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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드라큘라

2020.10.21 09:2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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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괜찮습니다. 비가 와서 기침이 나는 것뿐입니다. 그렇죠? 밖에 비가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아냐고요? 사실 냄새 때문에 비가 오는 걸 알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평소보다 냄새를 더 잘 맡을 수 있으니까요. 맡고 싶지 않은 냄새까지도. 아, 이 안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아닙니다. 형사님들은 지금 저를 고약한 인간쯤으로 보고 있으시겠지만. 제가 말하는 냄새는 다른 냄새입니다. 주변에서 익숙하게 맡는 악취가 아니라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낯설고 이상한 냄새. 형사님들은 그런 냄새 맡아본 적 있으십니까? 흙냄새 같기도 하고 썩은 나무 냄새 같기도 하고, 축축하고 아주 오래된 냄새 같은 그런···. 아뇨, 산속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뭐랄까··· 딱 꼬집어 표현하기 힘드네요. 비 냄새에 섞여 공기 중에 떠도는 비릿한 그 냄새는, 그날 그곳에서 맡았던 그 냄새처럼···.. 네? 산에 갔었던 그날이냐고요? 아뇨, 전 가족 여행을 갔던 때를 말하는 겁니다. 그날도 지금처럼 억수같이 비가 내렸습니다. 그것도 그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상하죠? 마침 딱 그 순간 장대비가 쏟아졌으니. 그렇게 비가 쏟아부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여행 내내 비가 내렸었습니다. 한여름인데도 겨울 날씨 같았죠. 왜, 장마 기간 동안 후덥지근하고 숨 막히게 내리는 비 말고 사방을 뿌연 안개처럼 뒤덮고 뼈마디가 시리도록 비 오는 날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행 내내 그런 날씨 속에서 돌아다녀야 했으니 영 여행 기분이 나지 않았습니다. 해외로 나가는 첫 가족 여행이었습니다. 모두들 신나고 들떠있었죠. 그 여행이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출발 직전까지 잔뜩 부풀어 있었던 기대는 이내 실망과 피로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우비를 덮어쓴 채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장막 같은 안개비에 가려 뭘 제대로 구경할 수도 없으니 전혀 흥이 날 리 없었죠. 그 와중에 가이드는 오히려 이런 날씨에 딱 맞는 투어이지 않냐며 패키지 일정을 소화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드라큘라의 땅에 도착한 것을 환영한다며. 날씨가 그래서였는지, 흡혈귀를 떠올려서였는지, 아니면 예전 공산국가 시절의 모습이 남아있는 건물들과 풍경 때문이었는지 어디를 가든 뭔가가 계속 우리를 지켜보고 감시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으니 가이드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네요. 이렇게 말하니 꼭 나쁜 기억만 있었던 것 같은데 전부 그랬던 건 아닙니다. 마침 축제 기간이라 궂은 날씨에도 거리는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모두들 친절했죠. 끔찍하고 놀라운 이야기가 서린 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면 주변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어차피 남는 건 사진뿐이라 가는 곳마다 사진 찍기에 바빴고, 그러다 보면 금세 끼니때가 되어 이국적인 음식 맛을 보다 다음 장소로 급하게 이동하고, 그렇게 하루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오면 다음 날 일정 시작 전까지 곯아떨어지는 반복이었습니다. 이런 고생스런 여행도 나중에는 다 추억이 될 거라고 가족들을 다독였죠. 여행지의 기념품만 사줘도 금방 기분이 풀리는 아이들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일이 잘못되려면 사소한 것부터 꼬인다고, 아들 녀석이 기념품을 넣어둔 가방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매치기가 많다고 해서 지갑이나 신분증이 든 가방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지, 황당하게 기념품 가방을 훔쳐 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까짓 기념품 몇 개야 없는 셈 쳐도 상관없지만 그건 어른들 생각일 뿐이죠. 아이들에게 도둑맞은 기념품을 없었던 셈 치자, 비슷한 걸 사면 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일지 짐작하시겠죠? 난리가 났습니다. 여행 후 남는 건 사진뿐만 아니라 기념품도 마찬가지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 혼자 숙소를 나와 기념품 가게를 찾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밤거리의 풍경은 낮과는 묘하게 달랐습니다. 여전히 축제를 즐기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차분하면서도 소란스럽고, 평화로운 가운데 난잡하기도 한 모습들이. 거기다 단순히 낯선 나라의 밤거리를 걷고 있어서가 아니라 공기 중에는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죠. 낮 동안 지겹도록 껴있던 안개가 말끔히 걷혀있다는 걸. 안개 속을 걷던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안개가 걷힌 대기가 오히려 어색했던 모양입니다. 아니, 어색했다기보다 어지러웠습니다. 어두운 밤인데도 낮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광경들과 노랫소리와 그리고 그 냄새···. 어깨동무를 하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이 내뱉는 노랫소리에 섞인 술 냄새며, 요정인지 마녀인지 모를 분장을 한 무리들의 어지러운 춤사위며, 장대 끝에 장식해놓은 쑥과 마늘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양이며, 비밀스럽게 귓속말을 주고받고 키득대는 연인들의 흘겨보는 눈빛은 낮과는 달리 환영받지 못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단지 이방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빨리 기념품을 사고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은 시간이었고 아들 녀석이 찾는 것과 똑같은 건 구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숙소에서 너무 멀리 나왔는지 돌아가는 길마저 헷갈리더군요. 점점 인적도 끊기고 마음은 초조한데, 하필 발길이 닿는 곳은 공동묘지였습니다. 오싹한 기분을 떨치며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비석 위에 놓인 장미꽃이 눈에 띄더군요. 사랑하던 이를 떠올리며 누군가 두고 간 꽃이었을까요? 즐거운 축제 기간에 더 생각나는 소중한 사람이었을. 그때는 짐작만 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처음에는 바람에 날려온 장미 꽃잎인 줄 알았습니다. 빗물에 젖은 길바닥에 들러붙어 검붉게 반짝이고 있던. 하지만 그건 꽃잎이 아니라 핏물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살코기에서 배어 나온 핏물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누군가 저처럼 입맛에 맞지 않은 양고기를 먹다 버린 건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번에는 멀지 않은 곳에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설마 핏물이 흐르는 소리는 아닐 테지만, 계속 불안해하고 있을 바에 두 눈으로 확인하자 싶어 물소리를 따라가 봤습니다. 소리가 이끈 곳은 개울가였습니다. 물레방아가 개울물에 운치 있게 돌아가고 있는.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물레방아를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들여다봤죠. 그러다 서늘한 눈빛과 마주쳤습니다. 개울 너머 누군가 저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짙게 깔린 개울 건너편 나무숲에선 사람의 기척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미세하게 떨리는 수풀 속에 무언가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죠. 곧이어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은. 다시 한번 더 덤불이 흔들리고, 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양의 목을 입에 물고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피를 흘리고 있는 늑대였습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닙니다. 너무 어두웠고 물소리와 섞여 착각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람을 타고 풍겨오던 비릿한 그 냄새만은 분명 맡았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잘못 본 것이든 아니든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소름이 돋은 얼굴과 팔을 쓸어내리며 급하게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습니다. 어디로 행진하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골목길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으슥한 골목 한쪽에서 키스를 나누는 연인의 모습조차 양과 늑대의 모습으로 떠올라 괴로웠습니다. 골목 양옆의 빨간 지붕들은 연신 피가 흘러내리는 환영처럼 보이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골목길을 하염없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겨우 빠져나온 골목 끝에는 탁 트인 광장이 펼쳐졌습니다. 광장 한가운데에 고풍스런 교회 한 채가 우뚝 서 있었죠.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발길은 자연스레 교회 안으로 향했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교회 안에서 은은히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어둠 속에 떠오른 촛불마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속삭임. 흡사 천국에 와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차를 두고 지옥과 천당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한 셈이죠. 얼마나 오래 머물렀냐고요? 글쎄요···. 그렇게 오래 있진 않았습니다. 앉을 만한 의자가 없어서 계속 서 있기도 힘들고, 가족들도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교회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 노파가 버티고 서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개울가에서 서늘한 눈빛을 보내던 그 여자인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손에 든 장미 한 송이까지 불쑥 건넸으니까요. 하지만 다행히도 단순히 꽃값을 요구하는 집시일 뿐이었습니다.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꽃을 물리며 돈이 없다고 표현하는 제 몸짓에 저주나 퍼붓지 않길 바랐습니다. 노파를 겨우 떼어내고 숙소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소매치기들 중에 집시도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혹시 아들의 기념품 가방을 훔친 소매치기도 집시가 아닐까 의심이 떠오르며 주머니를 살펴보는데, 역시나 지갑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급하게 다시 교회 앞 광장으로 돌아가 보았지만 아직 거기 남아있을 리 없었죠. 하지만 바닥에 떨어뜨린 장미를 발견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저는 부리나케 뒤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노파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더군요. 집시가 사는 집이라기엔 아주 크고 으리으리한 고저택이었습니다. 저런 집에 사는 사람이 소매치기를 한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제가 오해를 했나 싶었습니다. 지갑은 다른 곳에서 흘렸을 수도 있고, 인파에 쓸려 다닐 때 다른 소매치기가 슬쩍 빼갔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저택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하늘에서 낮은 울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없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해야 했습니다.

아뇨, 문은 잠겨있지 않았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문을 두드려 보았죠, 당연히. 하지만 천둥과 빗소리 때문에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고 착각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열어주었다고. 저택 안은 오히려 집 밖보다 깜깜했습니다. 혹시 도둑인 줄 착각하면 곤란하니 헛기침도 해보고 사람을 불러도 보았습니다. 방금 전 교회 앞에서 만난 사람인 걸 알면 오해하지 않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말을 하는 낯선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와서 더 겁을 먹고 숨어버린 건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경찰에 신고했다면 큰일이죠. 그러니 지갑을 잃어버린 건 속 쓰리지만 어서 빨리 저택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다시 양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아니면 양이 아닌 다른 뭔가의 흐느낌 소리 같기도 한. 이번에도 천둥소리와 빗소리를 착각한 건지 헷갈렸습니다. 비라도 새는지 똑똑똑 물 듣는 소리까지 들리더군요. 이렇게 큰 저택에서 불도 켜지 않고 비까지 새고 있다면 정말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기는 한 걸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저택 안을 둘러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제가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가서 휘젓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그때는 뭔가가 저를 계속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를 기다리고 있고, 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어둠 깊은 속에서···. 갑자기 번갯불이 번쩍였습니다. 그러자 환해진 집 안에서 거대한 철창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새장처럼 생겼지만 새보다 더 큰 짐승을 가둬둘 것 같은 아주 큰 철창이었습니다. 뒤이어 귀를 찢는 천둥소리는 흡사 집 안 어딘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을 짐승이 포효하는 소리처럼 울렸습니다. 또다시 번갯불이 번쩍이자 이번에는 말뚝에 꼬챙이처럼 꿰인 채 거꾸로 매달린 시체의 형상이 나타났습니다. 제 비명소리는 천둥소리에 묻혀버리고 저는 미끌거리는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뭐를 밟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저를 노려보고 있는 눈빛이 반짝였습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무더기로.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말뚝에 박힌 시체로 착각한 건 사실 천장에 매달린 박쥐들이었음을. 그 저택은 사람이 아닌 박쥐들의 소굴이었던 겁니다. 소란스러움에 박쥐들은 하나둘 날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네? 박쥐에게 물렸냐고요? 아뇨. 다행히 물리진 않았습니다. 네, 할퀸 곳도 없습니다. 혹여 박쥐들과 부딪힐까 엉금엉금 기어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으니까요. 바닥이요? 비릿한 냄새를 맡기는 했지만··· 박쥐 배설물 말입니까? 뭐, 그렇게 많은 박쥐들이 있었으니 배설물도 쌓여있었겠죠. 하지만 그런 게 손에 묻지 않았을까 신경 쓸 겨를도 없었습니다. 당장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신없이 빗속을 내달렸습니다. 등 뒤에선 뭔가가 계속 따라붙는 것만 같은 두려움에 돌아볼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땅에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보지 못하고 미끄러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통증을 살필 새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금방이라도 저를 덮칠 듯 달려든 그림자는 바로···  

쿨럭! 쿨럭! 아닙니다. 담배 연기 때문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저도요? 솔직히 굉장히 끌리긴 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혹시 금연 껌 같은 건 없습니까? 네, 저도 예전에는 피웠었죠. 하지만 끊은 지 좀 됩니다. 만병의 원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특히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끊는 게 당연하죠. 형사님들도 가족이 있을 테니 이해하시겠죠? 노하우요? 노하우랄 게 있습니까? 그냥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뭐, 남들은 제가 독종이라서 가능하다고 하지만 사랑과 믿음만큼 강력한 원동력은 없다고 봅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도 그 두 가지 아니겠습니까? 사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좋지 않은 아들 녀석이 젊었을 적부터 하루 한 갑씩 피워대던 제 흡연 습관 때문이 아닐까 죄책감이 들어 더 독하게 담배를 끊어 버렸습니다. 사실 지금 담배보다 더 간절한 건 술 한 잔입니다. 형사님들도 술 좋아하십니까? 와인 한 잔 정도는 건강에도 좋다고 해서 집사람과 반주로 즐겨 마시곤 했었죠. 그 기억이 왜 이렇게 까마득한 옛날 일 같기만 한지···. 고기요? 물론 와인에는 고기가 잘 어울리죠. 하지만 고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음식과 곁들여도··· 아아,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딴 길로 샜군요. 그날 빗속에서 고깃덩어리를 밟고 넘어졌을 때 나타난 것은 개였습니다. 비쩍 마른 개 한 마리가 고깃덩어리를 물자마자 뺏기지 않으려 달아나더군요. 어느새 비도 그치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허탈하게도 가족들은 비가 온 줄도 모르고 흠뻑 젖은 채 돌아온 저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여행객분이 감사하게도 나눠주신 기념품을 손에 꼭 쥔 아들 녀석은 이미 잠들어 있었습니다. 비는커녕 천둥번개가 치는 것도 아무도 몰랐다고 하니 그날 밤 일들이 모두 내 착각이었나, 환상이었나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개울 너머 풀숲 속에서 나타난 짐승도 고깃덩어리를 물고 가던 동네 개였을 뿐이었을까, 고저택 안의 박쥐들도 우연히 집 안으로 날아 들어온 것뿐일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혼란스러워할 새도 없이 지갑을 잃어버린 핑계로 이야기를 지어낸다며 집사람에게 혼나기 바빴지만요. 그날 밤 잠자리를 설치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전날 밤의 고저택을 찾아보려 했지만 비슷하게 생긴 집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요정이 축젯날 밤 이방인에게 못된 장난을 치기라도 한 것처럼. 벙찐 기분도 곧 바쁜 투어 일정을 돌아다니느라 금세 잊었습니다. 왜,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귀신을 봤다거나 설명하기 힘든 초자연적인 경험을 해보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이상한 경험은 더 이상 없었으니까요.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묘한 여행이었다고만 여겼습니다. 본격적인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임을 알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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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장마 기간이라 비가 오는 건 당연한 건데, 왜 그럴 때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갑자기 어느 순간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고, 꼭 다른 이유 때문에 일어나는 것만 같은 의심이 들 때가요. 여행 중 겪었던 기이한 경험 때문인지 이곳에서 내리는 비도 꼭 그곳의 비구름이 우리를 따라 쫓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장마가 한창이던 때에 새 이웃이 저희 빌라로 이사를 왔습니다. 하필 비가 퍼붓는 날 이사를 하니 운수도 안 좋다 싶었죠. 반대로 이사하는 날 비가 오면 잘 산다는 속설도 있긴 하지만요. 어쨌든 새 이웃과 인사를 해야겠다 싶어 기웃거리는데 하루종일 이삿짐과 인부들만 들락거릴 뿐 집주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사나흘 정도 지났을까, 집사람이 얘길 꺼냈습니다. 못 보던 얼굴의 여자가 우리 빌라 안을 드나드는 걸 봤는데 아무래도 새로 이사 온 여자인 것 같다고요. 아마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본 모양입니다. 네? 집사람의 야간근무요? 아뇨, 집사람은 새벽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이사 온 여자 말입니다. 인근 병원의 간호사더군요. 아뇨. 집사람이 알려준 게 아니라 제가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아주 우연히도 아들 녀석을 데리고 간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아이가 심하게 감기에 걸려 일주일이 지나도 기침이 멎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번 병원을 방문하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저희 빌라로 이사 온 이웃인 걸 알게 됐죠. 네? 병원에 몇 번 찾아갔냐고요? 설마 형사님들도 집사람처럼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이런 말까지 하긴 좀 남 부끄럽긴 하지만 사실 저희 집사람도 처음에는 저와 간호사와의 관계를 의심했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가 다니는 병원에 이웃사촌이 있으면 더 잘 봐주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연스레 친분을 쌓은 것뿐인데 집사람은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세입자에 대해 뭘 그리 시시콜콜 알고 있느냐, 아이 병원은 이제 자기가 데리고 갈 테니 당신은 신경끄라며 괜히 예민하게 굴더군요. 뭐, 그 정도야 아내의 귀여운 질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도 막상 간호사와 대화를 나눈 후에는 되레 칭찬을 늘어놓았으니까요. 그렇게 친절한 간호사는 처음 본다며, 야간근무를 하면 피곤할 법도 한데 출퇴근길에 항상 동네 길고양이들 밥을 챙겨주고 뒷정리도 깔끔하게 해놓는다, 동물병원도 사비로 해결한다더라, 아픈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물들까지 보살피는 진짜 백의의 천사다, 라는 둥 아무래도 자신이 쓸데없는 의심을 한 데에 머쓱했던 모양인지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빌라에서 간호사와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다 보니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잔다고 하더군요. 다른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여자가 안쓰러웠는지 집사람은 어느 날 저녁 식사에 여자를 초대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팔불출 같아 보이겠지만 저희 집사람 음식 솜씨가 아주 기가 막힙니다. 누구든 한번 맛을 보면 상찬을 늘어놓죠. 그러니 그날 저녁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도 젓가락만 깨작일 뿐 영 입맛을 내지 못하는 여자의 태도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죠. 기분 나빴냐고요? 아뇨, 의아했을 뿐입니다. 혹시 어디 아픈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핏기없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선 연신 괜찮다고만 하는 여자의 말을 영 믿을 수가 있어야죠. 집사람도 언짢아하기는커녕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해 하는 간호사를 신경 쓰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입맛이야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면서요. 여자는 강한 향신료가 든 음식은 잘 먹지 못한다는 걸 미리 말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라며 사과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무의식적으로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오셨냐고. 왜냐하면 여자가 입도 대지 않은 음식은 주로 고추나 파, 마늘, 양파 따위가 들어간 한식이었으니까요. 여자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곧 입을 닫았습니다.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말인지는 알 수 없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에게 뭔가 숨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빛에 좀 민감해서 그런데 불빛을 최대한 낮춰 줄 수 없는지, 그리고 창가 커튼도 쳐줄 수 있는지 양해를 구했습니다. 게다가 발목에 있던 그 문신. 개인적으로 의료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문신은 절대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문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모양 때문에, 용 모양의 문신이 자꾸 신경이 쓰였습니다. 꼭 태어났을 때부터 몸에 새겨져 있었을 것만 같은···. 네. 물론 제가 과민하게 생각했던 거겠죠.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처음부터 여자가 우리와는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흔히 간호사라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나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죠. 제가 외모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여자는 왠지 첫눈에 간호사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어차피 다 똑같은 직장인인데 간호사라고 피곤에 찌든 모습이 이상할 게 있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여자의 얼굴에 깔린 어둠은 단지 피로가 쌓인 탓만은 아닌 듯 했습니다. 좀 더 근원적인, 타고난 어둠이 짙게 배인 얼굴이었습니다. 지금에와서야 그때 그런 제 생각을 가족들에게 빨리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그때는 다들 새 동네에 익숙해지도록 도움이 필요한 이웃사촌으로만 대했습니다. 특히나 여자들은 감정적이지 않습니까? 높은 공감능력이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우리 가족이 당한 일처럼 한 가정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보인 여자의 행동과 태도에서 의심스런 냄새를 맡은 건 저 뿐만인데다 오히려 그 날 이후로 나머지 가족들과 간호사는 더 가까워진 듯 했습니다. 그렇게 친해졌는데 집으로 초대조차 안 하는 여자를 가족들은 의심도 안 하더군요. 오히려 간호사가 키우는 개가 워낙 사나워서 주인 이외에는 물 수도 있다며 그 집에 손님을 들일 수 없다는 여자의 말을 두둔하면서요. 그렇다면 개를 키우는 사람이 길고양이 밥은 정성스레 챙겨주면서 자신의 개는 산책 한 번 시켜주지 않는 것도 워낙 사나운 개이기 때문만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저는 궁금했습니다. 정말 개를 키우기는 한 걸까? 네. 개 짖는 소리를 듣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묘했던 게 뭔 줄 아십니까? 하울링이라고 하나요? 늑대들이 내는 소리를? 그 집 개는 새벽마다 꼭 늑대처럼 울부짖었습니다. 똑같은 개과 동물이라서 똑같은 우는 소릴 내서가 아닙니다. 그 소리는 제가 여행지에서 들었던 소리와 똑같았습니다. 그곳에서 들었던 그 짐승의 소리와. 하지만 새벽마다 또렷이 들려오는 그 소리를 가족 중 저 이외엔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저를 유난 떠는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가족들은 여자가 부리는 요상한 재주에 현혹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길가에 쓰러진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는데 간호사가 자신의 손 위에 새끼 고양이를 올려놓더니 가만히 쓰다듬기 시작했더랍니다. 그렇게 몇 번을 쓰다듬자 죽은 줄 알았던 새끼 고양이가 숨을 쉬기 시작하고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더라는 거죠. 무슨 기적의 현장을 목격하고 경험담을 들려주는 양 아내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혹시 영적인 치료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고. 집사람의 그 말이 뭘 기대하고 하는 말인 줄은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집사람은 단순히 신기한 목격을 했다고만 여기지 않았을 테니까요. 정말 영적인 치료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아들의 병도 고쳐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을 겁니다. ···네. 사실 저희 아들 녀석은 좀 아팠습니다. 아뇨,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아이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타인과 교감을 잘 못 하고 소통에도 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동물은 좋아해서 상태가 호전될까 싶어 몇 번 반려동물을 키워볼 생각도 해보았지만 오히려 너무 강한 집착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런 아들의 눈에 동물을 자유자재로 부리고 가까이 할 수 있는 여자가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그래서 전 더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의 상태를 알고 일부러 보여준 게 아닐까? 동물을 이용해 호감을 사려고, 불안정하고 무슨 일을 당해도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없는 아이를 일부러 골라서···.

압니다. 제 모든 이야기가 신경과민처럼 들리시겠죠. 하지만 제가 본 걸 형사님들도 보셨다면 저를 이해하실 겁니다. 더군다나 형사님들이시니까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여자의 정체를.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던 날 편의점 안에 우두커니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여자를 보셨다면 말입니다. 우산을 사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는지, 같이 쓰고 가자는 권유도 극구 사양하며 비를 조금이라도 맞으면 큰일 나기라도 하다는 양, 위험하다는 듯이 비 내리는 거리만 잔뜩 노려보고 있던 그 모습을. 또 어느 날은 길고양이들 밥이라도 챙겨주고 돌아오는 길인지 복도에서 마주치고 인사 후 엇갈리는 여자의 옷에 묻은 빨간 얼룩을 형사님들도 보셨다면 병원에서 묻은 핏자국이라 치부하기엔 출퇴근복에 왜 묻었을까 충분히 의심이 가지 않았을까요? 크지도 않은 집에 새 욕조는 왜 주문했을까요? 정작 목욕은 즐기지 않는지 수도세도 거의 나오지 않는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말입니다? 집사람에게는 왜 얼마 전 다녀온 해외여행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을까요? 특히 제가 경험했던 이야기에 꽤나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휴가 한번 내기 힘들어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는 간호사가 단지 해외여행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었을까요? 자신이 다음에 갈 여행지일지도 모르니 정보를 알아놓으려고? 혹시 자신의 정체가 들통났을까 봐 캐물은 건 아니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왜 자신의 뒤를 쫓는 기척을 느꼈을 때 수풀 안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췄을까요? 수풀 속 길고양이들 먹이를 챙기려 들어갔던 거라면 거기서 흘러나오던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의 정체는 뭐였을까요? 단순히 여자의 수상한 행동과 모습만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여자가 이사 온 이후로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과 길을 걷던 중 아이는 갑자기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새야, 라고요. 하지만 그것은 새가 아니었습니다. 박쥐였습니다. 형사님들은 박쥐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으슥한 숲속이나 인가가 드문 곳도 아닌 도심 한복판 주택가에서 말입니다. 그것도 대낮에. 우연이라기엔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녀석이 이번에는 야옹이라며 가리킨 곳에는 고양이가 죽어 있었습니다. 하필 그때 간호사네 병원에 일이 생겨 병원에서만 지내고 있는 동안 여자가 돌보던 고양이가 죽어서 어떡하냐고 집사람은 안쓰러워했죠. 하필 여자가 동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동안 몇 마리의 고양이들이 더 죽어 나갔다면 그것도 우연일 뿐이었을까요? 그 모든 전조를 저 혼자 느끼고 알아챈 이유는 혹시 제가 부여받은 역할이 있어서였을까요? 하지만 저는 의심만 했을 뿐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신고는 못 하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진실을 깨우쳐줘야 했습니다. 방관자나 다름없었습니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못난 가장일 뿐입니다···.

가족들은 간호사가 없어서 고양이들이 굶어 죽은 거다, 치료를 못 받아 죽은 거라며 걱정을 하더니 여자를 대신해서 길고양이 밥을 챙기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아들 녀석이 제 엄마에게 떼를 쓰기도 했거니와 아내 입장에서도 아이가 동물과 교감을 나누며 사회성을 높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다 사단이 일어난 겁니다. 그 여자만 우리 가족 주변에 어슬렁거리지 않는다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방심하고 있었던 저에게 벌이 내려진 겁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낮에 아들이 개에게 물렸었다고 집사람이 얘기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려 나갔는데 아내가 잠시 동네 이웃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산 쪽으로 혼자 가버린 아들 녀석에게 개가 달려들었던 모양입니다. 눈 깜짝할 새에 아들 녀석을 물곤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어느 집 개인지 확인도 못해서 따질 수도 없다고 분해했습니다. 산에 사는 야생 개일 수도 있지 않겠냐고 하니 그건 아닌 것 같다더군요. 아들 녀석이 고양이인 줄 알고 밥을 주려고 다가갔을 때 반짝이는 목줄을 봤다고 합니다. 누군가 키우는 개인 게 틀림없다고요. 걱정이요? 설마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질문은 아니시겠죠? 당연히 걱정됐습니다. 가뜩이나 마음에 병이 있는 아이가 몸까지 아프다고 하면 어느 부모인들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왜 병원으로 바로 가지 않았냐고요? 그때는 정말 큰 상처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렸다는 부위도 살짝 붓기만 했을 뿐 물린 자국도 보이지 않았고, 소독 후 약도 발라놓았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물린 게 아니라 발톱에 긁힌 걸 너무 놀란 아이가 말을 조리 있게 못하다 보니 물렸다고 표현한 건가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 녀석은 계속 자신에게 달려든 건 고양이라고 주장했으니까요. 그렇게 큰 고양이는 없다고 알려줘도 아주아주 큰 고양이라며 설명하기 바쁜 아이에게 아픈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처도 금방 아물고 상태가 나빠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은 말입니다. 그렇게 그 일이 잊혀져 갈 즈음 갑자기 아들의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3

처음에는 밤중에 잠을 잘 못 자고 깨기를 반복했습니다. 인기척에 거실로 나가보니 어둠 속에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더군요. 목이 너무 마르다며. 집 안에 있는 물이란 물은 죄다 들이마실 기세로 마셔대다 다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밤을 설친 다음 날이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멍하니 앉아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한낮에도 집안에는 커튼을 쳐놔야 했습니다. 낮잠을 자다 햇빛에 눈이 부시면 짜증을 부려댔죠. 그때까지만 해도 목감기가 아직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거울을 던져버렸습니다. 산산조각 난 거울 파편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며 빨리 자신의 눈앞에서 치우라고 소리치더군요. 깨진 조각을 보기만 해도 제 몸이 갈기갈기 찢기기라도 한다는 듯이. 거울 조각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뾰족한 것들은 다 치워버리라며 생떼를 부렸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조차도요. 점점 아이는 달래는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몸부림치는 아들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 저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제 엄마의 목을 끌어안고 비명을 질러대는 아이의 입 속에서 반짝이는 송곳니를 보았을 때는 섬뜩함마저 느껴지더군요. 이상하게도 아이의 치아는 길고 뾰족하게 자라있었습니다. 겨우 진정을 시키고 제풀에 지친 아이가 잠들었을 때만큼은 평화로웠습니다. 죽은 듯이 잠든 모습은 언제 난리를 피웠냐는 듯 천사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더 이상 아이를 집에서만 간호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안정과 치료를 위해 잠시 집을 나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병원으로 갔냐고요? 아뇨, 병원은 아니었습니다. 왜 이상하다고 하시죠? 네? 잠시만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희 부부가 일부러 광견병 주사를 맞히지 않으려고 회피했다는 겁니까? 그래서 아이의 상태가 악화되었다고요? 도대체 병원으로 가봤자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겁니까? 그런 수상한 간호사가 있는 병원이야말로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죄송합니다. 그때 일이 떠올라 좀 흥분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듭니다. 네, 압니다. 꼭 그 여자가 있는 병원으로 갈 필요는 없죠. 만약 저희 아들이 아무 주사나 맞힐 수 있는 백신 알레르기가 없었다면. 형사님들, 아직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시지 못하겠습니까? 아들은 단순히 개에게 물린 게 아닙니다. 광견병에 걸려 상태가 나빠진 게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겠지만 사실 아들은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제 의혹을 확신시켜 줄. 그래서 그 여자의 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의심했습니다. 아니, 확신했습니다. 아들을 공격한 개는 그 여자네 개일 거라고. 정말 개인 건 맞는지, 다른 어떤 짐승인 건 아닌지 두 눈으로 확인해봐야 했습니다. 집사람에게는 속옷 따윌 챙기려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혼자 빌라로 돌아왔습니다.

여자의 집 앞에 서서 벨을 눌러보았습니다. 아주 조용하더군요. 이상하죠?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문도 두드려 보았지만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집인 양. 혹시나 싶어 현관문 고리를 돌려보니 예상대로 문은 잠겨있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제가 올 걸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함정일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자도, 개도 없었습니다. 혹시 방에 숨어있거나 언제 저에게 달려들지도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집안 풍경은 여느 집과 별다를 바 없었습니다. 딱 필요한 만큼의 세간 살림을 갖춰놓은 구색이 그것조차 보여주기식인 것만 같았습니다. 왜인지 사람이 살고 있다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더 이상한 건 바닥에 깔린 흙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청소를 안 해서나 창문 밖에서 날아 들어온 흙먼지가 아니었습니다. 발바닥에 까끌까끌하게 달라붙는 진짜 모래흙이었습니다. 도대체 여자는 어딜 돌아다니길래 집 안에 그런 흙을 묻혀놓았을까요? 집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개의 사진을 찍어 아들 녀석에게 확인시켜 볼 생각이었지만, 대신 다른 증거라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뭘 찾아냈는지 아십니까? 서랍 속에 아주 잘 정리해 보관해뒀더군요. 우리 가족에 대해 면밀히 조사한 서류였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예상 가능했죠. 정말로 놀란 건 바로 우리 가족 사진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 잃어버렸던 지갑 속 사진이 그 여자의 집에 있었던 겁니다. 원래 한 장뿐인 사진이었냐고요? 아뇨. 가족 앨범에도 똑같은 사진이 있긴 한데, 하지만 가족사진을 왜 타인에게 주겠습니까? 가족 중 누군가 간호사에게 줬더라도 저한테 말을 했겠죠. 그 사진은 제 지갑 속에 있던 사진인 게 분명합니다. 그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 여자의 정체를 밝힐. 그렇게 정신없이 집 안을 뒤지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여자가 집으로 돌아온 줄 알고 몸이 굳어 돌아볼 생각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집밖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그런데도 오히려 저는 그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 따라가 보았습니다. 소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고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빌라 안에서.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 지하 보일러실 문 앞까지 다다랐습니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끼치던 그 냄새··· 불을 켜지 않아도 어둠 속에 무언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보일러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 냄새는 분명 어디에선가 맡아본 냄새였습니다. 쉽사리 어둠 속으로 들어가 전등불을 켤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여차하면 도망칠 준비를 하고 핸드폰 불빛으로 어둠 속을 비춰보았습니다. 그러자 무언가가 순식간에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저는 놓칠세라 불빛으로 사방을 훑어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지하실을 장악한 박쥐 떼의 한가운데에 제가 둘러싸여 있음을. 그 순간의 공포는··· 절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시 그 어둠의 저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디로 도망치더라고 붙잡힐 것만 같았습니다. 그들은 기어코 찾아냅니다. 찾아오고야 맙니다.

정체를 들킨 박쥐 떼들은 열린 지하실 문 밖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어떻게 지하실을 빠져나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쥐 떼에 휩쓸리지 않으려 저는 허겁지겁 계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층계참에서 그런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가쁜 숨을 고르려 애를 쓰는 저를 보면서도 그 여자는 태연하기만 하더군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고는 아주 뻔뻔하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집 문이 열려있는 게 도둑이 든 것 같다고. 저도 모르는 척 물었습니다. 도둑이 든 흔적이 있냐고. 없어진 물건은 없지만 집 안을 좀 뒤진 것 같다고 답하는 여자의 말에 전 증거품으로 가족사진을 챙겨 나오지 않은 걸 후회했죠. 그 사진이라도 있었다면 형사님들도 제 말을 더 믿어주셨을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저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도둑이 들었다면 개가 짖었을 텐데 개 짖는 소리는 듣지도 못했다고 꼬집었죠. 그러자 여자는 아주 천연하게 개는 없다고 하더군요. 며칠 전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며 잠깐 문을 열어놓은 새에 집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요. 키우는 개가 집을 나갔다고 말하는 여자의 무감정한 표정은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래서 더 화가 났습니다. 개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사고라도 나면 어쩔 거냐, 반대로 사람을 물지도 모르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자기 개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 단정했습니다. 집으로 이웃들은 초대하지도 못할 만큼 사나운 개라고 제 입으로 말한 것도 까먹은 듯이. 짐승이 사람을 무는 건 본능 아니냐고 저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흥분한 저를 보고도 여자는 그런 사고가 나지 않길 바란다며 덤덤히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좀도둑이 드는 사고 또한 더 이상 없어야 할 테니 경찰서에 신고하러 가야겠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계단을 내려오는 여자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이상한 힘이 저를 붙들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호흡도 점점 가빠왔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공황에 빠진 제 모습을 즐기듯 여자는 천천히 제 옆을 지나쳐갔습니다. 그 순간, 또다시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병원 약 냄새로도 덮을 수 없는 그 냄새. 바로 알아챘습니다. 어디서 맡았던 냄새였는지. 그 개울가에서, 저택 안에서 맡았던 아주 오래되고 축축한 그 냄새. 바로 죽음의 냄새였습니다. 저에게서 점점 멀어지던 여자의 손길이 어깨 위에 닿았을 때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습니다. 아까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계단 위에 떨어져 있던 걸 주웠다며, 혹시 내 것이 아니냐며 휴대폰을 내밀던 그 손은 얼음장같이 아주 차가웠으니까요. 그리고 그 손보다 더 시리고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다시 멀어져갔습니다. 예상대로 증거로 찍어놓았던 휴대폰 속 사진들은 모두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계단 위에서 주웠다고요? 제 휴대폰을 언제 줍고 언제 사진을 삭제했겠습니까? 거기 보일러실에 그 여자도 있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여자의 정체를.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그 여자의 정체가 뭐냐고요?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바로 흡혈귀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태까지의 모든 의혹이 설명됩니다. 가족들이 보았다는 비상한 능력도, 의심을 하면서도 감히 여자를 경계할 수 없게 만들었던 끌림도, 모두 사람을 홀리는 흡혈귀의 농간이었던 겁니다.

저도 처음부터 흡혈귀라고 예상했던 건 아닙니다. 저조차 누군가 저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콧방귀를 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게 들어맞았습니다. 밤에만 돌아다니는 생활패턴부터 시작해서 온갖 이상한 행동들, 그 창백한 얼굴, 뭔갈 제대로 먹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유, 비를 꺼리는 태도, 갑자기 나타난 수많은 박쥐들, 그리고 그 개까지! 아니, 개가 아닐지도 모르죠. 늑대로 변신한 그 여자의 수하일지도 모릅니다. 흡혈귀는 여행지에서부터 우리 가족을 노리고 따라온 겁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이용해 접근한 뒤 아내로 하여금 집으로 초대하게 만들고, 동물을 이용해 환심을 사고, 교묘하게 우리 가족 안으로 파고들어 온 겁니다. 좀 더 빨리 눈치를 챘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거스를 수 없는 우리 가족의 운명이었을까요? 핸드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내가 흐느끼며 말하더군요. 우리 아들이 숨을 거뒀다고. 내 아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4

이런 말을 하면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죽음에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집사람과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아들 녀석이 죽은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곧 흡혈귀로 변해버린다면 우리 아들도 그들처럼··· 서둘러야 했습니다. 아들이 흡혈귀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했습니다. 급하게 말뚝과 망치를 찾아 챙겨 들고 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 물건들은 어디서 난 거냐고요? 보일러실에서 가져왔습니다. 네. 보일러실은 창고 용도로도 사용합니다. 꽤 널찍해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보관해놓기도 하고, 낡은 건물이다 보니 보수할 일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공기구나 자재들이 항상 구비되어 있습니다. 수리 기사를 부르는 데에도 다 돈이지 않습니까? 간단한 건 입주민들끼리 고치면 되니까요. 서로 도우면서 살아아죠. 말뚝도 쓸 일이 있냐고요? 제가 말한 건 진짜 말뚝이란 게 아니라 말뚝 대용으로 쓸 만한 나무토막이었습니다. 열쇠요? 열쇠는 공동대표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긴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대표 중 한 명입니다. 그러니 더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박쥐 떼를 보았을 때 분명 지하실 문은 잠겨있지 않았습니다. 외부인이 드나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언제나 열쇠로 잠가두는 걸 잊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건 왜 자꾸 물어보시는 겁니까? 그게 중요한 문젭니까? 아들의 죽음 앞에서 저만 냉정한 줄 알았는데 형사님들도 꽤 냉정하시네요. 아니면 이런 사건을 너무 많이 접해봐서 무감각한 겁니까? 그렇다면 자식을 어이없게 잃은 부모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도 이해하시리라 믿겠습니다.

빈소에서는 노랫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또 한 번 기시감을 느꼈죠. 촛불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여행지의 교회 안에서 본 광경이 미래의 모습을 미리 내다본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나더군요. 환상이라고 생각한 것이 현실이고, 현실이라고 생각한 것이 환영인 건지···. 하지만 허망함에 젖어있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들의 관이 놓인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며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아마 자식을 잃은 아비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는 걸로 여겼을 테죠. 문 밖에서는 찬송가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아들을 위한 것들이겠지만 다 소용없는 짓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제 손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뒤에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란스런 밖과 달리 조용히 누워있기만 한 아들과 단둘이 방 안에 있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잠든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죽은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저렇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언제 흡혈귀로 돌변해 공격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착하기만 한 아들로 봐서는 안 됐습니다. 경계를 늦춰선 안 됐습니다. 아이가 일어날 낌새만을 기다리며 부동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은 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배도 고프고 잠도 오고, 너무 지쳤죠. 문 밖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는 이제 자장가 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끊긴 기도와 노랫소리에 적막감이 감돌자 저절로 눈이 떠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집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순간 저는 집사람이 흡혈귀라도 된 줄 알고 놀라 하마터면 망치를 휘두를 뻔했습니다. 제 반응에 아내는 미친 사람 보듯 어이없어했죠. 여긴 너무 위험하다고, 나중에 다 설명해줄 테니 우선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떠미는 제 손을 뿌리치며 아내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여기서 제일 위험한 건 당신 정신머리라며, 아들이 죽었는데 혼자 멍하니 앉아 뭘 하고 있느냐고, 아들은 당신 혼자 잃었냐고, 아들로 모자라 이젠 나까지 관 속에 넣고 싶은 거냐고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저는 관 속에 누워있는 아들을 다시 확인해보았습니다. 잠든 듯, 죽은 듯 변함없이 누워있는. 아니, 어쩌면 진짜 죽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네··· 인정합니다. 제 착각이었습니다. 제 아들을 흡혈귀로 만드는 게 그 여자의 계획이었을 거라고 확신했었습니다. 하지만 여자가 원한 건 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딸 아이였습니다. 형사님들도 이 얘길 듣고 싶으셨던 거죠? 그래서 일부러 여태까지 딸 아이에 관해선 묻지 않은 거 아닙니까? 제 입으로 직접 말하길 기다리면서?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단지 딸 아이의 이야기를 하려면 아들 녀석의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딸 아이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딸 아이와 저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형사님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처럼 그때도 자식 잃은 부부가 무슨 일로 싸우나 궁금함과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들이 열린 문틈을 통해 방 안을 훔쳐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눈빛들 중 딸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딸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을 더듬어보았습니다. 저는 다그치듯 딸은 어디 있냐고 집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오히려 집사람은 더 화를 내며 혼자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던 사람이 이제야 딸 생각이 나냐고, 자식이 아프든 죽든 혼자 방치되든 관심도 없던 사람 아니었냐고 비꼬아댔습니다. 엄마는 오빠를 챙기느라 바쁘고, 아빠는 가족한테 신경도 쓰지 않는데 남은 자식은 이웃의 손이라도 빌려야 하지 않겠냐고, 그동안 옆집 간호사가 얼마나 딸을 잘 돌봐줬는지 아냐고, 지금도 우리 대신 딸 아이를 봐주고 있다며 아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그 여자에 대한 칭찬만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심정이었습니다. 망치로 내려쳐야 할 건 바로 어리석은 제 머리였습니다. 귓속에다 말뚝을 박는 듯한 아내의 잔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를 부르는 아내를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허겁지겁 도착한 여자의 집 현관문에는 핏자국이 묻어있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었죠. 문은 잠겨있지 않을 테니까요. 핏자국은 어서 빨리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는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제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테죠. 흥분을 가라앉히고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바닥에 급하게 닦은 듯한 옅은 핏자국을 발견했습니다. 핏자국은 계단으로 이어져 보일러실 앞에서 끊어졌습니다. 이번에도 함정일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야 했습니다. 함정이라면 기꺼이 뛰어들어가 딸을 구출해 낼 용기를. 앞서 말했다시피 지하실은 꽤 큽니다. 숨어있던 박쥐 무리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공격할지 모르니 망치와 말뚝으로 방어태세를 갖추며 조심조심 어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눈앞에 관이 나타났습니다. 뚜껑이 덮인 채 놓여있던 그 관 안에 만약 여자가 잠들어 있다면 기회는 그때였습니다. 숨을 고르고 떨리는 손을 다잡으며 준비했습니다. 정확히 심장을 향해 말뚝을 꽂고 망치로 내려칠 수 있기를 기도하며. 뚜껑을 열어젖히고 치켜든 말뚝을 내리꽂으려던 찰나, 관 속에 든 건 간호사가 아닌 딸임을 확인하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겁을 먹고 주저한 게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딸 아이는 제 오빠와 똑같이 관 속에 들어가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정말로 죽어 버린 아들 녀석과 달리 핏기없이 누워있는 딸 아이는 마치··· 아마 그때까지도 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아들도 변하지 않았으니 딸 아이도 괜찮을지 모른다, 아니, 만약 이미 숨을 거뒀다면 행복한 하늘나라로 갔을 테니 차라리 죽은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악귀에게 영혼을 사로잡힐 바에야···.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아이의 몸을 살펴보았습니다. 팔에 상처가 있었지만 물린 자국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목을 확인하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대는데, 딸 아이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습니다. 죽어서 숨을 쉬지 않는 게 아니었습니다. 흡혈귀가 되었으니 숨을 쉴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결국 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좌절할 새도 없이 언제 눈을 떴는지 저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아주 깊은 잠에서 깨고 난 후 기분이 좋아진 아이처럼 빙긋 미소를 짓더군요. 제 오빠가 죽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 죽음이 뭔지 조차 모를 해맑은 아이처럼. 하지만 그 미소에 오히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흡혈귀로 살아가도록 놔둘 수는 없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는 내 손으로 끝내줘야 한다고. 한 손으로는 딸 아이를 지그시 누르고 말뚝을 든 손을 다시 치켜들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에 놀라 딸 아이는 버둥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사이 아이는 한 손으로는 제어하기 힘들 만큼 자라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면 아버지조차 물 수 있을 만큼. 팔을 물리고 깜짝 놀란 저는 뒷걸음질 쳤습니다. 그 틈을 타 달아나는 아이를 붙잡을 생각도 못 하고 얼떨떨하게 물린 부위만 감싸 쥐고 있었습니다. 심하게 물렸었냐고요? 저도 제 아들 녀석처럼 될까 봐 걱정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딸 아이처럼 될까 봐 경계하시는 겁니까? 아뇨. 제 딸은 그 정도로 저를 물진 않았습니다. 작정하고 물 생각이었다면 아예 절 공격했겠죠. 아이는 자기가 흡혈귀가 된 줄도 몰랐던 겁니다, 아직은···. 지하실 밖으로 달아나는 딸을 빨리 붙잡아야 했습니다. 자기가 무엇이 되었는지 인지하기 전에, 아예 인간의 자아를 잃어버리기 전에. 뒤늦게 쫓아가려 지하실 문을 나서는 순간 묵직한 둔기가 제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범인은 당연히 그 여자밖에 더 있겠습니까? 제가 쓰러진 틈을 타 딸 아이를 데리고 달아난 겁니다. 왜 달아났냐고요? 쓰러진 저를 그 자리에서 처리하지 않고? 아마 그때는 죽일 마음이 없었겠죠. 어쩌면 나중에 저도 흡혈귀로 만들려는 생각이었거나, 아니면 제 수하들에게 먹이로 던질 생각이었거나··· 아니, 모르겠습니다. 마귀의 생각 따윌 인간이 어떻게 짐작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때는 그딴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딸 아이가 납치됐습니다. 딸을 찾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5

겨우 몸을 추스르고 아이를 찾으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거리는 안개로 자욱했습니다. 그렇게 온 동네에 안개가 낀 광경은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안개는 처음 보는 안개가 아니었습니다. 흡혈귀가 우리를 쫓아온 그곳의 안개와 똑같았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딸 아이를 찾아 숨을 헐떡이며 안개 속을 헤치며 달릴 때 맡았던 냄새가 그때와 똑같았으니까요. 그때와 똑같은 역하고 소름 끼치는 냄새. 분명 쫓아오지 못하게끔 흡혈귀가 장막을 친 안개였겠죠. 하지만 냄새만은 가릴 수 없었던 겁니다. 냄새를 쫓아 산으로 향했습니다. 안개 자욱한 무덤가 사이로 도망치는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딸 아이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선 뒤쫓아갔습니다. 딱 잡히지 않을 거리 만큼만 유지하며 계속 달아나는 뒤를 쫓다 보니 어쩐지 일부러 저를 유인하고 있는 흡혈귀의 계략이 아닐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잠시 나무 기둥에 기대어 숨을 골랐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디선가 하울링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무 사이를 오가는 날갯짓 소리도. 짙은 안개 속에서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망치와 말뚝을 단단히 그러쥐고 준비했습니다. 안개 속에서 또다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빠··· 아빠··· 하고 저를 부르는 딸 아이의 목소리가. 진짜 딸의 목소리인지, 딸 아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흡혈귀의 농간인지 분간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새 부슬비까지 내리며 시야를 더욱 가렸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불빛으로 사방을 훑어보자 나무 사이로 늑대인지 개인지 모를 짐승이 침을 흘리며 으르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짐승은 순식간에 저를 향해 달려들었고, 저는 짐승의 눈을 노리고 불빛을 쏘았습니다. 괴로워하며 물러나던 짐승은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습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저를 부르는 딸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아빠··· 아빠··· 하며 딸 아이는 말했습니다. 이리로 오라고, 우리를 낫게 해준다고 했다고, 오빠처럼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안 아프게 해준댔다고. 딸 아이는 그 여자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 줄 듯이 얘기하더군요. 불쌍한 내 아이··· 못난 아비 때문에 자신이 악마의 수종이 된 줄도 모르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마저 다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끝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딸 아이의 송곳니는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잡으며 아이의 말에 수긍하는 척 손을 내밀었습니다. 착한 우리 딸은 순순히 아버지의 품으로 와 안겼습니다. 이상하게도 차갑게 식은 몸에서 맡아지는 딸 아이의 냄새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최대한 아이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럴 수밖에 없는 아비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둘이서 끌어안고 울고,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딸은 모든 걸 말해줬습니다. 혼날까 봐 얘기하지 못했다고, 그동안 여자를 몰래 만나며 비밀로 하자고 해서 그랬다고, 그러다 자신을 어디로 데려갔고, 자신의 몸에 무엇을 찔러넣었는지를. 아직 어린 줄로만 알았는데 이미 자신이 당한 무시무시한 일까지 다 기억하고 설명해 줄 만큼 자라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힘없는 아이들만 노리는 악귀의 잘못이죠. 미리 알아채지 못한 못난 아버지의 잘못입니다. ···다른 말은 없었냐구요? 아, 그 와중에 오빠 걱정도 했었습니다. 오빠는 정말 죽었냐고, 그냥 잠든 것 같은 얼굴이었다고, 오빠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 말은 인간으로서는 죽고 흡혈귀로 재탄생한 자신처럼 오빠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서둘러야 했죠. 오빠뿐 아니라 가족 모두의 영생을 바라며 자신과 같은 흡혈귀로 만들어 버리려는 마음을 먹기 전에. 갑자기 아이는 칭얼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고 싶다고. 그러면서 제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이제 집에 가도 되냐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압니다. 자신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달란 거죠. 아직 딸인 척 집으로 들어와 이제는 나와 집사람까지 노리려고. 아마 그때였을 겁니다. 이제 내 딸은 이 세상에 없다고, 아이는 흡혈귀가 되었다고 완전히 받아들였던 순간이.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땅에 내려놓았던 망치와 말뚝을 찾으려 더듬거리는데, 없었습니다.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든 박쥐가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살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제 팔을 물려고 달려드는 순간 녀석을 붙잡았습니다. 달아나려고 날개를 푸드덕대는 녀석을 움켜잡고 있는 힘을 다해 나무 기둥에다 냅다 내리쳤습니다.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도망치지 못하게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흡혈귀로 변신할까 봐, 우리 가족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버릴까 봐. 그렇게 정신없이 발로 밟다 보니 어느새 박쥐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가 한 짓에 대해 소름이 돋았습니다. 뒤돌아보니 딸아이도 놀란 듯 우두커니 서 있더군요. 망치와 말뚝을 양손에 든 채. 그 모습을 보자 방금 전까지의 흥분이 가라앉고 핏기가 가셨습니다. 무서웠냐고요? 아뇨. 슬펐습니다. 아, 딸 아이는 나를 죽이려던 모양이었구나, 눈앞의 저 아이는 더 이상 내 딸이 아니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입니다. 죄책감에 뒷걸음질 치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직 내 딸일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달싹거리는 입술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빗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들으려 한 발, 두 발, 제가 다가가면 아이도 한 발, 두 발, 그만큼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 발자국 더 뒤로 물러나던 아이는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결국 지옥의 사자가 악마가 된 딸을 잡아가기라도 한 듯 아래로 쑥 꺼져버렸습니다. 아이는 낭떠러지로 떨어진 겁니다. 너무 조그만 아이라 떨어지는 소리도 크지 않더군요. 그저 누군가 관목 위로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딸 아이는 마지막으로 저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아뇨, 들은 건 아이가 떨어지는 소리뿐이었습니다. 덤불에 가려 위에서는 아이의 모습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시신이요? 당연히 아래로 내려가 뒤져보았죠. 하지만 어디에도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형사님들도 박쥐의 사체를 못 찾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증거를 남길 리 없죠. 제가 죽인 박쥐가 그 여자가 아닌 건 알고 있습니다. 사악할 뿐만 아니라 영악한 여자가 직접 움직일 리는 없으니까요. 제 수족을 자유자재로 부리며 자신에 대한 흔적은 일절 남기지 않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형사님들이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딸을 찾기 위해 온 산을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비를 맞으며 울부짖고 다녔으니 신고가 들어갈 만도 했습니다. 가증스럽게 그 여자가 신고했겠죠. 딸을 못 찾게 하려고, 내 딸을 자신의 손아귀에 완전히 넣기 위해! 아뇨, 딸은 아들 때와는 달랐습니다. 첫째 아이의 피는 위험했을 테니까. 아픈 아이의 피는 더러울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저희들의 양식인 피는 깨끗해야 할 테니까. 그래서 아들 녀석에게는 공격만 했던 겁니다. 마셔도 되는 피인지 아닌지 우선 피 맛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아들을 노리는 걸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서. 결국 그 계획은 들어맞았죠. 아들에게 온 정신이 팔린 사이 딸 아이에게 마수를 뻗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딸 아이가 도망친 거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이제야 제 이야길 이해하시는군요? ···네? 뭐요? 여자가 아니라 나한테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친 거 아니냐고요? 아니, 자식이 왜 아버지를 피해 도망친다는 겁니까? 네네, 저도 인정합니다. 망치와 말뚝을 들고 뒤쫓는 모습이 자신을 죽이려 드는 모습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저는 아이가 괴물로 살아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려고 그랬던 겁니다. 물론 실패했지만···. 딸 아이의 생사와 행방을 누구보다 알고 싶은 사람은 접니다. 딸이 어디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는 아비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지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딸이 살아 돌아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또 죽일 계획이냐고요? 형사님들··· 저는 제 딸을 살리기 위해 죽이려 했던 겁니다. 인간답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게. 그런데 꼭 그렇게 저를 자식을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아비 취급해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화가 난 게 아니라 답답해서 그럽니다. 만약 제 딸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제 팔이라도, 아니, 목숨이라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형사님들이 그래 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서 가져가세요. 저를 감옥에 넣든, 사형장으로 끌고 가든지 하십시오. 그리고 대신 제 딸을 돌려주십시오. 아들은 어떻냐고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죽은 아들과 괴물이 된 딸을 예전의 모습 그대로 되돌리고 두 팔로 안을 수만 있다면 뭐를 마다하겠습니까? 부활이요? 네, 부활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딸 아이가 제 오빠의 부활을 바랐듯이··· 네? 아뇨, 아이가 직접적으로 부활을 바란다고 말한 건 아닙니다. ···네? 딸 아이 말고 제가 그렇게 말했냐고요? 평소에 그런 말을 딸 아이에게 자주 했냐고요? 글쎄요. 아마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면서 그런 말을 했을지는 모르겠네요. 네, 저희 아이들은 모태신앙입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묻습니까? 혹시 그 여자가 일부러 독실한 신자들만 골라 흡혈귀로 만들어버리고 있기라도 한 겁니까?

잠깐만요, 혹시 형사님들도 그 여자를 만나봤습니까? 그렇다면 아실 거 아닙니까?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마귀의 말을 믿으시는 건 아니죠? 아뇨, 딸 아이가 떨어질 때 뭐라고 했는지 전 듣지 못했습니다. 정말 딸 아이가 살려달라고 말했다면 그건 마귀로부터 자신을 살려달라는 말이었겠죠. 그렇다면 왜 떨어졌겠습니까? 그리고 그 여자가 딸 아이가 살려달라고 한 말을 들었다면 본인도 거기 있었다는 증거이지 않습니까? 뭐라고요? 저로부터 도망치느라 산으로 갔다고요? 하, 적반하장입니다. 그럼 그렇다고 쳐봅시다. 그런데 왜 하필 그곳으로 도망쳤을까요? 왜 하필 아들의 묘지 자리로 봐 둔 산으로 도망쳤을까요? 그건 바로 우리 가족 전부를 한자리에 모아서 해치워버릴 생각이었던 겁니다. 우리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 들어온 것도 계획적이었겠죠. 정보를 알아내려고. 그곳은 신도들을 위한 공원묘지니까요. 신고를 한 이유도 그때문이겠죠. 계획이 어긋났으니까. 우리 가족을 모두 흡혈귀로 만들기 전에 자신의 정체가 들통났으니까. 뭐라고요? 신고 건은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요? 다른 이유란 게 뭡니까? 정말 미친 사람이 있다고 신고라도 했답니까? 한 번이 아니라고요? 예전에? 아아, 교회 묘지 때문에 민원 넣었던 사람들 말이군요? 뒷산에 공원묘지를 설립할 때 인근 주민들 중 반대하던 사람들이 있긴 했었습니다. 등산하다 무덤가 옆을 지나가면 오싹하다느니, 주위 땅값이 떨어진다느니 말들을 떠들어댔죠. 하지만 교회 소유의 땅에다 뭘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저렴하게 묘지를 제공해주는 덕분에 장례를 치르기도 벅찬 신도들에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줄 아십니까? 요즘은 화장이 흔하긴 하지만 여전히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온전한 모습으로 하길 바라는 신도님들이 아직 많습니다. 네, 원래대로라면 제 아들도 준비된 묘지에 안장되어 이미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겠죠. 형사님들이 자식을 잃은 아버지를 이렇게 붙잡아두고 있지만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왜 자꾸 저희 교회에 관련해서 물어보시는 겁니까? 제 종교 활동에 무슨 문제 있습니까?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 아닙니까? 네, 당연히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죠. 타종교를 배척하는 나라들이 얼마나 많고 무서운지 선교사님들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어선 안 되죠. 선교사님들이요? 몇 분 알고는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네? 저 말입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외국어 한마디도 못하는 제가 어떻게 그런 큰 역할을 맡을 수 있겠습니까? 전 제 그릇을 압니다. 제가 담을 수 있는 양은 따로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조그만 모임에 장을 맡고 있긴 합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소박한 성경공부모임입니다. 평소 성경에 대해 더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신도님들과 함께 하는 모임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네요. 우연히 저희 빌라에 같은 신자 분들이 몇 분 계셔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꼭 신자 분들만 참석하는 모임은 아니고, 반상회나 친목 도모로 겸사겸사 모였을 때에도 세입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성경 말씀을 한두 마디 나누기도 합니다. 저희 빌라 사람들은 두루두루 사이가 좋아서요. 네, 맞습니다. 같은 교회 신자 분께서 이사할 집을 찾을 때에 저희 빌라를 추천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형사님들도 아시다시피 집만큼 중요한 게 이웃이지 않습니까? 반대의 경우요? 반대라면 어떤? ···아뇨, 저는 종교를 억지로 권유하지 않습니다. 만약 타 종교인이거나 종교가 없는 분들에겐 실례니까요. 간호사 때처럼 먼저 가까운 곳에 다닐 만한 교회가 없는지 물어오면 저희 교회를 추천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설마 그 여자가 제가 우리 교회를 다니라고 강요했다고 합니까? 그거야말로 거짓말입니다. 처음 교회에 관해 말을 꺼낸 건 그 여자였습니다. 이건 들은 귀가 많으니 다른 사람들과 대질해보면 제 말이 맞다는 게 증명될 겁니다. 제가 말했죠? 그 여자는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형사님들이 정작 찾아야 할 제 딸 아이는 찾지 않고 쓸데없는 질문만 하고 있는 것도 다 그 여자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겁니다. 제가 제 딸을 죽였다고 믿고 싶다면 그렇게 믿으십시오. 그리고 절 체포하세요. 감옥에 넣으세요. 대신 제 딸을 찾아주십시오. 지금 바로 제 딸을 찾으러 나가달란 말입니다! 시체로든, 괴물이 된 모습이든, 자식의 생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아버지를 앞에 두고 형사님들은 이렇게 계속 질문만 하고 있으실 겁니까? 또 뭐가 궁금합니까? 다 대답해드리죠.

···너무 하시는군요. 방금 전까진 저를 제 자식 죽이려 드는 아비 취급하더니 이제는 제 아이 탓으로 몰려는 겁니까? 네, 저를 물기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죽이거나 괴물로 만들려던 생각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그랬던 것뿐입니다. 그렇게 심한 상처도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저도 벌써 흡혈귀가 되어 여기 계신 형사님들을 가만뒀겠습니까? 보세요. 살짝 멍이 든 정도일 뿐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아뇨, 딸이 문 자국은 여기 좀 더 왼쪽에··· 이 상처 말입니까? 아마 산속에서 헤맬 때 나뭇가지에 찔린 모양입니다. 그때는 아픈 줄도 모르고 사방을 헤치고 다녔으니까요. 이런 상처가 난 줄도 몰랐습니다. 그건 또 뭡니까? 대마 오일이요? 네. 그게 뭔지는 저도 압니다. 아들 녀석의 치료용으로 써본 적이 있으니까요. 설마 벌써 저희 집까지 뒤진 겁니까? 하지만 문제 될 거 없을 텐데요?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입니다. 원하시면 처방전도 보여드리죠. 해외에서 구입한 적이요? 제가 직접 말입니까? 잠깐, 잠깐만요. 아이 치료용으로 쓰는 걸 왜 제가 섭취한 적 있냐고 묻는 겁니까? 설마 지금 저를 마약중독자로 의심하는 겁니까? 여태껏 제가 한 말을 마약이라도 해서 헛소릴 지껄이는 거라고 들은 겁니까? 팔에 난 이빨 자국과 상처도 주삿바늘일까봐 의심해서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본 겁니까? 똑똑히 보십쇼. 이게 주삿바늘인지 아닌지. 이건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니까 악마가 활개를 치며 무고한 시민들을 해치고 다니고, 결국 풍비박산 난 한 가정의 가장이 대신 일을 해결하느라 동분서주하다 난 상처니까! 누가 모를 줄 압니까? 그 여자가 주사에 대해서도 지껄였겠죠. 뭐라고 합디까? 자기 병원에서 맞으라던 백신을 맞지 않았다며 또 아동학대니 뭐니 운운했습니까? 하지만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겠죠. 아들 녀석이 자폐증을 앓은 이유에 대해서도 나 몰라라 하는 작자들인데! 그러니 주삿바늘일 리 있겠습니까? 하나뿐인 아들이 백신을 맞고 그렇게 된 이후로 우리 가족은 어느 누구도 백신은커녕 감기 주사조차 맞지 않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얘기라고요? 형사님 자식이 그렇게 된다면 지금과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식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원이 눈을 맞추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인 부모에게? 네, 맞습니다. 그런 좌절과 고통의 나날에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희망을 준 것이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정신적 지지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신체적, 물질적으로도 우리 가족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힘들 때 누구보다 도움의 손길을 준 이웃들이자 형제자매들입니다. 사람이라면 응당 도움을 받았다면 도움을 되갚아야 하죠. 그래서 교회 일에 솔선해서 참여했던 겁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픔을 나누고, 고단한 일이 생기면 팔을 걷어붙여 돕고. 네, 맞습니다. 지하실에 있던 그 관도 교회에 놔둘 자리가 부족하다고 해서 저희 빌라에 보관해두고 있던 것들 중 하나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보일러실은 넓으니까요. 제가 간호사의 관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보일러실에 관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 여자는 한 번도 열쇠를 빌려 간 적이 없는데? 딸 아이를 왜 거기 눕혀뒀겠습니까? 일부러 보란 듯이? 뭐라고요? 아니라고요? 원래 평소 딸 아이가 지하실에 자주 내려가 관 안에서 놀고 그랬다고요? 뭐, 그랬을 수도 있죠. 아이들이니 얼마나 호기심이 많겠습니까? 그렇다면 딸 아이를 꼬드겨 열쇠를 훔치게 해선 지하실로 들어간 게 분명합니다. 물론 형사님들에겐 딸 아이가 자기를 지하실로 데려간 거라고 거짓말했겠죠. 도둑 신고는 어떻습니까? 하지 않았죠? 그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여자입니다. 뭐라고요? 도둑이 아니라 이사 때문에 현관문을 잠그지 않았던 거라고 했다고요? 이것 보십시오. 저에게 했던 말과 경찰에게 한 말부터 다르지 않습니까?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갑자기 이사를 나가려고 했겠습니까? 그것도 이웃들 모르게 몰래? 증거를 없애려는 수작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형사님들, 지금 이 순간에도 흡혈귀들은 정체를 숨긴 채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량한 이웃인 척, 평범한 직장 동료인 척, 친구인 척, 신실한 신자인 척 가면을 쓰고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치는 길거리의 행인들 중에도 얼마나 많은 흡혈귀들이 숨어있겠습니까? 그러다 기회를 포착하면 본색을 드러내고 사냥을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 가족이 당했던 것처럼. 우리 가족의 비극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결국 악마는 마수를 뻗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흡혈귀로 만들고, 종국에는 인류를 파멸하고 말 겁니다. 제 얘기를 믿지 않고 악마의 거짓말만 믿는다면.

···제가 거짓말한 적은 없냐고요? 만약 제가 이 자리에서 거짓말을 했었다면 지금 당장 지옥 불에 떨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예전? 예전 언제를 말하는 겁니까? 해외에서요? 네, 해외여행이 처음이라고 말했죠. 정확히는 가족들과 함께 떠난 해외여행 말입니다. 여행 목적이 아닌 다른 일로 혼자 나간 적은 있습니다. 설마 그걸로 거짓말했다고 우기려는 건 아니겠죠? 무슨 목적이었냐고요? 그냥 일 관련이었습니다. 가장이 가족을 부양하려면 해외든 국내든 직장에서 가라고 하면 가야 되지 않습니까? 누굴 만난 적이요? 누굴 말입니까? 아아, 그 유학생 말입니까? 네. 우연히 출장지로 간 곳에서 공부 중이던 저희 신도분과 잠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무슨 얘길 나눴냐고요? 그냥 안부를 묻고, 평범한 대화들이었죠. 별다를 게 있겠습니까? 교단에 대해서요? 물론 교단 소식도 이야기 나누긴 했습니다. 타지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있으니 궁금한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게 뭐 이상합니까? ···친구요? 잠깐만요, 이제 기억납니다. 네, 친구분도 있었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현지인이었습니다. 그때 오해받았던 일을 묻고 싶은 거죠? 숨기지 않겠습니다. 정말 오해였으니까요. 저희끼리 나눈 대화인데 통역이 서툴러서 잘못 전달됐던 겁니다. 일이 좀 커져서 현지 경찰까지 오긴 했지만 서로 오해를 풀고 잘 마무리됐었습니다. 전도요? 형사님이 그렇게 얘기하시니 그때 그렇게 오해했을 수도 있었겠네요. 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제가 선교사도 아닌데 왜 그러겠습니까? 가족 여행 때요? 아뇨, 거기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세계 각국에 유학 중인 신도들을 다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여행 때는 어떻게 예배를 드리냐고요? 저희가 신실한 신자이긴 하지만 처음 가는 해외여행 때까지 가족들에게 닦달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온전히 여행만 즐기고 싶었으니까요. 물론 기도 시간은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기도 정도야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아뇨, 교회에 갔던 건 예배나 기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앞서 다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곳에서··· 해외 지부라뇨? 아니, 외국어 한마디도 못하는 제가 무슨 수로 거기 교회 자리를 알아보고 건물을 사겠습니까? 그 저택이요? 하··· 저는 알지도 못 하는 일일뿐 더러, 만에 하나 저희 교단에서 그 저택을 헐값에 사려 한다면 저는 극구 말릴 겁니다. 거긴 악마의 소굴이니까요. 해외 지부든, 선교든, 뭐든 전 모르는 일입니다. 저희 교단에 대해 그렇게 궁금하시면 직접 그리로 가서 물어보십시오. 벌써 물어봤다고요? 그럼 저와 상관없는 일이란 걸 알지 않습니까? 가이드는 또 왜요? 뭐가 문젭니까? 같은 교회에 여행사를 다니는 분이 계셔서 저렴한 패키지 가격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게 그렇게 큰 문젭니까? 법에 저촉되기라도 합니까? 아뇨,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 없습니다. 딱히 친분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원래 교회에 자주 나오지 않던 분이었습니다. 나오지 못한 이유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신앙 활동에 충실하지 못한 분까지 제가 챙겨야 하는 건··· 아, 병원에 입원하셨다고요?

그건 몰랐네요. 안 됐습니다. 사고입니까? 병이요? 그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후로요? 그렇군요. 네? 같은 여행객들 중에서도요? 이상한 우연이기는 하네요. 그렇죠. 우연이죠. 우연이 아니면 뭡니까? 아들이 병원에 갔던 거요? 그건 단지 감기였을 뿐입니다.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걸린 병이 감기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왜 엮으려고 하는 겁니까? 왜 하필 그 간호사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갔냐고요?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그 마귀가 있는 곳인 줄 제가 알고 갔습니까? 오히려 그 여자한테 물어봐야죠. 왜 하필 내 직장과 가까운 그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는지, 왜 최근에 그곳으로 옮긴 건지 그 여자를 의심해야 맞지 않습니까? 원래는 가족들이 다니는 곳이 따로 있지만 그때 집사람에게 일이 생겨서 제가 아이들을 챙기느라 직장과 가까운 병원으로 데려간 게 하필 그 여자가 근무하던 병원이었던 겁니다. 그러고 보니 집사람에게 생겼던 일도 수상쩍네요. 그 여자가 수작을 부린 게 아니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겨우 감기 정도로 아들 녀석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얼마나 혈안이었는지 아주 호시탐탐 기회만 노려댔습니다. 그러니 제가 왜 아들의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그 병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갔는지 이해하시겠죠? 같은 신도분이 진찰하시는 곳이라 믿을 만합니다. 실력도 좋으시고요. 물론입니다. 저희 가족 건강검진은 항상 그곳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피검사요? 잠시만요. 피검사를 받을 때 주사기로 피를 뺀 것과 약물이 든 주사를 맞는 걸 동일선상에 두고 제가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려는 겁니까? 그건 형사님들도 억지인 걸 알고 계시죠? 피를 빼는 것과 몸속에 이상한 걸 집어넣는 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 여자도 얘기했습니까? 자신도 제 딸의 피를 뽑아갔었다고? 부모도 모르게 몰래? 딸 아이가 말해줬습니다. 딸 아이의 피는 먹어도 괜찮은지 확인하려던 거였겠죠. 간호사는 피에 대해 자주 말했다고 했습니다. 피는 중요하다고. 피에 대한 굶주림을 숨길 생각조차 없었던 겁니다. 저더러도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라며 적극 권한 적이 있습니다. 백의의 천사인 양 굴며 헌혈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린다고 떠들어댔지만 실은 제 목구멍 속으로 다 들이붓고 있었겠죠. 그때는 흡혈귀인 줄도 모르고 정말 순수한 마음에 헌혈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헌혈을 해야겠다는 의무감도 생길 뻔했으니까요. 어떤 질문이요? 그냥 일반적인 걸 물어봤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경이롭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네? 뭐, 그것도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한 사람의 몸에 있는 피를 전부 빼내서 다른 사람의 피로 대체하는 게 정말 가능한지. 예전에 어디선가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나서 물어본 것뿐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헌혈이나 피를 뽑는 데에는 아무런 불만 없습니다. 독이 든 주사를 맞지 않는 것뿐이지. 백신을 맞은 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더럽다고 생각합니다. 백신을 맞은 피를 다른 피와 바꿀 수 있다면 바꾸겠냐고요? 유도 질문인 건 알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죠.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러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제 아들은 죽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딴 소용없는 짓을 할 리 없잖습니까?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다 대답해드릴 테니. 딸의 팔에 물린 자국이요? 간호사가 피를 뽑았다고 했지 않습니까? 하하하! 제가 뽑았냐고요? 뽑아서 뭐 하게요? 죽은 아들 녀석의 몸에다 딸 아이의 피를 뽑아 바꾸려 하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제가 바봅니까? 이미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도 아니고 그딴 짓을 왜 하겠습니까? 게다가 온몸에 피가 뽑힌 아이라면 그렇게 산속을 도망 다닐 수나 있었겠습니까? 아아, 흡혈귀가 되었으니 사람이 아니니까 가능하다고 얘기하시려고요? 여태까진 흡혈귀 운운하는 얘길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이젠 믿고 싶으신가 봅니다? 전부는 다 필요 없었다? 소량만? ···문에 묻힐 정도의 양만 필요했었다, 제가 그렇게 계획을 바꿨을 거라고 추측하는 겁니까? 형사님들 추측대로라면 제가 딸 아이의 피를 뽑아다 현관문에다 덕지덕지 발랐다가 증거를 없애려 닦아냈다는 겁니까?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죠? 그렇다면 그 여자의 집 문에 묻어있던 피는 어떻게 설명이 되죠? 제가 간호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그런 거다? 하지만 딸 아이의 피를 뽑았다는 증거는 간호사뿐 아닙니까? 피를 뽑았는지 안 뽑았는지 증거도 없는 저보다 피를 뽑은 게 확실한 그 여자야말로 가장 의심해봐야 할 용의자 아닙니까? 다른 이유로 피를 뽑았다고요? 무슨 이유요? 내 딸 아이의 피가 신선한지 아닌지 확인해보려고? 검사요? 무슨 검사? 감염 검사? 전염병? 하, 이번엔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그런 건 믿음이 부족한 자들에게 하늘이 내리는 벌일 뿐입니다. 우리 가족처럼 신실한 사람들이 걸릴 리 없잖습니까? 보십시오.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검사받아보라고 하면 거부할 줄 압니까? 전 두려울 것 없습니다. 집사람도 기꺼이 받을 겁니다. 그 전에 제 딸 아이의 검사 결과는 어땠는지 알려 주십시오. 분명 간호사가 검사를 해봤겠죠. 그리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결론이 나왔겠죠.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더러운 피였다면 딸을 노렸을 리 없으니까. 아들? 죽은 자식은 왜 검사하려는 겁니까? 자식이 죽은 걸로 모자라 온전히 묻지도 못 하게 하려는 겁니까? 시체를 어디다 보관해놨으면 왜요? 쳐들어가서 수갑이라도 채울 겁니까? 구속시킬 겁니까? 비꼬는 게 아니라 형사님들의 억지 주장에 기가 차서 그럽니다. 제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당장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물론 딸 아이도 제 손으로 찾아낼 겁니다. 죽었든 살았든, 그 여자의 수중에 떨어졌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반드시 구출해낼 겁니다. 구출한 뒤에 뭘 하긴요? 영혼을 정화시켜 천국으로 갈 수 있게끔 도와줘야죠. 방법은 제가 알아서 강구합니다. ···갑자기 딸 아이 나이는 왜 묻습니까? 양띠이긴 한데 도대체 왜 묻냐고요? 하아··· 이번에는 희생양 가지고 꼬투리 잡으려는 겁니까? 당연히 아이들에게 성경을 들려줄 때 언급한 적이 있었겠죠. 희생양이든 부활이든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에 위험한 내용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겠습니까? 설마 이 핑계로 금서로 만들고 싶은 겁니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말을 돌리는 게 아닙니다. 자꾸 우리 교단을 들먹이고 우리 가족의 신앙생활을 탐탁지 않아 하는 건 그쪽이지 않습니까! 내 딸을 찾아주지도 못하고 내 아들의 죽음을 막지도 못했으면서 사탄의 말에 현혹되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바로 당신들이!

···뭐? 거짓말. 그것도 그 여자가 거짓말한 거야. 형사님들을 속이려고 한 말입니다. 아하, 그렇게 말하면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거라고 그 여자가 시킨 거죠? 그렇죠? 왜냐하면 내 딸은 절대 백신을 맞았을 리 없으니까. 맞으면 안 되니까. 그래선 안 돼. 그럴 순 없어! 제 말을 믿으십시오. 죽어 지옥으로 떨어지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겁니다. 괴물이 된다면 이 세상 자체가 지옥이 되어··· 잠깐, 뭐야? 저 사람들은 뭔데 들어오는 겁니까? 당신들 누구야? 왜 이래? 이거 놔! 잡아야 할 건 내가 아니라 그 여자라고! 그 흡혈귀라고! 내 몸에도 독을 주입시키려는 수작인 걸 모를 줄 알아? 내 아들에게 했던 짓을 똑같이 하려고? 아냐, 이제 알겠어. 당신들도 흡혈귀지? 으아아악!

너희들이 이긴 것 같아? 웃기지 마! 네 놈들도 신이 만든 피조물에 불과해. 신이 너희 같은 괴물을 왜 만들었겠어? 우리를 위해서야. 우리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지혜가 있는지, 괴물에 맞서 싸울 용기가 있는지, 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그러니 너희들은 도구에 불과해. 신의 선택을 받은 우리와는 존재 의미 자체가 다르다고! 그래, 맞아. 우리 가족은 선택받은 거였어. 내 아들은 죽을 운명이 아니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이 땅에 내려온 아이였어. 그러니 다시 부활할 거야. 당신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느라 한번은 목숨을 잃었지만 더 이상은 없어. 우리 모두 심판받을 거야. 그래,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어. 종말이 다가온다. 그래서 그 여자가 온 거였나? 재앙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우리 딸도 알고 있었던 거지.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만 부활과 재앙과 심판의 퍼즐을 맞출 수 있음을. 딸 아이는 나를 피해 도망친 게 아니었어. 당신들을 피해 도망친 거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이 부여받은 임무를 방해하려는 자들을 피해. 그깟 백신 하나로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전염병은 맛보기일 뿐이야. 그 여자는 징조였어. 피를 통한 괴물의 탄생, 피를 통한 역병, 피를 통한 저주! 종말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의 계시! 이 모든 게 다 신의 의도였던 거야. 피를 통해 자손을 번창한 자들을 피를 통해 그 대를 끊어 보여 주시는 거다. 믿음도 없는 무지한 인간들에 대한 징벌! 나를 가둬봤자 아무 소용 없어. 그깟 총과 수갑으로 신의 권능에 대적하려고? 가운을 입고 유세를 떨어봤자 전지전능한 신의 뜻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알아차린대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지. 그 누구도 신의 의지를 막을 수 없어. 죽은 자를 살리는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자가 아니라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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