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그 애는 어렸을 적부터 침대에서 디스코팡팡처럼 놀길 좋아했고, 그건 죽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문을 열고 보면 침대 위엔 늘 여러 크기의 발자국들이 널려 있었다. 여자는 밤새 그 애가 얼마나 자랐는지, 자라면서 뛰어놀았는지를 가늠하면서, 닦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은 출근했고 딸은 소설을 쓴답시고 제 방에 처박혔다. 오전 9시였다. 모두 다 성실하구나. 그는 중얼거리면서 믹스커피를 타 식탁 앞에 앉는다.

발자국을 지운 행주를 수 번, 아니 수십 번은 빤 뒤 세면대 근처에 걸어놓았다. 그 수건으로 그는 얼굴을, 손을 닦는다. 남편은 더럽게 무슨 짓이냐고 핀잔을 주었고, 딸은 노망난 게 틀림없다면서 대체 치매 검사는 언제까지 미룰 거냐고 사채업자마냥 그의 건강을 독촉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안하겠다고, 알겠다고 하지만 내일이 되면 또 다시 자신이 그 수건에 닦은 손으로 집안일을 하고 간식과 저녁을 지으리라는 것을 안다. 사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 그의 남편이나 딸이나 겉으로 그렇게 내색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내가, 엄마가 미친 것 같다고 느껴진다며. 일종의 자신의 안도와 합리화를 위한 변명이었다. 동시에 어느 가족도, 심지어 ‘그 애’마저도 죽지 않았다는 거짓을 위한 자위행위였다. 그렇지만 누구도 여자를,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그걸 알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화를 내는 한편 서로를 위로하고 용서했다.

걔가 죽어서 그런 거야. 미친 새끼, 왜 죽어서 지랄이야.

딸이 이렇게 말하면 여자는 너도 죽어보면 알 거 아니니, 되뇌며 안방으로 들어가 이른 잠을 청했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고, 모두가 침묵으로 연대했다. 얇디얇은 유리 한 장에 불과한, 이름 없는 침묵이었다. 깨도 문제고 지켜도 문제인 그 적막 속에서 입을 연 건 여자의 남편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으로 불린 적이 없다. 언제나 여자의 남편, 여자의 자식의 아빠, 또는 그냥 자식의 아빠, 이렇게만 불렸다. 적어도 집에서는, 가까운 지인들의 관계에선, 조그만 동네에선 그랬다.

그는 그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일종의 프라이드로 삼았다. 자신은 깨어있는 진보 시민, 이라면서. 자기는 아내를 부를 때 누구 엄마로 부르지 않고, 아내가 누구의 아내로 불리지 않길 원한다면서. 스스로를 낮춘 듯 겸손해 뵈는 남자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깨시민’ 코스프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순전히 자기 기분에 따라 집안 분위기를 좌지우지 하고, 나아가 행동 하나하나에 명령조로 윽박지르는, 용돈을 달라 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 못들은 척, 있다가 문제집 사야 돼, 하면 그때서야 마지못해 오천원짜리 몇 장을 내미는, 속물, 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기도 했다. 죽은 그 애의 침대를 버리자는 여자의 말에도 그게 얼마짜린데, 흔들리지 않는 침대라고 당신이 벌컥 결제해서 한바탕 싸운 거 기억나지 않느냐고 따져 묻기 시작했다.

침대가 안 흔들리면, 안 흔들리면 뭐해...... 걔 심장이 지금, 내 심장보다 더 무겁게, 자칫하면 쓰러지듯 흔들렸는데....... 흔들리는 애 머리가 자꾸만 꿈에 나타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가 침대 위를 구르면서, 통통 튀면서 침대 전체가 들썩인다고. 그 아래에선 절단 난 팔다리가 꿈틀거리면서 내 발목을 붙잡아. 그런 기분, 알아? 당신 네가 아냐고.

그게 다 뭔 소용이야. 가격을 생각해야지. 얼마짜린데, 그게 얼마짜린데!

그는 화를 내다가 제 풀이 지쳐 소파에 드러누워 한없이 재방송으로 이어지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드라마에 넋을 놓았다. 그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을 때에도 그는 TV를 보았다. 여자의 딸은 방문을 꽉 닫고 요란한 기계식 키보드를 쉼 없이 두드리며 언제고 제 부모가 이해하지 못할 소설 따위를 쓰기 바빴다. 여자는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는다. 무당이 한 말을 기억한다. 그의 남편도, 딸도 안다, 기억한다, 알고 있을 것이다. 모레가 그 애의 기일이라는 걸, 그리고 자살한 이의 기일은 챙기지도 기리지도, 제사를 지내지도 말라는 무당의 다짐 아닌 다짐을. 그러자 딸이 소설 소재거리를 찾았다는 양 왜냐고 물었다. 무당은 한참 동안 여자와 여자의 가족들을 노려보듯 눈길로 훑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원래 뱃속에서 죽었어야 할 새끼야. 저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 그쪽 딸과 마찬가지로.

여자는 무너져 내리는 두 가슴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가까스로, 50년 세월에 휜 척추로 버티며 무당의 나머지 말을 기다렸다. 자식이 없어야 할 팔자인데, 운명인데 둘씩이나 낳고 잘 키운 거 보면, 아 한 명은 요절했지만, 어쨌거나 당신 딸은 살아 있잖아, 어쨌거나 그런 운명인데 그걸 거역했으니....... 대가만 치르고 오시게. 돈도 그때 내시고. 지금은 돈이든 뭐든 받아봤자 나한테도 안 좋아. 얼른, 얼른 가시게나!

가시게나, 가시게나, 가시게나.......

 

그날은 아침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 애의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글자 초성 하나조차 누구하나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도. 그 애가 있든 없든 늘 소란은 소란이었고 사소한 말다툼은 옵션이었다. 여자가 딸로부터 한소리를 들은 것이다. 대체 유통기한 지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예전에 산 베이글이 두 조각이나 남았냐고. 그러면서 제조일자와 유통기한 날짜를 읊는 것이었다. 10월 1일이 유통기한 끝이야. 이걸 아직도 안 버렸어? 도대체 집에서 뭐해? 혼자? 10월 1일, 여자는 가만히 그 숫자와 그 글자를 가만히, 되씹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생각해내려다 동시에 기시감이 든다.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들이닥치는 기억의 회오리 속에서 여자는 아들을 발견한다. 그 애의 생일이었다. 10월 1일.

10월 1일이 무슨 날인지 아니?

내가 어떻게 알아, 분명 누구 생일이거나 하겠지.

그의 딸은 베이글을 조각낸 뒤 킁킁 냄새를 맡곤 인상을 찌푸린 채 음식물쓰레기 봉지에 쏟아버렸다. 여자는 네 동생 죽은 날이야, 라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중얼중얼 투덜대던 딸의 몸짓이 찰나, 멈추었다. 그리곤 그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식의 눈길로 제 어미를 바라보았다. 딸은 결국 엄마가 죽인 거라면서, 애초에 뱃속에서 죽었으면, 태어나지 않았으면 죽을 일도 없을 거 아니냐며 화를 낸다.

여자는 이해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왜 자신이 욕을 먹어야 하는지. 그것도 멀쩡히 ‘살아있는’ 딸한테. 그의 남편은 아무 말도 없이 찻잔을 비우고는 거실로 가 소파에 드러누워 드라마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여자는 감히 견딜 수가 없었다. 딸은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걸어 잠그고, 남편이란 남자는 드라마를 보며 저 집안은 아들들이 다 잘생겼구만, 뇌까린다.

무슨 뜻이야.

여자가 TV 앞을 가로막고 선다.

뭐하는 짓이야? 남 TV 보는데 왜 가로막아?

TV를 가로막은 게 아니라 내 아들, 너한테서 막아준 거야. 그딴 눈길로 웃음이나 칠칠 흘리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남의 집안 아들 잘생겼다고, 외모 칭찬을 해? 로또 되면 네 꼴보기 싫은 얼굴 성형으로 뜯어고쳐주겠다고 밥상머리에서 수차례 떠들던 인간이? 걔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상처 입고 울었는지는 아냐? 걔, 걔, 그 애, 네가 죽인 거야. 네가 죽인 거라고, 이 나가뒤질 인간아. 씨발 새끼야!

여자는 그대로 TV를 발치에 내팽개쳤다.

그대로 액정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TV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남편은 뭐라 말을 하려다 잊어먹었는지 입을 약간 벌린 상태로 여자, 이순복 씨를 쳐다보았다. 난 누가 뭐래도 제사 지낼 거야. 우리 아들, 어떻게 죽었는데, 챙겨야지. 그래. 챙겨야지. 제사. 재료도 사오고 바쁘겠네. 그러더니 이순복 씨는, 여자는 딸애의 방문을 있는 대로 주먹으로 쾅쾅 무너질 듯 두드린다. 곧바로 방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딸애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힘껏 잡아당기는 야 빼앗았다. 황당한 얼굴의 딸에게 여자는 썩은 베이글이 네 동생 죽은 날보다 중요하느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이번 제사부턴 여자인 너도 절을 하라고.

병신이, 지금 무슨 개소릴 하는 거야? 무당 말 못들었어? 자살한 인간은 제사 지내는 거 아니라잖아. 누굴 또 죽이려고 이 난리를 벌여? 미쳤어?

죽여? 내가 죽이긴 누굴 죽여, 누굴 죽여!

동시에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자와 여자의 가족들의 시선이 현관으로 한 데 모인다.

현관문을 열자 택배기사가 놓고 간 작지도 크지도 않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겉면엔 ‘파딩 로션’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취인은 아들이었다. 아들의 이름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상자를 뜯었다. 가위도, 칼도 없이 자신의 묵직하고 톱날 같이 예리한 손으로, 손끝으로. 충전재를 꺼내고 모습을 드러낸 건 성인용품들이었다. 이를 테면 딜도, 바이브레이터, 텐가 같은. 한동안 그들은 정적에 휩싸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두가.

 

아들 방을 ‘조사’하기 시작한 건 점심을 건너뛴 오후 두시부터였다. 사실 조사랄 것도 없었다. 이미 그 애가 양성애자라는 건 그 애의 방 안에 한 번쯤 들어가 둘러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므로. 건전한 최소한의 성적 관심마저 차단하는 데 급급했던 여자와 여자의 남편은 그저 올 에이쁠 성적표를 들고 온 어느 해인가의 어느 달, 어느 날, 어느 시 어느 몇 분에 놀랐던 것처럼, 놀랄 뿐이었다.

그들의 집이 겉으론 완벽한 요새였지만 내부는 우물이 말라, 식량이 떨어져서, 햇빛을 쐴 기운조차 없는 죽어가는 이들의 작은 성채에 불과했다는 것 또한. 애초에 들어간 적도, 애정은커녕 관심조차 없었던 과거를 긍정적으로 세탁하기 위해 여자는 기억과 기억을, 진실과 거짓을 마구 뒤섞어, 이상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의 남편은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라는 말만 반복하며 화를 내다가,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며 그 애를 동정했다. 딸은 뭐가 놀랍냐면서, 그 정도 눈치도 없이 부모 노릇했냐고 이때다 싶어 제 설움까지 다 토해냈다. 난장판이었고. 어느 새. 익숙하게도 그 애의 죽음은 저녁이 되어서도 밤 9시가 넘어서도 그들에게서 잊혔다.

여자가 그 애의 죽음을 다시 상기한 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였다. 딸애가 유통기한 지났다며 버린 베이글 조각들이 위태위태하게 봉지 위에 얹어져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 현관을 나서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는 내내 그는 믿을 거라곤 자신의 발등이 전부인 것처럼 시선을 그에 못박아두었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었다. 베이글 조각을 집어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악취를 풍기는 다른 음식물들에 더럽혀진 베이글 조각은 수차례 그녀의 입속에서 잘게 부수어지고 다져지고 씹히고 삼켜졌다. 마치 그게 여자의, 여자 나름대로의 그 애에 대한 추모라고, 누군가 말하는 듯했다.

그가 갑자기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상자 더미 위에 내던지고 주차장으로 향한 건 일순, 벌어진 일이었다. 도망치듯 제네시스 운전석으로 달려가 앉은 여자는 곧바로 시동을 걸고 근처 이마트로 차를 몰았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아직 그 애의 기일은 지나지 않았다. 아직, 세 시간이 채 남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남아있는 건 남아있는 거였다. 그는 기억한다. 그 애의 컴퓨터에서 자위 관련 검색기록을 확인한 날, 미친 듯이 두들겨 팼던 것을, 또한 그 애가 잘못했다며 무릎을 꿇고 애원했던 것을, 그리고 자신을 비웃듯, 마지막에 덧붙이듯 나 사실 남자도 좋아하는 것 같아, 라고 말했던 것을. 그것은 하나의 장면으로 이어지지 않고 복잡하게 부수어지고 깨져 파편들로 하나의 산을 이루었다. 그는 그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맞는 퍼즐을 찾아 맞추고 버리고 맞추고 억지로 끼우다 버리기를 반복했다.

여자는 그 애를 남몰래 이해하려고, ‘엄마로서’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 하나에 그는 브레이크를 밟는다. 뒤이어 차체가 흔들렸다. 연쇄적으로 차가 앞으로 밀리듯 덜컹거렸다. 차에서 내려야 했지만 내릴 수 없다. 그는 할 일이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 오십오 분이 남았다. 어느 것에도 흔들림 없이 꼿꼿이 걸어오며 나이 쉰에 이른 그였다. 마트 주차장으로 핸들을 꺾어 들어가는 와중에도 그의 마음은 단단했고 무거웠다. 비석 하나를 세운 것 마냥.

재난영화에 나오는 흔한 장면 있잖은가. 마트나 슈퍼 따위를 털어 식량을 ‘채집’하기 바쁜 사람들의 아우성. 여자는 혼자 그런 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그 애가 좋아했던 음식들은 죄다 담았다. 오랜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하질 않았다. 그 애의 죽음을 하필 당일 날 받아들이고 이해한 까닭이다.

타이밍도 좆같지, 시부럴. 그녀는 뇌까리며 계산대를 서둘러 통과했다. 차를 몰고 집에 가니 시계는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편은 자고 있었고, 딸은 잠깐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며 나간 뒤였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딜 쏘다니려고. 나는 뭐라 하려다 관두었다. 그렇게 해서 그 애를 잃은 것 같다는 생각에.

여자는 홀로 재빠르게 제사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걸리는 건 즉석코너에서 포장 째로 사왔다. 그저 데우고 돌리고 에어프라이기에 굽거나 튀기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들키지 않아야 했다. 남편에게든, 딸에게든. 남편이란 남자는 안방에서 연신 코를 곯았다. 그러다 뒤척이고, 잠꼬대를 하고. 무슨 인기척이 날 때마다 여자는 깜짝깜짝 놀라며 그 즉시 행동을 멈추고 사위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하면 제사 준비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 순간이었다. 현관문이 열리며 딸이 들어왔다. 여자의 딸애는 대회에 낼 소설을 써야 한다며 방해하지 말라고 문을 쾅, 잠갔다. 다행이라고,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얼마 남지 않은 요리를 마쳤다.

혼자서 창고에 있는 제사상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자는 땅의 방문에 대고 과일 갖다 줄까? 라고 물었고, 딸애는 방해하지 말라며,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되바라진 년, 욕을 하려다 여자는 헙, 다물었고 그 찰나 제사상이 쿵, 하며 바닥을 울렸다. 아무도 듣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는 천천히 음식들을 날라 제사상 위에 차리기 시작했다. 사진, 영정사진이 필요했다. 여자는 서둘러 노트북을 켜 사진 폴더로 들어가 ‘범재 사진’이라는 이름의 폴더를 클릭했다. 그 애의 사진 수천 장이 주르륵 정렬했다.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그 애의 맨몸, 그것도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황금비율에 맞춘 듯 알 수 없지만, 어딘가 군더더기 없고 이해하기, 받아들이기, 보기 편했다. 여자는 자신의 빈곤한 어휘력에 놀람과 동시에 곧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킬 것을 깨달았다.

A4종이에 인쇄해 액자에 아무렇게나 잘라 넣은 영정사진은 그 애의 마지막 순간만큼이나 초라했다. 여자는 기억했다. 문을 열어 난간을 내보이고, 160센티미터짜리 제 몸을 그의 시선에 맞게 도려낸 뒤 그대로 실수처럼 떨어졌다. 실수처럼 떨어졌고, 실수로 죽어버렸다. 달려가 붙잡을 시간이 있었을까. 그는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늘 그날의 시간을 지금의 시간으로 가늠했고, 쟀고, 온몸의 털 하나하나가 곤두설 때까지 직감의 세기를 추정했다.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정신이, 이 씹 같은 뇌가 내 두 발에 제동을 걸었을 뿐이다...... 실수였을 뿐이라는 결말에 다다른다. 아까 말한 것처럼, 여자는 그 애를 실수로 ‘죽여 버렸고’ 그 애는 실수로 ‘죽어버렸다’, 그게 사실이다.

절을 했다. 제대로 펴지지도 않는 허리로 몸을 접었다 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무당의 경고는 깨끗이 잊은 지 오래였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특히 제사 지내지 말라고, 자살한 이의 기일은 챙기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그는 경고를 자각하면서도 가슴 한 쪽에 남은 미련과 슬픔이 흘러넘치는 것을, 자기는 그를 감당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새하얀 밥에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반찬들마다 번갈아 정갈히 내려놓고, 그러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새 누가 뭐라 하던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 되고 말았다.

아들도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 되고 말 것이었다.

미화되고 미화되어 어느 날엔 아들을 일종의 순교자 마냥 취급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자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다 소파에 걸려 뒤로 넘어진다. 푹신한 느낌이 엉덩이를, 곧 그녀를 감싸 마음에 안정제로 작용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뒷모습을 버리며 살아왔다. 뒤엔 아무도 없을 거라 믿으며, 앞을 꾸미기에 급급했다. 인쇄된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여자의 단상이었다. 많이 봐왔던, 아니 그것밖에 보지 못했던 아들의 뒤는 꼽추 마냥 형편없었다. 어깨는 널찍하게 벌어졌지만 아기 하나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양 날갯죽지는 날개를 막 떼어낸 마냥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거북이처럼 앞으로 내뺀 목은 줄어든 채 간신히 들숨날숨과 말을 구분, 할 수 있으려나.

그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자. 옆으로 보는 세상은 새삼 낯설었다. 휘어질 수도 있구나, 내가 아무리 옆으로 보아도 세상은 그 자리에서 곧게 자라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여자가 눈을 감자마자 떴을 땐 이미 아침이 그녀에게 찾아든 지 오래였다. 역시나 남편은 출근했고 딸은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고,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외박하고 오겠다는 쪽지를 남긴 채 집을 나선지 오래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그는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건의 물기를 짜듯 머리를 쥐어짰다. 기억이 방울져 연신 여자의 메마른 머릿속을 적신다. 잠이 들었고, 깼더랬다. 그때가 오전 네 시였고, 제사상은 누가 먹었는지 모르게 싹 비워져 있었다. 사진은 아무렇게나 구겨진 걸 다시 정성스레 핀 것처럼 주름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먹은 걸까. 딸과 남편, 둘 다 아닐 것이었다.

정말 그 애가 왔다가 간 걸까. 그랬으면, 정말 그랬으면.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그 애에게서 나온 갖은 부정이 소변으로 배출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시 절을 한다. 다리를 굽히며 몸을 접고, 땅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두 손이 가만히, 금방이라도 누군가의 손을 쥐어줄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마지막, 간단한 목례를 한다. 그는 피부에 닭살로 돋아난 순간의 적막을 견딜 수 없다. 손톱을 바짝 세워 닭살이 돋은 살갗을 긁고, 세게 긁고, 더 세게 긁고, 피가 날 때까지 더욱 더 세게 긁는다. 생채기가 나고 얄따란 허물이 벗겨진다. 쓰라리다.

그는 손톱을 바짝 깎고는 제사상을 치우기 시작한다. 상 전체를 들 수가 없어 여러 번 거실과 부엌을 오가야 했다. 그렇게 빈 제사상만 남았다. 여자는 허공에 꽂아둔 시선을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하지만 그 애가 있을 거라고 믿은 허공의 그 점, 은 쉽사리 그의 눈길을, 그를 놔주지 않는다. 파열음이 나며 찢어진다, 그는 고통과 문득 들이닥치는 슬픔에 배를 부여잡고 또 다시 주저앉는다. 속이 누가 칼끝으로 헤집듯 아파왔다. 자살한 이의 제사는 지내지 말라는, 그렇지 않으면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무당의 말이 귓가에서 맴을 돌았다, 좆 까라고 그녀는 우물거렸다. 내가 막을 수 있었는데, 라는 자책은 이제 그만 두려고 한다. 여자는. 그 애가 어디에 있든 자신이 지켜 주리라, 보살펴 주리라, 결심한다.

여자는 마저 설거지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제 아무 것도 안했지?

여자의 남편이 슬쩍 말을 꺼낸다. 여자는 그를 흘겨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남은 새끼가 하는 생각이라곤 소설 나부랭이밖에 없는데.

당신 참 이상해. 언제부터 재범이 그렇게 챙겼다고. 오히려 희선이 더 좋아했잖아.

난 편애한 적 없어.

여자는 계란국에 밥을 만다. 덜 풀어져 뭉쳐진 계란 노른자가 꼭 그 애의 눈동자 같다. 그는 힘주어 노른자를 부순다. 가루가 될 때까지, 국이 누렇게 될 때까지, 살작 걸쭉해질 ㅐ까지 계속해서 숟가락을 내리찍는다. 그 애는 노른자를 싫어했다. 아니, 그보다는 ‘먹지 못했다’, 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아토피와 비만을 앓고 있는 그 애에게 노른자는 최악이었다. 그는 늘 겉의 흰자만 주었고, 아들은 미끄덩거리는 느낌이 싫다며 먹기를 거부했다. 그게 화가 나 그는 몇 차례나 상을 엎은 적도 있다. 반면 딸애는 소설 쓰는 것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유순하고 말을 잘 들었다. 그런 기질을 보면 집안 전체가,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비였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는데 다행히 여자의 아들은 그런 쓸데없고 지리멸렬한 고민을 해결해주는, 살아있는 근거였다. 그 애는 여자와 여자의 가족들처럼 그를 닮아 언제나 자기주관과 가치관이 뚜렷했고, 결코 쉽게 굽히는 법이 없었다.

노른자의 ‘미학’도 그 성격에서 발화된 일종의 그 애의 세계관이었다.

남편은 계란국을 멸치 하나 남기지 않고 들이킨다.

근데 당신 통장, 좀 이상하던데.

뭐가?

수백만 원이 다른 통장으로 옮겨져 있더라고. 당신 요새 은행 간 적 있어?

내가 은행을 갈 시간이 어디 있어. 옮길 돈은 어디 있구.

이상하네. 퇴근하면서 확인해봐야겠어.

그리고는 별 다른 말없이 그는 출근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여자는 문득 회의감에 사로잡혀 수저를 내려놓는다. 울고 싶었지만 아무리 슬픈 상상을 하고 장면을 떠올려도 제자리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마리라는 직감이 흐릿한 실루엣에서 이목구비를 갖춘, 구체성을 띤 한 명의 사람으로 선명해진다. 그것은 여자에게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제 형체를 뚜렷이 내보였다. 그는 뒷걸음질 치지만 제자리에서 계속 맴만 돌았다. 그것이 멈추었다. 그것의 입이 눈 옆까지 찢어지고 무수히 많은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대로 여자에게 돌진한다. 그리고 여자는

눈을 뜬다. 격자무늬의 천장이 고요히 나를 마주본다. 대가를 치르라니. 그는 중얼거렸다. 이제야 설핏 생각난 무당의 말이 거슬린다. 대가라니. 대체 무슨 대가를 치르라는 것인가. 그는 가족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나란히 곁에 누워 죽을 때까지 그저 큰 탈 없이 평화로웠으면, 하는 바람만 가지고 있었다. 무슨 대가가 필요하기에. 우리 아들 재범이가 원하는 게 대체 뭔데. 뭐든지 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다못해 쓸모없는 남편이나 이곳저곳 쏘다니거나 글쓰기 바쁜 백수 딸애나....... 생각을 열었다 닫았다.

그에겐 아들뿐이었다. 자기 인생에서 남은 거 하나. 의지할 상대 하나.

흔하디흔한 아침 드라마나 교육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 같다고, 그는 자신을 평했다. 아들에게 모든 것을 건 중년 여성의 삶, 또는 고군분투기. 그 가운데 자기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가족 몰래 자살한 아들의 제사를 지낸 건 일종의 오기이자 자신에게도 그럴 만한 힘은 있다고 과시하는, 반항이기도 했다. 그가 노모가 갑작스레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아들 방에 놓인 책을 모두 읽으리라, 그래서 조금이나마 죽은 그 애의 영혼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뒤였다.

그는 전화로 소식을 듣고, 끊자마자 폭소를 터뜨렸다. 그 기괴한 웃음은 너무나도 컸고, 이상했고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곤 이내 폐허 속 자라나는 잡초들과 같이 핀 여드름과 각종 트러블로 가득한 제 얼굴을 핸드폰 화면에 비춰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지껄였다. 너무 흔하디흔한 할리우드식 전개에 잔웃음을 연신 흘리는 여자였다. 이러이러지 마라, 그렇게 하면 아주 나쁜 일이 생길 것이다, 와 같은. 그러나 이미 그는 잃을 대로 잃었고, 남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노모의 사망을 알려온 형부에게 그는 곧 내려가겠다고 전화한다. 다시금 벨소리가 울렸다. 순간 치솟는 짜증에 그는 전원을 꺼버리려다 ‘보살님’이라 적힌 화면의 글자를 보고 생각을 고쳤다. 전화를 받자 무당의 토막 난 말이 그녀의 귓구멍으로 굴러 떨어졌다.

......없었지?

뭐가요?

당신 아들 죽은 날 말이야. 아무 일도 없었지?

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해요. 잘 있고요.

거짓말.

그는 일제히 몸 전체가 굳어버린다.

거짓말 하지 마, 필시 누가 죽었을 텐데.

........정말 없었다구요. 제가 보살님한테 거짓말을 왜 해요.

몇 번의 실랑이가 이어진 끝에 대화는 중단되었다. 먼저 전화를 끊은 건 그였다. 중대한 뭔가를 숨긴 것처럼, 남이 알아선 안되는 사실을 가지고 있는 듯이 굴었던 자신에 대해 그는 곧 후회했다. 그는 노모가 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노모가 죽었다는 사실은 믿었다. ‘자살’로 죽었다는 사실, 말이다. 자살은 사고가 아니다. 자살은 또 다른 형태의 타살이었다.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그래, 내 아들은 자살한 게 아냐. 누가 죽인 거지.

누가 죽인 거지?

 

노모는 이불을 널다 말고 9층에서 투신했다고, 같이 살던 파출부가 증언했다. 노모의 가족들은, 그러니까 여자의 친정 가족들은 하나 같이 의심스럽다며 당시 유일하게 같이 집에 있던 파출부를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여자는 그저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며 죽은 아들 생각을 했다. 시체도 없이, 빈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동네 어딘가를 휘젓고 다닐 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곤 이내 웃는다. 아니, 좀비도 아니고 그럴 리가. 다시 한 번 터진 웃음에 노모의 ‘가족’들이 그를 돌아본다. 사람이 죽었는데 웃음이 나오느냔, 힐난하는 눈빛이었다.

사레가 들려서요. 죄송해요.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쥐죽은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들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타인을 향한 의심과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를 자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충동에 가려져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들은 자살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근거 없는 논지가 그녀의 사고회로를 설계했다. 그는 화장실을 간다고 하곤 카페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택시를 탄 뒤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쿵, 하는 소리가 함께 솟쳤다. 그녀 눈에 보인 장면은 쿵 소리가 날 수 없는 구조의 장면이었다. 어디서 들린 걸까, 쿵, 은. 허리벨트에 목을 맨 남편에게서 들릴 소리가 아님을 그는 알았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쿵, 한 건 분명했다. 자기 뱃속에서, 좀 더 다듬자면 마음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들린 걸까. 여자의 남편의 두 발 아래에 식탁 의자가 나뒹굴었다. 그는 한 쪽 눈을 까뒤집은 채 침을 질질 흘리며 죽음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여자는 무슨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다. 당연하듯, 이불을 널고 청소기를 돌리고 행주로 침대 위 그 애의 발자국을 지우듯, 습관처럼 남편을 목줄에서 그러내었다. 혹시나 해서 남편을 흔들어보는 여자다. 그러나 미동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기 선 밖의 일임을 여자는 잘 알았다. 무당의 말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자살한 이의 기일을 챙기면, 제사를 지내면 필시 그 화가 같은 형태로 미칠 것이야.

누구한테요? 남은 가족이요?

아줌마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 다.

죽은 남편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몰라 처음에 그는 이삿짐센터나 퀵서비스를 검색해보았다. 한참을 찾은 끝에서야, 문득 죽은 사람은 배송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어떻게 해서든 시댁에 남편의 시체를 보내야 했고, 그걸 해줄 사람이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면 틀림없이 자신을 조사할 거였다. 자살임이 밝혀져도 그게 무당의 말처럼 나 때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자는 아주 잘 알았다.

먼저 그는 락스 등 세제와 긴 회칼과 톱 등을 마트에서 사왔다.

그 다음,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자신이 아니라 죽은 자의 뜻에 달렸다.

 

딸은 며칠간이나 음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500밀리리터 포카리 한 병을 마신 게 전부였다. ‘아버지’가 자살한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자살’한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표정만으로는 그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부녀간의 사이가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집안의 누군가가, 그것도 두 명이나 자살했다는 점에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을 거라고, 여자는 단정한다.

있지, 엄마. 느닷없이 들려오는 딸의 말에 여자는 정신이 깬다. 응? 돌아보자 딸은 오래 말라붙어 티도 나지 않는 눈물을 계속해서 문지르고 닦는다. 사실 내가 그랬어. 여자는 뭘? 이라고 되물었고 딸애는 재범이 기일 챙기는 거, 제사 지내는 거. 그때 내 방에서 나 혼자 했어. 엄마하고, 아빠하고 같이 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럴 용기가 안나더라. 남은 가족들이 두려웠어. 이 사람들도 언제 내 곁을 떠나갈지, 죽을지 모른다는....... 저 사진의 주인공이 바뀌면 어떡하지, 평생 제사 음식만 차리다 죽으면 어떡하지, 그런 거. 그래서 나 혼자라도, 침대까지 옮기면서 했어.

엄마, 무당 말, 그런 거 안 믿지? 믿지 마. 믿게 되면

딸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좀 더 편한 자세로.

우리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해. 자살, 말이야. 아니면, 둘 다 죽거나.

여자는 딸을 끌어안았다. 딸애의 흐느낌이, 온몸에 진동하는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내가 제사는 꼭 치러줄게. 걱정 마, 희선아.

 

아무렇지도 않은, 동시에 아무런 날들이 바람결을 따라 흘러갔다. 두 명만 남은 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요란했고, 복잡하고, 바빴다. 방들의 모든 문을 떼어냈다. 문틀만 남겨 놓은 채. 그러나 물리적으로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는 덴 한계가 있었다. 대화는 여전히 시시각각 바뀌는 남북관계 마냥 유동적이었고, 기껏해야 밥을 먹고 과일을 먹을 때에만 얘기를 조금 나누는 편이었다.

네 소설 보여줄 수 있니?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여자가 말했다. 딸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당황한 얼굴로 소설? 내 거? 되물었다. 여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돌아온 대답은 거절, 이었다.

아직은 보여줄 때가 안 됐어.

......그 애에 관한 소설이구나. 그런 소설을 쓰고 있구나.

딸은 아무런 대꾸도 않는다.

괜찮아. 네 스스로 마음 편안해지면, 그때 말해줘.

딸은 반응이 없다 뒤늦게 머리를 주억거렸다.

 

화장실에서 딸이 나오지 않는다. 여자는 급하다며 얼른 나오라고 문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답이 없다. 할 수 없이 그는 장롱 깊숙한 곳에서 열쇠를 꺼내 문고리를 열 수밖에 없었다. 열리자마자 뜨거운 수중기가 그의 얼굴에 훅 끼쳐온다. 여자는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딸애의 이름을 불렀다. 반응이 없다. 수증기 사이로 드러난 건 붉게 물든 욕조의 물과, 그 속에서 점차 썩어가며 살이 불어나고 있는 딸이었다. 그는 천천히 딸애에게로 다가갔다. 이름을 불렀고 코끝에 손가락을 가져갔고 왼쪽 가슴 가까이에 손을 갖다 댔다. 죽었음이 확실시 되는 찰나였다. 그때서야 여자의 얼굴에서 그늘이 사탕 껍질처럼 벗겨진다.

그는 곧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제 나 혼자예요.

한동안 건너편에선 별 말이 없었다.

이제 나, 죽지 않아도 되는 거죠?

독한 년.

걸걸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무서운 년. 너는, 너는 끔찍한 년이야.

무당이었다.

내가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결국 넌 가족들을 그렇게 사랑했던 셈이야.

나는 미소를 짓다 뭉개며 웃음을 터뜨렸다.

가족들에겐 내가 필요해요.

그는 마거릿 대처의 명언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듯 답했다.

제사 지내줄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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