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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외갓집 이야기

2020.08.09 00:0508.09

오늘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문득 예전에 살던 주택에 대해 써보고 싶어서야.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외갓집에 얹혀 산 적이 있는데 그 집에 관한 얘기. 하도 오래된 곳인데 다음주에 철거가 시작된대서 한번 써보게 되었어. 철거 시작 전에 아직 못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가지고 와야해서 내일 그 집에 잠시 들러야 되는데 그 것 때문에 떠오른 것도 있고. 워낙 많은 일이 있었지만 굳이 가장 생각나는 일 하나를 써 보라면 역시 '그 일'이 빠질 수 없을 것 같아. 꽤나 충격적인 일이어서 아직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져.

 

사실 지금은 할머니도 그렇고 나도 이사를 가서 다른 곳에서 따로 살고 있지만 내가 12살 무렵, 그러니까 약 11년 전에는 다 같이 모여 살았어. 꽤 대가족이었지. 내 부모님, 나,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까지 싹 다 같이 살았으니까. 앞서 말하긴 했지만 당시 내가 살고있던 곳은 주택이었어. 그 주택, 사실 굉장히 오래된 곳이었지.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엄마 고등학생 시절부터 거기에 살았다 했으니 조금 과장 보태서 '살아있는 역사' 그런 거지. 집 구조는 조금 특이한 편이었어. 현관을 열고 스무 걸음 정도 걸어서 다시 다른 문을 열면 그제서야 거실이 나오는데 시계 방향으로 방1(이 곳은 당시 나와 부모님이 머물던 곳이었어.), 화장실, 방2(이 곳은 삼촌이 머물던 곳이었고.), 부엌, 큰 방(이 곳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묵었던 곳이었지.)이 배치된 구조였어.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보통의 집은 거실에서 부엌으로 이어지는 곳이 개방되어 있는데 이 집은 거실과 부엌 사이에 문이 있었다는 것 정도? 뭐, 중요한 사실은 아니니 이건 패스.

 

현 시점에서도 오래된 집이지만 외갓집은 11년 전에도 오래되고 낡은 집이었어. 쥐와 벌레가 틈만 나면 나왔지.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과자를 먹다 문득 하나를 집어 먹었는데 맛이 이상해서 보니 바퀴벌레 새끼가 반마리만 남아있던 건 그나마 양반이었어. 화장실에 들어가면 귀뚜라미인지 곱등이인지 알 수 없는 생명체가 폴짝거리고, 자고 일어나니 쥐에게 문틀이 갉아먹혀 있고, 찾을 게 있어서 서랍장을 여니 갈색 반짝이는 등껍질의.... 으, 시발. 이런 얘기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지금 생각해도 진짜 거기서 어떻게 산 건지 신기하네.

 

'그 일'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자. 사건 당일, 나는 아는 오빠와 집 안에서 놀고 있었어. 동네 자체가 어르신들이 많은 곳이어서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은 나이 불문하고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지. 그 오빠와 나도 그런 경우였어. 나는 당시 미취학 아동이었고 그 오빠는 초등학생 이었는데도 사이가 돈독했거든. 어쨌든, 나와 그 오빠는 집 안에서 농구공을 가지고 노는 중이었어. 그냥 농구공을 튀기고, 주고 받고, 던지는 그런 놀이였지. 어른들이 봤으면 밖에서 놀라고 일갈하셨겠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어른들은 전부 다 밖에 나간 상태였어. 그래서 그렇게 노는게 가능한 거였겠지. 하여튼 그렇게 놀다 무난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지루함을 느꼈는지 오빠가 조금 힘을 줘서 공을 벽으로 세게 던졌어. 거실과 삼촌이 머무는 방 사이에 위치한 벽으로 말야.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예상하지 못했지. 벽을 두드렸을 때 조금 빈 소리는 나도 그렇게 약할 거라 생각은 못 했었단 말야. 그런데 공이 닿는 순간, 쿵! 소리와 함께 벽에 구멍이 뚫렸어. 딱 농구공 크기 만한 구멍 말야. 농구공은 이미 구멍 너머에 떨어진지 오래였어. 하지만 둘 중 누구도 그 공을 주워올 생각을 못했지. 솔직히 어린이집 다니는 애랑 초등학교 저학년인 애가 머리를 써봐야 얼마나 쓰겠어. 너머가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까만 구멍을 바라보던 나와 그 오빠는... 튀었어. 지금이라면 구멍을 막을 방법이라도 찾아보겠지만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냅다 튀어버렸지.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사건의 발단이었던 것 같아.

 

집 밖으로 나와서 놀이터로 온 나와 오빠는 '아주 잠깐' 겁을 먹고 어른들에게 혼날 것이 무서워 벌벌 떨었어. 진짜로 아주 잠깐. 그 이후에는 신나게 놀았어. 마침 동년배 친구들이 놀이터로 왔거든. 집에 가면 혼날텐데,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일단은 아주 신나게 놀았어. 그리고 해가 슬슬 질 기미를 보이자 친구들도, 오빠도 집으로 돌아가고 나 역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지. 그리고 그제서야 구멍이 떠올랐어. 그 어린 머리로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지. 곧 부모님도 퇴근하실 거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집으로 돌아오실 거라 숨긴다고 숨겨질 구멍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놀거 다 놀아놓고 힘 빠진 걸음으로 집에 도착했어.

 

그런데 말야, 사람이 뭔가 쎄한 느낌을 감지하면 그건 본능적인 위험 신호라고들 하잖아. 현관을 열고 들어가 거실로 향하는 문을 열려고 했는데 손잡이를 잡는 순간 뭔가가 이상했어. 당시 거실로 향하는 문은 불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어. 왜, 빛 비춰보면 십자(+)로 비춰지는 그 유리 말야. 그렇기 때문에 집 안에서 불을 켜면 켠게 보일 정도였거든. 그런데 그 유리가 조금... 어두웠어. 분명 나가기 직전까지는 안 그랬는데 이상하게 유리가 까매진 거야. 기분 탓인가? 아냐, 기분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었어. 그러면 왜?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문을 열지 말았어야 하는데 당시의 직감을 믿지 않은 나는 그대로 문을 열어버렸어. 그리고, 내 눈 앞은 나를 향해 날아드는 엄지 한 마디 크기의 벌레들에게 잠식되었지.

 

지금 생각해봐도 그 벌레가 뭐였는지를 모르겠어. 바퀴벌레도 아니고, 나방도 아니고, 하다 못해 거미 같은 것도 아니었는데. 확실한 것은 그 것들이 꽤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으며 비행 능력도 있었고 그 오빠가 뚫었던 구멍 속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던 것 정도? 내가 문을 여니까 그 것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로, 옥상으로, 아궁이로 날아 들었어. 나는 이런 상황 자체가 당연히 처음이라 잔뜩 겁을 먹기도 했고 사고가 멈춘 상태였지. 온 집 안에 그 정체 모를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데 그 광경에 겁을 안 먹을 수가 없었지.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땐 그 벌레 몇 마리가 내 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던 차였어. 어떻게 했냐고? 그 나잇대의 애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냥 비명 지르면서 집 밖으로 달려 나갔지.

 

정말 극히 운 좋게도 그렇게 울고 불며 뛰어 내려가고 있을 때 할머니를 만났어. 솔직히 할머니가 더 놀랐을 거야. 경로당에서 시간 보내다 집에 돌아가고 있는데 손녀가 온 몸에 벌레가 붙은 상태로 울면서 뛰어오는 광경이 흔한 건 아니니까. 어쨌든 우느라 제대로 상황 설명을 하지 못했음에도 할머니는 침착하게 손으로 당신의 손녀 몸에 붙어 있던 벌레를 떼어 주신 뒤 왔던 길을 되돌아 가셨어. 그리고 약국에서 살충제 두 통을 사셨지. 할머니는 언제나 대단하신 분이었지만 사실 그 순간이 가장 멋있는 순간이었어. 집으로 돌아간 할머니는 현관을 열었어 그리고 내가 문을 열고 나온 탓에 현관 직전까지 기어나온 벌레들을 밟고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셨어. 나는 그 때 뭐 했냐고? 겁에 질려서 현관문도 못 넘고 할머니 뒷모습만 보다가 다시 집 아래로 내려가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사먹었어. ...예나 지금이나 먹는 거 쥐어주면 진정하는 건 똑같았거든.

 

하드 하나를 천천히 빨아 먹다 막대만 남아 하나 더 사서 반 쯤 먹었을 때 쯤 할머니가 나를 찾으러 오셨어. 벌레 다 없앴으니 이제 돌아가자며 어르던 말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여겨졌는지 몰라. 집에 돌아와보니 아까 전 할머니가 밟아서 자국이 남은 벌레의 잔해 정도만 조금 남아있을 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집 안은 평온했어. 물론 문 앞에 못 보던 큰 쓰레기 봉투 두어 개가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지. 일단 벌레가 없어졌다는게 중요했으니까. 구멍은 임시로 신문지를 덕지덕지 붙여 막혀 있었어. 그 날 무슨 밥을 먹었는지, 무슨 프로그램을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하도 겁을 먹었던 상황이라 밥 먹고 바로 뻗었거든. 그렇게 그 날의 사건은 할머니의 도움으로 마무리되었어.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가 싶었겠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야. 구멍은 내 이실직고 덕분에 그 오빠네에서 수리비를 전액 부담했어. 물론 그러고도 그 구멍이 완전히 막히는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지. 사실 구멍은 그 날 이후 수리 직전에 한 번 더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어. 그 때도 할머니의 도움으로 잘 처리가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 벌레가 왜 나왔는지, 어디서 그렇게 번식한 건지,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어. 사실 따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어쨌든 구멍이 고쳐진 이후로 나는 그 집에서 2년 반을 더 살았어. 그 이후로는 아파트로 옮겼고 할머니도 얼마 뒤 시골로 내려가셨어. 그 집은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 최근에서야 재개발 구역에 들어갔어. 이제 곧 있으면 그 집은 내 추억 속에만 남겨둬야 할 곳이 돼.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그 곳에서 지낸 유년시절 덕분이라고 생각해.

 

물론, 다시 돌아가 살라고 하면 절대 안 갈 곳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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