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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나무이야기

2020.06.09 23:1806.09

 나무이야기

 

 

 “엄마, 엄마. 밤새 더 자랐어.”

 딸 아이는 거실에 있는 자기 키만한 화분을 빤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이었다. 아이가 도토리를 들고 와 심어보자고 해서 원래는 고목나무를 새로 들여오려던 화분에 장난삼아 심었었는데, 정말로 싹이 나더니 쑥쑥 자라고 있었다. 이제는 줄기에 푸른색 뿐만 아니라 나무 특유의 고동색도 아래서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게.”

 아이의 엄마는 아직 콩나물 보다 조금 큰 정도인 싹을 쳐다봤다. 정말로 싹이 날 줄은 몰랐다.

 '도토리에서 자라면 어떤 식물이 되지?'

 한국의 30대 주부로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다람쥐가 먹는 도토리. 도토리묵의 원료가 되는 도토리.

 “엄마, 나 오늘도 물 줄래. 그래도 돼?”

 아이는 요샌 잘 보기 힘든 커다란 푸른색 물뿌리개를 들고 와 화분에 물을 줬다. 아이의 엄마는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다.”라고 얘기하긴 했지만 아이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선 웃으며 돌아섰다. 그녀는 부엌으로 떠났다.

 아이는 물뿌리개를 베란다에 갖다놓고 화분에 양손을 짚고 봤다. 정말 조그마한 싹이었다. 그래도 이미 아이의 손가락보다는 길었고 앞으로 더 많이, 더 크게 자라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싹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 사이 뒤 쪽에서 주부들의 생활 팁을 알려주던 TV화면이 넘어갔다. 사실 방영하고 있는 거의 모든 채널이 그랬다. 보기 드물게 창백한 얼굴의 아나운서가 말했다.

 

 [여러분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국내 상공을 거쳐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일부는 중국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며, 아직 정확한 것들은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문가에 따르면 포격지가 입을 피해는 이미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며, 이는 명백한 군사 도발로 사태는-]

 

 아이는 화분 테두리에 손을 짚은 채로 고개를 돌려 부엌을 향해 물었다.

 “엄마, 핵전쟁이 뭐야?”

 

 ◇

 

 거대한 불빛. 열기. 깨지는 창문.

 방사능 낙진. 여기저기에 위치한 폭심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사고. 스위치. 미미한 기후의 변화.

 또 다시 떨어지는 먼지. 폭발. 전술의 상실. 상태의 변화. 검은색 하늘.

 

 ◆

 

 어두침침한 거실로 남자 둘이 들어온다. 두 사람 다 검댕으로 더러워져 알아보기 힘든 차림을 하고 있었다. 헐어버린 밤보다도 새까만 얼굴에는 흰자위만 번들거렸다. 그들은 집 안을 둘러본 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예감했다. 하지만 조심해야 했다. 깨진 유리와 널브러진 물건들. 발 디딜 틈은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베란다로 걸어가 밖을 살피고 부엌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남자는 거실에 남아 두리번거리다 화분을 발견했다. 이제 손가락 두 개를 겹칠만큼 줄기의 아랫부분이 굵었다. 손가락 두 개 정도 길이에 아주 작고 뾰족뾰족하나 가시가 난 잎이 보였다.

 “야.” 남자가 외쳤다.

 “왜, 뭐 있어?” 동료는 곧장 몸을 낮추고 긴장한 채로 걸어왔다.

 “식물이다.” 남자가 말했다.

 “...뭐야. 못 먹는 거잖아?”

 남자는 동료를 살짝 흘겨보고서 말했다.

 “얌마, 먹는 게 전부가 아니잖냐. 얼마 만에 보는 식물이야.”

 동료는 의심스레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피폭된 거 아니야?”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이 세상에 피폭 안 된 게 어딨어.”

 두 사람은 잠시 화분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낮은 소리로 함께 음산하게 웃었다.

 그들은 메고 온 자루에서 연어 통조림을 꺼내 맛 없는 크래커와 함께 나눠 먹었다. 순진해 보이는 쪽의 남자가 캔 안쪽까지 혀로 마저 핥아먹었다. 그 후 동료는 부엌에 있는 싱크대를 뒤지다가 가장 안 쪽에서 라면 봉지 하나를 발견한다.

 동료는 기뻐하며 남자를 세게 끌어안았다. 그들은 라면을 부숴 나눠먹는다. 밖은 아주 조용했다. 검은 하늘이 멈춰 있는 것처럼, 그림처럼 그 자리에 붙어있었다. 그들은 생라면을 아껴 먹는다. 얼마 만에 먹는 것인지 까마득했다.

 “아껴먹을 걸. 나중에 끓여먹을 수도 있었는데.” 까드득. 까드득. 남자가 말했다.

 “아서라.” 동료가 말했다. “뺏길 수도 있고, 언제 또 식량을 구하겠다고 그래. 좋은 건 그때그때 먹는 거야.” 까드득. 까드득.

 남자는 생라면 조각을 씹으면서 뒤로 돌아 화분을 봤다. 식물은 세상에 남은 모든 물건들처럼 재와 검댕으로 덮여 있었다. 겉으로 보면 썩은 플라스틱 모형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거 참나무야.”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동료가 말했다.

 “참나무?”

 “정확히 말하면 상수리나무지.” 그는 작은 조각을 입에 넣고 말한다. “잎을 보면 알 수 있어.”

 “음.” 남자는 나무를 들여다 봤다. 잎은 작지만 길고 가장자리에 뭉툭한 가시들이 나 있었다. 그가 동료를 돌아보며 말했다. “야, 상수리나무면 그거 아니야. 그 어린왕자 행성에 섞여 나는 거.”

 “그건 바오밥나무야.”

 “아.” 다시 나무를 보던 남자가 잠시 후에 말했다. “근데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전에 말했잖아. 아버지가 식물원 했었다고...” 동료는 잠시 눈앞의 엎어진 소파를 보며 멈춰있다가 코웃음쳤다. “나도 그쪽으로 공부했지만, 지금 세상에 가장 쓸모없는 학위 중에 하나지.”

 “왜. 또 모르지.” 남자는 순진하게 웃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걸 집 안에다 심었지?”

 “...아마 전쟁 터진 직후에 심은 게 아닐까. 집을 버리면서 심고 간 거지.”

 “사태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동료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았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것도 없었겠지만.”

 “하긴.” 남자는 말했다. “라면도 두고갔고.”

 “그래. 라면도 두고갔고.” 동료는 웃었다.

 하지만 동료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자라난 나무가 화분을 깨트리고 뿌리를 뻗고, 낡은 건물은 무너지고. 하지만 나무는 살아남아 부서진 건물 더미 틈으로 가지를 뻗는 것이다.

 상수리나무는 마을 주변 기슭에서 잘 자라는 거대한 나무였다. 어떤 마을은 신목으로 모시기도 했을 것이다. 그처럼 저 나무도 다 자란 후에 새로 생겨난 마을의 수호목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금새 자신의 상상을 털어버렸다. '새로 생겨나는 마을'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남자와 동료는 남은 라면을 입에 털어넣고 그나마 멀쩡한 작은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남자는 자기 전 낡은 천조각에 페트에 받아놓은 빗물을 묻혀 나무의 잎을 닦고 좀 부어도 줬다.

 그날 밤에는 불운하게도 근처에 있는 건물들을 습격한 패거리가 있었다.

 여자와 아이가 살던 아파트도 예외는 아니어서 남자와 동료는 사로잡혔다. 저항한 끝에 그들은 혀가 뽑히고 눈이 뽑혀 패거리의 국거리가 되었다. 사람을 먹는 패거리는 화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그들 중 한 명이 무심코 화분을 발로 밀쳤고, 넘어진 화분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흙이 바닥에 널브러졌지만 나무는 망가지지 않았다.

 

 

 ◆

 

 시간이 지나 화분에 도토리를 심은 딸아이가 죽었다. 사고사였다. 소녀는 폭격으로 새로 생긴 낭떠러지 벼랑에 떨어져 죽었다. 아이의 엄마는 조금 더 살아남았다. 딸아이가 죽은 건 알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뱄다. 쌍둥이었다. 무리의 리더격이었던 그 남자의 아이는 그 외에도 여럿 있었지만 그들 중 오직 한 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살아남은 건 여자가 밴 쌍둥이 중 남자 쪽이다.

 몇 달 후에 아이의 엄마가 죽었다. 계절이 지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좀 더 죽었다.

 시간이 더 흘러 아파트가 놓인 도시에서는 인간들의 격렬한 전투가 새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폐허 속에 자리 잡았던 두 세력 사이의 길고 긴 전쟁이었다.

 노예로 부릴 수 있는 아이들을 차지하기 위해 시작된 다툼이 총력전으로 번진 것이었다. 전쟁 후 태어난 아이들 중 몇몇에게는 미미한 초능력이 있었는데, 집단은 서로 그들을 사로잡아 길러서 무기로 쓰길 원했다. 이전 시대의 총탄이 다 떨어지고 나면 그들이 새로운 전력이 될 터였다.

 새롭고 반영구적인 무기를 차지하기 위해 겨울밤, 추위를 틈타 도시 위에 새로운 불빛이 번쩍였다. 이전 시대에 남아있던 무기들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다. 재가 내려앉은 도시 위로 새로운 피가 흩뿌려졌다. 새로운 비명소리가 오랜 정적을 깨웠다. 다시 수많은 건물들이 무너졌고, 마침내 그들은 성공했다. 서로가 서로를 몰살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

 

 노인은 그들 중 어떤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녀 자신의 의지로는 그랬다. 이전 세계의 노련한 무기 기술자였던 노인은 늙은 배우자를 볼모로 잡힌 후 지도자들에게 일종의 전략자원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종종 바뀌는 리더의 뜻에 따라 엔진을 고치고, 총기를 다듬고, 가르치고 벗겨내고 먹고 일하면서 노인은 까마득한 세월을 보냈다. 그녀는 싸우는 방법은 몰랐다.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패거리에 있던 그 어떤 전투원보다 많은 피가 그녀의 손에 묻어있었고 노인 자신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늙은 배우자가 병환으로 죽은 후에도 노인은 스스로의 목숨을 위해 무기를 고쳤다. 목숨? 사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된 후였다. 끝도 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일부처럼 고치고 돌고 또 돌았고 그 뿐이었다. 몸이 마저 닳아 망가질 때까지 고치고, 고치고. 그러나 어쨌든 결국 그녀가 손 본 무기들이 그들 모두를 죽였으니 노인은 일종의 복수를 달성한 것인지도 몰랐다. 스스로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했든 간에 말이다.

 모순되게도 전쟁의 발단이 된 아이들은 긴 전쟁이 끝나기 전 어른들의 손에서 도망칠 수 있었는데, 아이들을 이끈 다 큰 아이들 중에는 여자의 아들도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은 알지 못했지만 도망치기 전 무기고 앞에 혼자 허수아비처럼 앉아있는 노인의 얼굴을 빤히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는 노인을 두고 망설이고 있는 동안, 그의 연인인 아이가 손을 끌었고, 결국 그들은 망가진 수풀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광경이 소년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폐허가 된 창고 앞에서 자손을 모두 잃은 신처럼 멈춰있는 늙은 어머니의 모습.

 

 노인은 모든 불꽃이 반짝이고 꺼질 때까지 그곳에 앉아 있다가 도심 한복판에 새로 만들어진 이 언덕으로 왔다. 도심의 전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망가진 곳이더라도 그곳은 그녀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언덕, 정확히 말하면 회색 둔턱이라고 불러야 할 흙무더기에 오른 그녀는 잠시 구부정하게 서서 도시를 둘러봤다. 어느 방향을 봐도 이전의 형체는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노인은 몸을 돌리다 발을 헛디뎌서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 상태로 멍하니 망가진 풍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 앉은 이곳이 죽을 자리라고 생각했다. 일어날 힘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노인은 주저앉은 채 등 뒤로 땅을 더듬다 무언가를 발견했고, 그것이 그녀에게 여분의 힘을 주게 되었다.

 뿌리에 흙이 얼기설기 얽힌 채 쓰러져 있는 묘목, 바로 여자 아이가 화분에 심었던 나무였다. 노인은 성인의 팔목 크기만큼 자라난 가느다란 나무를 멍하니 보다가 손가락을 뻗어 만져봤다. 넘어진 채로 말라가는 뿌리와 줄기를 감싼 껍질의 촉감, 딱딱하고 비쩍 말라있는, 하지만 살아있는 식물의 촉감이었다. 잠시 손을 댄 채 겁먹은 사람처럼 얼어붙어 있던 노인은 이내 울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이전에 다친 적도 많았고, 배우자가 늙어 죽었을 때도 울지 않았었는데,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때는 패거리가 제공해 준 음식이나 잘 곳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건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엎어진 채로 엉엉 울었다. 아이처럼 침을 흘리면서 울었다. 노인은 쉰 목으로 서럽게 흐느끼다가 힘이 빠져 이번엔 뒤로 엎어졌다.

 그대로 잠시 잠들었다가 몸을 일으킨 노인은 기름때가 낀 맨 손으로 잔해 위의 흙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애를 썼다. 둔턱 아래로 내려가 바닥을 팠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보이는 검은색 흙을 손바닥에 모아 위로 올라갔다. 부러진 뼈처럼 솟아올라있는 철근과 콘크리트 사이의 작은 땅에 흙을 모아 붓고 구멍을 파 노인은 그곳에 나무를 심었다. 남아있는 힘을 끌어 모았다. 팔뚝만큼 길고 척수처럼 얇은 나무를 언덕 위에 세웠다.

 뿌리를 흙 속에 파묻기는 했지만 나무는 여전히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도 노인은 안심했다. 의미있는 일을 한 게 얼마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 날 도시가 끝장난 지 30일 째의 해가 하늘 너머로 사라진 후, 노인은 만족한 표정으로 웅크리듯 나무를 감싼 채 땅 위에 머리를 눕혔다. 그리고 세상이 바뀐 후 처음으로 깊은 휴식을 취했다. 그게 그녀의 영원한 휴식이었다.

 

 ◈

 

 사실 노인이 한 모든 노력은 원예학적으로는 크게 의미가 없었지만, 그녀의 시체는 나무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시체는 아주 천천히 썩어 들어갔고 그것이 나무에게 필요하던 양분을 공급해 주었다. 며칠 뒤 내린 비가 여분의 수분을 공급해주고 여러 과정을 촉진시켜주었다. 검은 비도 비였다. 나무는 새로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고, 마치 누군가가 의도한 것처럼 솟아오른 황폐한 언덕, 무너진 건물 더미 위에 위에 작은 녹지를 꾸리게 되었다. 나무는 느리지만 확실히 자라났다. 도토리를 심은 아이의 다리보다, 키보다 더 크게 자랐고 곧 어른 하나만한 크기가 되었다.

 

 

 ◇

 

 다른 가을이 되었다. 이 땅 위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아직 계절이 의미가 없었지만, 외계에서 온 그에게는 조금 달랐다. 그는 가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번 이 행성에 들렀을 때 그는 이 도시에 있었고, 그 때도 가을이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단조로운 길 위에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었다. 불타오르는 빨강과 선명한 노란색이 흩날리고 있었다. 마침 흑백과 그 두 가지 원색이 외계에서 온 그들이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고 그 모습은 영원한 축제처럼 보였다.

 어리석은 이들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마 처음부터 위험한 종족이었던 거라고. 인간들은 우주밖에 자신들 외에 다른 지성체가 있다는 걸 의심했을 정도로 오만했고, 그럼에도 자신들의 지표면을 모조리 태울 수 있을 정도의 무기를 만들어냈다. 오로지 자기 자신들을 겨냥하기 위해서였다.

 자신들의 길에 붉고 노란 생명을 옮겨 키울 수 있는 자들이, 어째서 서로가 서로를 태우게 되었는지 그로선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돌아온 세상엔 오로지 잿빛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 언덕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건 나무에게도 외계의 신관인 그에게도 행운이었다.

 그는 기뻐했다. 그는 나무를 보며 행성의 가을을 그리워했다. 얼마 되지 않은 이파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검댕이 두껍게 묻어있었지만 낙엽이었다. 나무 근처에는 노인의 유골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신관은 알 수 없었지만. 이 나무는 우연히 살아남았지만 당장이라도 독기가 뿌리와 여남은 잎들을 갉아먹을 것 같았다.

 죽은 벌레들. 유골. 검은 하늘.

 신관은 잠시 나무에 손을 댄 채 눈꺼풀을 내리고 있다가 신에게 답을 구했다. 그는 오직 하나 뿐인 신을 믿었다. 수십 광년 떨어진 낯선 곳에서도 지혜를 통해 밝혀줄 거라고 믿었다.

 이윽고 자신의 기체로 돌아간 신관은 버튼을 조작해 조각 하나를 꺼냈다. 자주색 수정이었다. 그 자신의 피부색과 그리 다르지 않은 옅은 광채를 띤 물건이었다. 그가 아는 모든 세상의 기준으로도 신비한 물건이었고, 또 이 더럽혀진 행성에서는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 분의 뜻대로 하시겠지.

 신관은 그걸 나무에서 몇 걸음 떨어진 언덕 정상에 심었고 행성을 떠났다. 익숙한 자신의 하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아마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그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 종족의 사고 속에서 아주 긴 시간은 아니었다. 영원은 신에게 속해있고 그 역시 신에게 속해있었다. 그는 신관이었기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관에 의해 심긴 수정은 새로운 식물이나 생명은 아니었다. 하지만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물건이었고 그건 곧 생명에도 한없이 가깝다는 의미였다. ‘정화하는 수정’은 나무와 나무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독기를 빨아들이며 서서히 영향력을 넓혀갔다. 곧 도심지의 거의 대부분이 수정의 범위에 포함되었고 그 작은 땅은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기에 적합한 환경이 되었다.

 

 ◆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수정은 본질적으론 영적인 물건이었고, 때문에 도심을 떠도는 인간들의 원령에게도 힘을 주었다. 조금씩 빨아들여 한 곳에 쌓인 독기가 형체를 이루었고, 원혼을 삼켜 하나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림자는 인간을 죽이는 자가 된다. 살아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그림자. 하염없이 인간을 죽이는 인간을 닮은 무언가.

 

 그림자는 몇 개의 원혼을 집어삼켜 하나, 또 하나 폐허가 된 도심을 떠도는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머지않아 도심을 떠난 아이들과 다른 소수의 순진한 자들에게도 목격되어 그들에 의해 정말로 ‘그림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도심지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비극 때문 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위험하고 또 인간에게 금기시 되는 공간이 된다. 그건 나무에게는, 또 땅 속에 묻혀있던 작은 씨앗들에게는 신관이 바랐던 대로 기회가 되어주었다. 버려진 도시에는 아주 조금씩 녹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중심에, 수정 옆에 있던 나무가 가장 빠르게 자라났다. 덩굴들이 각지에서 건물과 잔해들을 느리게 타고 올랐다. 깨트리고 부서뜨리고. 그림자들은 도심지의 유령처럼 돌아다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때때로 검은 비가 내리면 타르가 흐르는 듯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

 

 길지 않은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전 시대로부터 비롯된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고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마저 죽어갔다.

 어려운 기억들. 삶을 저주받은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생각들. 혹성처럼 낯설어진 행성의 하늘보다도, 그들의 기억이 그들 스스로를 죽인 셈이었다.

 그 끝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거나 순진한 자들이었다.

 앞선 시대의 어른들이 사라지고 나자 크고 작은 신비한 일들도 새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전에 기록된 이야기책처럼. 아직 서로에게 형체를 갖추진 못했지만 이어지는 것은 이어지므로, 생각보다 하늘은 빠르게 걷히고 있었다. 이전처럼 맑지는 않다고 해도 죽은 사람들이 상상하던 것보다는 성실하게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볼 수 없는 하늘.

 그리고 성장한 소년의 기억 속에는 노인의 모습이 계속 남아있었다. 빈 무기 창고 앞에서 망연한 금속처럼 붙박여 있던 모습이, 검은 하늘 아래에서 태어난 소년에겐 이전 세계에 남겨져 있던 많은 것의 상징처럼 느껴졌었다. 노인의 배우자가 아이였던 그에게 주었던 음식처럼. 기억 속에 흐릿한 어머니가 말했던 영원히 어린 두 명의 누이처럼.

 부락 단위로 살아남은 아이들은 교외에 모여 구시대의 유물을 소모해갔다. 통조림은 모두 소모되었다. 극소수의 들쥐들, 벌레들도 먹어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이 있었다. 추가로 열 개의 가까운 겨울을 보내자 행성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 가는 것 같았다. 아직 한참은 멀었지만, 영원히 낫지 않는 부분은 있을 테지만, 새로운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본능에 이끌려 서로 사랑을 했다. 소년은 가족을 꾸리고 그들 중 가장 큰 부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푸른 불꽃을 부리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풍족하지 못함이 모든 아이들 위에 드리워져 있는 일에 대해 소년이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도심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제 그림자들은 폐허가 된 곳 바깥까지도 나와 사람을 공격하곤 했는데, 아이였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킬 뿐 완전히 무찌르거나 폐허까지 쫓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싸움은 그들 서로에게도, 그림자를 상대로도 금기였다. 서로는 서로를 지킬 따름이었다. 이전의 세상은 서로 싸웠기 때문에 빛이 땅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소년은 생각했다. 노인을 두고 온 것처럼, 도심에는 그들이 두고 온 무언가가 있다고. 되찾아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교외의 생활이 풍족하지 못한 건 그 까닭이라고, 그런 생각이 소년의 머릿속에서 자라났던 것이다.

 “그림자를 물리쳐야 해.” 소년이 불러 모은 전투원들에게 말했다. “우린 너무 오랫동안 그것들을 방치해 왔어.”

 친구들이 말했다. “하지만 일 년에 그림자에게 죽는 아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

 무엇보다 “전쟁은 금기잖아. 전쟁을 할 셈이야?”

 어른들처럼. 도심 전체를 수놓으며 떨어지는 불빛처럼.

 “전쟁은 유산이야.” 소년이 말했다. 어떤 계시를 받은 것처럼 그의 눈이 검게 반짝였다.

 “사람은 싸울 수 있고, 싸우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게 있어. 도망치는 건 잘못 됐어.”

 친구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에게는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굶어죽는 아이도 있었다. 폐허를 빠져 나온 그림자에게 잡아먹히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우리에게는 불꽃이 있어.” 친구가 말했다.

 “뽑아들고 싸우자.” 소년이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

 

 무장은 이랬다. 그들이 오래 전 도심을 빠져나올 때 가져왔던 경찰방패. 폴리카보네이트.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권총 두 자루.

 튼튼한 구 시대의 천을 엮어 만든 투척용 슬링. 오래 된 경찰봉.

 얇은 철근을 갈아 만든 창. 그리고 무엇보다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뽑아낼 수 있는 푸른 불꽃이 있었다. 불꽃을 다루는 능력은 언젠가 어른들이 예견했던 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원숙해졌다.

 마침내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가 말했다.

 “이길 수 있을 거야. 어쩌면.” 그는 신비롭게 미소지었다.

 

 ◈

 

 녹아 흐르는 타르로 뒤덮인 늑대 주둥이를 가진 그림자. 인간을 먹고 인간을 증오하는 한없이 생명에 가까운 존재들. 그들은 부서진 도로를 통해 걸어들어 온 아이들에게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소년과 소녀들이 푸른 불꽃을 뽑아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이적.

 뒤편에서 눈이 좋은 아이들이 돌을 던져 맞췄다. 흐린 하늘의 별빛으로도 돌덩이를 맞추는 데는 충분했다. 폴리카보네이트 진압방패가 그림자의 손톱을 막아낸다. 철근을 갈아 만든 창으로 거대한 발등을 찔렀다.

 불꽃을 든 아이들은 달려드는 그림자들을 협업해서 베어 넘겼다. 몇 명의 아이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싸웠다. 도심의 중심부로. 거대한 바주카의 포탄이 폭발했던 장소, 새로 생긴 언덕으로. 혹은 거대한 전쟁이 있던 곳에. 노인이 침묵하며 앉아있던 무기고로. 그의 유골이 놓여있는 곳으로.

 밤이 되었다.

 한낮이 빠르고 긴박하게 아이들을 지나갔다.

 소년과 소녀들은 부서진 도로 위로 새로 자라난 이끼를 밟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부드럽고 푸른 식물은 아이들에겐 처음 보는 외계 생명체처럼 보였다.

 저 멀리 있는 언덕 근처에는 신관이 두고 간 수정, 독기를 빨아들이고 한편 땅에 식물을 자라게 해 준 근원이 있었다. 그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역할을 수행한 끝에는 자라나고 깨져서 가장 응집된 상태의 살아있는 독기가 되었다. 그 거대한 검은 거인 형상의 괴물은 명실상부 그림자들의 왕이었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보였다.

 짙은 타르를 흘리며 달려드는 거인을 아이들이 둘러 싸며 공격했다. 돌을 던지고 창을 찌르고 불꽃을 휘두른다. 많은 아이가 죽었다. 그렇지만 틈을 노려 소년의 아내가 들고 온 권총을 꺼내 괴물의 머리를 겨냥했다. 한 자루였다. 한 자루는 사격연습을 하는데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원한으로 비롯된 그림자는 오직 인간의 무기로 죽일 수 있나니.” 그녀가 말했다. 예언하는 아이가 했던 말이었다.

 발사. 괴로워하던 검은 거인이 움직임을 멈췄다. 질척이는 타르가 형체를 잃고 파도처럼 부서진 도로와 거리 위에 퍼졌다. 아이들은 휩쓸려 비틀거렸지만, 다행히 그 사고로 죽은 아이는 없었다.

 그들은 그림자에게 이겼다. 그림자의 왕을 죽였다. 그러니 아이들에겐 신관이 남기고 간 녹지와 단풍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셈이었다. 아이들은 지치고 다친 몸으로 기뻐했다.

 

 성장한 소년은 왼손에 불꽃을 든 채 밤을 밝히며 언덕을 마저 올라갔다. 그곳에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어릴 때 농담처럼 들었던 생명이었다. 밤에 부는 바람에 푸른 잎들이 흩날렸다. 소년은 허리를 꺾어 나무를 올려다봐야 했다.

 그리고 그 나무 앞에서 똑바로 불꽃을 들고 선 채 소년이 선언했다.

 “우리가 이겼어!”

 아이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소년은 자신의 허벅지만큼 굵은 뿌리 근처 흙 속에서 박혀있는 부서진 두개골을 발견했 다.

 환호하는 소리와 기뻐하는 웃음소리. 그 속에서 소년은 푸른 불꽃을 비춰 보며 말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좀 더 편히 쉬어요. 우리가 근처에 있을 테니까.”

 

 ◇

 

 시간은 이어진다.

 소년은 죽고 소년의 아내는 죽고 예언하는 아이가 죽는다. 소년의 아이들은 좀 더 살아간다.

 우리는 계속될 거야. 예언자는 마지막 순간에는 아마도, 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는다.

 여러 일들이 이어져 간다.

 후에 살아남은 아이들 중 아버지가 원예사였던 남자의 핏줄이 재능을 피워 도시가 조금 더 인간들을 위해 자라난다거나,

 아이들은 점차 푸른 불빛을 꺼내는 능력을 잃어가고 하지만 때때로 그림자가 새로 나타나면 반드시 그 힘을 가진 아이도 태어난다거나,

 삶은 이어진다. 밤하늘에 별들이 조금씩 돌아오고, 더불어 사라져버린 지식 위에 오랜 정령이나 신화도 새로 힘을 얻는다. 아이들은, 새로운 생명들은 먼 과거의 춤과 비슷한 춤을 추며 살아간다.

 외계에서 온 신관과 그가 심은 수정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섬겼던 신은 아이들 속에서 발견되고 태어나고 연결되어 그들 속에서 이어져 간다. 그건 본질적인 일이므로

 이어간다.

 춤 속에서 그리고 생겨나는 별들 속에서.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사람들은 자라나고 살아가며 더 많은 부락을 이루고 동시에 다시 모든 신비도 잃어가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나의 뿌리 아래 파묻혀 있는 유골과 함께 잊혀지고 한낱 물건처럼 단순해질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이어질 것이다. 죽고 태어나는 더 많은 생명과 함께.

 그 중 인간의 이야기는 수없이 더 많은 가을을 살아갈 나의 이야기보다도, 더 오래, 마치 영원할 것처럼 춤을 추며 이어질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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