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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인류의 비극

2020.11.30 21:2111.30

앳우드는 작고 외진 마을이다. 이런 곳에서 외톨이라는 것은 도시에서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걸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벳은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외면하지는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에겐 부모님의 “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마.”라는 말 정도는 무시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있다. 그건 그가 어리기 때문에 더 쉽게 지니게 된 것이기도 하다.

활기차게 구석에 박아둔 크레용을 꺼내 든 후 벳은 집을 나섰다. 친구와 놀러간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고 단지 또래가 아닐 뿐이다. 사실, 그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이 새로 온 외톨이 아저씨를 더 친구로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자주 노던 블레싱 숲을 같이 탐험하며 놀았다. 노던 블레싱은 앳우드 사람들의 거주지와 아주 밀접한 곳으로, 그들이 처음 만나게 된 곳이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은 거기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누가 더 가까운 사이가 될지는 너무나 당연한 문제였다.

희 아저씨의 집은 앳우드 모든 주민들의 집 중에서도 가장 숲과 가까웠다. 그래서 그와 벳은 집과 숲을 편하게 왔다갔다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항상 숲에서만 있던 것은 아니다. 집에 있을 때 희는 종종 벳에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처음에, 나가려던 것이 좌절된 우기의 어느 날에, 희는 자신이 쓴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했다. 사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굳이 집어넣자면 벳이 좋아하지 않는 축에 속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인간적인 흥미와 당장 별달리 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 수락했고, 곧 빠져 들고 말았다. 그가 쓴 책들에 하나같이 등장하는 원주민들과 각종 자연환경들은 벳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노던 블레싱을 연상시키는 숲부터, 바다, 사막, 설원, 심지어 땅 밑 세계까지….(희는 그것들이 꼭 역사적 사실과 관계가 있지는 않다고 했다.)

아직 생동감 넘치는 가상 세계가 그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오늘 그것을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다. 그는 오늘 무언가를 직접 해야 했다. 문을 두드리자 반갑고 이질적인 얼굴이 튀어나왔다.

“어서 들어와.”

“이거 가져왔는데 괜찮을까요?”

“응, 딱 좋아.”

그리고 희는 당연하다는 듯 묻지도 않고 두 사람 몫의 코코아를 타러 갔다. 벳은 거실 소파에 앉아 미리 준비된 커다란 판들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의 비어 있는 살결을 몇 번 쓸다 보면 희가 다가와 앉았다.

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적절한 도구들로 판을 채워 나갔다. 야심 차게. 그들의 눈동자엔 즐거움과 불꽃이 있었다. 희의 벳을 충분히 존중하는 태도가 그 일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완성이 되었을 때 벳은 스스로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희보다도 먼저 일어나 판을 지지하는 기둥 부분을 잡아들었다.

그들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분주하게 걸었다. 꼭 빨리 행동할 필요는 없었지만, 설렘이 그렇게 만들었다. 주어진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소소한 기쁨을 느낄 여유는 있었다. 하지만, 그러니까, 차라리 여유롭게 좀 더 느긋하게 행동을 하는 것이 그들에겐 나았을 것이다.

노던 블레싱 숲 개발은 인류에 대한 공격이다!

그건 이제 희의 머릿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하는 문장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그것을 써 놓은 표지판이 산산이 부수어져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그렇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지금 이 순간 마주쳐 버렸다는 것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파괴자들ㅡ그러니까 개발을 찬성하는 쪽이 쏘아붙였다. 그들의 표정이 더욱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들의 수가 더 많았다. 정확히는 2명을 제외한 앳우드의 모두가 개발을 적극적으로 기대하거나, 소극적으로 수용했다. 벳의 어머니는 전자였다.

“대체 뭐 하는 거야, 벳!”

그는 딸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었다. 그 과정에서 무참히 땅에 떨어진 표지판 같은 건 당연히 그의 관심사가 아녔다.

“우리 애한테서 떨어져요! 이상한 거 가르치지 말고!”

“이상한 거라뇨? 숲을 지키자는 게 잘못되었단 말입니까? 당신도 지구가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단 건 알죠. 후세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숲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희는 여러 명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후세? 그걸 왜 신경 써야 되는데? 우린 당장 우리 사는 게 중요하다고!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런 태도….”

더 이상 혀가 굴러가지 않았다. 난생 처음 겪는 경험에 희의 온 털이 곤두섰다. 잠자코 화를 쌓아 가던 사람이 끝내 내민 총구의 파괴력은 그 자체로 대단했다.

“닥쳐, 이 노랭아. 너도 여기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거 알잖아. 분란 일으키지 말고 그냥 여기서 좀 꺼져!”

그의 편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은 놀라는 시늉조차 해 주지 않았다. 희는 갑자기 공기가 묵직하고 낯설어지는 것을 느꼈다. 주저앉고 싶은 것을 간신히 버텨 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등을 돌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멀어져도, 부정적인 감각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김정희.

이 땅의 원주민.

베스트셀러 작가.

환경주의자.

이 정도면 그를 설명하는 데에 충분하다. 그는 여러 자연환경을 눈에 담으며 영감을 받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비트 만, 무하다 사막, 아칸토스의 설원, 노던 블레싱 숲… 그 외의 많은 곳들.

물론 그가 완벽한 고증을 원한 건 아니고 창작의 동력은 짧은 순간으로도 전해지는 것이지만, 그는 마음에 든 장소의 곁에 오래도록 머물며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전국 각지에 그의 집들이 있었다. 앳우드의 집은 그중 가장 최근의 것이었고, 지금까지완 다르게 그에게 불쾌한 경험 또한 선사했다.

그걸 예상은 했어야 했다, 노던 블레싱은 유명한 곳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쉽사리 포기하진 못했을 것이다. 인간적 조건이 나쁘더라도 자연 조건이 주는 만족감이 최고라면 감수하지 못할 이유는 그에게 없다. 오히려 그늘진 곳에 있기 때문에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분에 애착이 컸다. 그래서, 그가 원래 인간들을 신경 쓰는 유형은 아니라서, 그리고 벳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그 (비교적) 은은한 배척들을 견디며 지내 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목숨에 위협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아직 심장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아까를 구체적으로 되돌아볼 때마다 더욱 나빠졌다. 그는 이제 이들이 가진 악의가 살의에 근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인 건 그에겐 지금 당장 떠나서 갈 곳이 많다는 거였다.

‘정말 떠나야 되나?’

그때 그 혼란스러움을 흐트려 놓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이미지가 그를 덮치고, 그는 얼어붙었다.

“희!”

그 명랑하고 친근한 소리를 듣고 나서야 환상이 사라졌다. 평소처럼 문을 열면 뒷짐을 지고 있는 벳이 있었다. 그가 정희에게 내민 것은 정희 또한 알고 있었지만 드물게 보이는 노란 꽃이었다.

“전에 숲에 혼자 갔을 때 이게 피어 있는 데를 찾았어요. 오늘 알려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고마워.”

“힘내세요. 전 항상 아저씨 편이에요. 제가 어른 되면 여기 사람들 다 혼내 줄게요.”

안녕히 계세요! 벌써 시간이 늦은 감이 있어 그런지 아이는 헐레벌떡 뛰어갔다. 그 뒷모습에 그리고 꽃의 감촉에 정희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꽃을 얼굴 높이로 들어 달큼한 향기를 오랫동안 맡았다.

‘그래, 감정이 격양돼서 항상 가지고 다니던 총을 꺼낸 거지. 평소에 갑자기 나를 쏴 죽일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앞으로 계속 충돌한다면 나쁘긴 하겠지….’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억누르고 그는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그 후 의자에 팔짱을 끼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불현듯 최선의 방법을 떠올렸다. 타협을 노려보자. 어떻게. 잘 될까?

그건 오늘의 몫은 아니었다. 약통에서 꺼내진 알약이 물과 함께 그의 목을 타고 내려갔다. 원래 가급적이면 피하려 하는 것이었으나, 오늘은 필요했다. 그는 지금 깊은 잠을 자야 했다. 약의 효과가 들기 전에 머리맡의 비고 잊혔던 꽃병에 꽃을 꽂아 넣었다. 그를 지켜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벳! 어딜 갔다 온 거야!”

너 또 그 원주민 만나러 갔지, 어? 말 걸지 마. 얘!

“그만 하고 밥이나 먹자.”

“안 먹어!”

벳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오늘만큼 부모가 싫었던 날이 없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런 최소한의 저항이라도 해야 스스로가 견딜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나가지 않았다. 대신에 창가 쪽으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천천히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게 괜찮았다. 달과 별이 박힌 밤하늘. 적당한 온도의 잔잔한 밤바람. 그리고 그것이 강하게 전하는 꽃의 향기.

노란 꽃잎은 아까부터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가 달랐다.

공중에 꽃이 흩날렸다.

 

눈을 뜰 때 가장 먼저 자극해 오는 것이 기분 좋은 꽃내음이라면, 그걸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아침을 의미한다.

정희의 기분은 침대를 벗어난 후에도 망쳐지지 않았다. 그는 오늘 괜찮았다. 왠지 모든 걸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수면제를 먹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거실로 나가 물을 끓였다. 기다리는 중에 노트북을 켜서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건 그가 작가로서 하루를 시작하며 하는 일들 중에 하나였다.

이 기사 좀 보세요.

당신이 쓴 게 현실이 됐어요! 신의 계시라도 받았던 건가요?

“잠깐만!”

정희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답한 뒤 보내와진 링크를 클릭했다. 새로운 페이지가 떴다. 맨 처음 그를 자극하는 건 커다랗고 익숙한 사진이었다.

모인에 싱크홀 발생

19일 밤 모인의 앳우드에 커다란 싱크홀이 발생하여 10명이 사망했다.

조사 결과 커다란 땅굴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원주민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생활하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정희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화면을 읽고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다만 거세진 소리들이 분명하게 그의 귀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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