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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피부묘기증

2020.11.24 18:4311.24

 

1

점쟁이는 방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혀를 찼다.

“아주 악독한 것이 붙었네. 무슨 원한을 산 거야? 그거 빨리 안 떼어내면 젊은 처자가 피부가 문제가 아닐 거야?”

다짜고짜 죄인 취급하는 태도에 기분은 나빴지만 한눈에 내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점쟁이가 신기하고 궁금해 정작 결혼을 앞두고 궁합을 보러온 친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뭘 잘못 먹었거나 벌레에 물렸거나 알레르기 반응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들은 병명은 이름도 기묘한 피부병이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라 완전한 치료법은 없다고 했다. 더 심해지지 않게 꾸준히 약을 먹으며 일상 속에서 주의하는 수밖에 없는 귀찮은 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드러기는 귀찮은 정도를 넘기 시작했다. 보기 싫은 두드러기와 열감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가려움이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긁었다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오르는 발진에 놀라 가려움을 참아보려고도 했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가려움은 성격까지 짜증스럽고 예민하게 바꿔놓았다. 가려움을 참는다고 해서 두드러기가 올라오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긁지 않아도 두드러기는 곧 가려울 부위에 먼저 올라와선 나를 약 올리는 듯했다.

약을 먹어도 괜찮아지는 건 그때뿐이었다. 내성이 생길까 걱정되어 자주 먹기도 꺼렸다.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이들이 효과를 본 적이 있다는 방법들을 검색해봐도 원론적인 예방법이나 인증되지 않은 약과 화장품, 식품 따윌 홍보하는 내용들일 뿐이었다. 호전되기는 바라지도 않으니 상태가 더 나빠지지나 않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뜬금없이 두드러기가 나는 원인이 원귀 때문이라는 점쟁이의 말이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론 솔깃했던 것이다.

“팔죽지며 온몸이 다 긁힌 자국이지? 다 그것이 매달려 있어서 그런 거잖아. 안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손톱으로 긁고 머리카락으로 휘감는데 남아 날 살가죽이 있겠어?”

평소 같았으면 원귀라는 말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돈을 주고 점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선 들어나 보자 하는 심산이었다. 친구 또한 두드러기 때문에 결혼식장에 가네, 마네 고민하던 내가 걱정됐는지 자신의 궁합보다 내 문제를 먼저 물어봐 주었다. 하지만 점쟁이는 못 볼 걸 봤다는 양 흘깃거리며 혀만 찰 뿐 뾰족한 방도를 내주지 않았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아주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게 여간한 원한이 아닌데? 잘 생각해봐. 그 정도의 원귀는 아무한테나 붙는 게 아니야. 저건 얼굴도 보여주질 않아. 떨어지지 않으려 용을 쓰느라 손 놀리고 발버둥 치기 바쁜데 저를 부르는 소리가 귓등으로 들어오겠어?”

그러면서 은근히 천도재가 어쩌니, 굿이 저쩌니 하는 소리로 이야기가 흐르자 흥미는 금세 식어버렸다. 그에 반해 점집을 나온 뒤에도 오싹해 하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에 괜히 예비 신부의 기분만 잡쳤다고, 저런 선무당한테 궁합 안 본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큰소리치며 아무렇지 않은 척 헤어졌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느라 다시 눈에 들어오는 몸 이곳저곳에 흉하게 부풀어 오른 자국들은 점쟁이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말 원귀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억울한 죽음이어야 원귀가 되는 걸까? 아니, 애당초 나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있기라도 한 걸까? 거기다 나 때문에 죽었다면 내가 모를 리는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정도로 인생을 잘못 산 것 같지는 않은데.... 문득 눈썰미 좋은 점쟁이가 내 목에 살짝 올라온 두드러기를 눈치채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다음에 또 오도록 유도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굿값을 받아내려는 수작으로. 그래, 그렇게 강한 원귀라면 점쟁이야말로 방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입구에서부터 막았겠지. 아니, 육체도 없는 혼이 물리적인 가해를 하고 흔적을 남긴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다 보니 잠시 판단력이 흐려져 혹한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졌다. 점쟁이의 말 따위는 잊자. 미지근한 욕조 물에 몸을 담그고 누워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런 말에 연연해봤자 스트레스만 더 쌓이고 피부에 안 좋은 영향만 미칠 거다. 그런 내 다짐을 비웃듯 물속에 비치는 두드러기는 더 크게 부풀어 올라 보이기만 하지만.

 

2

그동안의 걱정이 무색하게 친구의 결혼식 날 피부는 잠잠했다. 홍조를 띤 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과감히 어깨와 등을 드러낸 웨딩드레스에 쑥덕이는 하객들도 있었지만 내 눈에는 부럽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울적한 기분을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수다를 떨며 떨치려 애썼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에 자극을 받기도 하며, 학창 시절 이야기에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보기도 하며. 그러다 누군가 잊고 있었던 이름을 꺼냈다.

“이렇게 다 같이 모였는데 한 명만 빠지니까 섭섭하네.”

아주 오랜만에 떠올려 보는 이름이었다. 고3 시절 같은 반 단짝이었던 친구와 나는 서로 성격은 달랐지만 취향이 비슷해 언제나 붙어 다녔다. 대학도 같은 학교, 같은 학과로 지원할 정도였지만 아쉽게도 친구는 떨어졌다. 하지만 친구는 오히려 잘 됐다며, 사실 자기는 대학을 가는 것보다 돈을 빨리 벌고 싶었다며 다른 대학으로의 지원이나 재수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사회에서 빨리 자리를 잡은 뒤에 다시 대학에 도전해도 늦지 않을 거라며 긍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말을 증명해 보이듯 첫 면접을 본 회사에 단번에 붙었고, 취직 기념 술을 밤새 달렸던 때가 친구를 만난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학교생활을 하느라, 친구는 직장 생활을 하느라 바빠 서로 얼굴 볼 약속 한번 잡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세상에 적응해나가며 애를 쓰던 어느 날 친구의 부고를 알리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 연수 후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일어난 버스 전복사고였다고.

그 기억을 벌써 까마득하게 느끼는 스스로가 너무 무심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기분만 좋지 않은 게 아니었다. 속도 좋지 않았다. 접시 위에 놓인 고기의 잘린 단면에서 배어 나오는 핏물이 속을 더 거북하게 만들었다. 붉게 부풀어 오른 살덩이처럼. 친구들에게는 피부병 때문에 당분간 밖에서 먹는 음식은 자제한다는 핑계를 대며 음식을 물렸다. 이미 이야기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 모두들 대화와 음식을 즐기기에 여념 없는 틈을 타 화장실로 향했다. 미스트 한 병을 다 비울 기세로 얼굴에 뿌린 후에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는 친구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며 혼자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친구와 술을 마셨던 날이 영영 다시 볼 수 없는 마지막 날임을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했을 텐데. 과제 핑계를 대지 말고 한 번이라도 더 자주 만났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후회만 떠올랐다. 그런 씁쓸한 기분이 표정으로 드러났던 걸까? 무심코 시선이 마주친 맞은편 승객은 기분 나쁘리만치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눈길을 거둘 생각 없어 보이는 당당함에 오히려 내가 먼저 시선을 피해버렸다. 왜 저렇게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거야? 혹시 또 두드러기가 올라왔나? 그렇대도 무슨 구경거리인 양 저렇게 대놓고 쳐다보는 건 실례인지도 모르나? 불쾌한 눈빛을 신경 쓰기 시작하자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왜 내가 죄인처럼 피해야 하지? 슬쩍 다시 확인해봐도 나를 향한 시선은 여전했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그 눈빛은 나를 꾸짖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건 내 탓이라는 양. 두드러기가 온몸으로 퍼지는지 가렵기까지 했다. 얼굴 한번 들지 못하고 도망치듯 집까지 뛰쳐왔다. 거울 속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두드러기 때문인지 뛰어온 탓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내 얼굴을 보자마자 떠오른 건 이상하게도 넋두리를 하던 친구네 아주머니였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누워있는 거야, 거기. 우리 딸이 왜 거기 있어야 하는데? 바로 취직됐다고 얼마나 좋아했었니? 다른 애들보다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더 유리한 거라고, 대학은 나중에라도 갈 수 있다고 엄마를 안심시키던 앤데... 그렇게 착한 애가 왜 거기 누워있어? 거길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우겨서라도 재수든 삼수든 시켜서 남들이랑 똑같이 대학 보냈어야 했는데, 꽃 같은 아이를 왜 벌써 데려가? 왜? 왜? 왜!’

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주머니는 그렇게 한탄하며 누군가를 탓했었다. 왜 지금 그 말이 꼭 나를 탓하는 소리로 떠오를까. 차가운 물로 얼굴을 식히고 마스크 팩을 붙인 채 소파 위에 누웠다. 대학 등록금을 미리 벌어놓는 셈 치면 된다며 너스레를 떨던 친구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대학 생활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을까? 대학에 붙었다면 취직하지도 않았을 테고, 취직하지 않았다면 연수를 받고 돌아오는 그 차 안에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만약 나 대신 대학에 붙었었다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물론 억측이다. 내가 떨어졌다고 친구가 대신 붙었을 거라 장담할 수도 없고, 그런데도 그 생각은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 대신에, 나 때문에, 어쩌면 혹시... 원혼.

아니, 나를 원망했을 리 없다. 나만 붙은 데에 미안한 기색을 비치면 오히려 놀리며 몰래 준비한 입학 축하 선물을 건네주던 친구였다. 꽁해 있으면 언제나 먼저 기분을 풀어주려 하고, 어떤 문제가 생겨도 긍정적으로 대처하던 밝은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그런 친구가 나를 원망했을까? 같은 대학을 가자고 섣부르게 약속한 걸? 하필 같은 과를 지원한 걸? 그래서 후회를 하고, 조금이라도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을까? 나 때문에 죽은 거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었을까? 그렇다면....

 

3

죄책감은 이상한 형태로 엄습해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신의 잘못이나 죄를 인지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 관련이 있어야 자신이 지은 죄라고 할 수 있을까?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 또한 자신의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따진다면 세상에 죄짓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달라붙게 되는 원혼도 한둘이 아닐 거다.

어쩌면 이런 죄책감이야말로 점쟁이가 노린 건지도 모른다. 뭐든 의심하게 만들고 불안함에 손을 벌벌 떨며 지갑을 열게끔. 점쟁이가 몰랐던 점은 내 친구는 절대 원귀가 될 성정이 아니라는 거다. 나에게 섭섭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을지는 몰라도 장난스럽게 털어버리는 뒤끝 없던 성격이었다. 그런 친구가 나에게 원한을 갖고 달라붙어 할퀴어댄다고? 아마 한동안 자신을 잊고 지낸 데에 벌 받는 거라고 고소해하며 놀리는 거라면 모를까.

지금 내 앞에서 목젖이 보일 만큼 고개를 젖히며 웃어대는 또 다른 친구처럼.

 

4

“넌 내 덕분에 결혼 잘한 줄 알아. 너한테 갈 불행까지 나한테 다 들러붙었을 테니까. 억울하다, 억울해. 애인 없는 것도 서러운데 원귀나 들러붙고 말야? 흑흑흑.”

토라진 척 투덜대봤자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아직 행복 가득한 친구의 눈에는 장난기 어린 질투로만 보이겠지만.

“사실대로 말해 봐. 너 없으면 죽고 못 산다는 남자라도 있었던 거 아냐? 짝사랑 하다못해 상사병까지 걸려 죽은 총각 귀신이 너한테 붙은 건지도 모르잖아?”

그러면서 여태까지 내가 상처 준 남자들을 잘 기억해보라며 옆구리를 찌른다.  

“흥, 너는 청혼 받아줬으니 총각 귀신 들러붙을 걱정 없다 이거지?”

나 또한 딱히 고민거리를 진지하게 늘어놓으며 우울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내 문제는 나만의 문제일 따름이다. 기혼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이제 막 발을 들인 친구에게 괜히 부정적인 감정을 전염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총각 귀신 걱정 없는 유부녀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다며 깔깔대며 커피를 마시려 동네 카페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런데 친구와 자주 들렀던 카페가 문이 닫혀 있었다.

“휴가 갔나? 설마 폐업한 건 아니겠지? 여기가 제일 맛있는데 아쉽다.”

하지만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이야기는 휴가가 아닌 일가족의 사망 사건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온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카페를 운영하던 세 가족이 하룻밤 사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아침에 출근한 알바생이 처음 발견하고 신고를 했다고 한다. 테이블 위에는 먹다 만 케이크가 놓여있었고, 사장 부부는 의자에 앉은 채 테이블 위로 엎드려 있었고,  외동아들은 계산대 안쪽 바닥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고 한다. 잠에 들기라도 한 듯이. 사인은 가스 누출로 인한 질식사라고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가족 동반자살이라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가스가 누출됐다면 케이크 촛불을 붙였다 끈 흔적이 남은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거기다 그곳에서 키우던 개는 가게 안에도, 집에도 보이질 않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부러 자살하기 전에 개만 밖으로 내보낸 게 아니겠냐며, 키우던 개는 불쌍하지만 저희 자식은 불쌍하지도 않았던 모양이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것을 지옥으로 같이 데리고 간 비정한 애미애비라며 욕을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며칠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관심도 딱 일주일 정도만 이어지다 금세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 가게에 갈 때마다 얌전히 개와 놀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인 부부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으며 세 가족은 행복하게만 보였다. 그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만약 사람들의 추측이 맞다면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거리에서는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리는 뉴스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내가 알게 모르게 주변에는 많은 죽음이 있었다. 어떤 죽음은 안타까웠고, 어떤 죽음은 자연스러웠지만, 어떤 죽음은 기이한 의문을 남겼다. 그중에 억울한 죽음들은 얼마나 될까? 얼마나 많은 원혼들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서 떠돌고 있을까? 그러다 보니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붙기도 하는 게 아닐까? 만약 나에게 진짜 원귀가 붙은 거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사람을 잘못 보고 들러붙은 걸 깨달으면 머지않아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갈 테니까. 만약 계속 들러붙어 있으려 한대도 무서워할 필요 없다. 보습 크림에 미끄러지는 원귀라면 무서울 것 없으니까.

 

5

무더웠던 한여름이 지나고 더위가 한풀 꺾이자 열감 때문에 일어나는 두드러기 걱정은 줄었지만 대신 건조해진 피부는 시도 때도 없이 가렵기 시작했다.

가방 속에는 종류별 보습제를 생존필수품으로 챙겨야 했다. 수시로 덧바르는 크림과 로션 덕분에 원귀도 달라붙지 못하는 모양인지 두드러기는 눈에 띄게 완화되었다. 이 정도에 미끄러 떨어져 나가는 원귀라면 맺힌 원한도 없겠지. 원귀도 못 되는 잡귀일지도 모른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원귀나 잡귀보다 무서운 건 따로 있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하고, 말을 나누고, 앞에선 웃다가 뒤에선 뒷담을 까고, 서로 저주하고 시기하며, 그리고 어떤 의도인지 뻔한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 말이다.

“벌써 피부가 그렇게 건조한 나이가 된 거야? 좋은 시절 다 갔네?”

라며 고맙지도 않은 내 피부와 시절 걱정을 해준다.

가방 속에는 보습제와 더불어 세정제 또한 필수적으로 들고 다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종일 빈정거리는 말투를 참고 견뎌야 하니까.

“방금 회의실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누구야? 문손잡이에 개미도 미끄러지겠다. 여러 사람이 쓰는 사무실인데 너무 여기저기 로션 자국 묻히고 다니는 거 아냐? 자기 몸이 소중한 만큼 에티켓도 신경 좀 써줘?”

라기도 하고,

“혼자 뭘 먹은 거야? 맛있는 건 나눠 먹자고. 아냐? 그럼 뭐가 이렇게 번들거려?“

라던가,

“점심시간에 사우나라도 다녀온 거야? 웬 화장품을 그렇게 발라?”

라는 따위로 다양하게 한 소리씩 비꼬며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지금 내 피부 상태가 어떻고, 두드러기가 저쩌고, 가려움증이 어쩌고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고, 열심히 설명한다고 해서 귀담아들을 사람들도 아니다. 차라리 원귀가 붙어서 생채기를 내는 거라고 말한다면 저 잔소리를 늘어놓는 입들을 닫을지도 모르겠지만. 보습제를 바를 때마다 세정제로 손바닥과 주변을 일일이 닦아내는 것도 일이었다.

설마하니 화장품 기름기로 업무 평가에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괜히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따라 유난히 상사에게 쪼이고 있는 타 부서 직원의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는 걸 보면. 잰걸음으로 사무실 밖을 빠져나가는 직원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안타깝긴 하지만 내 코가 석 자다.

 

6

히스테릭 환자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다. 회사에는 일하러 나온 거다. 한 달 동안 열심히 내 할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 가면 그만이다. 그러니 화를 내고, 상처받고, 동정하며 감정적으로 굴어봤자 나에게 이득 될 건 없다.

그런데 왜 자꾸 같은 팀원의 사소한 실수가 눈에 들어오는지, 회사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타 부서 직원의 뒷모습이 눈에 띄는지,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시선이 방금 전까지 나에게 머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일부러 나를 자극해 두드러기를 유발하려는 것만 같다는 억측이 들기만 하는 건지. 하지만 저들은 원귀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들러붙길 바라기는커녕 일분일초라도 빨리 회사 사람들에게서 떨어지도록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

그럴 때는 피부병도 도움이 된다. 귀찮은 회식 후 술자리도 약 핑계를 대고 일찌감치 빠져나와 따뜻한 욕조 속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으니까.

하루종일 서류 더미에 치여 있었더니 욕실 타일의 무늬마저 각종 문양과 도표들처럼 보인다. 구불구불한 선은 벽을 타고 욕조 안으로까지 이어져 내 몸에 솟아오른 두드러기와 함께 또 다른 문양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미지근한 욕조 물속에 누워있으면 두드러기가 나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데, 왜 회사에서는 조금만 가렵거나 피부가 붉어져도 짜증이 솟구치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팀원에게 잔소리를 하느라 얼굴로 점점 열이 오르는 걸 느낄 때, 내 지적에 시무룩해진 팀원의 상기된 얼굴을 마주해야 할 때, 그리고 붉어진 그 얼굴이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타 부서 직원의 얼굴과 겹쳐 보이는 바람에 소름이 돋았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피가 날 정도로 긁어대다 뒤늦게 알아채고 재빨리 화장실로 가 망가진 피부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냥 잘못한 걸 지적한 것뿐이야. 저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했었잖아? 그렇게 화내지도 않았어. 그 정도 짜증은 누구나 내. 그런데 내가 언성을 좀 높였나? 다른 사람들한테도 들렸나? 그래서 나를 미워할까? 원망할까? 나를....”

도망치듯 들어간 회사 화장실 세면대 위로 쏟아지는 물과 함께 내 죄책감도 함께 씻겨 내려가길 바라며 중얼거렸다.

“내 잘못이 아냐. 내 잘못이 아냐. 내 잘못이 아냐.”

졸음이 쏟아지는 욕조 안에서도 잠꼬대처럼, 주문처럼 되뇌었다.

“내 잘못이 아냐. 내 잘못이 아냐. 내 잘못이....”

‘그럼 누구 잘못이지?’

분명 누군가 그렇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깜빡 잠이 들었었나? 잠결에 꿈이라도 꿨나? 뿌연 김이 서린 욕실 안에는 분명 나 혼자뿐이다. 아니, 물 아래에 무언가 있다. 원망스런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얼굴 하나가. 깜짝 놀라 욕조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빈 욕조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속이 아니다. 내 배에 울퉁불퉁한 두드러기가 올라와 있었다. 둥그스름하게 부어오른 살을 얼굴로 착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정말 착각일 뿐일까?

 

7

원귀는 죽은 사람만 될 수 있겠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원망도 크게 자란다면 그 부정적인 기운이 원혼이 되어 원망하는 대상에게 들러붙을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점심시간 동안 옥상에서 내내 시간을 보내다 내려오는 직원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다른 부서 직원까지 내가 왜 신경 써야 하지? 원한을 품었대도 나와는 관련 없는 원한일 텐데? 내가 맺히게 만든 원한도 아닌데? 하지만 그 원한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끔 만들어 버린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이 오직 나뿐이었음에도 방관자처럼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나는 자살방조자가 되는 것일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을까?

원귀가 달라붙는 것도 무섭지만 범죄자가 되는 것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신경질을 부린 우리 팀원에 대한 보상심리로 다른 부서 직원을 도와주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원귀니, 자살방조니 따위 상상으로 스스로 공포심을 키우며 점점 미쳐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또다시 옥상으로 올라가는 직원의 뒤를 쫓아갔다. 정작 자신을 불러세운 나를 쳐다보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얼굴을 마주하자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뜬금없고 당황스러워 갈피를 잡지 못 하는 말만 횡설수설 튀어나왔다. 당황스러움에 말은 자꾸만 꼬여 갔고, 말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의 황당한 표정은 점점 불쾌함으로 바뀌어 갔다.  주제넘은 참견임을 깨달았을 때엔 이미 원귀나 범죄자가 문제가 아니었다.

“저기요.”

회사 내에서 오지랖 쩔고 재수 없는 인간으로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겠지.

“괜찮아요?”

아니면 미친 인간 취급받거나.

“그쪽 얼굴....”

하지만 상대방의 불편해 보이는 얼굴은 내 안색을 살피느라 찡그린 표정 때문이었다.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우둘투둘 기분 나쁘게 도드라진 살결이 열과 함께 느껴졌다. 허겁지겁 화장실로 뛰어가 확인한 거울 속 얼굴은 내 얼굴 같지 않았다. 사람의 얼굴 같지 않았다.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목과 팔에까지 돋아난 두드러기는 옷을 걷어 올려 확인해 보지 않아도 전신의 상태가 어떠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피부를 진정시키려 미스트를 얼굴에 뿌렸다. 그런데 갑자기 피비린내가 났다. 설마 나에게서? 다시 한번 미스트를 뿌려보자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이 났다. 냄새를 없애려 이번에는 얼굴을 씻어냈다. 물을 뒤집어쓴 채 몸 이곳저곳을 킁킁대고 있는 내 모습이 어떻게 비췄을지는 거울 속 사람들의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특히 그 표정들 중에서 유난히 나를 주시하고 있던 얼굴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에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떨구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감상하듯 즐거움을 만면에 띄우고 있었다.

요새 스트레스를 많이 받냐고 묻는 상사 앞에서 자연스레 시선이 떨궈지는 건 나라고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면 무슨 문제인지 물을 테고, 무슨 문제인지 말한다면 상사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이 떠오를까? 흥미롭거나 즐겁거나 긍정적인 표정은 아닐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나 또한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다를 바 없었다.

 

8

아무 문제 없는 척하려면 회식 자리에서 하하 호호 실없이 웃으며 어떤 말에든 맞장구를 쳐주는 게 상책이다.

자극적인 음식은 자제한다고 하면, 왜? 무슨 문제 있어? 다이어트해? 라는 귀찮은 질문 세례를 할 게 뻔하니 가라지 말고 먹어야 하고, 복용하는 약 때문에 술은 사양한다고 하면, 무슨 약? 어디 아파? 설마 다이어트약? 라며 걱정해주는 척 비꼬아 댈 테니 술도 빼지 말고 넙죽넙죽 받아 마셔야 한다.

원귀는 왜 저런 인간들한테는 안 붙는 걸까? 누구보다 원귀가 붙어야 될 사람들인데? 아니면 혼자 밥 못 먹어 굶어 죽은 원귀, 술독에 빠져 죽은 원귀가 이미 들러붙어서 저렇게 회식을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그러면 저희들끼리나 신나게 먹고 퍼마시면 될 걸,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사람들까지 붙잡아 두는 건 무슨 심보인지. 더부룩한 배와 어지러운 머리를 휘청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나에게 붙은 원귀는 내가 원귀가 원하는 걸 하지 않아서 피부를 망가뜨리는 건 아닐까, 싶은.

“재수 없는 귀신이....”

편의점으로 들어갔던 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손에 들고나왔던 단팥빵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빵을 입속으로 욱여넣었던 기억도 조각조각 떠오른다.

“난 잘못한 거 없어... 쩝쩝쩝... 빚진 거 없어... 쩝쩝쩝... 귀신 따위 떨어져 나가라고... 쩝쩝쩝... 귀신은 팥 싫어하니까... 쩝쩝쩝....”

바보같이 그런 이유 때문에 꾸역꾸역 빵을 삼키며 걷고 있었다. 우유까지 살 생각은 못 했는지 목이 막혀 가슴을 두드리며.

“빵은 거기 카페 빵이 맛있었는데... 쩝쩝쩝....”

왜 갑자기 그 가게가 떠올랐을까?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개 한 마리가 내 앞에서 버티고 서있어서? 그 개가 낯익어 보였던 이유는 그 카페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개는 정말 그 카페의 개였을까?

“너도 먹고 싶어?”

손에 든 빵을 던져 주었지만 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길거리 생활로 사람들과 살았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언제나 카페 안에서 얌전히 손님들의 이쁨을 받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완전한 떠돌이 개의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가족들의 기억이 개에게 남아있기 때문일까? 세 가족의 최후의 순간까지도? 혹시 세 가족의 원혼까지도? 희번덕거리는 눈빛은 단순히 길바닥 생활로 인해 사납게 변해버린 눈빛만은 아닌 듯했다.

있는 힘을 다해 집까지 뛰어왔다. 개가 따라붙는지 뒤돌아 확인할 정신도 없었다. 부리나케 집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숨을 돌리는데, 이번에는 개에게 붙은 원귀가 나에게 옮겨붙은 건 아닌가 걱정이 들어 온몸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거울 속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술 때문인지, 뛰어온 탓인지, 두드러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뭣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부엌에서 소금 통을 꺼내 몸 이곳저곳에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소금을 몸에다 바르고 문질러댔다. 혼자 사는 게 이럴 때에는 다행이었다. 만약 한밤중에 미친 사람처럼 소금을 제 몸에 문지르고 있는 광경을 가족에게 들켰다면 원귀를 쫓아내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원귀 자체로 보였을 테니까.

“내 몸을 차지하게 놔둘 줄 알아? 우욱....”

갑작스런 구역질에 화장실로 달려갔던 것도 기억난다. 하지만 언제 잠들었는지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고, 거울에 비친 내 몰골에 하마터면 원귀인 줄 알고 까무러칠 뻔했다. 온 동네방네 내가 원귀가 되었다고 외치고 다닐 기력이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걸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식중독이라는 얘기를 들은 후에야 원귀에게 아직 몸을 뺏긴 건 아니라는 어이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어이없음은 회식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 식중독에 걸린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으며 가방 속 가득 찬 단팥빵 봉지 더미를 발견할 때까지 이어졌다.

병가를 내고 한나절을 누워있다가 겨우 몸을 추슬러 어젯밤의 흔적을 치우고 있자니 이상하게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 일은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갈 거다. 내 일을 맡게 될 팀원에게는 오히려 빚을 갚은 느낌이었다. 쓸데없이 예민하게 구는 사람이 사라져 줬으니. 그러니 이제는 집에서 쉬는 동안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 된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귀 따위는 없다. 모든 걸 원귀가 들러붙은 탓으로 돌리는 나약한 나 자신만 있을 뿐이다. 모든 문제를 원귀로 설명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9

우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만 들 게 뻔하니 아무 생각 없이 휴가를 보내고 싶었다. 이제는 창고마냥 쓰이고 있는 예전 내 방에는 버린 줄 알았던 물건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학창 시절 노트와 졸업앨범을 뒤적이며 옛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그 시절에도 고민은 많았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유치하고 귀여운 고민거리들이다. 친구와의 다툼, 학교 성적, 외모 콤플렉스, 부모님과의 마찰,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런 고민을 했던 시절이 이제는 부럽기만 하다. 졸업 앨범 속 아이들도 지금의 나처럼 어이없고 황당한 고민거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어쩌면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이 얼굴들 중에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다 죽은 아이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대도 어쩔 텐가? 다짜고짜 연락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나에게 원한을 품었던 적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아이들의 원망이래 봤자 원귀가 될 정도의 원한과는 비교할 수 없게 사소했을 거다. 나만 해도 사진 속 얼굴들이 전부 그리운 건 아니다. 꼴 보기 싫은 녀석들도 있고, 친구가 말한 상사병을 앓았을 만한 놈은커녕 내가 원혼이 되어 저주를 내리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할 무성의했던 남자친구들도 몇 명 있다. 양다리를 걸칠 정도의 정신머리라면 뻔뻔하게 잘살고 있을 테니 원귀가 되었을 걱정은 할 필요도 없다.

원귀니, 원한이니 그게 뭔지도 몰랐을 아주 어린 시절로 넘어가자. 용케 스케치북도 남아있었다. 몇 살 때 그린 그림인지 까마득할 정도로 형편없는 그림 실력인 걸 보면 아주 어린 시절 때인 모양이다. 누가 나고, 누가 친구들이고, 누가 가족들인지 구분되진 않지만 모두 행복해 보이는 건 똑같다. 모두 웃는 얼굴이다. 아니, 딱 한 사람은 웃고 있지 않다. 화가 난 건지 울고 있는 건지 잔뜩 찡그린 얼굴이다. 설마 이게 나인가? 다음 장에서는 똑같이 불행한 얼굴로 다른 아이 옆에 바짝 붙어있다. 친구와 싸운 후 그린 그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저 얼굴만 찡그리고 있는 거지? 친구들과 노는 그림에서도, 케이크 앞에서도, 교실 안에서도, 어떤 그림에서든 똑같은 표정으로 가장 친한 친구인 듯한 아이 옆에 붙어있다.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가 맞을까? 저렇게 붙어 다닐 정도로 친했던 아이 중에 저런 얼굴을 한 아이가 있었던가? 나라고 생각해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나도, 친구도 아니라면 저건 뭐지?

 

10

그림의 선들은 살아 움직이듯 구불구불 스케치북 밖으로 튀어나와 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선들은 더욱 옥죄어 왔다. 얼굴까지 휘감고 올라오는 선이 사실은 머리카락임을 깨닫자 머리카락 사이로 웃고 있는 원귀의 얼굴이 드러났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미세하게 올라와 있는 두드러기 자국은 단순한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부추겼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침부터 베란다에서 분주해 보이는 엄마에게 조심스레 스케치북을 들이밀며 물어보았다. 혹시 어렸을 적 내 친구들 중에 이렇게 생긴 아이가 있었냐고, 아니면 자신이 이렇게 화가 난 채로 다녔던 때가 있었냐고.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엄마는 그림보다 그 시절 스케치북을 아직 가지고 있는 데에 더 놀라워했다.

“화난 게 아니라 울고 있는 거 아냐? 너 꼭 울 때면 입꼬리가 그렇게 내려가잖아?”

역시나 나일까? 하지만 왜 하필 이런 모습을 그린 거지? 왜 울고 있었던 거지?

“아팠을 때였나 보지. 너 옛날에 볼거리 했던 거 기억 안 나?”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볼거리로 한창 고생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생은 나만 한 게 아니었다. 밤낮없이 울어대고 칭얼대는 나 때문에 진이란 진은 다 빠졌었다고 몸서리를 치며 덧붙이기를, 뭘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나를 달래려 자꾸 울면 귀신이 볼거리를 안 가져갈 거라고 했다 한다. 귀신을 속여 볼거리가 좋은 거라고, 우리 딸 볼거리 사가라고 해야 하는데 이렇게 울고 있으면 귀신도 속지 않을 거라고, 얌전히 참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귀신이 가져가서 말끔히 나을 거라고. 엄마의 말이 정말 효능이 있었는지 볼거리는 금세 나았지만 같은 반 아이들에게 볼거리가 유행하기 시작해 무척 미안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어렴풋하게 기억이 났다. 밤마다 이불을 덮어쓰고 귀신이 찾아올까 봐 무서워하면서도 볼거리를 가지러 찾아오라고 기다렸던 날들이. 그때 속은 걸 알고 귀신이 나에게 붙은 걸까? 볼거리를 다시 가져가라고? 하지만 몸에 나는 두드러기는 단순한 볼거리 정도가 아니다. 혹시 볼거리를 앓은 아이 중에 죽은 아이는 없을까? 내 물음에 엄마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눈빛으로 면박만 줄 뿐이다.  

“계속 쓰잘데기없는 소리만 할 거면 놀지 말고 일이나 거들어.”

그러면서 언제 또 사다 놓은 건지 놓을 자리도 부족한 화분들을 분갈이하느라 흙바닥이 된 베란다에 앉아 저것 가져와라, 이것 내다놔라, 손짓하기 바쁘다.

“사기는? 공짜로 주운 거지? 예쁘지 않아? 얼마 전에 이사 나간 집에서 놔두고 갔길래 챙겨왔지. 좀 시들긴 했어도 이렇게 집을 바꿔주면 금세 푸릇푸릇해지잖아? 너도 하나 줄까? 집에 놔둬.”

흙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뿌리와 길게 늘어진 잎줄기를 보자 간밤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꿈속 머리카락의 정체가 그 식물이라도 된다는 양 나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키우다 버리고 간 건지도 모르는 걸 집에 가져오면 어떡하냐고, 엄마는 옛날 사람이 부정 타는 것도 모르냐고 짜증을 부렸다. 어이없어하는 엄마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납득시킬 새가 없었다. 화분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11

막상 화분을 들고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화분은 어디다 버려야 하지? 식물은 아무 곳에나 심어도 되나? 그날따라 동네 거리는 유난히 깨끗해 몰래 버릴 곳도 마땅치 않았다. 오가는 주민들의 눈은 내 손에 들린 화분을 주시하는 것만 같았고, 이 동네에 이렇게 개와 고양이가 많은지도 처음 알았다. 원귀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에도 붙을까? 아니면 버림받은 기억 때문에 스스로 원귀가 돼버리는 걸까? 그래서 다시는 버리지 못하게 들러붙을 새 주인을 물색하느라 저렇게 어슬렁거리는 걸까? 어서 빨리 화분을 처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담벼락 너머 개 짖는 소리에 놀라 빠져나오고, 보는 눈이 없는 자리를 탐색하다 눈이 마주친 고양이의 사나운 눈빛에 멀찍이 돌아가며 시간만 지체되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만 걸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무의식중에 기억 속에 남아있던 길로 이끌렸던지 낯익은 이웃 동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취를 하기 전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까지만 해도 수시로 지나다니던 길이었다. 이른 아침에는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다니고, 늦은 저녁에는 학원을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길. 골목에 늘어선 주택들의 풍경은 여전했다. 단지 자주 갔던 분식집은 사라져 아쉬웠다. 몇몇 가게는 상호가 바뀌었고, 어떤 곳은 아예 빈 자리로 남아있었다. 여긴 어떤 가게였지? 기억을 더듬어보다 잊고 있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늦은 밤 여느 때처럼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어둡고 인적 드문 골목길을 평소와는 달리 발걸음을 재촉하며 걷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집까지 뛰어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뒤에서 따라붙는 발소리 또한 함께 쫓아와 나를 낚아챌 것만 같아 두려웠다. 심장 박동 소리와 발소리가 구분되지 않았다. 집까지 남은 거리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까지는 잡히지 않고 뛰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숨을 헐떡이며 편의점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곧이어 남자 한 명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급하게 물건을 찾는 척 점원에게 말을 붙이는 와중에도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일부러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얼굴을 확인하고 눈을 마주치면 큰일 날 것만 같았다. 내가 편의점 밖으로 나가길 기다리고 있는 걸까? 집에 전화를 해서 가족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해야 할까? 그런 고민 중에 또 다른 손님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물건을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가는 여자 손님의 뒤를 따라 그 남자도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밤의 어둠 속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편의점 안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편의점 직원이 눈치를 줄 때까지 어둠 속을 살펴보다 부리나케 집까지 뛰어갔다.

그날 밤 누군가가 정말 내 뒤를 쫓아왔는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온 그 남자가 내 뒤를 따라오던 이와 같은 사람인지, 여자 손님의 뒤를 이어 나간 남자는 정말 여자의 뒤를 따라간 건지, 그리고 며칠 뒤 파다하게 소문이 퍼진 살인 사건의 피해자와 범인이 내가 본 그 두 사람인 건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난도질 된 채 발견되었다느니, 오히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느니 하는 말들 중 무엇이 진실인지도.

그래서 두려웠다. 목격자일지 모를 나를 찾아 경찰들이 오면 어떡하지? 혹시 범인이 찾아온다면? 피해자의 가족들은? 한동안 두려움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나 때문에 죽은 걸까?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신고하지 않아서? 원래라면 내가 당했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이 대신 당한 걸까? 그래서 나를 의심할까? 비난할까? 원망할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하는 익숙한 얼굴들에서도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이제는 텅 빈 예전 편의점 자리의 통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낯설어 보였다. 왜 저렇게 어둡고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죄책감 때문에? 반대로 억울해서? 두드러기라도 올라왔나? 아니면 저건 내 얼굴이 아닌가?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확인하기 두려웠다. 하지만 내 얼굴이 아니래도 누구의 얼굴인지 어떻게 알지? 나는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원귀인 줄 알고 내가 미안해 해야 하지? 원한을 풀어줄 방도를 어떻게 알지?

그런다고 원귀가 내 사정을 봐줄 리 없다. 유리창 속 내 모습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려고? 두려워도 마주쳐야 한다. 확인해야만 한다. 어떤 얼굴일지, 누구일지.

“왈! 왈! 왈!”

하지만 유리창을 통해 확인한 얼굴은 등 뒤에서 사납게 짖고 있는 개일 뿐이었다. 일가족의 원혼이 붙은 개가 또다시 나를 찾아온 걸까? 그 가족의 죽음과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 가게엔 손님으로 간 게 전부다. 나는 아무 잘못 없어.

두려움에 달아났던 게 왜 내 잘못이지?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팠던 것도 아닌데? 내 할 일을 한 것뿐인데? 타인들의 불행까지 어떻게 안다고? 그렇다면 친구의 불행을 내가 떠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아니야, 아냐!

나를 탓하듯 짖어대는 개를 향해 화분을 던져버리곤 집으로 도망쳤다.

 

12

“여보세요? 저기... 저번에 친구랑 궁합 보러 갔었던... 아뇨, 제 궁합이 아니라 결혼할 친구 궁합을 보러 간 거였는데... 네? 아뇨, 아뇨. 제 궁합을 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저번에 저한테 붙어있다는 그거 말인데요....”

어떤 말을 들을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는 않겠지. 한을 풀어줘야 된다느니, 굿을 해야 된다느니 따위로 말이 흐를 건 뻔했다. 하지만 화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화분이라고 정확히 언급한 건 아니었다.

“어디서 뿌리 내렸는지 모를 것을 함부로 집 안에 들이면 동티나기 십상이지.”

그냥 찔러본 말일지도 모른다. 어느 집이나 중고 물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잖아?

“차라리 동티 정도면 다행이지. 지금 들러붙은 건 푸닥거리로 쫓아낼 수 있는 잡귀가 아냐. 늦을수록 더 떼내기 힘들어.”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어디서 붙은 잡귀냐고, 집 안 물건을 다 내다 버리면 되냐고. 할 수만 있다면 길거리에 집어 던졌던 깨진 화분을 도로 주워와 조각들을 이어붙이고 싶었다.

“본인도 알잖아? 단순히 물건에 붙은 잡귀가 아냐.”

나야말로 알고 싶었다. 도대체 나한테 어떤 원한을 가졌길래 붙어있는 건지, 도대체 누구인 건지 정체를 알고 싶었다.

“들러붙은 정도가 아니지. 이미 눈치챘잖아? 아예 하나가 되려고 해.”

그러면서도 확정적으로 들려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생전 원귀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몇 살인지, 성별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꽁꽁 숨었다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아.”

그게 아니라 거짓말이 탄로 날까 봐 어느 한 인물로 특정해 말할 수 없는 거겠지. 조급해하는 내 심정을 이용하려고.

“내 말 들어. 해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13

언제까지고 부모님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회사도 다시 출근해야 했고, 내 생활을 되찾아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점쟁이의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점쟁이는 알고 있었다.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걸.

전화를 걸지 말았어야 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사기꾼이라고, 거짓말에 속을 것 같냐고, 다시는 전화를 걸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는 막상 두드러기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하면 사진을 찍어 폰으로 전송해 두드러기 모양이 뭔가를 의미하는 게 아닌지 초조하게 묻기 바빴다.

“무슨 글자 같은데, 사진으로만 봐서는 몰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야지.”

글자라면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걸까? 어쩌면 내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뭘 원하는 거지? 원하는 바를 들어주면 내 몸에서 빠져 나가줄까? 가려운 통증을 참으며 문양이 완성되기를 기다려 보았지만 도무지 해석할 수 없었다.

“한자일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더 오래 묵은 거라는 얘긴데, 그만큼 원한도 깊을 거야. 서둘러야 해. 시간이 많지 않아.”

점쟁이의 말이 맞았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는 나를 향해 원망이 드리운 얼굴을 밤낮없이 내 몸에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왜 나를 원망하는 건지 알아내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14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조용히 찾아오라고 일렀다. 입 밖으로 내는 것조차 원귀에게 들킬지 모르니 눈치채지 못하게끔 일사천리로 진행해야 한다고. 굿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내게 아무것도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시켰다. 다만 착수금만 잊지 말라며.

굿당 안은 조용하고 추웠다. 숨 막히는 향냄새를 맡으며 멀뚱히 앉아 있자니 몸은 제멋대로 으슬으슬 떨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점쟁이는 나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혼자 굿판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조용히 치러야 하니 조수나 다른 사람은 없는 걸까? 차려놓은 음식을 보면 굳이 많은 사람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긴 하다.

TV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귀청 떨어지는 징 소리나 살아있는 동물의 피를 예상한 것과 달리 제의에 쓰일 물건들은 평범했다. 평범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단출해 굳이 여기서 굿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의심이 들었다.

그러자 그런 내 의심의 눈초리조차 부정하다고 나무라듯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원귀가 옮겨붙을지도 모를 잡다한 것들은 없을수록 좋아.”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경을 외는 점쟁이의 뒤에서 두 손바닥을 열심히 비비면서도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싶은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역시 오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를 해봤자 이미 돈을 지불한 뒤다. 돈을 낸 만큼 손을 열심히 비벼야 한다. 저 점쟁이가 사이비 선무당이 아닌 효험 있는 무당이기만을 바라는 만큼 비벼야 한다.

하지만 그 행위가 체온을 올린 탓인지 몸 이곳저곳이 가려워 오기 시작했다. 열심히 팔을 놀릴수록 더 가려웠다. 마주 비비고 있는 두 손을 풀어 가려운 부위를 긁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몸은 배배 꼬이기만 했다. 평소에는 잘도 참으면서 왜 그때는 그토록 가려웠는지. 경 외기에 여념 없는 점쟁이의 눈을 피해 재빨리 가려운 부분을 긁고 다시 손바닥을 마주 비비기를 반복했다. 집중력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런데 내가 뭘 빌고 있었지? 원귀가 떨어져 나가라고? 두드러기가 나지 말라고? 가려움이 사라지라고? 하지만 가려움은 시원하게 긁어서 없애면 그만이잖아? 이렇게!

“악!”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재빨리 등을 긁는다는 게 손톱으로 할퀴고 만 것이다.

“누구야?”

하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뒤돌아보는 점쟁이에게 등을 긁다 실수로 할퀸 거라고 말하기 곤란했다.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을 묻는 건가? 아니면 설마 원귀의?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향해 점쟁이는 갑자기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대답해.”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을 내뱉었다.

“거짓말.”

점쟁이는 다시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점점 심해지는 회초리질에 가만히 맞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뭇가지를 낚아채 구석으로 피하자 점쟁이는 씩씩거리며 소릴 질렀다.

“네 정체를 밝혀!”

어이가 없었다. 원귀의 정체를 알고 싶은 건 난데, 왜 나한테 호통을 치는 거지? 이미 나를 원귀 취급이라도 하는 것처럼?

“네 이름이 무어냐?”

또다시 내 이름을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일 테고, 그렇다고 아무 소리 않고 있으면 회초리 세례가 떨어질 테니 나는 나뭇가지만 꼭 붙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점쟁이의 손에는 이미 커다란 부채가 들려있었다. 바람이 일 정도로 휘두르는 부채의 기세에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부채 세례가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제는 간지러움이 문제가 아니었다. 쓰라림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니, 유일하게 쓰라리지 않는 부위도 있었다. 잔뜩 웅크린 채 드러난 발바닥으로 부챗살이 아슬아슬 스쳤다. 그러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소리는 고통의 신음 소리가 아니었다.

“아하하하... 흐흡....”

갑작스런 웃음소리에 점쟁이는 놀란 눈치였다. 온몸을 장악한 두드러기가 유일하게 나지 않는 부위는 발바닥이었다. 만약 발바닥에도 두드러기가 났다면 간지러움에 먼저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만큼 나는 발바닥이 간지러운 걸 잘 참지 못하는 편이었다.

“보통내기가 아니야.”

점쟁이는 다시 부채를 휘둘렀고, 하필 또 발바닥을 스치는 부챗살에 나는 이리저리 몸을 꿈틀거렸다.

“으흐흐흐흑... 크크크....”

그 모습이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던지 점쟁이는 입을 떡 벌린 채 내려다보았다. 간지러움이 가시자 그제야 무안해진 나는 여전히 웅크린 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 비손을 계속해야 하나? 또 이름을 물으면 어떡하지?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방안을 살펴보는데, 점쟁이가 보이지 않았다. 부채보다 더 강력한 물건을 찾으러 간 걸까? 도망치려면 지금이 기회다. 욱신거리는 몸을 가누며 살금살금 밖으로 나오다 까무러칠 뻔했다.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딜 가?”

몇 발자국 도망치지도 못하고 잡힌 점쟁이의 손에는 커다란 칼이 쥐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칼을 휘두를 것 같은 공포에 두 팔로 얼굴을 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점쟁이는 무서운 기세로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뭇가지를 뺏겼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절대 내 팔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그러다 갑자기 소매를 들추더니 팔을 이리저리 꺾으며 훑어보고 코를 가져다 킁킁대기까지 했다. 원귀에겐 냄새라도 나는 걸까?

“어디서 거짓부렁이야?”

또다시 정색을 하며 거짓말쟁이로 몬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 이름은...

“두드러기 난 척 속이려고 그려놓은 걸 모를 줄 알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두드러기가 난 건 정말이다. 어떤 문양이나 글자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점쟁이 때문에 스스로 알아내려고 부기가 가라앉기 전에 잊지 않으려 펜으로 표시를 해놓은 것뿐이다. 하지만 점쟁이는 알아보기 편하게 그려놓은 문양을 해석해주려 하기는커녕 미리 받았던 돈 봉투를 도로 가져와 나에게 던지며 썩 꺼지라고 말했다.

“어딜 무당을 갖고 놀려는 수작이야? 네 년한테 원귀가 붙은 것처럼 보였던 건 그런 악독한 마음가짐 때문이 아니면 뭐겠어? 네 년 자체가 원귀나 다를 바가 없지!”

나를 쫓아내기가 무섭게 등 뒤로 소금을 뿌리고 문을 걸어 잠그는 점집 앞에서 얼떨떨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15

어이없게도 점점 더 날이 추워지자 두드러기는 거의 나지 않았다. 두드러기가 줄고 나니 원귀와 죄책감에 시달렸던 나날이 모두 꿈 같이 느껴졌다.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빠르게 흘러갔고, 한여름 밤의 악몽 같은 일들도 거의 잊혀갔다. 생활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물건을 제대로 치우고 버리지 않는 게으름 또한 예전과 변함없이. 김장김치를 가져다주려 집에 들렀다 정신 사나운 집안 꼴에 혀를 차며 주말 아침 댓바람부터 쏟아내는 엄마의 잔소리 또한 변함없이. 빨래는 왜 이렇게 쌓아놓았냐, 재활용은 제때 버려라, 책상 위 꼬라지 봐라, 정리 좀 하고 살아라, 낙서해놓은 종이는 뭐가 이리 많냐, 그런데 이 사람은 아는 사람이니? 라는 질문까지 속사포로 퍼부으며.

알아볼 수 없는 낙서로 가득 찬 종이를 들어 보이는 엄마가 뭘 묻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 이름 말이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꼬부랑글씨는 언뜻 사람 이름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마에게는 거래처 사람이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이제 잊고 싶은 문양이니까. 하지만 엄마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출산일을 앞두고 친정에서 지내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동네에는 또 다른 임신부도 있었는데,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애아버지가 누구인지 입을 닫은 사생아를 배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타지에서 생활하다 그네의 부모 집으로 갑자기 내려온 뒤로 배가 점점 불러왔고, 그동안 애 아빠로 보이는 이는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그래서 아빠가 친정에 들렀을 때 그네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괜히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출산이 임박하여 진통이 시작되자 엄마는 급하게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 연락을 받고 아빠가 도착할 때까지 혼자서 출산 준비를 해야만 했다. 곧 병원으로 가겠다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무사히 출산을 하고 몸조리를 하는 동안에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아빠를 통해서만 말을 주고받을 뿐, 새로 태어난 손주와 수고했을 딸을 보려 병원으로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다. 아빠는 장인장모님에게 일이 생긴 건 아니라며 안심을 시켰지만 퇴원 후에도 친정에 들르지 않고 도망치듯 살림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엄마는 섭섭함과 동시에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갓난아기를 키우는 데에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느라 대체 친정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우선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출생신고 직전 연락이 온 외할머니의 첫마디는 새로 바꿔야 될 내 이름에 관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황당했다. 잘 쓰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왜 바꾸라고 하는 건지.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엄마가 나를 출산하던 날 동네에서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리를 건너던 동네 주민이 개울에 사람이 빠진 걸 발견한 것이다. 바로 소문 속 임신부였다. 발견되었을 때에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딸이 해산을 하는 날에 또 다른 태아는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아이 엄마와 함께 숨을 거뒀으니 불길한 기분이 드는 외조부모님들은 병원으로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다 죽은 이의 임신을 두고 말들을 떠들어댔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들의 죽음 앞에서 또 다른 뒷말을 늘어놓는 내용이 가히 흉흉하여 그런 말들을 귀에 담고 딸과 손주를 보러 올 수 없었다고도 한다. 어른 무릎 높이의 물속에서 어떻게 익사한 걸까? 그 얕은 수심에서 아무리 임신부라도 어떻게 빠져 죽은 걸까, 다리를 건너다 갑자기 시작된 진통에 발을 헛디뎌 빠져 죽은 게 아닐까,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찰 임신부가 집에서 그렇게 먼 곳까지 왜 갔었던 걸까, 자신의 신세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닐까, 혹시 누굴 만난 게 아닐까, 라고 동정을 하는 건지, 단정을 짓는 건지, 궁금해하는 건지, 의심을 하는 건지 모를 말들이 장례식장이 떠나가라 울부짖는 곡소리 사이사이에서 오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네의 모친은 뒷말을 해대는 이들더러 들으라는 양 가슴을 치며 외쳤다고 한다. 제 딸 아이는 절대 나쁜 마음을 먹었을 리 없다고, 버젓이 다니고 있는 직장도 있고 자기 명의 집도 있는데 아이 아빠 없는 게 뭐에 흠이라고 한이 있었겠느냐고, 아이 이름까지 지어놓았었다고, 매일 아이 이름을 불러주며 얼마나 애지중지하게 열 달 동안 배고 있었는지 아냐고, 아까운 내 새끼들 어떡하냐고,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억울해하며 통곡했다고 한다. 딸과 태어나지 못한 손주의 이름을 부르며. 바로 종이에 적혀있는 이름과 똑같은, 그리고 원래 내 이름으로 짓기로 결정했었고 한동안 그 이름으로 불렸던 내 첫 이름과도 똑같은.

그래서 그동안 여러 군데서 가장 무탈하고 가족 사주에 부딪히지 않는 이름을 받으러 다니느라 애를 썼다며 다짜고짜 새로 지은 이름을 들이미는 외할머니 때문에 엄마는 난처했다고 한다.

하필 같은 날 생사가 갈린 두 아이의 이름이 같았던 건 우연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죽은 손주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던 그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메아리쳐 절대 당신들의 손녀를 그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나였다. 아직 갓난아기일 뿐이었지만 이미 첫 이름에 익숙해진 나는 언제나 제 이름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방긋방긋 웃으며 엄마아빠의 귀여운 첫째 딸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름을 잃어버렸다. 엄마아빠는 다른 아이를 부르는 것 같이 바뀐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기 시작하니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처음에는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바뀐 이름을 대하는 내 태도는 단순히 자신의 이름에 애정을 가진 어린아이가 이름을 뺏기지 않으려 부리는 고집치고는 아주 극성이었다고 한다. 바뀐 이름으로 부르면 짜증을 부리는 건 기본이고 아예 못 들은 척하거나, 어떨 땐 첫 이름으로 불러주기 전까지 숨이 넘어가게 울어댔다고도 한다. 그나마 새 인형에다 첫 이름을 따 지어준 뒤로는 진정이 되어 애착 인형으로 언제나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인형이 늘어나고 낡은 인형들은 가지고 놀지 않게 되면서 첫 이름이 붙여진 애착인형 또한 자연스레 뒷자리로 밀리고 이름에 대한 고집도, 기억조차 사라졌다고 한다.

“왜 한 번도 얘기 안 해줬냐고? 좋은 일로 엮인 이야기도 아니고, 남의 불행을 떠벌리는 것 같아서 그냥 들려줄 생각 못 했던 거지. 거기다 니네 외할머니가 얼마나 그 이름 입에도 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 줄 알아? 아마 인형에다 이름 붙여준 걸 알았으면 빗자루를 들고 쫓아왔을걸? 그나마 네가 말을 못 할 때라서 걸리지 않은 거지. 그러고 보니 특이한 이름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 이름을 쓰는 사람을 한 번도 못 만나봤었네, 여태까지? 만약 그 아이도 사고 없이 태어났다면 이 이름을 가지고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었겠지? 물론 성은 달랐겠지만. 엄마 집안 쪽 성을 따랐다면 이 성은 아니었을 테니까. 아니면 혹시 모르지? 친부의 성이 이 이름과 똑같았을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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