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벽간소음상호결별부

2020.10.26 01:2210.26

 옆집이 시끄러워 미쳐버릴 것 같다.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이다. 옆집을 조용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저주든, 무엇이든.

 나는 한 5층짜리 빌딩의 원룸에 살고 있다. 1층은 부동산이, 2층부터는 한 층에 세 개의 가구가 있는 건물이다. 나는 일 년 전 이곳의 502호에 이사 왔다. 저렴한 월세는 아니었지만 주변에 깔끔한 산책로가 있고, 직장까지 한번에 가는 지하철 노선이 있어 선택했다. 살아보니 꽤 괜찮은 곳이었다. 한 달 전 까지는.

 최근 깨달은 바로, 이 건물의 방음은 쓰레기였다. 원래 내 옆집인 503호에는 인근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살고 있을 때까지는 소음으로 문제를 겪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 집에는 방음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옆집 간호사가 매일 나이트 근무를 서느라 집에 돌아오지 못해 조용했었다는 사실을. 한 달 전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온 후, 이 잘못된 믿음이 깨졌다.

 새로 온 사람은 인근 대학에 다니는 20대 남자였다. 현관에 놓인 신발, 택배 상자에 쓰인 이름, 생활 패턴 등을 보면 추리할 수 있었다. 사실 추리고 뭐고 벽을 넘어오는 대화만 들어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의 신상 정보는 매일 밤마다 얇은 벽을 타고 옆집으로 누출되었다. 정작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건물의 방음만이 아니었다. 남자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왔다. 그 둘은 밤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 대화의 흐름을 온전히 느껴야 했다. 그래, 너네는 곧 백일이 되는구나. 학교에서 우연히 만났구나. 여자 집은 편도로만 두 시간이 걸려서 허구한 날 여기에 오는 거구나. 홀로 그들의 사정을 읊조리며.

 대화는 귀여운 축에 속했다. 가장 최악인 순간은 그들이 사랑을 나눌 때였다. 끙끙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이 방에서 운동이라도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달뜬 숨 소리가 연속해서 울렸을 때, 난 깨닫고 말았다.

 이 새끼들은 지금, 섹스를 하고 있다. 이 좁아터진 침대 위에서.

 그래, 할 수 있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얇은 벽 너머에서 이 소리를 함께 들어야 하는 나는 무슨 죄란 말인가? 그들의 성적 자유권은 나의 수면권 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자 울분이 터져 누운 채로 벽을 쾅쾅 쳤다. 그러나 나의 울분은 그들의 격렬함에 묻힌 채, 서글프게 울릴 뿐이었다.

 


 출근길, 피로로 인해 생긴 두통에 머리를 짓누르며 생각했다. 이제 정말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소음을 멈추고 나의 수면을 되찾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처음에는 물리적인 방법을 시도했다. 다이소에서 작은 고무망치를 사와 시도 때도 없이 벽을 두드렸다. 옆집이 시끄럽게 굴 때는 물론이고, 내 고통을 느껴 보라고 평소에도 아무때나. 그런데 문제는 503호가 시끄럽지 않은 순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옆집이 적막할 때는 집 주인이 없을 때뿐이었다. 남자는 집에 들어오면 꼭 여자와 떠들거나, 전화통화를 하며 소음을 발생시켰다. 옆집이 시끄러울 때는 망치를 두드려봐야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 뒤로 각종 방법을 모두 시도했다. 집주인에게 이르기, 경고 포스트잇 붙이기, 스피커로 귀신 소리를 틀어서 벽에 붙이고 있기 등. 하지만 그들은 견고했다. 잠시 조용해지는 척 해도 몇 시간 후엔 금세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미쳐가던 나는 새로운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 바로 ‘부적’을 쓰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러한 사고 흐름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묻지 말라. 누구에게나 사연 하나쯤 있는 법이니까. 

 바로 유튜브에 ‘부적 쓰는 법’을 검색했다. 과하게 다양한 종류의 부적들이 검색 결과에 주르륵 띄워졌다. 검색어 앞에 ‘이별’을 붙이고 다시 엔터를 쳤다. 최상단에 ‘얄미운 커플 부적 써서 헤어지게 함... 효과 실화냐?’라는 썸네일의 동영상이 있었다. 채널 이름은 ‘무당언니’, 조회수는 13만. 클릭했다. 천박한 문구와 다르게 채널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설명은 간결하고 신뢰감 있었다. 심지어 가끔씩 던지는 농담에는 위트가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영상을 다섯 번 정도 돌려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당장 부적 작성에 돌입하자고. 준비물과 작성법은 이미 머릿 속에 있다. 남은 것은 행동 뿐이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결심했다.

 문제는 부적을 어떻게 옆집에 건네느냐, 였다. 무당언니의 말론 부적은 대상이 되는 사람이 소지하거나 거주지에 두어야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옆집 남자와 말 한 마디 나눠본 적 없었다. 우리가 나눈 유일한 의사소통으로는 그가 소음을 내고, 나는 닥치라고 벽을 쳤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부적(심지어 자신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하는)을 주고 소지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현재 IT기업에서 UX/UI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UX는 User Experience, UI는 User Interface의 준말인데, 실은 아무거나 디자인하는 잡부나 다름 없었다. 때문에 웬만한 디자인은 다 할 줄 알았다.

 그러니 전단지를 만들어 503호 현관문에 붙인다면? 흥미로운 내용이라면 분명 전단지를 떼어 집에 가져갈 것이다. 이 밖에도 가스검침 안내 종이, 수도세 고지서 등을 후보로 고려해 보았으나, 범죄가 될 가능성이 있어 전단지로 결정했다.

 남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전단지 내용을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벽을 타고 들리는 대화에 의하면, 남자는 요즘 헬스클럽에 다닐까 고민 중이었다. 나는 구글에 헬스클럽을 검색했다. 포토샵을 켜고, 그 중 적절해 보이는 이미지를 갖다 붙였다. 트레이너인 양 몸 좋은 사람의 사진도 넣고, 한 달에 99,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큰 문구로 강조했다. 여기에 적당한 가공을 더하니, 정말 동네 어귀에 위치한 헬스클럽 전단지 같았다. 연락처 란에는 내 휴대폰 번호를 적어넣었다. 전화가 오면 대충 둘러댈 작정이었다.

 며칠 후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전단지 100장을 배송 받았다. 내 디자인 경력 7년, 회심의 역작이었다. 그리고 준비해 둔 레몬즙과 붓을 꺼냈다. 레몬즙으로 글씨를 쓰면 보이지 않지만 불에 그슬리면 글씨가 나타난다고 어린이 과학동아에서 읽은 적 있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비밀 부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나는 전단지 한 장을 뒤집어 붓을 댔다. 이미 여러차례 연습을 거친 터라, 어렵지 않게 글씨를 써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획. 붓을 떼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됐다, 완성했어. 광택지에 레몬즙으로 작성한 부적이 얼마나 효과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의 첫 작품이었다.

 나는 테이프를 잘라 전단지 세 개에 붙였다. 현관문을 열고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 층에 있는 세 개의 집 문에 모두 전단지를 붙이고 들어왔다. 자신의 집 앞에만 붙어있으면 수상하게 여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501호 사람은 운동에 관심이 없기를 빌었다.

 저녁 열 시쯤 됐을까, 옆집 남자가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문을 쾅 닫는 소리가 울리자, 나는 참지 못하고 밖에 나가 확인해보았다. 없어져 있었다, 전단지가. 내 계획이 성공했다. 혹여 버리지는 않았나 싶어 문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깨끗했다. 한결 산뜻해진 기분으로 방에 들어갔다.

 그 날도 옆집 남자는 전화통화를 밤새 나누었다. 이미 새벽 두 시였지만, 내일은 아침 여덟 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웃으며 잠들 수 있었다. 내일은 새로운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매일 같이 오던 여자의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귀에 익은 그 목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남자의 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는 매일 울었다, 매일. 꼭 혼자 울지 않고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소리내어 울었다. 변심한 여자와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말의 높낮이가 제멋대로인 것으로 보아 술도 진탕 마신 듯 했다. 나는 다시 옆집의 소음에 잠들지 못하면서 생각했다.

 이것은 나로 말미암아 생긴 비극일까. 옆집 남자가 저렇게 서럽게 우는 이유는, 내가 쓴 부적이 기적적인 성능을 발휘했기 때문일까. 효과를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렇게 잘 작동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옆집 남자가 저렇게 망가진 꼴을 보자, 내 마음에도 죄책감이란 것이 피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목적은 옆집 남자가 연인과 결별함으로써 더이상 소음을 내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울부짖음은 평소 데시벨을 능가했다. 비속어도 잔뜩 뒤섞였다. ‘씨발’보단 신음이 낫지. 나는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출퇴근 시간마다 옆집을 지나치며 고민에 빠졌다. 부적을 회수해야 할까? 회수한다면 어떻게? 어지러운 머릿 속에는 ‘현관에 소형 CCTV를 달아 비밀번호를 습득, 남자가 집을 비웠을 때 잠입해 전단지를 가지고 나온다’와 같은 아이디어만 떠올랐다. 말할 것도 없이 범법자가 되는 길이었다. 아무리 급해도 선은 넘지 말자. 나 자신을 세뇌시키듯 되뇌였다.

 한 편으로는 의심이 들었다. 이 현상이 정말 부적 때문일까? 애초에 부적에 효능이 있긴 한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도 전혀 없잖아? 나는 신나서 부적을 썼던 과거를 잊은 사람처럼, 민속신앙의 과학적 신빙성을 회의했다. 사실 알고 있다. 이 이중성은 내가 어떤 사건을 일으켰다는 죄책감에서 나오는 것임을.

 더 이상은 혼자 고민만 할 수 없어, 결심했다. 무당언니에게 물어보자고. 나는 다시 유튜브를 켜고 해당 채널을 찾았다. 뒤져보니 설명란에 비즈니스 이메일 주소가 있었다. 비즈니스는 아니지만, 이라 중얼대며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무당언니 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무당언니 채널을 잘 보고 있는 구독자입니다.
언제나 양질의 부적 작성법 및 굿하는 법을 올려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최근에 무당언니 님이 올리신 부적 작성법 영상 중 하나를 따라 해보았습니다.
‘얄미운 커플 부적 써서 헤어지게 함... 효과 실화냐?’ 라는 제목의 동영상입니다.

옆집 커플이 소음공해를 일으켜 큰 불편함을 겪고 있던 터라, 영상을 찾자마자 반색하며 부적을 작성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는데 놀랍게도 옆집 커플이 정말 헤어젔습니다.
문제는 실연의 슬픔에 빠진 옆집 남성이 밤마다 울부짖는 소리를 낸다는 점입니다.
연인을 헤어지게 한 데에 죄책감이 생기기도 하고, 그때의 소음이 나은 수준이라 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혹시 괜찮으시다면
1. 정말 부적의 효과가 강해서 이들을 헤어지게 만든 것인지
2. 맞다면 이 효과를 다시 상쇄시킬 방법은 없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하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럼, 건강 유의하세요.
구독자 김항항 올림.

 다음 날, 회사에서 일하던 중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울렸다. 나는 황급히 화장실에 들어가 확인했다.

김항항 님께.

안녕하세요 무당언니입니다.
보내주신 메일 잘 읽어보았습니다.
옆집 소음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계신다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가 유튜브에 작성법을 게시한 부적은 효과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쉽게 부적을 쓸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또한 여타 업계 종사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런 업계 비밀을 누출해선 안되겠죠.

그렇기에 저는 유튜브 채널을 엔터테인먼트 및 제 브랜딩 홍보 용으로만 사용합니다.
영상 속 부적 역시 제목처럼 강한 효과가 아니라 잡귀를 쫓는 기본적인 부적이며, 그마저도 일반인들이 써서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때문에 김항항 님의 옆집 연인이 헤어지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너무 염려마시길 바랍니다.

또한 여쭤보셨으니 답해드리자면, 부적 효과를 상쇄시키는 방법은 불태우거나 찢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언제나 영상을 시청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이만 줄입니다.

부적언니 드림.

(P.S. 효험이 있는 부적을 원하신다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부적언니’를 검색하신 뒤 알맞은 종류를 주문해주시면 됩니다. )

 변기에 앉은 채로, 나는 잠시 넋을 잃었다. 그럼 지금 이 현상이 우연이라고? 허구한 날 물고 빨던 커플이 내가 부적을 쓴 다음 날 바로 헤어졌는데도?

 휴대폰을 끄고 밖으로 나가 손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손등에 닿자 정신이 깨었다. 그래, 얼마든지 우연일 수 있다. 사실 부적이 통해서 커플이 깨졌다는 것보다, 하루 밤 사이 변심했다는 주장이 더 말이 된다. 무당도 아니라고 하는데 부적이 통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더는 내가 신경 쓸 일도, 죄책감을 가질 일도 아니다.

 나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이에 대한 생각을 날려버리려는 듯 강하게 손을 털었다. 그러나 찝찝함 한 조각은 내 몸 어딘가에 남아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답답하든 개운하든, 일은 해야 했고 퇴근 역시 찾아왔다. 내가 사는 빌딩에 도착해 언제나 그랬듯 걸어 올라갔다. 5층에 도착해 발을 내디뎠지만 센서등이 켜지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말했는데도 아직 고쳐놓지 않은 모양이다. 어둠을 뚫으며 복도로 향하던 찰나, 옆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후드를 뒤집어 쓴 덩치 큰 남성이었다. 그 남자는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팔을 붙잡았다.

 “당신, 뭐야?”

 내가 아닌, 그 남자가 뱉은 말이었다. 갑작스럽고 위협적인 상황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이 남자는 분명 미친놈이다. 당장 소리를 질러야 할 지, 계단을 뛰쳐내려가야 할 지 갈등하던 찰나였다. 조금씩 어둠이 눈에 익었고, 남자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락없이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던 이 남자는 옆집 남자였다. 복도에서 몇 번 스친 적이 있어 기억하고 있었다.

 “503호...”
 “이거, 당신이 붙였지.”

 남자는 내 말을 막더니 종이 한 장을 눈 앞에 들이밀었다. 내가 만들었던 헬스클럽 전단지, 아니 부적이었다. 예기치 못한 시공간에서 내 작품을 만나니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니, 아닌데요?”

 순간적으로 잡아뗐다. 심증이 있어도 정말 내가 붙였는지는 알아내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전화를 걸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내 손에 있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고있었다.

 “맞잖아, 당신 번호.”

 남자는 전단지 속 번호를 가리켰다. 내가 입력했던, 내 번호였다. 들켰다, 는 생각에 완전히 말문이 막혀버렸다.

 “당신,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그냥... 전단지인데요? 제가 그 헬스클럽에 일해서...”
 “아니잖아. 뭔가 했잖아. 아니면 걔가 그렇게 매정하게 굴 리가 없는데.”

 남자는 여전히 내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잡고 있는 손에 점점 힘이 강하게 들어가, 점점 아픔이 느껴졌다. 나는 남자의 손목을 내리쳐 손을 놓게 했다.

 “잠시만요.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됩니다. 일단 설명을 좀 해주세요.”

 남자는 나를 노려보다 숨을 몇번 크게 내쉬더니,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왔는데, 여자친구가 갑자기 혼자 돌아갔다. 그 뒤로 전화로 이별을 고했다. 그런데 여자가 말한 이별 사유가 ‘남자의 집이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남자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고. 남자는 한참을 슬퍼하다, 혹시 몰라 집주인에게 사정해 복도 CCTV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 내가 남자의 현관문에 전단지를 붙이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매우 수상해보이는 그 장면을. 그래서 지금 나한테 이 난리를 치게 되었고. 횡설수설한 남자의 말을 정리하자면 대략 이와 같았다.

 “당신이 뭘 한 거 잖아. 맞지? 대체 뭘 한거야.”
 “제가 뭘...”
 “돌려놔. 돌려놔. 돌려놓으라고.”

 남자는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남자의 눈은 빨갰고, 거의 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제 정신이 아닌 듯했다. 나는 남자의 손길에 맥없이 흔들리며 이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 내가 부적을 붙이긴 했다. 하지만 무당이 효과가 없대잖아. 그럼 본인 문제로 차였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그런데 얘는 왜 나한테 이러는 것일까? 사실은 그저 화풀이 상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피로한 두뇌가 갖가지 생각으로 난잡했다. 동시에 점점 분노가 차올랐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침대에 누워 유튜브나 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옆집 남자한테 붙들려 분노를 받아내는 꼴이라니. 그리고 이 새끼는 나보다 어려보이는데 왜 반말이지? 애초에 네가 조용히 했으면 됐잖아. 너무 피곤하다. 왜 나한테.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

 “근데 씨발 왜 나한테 지랄이야!!”

 나는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어깨를 퍽, 하고 밀어버렸다. 남자는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 틈에 가지고 있던 전단지를 빼앗아 박박 찢어버렸다. 이런 가짜 부적, 없애버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전단지는 산산조각이 나 흩뿌려졌다. 남자는 멍하니 전단지가 찢기는 꼴을 보고 있었다.

 그때,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곧 복도 조명이 켜졌고, 그 밑에 한 여자가 있었다.

 “그만해.”
 “서영아...”

 남자의 반응으로 보아 그토록 죽고 못 살던 여자친구인 듯 했다. 여자는 나에게 눈인사를 하더니, 남자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곧 나만 홀로 복도에 남았다.

 나는 이 황당한 상황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옆집 현관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지금 상황에 적절한 속담이 떠올랐다.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 여기서 ‘닭 쫓던 개’는 나고, ‘지붕’은 현관문이겠군. 아니, 나는 개에게 쫓기던 닭 신세에 더 가깝나? 한쪽 입을 비틀고 하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이제 집에 가자. 일단 쉬자. 나는 도어락을 풀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방금 겪었던 혼란스러운 상황을 잊으려 시끄러운 동영상을 틀었다. 정신없는 화면전환이 신경을 자극했다. 그러다가도 불쑥, 다른 생각이 튀어올랐다. 방금 겪었던 일에 대해서 말이다. 그 남자는 뭔데 나를 위협하지? 나는 왜 커플 싸움에 낀 새우가 되었나? 나는 너네들 때문에 한 달 간 잠을 못 이뤘던 피해자임에도. 점차 분노가 차올라 눈 앞 화면을 가렸다. 시끄러운 소리도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와 억울함이 날 가두어버린 것 같았다. 여기에서 탈출하려면 아무래도 다시 가서 따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외투 하나를 걸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다시 돌아온 복도는 썰렁했다. 나는 차가운 공기를 뚫고 옆집 문 앞에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관문이 닫혀있지 않았다. 이중으로 문을 잠그기 위한 걸이가 펴져, 조그만 틈을 남기고 열려있는 상태였다. 나는 문을 두드리려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이상해 잠자코 서있었다. 문틈으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는 한 손을 높게 뻗어 무엇을 쥔 상태였다. 현재 각도에서는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얼굴을 옆으로 옮겼다.

 그러자 펼쳐진 광경은,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여자의 손은 남자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것도 한 손으로, 마치 인형을 쥔 것처럼 매우 가볍게. 남자의 얼굴은 붉었고 눈은 뒤집어져 흰자만을 노출하고 있었다. 팔다리는 반항할 힘을 잃은 듯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듯, 남자의 입에 거품이 고였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의 머리가 터졌다. 터져버렸다. 남자의 피는 사방으로 튀어 벽과 바닥에 묻었다. 뇌수 역시 바닥에서 흐르고 있었다. 여자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얼굴에 묻어있는 피를 닦더니, 몸을 숙이고 남자의 배를 갈랐다. 그리곤 장기를 빼내더니, 심장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상황에 토기가 올라왔다. 입을 틀어막았지만 헛구역질이 올라와 참을 수가 없었다. 우욱, 하는 소리가 새어나가자 여자는 얼굴을 뒤로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제야 굳었던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였다. 달렸다, 내 집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도어락을 풀었다. 매일 눌렀던 비밀번호였음에도 초조함에 번호가 잘못 눌리고 말았다. 뒤에서는 누군가 뚜벅뚜벅,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그 여자, 아니 괴물이었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을 때 드디어 도어락이 풀렸다.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잠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자가 문을 잡고 있었다. 안쪽에 있는 나를 주시하면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여자는 현관문을 열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를 쳐다보는 눈은 형형하게 빛나,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들어 삼켜버릴 것 같았다. 나는 벌벌 떨면서 웅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자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팔 틈으로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이쪽을 잠자코 지켜보다, 휙 돌아 걸어가버렸다. 자동으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대로 힘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며칠 뒤,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옆집 남자가 죽었는데 이에 대해 아는 바 없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최근 본가에 와 있기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했다. 실제로 나는 그날 경기도에 있는 본가로 도망쳤다. 그 괴물을 마주친 곳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남자의 사망일로 추정되는 날 CCTV에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덧붙였다.

 얼마 안 있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옆집 사람이고, 내가 전단지를 붙이는 장면이 CCTV에 목격되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경찰은 석연치 않아 보였지만 나를 크게 의심하진 못했다. 이렇다할 증거도 없을 뿐더러, 그 시체는 사람이 한 짓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괴이하게 손상되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한동안 폐인처럼 지냈다. 멍하니 있으면 자꾸 그때의 일이 눈 앞에 재생되었다. 머리가 터지는 남자, 흘러나오는 내장, 훅 끼쳐오는 피 냄새. 이 장면을 잊기 위해 일에만 매달렸다. 매일 야근을 하고 집에서까지 잔업을 처리했다. 회사 사람들은 요즘 왜이렇게 성실해졌냐며 농담을 던졌다. 나는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로 회피했음에도 잠에 들 무렵이면 다시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뇌는 눌러 놓은 불안함을 귀신같이 감지해 악몽을 만들어냈다. 언제부터인가 꿈에서 목이 졸리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내 머리가 터졌고, 여자는 내 심장을 주워먹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나와 여자가 눈을 마주치고, 날 잡으려 달려올 때 꿈이 깬다.

 잠을 자지 못하고 점점 피폐해지는 나를 본 어머니는 다시 본가에 들어오라고 제안하셨다. 이 꼴로 돌아가봤자 제대로 먹지도 못할 것 같아 걱정되셨나 보다. 아직 방 계약 기간이 꽤 남아있었지만, 나는 그러기로 결심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남아있는 짐을 빼야했기에, 한번은 자취방을 들러야 했다. 혼자 5층을 왔다 갔다하며 짐 정리를 할 순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삿짐 센터를 불렀다. 1년 남짓한 생활에 워낙 좁은 방이었기에 짐은 크게 많지 않았다. 내 생활의 흔적들은 금세 상자에 분리되어 트럭에 실렸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은 마지막으로 빠진 것이 없는지 점검을 해달라고 말 하곤 먼저 내려갔다. 나는 빈방 안을 죽 둘러보았다. 언제 사람이 살았나, 싶게 깨끗했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지,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책상 밑, 구석에 종이 한 장이 떨어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워보니 이전에 만들었던 가짜 전단지였다. 부적을 쓸 때 연습용으로 몇 장 꺼내놓았는데, 그중 하나를 떨어뜨렸던 모양이었다. 별생각 없이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분명 뒤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했다. 일부러 레몬즙을 이용해 글씨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태운 듯한 색으로 선명히 부적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효력을 발휘한 것처럼.

 그때 무당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가 작성한 부적은 잡귀를 쫓는 역할을 한다는 것.

 그와 동시에 쏟아지는 장면들.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었던 여자의 모습. 내가 옆집에 부적을 붙이자 다시 남자의 집에 오지 않았던 여자. 그리고 우리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여자.

 퍼즐 조각이 한번에 맞춰지는 듯했다.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누구를 지키고 다시 죽게 했는지가 선명하게 인식되어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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