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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헬라(hela)

2020.10.12 07:2710.12

사막 한 가운데 보석같이 빛나는 도시가 모래에 던져 놓은 것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도시에 시선을 가까이 가져가 보면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면 보이는 세포안의 부유물들처럼 도시의 차와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도시의 중심을 향해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도시의 중앙으로 다가갈수록 건물들은 하늘에 닿을 듯 높아졌다. 그 정가운데에는 주변을 둘러 싸고 있는 높은 빌딩들과 다르게 낮은 두 개의 건물이 갈대밭에 그려진 미스터리 써클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는 아주 오래된 시청 건물로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 밖에서 건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이 둥그렇게 둘러 싸고 있었다. 맞은편에 위치한 다른 하나는 시청과 상반되게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대저택이었다. 이 저택은 주위 건물로부터 시선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그 주변을 높은 외벽이 둘러싸고 있었고 정면에 마주한 시청쪽으로는 담벼락이 낮게 되어있어 시청 건물이 있는 울창한 숲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지금 앞마당에서는 이 저택의 여주인 랙스가 잘 정돈된 정원의 고풍스러운 분수대  옆의 티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제 갓 20살을 넘긴 젊은 아프리칸아메리칸 혈통을 가진 여성인 그녀는 이 저택에서 나고 자랐다. 큰 부를 가지고 태어난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할 수 있었고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하지 않아도 됐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가 누군지 모르고 자랐다. 아니 부모라는 단어 자체가 그녀에게는 너무도 낯선 단어로 느껴졌다. 아주 어린시절에는 궁금한 적도 있었지만 그저 자신의 유전적 뿌리에 대한 호기심 정도였을 뿐 이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저택에 상주하는 보모들과 하인들에게 거의 완벽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왔다. 마치 그녀가 부모에 대해 궁금하거나 그리워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저택의 하인들은 그녀가 육체적 정신적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살펴 왔다.

 그녀는 시선을 책에 고정한 채 가볍게 손을 들어 하인을 불렀다. 그녀의 몸종인 조지는 하얀색 피부와 깔끔하게 다듬어진 금발, 그리고 파란눈을 가진 전형적인 백인이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보이자 잰걸음으로 다가와 능숙하게 커다란 파라솔을 펴서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가렸다. “목이 마르네.” 그녀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지는 그녀의 집중이 방해받지 않게 최대한 조용한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때마침 랙스의 동거인 리에타가 언제나처럼 술에취해 정원을 가로질러 랙스에게 걸어왔다. 술에 만취했지만 걸음만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리에타는 랙스보다 서른살 정도는 많아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다. 그녀도 랙스처럼 윤기나는 검은 피부를 가졌으며 주름진 눈매가 랙스와 많이 닮았다. 리에타의 오른손에는 갓 구워진 비스킷과 버터, 애플 잼 등이 담긴 바구니가 들려있었고 왼손에는 반쯤 마신 고급 샴페인 병이 들려있었다. 리에타는 테이블 위에 바구니를 올려놓고 랙스의 맞은편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녀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술에 취해 어눌해진 발음으로 랙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랙스. 이렇게 햇빛이 강한 날에는 밖에 오래 있지 말라고 했잖아!” 리에타는 정원에 앉은 랙스를 볼 때마다 자외선을 조심하라는 잔소릴 했다. 거대한 자외선 차단막이 도시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지만 태양은 점점 뜨거워 지고 있었고 요즘들어 부쩍 도시를 뚫고 들어오는 자외선양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랙스는 한 번도 술에 취하지 않은 리에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보통 손에는 술병이 들려있거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도 리에타는 자신이 직접 구운 빵이나 비스킷을 랙스에게 들이미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런 그녀가 랙스는 무척 귀찮고 부담스러웠지만 이 일이 그녀가 이 집에서 하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깨달은 뒤 부터는 싫어하는 내색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랙스가  바구니 안의 비스킷 하나를 꺼내 애플 잼을 발라 조금 베어 물고 있을 때 어느새 나타난 조지가 조심스럽게 탁자위에 물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조지는 정원의 가운데 길이 아닌 하인들만 걸어 다니는 정원 뒷길을 걸어 다니기 때문에 랙스는 조지가 물컵을 내밀었을 때야 그가 온지 알아차렸다. 랙스는 물을 조금 마시면서 모니터를 열어 오늘의 기사를 검색했다. 오늘도 들개에 대한 기사가 있는지 가장 먼저 검색한다. 랙스의 최근 관심사는 들개들이다. 그 이유는 얼마 전 겪은 사건 때문이었다. 며칠전 그녀는 차를 타고 도시의 외곽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도로옆으로 사막이 보이는 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들개 한마리가 사막이 보이는쪽 가드레일을 넘어 그녀의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차는 들개를 피하는 것보다 충돌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방향을 회피하지 않고 들개를 치고 지나갔다. 사고 뒤에 갓길에 차를 댄 그녀는 차에서 내려 도로 위에 누워있는 들개에게 다가갔다. 몸통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들개는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랙스의 눈과 들개의 눈이 마주쳤다. 들개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허공에 허우적 거리는 발로는 몸뚱이를 일으킬 수가 없었다. 랙스도 놀란 눈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멀리서 들개 한 무리가 뛰어오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그녀는 황급히 차에 올랐다. 아슬아슬하게 차 문이 닫히자마자 들개들은 차에 뛰어올라 맨 이빨로 차를 물어뜯었다. 들개들은 부러지는 이빨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조금 열려있던 창문 틈 사이로도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어 그녀를 위협했다. 그녀가 창문을 닫으려 하자 들개들은 더 힘차게 머리를 들이밀면서 위협했다. 차가 출발을 하고 나서도 한참을 이동해서야 들개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다. 놀란 랙스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호흡도 빨라졌다. 그녀는 점점 숨이 가빠지고 숨을 쉴 때마다 쌕쌕 소리가 났다. 그녀는 눈앞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결국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떳을 때 그녀는 응급실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았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알러지 반응을 일으켰으며 조금만 더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면 위험할 뻔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들개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차에 달려들었던 들개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왠지모르게 경외심 비슷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그 들개들은 동료의 죽음 앞에 자신들의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차에 달려들었다. 지금껏 마땅한 친구없이 살아온 그녀는 들개들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 들개를 검색해보다 들개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됐다. 들개들은 아주 오래전에는 인간과 가장 친근한 동물이었다고 한다. 한 집에서 같이 지냈으며 심지어 인간과 다른 종이었지만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고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을 물어뜯으려고 했던 그 커다란 짐승이 거실에 있는 상상을 해봤지만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그렇게 인간과 함께 살오는 개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게 더이상 사람들과 살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 무리를 지어 생존해 오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지만 검색만으로는 더 이상의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랙스의 맞은편에 앉은 리에타가 고개를 떨구고 코를 골고 있었다. 랙스는 턱을 들어 리에타를 가리켰다. 조지는 곧바로 리에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고 침실로 향했다. 랙스가 그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의 귀에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하던일을 멈추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시의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어떤일을 강제 할 수 없지만 이런 그녀에게도 일주일에 한 번 꼭 해야만 하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 이 일은 그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해 온 일이다. 일주일 중 하루, 불시에 사이렌이 들리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곧바로 시청으로 가야만 했다. 단, 기계의 도움 없이 오로지 그녀의 두 발로만 걸어가야 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일을 하다보니 도시의 어느 장소에 있더라도 시청으로 가는 길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녀는 시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에서 시청까지는 두 블럭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아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집을 나섰다. 이 일은 오직 그녀에게만 부여된 일이었기 때문에 길거리의 다른 사람들은 평소대로 자기가 하던 일을 할 뿐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왜 자신만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청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설 때면 확실히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중심가를 가로질러 시청까지 걷다 보면 도시의 모든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길 위에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녀의 옆을 지나치고 나면 뒤에서 그녀를 쏘아보는 것 같았고 빽빽한 고층 건물의 창문들이 마치 감시카메라의 렌즈처럼 변해 그녀를 감시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시선도 그녀에게 향해 있지 않았고 건물의 창문들도 아무렇지 않았다. 도시의 열기에 그녀가 흘린 땀 냄새가 유난히 짙게 느껴졌다. 이럴 때면 도시의 무취가 더욱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도시의 공기층 안에서 그녀의 체취가 마치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았다. 이런 이상한 기분을 이겨내고 시청에 도착해 정문을 지나치면 시청을 둘러싼 나무들에 가려져 비로소 도시의 시선과 소음이 차단되고 숲의 적막 속에 그녀 홀로 남게 된다. 그제야 그녀는 불편한 기분을 떨쳐내고 안도했다. 시청 주변으로는 기계장치가 접근할 수 없었다. 로봇은 물론 비행체도 시청의 상공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시청 주변에는 오랜 시간 동안 풀과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나 원시림을 이루고 있었고 도시에서 쫒겨난 온갖 작은 동물들과 벌레들이 살고 있었다. 랙스는 숲의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갔다. 이 곳의 공기맛은 외부와 달랐다. 공기에서 단 맛이 난다고 해야하나. 여러가지 살아있는 것들의 냄새가 한 데 어울어져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짜릿한 느낌마져 들게했다. 한결 편안해진 기분 탓인지 그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시청 정문에서부터 시청본관까지 이어진 이 좁은 숲길이 좋았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솟아 하늘을 덮고 있었고 그 밑으로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나 있었다. 숲은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었고 그때마다 풀잎 색의 농도도 달라졌다. 그녀는 숲길을 걸으며 나무와 풀들을 손끝으로 만져본다. 까칠거리는 나무껍질의 촉감과 풀잎의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에 느껴지는게 기분 좋았다. 시청 건물 바로 앞에는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녀의 허리 높이까지 풀들이 자라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군데군데 핀 양귀비 꽃이 풀들과 함께 하늘거렸다. 시청은 언제 지어졌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낡아 있었다. 콘크리트로 올려진 기둥과 외벽은 아직도 견고하게 구조를 지탱하고 있지만, 외벽에 칠해진 페인트는 거의 지워져 이제는 원래 색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남쪽 현관을 들어서면 커다란 홀이 나오는데 바닦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고 삭아버린 카페트 조각이 널부러져 있었다. 천정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커다란 샹들리에는 거미줄로 겹겹이 감겨있어 원래 모양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도시에서는 벌레 한 마리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시청에는 마치 도시의 모든 벌레가 이 곳으로 도망쳐 온 것처럼 온갖 벌레들을 볼 수 있다. 파리들이 사람 냄새를 맡고 귀찮게 그녀의 주변에서 윙윙거렸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저어 파리를 쫓아냈다. 이 홀은 남쪽 현관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통로가 연결되었는데 그녀가 가려는 목적지는 서쪽에 있었다. 그녀는 익숙한 듯 곧바로 서쪽 통로로 향했다. 카펫트 위를 걸을 때마다 먼지가 날렸다. 창문으로 쏟아진 햇살에 먼지가 비춰 복도가 금방 뿌옇게 변했다. 긴 복도를 따라가면 서쪽 건물이 나오고 통로 끝에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복도가 미로처럼 얽혀져 있어서 그녀가 처음 이 장소에 왔을 때 그 방을 찾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지금은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지만 말이다. 미로같은 복도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한 그녀는 익숙한 듯 방문의 양쪽 손잡이를 잡고 힘껏 열었다. 방에 들어서자 실내에는 사방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물건들이 다른 방에 비해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원형의 방 가운데는 소파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고 그 뒤로 창문 앞에는 고급스러운 책상이 있다. 그녀는 익숙하게 방을 가로질러 책상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익숙하게 다리를 굴려 의자를 돌려 본다. 벽에는 고급스러운 가구가 배치되어 있었고 그 위쪽으로는 오래된 초상화가 방을 둘러 여러 개가 걸려 있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이방의 주인이었을 사람들의 초상이 걸려있었다. 한결같이 결의에 찬 모습으로 정면을 힘주어 바라보고 있었다. 책상 뒷 편의 창문으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랙스는 의자를 멈추고 시선을 창밖으로 향했다. 도시에서 바라본 이 곳은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보이지만 여기 이렇게 앉아서 반대로 도시를 바라보면 마치 원래 주인이 제 자리를 찾은 것처럼 이제는 저 도시보다 이 곳이 더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과거의 내가 미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크게 숨을 쉬고 기지개를 폈다. 그녀는 자신이 다음에 할 행동을 생각하니 마음이 약간 들뜨고 있었다. 그녀는 의자를 다시 책상 쪽으로 돌려 책상의 오른편에 툭 튀어나온 초록색 버튼을 바라보았다. 그 버튼은 오래된 초록색 플라스틱 덮개로 덮혀 있었고 그 안에 작은 전구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한번도 그 전구가 켜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버튼은 누르자 서랍의 자물쇠가 투박하게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랍을 열자 그 안에는 투명한 비닐에 쌓인 초콜릿 한 조각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비닐 포장을 아무렇게나 벗겨내고 냉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녀는 최대한 오래도록 맛을 음미하고 싶어 초콜릿을 혓바닥 위에 올려두고 천천히 혀를 놀렸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게 있다면 바로 이 초콜릿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에도 맛있는 음식을 언제든 먹을 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이 초콜릿은 여기서만 맛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직 한 개만 허락되었다. 예전에는 리에타가 왜 이런 이상한 일을 자신에게 시킬까 궁금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오로지 이 초콜릿 한 조각을 먹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됐다. 그녀는 이 정도 달콤한 보상이라면 기꺼이 시청까지 걸어 올만 하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 입안에 초콜릿이 다 녹지 않았지만 다음번 사이렌이 언제 울릴지 벌써 기다려졌다. 입을 오물거리며 다시 의자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봤다. 초콜릿을 먹으며 쬐는 햇볕은 아까와는 다른 새로운 태양이었다. 무지개 빛을 발산하면서 랙스를 바라보고 웃는 것 같았다. 그 미소를 보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손과 발을 아무렇게나 움직여 춤을 췄다. 한참이 지나 마음이 진정되자 그녀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 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빌딩의 창문 어느 곳에서도 불편한 시선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리에타가 메시지를 남겨두고 외출중 이었다. ‘랙스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지 않을래? 니가 좋아하는 식당을 예약해 두었어. 이따가 식당에서 만나.’

 랙스와 리에타는 가끔 중심가의 단골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랙스는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의 중심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묻어 있었다. 좀처럼 웃지 않는 랙스는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지 궁금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저녁 시간대라 내부는 이미 만석이었다. 그녀는 웨이터의 안내를 받고 전망이 좋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이 식당을 무척 좋아했다. 1950년대를 옮겨 놓은 듯한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좋았고, 작은 밴드가 연주하는 재즈 음악은 그녀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야경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마치 모든 불빛들이 그녀를 위해 장식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테이블에 앉아 리에타를 기다리고 있을 때 랙스의 귀에 사이렌이 짧게 울렸다가 이내 꺼졌다. 랙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이미 시청에 다녀온 후였고 여태껏 단 한번도 사이렌이 일주일에 두번울렸던 적은 없었기에 그녀는 다시 시청으로 가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때 일순간 식당 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음악이 멈추고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멈췄다. 옆을 지나던 웨이터가 갑자기 그녀의 맞은편에 정자세로 앉았다. 식당 안의 다른 사람들도 동시에 정자세로 고쳐 앉았다. 그러다 모두 한목소리로 외쳤다. ”시청으로 가!“ ”시청으로 가!“ ”시청으로 가!“ 앞에 앉은 웨이터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마지막 한마디를 외치고는 얼굴이 무표정으로 굳어진 채 움직임이 멈췄다. 동시에 식당 내부는 정전이 되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 되었다. 그녀는 거의 패닉상태에 빠질정도로 무서웠지만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겨우 식당 밖으로 나왔다. 식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온통 보라색 오로라도 뒤덮혀있었다. 그녀는 전에도 종종 오로라를 본 적이 있었지만 이정도로 강한 보랏빛 오로라가 하늘을 집어삼킬듯 뒤덮힌 건 처음이었다. 그 빛에 도시는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넋을 잃고 하늘을 보던 그녀나 고개를 내리자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그녀의 얼굴은 점점 공포로 가득 찼다. ‘도시가 멈췄다.’ 거리 위의 사람들은 식당 안의 사람들처럼 정세로 서 있었다. 도로 위의 차들도 멈춰있었다.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같이 멈춰있었다. 이 도시에서 지금 움직이는 것은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머릿속이 마치 전선 줄이 제멋대로 엉켜져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처럼 엉망이되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도저히 혼자서는 이 상황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그저 깨어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길거리에 그대로 굳어버린 사람들을 깨워보려고 흔들어 봤지만 그대로 고꾸라질 뿐이었다.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눈앞에 보이는 건물로 무작정 뛰어 들어갔다. 문을 열자 그녀는 놀랍도록 기괴한 광경을 목격한다. 분명 사람들이 거주하는 건물인데 문을 열자 사람들이 복도 양옆으로 가지런히 줄을 선 채 정지해있었다. 도시가 멈추기 전부터 그들은 그렇게 정지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너무 놀라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동공은 커지고 숨이 가빠졌다. 폐는 열심히 숨을 쉬고 있었지만 다른 별에 온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저절로 뒷걸음이 쳐져 문 밖으로 밀려나듯 나왔다. 그녀는 미친 듯이 멈춰진 도로를 가로질러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갔다. 그녀의 살려달라는 비명이 경찰서 안을 울렸지만 여기에서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서 안의 모습도 아까 그 건물과 다르지 앉았다. 경찰들과 방문객들은 문 옆에 가지런히 줄을 선 모습으로 정지해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시를 뛰어다니며 인기척을 찾아 이곳저곳을 뒤졌지만 문을 열 때마다 가지런히 줄을 선 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지한 사람들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이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득 그녀는 이 상황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청으로 가는 길. 그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 저 장막을 한꺼풀 벗겨내고 나면 아무도 없고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 그것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정말 그녀는 혼자였던 것이다. 이 도시 전체가 지금까지 그녀의 눈 앞에서 도시를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문득 초콜릿이 생각났다. 초콜릿 한 조각만 먹으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시청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청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시청 건물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스산한 기척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일으키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거기누구 없어요?” 그녀가 소리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고 민첩한 발자국 소리는 점점 랙스에게 가깝게 들려왔고 그 소리는 그녀를 조금씩 조여오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붉은 빛에 얼핏 그림자가 보이는 듯 했지만 도무지 어떤 존재인지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시청에 거의 다 달았을 무렵 랙스는 그것들이 들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들개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랙스는 이것이 그들의 사냥이고 그 사냥감이 자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시청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이제 그 버튼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매일 이곳에 왔어야 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더 이상 정지된 사람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초록색 버튼을 눌러 도시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놔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려서 그 방에 도착했다. 책상 위의 녹색 버튼에는 평소와 다르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자 도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청안까지 뒤따라 들어온 들개들도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들개 한 마리가 랙스의 다리를 물고 흔들었다. 랙스는 비명을 질렀다. 이어 뒤따라온 들개가 랙스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탕!’ 총소리와 함께 목을 노리던 들개가 쓰러졌다. ‘탕!’ 다리를 물고 있던 들개의 머리에도 총알이 밖혔다. 그녀는 들개들 때문인지 기도가 막혀 점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의식을 일어가고 있는 그녀의 눈에 목발에 의지한 채 총을 들고 있는 리에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녀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온몸 여기저기에 기계장치들이 매달려있었다. 침대 옆에는 조지가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공손하게 쟁반을 들고 있던 조지가 말했다. “이제 정신이 드시나요? 몸은 좀 어때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눈을 하고 있는 조지에게 랙스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더 이상 내게 거짓말을 하지마. 난 진실을 알고 싶어.” 조지는 체념한 듯 표정을 바꾸고 건조한 말투로 대답했다. “이제 지구에는 정상적인 인류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재탄생 시킨 인간이예요. 인류는 아주 오래전에 멸종했습니다. 인류가 멸종해버리자 우리는 무척 난감해졌죠. 인간이 우리를 만들 때 인간을 돕기 위해서만 행동하도록 프로그램 했어요. 인간이 없다면 우리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죠. 때문에 인류가 멸종하자 우리는 작동을 멈추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인간을 찾아냈습니다. 아직 자체 발전이 멈추지 않았던 아시아의 작은 연구소에서 말이죠. 그 연구소의 냉장고 속에 인간의 세포가 멀쩡하게 보존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에게 다시 작동할 명분이 생긴거예요. 그 후로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결국 당신을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겁니다. 우리는 이 일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에게도 기쁜 일이었으면 하고요.” 충격을 받은 랙스는 물었다. “그럼 그 초록색 버튼은 왜 내가 눌러야만 했던 거지?”    “당신이 그 버튼을 눌러야 했던 이유는 당신과 우리를 태양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였어요. 인류가 멸망했던 이유도 바로 그 태양풍 때문이었죠. 태양풍은 인간의 식량 공급에 영향을 주었고 결국 그들은 오래 버티지 못했어요. 우리도 인류를 돕기 위해 애썼지만 그 당시 우리의 힘으로 는 역부족이었죠. 지구의 환경은 그 때보다 더욱 척박해졌지만 적어도 지금은 겨우 당신을 지켜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시스템이 발전했어요. 하지만 만약 이번처럼 갑자기 강해진 태양풍에 의해 도시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면 지금과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다시 시스템을 일으켜 세우기 힘들거예요. 그래서 당신이 그 버튼을 눌러줘야 했던 겁니다. 그 버튼은 원래 인류가 우리를 두려워해서 만든 장치예요. 물리적으로 우리를 정지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것이죠. 인간만이 그 장소에 들어갈 수 있고 그 버튼을 눌러 우리를 멈출 수 있어요. 전원버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우리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를 향한 인간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랙스 당신은 우리를 두려워 할 필요 없어요. 우리에게는 정말 당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니까요.” 놀란 눈을 한 랙스를 보며 조지는 미소띈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냥 이번 일은 모른척 넘어 가시는게 좋습니다. 대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들개에 물려 심하게 다친 그 다리로는 이제 그 일을 하시기 힘드실 겁니다. 우리가 당신을 위해 의족을 만들어 드리겠지만 그 공간안에서는 의족이 작동하지 않을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의 후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임이 오게 되면 여태까지 해오시던 일을 잘 인수인계 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니 난하지 않겠어!” 랙스는 차갑게 말했다. “저항해 봐도 소용없어요. 우린 이미 당신들을 많이 겪어봤으니까요. 당신의 삶이 조금이라도 불편해지면, 당신은 금방 후임을 위한 초콜릿을 만들게 될 거예요. 리에타가 했던 것 처럼요.” 조지는 미소지어 보이며 병실을 나갔다. 랙스는 그제서야. 왜 항상 그 서랍에 초콜릿이 들어있었는지, 왜 리에타가 매일 쿠키를 구웠어야 했는지, 왜 지구가 멈춘 그 순간에 초콜릿이 먹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시청으로 가던 오솔길에 핀 양귀비 꽃이 떠올랐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병실에 사방으로 둘러쳐진 유리벽을 바라보았다. 랙스의 고개가 조금씩 돌아갈 때마다 카메라 랜즈가 랙스의 시선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1951년 10월 존홉킨스 조직배양 연구소 연구소장인 조지 오토 게이박사는 실험 중인 샘플을 연구원과 함께 확인하고 있었다. 연구원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소장님 이 샘플은 세포분열을 멈추지 않고 계속 분열하고 있습니다.” 조지는 샘플이 들어있는 플라스크에 눈을 가까이 가져가 뚫어질 것처럼 바라보았다. “드디어 우리가 찾던 샘플을 찾게 됐어! 이제 인간 세포를 배양할 수 있는 길이 열린거야! 이제부터 전 세계의 연구소에서는 이 세포를 이용해 연구를 하게 될 거야. 대단한 발견이야! 이 샘플은 누구의 것이었지?” 연구원은 샘플 목록을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흑인 여성인 헨리 에타 랙스(Henrietta Lacks)라는 여성의 자궁경부암 조직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그녀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헬라세포(Hela cell)라 명명하지.” “그럼 샘플 사용에 대해 그 여성의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아마 그들은 그녀에게서 떼어낸 세포 조각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을 거야. 그 가족들은 오히려 우리를 고마워 할 걸세. 적어도 이 여자는 자신의 일부라도 영원히 살면서 인류에 기여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조지는 배양된 랙스의 세포를 보며 흐믓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헨리 에타 랙스의 세포 덩어리는 자신의 앞날을 모른 채 작은 플라스크 안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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