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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도착지는 화성이었다

2020.06.12 19:5906.12

도착지는 화성이었다

류휘

 

착지는 화성이었다. 목적은 화성 사건 조사였다. 스무 명의 사람들을 태운 우주선은 연기를 뿜으며 발사대를 따라 가속했다. 발사대를 떠난 우주선은 순식간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스발바르 제도에 모인 매체들은 이 광경을 지구 전역으로 중계했다. 화성을 향해서 유인 우주선이 발사된 것은 19년 만의 일이었고, 화성에서 사람이 마지막으로 돌아온 후 20년 만의 일이었다. 나는 그때 화성에서 귀환하는 우주선에 타고 있었고, 20년 만에 다시 우주선에 탑승해서 지구를 떠나고 있었다.

 


화성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미국 주도로 꾸려진 탐사대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양보한 것이었다. 붉은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우주인은 동아시아계 여성이었다. 그녀는 중국과 일본, 폴란드 혈통을 지닌 여성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화성 탐사대는 총 열네 명이었다. 이 중 미국인은 총 일곱 명이었다. 미국은 팀을 꾸릴 때 명시적으로 인종별 할당을 하기로 결정했다. 동아시아계에 할당된 자리는 한 자리였다. 이 자리를 두고 결국 화성에 발을 디딘 여성과 또 한 명의 후보가 경쟁했다. 그 한 명은 한국계 여성이었다. 둘 다 탐사대에 합류할 만큼 충분한 이력과 능력을 갖추었고 로봇공학과 박테리아 연구에서 각각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학자였다. 결국 결정은 났고, 좀 더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갖춘 후보를 선택한 거 아닌가, 의심하는 의견들이 인터넷을 통해 흘러나왔지만 곧 묻혔다.

이때 선발되지 못한 사람은 최유정이었고, 선발되어 화성에 최초로 발을 디딘 데본 자오였다. 둘은 연인이었다. 유정은 데본이 떠나고 구 개월 뒤에 나를 낳았다.

최초의 유인 화성 탐사는 화성 정착 계획의 첫 번째 단계였다. 유인 화성 탐사는 이미 화성 표면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던 탐사 로봇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들이 화성 지표와 정보를 종합해서 화성에 정착 가능한지 판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정착이 가능하다는 평가 결과가 나오면 최대 천 명 정도의 인력이 화성에서 10년 정도 사는 것이 계획이었다. 기간은 상황에 따라 무한정으로 연장될 수 있었다.

데본 자오와 탐사팀은 2년 만에 돌아왔고, 나는 데본과 처음으로 만났다. 이때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데본이 갓난아이 티가 가신지 얼마 안 된 나를 안고 있는 사진을 지구에 돌아와서 봤다. 데본은 휠체어에 앉아 나를 보며 눈물을 머금고 웃고 있었다.

화성 정착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탐사 팀이 가져간 나노 로봇과 박테리아가 좋은 성과를 냈다. 화성에 정착시키며 테라포밍을 진행해 나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1년 뒤부터 세계 각지에서 수십명씩 수개월에 걸쳐 화성으로 우주선을 쏘아 보냈다. 데본과 유정도 화성 정착 계획에 합류했다. 아직 만으로 3살도 되지 않은 내가 동행 할 지, 아니면 지구에서 어느 정도 자란 뒤에 화성으로 갈지, 계획을 포기할지 미국 화성 정착국과 논의가 오갔다. 내가 우주선을 타는 데 의학적, 기술적 문제는 없었다. 미국 화성 정착국은 나의 우주선 탑승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최종적으로 전달했다. 어머니들은 나를 두고는 화성에 가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화성행을 포기할 때쯤, 팀을 꾸리는 데 문제가 있었던 한국에서 제안이 왔다. 유정과 데본 그리고 나는 고흥에서 화성행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난 기억나지 않는 그 날의 풍경이 우리가 함께 본 마지막 지구였다.

 


8년 뒤 내가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간 것은 데본과 유정의 결정이었다. 데본과 유정은 내가 또래집단과 함께 배우고 자라는 경험을 하기를 바랐다. 나는 테라 노바라고 불린 화성 기지에서 유일한 아동이었다. 화성에서 태어난 영유아들은 있었지만 그들과 나는 나이 차가 있었다. 어머니들이 직접 나를 가르칠까도 생각했지만, 지구로 보내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돌이켜 보면 데본과 유정은 나를 화성에 데려온 것에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화성의 환경은 지구만큼 풍족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화성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또래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적어도 지구에서 나를 맡아 키워준 할머니, 즉 유정의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지구는 상상과 전혀 달랐다. 내가 화성에서 잠자리에 들 때면 데본은 지구가 어떤 곳이었는지, 그곳에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아주 옛날, 해가 원래 열 개였는데 예라는 사람이 그중 아홉 개를 화살로 쏘아 떨어뜨렸다는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해가 열 개일 때는 지구도 화성처럼 붉었다고 해.”

“지구는 무슨 색이야?”

“화성의 노을만큼 파래.”

옆에서 이 얘기를 듣던 유정은 파랗다기보다 푸르지, 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지구로 돌아온 나는 데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지구는 화성의 노을보다 훨씬 파랬다. 바다 사진을 화성에서도 여러 번 봤지만 우주선 창 너머로 보이는 광활한 푸름이 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지구에서 나는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할머니는 화성에서 유정, 데본과 나란히 앉아 영상 통화에서 본 모습이었다. 내가 지구를 떠나기 전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 그녀도 곁에 있었다고 유정과 데본에게 들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마중 나온 그녀를 봤을 때 화면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였고 더 활발해 보였다. 머리가 화면보다 짙은 회색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우주선에서 지구 중력에 적응하는 훈련을 계속해왔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동행했던 열 명과 함께 더듬더듬 걷던 나를 향해 할머니는 백 미터도 넘어 보이는 거리를 달려와서 끌어안았다.

“최지민이라고 해. 걔네가 내 이름을 안 알려주고, 할머니라고만 했을 것 같아서.”

“알려줬어요. 우주선 타기 직전에 알려줬지만.”

할머니는 나의 걸음에 맞춰 나란히 걸었다. 우주선이 도착한 센터에서 며칠을 더 머물렀다. 신체 이상 유무와 발달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했고 심리 검사도 했다. 할머니는 센터 밖 호텔에서 머물렀고, 센터로 매일 출근해서 검사받는 나를 기다렸다. 센터 측에서 최종 검사가 끝나면 나를 직접 할머니 집까지 차로 데려다주기로 했는데도 할머니가 매일 나를 따라다닌 것은 언론 때문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유명인이었다. 화성에 도착한 최초의 아동이었기에 한국 정부와 언론들은 나를 화성 원주민이라고 홍보했다. 이 명백히 틀린, 그리고 촌스러운 명명은 이상하게도 꽤 성공적이었는지 나는 어느 순간 어디서든 그렇게 불렸다. 후에 화성에서-진짜 화성 원주민들이라고 할 수 있는-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하자 나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 그러다 내가 지구로 귀환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에 다시 내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었다. 센터 주위에 기자들이 나의 사진을 찍으려고 진을 치고 있었고, 할머니는 내가 찍히지 않게 따라다니면서 기자들의 시야를 막아섰다. 이런 노력은 내가 서울에서 학교와 집을 오가며 보낸 몇 개월 동안, 그리고 그 사건 이후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날, 할머니의 전화는 새벽부터 울렸다. 그녀는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전화가 울리다 말다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새벽마다 나를 수영장에 데리고 갔다가 학교에 바래다주었다. 수영을 제안한건 할머니였다.

“네 엄마와도 오랫동안 수영장을 같이 다녔지. 네 재활에도 도움이 될 거야.”

할머니는 은퇴한 교사였고, 이따금 교육용 인공지능을 검수하는 일을 했다. 일이 잘 풀려서인지 물려받은 돈이 많아서인지 정확하지는 않았으나 금전적으로 부유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시간을 내는 일이 수월한 편이었다.

그녀는 수영장에 갈 준비를 다 끝내고, 나를 깨우려고 침실로 들어와서 나를 흔들었다.

“수영장 갈 준비하자. 아침밥 준비할 동안 씻어.”

나는 할머니에게 겨드랑이를 잡힌 채로 몸을 세웠고 침대 밑으로 발을 옮겼다. 할머니는 방을 나가면서 전화를 받았고, 나는 할머니가 한동안 눈을 감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봤다. 할머니는 전화를 끊고 거실의 화면 켰다.

“화성 정착민들과 연락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한국 기준으로 어제 새벽 6시 이후로 화성 정착민들과 통신이 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저희 본부에서는 정기적으로 연락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이례적인 일이긴 하지만, 현재 통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해당 국가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화성에 사람을 보낸 뒤에 통신이 되지 않는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라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나는 나란히 서서 뉴스를 봤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데본과 유정과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것은 이틀 전이었다. 지구 기준으로 매일 얼굴을 볼 때도 있었지만 화성과 지구의 시간이 다르다 보니 이틀에 한 번이 될 때도 있었다. 주로 데본과 유정이 걸어오는 편이었기 때문에, 어제 그들과 통화를 하지 못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어서 씻어. 밥 차려 줄게.”

눈이 그친 뒤 얼어붙은 도로 위를 차를 타고 수영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내가 수영장에서 재활 치료를 받느라 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무릎을 굽히고 몸을 뻗고 물에 잠기는 동안 할머니는 손에 올린 화면을 계속해서 들여다보았다. 수면 아래에서 목을 들었다. 빛이 수면을 만나 흩어지는 광경을 보며 화성을 생각했다. 데본과 유정의 얼굴을 떠올렸고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난 그날 학교에 갔고, 수업을 마치고 할머니 대신에 선생님이 직접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할머니는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TV를 켰다.

“화성 정착민 전원 사망”

굵고 검은 글씨의 자막이 화면 위로 나타났다.

“가능성 높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붉은 글씨가 흐르고 있었다.

 

“화성 정착민 전원 사망”을 보도한 언론에서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최초로 통신이 되지 않던 날, 화성 기지와 화성 탐사 로봇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부자로부터 확인했습니다. 다시 말해 화성과 지구 간 통신 시스템에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즉 화성과의 통신이 되지 않는 것은 화성에서 아무도 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저희는 연락이 두절된 직후의 정착지 건물 한 동의 기체 데이터를 입수했습니다. 기지 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았습니다. 호흡이 불가능한 정도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이 상태가 24시간 이상 지속되었다면 모두 사망했을 겁니다. “

“지금까지 QTB에서 전해드렸습니다.”

각국의 화성 정착 기관은 화성 정착민 전원 사망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에 대해 다음날에도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지민과 하루를 보냈다.

며칠 뒤 각국의 화성 정착 프로그램 책임자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했고 화성 정착민들이 모두 사망했다고 밝혔다. 호흡 가능한 공기가 공급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정착민들이 사망했다는 설명을 이어서 덧붙였다. 모든 화성 프로그램은 중지한다고도 발표했다. 왜 산소 공급에 문제가 생겼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발표 후 며칠 뒤, 서울에서는 한국 출신 화성인들을 위한 합동 장례식이 치러졌다. 실내에서 장례식이 진행되었지만 한기로 몸이 떨렸다. 나는 슬펐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 너무 큰일을 겪으면 실감이 나지 않는단다.”

“할머니는 괜찮아?”

“오래전에 각오했던 일이야.”

할머니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나는 화면으로만 보던 데본의 부모님을 만났다.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나를 끌어안았다. 둘의 등은 딱딱했다. 포옹이 끝나고 몸이 멀어지면서 데본의 부모는 휘청거렸다.

아직 정확히 무엇이 원인인지 규명되지 않은 죽음을 기리는 장례식을 떠도는 공기는 습했고 피부는 건조했다.

죽음 후에도 시간은 흘렀다. 지구인의 시간은 지구의 중력만큼의 빠르기로 흘렀고, 나의 시간은 내 인생의 무게만큼의 빠르기로 흘렀다. 장례식 이후로 6개월 동안 나는 몇 차례 화성 정착 기구 조사위에 불려가서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 했다.

“어머니가 일하는 곳에 가봤니?”

“어느 분이요?”

“최유정 씨가 이끼를 키우던 곳.”

“여러 번 가봤어요.”

“혹시 같이 일하던 분들이 이 중에 있어?”

조사관은 사진 다섯 장을 보여주었다.

“기억이 안 나요. 이 사람은 본 적이 있어요.”

나는 백인 남성을 지목했다.

“기지 밖에 나간 적은 있니?”

“유정과 함께 데본이 일하던 곳에 간 적이 있어요.”

“어머니들이 다른 사람과 다투는 건 본 적 있니?”

조사관들은 나를 불러서 주로 어머니들에 관해서 물었다. 할머니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지는 나중에 가서야 들었는데 주로 어머니들이 어떤 표정이었고, 고민은 없었는지 물었다고 했다.

조사를 받으러 다니면서 나와 함께 화성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마주쳤다. 나보다 어린 사람은 부르지 않은 것 같았다. 다섯 차례 정도 오가는 동안, 마주치는 화성인이 줄었고 오가다 간간이 마주쳤다. 그중에 현진도 있었다.

“잘 지냈어? 나 기억나니?”

현진은 건물 복도에서 마주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기억이 잘 안 나는구나. 너보다 1년 정도 전에 지구에 왔으니까. 너희 어머니들과 같이 일했어. 네 집에 놀러 가서 본 적이 있고.”

“안녕하세요.”

“내 이름도 안 말했네. 지현진이라고 해. 이렇게 보니 반갑구나. 이런 말 하는 게 맞는 말인가 싶지만.”

“죄송합니다. 저희는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인사하렴.”

할머니는 나에게 인사를 시키고 건물을 떠났다. 조사위 건물을 오가던 사람 중에 가장 끝까지 마주친 사람이었다. 나는 집에 왔던 사람들 몇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화성에서의 현진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만날 때마다 화성에서 나를 알던 사람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아직 어렸고, 내가 만나던 사람들은 나를 모르고 내가 온 곳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지구의 중력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화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겨우 10대에 접어든 나에게는 그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지난 13일 연합 조사위는 화성 정착지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화성 정착민들의 죽음은 운석이 기지 근처 지표면에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직접적인 사인이 질식이라고 발표한 뒤 일 년이 지난 뒤였다. 각국에 설치된 화성 정착지 사건 조사위가 화성에 다녀온 사람들의 증언과 가지고 있던 데이터를 정리해서 다른 나라의 조사 결과와 교차 검증을 했다고 했다. 그들은 화성과의 연락이 두절되기 전, 화성 기지 근처에서 박테리아를 퍼트리던 탐사 로봇의 카메라에 운석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장면이 찍혔고, 이후에 거대한 먼지 폭풍이 일어난 것을 위성을 통해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결국 먼지 폭풍이 기지와 탐사로봇에 타격을 주었고, 결국 공기 정화 시스템을 망가뜨려 비극이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몇몇 전문가들은 조사위 발표에 의문을 표했다. 그들이 제기하는 공통적인 문제점은 운석 충돌로 인한 사고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연합 조사위는 추가 조사는 없을 거라고 했다. 화성에 조사관들을 보내야 한다는 여론도 전 세계적으로 만만치 않았지만, 조사위는 화성의 대기 상태가 좋지 않고, 꽤 큰 규모의 소행성이 접근하고 있다며 화성에 로봇이나, 조사원들을 파견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못 박았다.

이 결정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했고, 유가족들은 반발했다. 먼지 폭풍은 화성에서 흔한 일이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수개월에 걸쳐 생기는 현상이었다. 짧은 기간을 활동하는 탐사 로봇이 이를 고려하지 못했다면 이해가 되지만, 화성 정착민들은 화성에 최소 십 년 이상을 머물면서 테라포밍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언론은 조사위가 타임라인을 자세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점과 화성 기지로부터 응답이 없을 때도 통신 장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호흡 시스템만 문제가 생긴 건지 의문을 제기했다.

할머니와 화성에 가족을 둔 유가족들은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언론에 호소를 하며 반발했지만, 한국 정부는 안타깝지만 다른 나라의 협력 없이 독단적으로 조사단을 보낼 수 없다는 답을 반복했다. 미국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단순히 조사를 위해서 그렇게 큰 예산을 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에 탐사선 하나 보낼 여력이 없다는 말은 믿기 힘들었다.

“인류가 화성에 최초로 도착한 건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반 학생들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시 선생님 쪽으로 돌렸다. 다양한 색의 피부와 눈동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3년 전, 화성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죠. 그로 인해 화성의 테라포밍과 정착 계획은 중지되었어요.”

선생님은 교실을 돌아봤다.

“이 사건은, 인류에게 우주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누군가에게 교훈이 되는 삶이라는 건 잔인하다. 선한 얼굴을 한 선생님 앞에 앉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겸손한 표정을 지으려 했는데 겸손한 표정이 무엇인지 몰라서 슬픈 표정을 지으려 했는데 그 시절의 표정은 언제나 슬펐기에 여전한 얼굴로 선생님을 봤다. 그날, 반 학생들 누구도 교훈에 대해서도 비극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외로워졌다. 나는 광장에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나 학교 그만두고 할머니나 도울까?”

물건을 정리하던 할머니는 나를 멀뚱히 바라봤다.

“학교 재미없니?”

“그건 왜 물어. 학교를 무슨 재미로 다니나. 할머니는 학교 재미로 다녔어?”

“나는 돈 벌려고 다녔지. 선생으로 다니는 건 재밌었고. 그리고 이 일 너답지 않잖아.”

“안녕, 오랜만이다.”

조사위를 오가다 만난 현진이었다. 그는 물건을 한 아름 안아 들고 인사를 하며 지나갔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할머니와 대화를 이어갔다.

“일은 잘 돼가?”

“똑같지. 같은 요구와 질문을 하고 같은 답을 듣고.”

“여전히 무의미해 보이네.”

“어쩌면, 근데 이왕이면 그 사람들의 시간을 우리의 무의미로 채우는 게 좋으니까.”

정기적인 시위는 수년간 계속되었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줄어갔다.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고, 나는 학교를 다녀와서 이따금 할머니를 보러 광화문 광장으로 갔다. 그러나 난 여전히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이 각자에게 더 유용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광장에서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고, 향을 피웠고 가끔 잠들었다. 광장에는 처음보다 사람들이 줄었고, 광장에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세월이 남았다. 우리의 이런 생활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로 한 해에 끝이 났다. 내가 미국으로 떠나기로 해서가 아니라,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기온이 유달리 낮던 겨울 아침이었다. 거실 구석에 쓰러져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내가 일찍 일어난 것이 다행이었다. 할머니를 싣고 달리는 응급차에서 난 화성의 붉은 지표면과 모래 폭풍을 떠올렸다. 데본과 유정의 얼굴이 선명하게 어른거렸다.

최지민은 노인이었다. 나는 지민이 병원에 입원한 뒤에야 알았다. 병상에 누워 줄을 여럿 달고 있는 지민을 보고는 눈물이 맺혔다. 의사는 뇌출혈이 있었고, 전반적으로 과로 상태라고 했다. 더 정확히는 면역력 저하와 저혈압, 심폐 능력의 저하가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뇌혈관에 영향을 줘서 쓰러졌다고 했다. 지민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의사는 기다려보자고 했다. 언어 운동 능력에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던 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지민과 같이 일하던 분들부터 보수적인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 표정이 밝은 기자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대부분 헛걸음을 하고 돌아갔다. 의사는 보호자 외 외부인의 병실 방문을 막았고, 난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럼에도 병실까지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서 쫓아내야 했다. 대부분 내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화성 유가족과 지민의 친구가 찾아오면 바깥에서 따로 만나 지민의 상황과 감사함을 전했다.

“할머니는 어떠셔?”

현진도 지민이 입원한 다음 날 찾아왔다. 병원 지하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의사가 깨어나시려면 좀 걸린 데요. 깨어난 뒤에야 어떤 후유증이 있는지 알 수 있데요.”

“그렇겠지. 너는 어때?”

“전 괜찮아요.”

“사실 할 말이 있는데. 인터뷰를 해줬으면 좋겠어.”

“무슨 인터뷰요?”

“QTB랑.”

나는 현진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었다. QTB면 최초로 화성인들의 사망 가능성을 보도했던 언론이었다.

“왜요.”

“너도 알다시피 시간이 지나갈수록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잖아. 10년 가까이 지나서 아예 우리가 거리에서 무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다른 분들도 제가 해주길 바라는 거에요?”

“아니.”

“근데 왜 이러시는 거죠. 이 인터뷰 아저씨에게 필요한 거죠?”

“모두에게 필요해. 하지만 말을 못 하는 거지.”

“아저씨는 화성에 가족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께서 이대로 더 시위에 나오지 못 나오시게 되면 이 일 전체가 동력을 잃을 거야. 지난 10년은 물거품이 될 거야.”

병실로 돌아왔다. 나는 인터뷰를 해야 할까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인터뷰를 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민의 자리를 대신해야 하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10년이 지나서 다시 불쌍한 고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지난 10년을 다시 그려내야 할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밤새 고민 했다. 의논할 사람을 떠올렸다. 지민의 얼굴만 떠올랐다. 평소였다면 가깝진 않았지만 현진에게 전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데본의 부모님들에게 전화를 할까. 그들은 나에게 인터뷰를 하지 말고, 예정대로 미국으로 건너와 학업을 시작하라고 할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주가 넓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음날 일찍 일어났다. 머리가 차가운 공기에 식었다. 병실에 도착해 지민을 내려다보며 내가 지구에 돌아왔던 날을 떠올렸다. 지민은 나와 카메라 사이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나와 세상 사이에 서서 나의 삶을 지켰다. 지민은 나를 말렸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누워있었다. 이제 내가 그녀와 위치를 바꿔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지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현진에게 전화했다.

“인터뷰는 내일 오후 3시쯤 스튜디오에서 녹화하기로 했어. 1시간 전에 오면 될 거야. 병실도 좀 찍고 싶어 하는데 그건 안 된다고 했어.”

“감사합니다. 내일 맞춰 가겠습니다.”

“네가 할머니와 우리가 했던 일을 잘 알겠지만, 자료랑 주의해야 할 점을 정리한 걸 파일로 보낼게. 나도 방송국에는 동행할 거야. 내가 1시쯤 병원으로 데리러 갈게.”

“내일은 집에서 바로 갈 것 같아요.”

나는 일찍 잠들었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현진이 보내준 자료를 계속해서 봤다. 슬픈 표정을 지으려 연습했고, 내가 짓는 슬픈 표정들은 우스워 보였다. 표정들이 사라진 얼굴이 슬퍼 보였다. 거울 속의 여성의 눈은 시간이 갈수록 단단하게 빛났다. 1시가 되었고, 현진은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우리는 현진의 차로 차에 타고 얼마 안 가 내 전화기가 울렸고, 우리는 방송국으로 가지 않았다. 지민이 깨어났다고 했다.

병실에 도착했다. 지민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의사는 나를 불렀다. 그는 지민을 다시 재웠다고 했다. 언어 능력에는 별 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고 다른 부분은 시간을 두고 확인해 볼 거라고 했다.

“아저씨, 오늘 인터뷰는 못 할 것 같아요.”

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 인터뷰는 지민이 직접 하면 될 거였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 잠든 지민의 얼굴을 봤다. 유정이 보고 싶었다.

유정과 데본이 죽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없었다. 눈, 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던 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흐려졌고, 나는 데본과 유정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기 위해 그들의 사진과 영상을 찾아봤다. 그러다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날 지민의 얼굴을 보고서야 내가 유정의 얼굴을 데본의 얼굴을 잊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할머니가 아닌, 화성 유가족 대책 위원회 위원이 아닌 지민의 얼굴은 유정과 많이 닮아있었다.

 

나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전화가 울렸다. 지민이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고 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았지만 말투와 쓰는 어휘들이 그대로였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지민은 가끔 신음인지 대답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오늘 인터뷰를 하려고 했어. 현진 아저씨가 부탁하더라고. 할머니가 하던 일들에 관심이 쏠려있었으니까. 좋은 기회였어. 나도 도움이 되고 싶었고.”

지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할머니가 직접 인터뷰 하면 되겠다.”

수화기 너머에서 지민의 숨소리만 건너왔다.

“할머니, 내일 아침 먹고 병실로 갈게.”

“응, 잘 자.”

나는 몸을 다시 눕혔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잠이었다.

“미국으로 따라가게 해줘.”

다음날 지민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국에서도 데본의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보다 한국에서처럼 지민과 사는 것이 더 좋았지만, 그렇게 하자고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지민은 퇴원을 할 때도, 퇴원한 후에 재활치료를 하러 다니는 동안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런 지민을 보고 이 곳을 떠나는 것이 지민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수영장에서 힘들게 허우적대는 지민을 보면서 그러자, 라고 답했다.

 


화성으로 떠나기 전날, 오로라를 봤다. 태양으로부터 방문한 입자들이 지구를 떠나지 못하고 춤추던 하늘을 봤다. 입김을 뿜으며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늘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하늘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10년 전, 미국을 향해 이륙하는 비행기 창 너머로 보이던 하늘이었다. 이른 저녁이었고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때의 하늘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나는 옆자리에 앉은 지민을 걱정하느라 하늘에 감탄할 여유가 없었다.

지민과 LA행 비행기를 탔을 때는, 겨울이 막 지나려 하는 계절이었다. 지민의 짐은 이민을 가는 사람치고는 간단했다. 그녀는 최소한의 물품만 챙겼다. 겨울 외투와 봄에 입을 옷 몇 그리고 속옷을 챙겼고, 노트북을 챙겼다. 아무리 봐도 여행자의 짐 정도로 보였다. 지민은 모든 것을 새롭게 살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에 있는 집은 처분하지 않고 두었다. 이따금 지민의 동생이 관리해주기로 했다. 집을 처분하면 짐 둘 곳이 없다는 이유였지만, 나는 언젠가 지민이 얼마 안 가 서울로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이때, 딸을 잃은 사람의 슬픔과 그 슬픔을 위해 10년간 싸워온 사람의 마음의 깊이에 대해 몰랐던 것 같다. 우리는 어느 순간 유가족들의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되었고, 한국과 화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행복하게 지냈고, 나는 지민 덕분에 순조롭게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순조로움 덕분인지 나는 박테리아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고, 미국의 한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때서야 지민은 서울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민이 죽었다.

 

서울에 들른 것은 10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들른 서울은 많이 변해 있었다. 사람들 얼굴은 편해 보였고, 인구가 많이 줄어서인지 거리는 답답하지 않았다. 장례식은 조촐했다. 지민의 동생들과 그들의 자식들, 몇몇 익숙한 얼굴의 노인들-아마도 화성 유가족-뿐이었다.

집은 예전보다 좁아 보였지만, 많은 부분은 그대로였다. 거실의 소파를 보면 10년보다 짧은 시간이 지난 것 같았고, TV를 보니 겨우 10년만 지난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깨끗하네? 근데 수영 열심히 하셨나보다.”

지민의 유품 정리를 도와주기로 한 친구가 말했다. 서울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친구가 열어놓은 서랍에는 지민이 쓰던 물안경들이 있었다. 그 사이로 다른 것들보다 작고 오래 되어 보이는 물안경이 있었다. 나는 플라스틱 곽을 열어 할머니의 물안경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한 30년은 되어 보이는 데 작동하네. 이거 비밀번호 알아?”

친구가 지민이 쓰던 컴퓨터를 발견했다.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 비밀번호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나는 지민의 컴퓨터를 열어도 될지 고민했다. 지민은 분명 나에게는 괜찮다고 할 것이다. 나는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았고, 친구는 컴퓨터에서 떨어져 뒤로 물러섰다.

[얼굴이 인식되었습니다.]

“엄마.”

유정의 목소리였다. 컴퓨터 화면의 데본과 유정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시연이는 잘 지내는 거죠?”

나는 멍하니 화면을 봤다. 시간이 갈수록 흐리게 보였다.

"이분들은 누구셔?”

“비밀번호는 어떻게 한 번에 푼 거야?”

친구가 물었고, 나는 답을 떠올렸지만 입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화성에 도착했다. 나는 다른 팀원들과 함께 우주선 창 너머로 붉은 땅이 자전하는 광경을 바라봤다. 사람들에게 화성은 잊힌 곳이었고, 지나간 근현대사였지만 우리는 화성에 왔다.

20년 전 화성 기지가 있던 곳의 좌표를 다시 확인했다. 우리가 조사 기간 동안 지낼 간이 기지 건물과 차량을 지상으로 보낸 뒤에, 열 명의 우주인은 착륙선에 차례대로 탔다. 착륙선의 문이 열렸고, 마르고 차가운 땅에 보였다. 20년 전의 풍경이 떠올랐다. 나는 착륙선을 나가기 전, 개인 가방에 손을 넣어서 물건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우리가 지낼 기지로 걸었다. 몇 백 미터 되지 않는 거리에 내려앉아 있었다. 우리는 도착해서 기지를 정리하고 조사 준비를 했다. 다들 들떠 있었다. 나처럼 화성 출신인 두 명은 여러 감정을 얼굴에 띄웠다. 다음날부터 테라 노바라고 불린 옛 기지를 조사할 계획이었다.

다음날 오후, 우리는 20년 전의 테라 노바로 향했다. 나는 필요한 물건을 챙겨 가방에 담았다. 차를 타고 모래 언덕 몇을 넘었고, 수백 개의 흰 건물 무리를 찾았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걸었다. 지구보다 가벼운 걸음이었다. 데본의 로봇들이 지나다니던 길과 유정이 박테리아를 키우던 곳이 보였다. 팀원들은 각자가 맡아 조사하기로 한 구역으로 흩어졌다. 나에게도 맡겨진 곳이 있었지만, 나는 집으로 갔다.

집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20년 동안 닫혀 있었던 것 같았다. 내부가 다소 낡아 보였지만 얼마 전까지 사람이 머물던 느낌이었다. 테이블 위는 조화가 놓여있었고, 볼펜이 올려져 있었고, 내가 쓰던 침대 위에 놓인 이불에는 주름이 가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할머니의 물안경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리고 데본과 자오가 쓰던 침대로 갔다. 나는 침대에 누워 아주 먼 옛날, 예라는 사람이 태양 아홉 개를 떨어뜨렸다는 얘기를 떠올렸다.

꿈을 꿨다. 나는 물아래에 잠겨 있었다. 수면 위로 올라왔고, 바람이 얼굴에 묻었다. 물안경을 벗었다. 수영장 경계 너머로 붉은 땅이 보였다.

이날 화성의 노을은 푸르렀고, 오랜 시간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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