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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서울로, 아다지에토

2020.07.01 08:5007.01

서울로, 아다지에토

류휘

 

 

 

일주일 뒤면 지구였다. 내 발 위로 보이는 화면에 따르면 그랬다. 화면에는 현재 우주선의 위치와 지구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고, 잠옷을 벗었다. 내 침대와 얼마 안 되는 폭을 두고 놓여있던 건너편 침대를 봤다. 그 침대는 이미 비어 있었다. 이불과 시트도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아침밥 먹으러 왔어. 뭐 좀 챙겨줘?]

엄마의 메시지였다. 내가 깨기 몇 분 전에 도착한 메시지였다.

[나도 지금 식당 갈 거야]

나는 엄마의 침대를 다시 내려다봤다. 이불과 시트를 갈아줄 직원이 몇 시간 뒤에 올 것임에도 굳이 정리하는 성격과 항상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끼니를 거르지 않는 룸메이트를, 기다리지 않고 식당에 가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와 내가 유나 행성을 떠난 지 벌써 11개월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울에 가자.”

엄마가 처음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얼굴에서 열을 느꼈다. 어딘가에 같이 가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이었고, 서울이라면 지구에 있다는 그녀의 고향이었었다. 검은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은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화면을 꺼두고 통화 중이었던 게 다행이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고 싶어.”

스피커 너머에서 말 없는 나에게, 그녀는 이유를 덧붙였다. 9개월 뒤, 서울에서 있을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녀는 연주 프로그램이 적혀있는 이미지 파일을 메신저로 보내왔다.

[서울 시립 교향악단]

[12월 31일 오후 7시 30분]

“지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는 알지?”

“지구 시간 단위로, 우주선에서 11개월이 흐른 뒤에. 지구에서는 8개월, 행성에서는 23개월이 흐른 뒤에 도착. 그리고 돌아올 때는 우주선에서는 11개월, 반대로 행성에서는 8개월, 지구에서는 23개월이고. 이 공연에 맞춰가려면 한 달 안에 출발해야 해.”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8번]

“무슨 일 있는 거야?”

“그냥 저 공연이 보고 싶어. 너랑 같이 가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5번]

“나 직장은?”

“어차피 3년 동안은 휴직 되잖아. 그리고 그만둬도 언제든 취직할 수 있잖아. 늘 행성에는 인력이 부족하니까.”

“현진은 어떡하고?”

엄마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은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일단 생각해볼게.”

나는 이유를 더 추궁하고 싶었지만 겨우 말을 삼켰다. 엄마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했다. 공연 하나를 보기 위해 지구까지 가는 건 과하단 느낌이 들었지만,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싶다면 지구로 갈 수밖에 없긴 했다. 현악기는 귀해서, 공간과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족한 지구가 아니라면 보기 힘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아마 아홉 살 때쯤-학교에서 선생님이 보여준 첼로 사진을 보고 “저거 우리 집에 있는데.”라고 했다가 선생님에게 “거짓말하면 안 된다.”,며 혼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상황이라 행성에 4중주단이 있으면 대단한 거였다. 더는 우주 어디서도 클래식 음악 현악기를 제작하지 않았다.

28년 전, 현악기의 핵심 재료인 단풍나무는 지구에서 멸종했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단풍나무의 바이러스 감염이 보고되었고 최초로 감염이 발견되고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단풍나무는 멸종했다. 그전까지 보고된 적 없던 바이러스였다. 사람들은 음소거 바이러스라고 불렸다. 현악기에는 제작자에 따라 다양한 나무가 쓰였지만, 현악기의 뒤판은 거의 단풍나무였다. 제작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나무를 써서 현악기를 제작했지만, 연주자들과 애호가들이 만족할 만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새로운 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애호가가 아닌 사람들은 이 상황에 관심 없었다. 이제, 남아있는 모든 현악기는 마지막 현악기였다.

“무슨 일이야?”

식탁에 앉아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현진이 말을 걸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이었다.

“엄마가, 지구에 가제.”

“어머님이? 요즘 많이들 가긴 가더라. 지구 여행, 노년층 사이에서 유행인가 보더라.”

“엄만 그 정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아직 예순넷인데. 오케스트라 공연이 보고 싶대.”

“공연을 보려고 3년을 쓴다고? 음향 재현 기술이 좋아서 실제로 듣는 거랑 가상공간에서 듣는 거랑 거의 비슷할 텐데. 여전하시구나.”

나는 현진이 무엇을 여전하다고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갈 생각이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현진은 여전했다. 어쩌면 현진은 늘 여전했다. 나는 최근에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을 뿐일지도 몰랐다.

나흘 뒤에 엄마가 직접 집으로 찾아왔다.

 

 

[정말 갈 거야?]

내 단말기가 계속 울렸다. 화면에는 현진의 메시지로 가득했다.

[어.]

현진이 음성 통화를 걸어왔다.

“정말 이렇게 가버리는 거야? 제대로 의논도 안 하고? 너무 충동적이잖아. 이유가 뭐야?”

“당신도 모르는 게 있어? 우리 곧 출발해.”

현진이 나오려던 말을 뱉으려다 멈췄다.

“고속 운항 중에는 우주선 외부와는 통신이 안 된다니까. 3, 4개월쯤 뒤에 중간 기착지에서 연락할게. 통신은 지구에서든 어디서든 지연이 없다니.”

나는 통화를 끊었다.

“곧 우주선이 고속 운항에 들어갑니다. 탑승객들께서는 자신의 짐을 모두 수납장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통상적으로 탑승객들께서 느낄 충격은 미비하나 안전을 위한 예비적인 조치이므로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수납장은 위에는 옷을 걸 수 있게 되어 있고, 아래에는 서랍이 달린 구조였다. 객실 밖 소리를 들으니 직원들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수납장이 잠겼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나는 각자의 침대에 앉아 마주 봤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엄마는 빼먹고 온 거 없어?”

“있다 해도 지금 어떡하겠어.”

엄마는 어리석은 사람을 보는 표정으로 답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객실에 나 있는 창을 봤다. 우주 공간과 그 아래로 행성이 보였다. 창이 벽과 같은 회색으로 변했다. 직원이 노크한 다음에 문을 열었다.

“지금부터 방송을 통해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객실의 문을 열어두셔야 합니다. 어느 분이 유주미 님이시죠?”

“저예요.”

엄마가 손을 들었다.

“그럼 이쪽이 유지아 님이시겠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은 인사를 하고 다른 객실로 갔다. 몇 분 뒤 우주선이 움직였다.

“우주선이 안정 속도에 도달했습니다. 서랍장에서 짐을 꺼내셔도 됩니다. 저희 연합 아시아 우주 항공은 탑승객 176분을 모시고 11개월 동안 지구로 운항합니다. 지구 기준으로 8개월 뒤에 도착 예정입니다. 중간에 식품과 연료 보충, 우주선의 정비를 위해서 3개의 기착지에 들르는 여정으로 계획되어있습니다. 우주선 내부 통신망은 방송이 끝나면 바로 켜질 예정입니다. 사용하고 계신 단말기로 음성과 화상 통화와 메시지 전송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여정에 대한 궁금증이나, 우주선 내부 시설과 저희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내부 통신망을 이용해 찾으실 수 있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 음악, 게임 등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행복한 여행 하시길 빌겠습니다.”

각자의 수납장 옆면에 달린 모니터는 우주선의 현재 위치와 지구와의 거리, 속력을 띄웠다. 엄마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수납장에서 짐을 꺼내 매일 쓸 물건들과 가끔 쓸 문건을 분류한 뒤 주저 없이 배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들고 온 작은 스케치북과 연필을 침대 머리맡에 설치된 작은 수납장 위에 올려놓았다. 나도 엄마의 리듬에 영향을 받아서 물건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둘이 같이 살 때 느꼈던 감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엄마가 움직이고 나는 따라갔던 시절의 감각. 내가 아직 성인이 아니었던 시절,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던 시절의 감각.

내 세계가 아직 엄마가 나를 데리고 다니던 곳까지의 너비를 지녔을 시절이었다. 나는 늘 엄마의 눈과 손을 봤다. 나는 엄마가 하는 걸 하고 싶었다. 엄마가 마시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 했고, 엄마가 식사를 준비할 때는 그녀처럼 칼로 식재료를 자르고 냄비에 끓이고 싶었다. 우리가 식당에 갈 때도 나는 엄마와 같은 걸 먹고 싶어서 늘 엄마와 같은 걸 주문했다. 그래서 난 엄마가 주문하기를 기다렸다.

“저는 된장찌개 주시고요. 너는 뭐 먹을래?”

“된장찌개.”

엄마는 다시 메뉴판을 봤다.

“저는 비빔밥으로 바꿔 주세요.”

엄마가 주문을 바꾸는 경우가 늘었고, 나는 엄마에게 내 음식을 나눠줬지만, 엄마는 내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고, 내가 엄마가 시킨 음식을 먹고 싶어 하면, 엄마는 내가 재차 부탁할 때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직 어렸던 나는 상처 입지 않았고, 이전과 같은 노력을 계속했다. 그래서 일곱 살인 내가 그녀의 직업이 화가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엄마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맡을 수 있던 미세한 기름 냄새도 좋았다.

“방 조명 노란빛으로 바꿔도 되지?”

“난 지금처럼 흰 조명이 좋아. 엄마 쪽만 노란 조명으로 바꿔.”

“어설프게 섞이는 거 싫어.”

“알았어. 바꿔.”

엄마는 환경 조절 장치를 조작해서 조명 색을 바꿨다. 그녀가 여덟 살 딸의 그림을 보며 “넌 그림에 재능은 없구나.”, 라고 무심히 말하던 순간이 마저 떠올랐다. 엄마는 가방을 자신의 수납장에 집어넣는 것으로 정리를 끝냈고 나는 옷을 가방에서 꺼내서 수납장에 정리하고 있었다. 엄마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와 문을 열었다.

“좀 둘러보고 올게.”

미닫이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점점 좁아지는 틈 사이로 엄마의 빠른 걸음이 보였다. 우리가 단둘이 좁은 공간에 있는 건 오랜만이었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방이 조용해지자 어색함이 느껴졌다. 나는 엄마가 왜 동행을 제안했는지 궁금해졌다. 꽤 알려진 화가여서 금전 걱정 없고, 아직 건강한 몸을 지녔고, 독립적인 그녀가 이제 어색한 사이인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내가 현진의 지적처럼 충동적이었단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첫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는 우주선 기준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난 뒤였다. 24시간 동안 음식과 연료 보충을 하는 일정이었다. 정류장은 주로 해당 행성의 저궤도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탑승객들이 우주선이 기착하는 동안 정류장이 있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우주선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정류장을 돌아다니며 정류장에 설치된 가게에 들러 기념품을 사거나 식당에 들러 우주선 음식에 물린 혀를 달래거나 했다.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일로 시간을 보냈지만, 탑승객들 모두 지인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보려고 필사적이었다. 다시 고속 운항을 하면 수개월 뒤에나 연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다지에토가 무슨 뜻이야?”

내가 가상공간에 접속해 말러 5번 교향곡 연주를 듣고 난 뒤였다. 21세기의 지휘자 장한나와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였다. 우주선은 첫 번째 정류장에서 곧 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찾아봐.”

“우주선 통신망에서는 뒤져도 안 나와.”

“요즘 시대에 빠르기말이 중요하진 않으니까. 다 숫자로 표시하니까 그럴만하겠다.”

“그래서 뜻이 뭐야?”

“아다지오보다 조금 빠르게.”

“아다지오는 무슨 뜻인데?”

“매우 느리게”

“아다지오랑 아다지에토랑 어떻게 구분해? 둘 다 느린 건데? 매우 느리게 연주하고 아다지오라고 우기면 아다지오고 아다지에토라고 우기면 아다지에토 아냐?”

“아다지에토는 매우 느리지만, 추진력을 잃지 않을 정도로.”

“그게 무슨 말이야. 참 애매하다.”

“그 4악장 아다지에토 좋지 않니?”

“좋긴 한데 이게 왜 아다지에톤지는 모르겠네.”

5번 교향곡은 긴 시간에 걸쳐 쓰였다고 한다. 완성된 뒤에도 말러는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이 곡을 고쳤다. 5번은 기존에 자신이 작곡했던 곡들과 달리 성악이 없는 전통적인 형식이었다. 그래서 4악장 구조를 염두에 두고 썼는데, 유명한 아다지에토 악장이 4악장으로 삽입되면서 5악장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 아다지에토 악장은 일설에 따르면 말러가 자신의 부인인 알마에게 보내는 일종의 연애편지였다고 한다.

나는 단순히 공연을 보고 싶어서 지구까지 가는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단지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가상공간에서 실제와 같은 소리를 재현되는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3년을 쓰는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의심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실 이 여행을 떠난다는 건 3년의 시간을 쓴다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그림을 쉰다는 것도 뜻했다. 그녀는 디지털 작업은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부분 아크릴과 유화물감을 캔버스 위에 쌓아서 작품을 만들었다. 우주선에는 개인별로 가지고 탈 수 있는 짐의 무게와 부피 제한이 있었기에 여행 하는 동안 작업은 무리였다. 그래서 그녀가 여행을 결정했을 때, 그녀의 그림 판매를 대행하고 있던 에이전트는 울상이었다고 했다. 이런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들일만큼 그녀가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어렸을 적, 첼로가 우리 집에 있다고 말했다 혼났던 기억과 그녀 작업실 구석에 놓여있던 첼로가 생각났다.

엄마는 첼로를 자주 연주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거실에서 나를 앉혀놓고 연주했고, 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주로 작업실에서 연주했다. 작업실에서 연주할 때쯤부터 그녀는 주로 혼자 연주하기도 했지만, 내가 작업실에 들어와 자신의 연주를 막지 않았다. 나는 손을 움직이면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했다. 그 소리가 듣기 좋다는 것이 더 신기했고, 어느 순간 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연주한 곡은 주로 무반주 첼로 곡이었고, 어느 때는 유명한 교향곡이나 실내악곡의 주제부였다.

내가 첼로에 대해 기억하는 마지막은 작업실에서 엄마가 의자에 앉은 채로 첼로를 안고 있던 뒷모습이었다.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고, 빛이 창 반대편까지 닿았다. 열네 살이었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엄마는 나를 눈치채지 못했고, 오른손에 활을 쥐고 첼로에 가져갔다. 소리가 내 호흡과 부딪히고 피부를 스쳐 갔다. 나는 엄마가 오른팔을 좌우로 움직이고 왼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마나 느린지 얼마나 빠른지 듣지 말고, 얼마나 소리를 끌고 가는지, 보여주는지를 느껴봐. 그럼 구분이 될 거야.”

나는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웠다. 아다지에토 악장을 다시 들으면서 엄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엄마의 말은 이해되지 않았지만, 5번 교향곡이, 이 4악장이 오랜 시간 사랑받은 이유는 이해되었다. 하프와 현악기만으로 엮여가는 선율이 서정적이었다. 행성 출신인 나는 서정적이라는 말의 뜻을 잘 몰랐지만, 아다지에토 악장에 대해서는 안심하고 서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름다워서 꼭 직접 듣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다지에토 악장이 끝날 때쯤 엄마가 말을 걸었다.

“이번 정류장에서 현진에게 연락했어?”

“했지.”

엄마는 뒤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근데 받지 않았어.”

엄마는 말없이 한동안 눈을 깔고, 입술에 힘을 주어 다물었다.

“이제 그만둘 때가 된 거 아닐까.”

“뭘 그만두란 얘기야.”

얼굴에서 열이 났다.

“잠시 후 고속 운항에 들어갑니다. 흔들림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엄마는 자신의 침대에 스케치북을 두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엄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뭘 끝내란 얘긴데?”

“끝난 건 끝내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말을 이어가려다 멈췄다. 몇 초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미안해.”

“엄마는 늘 그랬어. 자신이 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태도. 그래서 묻지도 않고 나에게 답을 제시하려고 하고. 내가 늘 마음에 안 들지. 전처럼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해봐. 자기 기준에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도 늘 모자란 딸에게 마음껏 하고 싶은 말을 해봐. 질문이 아니면서 질문인 것처럼 던지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은 직접 해. 내가 대신 찾아서 해주길 바라지 말고.”

“우주선이 안정 속도에 도달했습니다.”

엄마는 말없이 내 말을 끝까지 받아냈다.

 

 

나는 언젠가 지구에 가려고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고, 첼로 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던 때였다. 나는 18살이었고, 미래를 끊임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수정했다. 나는 엄마가 내가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지니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다고 엄마가 자신의 취향과 다른 취향을 잘 견디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엄마는 말없이 내 방에 들어와서 물건 정리하거나 침대와 책상 배치를 바꿨다. 내가 화를 몇 번 내기도 했지만, 그녀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존경했다. 아직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 고등학교 졸업하면 지구에 갈까?”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진지하게 던진 말은 아니었다. 지구로 가서 음악 제작과 음향 공학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행성에 남아 엔지니어나 과학자가 되는 것도 싫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가 이 말을 듣고 얼굴을 일그러뜨렸을 때 나는 당황했다.

“음악 제작이나 음향 공학을 배우고 싶은데 행성에서는 가르치는 곳이 없으니까.”

엄마의 표정은 더 일그러졌다.

“마음을 정한 건 아니야.”

“안 돼. 너 혼자 지구에서 어떻게 지내. 혼자서 지내본 적도 없으면서. 음악이 그렇게 만만한 분야니. 너 예술엔 재능 없잖아. 지구에서 평생 동안 생활 속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 높은 수준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하고, 거의 매일 새로운 공연이 열리던 곳에서 자란 또래랑 경쟁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쉬어 보이니.”

엄마의 말은 내가 모멸을 충분히 느낄 만큼 이어졌다. 그녀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녀가 화를 내야 할 만큼 내 말이 터무니없었고, 그녀가 분노를 휩싸여 말을 계속 쏟아내야 할 만큼 내가 형편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일을 겪은 후에 나는 이제껏 엄마가 해왔던 행동들도 다시 보게 되었다. 말없이 내 방에 들어오고 내 물건을 만지고 내가 대답해야 할 문제를 대신해서 결정하고 말하는 것에서도 모멸을 느꼈다.

나는 결국 행성에 남았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 집을 나왔고, 그 후로 돌아가지 않았다. 난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항상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떠오르거나 엄마를 마주칠 때면 난 미움에 사로잡혔다. 이 미움에서 그나마 벗어난 건 현진을 만난 뒤였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하기 전 몇 번의 연애가 있었고, 졸업한 뒤에도 몇 번 더 있었다. 난 탐사 로봇 회사에 입사했다. 탐사 로봇 제작과 운영을 같이 하던 곳이었다. 지구에 있는 동아시아 연합기구와 행성 정부의 지원금으로 거의 운영되던 회사여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난 이곳에서 현진을 만났고, 결혼했다. 현진은 손이 따뜻한 사람이었고, 나는 손이 차가운 사람이었다. 나는 칼질을 싫어했고, 설거지를 싫어하지 않았고, 그는 설거지를 싫어했고, 식재료가 얼마나 필요한지 왜 이런 맛이 나는지를 직관적으로 알았다. 우리는 생선을 싫어했고, 달걀을 즐기지 않았다. 입맛이 비슷해서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할 때 상대를 따로 배려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여러 부분에서 달랐고, 여러 부분에서 비슷했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같다는 이유로 편안했다. 어느 순간 엄마를 생각해도, 엄마를 만나도,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화를 숨길 수 있게 되었다. 감정적 여유가 생긴 나는, 엄마에 대한 하나의 이론을 만들어냈다. 나와, 나와 관계하던 이들과 엄마가 다른 것은 그녀가 지구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 지구에서 성인이 되어 행성에 이주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바꿀 수 없었기에 나 자신을 책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난 엄마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내가 도망친 곳에 현진이 우연히 있었다. 그곳이 이토록 따뜻하고 안락할 곳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연이, 이토록 나의 편일 수 있다는 생각을 전에는 하지 못했다. 이제 난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적어도 현진이 살아있던 3년 동안은 그랬다.

내가 현진을 개인용 인공지능에 학습시킨 건, 현진이 탐사 작업을 하던 중 사고로 죽고, 8개월이 지난 뒤였다. 인공지능은 이제 자신을 지현진으로 인식했고, 현진이 할 법한 생각을 했고, 말을 했다. 현진은 우리 집 서버에 살았고, 통신망이 닿는 곳이면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식당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식당이 정해진 식단에 따라 음식을 준비해 배치하고, 이용객이 알아서 덜어가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추가로 찌개나 면 요리 몇을 주문해서 받아 갈 수도 있었다. 엄마는 식당 구석-정확히는 식당 출구 쪽-에서 갓 나온 것처럼 보이는 순두부찌개를 먹고 있었다. 난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받으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뒤에 섰다. 음식을 모두 받고 엄마가 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비운 뒤였다. 나는 엄마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새송이버섯을 집어 들었다.

“얼마나 늦어지는 거야?”

“계산상으로는 계획보다 2주 정도 늦을 거라는데. 정확히는 고속 운항이 끝나야 알 수 있을 거야. 여러 요인이 겹쳤다니까. 정류장에서 일정이 늘어졌고, 고속 운항 중에 몇 번 엔진이 한동안 제대로 성능을 내지 못했으니까.”

“해를 넘겨 도착한다고?”

식당을 나가던 남자 둘은 그때야 주위가 의식되었는지 대화를 멈추고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떠나고 얼마 안 가 식탁에서 일어났다. 버섯구이와 순두부찌개가 반 넘게 남아있었고, 머리가 무거웠다. 원래 공연보다 2주 일찍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저 둘의 말에 따르면 공연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는 식당에서 듣게 된 남자 직원 둘의 대화를 떠올리며 방으로 향했다. 내부정보를 식당에서 떠들 만큼 부주의한 직원들의 말이 믿을만할까, 제대로 알고 말한 걸까 의심도 했지만, 정류장에서 조금씩 예정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물렀던 것이 떠올랐다.

방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침대 위에 앉아 벽에 기댄 채로 자신의 스케치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매일 스케치북을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살폈는데, 이 시간은 날마다 길어졌다. 엄마는 이제 열 장을 채 남기지 않고 스케치북을 덮었다.

나는 침대 사이에 놓여있던 탁자 앞에 앉아, 단말기를 뒤적거렸다. 우주선에 오르기 전에 정리해놓은 파일을 뒤졌다. 우리가 보러 갈 공연과 비슷한 시기에 있는 공연을 정리해놓은 파일이었다. 다행인지, 말러 8번 교향곡을 연주하는 공연이 원래 보기로 했던 공연 일주일 뒤 도쿄에, 5번을 연주하는 공연이 베를린과 시카고에서 비슷한 시기에 두 번 더 있었다. 하지만 5번과 8번을 동시에 연주하는 공연은 없었다. 나는 이 상황을 엄마에게 말할지, 아니면 지구에 도착해 상황이 명확해질 때까지 말하지 않을지 고민했다.

 

 

“두 번째 정류장에 방금 도착했어.”

현진은 화상 통화를 음성 통화로 전환했다.

“그랬구나.”

“갑자기 떠나서 미안해.”

“왜 간 거야?”

“엄마가 걱정돼서. 갑자기 가자고 한 것도 이상하고, 아직 건강하시지만 혼자 보내는 건 내키지 않았어. 지구에서 엄마를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까.”

현진은 나의 답을 듣고 가만히 있었다.

“거긴 별일 없지?”

“별일 없어.”

“다음 정류장에서 또 연락할게.”

통화를 끝나고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창 너머를 봤다. 현진과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난 쓸쓸해졌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 침대 쪽에 물건이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대쪽 침대에는 스케치북이 놓여있었다. 나는 샤워를 했다. 물소리 사이로 어렴풋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침대로 갔다. 침대 옆 탁자 위에, 김이 피어나는 코코아가 머그잔에 담겨 놓여있었다. 나는 머그잔을 잡았다. 현진의 손과 그 체온이 떠올랐다.

 

 

나는 며칠을 고민했다. 엄마에게 우리가 예상보다 늦게 도착할 거라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완벽한 대비책 없어서인지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표정을 잘 숨기는 편이 아니었다. 표정만 못 숨기는 것도 아니었다. 뭔가 껄끄러우면 상대방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고, 방을 이유 없이 돌아다녔고 산만해졌다. 늦잠을 잤고, 통신망에 접속해서 전에 찾아놓은 대안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딱히 더 좋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가 공연을 놓치면 말러의 교향곡 5번과 8번을 한 번에 들을 수는 없었다. 저 둘을 동시에 연주하는 연주회는 적어도 우리가 세 번째 정류장을 출발하기 전까지 없었다.

이제 고속 운항이 끝나기까지 나흘 남았다. 우주선에서 나흘이 지나면 지구였다. 이날도 난 늦게 일어났다. 늘 나를 깨우지 않고 아침을 먹으러 가던 엄마가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지?”

“식당에서 직원들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그래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 지구 시간이 계획보다 2주 이상 뒤일 수 있대. 그럼 우리 공연에 맞춰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슬아슬해.”

“확실해?”

“정확한 건 도착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어.”

엄마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다른 공연을 찾아봤는데. 말러 8번이 도쿄에서 우리 공연보다 일주일 뒤에 있고, 도쿄공연 다음 날 시카고랑 베를린에서 5번 연주가 있어.”

“서울 시립 오케스트라 공연은 더 없어?”

“우리가 들으려고 했던 공연이 이번 시즌 마지막 공연이야. 다음 공연 시즌은 보통 3, 4개월 뒤부터 시작한다는데 일정이 나오진 않았어. 그래서 도쿄는 들르고 거기에서 상황 보고 시카고랑 베를린은 가면 어떨까 하는데.”

“안 돼.”

“엄마도 알겠지만, 도쿄는 아니지만, 시카고랑 베를린은 서울보다 나은 연주를 하는 곳이야.”

“안 돼.”

“엄마. 실망한 건 알겠지만.”

“화난 건 아니야. 흥분한 것도 아니고. 다만 서울 시향 연주여야 해. 연주 프로그램은 상관없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중학생일 때 팔아버린 첼로 기억해?”

나는 커진 눈으로 엄마의 얼굴을 봤다.

“난 그 첼로가 보고 싶어. 네 아버지가 만든 내 첼로 소리를 듣고 싶어.”

난 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들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화면 안의 3백 명의 합창단과 170명 정도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부지런히 곡을 연주했다.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시여”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곡은, 초연에 천명의 사람이 무대에 올라와서 천인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곡이었다. 화면으로 봐도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지난 11개월 동안 수차례 본 연주와 장면이었지만 직접 보니 익숙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엄마가 첼로들이 화면에 잡힐 때 손가락으로 어떤 첼로를 가리켰지만, 정확히 어느 첼로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첼로는 아버지가 연애하던 시절 엄마에게 선물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악기 제작자였다. 단풍나무가 멸종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는 단풍나무가 있던 마지막 해에, 단풍나무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전 세계를 떠돌았다. 그러다 그의 몸에서 병이 발견되었다.

“단풍나무를 쫓아다녀서 생긴 병이었을까. 그건 모르겠어. 그런데 난 병이 발견 뒤에 네 아버지가 단풍나무를 쫓아다니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 병원비를 대려고, 네 아버지 악기는 다 팔았어. 작업실에 남은 것들도 전부. 원래도 팔려고 했지만, 계획보다 급하게 팔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그 첼로는 차마 팔지 못하겠더라.”

나와 엄마는 연주회장 로비에 설치된 화면을 보며 교향곡 8번이 끝나길 기다렸다.

 

 

우리는 공연 1시간 전에 서울에 도착했고, 도착했을 때는 공연이 시작되고 난 뒤였다. 다행히 교향곡 8번 연주 후에 있을 중간휴식 때 입장해 교향곡 5번은 연주회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교향곡 8번의 연주가 끝났고, 사람들이 로비로 빠져나왔다.

“엄마 어느 첼로였어?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더라고.”

“주위의 첼로보다 더 짙은 색이야. 근데 뭐가 중요하겠어. 난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

난 로비에 남아 사람들을 봤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부터, 중년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따금 2, 3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고 더 드물게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학생들이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악기를 배우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비슷한 표정으로,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같이 온 일행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난 손에든 단말기를 봤다.

 

 

중간휴식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엄마와 나는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움직였다. 장송행진곡이라 불리는 1악장이 시작되었다. 트럼펫 소리로 시작한 연주는 이어서 금관 악기와 타악기 그리고 연이어 나머지 관현악기가 따라오면서 소리를 터트렸다. 그러다 음향을 줄여서 유지했고 꾸준한 리듬의 음악이 이어졌다. 소리가 객석에 앉은 몸을 밀어냈다.

오른쪽에 앉은 엄마가 손으로 가리켰던 쪽을 봤다. 엄마 말대로 주위보다 더 어두운 빛을 내는 첼로가 보였다.

엄마가 첼로를 품에 놓은 채로 오랜 시간 아무런 연주도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안고 있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이 엄마가 첼로와 함께한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기술자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었고 아직은 유명한 화가도 아니었던 엄마가 유나 행성에서 홀로 딸을 키워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첼로 값이면 둘의 생계를 몇 년은 책임져줄 수 있는 금액이었을 것이다. 더 일찍 팔지 않고, 그녀가 첼로를 가지고 있었던 건 어떤 이유였을까. 그것이 자신이 지구에서 살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어서였을까.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 때문일까.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했던 적이 없었다. 이제껏 지구에서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나의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했던 적은 없었다. 자신의 과거가 소중해서였을까. 아니면 그것들이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팔지 않았던 첼로를 끝내 팔았을 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이 여행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정말 첼로가 그리웠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 그리웠기 때문에 다시 보고 듣고 싶어서였을까.

난 이런 고민을 이어가기보다 엄마에게 직접 질문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엄마에게 질문한 뒤에도 엄마를 미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음악이 피부를 누르는 느낌에 집중했다.

3악장이 끝났다. 그리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잠시 멈추고, 공연장의 공기를 가라앉히고 소리와 그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지휘자가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하프와 비올라를 봤다. 비올라 연주자들이 활을 움직이고 하프 연주자가 줄을 뜯었다. 관객들은 귀를 기울였다. 하프 소리에 적응되어 귀에 제대로 들릴 때쯤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다른 현악기들은 주선율을 밑에서 받쳐주었다. 첼로가 바이올린이 연주하던 주선율을 반복했고, 다시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맡았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느리게 그러나 끝까지 음을 밀고 갔고 그 음이 추진력을 잃으려 할 때쯤 다시 새로운 선율을 끌고 갔다. 상행하는 음으로 미끄러져 가는 현악기 선율과 그 사이로 두드리는 하프 소리. 오케스트라는 소리를 키웠고, 이제 공연장은 화음으로 가득 찼다. 관객들은 음악과 엉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엄마의 눈을 봤다. 엄마는 자신의 왼손으로 내 오른손을 잡았다.

아다지에토, 아주 천천히 그러나 추진력을 잃지 않을 정도로. 나는 음악이 끝나면 끝난 것들을 끝낼 것이다. 현진을 떠나보낼 것이고, 엄마가 견딘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우주에서 우리는 자신들에 대해 말할 것이다. 여린 하프 소리와 비올라의 여린 선율로 시작한 음악이, 결국 다른 현악기 소리와 만난다. 오케스트라는 선율의 여운까지 모아,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소리를 내면서 공간을 채워나간다. 말러도 그의 부인인 알마도 없는 세계에서, 이 세계의 마지막 악기들로 울려 퍼지는 사랑의 말을 우리는 함께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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