남들이 보면 배부른 걱정이라고 할 만큼. 지금도 저렇게 거실 탁자 앞에 앉아 조용히 혼자 공부하고 있잖아?

굳이 단점을 꼽자면 또래 아이들에 비해 차분한 성격과 아이답지 않게 너무 조용하지 않냐며 깎아내리는 의견들을 왕왕 듣기는 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 점 또한 장점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하루라도 말썽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는 다른 집들의 질투일 뿐이라고. 조용한 걸 좋아하는 게 흠은 아니다. TV 소리 대신 수조 물소리를 배경음 삼아 공부를 하고 있는 딸 아이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수조에 정신이 팔려 밥 먹기를 내팽개치는 것도 아니니, 딸이 어떤 섭식장애라고 단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기만 한 걸까? 평화로운 이 풍경이, 고요함이 숨 막히는 이유는 뭘까? 집안을 가득 메운 물소리에 익사 당할 것만 같이.

* * *

“애가 너무 순한 것도 문제네. 물고기를 키우고 보니까 생선 먹는 데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 거야.”

남편은 아이의 행동이 죽은 물고기를 묻어 줘야겠다는 생각에 자기 딴에는 자연스럽게 행동한 것뿐일 거라고 추측했다.

“공감성이 뛰어나달까? 호기심도 강하고. 아, 그러고 보니 물고기 밥은 무슨 맛이냐며 먹어보려 했다가 당신이 혼낸 적도 있었잖아?”

“혼내기는? 급하게 제지하려다 보니 언성이 좀 높아진 것뿐이지?”

섭식장애로 흙이나 종이 같은 다른 못 먹을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몰래 먹다 들키는 것보다야 큰일도 아니다. 그런데 아이가 나 몰래 물고기 먹이를 먹어본 적이 있으면 어떡하지? 호기심에 딱 한 번? 아니면 반복적으로?

“손가락 빠는 걸로 엄청 혼냈던 건 기억 안 나?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고칠 걸 가지고 얼굴 골격이 못나진다느니, 버릇 안 좋아진다느니 법석을 떨었잖아. 매일 손가락에 이것저것 발라대고. 아마 애가 일생동안 맛볼 신맛과 쓴맛은 그때 다 맛봤을 거야.”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설마 그때 기억이 음식에 대한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은 걸까? 하지만 그게 생선과 무슨 상관이라고?

“혹시 애가 생선 먹다가 목에 가시 걸린 적 없었어? 아니면 두드러기가 났다거나?”

내 물음에 남편은 기억을 떠올리는 고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나야 모르지. 생선 살은 언제나 당신이 발라주잖아?”

어쩜 저렇게 당당하게 얘기할까?

“당신 한 번도 애한테 생선 발라준 적 없어?”

“뭐야? 내가 챙기려 하면 애 먹기 힘들게 자른다, 지저분하다, 식사 예절 잘못 배운다, 잔소리 잔소리 늘어놓는 게 누군데?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 식대로 해야 속 편한 스타일이잖아, 당신?”

“그럼 저 수조도 내가 하자고 했어? 처음 말 꺼낸 게 누군데?”

“갑자기 수조 얘기는 왜 해? 그리고 당신도 멋스럽다고 동조했잖아?”

“이게 다 저 물고기들 때문에 시작된 일이잖아! 그러니까....”

또다시 언성이 높아지려 하자 남편은 눈치를 주었다.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딸 아이가 열린 문틈으로 빼꼼히 부부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자고 했지만, 그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남편은 아이를 재우고 가겠다며 아이 방으로 피신해버렸다.

혼자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화를 삭여야 했다. 부녀 둘이서 엄마 뒷담을 하며 친목을 다지고 있겠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딸이며, 자기 말만 맞는 줄 아는 남편이며 전부 다 꼴도 보기 싫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남편의 기척에 선잠에서 깼다. 다시 싸움이라도 시작하려는 건지 남편은 귓가에 속삭였다. 방금 방으로 오는 길에 확인해보니 수조 속 물고기가 또 줄어있었다고.

“설마 또 애가 봤으려나?”

물고기가 줄었다는 소식이 처음으로 반갑게 들렸다.

“당신 말대로 수조를 없애는 게 낫겠어.”

그날 밤은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 * *

“물고기들이 다 사라졌어.”

딸 아이가 깨기 전에 남편이 물고기들을 전부 건져낸 모양이었다. 막상 수조를 없애려 하자 아이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생각이 막혔다. 물고기들이 모두 이사를 갔다고 둘러댈까?

“거기서도 엄마 아빠 물고기가 새끼 물고기들을 잡아먹어?”

예상치 못한 질문에 깜짝 놀랐다.

“아냐. 엄마 아빠 물고기는 새끼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아. 다른 물고기들이 잡아먹지 못하게 안전한 집으로 데려간 거야.”

서둘러 덧붙인 설명에 아이는 더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물을 비우고 수조까지 치우고 나니 빈 벽면은 유난히 커 보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수조가 있었던 자리를 지나칠 때마다 시선은 한 번 더 머무르곤 했다. 가끔 빈 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딸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다시 생선 반찬을 먹기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에 집안의 평온을 되찾은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여기 뭐 놓으면 좋을까? 가족사진을 액자로 크게 걸어놓을까?”

하지만 딸 아이는 어깨만 으쓱할 뿐 학원 차를 타러 집 밖을 나섰다.

평온함 속에서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그 평온함이 끝날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평온 속에서 불안의 요소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물고기들이 다 사라졌어.’

그러고 보니 남은 물고기들을 남편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지 않았다. 한창 바쁠 때 전화해서 물어보면 귀찮아하겠지? 하지만 전화를 걸기 전에 전화벨이 먼저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남편이 아니었다. 낯선 목소리는 딸 아이의 사고 소식을 알려주었다.

 

6

여느 때처럼 발레 수업을 마친 후 학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이는 원래 내리는 곳이 아닌 길가에 내려다 달라고 했다고 한다. 약속이 있다는 아이의 말에 학원 선생님은 하천가 근처에서 내려줬다고 한다. 아이가 학원 차에서 내린 시간과 발견된 시간 차이를 계산해보면 그렇게 오랫동안 빠져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하천 산책로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물 위에 떠 있는 딸 아이를 발견했다. 물을 조금 먹긴 했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고, 응급실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는 다행히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딸이 무사한 것만으로 감사했다.

“아무리 애가 내려달라고 했다고 해도 어린애 혼자 집 근처도 아닌 곳에 놔두고 가는 게 말이 돼?”

그런 무책임한 학원은 당장 그만두라며 남편은 흥분했다.

“물에 왜 빠졌겠어? 저녁도 안 먹고 춤이나 추러 다니니까 쓰러질 만도 하지.”

춤출 때 몸이 무거워서 저녁밥은 발레 학원을 다녀온 후 먹고 싶다고 한 건 딸 아이의 요청이었다. 발레 때문에 혹시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건 아닌 걸까? 최근 발레복이 안 맞는다며 시무룩했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른들만 거식증에 걸리는 게 아냐. 깡마른 몸에 대한 강박관념은 애들도 쉽게 보고 배워서 따라 한다고.”

그런데 아이는 왜 하천에 갔을까? 설마 물고기들이 보고 싶어서? 그래서 하천에 사는 물고기들이라도 보려고 간 걸까? 너무 성급하게 수조를 없앤 걸까?

“당신 내 말 듣고 있어? 발레 학원 당장 끊으라고.”

근본적인 원인은 찾을 생각 없이 눈앞의 문제만 덮으려 드는 남편이 짜증 났다.

“발레 학원 그만두면 애 혼자 집에 놔둘 거야? 그건 안 위험해?”

“애가 혼자 있으면 뭐? 도둑이라도 들일까 봐서? 엄마 아빠 없을 땐 아무한테고 문 열어주지 말라고 말해두면 되잖아?”

“방금 애를 하천가에 혼자 내려준 학원 선생 탓한 건 누군데? 그건 걱정되고 애 혼자 집에 있는 건 걱정 안 돼?”

오늘 낮에 본 부모 없이 아이들끼리만 집에 있다 화재가 났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맞벌이를 하는 집 아이들만 집에 있는 경우는 흔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래 봤자 다른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두세 시간 정도일 뿐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딸 아이가 몇 시간 동안 집안에 혼자 있을 모습은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혼자 있는 게 불안해서? 아니면 딸 아이가 불안해서?

“그럼 어쩔 거야? 내가 퇴근 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는 남편의 속마음은 나더러 시간을 조절해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빤히 보였다. 하필 올해 전업주부 생활을 끝내고 일을 하기 시작한 내 탓이라고도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절대 남편이 듣고 싶은 말을 들려줄 생각은 없다. 분명히 약속을 했으니까.

“안 그래도 애가 미술 학원 다니고 싶다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 마침 잘됐네. 발레 학원 대신 미술 학원에 보내자. 집이랑 가까워서 차를 탈 필요도 없어. 그림을 그리면 아이 정서에도 좋을 거야. 당신 말처럼 이상한 강박에 빠질 염려도 없고.”

남편도 더 이상은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일 수 없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7

빈 벽 자리를 채우는 일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딸이 미술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려온 그림들은 빈 벽을 조금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남편의 걱정과 달리 아이가 그려오는 그림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풍경들이었다. 아이의 마음속이 생각만큼 불안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남편은 안심이 됐는지 학원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일에 눈치를 주는 일도.

아이는 미술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도 집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이른 아침부터 수조 속을 구경하던 취미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파릇파릇하게 자라는 화초를 그리는 취미로 바뀌었다. 다른 재능에 비해 아이의 그림 솜씨가 썩 우수하다고 할 순 없지만 열심히 그리는 모습이 기특했다.

또 하나 완성된 그림을 어느 자리에 붙여놓을까 벽을 살펴보는데, 우연인지 그림들은 전부 꽃과 나무 같은 식물 그림뿐이었다. 딸이 식물을 이렇게 좋아했던가? 어느 한 그림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이건 무슨 그림이야?”

가족 그림이라고 아이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림 속 어디에도 사람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꽃과 나무와 풀 뿐이었다.

어느 날은 그림 대신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무슨 곡이냐고 묻자 아이는,

“식물도 음악을 좋아한대. 음악을 들으면 더 잘 자란대.”

라며 반주에 맞춰 흥얼거렸다.

기분 나쁜 기시감이 느껴졌다. 또다시 찾아든 불안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처럼.

아이가 늦잠을 잔 날, 급하게 학교 갈 준비를 하며 한 술이라도 더 먹이고 보내려는데 아이는 귀찮은 듯 식물은 물만 먹어도 잘 자란다며, 식물이 부럽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이의 식판에는 채소 반찬만 골라 남아있는 날들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채소 편식이야? 그건 딱 날 닮았네. 나도 채소는 별로 안 좋아하잖아. 또 또 그런 표정이다. 생선 반찬도 다시 먹게 됐으니까 채소도 곧 먹게 될 거야. 장담해.”

언제나 속 편한 소리를 하는 남편은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어서 하는 소리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나는 아이가 다시 자발적으로 채소를 먹길 기다릴 생각 없다. 없는 걱정을 사서 한다고 한심스럽게 여긴대도 만약에 일어날지도 모를 안 좋은 일은 미리 예방해두는 게 낫다. 모든 음식에 채소가 들어가게끔 요리하기 시작했다. 혹시 음식을 거부할 것을 대비해 가리지 않고 잘 먹으면 그동안 사고 싶어 했던 장난감과 인형을 사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집안에 장난감과 인형이 점점 쌓여가는 대신 내 불안은 조금씩 가라앉힐 수 있었다.

“게임기까지 사준 거야? 이건 좀 더 크면 사주기로 했잖아.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면 나중에는 감당 안 돼서 어쩌려고?”

이번에는 남편 말이 맞았다. 아이는 점점 더 크고 구체적인 걸 원하게 되었다.

 

8 

하루는 말끔히 먹은 식판을 내보이며 강아지가 갖고 싶다고 말했다. 곰 인형을 사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질려서 강아지가 갖고 싶은 거냐고 물으니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형이 아닌 살아있는 강아지가 갖고 싶다고.

수조를 들였었던 이유는 개와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으려던 생각이 컸었다. 가족들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건 얼토당토않았다.

“그리고 개가 짖으면 이웃집에서 시끄럽다고 난리일 거야. 대소변 훈련도 해야 하고, 산책도 매일 시켜야 하는데? 강아지 키우는 건 갓난아기 키우는 것만큼 어려운 거야.”

떼를 잘 쓰지 않는 아이는 이상하게도 강아지에 욕심을 부렸다. 자기가 짖는 것도 대소변도 잘 훈련시키겠다고, 산책도 매일 할 거고 씻기는 것도 자신이 다 할 거라고. 장난감에는 질색하던 남편이 하필 강아지에는 찬성했다. 나중에 짐만 되는 인형이나 장난감보다야 살아있는 개가 훨씬 낫다고.

“당신이 반대하니까 개 키우자는 얘길 못한 거지, 결혼 전까진 나도 계속 개 키웠었잖아. 지금도 어머니 집에 몇 마리 키우고 있고. 누가 아빠 딸 아니랄까 봐 운명적으로 끌린 거야.”

당신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상 보더라도 사회성과 책임감을 기르는 데에 개를 키우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며, 비꼬는 건지 설득을 하려는 건지 모를 말에 이어 자신도 앞으로는 좀 더 빨리 들어와서 개를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설득했다. 아이 돌보려고는 일찍 들어오지도 않던 양반이 개 돌보려고는 일찍 들어온다는 소릴 하는 게 어이없는 줄도 모르고.

”개 키우는 데는 내가 도사니까 당신은 손끝 하나 거들 일 없을 거야. 약속해.”

남편의 그 말이 믿음직해서는 아니었다. 채소를 열심히 먹는 딸의 노력이, 다른 친구들은 남기는 급식으로 나온 맛없는 반찬도 자신은 싹싹 다 비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이의 바람을 저버리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확실히 강아지가 오고 나서 딸은 한층 밝아졌다. 조용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강아지와 놀아줄 때만큼은 씩씩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웃곤 했다. 제 딴에는 훈련을 시킨다고 엄한 선생님 흉내를 낼 때면 그 모습이 깜찍하고 귀여웠다.

“안 돼. 밥은 다 먹어야지. 편식하면 안 돼. 그러면 나쁜 개야. 착한 개는 가리지 않고 잘 먹어. 그래야 건강하게 자라지.”

그렇게 말하는 딸을 보면 그동안 섭식장애 따위로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오해였고, 남편 말대로 나의 과대 염려증이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아지도 잘 돌보는 착한 아이니까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주 큰 걸로 받아야겠지? 선물로 뭘 받고 싶어?”

남편의 말에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강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이미 선물을 받았으니 다른 선물은 바라지 않는다고.

“아이고, 이런 기특한 우리 공주님.”

두 부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와 딸처럼 서로 끌어안고 뒹굴었다.

 

9

아무리 훈련을 잘 시켰다 해도 가족이 집으로 들어올 때 짖지 않게 하는 것까진 아직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빈집에 들어왔을 때 숨 막히던 정적은 잊고 있었던 불안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어둠 속에서는 그동안 방심하고 있었던 나를 누군가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불을 켜고 강아지를 불러보았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나 딸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연말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밤 산책은 하지 말라고 얘기했던 건 바로 나였다. 그때만큼은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와 자기 마음대로 해버리는 남편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를 바랐다. 거실 벽 한쪽에 쓰러져 있는 강아지를 발견했을 때도 잘못 본 것이길 바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확인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려 무거운 다리를 끌며 다가가는 와중에도 인형을 착각한 것이기를 바랐다. 강아지 인형은 사준 적도 없으면서. 하지만 입에 거품을 문 채 미동도 없는 강아지는 죽은 게 분명했다.

이번에도 이사를 갔다고 속일 수는 없었다. 강아지가 엄마 아빠를 보고 싶어 해서 돌려보냈다고 해야 할까?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 몰라 곤란한 얼굴로 서로만 바라보고 서 있는 엄마 아빠를 올려다보는 딸 아이의 눈빛은 강아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빨리 말해주길 재촉하고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간 거야.”

가장 속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로 지어내 들려주느라 남편은 진땀을 뺐다.

“우리 딸이 워낙 훈련을 잘 시켰다는 소문이 산타 할아버지의 귀에까지 들어간 거야. 마침 루돌프랑 둘이서만 온 세상 어린이들에게 선물 배달하기엔 힘들었던 참인데, 똑똑하고 용감한 강아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직접 스카우트해간 거야.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함께 썰매를 끌고 선물을 배달하자고. 우리 딸도 알지? 워낙 착한 녀석이라 남을 돕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으리란 거? 시간이 촉박해서 우리한테 인사할 새도 없었나 봐. 맡은 일 다 끝나면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보다 더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남편의 솜씨가 그 정성에 비해 썩 그럴듯하게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물고기 때처럼 눈치 없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이가 아빠의 말을 믿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질문 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물론 그걸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강아지가 언제 돌아올지 물어볼 딸에게 그때는 뭐라고 핑계를 댈지, 그리고 또다시 아이에게 사고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하지만 지금 당장은 강아지 사체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시급했다.

남편은 직장 동료 중에 키우던 개가 죽어 장례를 치러봤다는 사람이 있다며 한번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물고기들은 남편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는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그때 다 죽지 않았었나?”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남편은 변명했다.

“이미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선지 잠깐 옮겨놓은 통 속에서 바로 죽어버렸었다고. 게다가 몇 마리 남지도 않았었잖아? 서로 잡아먹기 바빴던 녀석들이니 다 죽어버려도 이상할 건 없지.”

“그래서 죽은 물고기는 어떻게 처리했는데? 물고기들 장례라도 치러줬어? 아님 그냥 변기에다 넣고 내린 거 아냐?”

아이의 방까지 대화가 들리지 않게끔 최대한 목소리를 억누르며 물었다.

“내가 혼자 처리할 땐 궁금해하지도 않더니 이제야 궁금해?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렸다, 됐어?”

“바로 내다 버렸어? 애가 본 거 아냐? 다 비치는 봉지에 무신경하게 그냥 넣은 거 아니냐고?”

“내가 이 집에서 시체 처리하는 사람이야?”

언성을 높이는 남편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당신 처음에 개 들일 때 뭐라고 했어? 나는 털끝만큼도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어? 수조를 놓자고 주장했던 것도 당신이고, 아이더러 개를 키우라고 부추겼던 것도 당신이야. 당신이 초래한 일이니까 뒷수습도 당신이 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

“그래? 그럼 다 시들어 빠진 저 화초들은 당신이 좋아서 키우는 거니까 썩은 내 풀풀 나는 저것들은 당신이 알아서 처리해. 집구석에 아주 죽음 냄새가 진동하니까.”

그렇게 쏘아붙인 남편은 강아지 사체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강아지가 들어온 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화초들은 여기저기 누렇게 잎이 바래고 시들어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정말 이 집에 들어오는 것들은 다 죽어 나가기라도 하는 걸까? 집안을 떠도는 기분 나쁜 냄새는 또다시 불길한 예감을 부추겼다. 강아지 사체 냄새가 벌써 집에 배인 걸까? 아니면 화초가 썩으면서 풍기는 냄샐까? 그게 아니라 다른 게 썩어가고 있다면? 나는 급하게 화분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흙 속에 썩은 물고기가 들어있지 않기만을 빌었다. 딸 아이가 학교 화단 속에 묻어둔 것과 같은.....

다행히 어떤 화분 속에서도 물고기 사체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다. 노이로제라도 걸린 사람처럼 거실 바닥을 흙 투성이로 만들어놓은 꼴에 스스로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나 남편이 돌아와서 이 난리를 보기 전에 빨리 치워야 했다. 그런데 흙 속에는 자갈이 아닌 다른 이상한 게 섞여 있었다. 뭐지? 겉에 묻은 흙을 물로 씻어 확인해보니 알약이었다. 남편과 내가 챙겨 먹는 영양제였다. 이게 왜 화분 흙 속에 들어있지? 남편이 넣었을 리는 없고, 아이가 시들어 가는 화초에 신경이 쓰여 넣어둔 걸까? 엄마 아빠가 먹는 약이니 식물에도 좋을 거라 여겨서? 하지만 식물에 주는 영양제는 따로 있다는 건 아이도 알고 있다. 액상 비료를 꽂아두곤 했으니까. 아이는 그냥 선의로 한 행동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딸이 그랬는지 아닌지도 아직 모르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찜찜하기만 한 걸까?

식탁 위에 놓아둔 영양제를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둔 후에도 찜찜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10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 아이에게 새 강아지를 선물하는 건 어떻냐고 남편이 제안했다. 또다시 개를 들이는 게 맞는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무턱대고 개는 이제 없으니 잊으라고 아이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가 강아지보다 더 집중할 수 있을 만한 것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아이는 크고 거창한 걸 바라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차라리 속 시원히 원하는 게 무언지 말해준다면 좋을 텐데, 내 배 속으로 낳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 * *

아이들은 하천 얼음을 깨며 노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즐거워한다. 딸이 학원을 너무 많이 다니는 걸까? 학교 공부는 가끔 빼먹어도 괜찮다고 말해줘야 할까? 매일 예복습을 철저히 할 필요는 없다고 안심시켜줘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도 상관없다고, 그건 아이들의 특권이라고 알려줘야 할까?

“죽어! 죽어! 죽어! 하하하!”

아이들은 깨진 하천 얼음물 속으로 막대기를 쑤셔대며 신나 했다. 물고기라도 발견한 걸까? 문득 수조 속 사라진 물고기는 딸이 이곳으로 와 풀어준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잡아먹히지 말라고, 그래서 자신이 풀어준 물고기를 보려고 혼자 하천으로 오곤 했던 게 아닐까?

“저기 있다. 잡아!”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 위태롭게 앉아있는 새를 발견한 아이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공격했다. 하지만 만약 살아있는 물고기가 아니라 죽은 물고기라면? 학교 화단에다 묻은 생선 토막처럼 수조 속에서 죽은 물고기를 하천에다 묻으러 온 거라면? 아니, 자신이 죽인 물고기를 숨기려고 온 거라면?

“하하하하하!”

깨진 얼음조각을 집어 들고 혀로 녹이고 이 사이로 깨 먹으며 웃어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딸은 화초에만 약을 넣은 걸까? 강아지에게도 먹인 게 아닐까? 영양제뿐만이 아니라?

* * *

“여기 있던 약통 못 봤어?”

꽁꽁 숨겨둔 자리에서 약통을 꺼내 주자 남편은 왜 찾기도 힘든 곳에 놔두냐며 투덜거렸다. 하천에서 집으로 돌아와 상비약 보관함을 살펴보았지만 뭐가 얼마큼 줄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약 관리는 더 신경 써야 되겠어. 애 손닿는 곳에 놔두지 마.”

남편에게 화분 속에 들어있던 약에 대해 알려주었다.

“엄마가 안 돌보니까 자기 딴에는 아프지 말라고 그랬겠지. 애한테 말해주면 되지. 식물이 먹는 약은 따로 있다고.”

“그것만 걱정되는 게 아냐.”

“왜, 애가 너무 많이 먹기라도 할까 봐 그래?”

“애가 먹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식물 말고 개한테도 먹여봤을지도 모르고.”

“무슨 소리야?”

“그래서 말인데 강아지 선물은 좀 나중으로 미루는 게 어떨까? 혹시 또 개가 아팠다가 아이 마음대로 약을 꺼내서 개한테 먹이면 안 되잖아? 개가 먹으면 안 되는 약이라도 먹였다간....”

“여보!”

정색하며 내 말을 끊은 남편은 몇 초간의 침묵 속에서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동안 우리가 딸에 대해서 너무 무신경했던 건 맞아. 워낙 혼자서 잘 해나가는 아이니까 믿고 맡긴다는 말로 포장한 거지. 그래서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의 행동을 살펴보고 싶은 건 당연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요즘 당신이 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티끌 하나, 꼬투리라도 잡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만에 하나 개가 정말 뭔가를 잘못 먹고 죽은 거라면 그것도 우리 잘못이야. 집안에 개가 먹어선 안 될 걸 놔둔 거니까. 그게 약이든 뭐든. 그러니 우리 딸의 잘못인 게 아냐. 부모는 자식을 탓해선 안 돼. 그게 부모가 가져야 할 책임이야. 자식을 의심해서도 안 되고.”

나만 나쁜 엄마 취급당할 건 예상하고 있었다. 가끔은 남편과 내가 같은 아이를 키우고 있기는 한 건지 의아할 때가 있다.

“당신만 탓하려는 게 아냐. 우리 둘 모두의 잘못이지.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아이가 아니라 우리가 책임감을 가지고 동물을 키울 준비가 안 된 건지도 모르지. 시간이 필요한 건 우리인지도.”

그렇게 말한 뒤 남편은 돌아누워 버렸다. 어차피 남편이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우리 아이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11

벌써부터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남편과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모습도 불안하기만 했다. 아이는 트리 앞 탁자에 앉아 색색깔로 점멸하는 전구 불빛을 구경하며 공부도, 간식도 모두 그곳에서 해결하면서 트리 앞을 떠나지 않았다. 자기 방에서 이불을 가지고 와선 한참을 구경하다 그대로 잠들곤 했다. 그 모습이 남편의 눈에는 강아지가 사라진 허전함을 금방 극복하는 사랑스러운 아이처럼 보이기만 할 뿐이겠지만. 역시 아이들이란 금방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 집중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며.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나는 불안했다. 언제든 흥밋거리를 바꾸고 옮겨가는 아이의 그 집착이.

“전구를 두르고 있으면 나무가 뜨겁지 않아?”

“이미 죽은 나무인데, 뭘. 상관없어.”

언제부터 우리 집에서는 죽음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큰 트리를 살 걸 그랬어. 저렇게 좋아하는데. 대신 트리 장식이라도 더 사서 걸어둬야겠어.”

아이와 한참을 놀아주다 방으로 돌아온 남편의 목소리에는 행복한 피곤함이 묻어나 있었다. 금방 잠에 빠질 것 같은 남편과 달리 나는 잠에 들 수 없었다.

“여보.”

“응?”

“우리 애가 마지막으로 이불에 오줌을 싼 게 언젠지 기억나?”

“오줌? 글쎄... 너무 갓난아기 때여서 기억 안 나는데?”

“학교에 처음 들어간 날 집으로 돌아와서 낮잠을 자다가 이불에 오줌을 쌌었어.”

“그랬어? 학교에서 긴장했었던 모양이네. 그러다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려서 실수를 하고.”

“혹시 아이가 학교에서도 실수할까 봐 한동안 등교하기 전에는 꼭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버릇을 들여놨었어. 거기다 아침밥으로는 국이나 수분이 많은 건 잘 안 주기도 했고.”

“하여튼 당신 염려증은 역사가 유구하다니까? 아이들이야 크는 동안 이불에 실례하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나도 어렸을 때 방학 때 친척 집에 놀러 가서 이불에 오줌 싼 바람에 얼마나 놀림 받았었는데? 그런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면 자기가 알아서 조심하게 된다고. 그러면서 크는 거지.”

“사실 나도 초반에만 그렇게 조바심 내며 조심시켰어. 매일 같은 아침 준비에 정신없고 귀찮아지니까 그냥 아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게 되더라.”

“그래. 우리 딸이 그런 애지. 잠깐 실수는 금방 극복하고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알아내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긴 왜 꺼내는 거야? 혹시 애가 자다가 오줌이라도 쌌어?”

“아니, 그냥. ...잘 때는 트리 불 꺼놔야 하지 않아? 혹시 애가 밤중에 화장실 가려다가 전선이라도 밟아서 넘어질지도 모르잖아? 화재 위험도 있고.”

“우리 마나님은 이렇게 걱정이 많아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지 몰라? 뭐, 당신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야 이 세상에 사고가 하나라도 덜 나긴 하겠지만.”

곯아떨어진 남편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문틈으로 흘러들어오는 트리 불빛은 영원히 나를 잠들지 못하게 만들려는 듯 밤새도록 반짝였다.

 

12

성탄절 이브 날 저녁 늦게까지도 딸은 잠들지 않고 트리 앞에 앉아 있었다.

“빨리 자야지. 그래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러 오지.”

하지만 딸 아이가 기다리는 건 산타가 아닌 강아지였다. 선물 배달을 다 마치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냐며.

“아니, 강아지는 이제 안 와.”

왜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에게 사실대로 말할 용기는 없었다. 남편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빌려 강아지는 이제 산타 할아버지네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말했다.

“산타 할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건강하고 튼튼한 보조가 필요하거든.”

“그럼 루돌프는? 루돌프가 하는 일까지 대신 하는 거면 루돌프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면 안 돼?”

아이의 순진한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그건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

“왜? 일 못해서 잡아먹힌 거야, 루돌프는?”

순식간에 미소가 가셨다.

“아니야. 왜 그런 말을 해?”

“약하고 쓸모없으니까. 약한 건 언제나 잡아먹히잖아?”

불안은 언제나 현실로 나타난다.

“몸이 약하면 약을 먹으면 될 텐데.”

그러면서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비는 아이에게 절대 새 강아지를 곧 데려오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이는 정말 산타가 있다고 아직 믿고 있기나 한 걸까?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속이고 있는 걸까? 순진한 아이처럼?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망년회라며 술에 취해 밤늦게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동료네 개가 임신을 했다는 말을 꺼냈다.

“그래서 내가 강아지 한 마리 분양받아 놨지. 꽤 비싼 종이라서 경쟁이 치열해. 늦으면 순서 뺏길지도 몰라.”

개는 안 들이기로 한 걸 벌써 잊었다는 듯이 자랑을 했다.

“당분간만 안 데려오기로 한 거잖아. 그리고 당장 낳는 것도 아니야. 그동안 마음의 준비 잘해놓으면 되잖아? 우리 딸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술냄새를 풍기며 속 편하게 말하는 남편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다시는 언급 안 할 거야. 이번이 마지막이야. 잘 들어. 이 집에 강아지는 두 번 다시 절대 들이는 일은 없을 거야. 개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물고기든 화초든 모든 살아있는 건 이 집에 들이지 않아. 알겠어?”

내 선전포고에도 남편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듯 한숨을 쉬며 왜 또 그러느냐고 물었다.

“뭐가 또 당신 신경 거슬리게 한 건데? 말해 봐. 내가 해결해줄 테니까.”

“그런 거 없어. 그냥 내 직감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 거야. 우리가 어떤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알기 전까지는 절대 살아있는 걸 아이 손에 쥐여주면 안 된다고.”

남편의 한숨은 짜증 섞인 콧바람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 마음대로 고집부릴 거면 합당한 이유를 들어야 할 거 아냐?”

아직 술도 깨지 않은 남편에게 나는 지금껏 의심해왔던 모든 정황과 불안했던 예감들이 확신으로 나타난 사건들을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그 모든 일들을 다 애가 혼자 벌인 일이다, 그걸 주장하고 싶은 거야? 그런데 그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 있어? 당신이 한 말은 다 심증일 뿐이지 않아?”

“엄마가 아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만큼 정확한 증거가 어디 있어? 솔직히 당신도 느끼잖아? 모르는 척, 아닌 척하는 것뿐이잖아?”

“당신 가끔 고고한 선비인 척 굴 때마다 얼마나 답답한 줄 알아? 우리가 성인군자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성인군자인 것도 아냐. 당신은 어렸을 때 개미나 작은 곤충 괴롭히면서 놀았던 적 없어? 풀 뜯고 꽃 꺾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었냐고? 뭣도 모를 시절엔 작은 생물을 함부로 대하면서 잔인하게 굴기도 해. 다들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라는 거야. 점점 머리가 크다 보면 그 행위가 어떤 의미이고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깨닫고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는 거고. 우리가 그랬듯 우리 아이도 지금 그 시기를 넘어가고 있는 거라고.”

“만약 그 시기가 너무 오래 걸리면? 결국 깨닫지 못하면 어쩔 건데? 개미나 물고기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걸 바라게 된다면 어쩔 건데? 강아지보다 더 크고 더....”

“그만해! 듣기 싫으니까.”

충혈된 눈을 부라리며 남편은 소리쳤다.

“이상한 건 아이가 아니라 당신이야. 이 집에서 가장 불안정하고 위험한 건 당신인 걸 모르겠어?”

“내가 문제라고? 언제나 당신이 옳고 내가 틀렸지? 그래서 항상 당신 의견대로 하도록 밀어붙이잖아. 그런 적 없다고? 그럼 아이는 빨리 낳을수록 좋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나 일은 뒤로 미뤄두고 아이를 먼저 낳자고 한 건 누구야? 아이에게는 엄마 손길이 필요하니까 적어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진 양육에만 전념하라고 얘기한 건 또 누군데? 이제 한숨 돌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니까 갑자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고 다시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눈치 주고 있는 게 누구냐고!”

“좀 더 애한테 신경을 쓰자는 거잖아, 아직 어리니까. 부모가 어떻게 애 놔두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어?”

“이제야 겨우 나 자신한테 집중하고 싶다는 게 그렇게 이기적인 거야? 당신은 술자리며 취미며 운동까지 꼬박꼬박 다 챙기면서? 아, 그러고 보니 당신이 먹는 단백질보충제를 보고 아이가 음식에 이상한 편견이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뭐 그리 잘난 몸을 만든다고 남이 애써 차려놓은 밥상머리 앞에서 밥맛 떨어지게 약이나 들이키면서, 아이더러는 가증스럽게 어릴 때는 누구나 편식하는 거니 스트레스받지 말라며 훈계를 늘어놔? 그래놓고선 나 보고는 뭐랬어? 내 예전 편식 습관이 지금 아이 식이 문제의 원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잖아? 나한테 문제가 있어? 내가 틀렸어? 망상에 빠져 사실도 아닌 일로 공포에 휩싸인 정신 나간 여자처럼 보여? 그렇게 만든 게 누군데? 혼자 잘난 척하는 당신 아냐!“

왜 다 지난 얘기를 상관도 없는 지금 이야기에 끄집어내는 거냐고, 그때는 당신도 받아들였던 거 아니었냐고, 그러는 당신도 예전에 다이어트약만 매일 먹던 때가 있지 않았었냐고, 그리고 애가 걷기도 전에 어린이집에 떠넘기고 돌아다닌 건 왜 쏙 빼고 당신 혼자 육아를 전담했던 것처럼 말하느냐는 따위로 말싸움은 유치하게 흘러갔다.

서로 말꼬리를 잡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웠다. 그러다 갑자기 조명이 꺼지듯 눈앞이 흐려지더니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소리를 너무 지른 탓일까? 정신을 다잡으려 침대에 걸터앉으려고 몸을 숙이는데, 그래도 고꾸라져버렸다.

“여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방과 거실을 분주히 오가는 남편의 모습과 여느 때처럼 열린 문틈 사이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딸 아이의 모습이었다. 쓰러진 엄마를 보고 놀랐을까? 아니면 예상하고 있었을까? 내 딸이... 내 딸은... 설마....

 

13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남편은 가벼운 빈혈 증상으로 쓰러진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거리에선 캐럴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말이 맞았어. 강아지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어. 동물이나 식물을 키워봤자 진짜 사람을 키우는 거랑은 비교가 안 되지. 그동안 당신을 너무 밀어붙인 것 같애. 미안해. 그런 줄도 모르고.”

죽을병에라도 걸린 걸까? 왜 남편은 갑자기 고해성사라도 하려는 거지?

“빈혈이라고는 하지만 혹시 몰라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아봤는데 둘째가 생겼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남편은 고해성사가 아니라 크리스마스 거짓말이라도 하려는 걸까?

“임신이야. 당신도 몰랐어? 아님 나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알려주려고 숨기고 있었던 거야?”

거짓말. 내가 임신일 리 없다.

“확실해. 애랑 둘이서 똑똑히 들었다니까? 애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딸 아이도 안다고? 집에 또 다른 생명이 들어오게 될 거란 것을?

“애한테도 좋을 거야. 어쩌면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도 외동이라 그랬을지 몰라. 혼자서 배우는 거랑 형제지간에서 배우고 느끼는 건 다를 테니까. 알아. 우리가 약속했던 거랑 어긋나는 거. 당신이 세워놨을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테고. 하지만 요즘 불안정했던 우리 가족에게는 잘된 일인지도 몰라. 우리 딸은 벌써 눈사람 네 가족을 만들어야겠다며 밖에서 뛰어놀고 있는걸?”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흥얼거리는 캐럴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높고 신이 난 아이의 목소리로.

한참을 밖에서 놀다 코끝이 빨간 채로 병실로 들어온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천진난만한 얼굴로 뛰어와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동생이 생겨서 신났나 보네? 언니가 좋을까, 누나가 좋을까?”

살갗에 닿는 딸 아이의 손의 냉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엄마 배 속에 아기가 든 거야?”

마른 목에 침을 삼키자 이상한 허기를 느꼈다.

“아기는 배 속에 어떻게 들어간 거야?”

“빈혈에는 선지해장국이 좋으려나?”

근처 식당을 검색해보는 남편은 아이가 묻는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그래서 아이는 축축한 입김이 서린 목소리로 내 귀에다 대고 다시 속삭이며 물었다.

“엄마가 잡아먹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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