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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너프

2020.06.23 17:3906.23

<이너프>

 

“바로 일 시작할 수 있죠?”

인사과장이라는 직함을 단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여자를 따라가며 구역질처럼 올라오는 의문들을 삼키려 노력했다. 왜 면접이 끝나자마자 일을 해야 하는지, 여자를 따라갈수록 강해지는 이 악취는 무엇인지. 과장이 걸음을 멈추고 거대한 방의 문을 열자 더 진한 악취가 안에서 풍겨왔다. 거대한 방에 도착하고 기백명의 텔레마케터들이 입고 있는 불룩한 바지를 보고 냄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텔레마케터 대신 ‘뉴트리션 서포터’라는 이름을 선호했다. 그들은 바지 안에 기저귀를 찬 채 쉴새 없이 수화기에다가 영양제의 놀라운 효능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병원에 있던 때가 떠올랐다. 엄마도 대장암으로 죽기 전에 반 년 동안은 기저귀를 찼다. 엄마는 아빠나 우리 자매가 기저귀를 갈아주는 걸 못 견디겠는지 변의가 올 때마다 가족 대신 전문간병인을 불러달라 고집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셋은 혀를 차면서도 서로 안도하는 눈빛을 감지하곤 아빠도, 언니도, 내 자신도 끔찍해졌다. 찡그린 내 표정을 보고는 과장이 치약을 건넸다.

“코 밑에 발라요. 어차피 소용없긴 한데.”

이런 세상이었다면 엄마는 덜 창피했을까? 어디엔가 탓을 돌리고 싶었다.

*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어느 해초였다. 엔노니아 퓨지폼 (Enonia Fusiforme)은 심해에서 발견된 해조류로 학계에는 처음 보고되는 종이었다. 생물학자들은 이 해초가 외부에 섭취 가능한 플랑크톤이 있을 때는 대사가 폭발적으로 활성화되어 세포당 영양소 저장량을 증가시키고, 그렇지 않을 때는 세포들을 유사 동면상태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엔노니아 퓨지폼의 남다른 생존력은 이 때문만이 아니었다. 영양소가 부족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이 식물은 자신의 줄기나 이파리 일부를 괴사, 분리시키고 이를 즉시 다시 영양분으로 삼을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작용을 하는 물질을 추출해내고 해초의 앞 글자와 이를 발견한 날짜를 따서 ‘ENF14’라는 게으른 이름을 붙였다. ENF14가 포유류의 뇌 시상하부에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실험 결과가 나온 후, 시장 가능성을 감지한 거대 제약회사들은 너도 나도 거금을 투입해 이를 상품화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베이클이라는 중소화학기업이 우연히 EF14 합성과 임상실험에 성공하면서 국면이 변했다. 임상실험은 EF14가 인간 뇌의 섭취중추와 만복중추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대사를 촉진시켜 결과적으로 체내 지방을 실시간으로 태운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베이클은 라이벌 제약회사들의 온갖 훼방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ENF14를 독점으로 상품화시켰다.

처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베이클은 ENF14를 ‘대사조절제’라고 홍보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한 식욕감퇴제를 어려운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상황을 바꾸기까진 두 번의 죽음이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미라 같은 모습을 한 거식증 환자의 시신이 담긴 사진이 돌고 있었다. 사진 속 시신 옆에는 문이 열린 냉장고가 있었고 안에는 먹을 게 가득했다.  사진은 식사를 ‘깜빡’해서 죽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지시하고 있었고 이는 시시한 인터넷 유머 정도로 소비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복서가 계체량을 앞두고 갑자기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무리한 체급 감량으로 인한 저혈당 쇼크가 사인이었다. 선수의 부검 결과가 담긴 문서가 인터넷 언론을 통해 무단 공개되었는데, 선수가 평소 ENF14를 꾸준히 복용했다는 사실에다가 예의 그 사진 속 아사한 시신의 사인 또한 같은 약 때문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섞여서 약의 효능에 대한 입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ENF14가 ‘Enough 식사 (식사는 이미 충분하다)’ 라는 뜻이라는 해석을 얹으며 베이클 마케팅 팀의 일을 덜어주고 있었다. 베이클은 제품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 유포를 자제해달라고 하면서도, 내용을 전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고객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제품의 이름도 ‘이너프’(ENOF)라고 바꿔 출시하여 용법에 따라서만 복용하면 위험하지 않다는 말로 매끄럽게 홍보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사람들에게 이미 이너프는 전에 없는 효능을 가진 소화제이자 동시에 완벽한 식욕제거제로 자리잡았다.

*

3개월을 기다려서 약을 손에 쥐었을 때 언니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평생 마른 몸을 갈망하며 살아온 언니였다. 얼마 전 애인과의 이별로 언니는 몸보다는 마음이 더 망가진 상태였다. 연애 기간동안 아무리 언니에게 자상하게 굴어도 그 놈이 언니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건 언니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수동 공격성을 의인화한 것 같이 생긴 그 놈이 언니와 헤어질 때 한 말은 언니의 정신에 영구적인 상처를 남겼다.

“난 네가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건강을 위해서라도.”

언니는 게으른 사람이 전혀 아니었지만 늘 그랬듯이 자신의 식욕과 체형을 저주했다. 그 때 나타난 이너프는 그야말로 구원자였다. 워낙 수요가 많아 언제 구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언니는 수소문 끝에 마침내 약을 구했다. 약을 복용하고 나서 언니는 2주 동안 물과 이온음료, 미량의 소금 정도만 섭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약의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효과 때문에 언니는 더욱 용법을 따르지 않았다. 온 몸의 지방이 눈에 띄게 사라졌어도 언니는 뛸 듯이 기뻐했지만 실제로 뛰지는 못했다. 근육량이 줄어서 언니는 서있는 것도 힘겨워 했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행복한 나뭇가지 같았다. 이런 상황임에도 아빠의 가장 큰 근심은 사실 언니가 아니었다. 점심 직장인 손님이 대부분인 백반집을 운영하던 아빠는 손님이 줄어 가게를 닫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끼니를 때우다’ 라는 말이 사어가 될지 모른다는 아나운서의 멘트는 호들갑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육볶음이나 된장찌개는 3일에 한 번 있는 소중한 끼니를 할애할 만한 음식이 아니었으니까. 바로 옆 골목에 있는 무제한 샤브샤브 집은 손님은 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같은 값을 지불하는데 사람들의 먹는 양은 세 배로 증가했고, 손님의 수는 급격하게 줄었다. 도저히 수익이 날 수가 없었다. 대체로 불황인 요식업계에서 유일하게 호황인 건 파인 다이닝을 표방하는 식당들뿐 이었다. 아빠의 식당 자리는 하루에 열 명만 받는다는 프랜차이즈 오마카세 스시집으로 대체되었다. 아빠는 그 후로 샤브샤브집 사장 아저씨랑 전국의 창업박람회를 다닌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엄마 일 이후로 나는 극단 생활을 하느라 집에서는 잠만 자는 신세였다. 학부 때도 없었던 연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거나 한 건 아니었다. 끊임없이 입에 음식을 우겨 넣고는 다음날 자괴하는 언니를 마주하기 힘들었고, 환자를 간병하면서도 도리어 엄마에게 자기 연민을 쏟아내던 아빠도 더 이상 보기 싫어서였다. 언니의 동생과 아빠의 딸로 사는게 지겨웠다. 그래서 무대에 올라 잘 하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 흉내를 내보려 한 것이었다. 관객이 많은 날은 객석이 다섯 자리 정도 찼지만 좌절감이 든 적은 없었다. 소극장 부조리극은 오래 볼만한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과 논리의 세계가 지겹다고 해도 지금은 외젠 이오네스코 연극 대사나 읊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언니도 이너프 남용의 부작용으로 배변 조절이 되지 않아서, 엄마를 간병할 때 잔뜩 사 놨던 남은 기저귀를 꺼내야 했다. 약을 숨기면 언니는 자해를 했고, 내가 가져다 준 음식들은 입에 대지 않았다. 3일에 한번 어플에서 알람이 울릴 때마다 묽은 죽 반 그릇 정도만을 먹을 뿐이었다. 전화 배터리가 나가기라도 한다면 언니는 그대로 시들다가 굶어 죽을 것이다. 나는 극단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극단 동료들 중에는 떠나가는 나를 안타까워하며 연기에 대한 자신의 열정이 얼마나 고결한지 다시금 확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배고픈 예술가 판타지의 제물이 된 것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반박하고 싶지도 않았다.

더 이상 방도가 없다고 생각이 들 때쯤 극단 선배에게 어떤 영양제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베이클의 자회사라는 소문이 있는 이 회사는 이너프 남용자들이 식사 대용으로 섭취하는 고용량 영양제를 파는 회사였다. 그 영양제는 이너프만큼이나 손에 넣기 어렵지만 자사 직원들에게는 우선 구매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장 지원이 가능한 일자리는 영양제를 전화로 판매하는 것 밖에 없었다. 언니가 아사하기 전에 영양제를 얻을 유일한 방법이었다. 과장은 자리로 안내하면서 매뉴얼대로만 하면 파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내가 아는 텔레마케터의 고충 중에 냄새는 목록에 없었다. 과장은 놀란 내 표정에 도리어 놀란 것 같이 보였다.

“자기는 이너프 안 먹나 봐?”

어느새 말을 놓는 과장이 불쾌했지만 동시에 원숙한 사회인같은 인상을 풍겼다.

“강요하는 건 아닌데, 일하다 보면 필요해질 거야.”

내가 이너프를 먹지 않은 이유는 필요성을 딱히 못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몸이 망가지는 주변사람을 질리도록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건강을 잃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극이지만, 자기 몸의 통제권을 잃으면서 기본적인 품위와 존엄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가장 비참했다. 그리고 언니는 엄마의 전철을 밝고 있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과장은 내 옆자리 사람에게 나를 인계했다. 단정한 차림의 중년 여성으로,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다소 수척해 보였지만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자신을 제니퍼라고 소개한 여자는 전화 응대 매뉴얼과 업무 전반을 가르쳐 주었다. 하루에 통화 횟수 할당량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만큼 세일즈에 성공한 인센티브도 차감되는 방식이었다.

“자기 이름은 뭐로 할지 정했어? 본명으로 해도 되는데 그러면 일할 때 속상할 일 많을 거야.” 

교육이 끝나고 제니퍼는 갈라진 입술을 계속 혀로 적시며 궁금한 게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코 밑에 바른 치약 냄새를 뚫고 올라오는 악취에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라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 난 그저 ‘왜 다들 기저귀를 차고 있는지’, 그리고 ‘제니퍼는 왜 기저귀를 차지 않았는지’ 중 어떤 걸 먼저 물어봐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제니퍼는 눈을 아래로 흘겼다.

“아, 기저귀가 의무는 아니니까 오해는 마요. 다들 밥 먹는 시간 아까워서 이너프 한 알씩 먹는데 이게 부작용이 있데.”

ENF14를 장기간 섭취할 경우, 허기뿐 아니라 다른 생리적 욕구에 대한 신호도 무뎌질 수 있다는 말을 듣긴 했다. 시상하부의 신경 다발이 손상돼서 그렇다고 했다. 제니퍼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말을 이어갔는데, 그게 제니퍼라는 이름과 퍽 잘 어울렸다.

“밥값 아끼려고 먹는 건데 기저귀 차면 무슨 소용이야. 난 그래서 이걸 써.”

제니퍼는 자기 손목을 내밀어 스마트워치같이 생긴 장치를 보여줬다.

“이게 화장실 갈 시간을 알려주거든. 기술을 못 따라가겠다니까.”

제니퍼의 시계에서 모스부호 같은 진동이 울렸다.

“아, 지금은 물 마실 시간이네. 한 달 있으면 자기도 받을 수 있어.”

다른 직원들도 모두 같은 걸 차고 있었다. 대사 측정기였다. 이상하게 이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과장이 직전에 한 말이 이제서야 이해가 됐다. 나는 코 밑에 치약을 소매로 닦아내고 가장 중요한 용건을 대수롭지 않은 척 꺼냈다.

“그럼 영양제는 언제 구매할 수 있나요?”

“아이고, 그거 바디 워치랑 같이 주는 거라 수습기간 세 달 이후에나 나올 텐데.”

 ‘세 달 이후’ 라는 말이 모래주머니처럼 가슴에 내려앉았다. 절망적인 소식을 마주한 회피 기제인지는 몰라도 제니퍼가 대사측정기를 바디 워치라 부를 때 표정에서 드러나는 묘한 자부심이 인상적이어서 잠시 딴 생각을 할 정도였다. 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데 시계라고 할 수 있나. 하긴 우리도 텔레마케터가 아니라 뉴트리션 서포터니 별 수 없지. 시끄러운 머릿속 잡음을 비집고 나온 내 표정을 보고 제니퍼는 사정을 눈치챘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이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니퍼는 얼굴을 들이밀더니 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 급하면 내가 구해다 줄 수 있어.”

 

 

*

 일과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과연 선배의 말대로 세일즈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정해진 말을 내뱉는다는 점에서 연기와 조금 비슷한 점도 있었다. 전화를 받은 고객들은 우선 지쳐 있었기 떄문에 모욕을 주거나 난리를 피울 만한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너프의 구매자들을 타겟팅해서 전화를 거는 거라 절반 이상은 구매까지 이어졌다. 처음임에도 매뉴얼대로만 하니 실적을 몇 개 올릴 수 있었다. 사은품으로 대사측정기, 아니, 바디 워치를 증정한다는 점도 세일즈를 성공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다. 나는 고객들에게 나를 엘리엇이라고 소개했다. 매 통화마다 다른 이름을 고르는 상상을 해봤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고객들은 루시나 에이미 같은 이름을 기대했는지 내가 이름을 말하면 꼭 되물었다. 가끔씩 전화를 받은 사람 대신 중간에 전화를 가로채 또 이상한 약을 파느냐는 역정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말을 들으니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전화를 받기는커녕 벨소리에 쇼크사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제니퍼 말대로 본명을 쓰지 않은 것도 도움이 됐다. 앨리엇이란 이름은 고객들의 심각한 상황에 깊게 개입하는 걸 막아주는 역할도 했고, 어느 정도 현실감각을 차단해주는 버블이 되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하나같이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였지만, 매뉴얼대로 영양제를 소개하자 다들 반색하는 눈치였다. 고객들은 영양제가 얼마나 필수영양소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지를 감탄하기 보다 이너프를 계속 복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 같았다.

오늘 주어진 통화할당량을 겨우 채우고 제니퍼와 함께 밖을 나섰다. 일과가 끝나고 간단히 술을 한잔하며 영양제를 구할 방법을 알려주기로 했다. 요즘 식당의 물가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해도제니퍼는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제니퍼가 날 데려간 곳은 아빠 식당 자리에 생긴 프랜차이즈와 같은 오마카세 스시집이었다. 식당 주인은 제니퍼를 보자마자 실망한 눈치였다.

“이럇사이마…에이, 손님인줄 알았네”

“손님이 왜 아니야? 손님 맞아. 광어 中자 하나 썰어와 봐, 예전 가격으로”

“이번이 마지막이야, 누나”

식당 주인과 제니퍼는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식당 안에는 손님이 거의 없어 우린 안쪽 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꼭 옛날 한국영화마다 나왔던 부패한 정치인 사이의 밀담 장면에 나올 만한 장소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음식이 나오자 용건을 잠시 잊고 허겁지겁 입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제니퍼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어렸을 때 밥 급하게 먹으면 혼냈잖아. 그런데 이젠 이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 보니 나도 예전 생각이 나서.”

극단을 나왔을 때와 비슷한 민망함이 느껴져 나는 괜히 물을 홀짝였다. 예술가의 땔깜도 부족해서 하다하다 나는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과거 인류가 되어있었다. 나는 그런 취급이 불쾌해서 조금 쏘아 붙이듯 말을 내뱉었다.

“그 약 그만 드시면 다시 그러실 수 있잖아요.”

“왜 식후 30분 딱 맞춰서 약 먹는 사람 있잖아. 내가 그래. 그래서 그런지 이너프도 꾸준히 복용했는데 끊어도 뭘 막 먹고 싶은 마음은 돌아오지 않더라구”

언니도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니. 입안에 남은 날생선이 비릿하게 느껴졌다.

“근데 이너프를 계속 복용하시는 이유가…”

“이너프를 끊어도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없을 뿐이지 배는 아플 정도로 고파. 먹는 만족감은 없는데 허기는 남으니까 안 먹으면 손해지.”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제니퍼의 푹 파인 볼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래서 가족 때문이랬나?”

“네, 언니가 이너프를 하도 못 끊어서 계속 누워만 있어요.”

“저런…가족들 맘고생이 심하겠네.”

제니퍼는 중년 여성 특유의 공감 능력을 과시하려 했지만 진심으로는 안 느껴졌다. 그건 마치 다음에 할 말을 준비하는 듯한 태도 때문이었다.

“영양제 말이지. 이걸 아는 사람은 몇 없는데 사실 영양제는 다 거짓말이야. 복용한 사람들 건강이 회복된 건 사은품으로 주는 바디 워치 덕분이고. 워치를 차고 있으면 적어도 물 몇 잔이나 밥 몇 숟갈은 먹게 되거든.”

눈 앞이 깜깜해졌다. 이너프가 사람들을 망쳐가고 있을 때만해도 세상이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냐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 반대였다. 세상은 아주 정교하게 짜여 있었다. 다만 사람을 위하지 않을 뿐이었다.

“고작 이 말하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안심해. 더 확실한 방법이 있어. 간단한 시술이면 돼.”

제니퍼는 시술이라고 했지만 결코 시술이라 부를만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원리 자체는 간단했다. 손상된 뇌 시상하부를 건강한 걸로 교체하는게 전부였다. 문제는 이식자에게 건강한 시상하부를 교체한 후에 공여자는 이식자의 손상된 시상하부로 교체하거나, 그게 싫다면 아예 제거된 채로 살아야 한다는 거였다. 시상하부가 없이는 생존에 필수적인 대사가 불가능하니 사실 후자는 수술을 마치자 마자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작은 살점을 떼어낸 것치곤 대가가 가혹했다. 언니와 나는 혈액형이 같으니 이식 자체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성공적이게 수술이 끝나도 나는 불감증 걸린 좀비처럼 평생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지하 불법 수술이었으니 걱정은 당연했다. 제니퍼는 내 우려를 꿰뚫어 본 것처럼 말했다.

“불법이라고 해서 이상한 돌팔이가 수술하는게 아니야. 요즘 의사들도 경기가 안 좋거든. 사람들 대사가 느려지다 보니 발병 사이클도 확 느려져서 환자가 줄었다나 뭐라나. 나랑 오래 알았던 의사 선생님이 수술하신다니까 믿고 맡겨. 건강해지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대신 아픈 게 낫지, 안 그래?”

제니퍼의 마지막 달변이 마음을 흔들었다. 엄마가 아플 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대신 아프고 싶다는 생각. 그건 가족애나 이타심의 발로 따위가 아니었다. 더 이상 건강해질 의욕이 사라진 엄마의 모습을 그만 보고 싶을 뿐이었다. 쓸데 없는 생각을 그만하라 다그치는 듯 제니퍼의 바디 워치가 진동을 울렸다. 제니퍼는 회를 한 점 입에 집어넣었다. 대충 질겅질겅 씹는 모습이 마치 고무를 씹는 것 같았다.

 

*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언니의 몸 상태를 보면 길게 끌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다음날 회사로 출근해서 제니퍼의 제안을 승낙했다. 수술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제니퍼는 사정을 봐준다며 자신의 일일 할당 통화량을 일정기간 동안 대신 가져가는 조건으로 가격을 많이 깎아준다고 했다. 다른 직원의 통화할당량을 부담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남이 가져간 만큼 인센티브가 덜 깎이는 셈이었다. 통화할당량을 일종의 사내 화폐처럼 운용하게 한 건 회사 입장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럼 하루 40통씩 반 년이면 되겠다. 일은 후딱 해치우는 게 좋지? 오늘 일 끝나고 집에 방문 좀 할게. 자기 XX동 OO아파트 살지? 과장한텐 말해놨으니까 수술 끝나고 1주일은 쉬어도 돼.”

제니퍼는 여러가지로 셈이 빨랐다. 내가 도망가지 못할 거라는 확신은 정보의 우위에서 나온 거였다. 제니퍼는 인사과장에게 내 정보를 이미 받아놓은 것 같았다. 아마 인사과장도 한 패인 것이 분명했다. 소름이 끼쳤지만 우선 언니를 살리고 볼 일이었다.

일이 끝나고 제니퍼와 같이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는 세워진 승합차에서 덩치 좋은 남자 둘이 내려 들것을 가지고 우리와 함께 집으로 올라갔다. 남자 중 하나는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어젯밤 제니퍼와 갔던 스시집의 사장이었다. 가게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제니퍼가 말한 ‘손님’의 의미를 그제서야 알았다. 남자의 인상은 영 달라보였다. 스시집 남자가 언니를 들것에 태웠다. 언니가 어찌나 왜소한지 들것이 작은데도 공간이 많이 남았다. 다 같이 승합차에 올라타고 차는 어디론가 출발했다. 이대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제니퍼는 나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건지 계속 혼자 떠들고 있었다. 낡은 건물에 도착하고 나서 언니는 들것 그대로 수술실로 보이는 곳으로 먼저 들어갔고, 나는 다른 방에서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얇은 수술복 위로 수술대의 차가운 느낌이 등으로 전해졌다. 그 이후는 간호사가 놓은 마취제 때문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제니퍼가 의사와 반갑게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수술 준비를 하던 간호사 얼굴이 왠지 죽은 엄마처럼 보였다.

“곧 잠드실 거예요.”

 

*

나흘동안 불법 의료시설 치고는 제법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다. 언니는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사라졌던 자신의 허기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나를 저주하며 울었다. 언니는 배가 고파질 때마다 다시 약을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간호사가 환자식을 갖다 주면 허겁지겁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언니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다. 퇴원 후에도 이 과정이 몇 번 반복된 다음에는 언니는 다시 약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반면 나는 모든 생의 감각이 둔해진 기분이었다. 간호사는 퇴원 전 제니퍼가 주는 선물이라며 나에게 바디 워치를 채워줬다. 밥을 먹으라는 신호가 필요이상으로 자주 울리는 것 같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지금은 먹고 싶지 않다’ 정도의 의미로 흔히들 말하곤 했던 ‘당기지 않는다’에서 더 나아간 감각이었다. 음식의 맛은 모두 느껴지긴 했지만 도저히 음식을 입에 넣거나 삼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평일에 하루 100통에 가까운 통화량을 채우느라 유동식 몇 모금으로 식사를 때웠고, 일을 하기 위해 밀려드는 허기를 억누르려 언니가 먹던 이너프를 마저 복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주말에는 언니가 밥을 먹을 때만 한 두 숟갈 정도 거들 뿐이었다. 약을 복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변 신호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아찔한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정말 버리려 했던 엄마의 기저귀를 다시 또 꺼낸 것이었다. 언니가 이너프를 끊게 된 이유는 단지 오랜만에 느낀 식욕과 포만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은 바깥을 경유해야만 객관화가 가능했다. 내가 언니의 모습에서 엄마를 봤듯이, 언니도 내 모습에서 엄마를 봤다. 결핍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결핍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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