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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머리 달린 여자

2020.10.03 02:0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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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범죄(한국)는 한국에서 벌어진 범죄 사건을 기록합니다.

 

월곡산 머리 없는 시체 사건

 

경고. 이 문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실제 사건·사고를 다루고 있습니다. 열람과 작성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입력 : 2020-07-23. 04:14:09 / 수정 : 2020.07.23. 16:03:21

 

2020년 6월 30일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월곡산에서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된 사건이다.

사체를 조사한 결과, 6월 30일에서 이틀 전인 6월 28일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발견 당시 피해자의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있던 카드 지갑 속 주민등록증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살해당한 사건 당일, 피해자 이모 씨(남, 20대 중반)의 책상 서랍에서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자필 유서를 발견했다고 피해자의 부친은 진술했다. 피해자가 평소에 원인 모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점, 그리고 취업을 준비 중이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자살을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단 피해자 주변인들의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자살을 택한 피해자가 혼자서 제 머리와 목을 분리할 수 없다는 점, 또 의정부시에 살던 이모 씨가 연고 없는 월곡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점이 문제로 남아 경찰은 타살로 추정, 수사를 진행 중이다.

증거 부족, 범행 동기의 모호성 때문인지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이 글은 범죄 사건에 관한 토막글이오니, 이용자들의 지식으로 문서를 채워주세요.

 

***

 

이거 봐, 진성 씨. 보고 있으려나? 위키에 당신 사건 문서가 생겼다고 친구가 알려주더라. 그 친구, 몇 번 본 적 없고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이 글을 보곤 내 생각이 났다나 봐. 안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궁금해서 봤어. 이미 아는 내용이고 사실만 나열되어있는 글이라 그런가, 읽는 게 생각만큼 힘들진 않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

내가 알고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진성 씨가 생전에 가입했던 사이트에 들어간 다음 탈퇴하는 중이야. 평소에 즐겨 찾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이 유독 많네. 보고 있자니 그립다. 평소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외아들로 자라나 얼마나 외로웠는지,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강아지 두부를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진성 씨가 어떤 사람인지 다 보여. 역시 요즘 세상에선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는지가 어떤 성향을 지닌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지표인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진성 씨가 여기 처음 가입했을 때부터 글을 많이 쓴 건 아니구나. 가입하곤 한 달 동안 게시글을 올리다가, 몇 년은 뜸했네. 그리곤 올해 봄부터 다시 글을 많이 쓰기 시작했고.

올해 처음 올렸던 글부터 보려고 하는데,

아, 그런데 이건……

 

***

 

아침에 일어난 진성을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두부여야 한다, 그건 진성이 정한 규칙이 아니었다. 진성의 어머니가 친구에게서 얻어온 하얀색 새끼 포메라니안은 이상할 정도로 진성을 좋아했다. 진성의 어머니는 종종 ‘전생에 연인이었나 봐’하고 둘을 놀렸는데, 당사견은 물론 신경 쓰지 않았고 당사자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전생에 연인이었을 수도 있지!’,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곤 했으니까.

그런 아침 풍경을 보게 될 줄 알았던 오늘, 무언가 잘못되었다.

진성이 제 가슴에 얹힌 묵직한 무언가를 밀어내다 눈을 떴을 때였다. 머리 없는 흰 털의 괴물이 그를 바라보며 없는 입으로 짖고 있었다. 진성은 즉시 그것을 걷어찼고, 고함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엄마!”

진성의 어머니가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땐 이미 다리가 반응한 뒤였다. 달려가 진성의 방문을 연 여자는 하나뿐인 아들이 침대 위에 올라서서 두부를 맨발로 걷어차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침대에 깔린 요는 흥건하게 젖은 상태였다.

“진성아! 두부한테 왜 그래!”

여자는 몸을 부들부들 떠는 두부를 안아 들었다. 발에 걷어 채인 고통,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았다는 사실에 두부는 쇼크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동물병원에 가야겠다고, 아들을 추궁하는 것은 나중에 해야겠다고 진성의 어머니는 생각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두부? 이게 두부라고? 그럼 넌 뭔데, 시발. 우리 엄마라도 돼?”

180cm가 넘는 진성이 저보다 한참 작은 모친을 노려보며 씨근덕댔다. 확장된 동공, 온몸으로 흘리는 땀, 더듬거리며 구석의 야구방망이를 쥐려는 손을 보았을 때, 여자는 저도 모르게 두부를 안고 방 밖으로 뛰쳐나와 문을 닫았다. 땀에 젖은 손이 문고리에서 미끄러졌고, 여자는 열리려는 문을 등으로 막은 채 몇 번이나 스마트폰 키패드를 헛짚었다. 여자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이게 뭐야, 시발 안 열어? 시발, 문 열라고!”

공포에 질린 여자의 뺨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겨우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여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진성이가 이상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여보, 여보?]

여자는 한참 말을 잇지 못한 채 울었다. 등과 맞닿은 문을 때려오던 주먹질과 발길질이 어느새 멈췄다는 것도 모른 채.

진성이 문에 귀를 대고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엄마? 진짜 엄마야…?”

몇 번이고 저를 불러오는 음성에 겨우 정신이 든 진성의 어머니가 방문을 열자,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진성이 서 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아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자, 진성의 어머니는 아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진성은 어미 소에게 머리를 들이미는 송아지처럼 모친의 품에 고개를 처박고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 내가 두부를 발로 찬 거야? 아까 그것도 진짜 두부야?”

“그게 무슨 소리야, 진성아? 두부가 두부지, 그럼 뭔 줄 알았던 거야. 너 꿈 꿨니?”

진성의 어머니는 제 품에 안긴 아들의 고개를 들어 올려 눈을 마주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모친의 뜻에 따라주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엄마, 나 지금 이상해. 엄마 말대로 꿈꾸는 건가 봐, 그치?”

여자는 아들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식은땀에 젖은 티셔츠가 진성의 등에 달라붙었다. 그 와중에 그것이 신경 쓰여서, 진성의 어머니는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집어 아들의 등에서 떼어냈다. 바람이 통해야 마를 것 같았다.

진성이 엉엉 울었다.

“엄마, 나 지금 엄마 머리가 안 보여…그리고 두부도…”

 

***

 

○○○ 커뮤니티

 

○○ (112.48) / 2020.04.29. 06:21:14

사람 머리가 안 보일수도 있냐

※ 음란물, 차별, 비하, 혐오 및 초상권, 저작권 침해 게시물은 민, 형사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배, 넣어도 돼요?”를 대비한 예쁜이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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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야 나 좆됨

사람 머리가 안 보여

개 머리도 안 보여서 아침에 강아지 걷어찼다가 초상치를뻔함

개는 엄마가 병원 데려갔는데 중태래

존나 눈물만 난다

우리 개 죽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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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4개 / 조회수 876

○○ (48.175) : 개 때리면 개쳐맞아야돼 개새끼야

ㄴ○○ (112.48) : 나도 누가 날 좀 때렸음 좋겠다

○○ : 안면인식장애 아님?

ㄴ○○ (112.48) : ㄴㄴ 그냥 사람이 목 위로 안 보여

○○ (223.38) : 뭔드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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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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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 / 개념글

 

***

 

이때 울었구나. 우는 얼굴 상상된다. 진성 씨는 나하고 있을 때도 눈물이 참 많았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당신 울었잖아. 내 말이 맞지? 막 콧물도 흘리고 그랬잖아. 그립다.

개인 블로그에도 글을 많이 올렸네. 주로 일기를 올렸던 것 같고.

 

[5월 1일. 시발 좆까 거짓말이지 말이 되냐 이게]

[5월 2일. 왜 나야?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5월 3일. 무섭다. 단지 두부와 엄마만 머리가 안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집 밖을 나가보니 다른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의 머리도 똑같이 안 보인다. 내가 뭐에 씌었나? 홀렸나?]

[5월 4일. 엄마가 정신과에 가보자고 해서 숟가락을 던졌다. 엄마가 설거지하며 울었다. 나는 엄마를 안아드렸다. 병원에 한번 가보자고도 했다. 어쩌면 엄마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환각일 터였다. 그러나 정신과에서 받아온 약물을 복용해도 환각은 없어지지 않았다. 머리 없는 생물들은 여전히 머리가 없었다. 그나마 약물이 제 몫을 다한 덕분에, 진성은 머리 없는 사람들을 전보다 진정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어느새 발에 걷어 채인 것은 잊었는지-머리 없는 하얀 포메라니안이 진성의 가슴 위로 뛰어 올라와 보이지 않는 혀로 진성의 뺨을 핥는 것에도 익숙해졌고, 앞치마를 두른 머리 없는 엄마가 식칼을 들고 애호박을 써는 뒷모습에도 익숙해졌다. 머리 없는 아버지가 넥타이를 매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에도. TV 속 연예인들이 머리 없는 모습으로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역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진성은 점점 더 영상보단 텍스트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노는 시간이 늘어났고, 인스타그램보단 트위터나 페이스북같은 텍스트 위주 SNS를 더 즐기기 시작했다. 인터넷 강의 대신 라디오 강의를 들었고, 드라마 대신 웹소설을 보느라 넷플릭스도 끊는 등 영상이란 영상은 죄다 멀리했다.

남몰래 간직해 둔, 밤에 보는 위안용 영상 하나만 빼고.

약에 절어 잠든 여자들이 나오는 것이었는데, 여자들의 신상을 감춰주기 위해서인지 카메라가 교묘히 머리 부분만 영상에 나오지 않게 촬영한 것이었다. 진성은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이 영상 속 여자들이 머리가 나오는 상태로 찍혔다면 지금의 진성에겐 분명 머리 없는 여자들로 보였을 테니까. 아무리 정신과 약을 먹고 있더라도 불쾌함 그 자체가 사라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성은 스스로 결코 시체성애자가 아니라고 자부했기에, 제가 머리 없이 누워있는 여자들에게 꼴릴 리가 없다고 여겼다.

영상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총 네 명이었는데, 얼굴은 나오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었으나 하나같이 몸매가 좋았다. 특히 가장 가슴이 큰 여자는 쇄골에 푸르스름한 반점이 있었는데, 여자의 잠든 몸이 흔들릴 때마다 긴 머리카락이 반점을 가렸다가 드러냈다가 했다. 진성은 그 여자가 좋았다.

매일 밤 몇 발 빼고 나면 나른하고 달콤한 무기력이 찾아들었고, 그제야 진성은 곤히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새로운 지옥이 시작되었다. 좋든 싫든 방에서 나와 식구들을 마주하고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모친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니니?”

“대체 눈에 무슨 짓을 한 거야. 하나 있는 아들이라는 게…”

때론 화를 내고 때론 울고 때론 무시하며 밥을 먹었다. 집 밖으론 거의 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진성의 부모도 제발 집 밖에 나가라고 밀어내진 않았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웃으며 과일을 먹는 부모를, 진성은 증오 어린 눈빛을 한 채 열린 방문 틈 사이로 훔쳐보았다. 그리곤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날 부끄러워한다고, 그리고 거추장스러워한다고.

이건 내 잘못이 아닌데.

진성은 유서를 써두었다. 자신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고, 세상이 자길 어떻게 보는지 썼다. 쓰다 보니 울화가 가라앉아서, 그날 그는 23층 창밖으로 곧장 뛰어내리는 것만은 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진성은 여느 때처럼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다가 이런 글을 썼다.

 

 

○○○ 커뮤니티

 

○○ (112.48) / 2020.05.07 02:13:27

사람 머리 안 보인다는 미친놈 또 왔니?

※ 음란물, 차별, 비하, 혐오 및 초상권, 저작권 침해 게시물은 민, 형사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자친구 무모증엔 쉽고 간편한 뷰티풀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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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녀왔습니다

 

세상에 나같은새끼 또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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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9개 / 조회수 1038

○○ (223.38) : 저번부터뭔드립인데

○○ (342.12) : 내 친구중에도 이런 애는 있음

○○ : 안면인식장애네

ㄴ○○ (112.48) : 아니라니까

○○ (235.32) : 1

ㄴ○○ (367.14) : 22

○○ (132.58) : 글쓴이 외롭지 않게 주작하는 애들 개많네 진짜 이런 애들이 있다고 쳐. 다 ○○○ 커뮤니티에 몰려 있겠냐?

ㄴ○○ (235.32) : 내가 니같이 할 짓 없어서 이딴걸로 주작하겠냐 새벽에 잠 안 못자다가 이 글 보고 반가워서 댓글 달았다 그게 죄냐?

ㄴ○○ (367.14) :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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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명이나 있다고?

 / 구라지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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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 / 개념글

 

 

말도 안 돼.

처음은 경악, 다음은 의심, 마지막은 기쁨이었다.

정말일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진성에겐 일어나지 않았는가.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지 못하리란 법이 있나?

진성은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렸다.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최고!

공감의 댓글을 올린 이들에게 진성은 쪽지로 오픈채팅방 링크를 보냈다. 코로나 시국에 위험하긴 하지만, 꼭 만나보고 싶으니 오프 모임을 갖자고 말이다. 커뮤니티 이용자 중 진성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친구가 있다는 사람을 포함해 총 셋 모두 오픈채팅방에 들어왔고, 진성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부모를 포함한 타인이 얼마나 자신들을 꺼림칙하게 여기고 무시하는지, 자신들의 눈에 세상이 얼마나 흉측하고 보기 싫게 느껴지는지에 얘기를 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진짜 다들 모가지 댕강 잘라버리고 싶다고. 어차피 우리 눈엔 머리 있든 없든 똑같이 보일 거 아니야?]

누군가의 말에 다들 동의하며 웃었다. 진성은 웃는 한편으로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속이 썩어들어갔으면. 얼마나 다들 쌓인 게 많았으면. 그 날 넷은 평소 남들에겐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시원하게 토해냈다. 마지막엔 취미 생활 얘기를 하다가 좋은 영상 공유 사이트까지 나누었다. 의외로 넷은 그런 영상 취향도 비슷했기에, 채팅을 끝낸 진성은 참으로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노라고 생각했다.

오프라인에서 실물로 보니-물론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 나잇대가 생각보다 다양했다. 20대 중반인 이진성, 진성과 동갑인 박강민, 30대 초반인 오경현, 그리고 10대 후반인 손유찬까지.

그날은 연탄집에서 돼지고기와 김치찌개를 먹었다. 아직 어린 유찬은 저녁값을 면해주면서 도중에 보냈고, 남은 셋이서 소주에 안주까지 시켜 신나는 밤을 보냈다.

진성은 남은 고기를 모친에게 드리기 위해 포장을 부탁했다. 그리곤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걸었다. 길거리는 머리 없는 사람들로, 광고 전광판은 머리 없는 여자들로 가득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오픈채팅방을 들여다보며 진성은 행복했다.

 

[완전 괜찮지 않음?]

[저번에 본 거네? 좋더라 머리가 아예 카메라 앵글 밖에 있어서 머리 없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나도 봤음ㅋ 난 좀 더 어리면 좋겠어]

[아 경현이 형 완전 변태]

[아무튼 누구 하나라도 이런 여친 생기면 다들 소개시켜줄 것]

[난 소개 안 시켜줄건데요 잘난 형들한테 뺏기면 어쩌려고]

[일단 생긴다음에 얘기해]

 

 

그리고 얼마 후,

경현은 즐겨 찾는 ◇◇◇ 커뮤니티에 동거인을 구하는 글을 올린 참이었다. 취식은 이쪽에서 해결해줄 테니 집안 살림을 거들어줄 여성 분이면 좋겠다는 글을 썼다. 간단한 면접을 거친 후 동거인을 결정하겠다고 했고, 면접은 주말에 집 근처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카페 유리문 상단에 걸린 풍경이 달랑 울렸다. 제 쪽으로 걸어오는 교복 소녀의 다리를 훑어보며, 경현은 쾌재를 불렀다. 그가 기대한 대로였다. 아마 가출 소녀이리라.

“안녕하세요, ◇◇◇ 커뮤니티에 글 올리신 거 보고 왔는데.”

“네, 아이고…고생이 심하셨나 보…”

소녀의 낡고 더러운 운동화를 보는 척하며 시선을 점차 위로 올리던 경현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왜 그러세요?”

“머리가…있으시네?”

소녀가 웃었다.

“감사해요. 그런 말 가끔 들어요.”

 

[나 여자친구 생겼다 축하좀ㅎㅎ]

 

그 메시지 이후로 경현은 오픈채팅방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간 것은 아니었다. 채팅방 인원은 여전히 네 명이었으니까. 그러나 새 메시지가 올라와 확인해보면 늘 지워지지 않는 ‘1’이 메시지 옆에 붙어있기 일쑤였다. 진성은 조금 서운했다. 그때 여자친구 생겼단 메시지 보고 다들 축하해줬는데, 경현은 그 축하 메시지들도 확인 한 번 안 했다. 대체 뭐 하고 살길래? 메시지 확인조차 못 할 정도로 바쁜가? 연애 감정 따위가 우정보다 우위냐? 인간이 나이 처먹고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숫자 ‘1’은 어느새 ‘2’가 되었다. 유찬이 증발한 것이다. 이미 경현의 일로 마음 정리를 하고 있던 진성은 이번엔 그러려니 했다. 가장 어렸던 유찬에겐 애초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난 소개 안 시켜줄건데요 잘난 형들한테 뺏기면 어쩌려고’ 이 말은 아마 겸양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유찬은 진심으로 자기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진성이나 강민, 경현에게 뺏기게 될까 봐 걱정했던 것이라고, 진성은 결론을 내렸다. 괜히 검은 스마트폰 액정에 비친 자기 얼굴을 골똘히 쳐다보면서. 이제 그는 유찬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린 새끼, 여드름투성이에 교복 차림이었던 게 여자가 꼬일 상은 아니었지. 겨우 하나 건졌는데 뺏길까 봐 어지간히 무서웠던 모양이라고, 진성은 이해해주기로 했다.

그는 강민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야]

 

바로 답변이 왔다.

 

[ㅇ]

 

동갑이라 말을 트기로 한 사이였다. 진성은 오타를 내지 않으려고 천천히 자판을 눌렀다.

[우린 여자친구 생기면 꼭 서로 소개시켜 주는 거다]

숫자 ‘1’은 곧장 사라졌다.

 

[ㅇㅇ]

 

이 새끼, 사람이 말을 하면 ‘왜 그러냐’라고 물어볼 법도 한데, 묻지도 않아 괘씸했다. 진성은 짜증이 나 괜스레 두부 쪽으로 걸어가 보이지 않는 머리 대신 등을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손길을 피해 진성의 모친에게로 가버렸다.

“아, 너까지 왜 이러냐.”

TV를 보고 있던 진성의 어머니의 앉은 자세가 조금 바뀌었다. 아마 진성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너 또 두부한테 그러니?”

진성은 모친의 무릎에 머리를 뉘고 징징댔다.

“나한테 여자는 엄마뿐이야.”

진성의 어머니가 혀를 차며 아들의 이마를 쥐어박았다. 그러나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걸 진성은 알았다.

“징그러워, 얼른 장가 가. 그래야 나도 네 수발들어준 세월에 끝을 보지.”

“그래, 내가 얼른 며느리 데리고 올게.”

진성의 머리 위로 한숨 소리가 흘렀다.

“일단 취직부터 해야 며느리고 뭐고…”

“알았어.”

진성은 벌떡 일어나 제 방에 들어갔다. 어느새 나빠진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던 그는 침대에 누워 바지 샅에 손을 넣곤 영상을 보았다. 여자들을 비추는 어둠 속 주홍빛 조명이 진성을 달래주었다.

그러나 벌써 수십 번쯤 본 영상이라 그런가 보고 있자니 점점 지루해졌다. 오나홀이나 영상으로 달랠 게 아니라 룸빵에 가고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이게 뭔지. 가만, 가면 안 되나? 영업도 할 텐데? 그는 체크카드 잔액과 지갑 속 지폐를 세어보았다. 부족했다.

우울해진 진성은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곤 집 밖으로 나섰다.

번화한 거리로 가보니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다. 코로나라든가 사회적 거리 두기 따위 개나 준 모양이었다. 진성은 마트에 들어갔다. 들어가면 1층에 패스트푸드점이 있다. 거기서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집에 가서 머리가 보이지도 않는 부모와 함께 한 냄비에 숟가락질할 일은 없겠지.

메뉴를 기다리던 진성의 눈에 건너편 카페의 풍경이 들어왔다. 뭔가 이상했다. 여느 때처럼 머리 없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한 여자에겐 머리가 있었다.

진성은 눈을 깜박여보았다. 비벼보기도 했다. 그러나 여자의 머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카페 2인석에 앉은 여자는 책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빨대를 빠는 붉은 입술, 그리고 오똑한 코와 커다란 눈이 차례대로 진성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목까지 올라오면서 착 달라붙는 폴라티를 입어 두드러진 가슴, 중요했다. 진성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여자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진성은 참았다. 여자가 자길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대신 그는 다가가 물었다.

“저기, 혹시 연락처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가까이에서 보니 여자는 에어팟을 꽂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귀에서 에어팟을 빼고 어리둥절한 낯으로 진성을 올려다보자, 진성은 가슴이 설레었다. 그만큼 여자는 예뻤다.

“연락처 좀…”

여자가 아, 하고 탄성을 지르더니 이내 웃으며 냅킨에다 뭐라고 적었다. 그 잠시간에 진성은 머리를 냉정히 했다. 저 냅킨에 돌아올 말은 ‘꺼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놓칠 수 없었다. 머리 달린 여자를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인데!

다행히도 진성이 받아든 냅킨엔 열 한 개의 숫자가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그는 실실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 햄버거를 씹고 콜라를 빨았다. 당장이라도 강민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나 여자친구 생길 것 같다 특 : 존나 예쁨]

 

***

 

방금 오픈채팅방 메시지도 다 읽었는데, 진성 씨, 이거 내 얘기지? ‘존나 예쁨’ 말이야.

처음 당신을 봤을 땐 좀 당황한 거 알아? 얼마나 멍청해 보였는지. 다짜고짜 연락처 달라고 하는 남자, 엄청 인기 없는 거 알지? 지금은 알려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 장하늘이 아닌 이상 그렇게 바보 같은 당신에게 연락처를 줄 여잔 없다는 거야.

 

하늘을 만난 뒤로 진성은 매일 즐거웠고, 초조했다. 하늘이 좋아서 즐거웠고, 왜 하늘만이 머리가 달린 채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어 초조했다. 하늘과 손을 잡고 걷다가도 멈춰 세우고 그의 진실을 털어놓고 싶었으나, 그러면 달아날 것 같았기에 진성은 속내를 꾹 숨겼다. 답답한 밤엔 영상을 보았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머리에 하늘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합성한 뒤 즐기며 견뎠다.

그러나 어느 날 결국 털어놓고 말았다.

“자기 눈에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머리가 없어 보인다고?”

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소리같이 들리겠지만, 정말이야.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은 머리가 없어.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도 아니야. 세상 사람들 전부가 나처럼 머리 없이 보인다는 다른 친구들도 있어.”

“친구들? 어떻게 만났어?”

“인터넷에서.”

하늘은 ‘자기 머리 말고 다른 사람들 머리는 안 보여’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당황한 진성이 물었다.

“왜, 인터넷 싫어해?”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을 믿을 수 있어?”

진성이 웃었다.

“그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자기랑 나도 서로 믿을 수 없어야 하는 거잖아?”

하늘이 수긍했다.

“그렇네. 아무튼, 조심해. 요샌 별일이 다 일어난다니까…”

그러곤 슬픈 표정이 되었다.

“힘들었겠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 머리가 안 보였다니…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늘이 그의 손등에 손을 얹고 도닥이자, 진성은 울컥할 뻔했다. 누군가의 감정 풍부한, 그것도 진성을 걱정해주는 표정을 본 것이 얼마 만인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눈물을 삼키며, 그는 애써 밝게 웃어 보였다.

“괜찮다니까? 친구들도 만났고…아 참, 나 자기 만나기 전에 친구들한테 약속했어. 여자친구 생기면 꼭 소개해 주겠다고.”

“뭐야, 내 허락도 없이?”

“그땐 자길 몰랐으니까. 만나줄 거지?”

진성이 하늘의 손을 붙들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경현이나 유찬처럼 굴기 싫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하며 친해진 사람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늘이 짐짓 눈을 부라리며 승낙했다.

“알았어. 대신, 나중에 내 부탁도 들어줘.”

“좋아, 나중에 꼭 들어줄게.”

진성은 곧장 강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자친구가 허락했음 날짜 잡자]

[어 근데 나도 혼자 안 갈 듯]

[?]

[나도 생겼어ㅎ]

 

“김지수라고 해요.”

역시 안 보인다, 머리. 진성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강민의 여자친구에게 인사를 보냈다. 강민의 머리가 보이지 않아 표정을 알 순 없었지만, 아마 강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의 눈에도 하늘의 머리가 안 보이겠지.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진성은 예약을 잡아두길 잘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이 의자를 끌며 일어났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 저도요.”

지수도 일어나 하늘을 따라갔다. 처음 보는 사이일 테지만, 진성의 눈에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도 견제하지 않고 잘 노는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한 대로 하늘은 똑똑한 것이 틀림없었다. 여자들끼리 견제하는 것만큼 남자들이 보기 싫어하는 것도 드물다는 걸, 하늘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너, 지수 머리 보이냐?”

강민이 운을 뗐다. 진성은 고개를 흔들려다가 정신을 차리고 입으로 “아니.”라고 말했다. 고개로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습관이었다.

진성이 물었다.

“넌 지수 씨한테 얘기했어?”

“어.”

“얘기했더니 뭐래?”

“울다가 웃다가 하더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자긴 상상도 안 된다나.”

진성이 강민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잘 됐다, 너. 좋은 여자 만났네.”

“너도.”

강민이 허공에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마 뺨을 긁적이는 것 같았다.

“야, 우리 어쩌면 이거, 다른 사람 머리가 안 보이는 것 말이야. 저주 같지만 사실 축복 아닐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나 진성은 강민이 무슨 얘길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진성도 생각해본 것이었으니까. 너무 소녀틱한 발상이라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뿐.

어쩌면 우리는 웹소설이나 라이트 노벨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특수한 능력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머리를 볼 수 없는 대신, ‘운명의 상대’의 머리는 볼 수 있게 되었다든가?

진성과 강민은 모처럼 만나 수다를 떨었다 – 두 여자가 그들의 상황도 완벽히 이해해주고 있었기에 눈치 볼 것도 없었다.

즐거운 밤이었다. 낯선 번호로 이상한 사진이 온 것만 빼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들의 머리 사진이었다. 사진은 총 두 장이었다. 둘 다 창백한 낯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하나는 나이가 제법 있어 보였고, 다른 하나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진성이 스마트폰을 떨어뜨리자 하늘이 놀란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진성 씨, 괜찮아?”

“어, 아무것도 아니야.”

누가 이런 장난을 친 거지? 분명 진성이 다른 사람의 머리를 못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이 엽기 사진을 보낸 건 강민이나 경현, 유찬일 것이다. 머리를 볼 수 없는 진성이 왜 이 사진 속 두 남자의 머리는 볼 수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낸 모양이겠지. 진성은 화가 나 개인 메시지로 거칠게 퍼부어주려다 하늘도 동석한 자리를 망칠까 봐 그만두었다. 대신, 자리를 파하고 헤어질 때 용의자 중 한 명인 강민에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민도 편치 않은 낯으로 진성에게 말을 걸지 않았는데, 진성은 아마 찔려서 그랬겠거니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진성은 눈치를 보다가 처음으로 하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놀란 기색 없이 순순히 그의 팔에 몸을 맡기는 여자를 보며, 진성은 조금 흥분했다. 곧 섹스할 수 있겠지. 사실, 그는 하늘에게 자기 비밀을 털어놓을 때부터 묘한 기대가 있긴 했다. 대개 여자들은 남자의 가엾은 사정에 약하니까, 비밀 얘길 하면 하늘이 그를 좀 더 일찍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하는.

“오늘 즐거웠어?”

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망설이더니 내뱉었다.

“지수 씨 예쁘더라.”

이거 설마 ‘떠보기’인가? 진성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하늘이 너무나 귀여운 나머지 그녀를 끌어안은 팔에 좀 더 힘이 들어갔다.

“그 여자랑 자기랑 비교가 돼? 자기는 머리가 달렸잖아, 다른 여자들이랑 다르게.”

“자기는 그 여자 얼굴도 안 보였어? 엄청 예뻤는데, 안 됐네.”

진성은 하늘을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했다.

“난 우리 자기 얼굴밖에 안 보인다고.”

그날 밤, 헤어지기 직전 진성은 하늘에게 입맞춤을 시도했지만, 하늘이 웃으며 밀어냈다. 그러나 진성은 섭섭할지언정 화가 나진 않았다. 하늘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화가 나려다가도 가라앉았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눈을 똑바로 마주한다는 것은 이렇게 기쁜 일이구나. 진성은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선 영상을 보았다. 또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머리에 하늘의 얼굴을 덧씌운 상상을 하려 했으나, 대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여자들의 영상에 아까 받은 사진 속 두 남자의 머리가 조악하게 합성된 모습이었다. 뒤척이는 여자들의 풍만한 몸 위로 하얗게 질린,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남자들의 얼굴이 달린 모습.

진성은 비명을 지르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

 

꿈이 아니야, 진성 씨. 꼬집어보면 알걸. 아, 못하겠구나, 묶여있어서.

여긴 내가 다니던 학교 뒷산이고, 내 옆의 이 나무는 내가 목을 맸던 장소야. 내가 귀신인지 아닌지 궁금한 표정인데, 이건 말해주면 재미없으니까 비밀로 할게.

여길 왜 데려왔는지 궁금해? 인제 와서 알아도 달라질 건 없긴 해. 그래도 설명을 해줄게.

당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건 내가 아니야. 당신 죄의 업보야.

죄? 무슨 죄?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나 보네.

…있잖아. 내가 조금밖에 말을 안 했는데 벌써 지루해 못 견디겠어? 안 됐다. 진성 씨는 오늘 내가 하는 말 다 들어줘야 해.

예전에 말이야,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이랑 클럽에 놀러 갔던 적이 있어. 왜, 나랑 진짜 친한 친구들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집에서 연예인 좋아하거나 자격증 공부하거나, 되게 얌전한 애들이야. 아무튼, 나도 그랬으면 이런 일 안 당했을까. 그렇다고 내가 마신 술잔에 약이 있었던 게 내 잘못은 아니지. 그리고 그때 강간당한 것도 내 잘못이 아니야.

영상을 봤는데, 우리 얼굴은 안 나오더라. 그치만 당신도 알잖아? 머리 따위 나오지 않아도 누군지 다 알게 되어있다는 거. 영상을 올린 사이트 중 몇몇 곳에선 우리 민증 사진까지 같이 올렸어. 그쪽 사람들에겐 여자가 몇 년 생인지, 그런 것도 중요하다나 봐.

살 수 없어서 목을 맸는데…이건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니까 패스. 아무튼, 머리가 식으니까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잖아. 그러니까, 복수 말이야.

우린 잘못한 사람 – 술잔에 약 넣은 사람, 촬영한 사람, 영상을 본 사람. 다 합치면 네자릿수도 가볍게 넘어. - 중 무작위로 네 명을 골랐어. 나머지는 차차 찾아갈 거야.

그러니까…너무 슬퍼하지 마. 매 먼저 맞았다고 생각해.

처음으로 내 얼굴만 보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설레더라. 진성 씨는 내 첫 남자야 - 남자들은 이런 말 좋아하지?

하지만 마지막으로 죽일 남자는 아닐 거야.

 

진성은 틀어막힌 입으로 최대한 비명을 질렀다. 그 영상 본 거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잘못한 문제로 따지면 영상 올리고 너희 약 먹인 새끼들이 더 나쁜 거 아니냐고. 왜 우리가 걸린 건데?

엄마, 두부야…아빠…

죽고 싶지 않아, 살려 줘.

눈물과 콧물이 얼굴 반쪽을 뒤덮었다. 문득 진성의 눈엔 여자가 한여름인데도 목까지 가린 얇은 폴라티를 입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잠깐, 그러고 보니 하늘은 항상 폴라티를 입고 있었다. 왜 진작 몰랐을까?

진성은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늘에게 묻고 싶었다. 네 옷 안쪽엔 목이 졸린 자국이 남아있는 거야? 혹시, 쇄골 근처엔 푸른 반점이 있는 거야? 죽게 되더라도 그것만은 알고 싶었다. 미친 듯이 궁금했다. 도끼가 날아들어 숨을 끊어낼 때까지, 그런 것이나 궁금했다.

 

 

○○○ 커뮤니티

 

○○ (356.25) / 2020.07.25. 03:27:19

요즘 머리 안보인다던 새끼 안 보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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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356.25) : 뭐임? 뒤졋음?

ㄴ○○ (180.67) : 장난치지 마라

ㄴ○○ (137.62) : 근데 112.48 이거 머리 안 보인다고 징징대던 그새끼 본인 IP 아님?

ㄴ○○ (235.94) : 엌ㅋㅋㅋㅋㅋ마지막글 유작됐네 ㅓㅜㅑ

ㄴ○○ (221.34) : 글삭해 샹년아 사람 죽은 얘기가 재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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