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외상

2020.05.15 11:3505.15

목련 잎들이 죽은 새처럼 떨어진다. 여자는 발끝으로 잎들을 툭툭 쳐낸다. 거기에 온 신경이 몰린 듯 그의 발은 일정한 리듬을 갖추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봉고차와 트럭, 자동차, 바람에 묻어나는 사람들의 말소리, 그 밖의 소리들로 채워진 무언의 공동묘지....... 문득 여자는 고개를 들어 횡단보도를 건너다본다. 여자의 애인이 여자의 눈에 띈다. 그는 몸이 얼어붙듯 달아오른다. 잎들을 하수구 쪽으로 모아놓은 뒤 애인에게로 향하는 여자다. 마른 듯한 체형에 잔근육이 골고루 퍼진 애인의 몸에 여자의 손이 닿는다. 그들은 서로의 배를 콕콕 찌르며 연신 안돼, 하지 마, 등을 뇌까린다. 항상 흘릴 웃음을 대비해 엉성하게 꿰어놓은 마음을 여자는 내버려둔다. 그는 애인을 데리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넌다. 순간 아반떼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횡단보도를 침범한다. 여자는 언제나처럼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그의 애인은 파하하, 웃음으로 낯선 아반떼 여자와의 랑데부를 마친다.

빵 먹자. 간단하게. 간단하게 빵.

빵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갓 구워낸 빵들이 판매대 위에 정렬한다. 그 내음은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다. 여자는 이따금 심호흡을 하며 한 걸음씩 매대 위를 훑을 뿐이다. 빵을 사지도, 시식하지도, 만지지도 않는다. 그러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비틀거린다. 애인이 재빨리 다가가 괜찮으냐고 묻는다. 여자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제 애인만 들릴 수 있게 목소리를 낮춘다.

아직도 그 냄새가 나. 아직도 그 소리가 들려. 아직도, 그놈이 보인단 말이야.

여자는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코끝을 간질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냄새가 맨몸으로 여자를 찾는다. 약간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을 사가라는 빵들의 구애행위 속에서 그는 지난날 자기 가게의 흔적을 되찾는다. 허벅지 옆으로 내려뜨린 오른손을 애인이 잡는다.

과거 이곳은 빵집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빵집이 있긴 있었지만 모퉁이의 조그만 문구점 같이 있을 뿐, 지금처럼 수 개의 테이블과 널찍한 주방과 매대를 가진 곳은 아니었다. 이 자리는 원래 여자가 운영하던 성인용품점이었다. 애인이 약간의 돈을 보태고 은행 융자를 껴 차린 가게였다. 사업을 제안한 건 여자고, 수락한 것도 여자며 결정을 하고 가게를 차리 것도 여자였다. 그의 애인은 무모한 사업 같다며, 차라리 레드오션이긴 하지만 카페나 간식 따위를 파는 가게를 차리길 권했다. 그러나 여자는 이미 그런 건 너무 많다며, 좀 색다른 게 필요하다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청부살인업자?

우리는 실소를 터뜨렸다. 여자와 애인은 사람을 죽이기는커녕 뒤에서 욕하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이었다. 그러다 애인이 지나가듯 성인용품점을 말했고, 여자는 바로 그거라며 즉각 사업 계획에 몰두했다. 이거 맛있겠다. 애인이 그의 시선을 매대 위로 돌려놓았다. 여자는 그가 가리킨 빵을 쳐다본다.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순수우유빵. 그는 그대로 손으로 집어 한 입 베어문다. 애인은 사지도 않은 건데 먹으면 어떡하느냐고 성화고, 가게 직원 역시 계산 하신 다음에 드실 수 있다고 말을 보태왔다.

이 빵에선 그 냄새가 안 나. 썩은 내....... 시취....... 썩어가는 그놈 냄새.

여자는 계속해서 그 빵을 집어먹는다. 성인용품점의 이름은 여자가 붙였다. 그의 애인은 얼른 카운터로 가 여자가 먹은 빵값을 계산한다. 여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번엔 마늘바게트를 짚더니 벌릴 수 있는 만큼 크게 벌린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꼭 애인의 커다란 페니스를 입에 문 것 같다. 종소리가 울린다. 문이 열린다.

여자는 돌아보고, 빵은 온데간데없고 그놈이 들어선다. 지퍼가 채 잠기지 않은 까만 스포츠 모자를 푹 눌러쓴 모양새다. 그리고 목이 늘어날 대로 늘어난 ‘FUCK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반팔 티셔츠 하나, 아래는 회색 스포츠 반바지를. 여자는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그놈은 커다란 백팩을 등에 멨는데 나이키인지 나이스인지 로고가 지워져 행색이 더 초라해보였다. 거기에 얼굴 전체를 가릴 듯한 넓적한 마스크까지. 나는 핸드폰 게임을 하며 간간이 그의 행동을 힐끗거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매대 사이사이를 천천히 누볐다. 족히 70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찾아온 적은 처음이었다. 노인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물건들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중얼거리고, 부서질 듯 세게 내려놓다가 어떤 것은 한없이 조심스럽게 다루기를 반복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백팩을 열더니 소리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갖은 모양의 딜도와 바이브레이터, 콘돔 등을 담기 시작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가방을 멘 채 카운터로 오는 여자였다.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이 말을 대체 왜 했는지, 여자는 깨찰빵을 힘주어 깨물어먹으며 생각한다. 애인이 머리를 한 데 묶으며 뭐하는 거야 지금, 그를 재촉하지만 여자는 움직일 생각이 없다. 노숙자는 여자의 물음에 카운터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선 한참을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상한 기분이, 아니 뭐라 표현하기 힘든 불쾌한 기분이 조금씩 마음속에 차올랐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노인은 처음으로 입을 뗐다.

계산? 무슨 계산? 산 게 없는데.

아까 물건들 가방에 담으셨잖아요.

아가씨, 그거 내 거 아냐. 우리 아들이 쓸 거야.

나는 멍한 기분으로, 뭐라 대답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어떻든 계산은 하고 가셔야......

외상으로 해줘. 지금 당장은 돈이 없어. 아가씨 돈 많을 거 아냐. 가격 보니까 치킨 두 마리 값은 되더구만, 막대기 하나에.

저희가 외상은 절대 금지라서요.

씨팔, 아들 생일에 선물 하나 하지 말라는 거야, 뭐야?

그가 카운터로 백팩을 집어 던졌다. 열린 지퍼 틈새로 갖가지 성인용품들이 빠져나왔다. 대부분 ‘게이’들을 위한 도구들이었다. 딱 너 만한 아들이 있는데, 언젠가 자긴 게이라나 트랜스젠더라나 하면서 집을 나갔어. 내가 죽일 듯이 팼거든.

노인이 불규칙한 기침을 토해냈다. 나는 괜스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후로 6년이 흘렀어. 서로 잊을 만큼 잊어서 다른 사람으로 오해할 일도 없을 만큼 긴 시간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들뿐이야. 걔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며. 더러운 새끼들........ 달리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뭐냐고, 그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아까 저 아가씨라 부르셨죠?

그럼 여자를 여자라 부르지.

여자 맞는데, 전 조금 다르거든요. 저 트랜스젠더예요. MTF. 아직 수술 안했고, 그래서 아직 이런 거(딜도를 가리키며) 달고 다녀요. 이젠 여자가 아닌 것 같죠? 괴물 같죠? 근데 어떡해요, 저 여잔데. 특정 신체부위 하나 때문에 성별, 성 정체성, 성 지향성-아실지 모르겠지만-다른 성으로 패싱되는 거 싫거든요. 할아버지 아드님이 게이든 뭐든 간에, 이런 거 달가워할까요, 전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노인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외상으로 해달라고. 자신이 이번 주 내로 꼭 갚겠다고. 나는 안 된다는 대답만 되풀이하며 물건들을 다 뺀 빈 가방을 노인에게로 건넨다. 노인은 갑자기 그럼 저거 대여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가리킨 건 섹스돌이었다.

저건 얼마야?

나는 보나마나 떼를 쓸 게 뻔히 보였지만 가격을 알려주었다. 원래 가격보다 더 높게.

노인은 뭐라고 궁시렁 거리다 우연찮게 시선이 남성 섹스돌에 멈춘 모양이었다. 그는 생소한 이름을 부르며 섹스돌을 향해 어기적거리며 다가갔다. 그러고선 울기 시작하며 뭐라고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치매인 게 틀림없다고, 나는 두려움 앞으로 나서는 동정심에 이성을 맡겨놓았다. 노인은 제 몸집보다 큰 섹스돌을 가져오더니 사겠다고 했다. 외상으로.

저희가 외상은 절대 안된다는 규칙이 있어서요.

이게 그냥 인형으로 보여?

노인이 눈물콧물을 짜내며 되물었다.

우리 석찬이야. 석찬이라고! 석찬이가 왜 여기 있어!

메론빵이 눈에 들어온다. 이거 진짜 맛있는데. 나는 애인의 쟁반에 메론빵을 두 개 올린다. 오빠 먹고 싶은 건 없어? 애인은 머뭇거리다 빵을 더 살 여유가 없다고 속삭이듯 말한다. 아. 나는 짧은 탄식을 뒤로 하고 빵들을 하나씩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다시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린다. 나는 돌아보고, 애인이다.

자초지종을 들은 애인은 계속 이러시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노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실, 여기가 이런 가게이기 전에 과일채소 가게였어. 그걸로 벌어먹어서 아들 그놈 대학까지 보냈다고. 그런데 흉측하게 이런 게 뭐냐고, 이런 게! 내 아들 내놔. 내놓으란 말이야. 못알아 들었어? 노인은 갑자기 작은 과도 같은 칼을 꺼내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경찰을 불렀고, 애인은 매대 사이로 몸을 피했다. 그러더니 제 풀에 지쳤는지 섹스돌 가까이로 가 칼로 찢고 쑤시고 뜯기 시작했다. 애인이 섞여 들었다.

어느 순간 비명도 없이 노인은 쓰러졌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칼을 든 애인을 나는 멍청히 바라보았다. 좆됐다, 는 인식에 앞서 얼른 누가 보지 않게 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노숙자니, 찾는 사람도 없을 테고 우리만 입조심, 행동 조심하면 그만일 일이었다. 칼을 씻고 노인을 당신이 훼손한 섹스돌과 함께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빵집 밖으로 나왔다. 메론빵을 뜯었다. 반을 잘라 애인에게 건넨다. 나는 한 입 먹으려다 구역질이 치민다. 나도 모르게 빵을 집어던졌다. 썩은 내가 풍겼다, 다시. 시취. 노인의 냄새였고 그 아들의 냄새였으며 동시에 나의 냄새였다. 애인이 한 발자국 옆으로, 두 발자국 비켜선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애인은 코를 막으며 너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는데? 말한다. 나는 내 몸의 냄새를 맡는다. 애인이 꼭 죽은 그 할배처럼, 이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몇 번이고 킁킁거리며 콧구멍을 벌름거리지만 아무, 아무,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는 노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공고] 2020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19.12.31 0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0
2592 단편 서울로, 아다지에토 류휘 2020.07.01 2
2591 단편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윤도흔 2020.06.30 0
2590 단편 2017년 김성호 2020.06.30 0
2589 단편 면담기록 xxxx 양윤영 2020.06.30 3
2588 단편 임여사를 지키는 神vengers 강엄고아 2020.06.30 1
2587 단편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코코아드림 2020.06.29 0
2586 단편 이너프 kangbomb 2020.06.23 2
2585 단편 천국에 혼자 있을 자신은 없어서 김성호 2020.06.23 0
2584 단편 가을장마 마음의풍경 2020.06.17 0
2583 단편 무슨 소리 여현 2020.06.14 0
2582 단편 도착지는 화성이었다 류휘 2020.06.12 0
2581 단편 우연 ilo 2020.06.10 0
2580 단편 나무이야기 여현 2020.06.09 0
2579 장편 꿈속의 숲 9. 준비 2 (외전. 추모) ilo 2020.06.08 0
2578 단편 여름 산책 ilo 2020.06.04 0
2577 단편 레인보우 브리지 (예고) 비에러 2020.05.27 0
2576 장편 포츈 팰리스: 더블린 기적의 밤 1화 세레나 2020.05.25 3
2575 장편 꿈속의 숲8. 준비 ilo 2020.05.21 0
2574 단편 마음의풍경 2020.05.16 0
단편 외상 김성호 2020.05.15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3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