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어르신은 왜 서주﹡까지 오셨을까요?“
*서주: 도이의 고향 마을

”너를 보러 오신 거 아냐?“

”보통 상단 때문에 고선까지 오시면 들르시곤 하시지만, 이번엔 상단일로 오신 게 아니었잖아요.“

”그걸 어떻게 아는데?“

”어르신 처음 오신 날 같이 주막에 가서 같이 밥 먹으면서 제가 여쭤봤잖아요. 구하실 책이 있으시냐고. 어르신은 고선에 오시면 좋아하는 소설가의 책을 사가시거든요. 하지만 일 때문이 아니라 알아볼 것이 있어 오셨다 하셨죠.“

 언니는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생각이 물꼬를 트자 연이어 그럴듯한 생각이 떠올랐다.

”괴물을 잡을 준비를 여기서 하신 게 아닐까요? 어르신이 어제 가져오신 꽃 말이예요.“

”그 꽃은 이 마을에서만 구할 수 있는거야?“
”아뇨, 그냥 흔한 약재라 어디서든 구하실 수 있을텐데.“

 운경에서도 쉽게 약재로 사용되는 꽃이라 굳이 고선, 게다가 서주일 필요는 없었다. 언니의 물음에 이런 간단한 것도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언니는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서주에서 구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 근처에 범인이 있다거나.“

”백간도!“

 백간도는 수도인 지한 근처에 있는 교역항으로 수많은 외국 상인들이 고선과 교역을 하는 곳이다. 어르신과 관계가 있을 법한 사람, 특히 어르신이 쫓는 자가 있을 확률이 높다.

 지금 당장 가진 단서로는 어르신과 우현도 범인을 쫓기 위해 백간도로 향했을 것이라는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우선 백간도를 향해 가면서 어르신과 우현의 위치를 추적해 따라가보기로 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얼른 집으로 들어가 창고에 들어갔다. 낡은 궤를 열어 아버지의 일기와 편지를 챙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범인을 잡기 위해 평소에 신세를 졌던 이웃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부랴부랴 길을 나서야 했다.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아쉽고 불안하면서도 한편 가볍기도 했다. 이제 미련 둘 곳이 없어 느껴지는 후련함이었다.

-
 외전 - 추모 1

 
 어느 때보다 조용한 아침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고요했다. 여유롭게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갖춰 입었다. 오늘은 세책방을 닫는 날이다. 하지만, 세책방을 여는 날보다 바쁘기도 하다. 

 연 언니는 신기하게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난다. 세수하러 밖에 나오자 방문을 열어 차를 마시겠냐고 물었다. 옷도 다 갖춰 입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내가 먼저 차를 끓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쉬움을 감추고 언니의 호의를 감사히 받기로 했다.
 
 여름이어도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라 조금 쌀쌀했다. 하지만 옷도 두툼하게 입고 뜨거운 차가 목을 넘어가자 속부터 열이 올라와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슴푸레한 새벽하늘 사이로 병아리가 알을 까듯, 조금씩 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광경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좋다.”

 언니는 찻잔을 양손으로 쥐며 숨을 내쉬듯 말했다. 언니의 커다란 손에 찻잔이 생각보다 작아 보여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요. 웬일로 새들도 시끄럽게 안 굴고.”

“그게 제일 맘에 들어. 오늘도 시끄러우면 새총으로 잡을까 생각했던 참이었어.”

 항상 술을 마시는 언니는 가끔 술을 과하게 마신 날이면 오늘에야말로 새총을 만들겠다며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술안주로 딱이라나.

 마침 새들이 얌전히 있으니 아직 남은 명줄이 많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힐끗 본 언니의 얼굴에 형형하게 눈빛이 반짝였다. 그 명줄이 언제까지 갈지 모를 일인 듯했다.

 차를 다 마시고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주먹밥 몇 개와 어머니 제사를 지내기 위한 간단한 음식을 만들었다. 언니는 옆에서 재료를 가져다주거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어제저녁부터 만들어 두어 아침에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금방 요리를 마치고 보자기에 술과 잔, 수저까지 함께 챙겨 산소로 향했다.

 
 산소는 햇볕이 잘 드는 산 위에 있어 산을 올라야 했다. 나야 자주 가는 길이지만 언니는 초행길이라 어떨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나보다도 산을 타는 속도가 빨랐다. 혼자 토박이의 자존심을 걸고 더 속도를 내보았지만 숨만 가쁠 뿐이었다.

“여기 자주 오는 곳 아니었어?”

 언니는 내 속도 모르고 헉헉거리며 큰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 나에게 보자기에서 물통을 꺼내주었다.

“요새 일이 바빠 잘 못 왔어요.”

 밥은 얼마 먹지도 않으면서 도대체 어디서 저런 체력이 있는지. 누가 내기하자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속이 쓰렸다.

 해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나무 그늘은 부끄러운 듯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나무가 품은 찬 공기 덕에 덥지 않았다.
 
 보따리에 챙겨온 음식을 차리고 술을 올렸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머니, 저 왔어요. 도이요.”

 어릴 때 돌아가신 어머니라 함께 한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남은 추억은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래서 아쉽고 섭섭했다. 아버지와 함께 산소를 찾을 땐 기억도 얼마 없으면서 엉엉 울기도 했었다.

“잘 지내고 있어요. 고뿔도 안 걸리고. 저번 활쏘기 대회에서도 1등 했어요. 다들 어머니 닮아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어머니가 계셨다면 틀림없이 무인이 되어 이름을 날렸을 거라고. 그리고 여기는 최근에 같이 지내게 된 최 연 언니예요.”
  
“안녕하세요. 최 연입니다.”

 뒤에 서 있던 언니도 다가와 허리를 숙이고 인사한 후, 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자세가 어정쩡했지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곧 자세를 바로 했다.

 나는 다리를 반만 일으켜 어머니 무덤에 술 세 잔을 뿌렸다. 그리고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 잠깐 묵념을 했다.
 
 끝내고 눈을 떠보니 언니도 나를 따라 눈을 감고 묵념을 하고 있었다. 곧 언니도 고개를 들었다.

“끝이에요! 이제 밥 먹을까요?”

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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