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중편 용의 아이

2020.05.15 10:3505.15

용 경장은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이 엄마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당최 감을 잡을 수 없어 진땀만 빼고 있었다. 눈앞에서 아이를 납치당한 엄마에게 위로가 될 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차안에 들어가 계시도록 하려고 아이 엄마의 팔을 잡고 일으켜 보았지만 아이 엄마는 온몸으로 용 경장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절규. 아이가 돌아오는 것 말고는 세상 무엇으로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혹시 단서가 될 만한 게 있나 찾는다면서 산 쪽으로 들어간 김 순경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려왔다.

, 뱀이 있어요.”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로 내려온 서울 촌닭이 동물원도 아닌데 눈앞에서 뱀이 활보하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뛰어내려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한 바퀴 구르기까지 했다.

낼모레면 5월인데 뱀이 없겠니?”

용 경장은 딱하다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김 순경은 무릎과 팔꿈치를 번갈아 문지르며 나 죽는다고 호들갑을 떨고 엄살을 부렸다.

그렇게 넘어진다고 크게 다치는 것도 아닌데 엄살은…….”

저는 경장님처럼 용가리통뼈가 아니란 말이에요! 아이고 아파라, 무릎 나간 거 아니야?”

김 순경의 말마따나 용 경장의 190에 가까운 키와 잘 잡힌 근육질 몸매는 한눈에 보고 누구나 용가리통뼈라는 말을 떠올릴 체구였다.

그리고 용이 아이를 채갔다는데 하늘도 아니고 산속에 무슨 단서가 있겠냐?”

용 경장은 핀잔을 주면서도 너 사실은 오줌 마려워서 산에 들어간 거지?’라는 말은 옆에 있는 아이 엄마 때문에 꿀떡 삼켜 내렸다. 울다 지친 아이 엄마는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드는지 몸을 앞으로 구부정하게 숙이고 왼손으로 땅을 짚었다.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은 눈물, 콧물에 침 범벅이었다. 용 경장이 아까 손수건을 주었지만, 아이 엄마는 오른손에 손수건을 구겨 쥔 채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용 경장은 조금 전처럼 아이 엄마가 소리 지를까봐 손은 대지 못하고 말로만 차 안으로 들어가시라고 했다.

선생님! 바닥도 차고 바람도 차요. 일단 차 안으로 들어가세요.”

그러나 아이 엄마는 용 경장에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어어어하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하긴, 봄바람 맞으며 꽃구경 나왔다가 아이를 잃어버렸는데 제정신이면 그게 오히려 제정신이 아닌 거였다. 아이 엄마를 향해 허리를 수그리고 서있던 용 경장은 말 걸기를 포기하고 허리를 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 엄마가 몰고 온 승용차의 진행 방향(읍내로 나가는 방향이었다.)을 기준으로 왼쪽은 김 순경이 방뇨를 하러 들어갔던 산으로 막혀 있었다. 산을 등지고 길 오른쪽을 보면 논이 펼쳐져 있었다. 모내기를 앞둔 논은 물을 가득 품고 있었다. 논을 따라 초점을 멀리 멀리 맞추다 보면 사람이 손톱만한 크기로 보일 거리에서 논의 반대편 끝이 보였다. 그 너머에는 그리 크지 않은 공장들이 몇 개 늘어서 있었다.

김 순경은 길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며 논바닥을 살폈다. 길에서 어른 키 만큼 아래에 위치한 논은 납치 사건 같은 건 모른다는 표정으로 평화롭게 반짝였다.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빠졌으면 모를까, 하늘에서 움직이는 용이 지나간 걸 논이 무슨 수로 말해주랴. 그걸 알면서도 김 순경은 하염없이 우는 아이 엄마 옆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하다못해 달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게 어색하고 미안해서 그러고 있었다. 논바닥을 살피는 와중에도 연신 읍내 쪽을 흘깃흘깃 보았다. 읍내 쪽 길은 산 모양을 따라 왼쪽으로 휘어져 있어서 20여 미터쯤 후부턴 산에 가려 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김 순경이 그 쪽을 계속 쳐다보는 건, 저 산을 돌아 이 상황을 구원해줄 파출소장님의 순찰차가 마술처럼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이었다. 김 순경의 기다림을 잘 아는 용 경장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파출소장을 찾았다. 막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데 김 순경의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에서 눈길을 돌려 차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소장의 순찰차가 산을 돌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용송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순경에서 시작해 파출소장이 된 지금까지 쭉 이 시에서 살아온 진짜배기 용송시 터줏대감인 파출소장은 아침 일찍 전 씨네 개가 유 씨네 새끼 염소를 물어 죽였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점심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개 주인인 전 씨는 소장의 시댁 작은아버지였고, 염소 주인인 유 씨는 소장의 당숙이었다. 두 집안 모두 용송시에선 유서가 깊은 집안이었다. 아마도 소장은 시집과 친정집 어르신들이 얽힌 사건에 붙잡혀 있다가 이제 겨우 빠져나온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용이 애를 채가?”

소장은 차에서 내리며 용 경장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 이 분이 여기다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꺼내고 있는데, 저기 쪼그리고 앉아서 꽃을 보던 아이를 채갔답니다.”

용 경장은 아이 엄마 옆을 지키고 서서 대답했다. 소장은 용 경장의 대답을 들으며 아이 엄마 옆에 쭈그려 앉았다.

아이고, 어머니! 얼마나 놀라셨어요?”

소장이 아이 엄마의 오른손을 꼭 잡아주자 아이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소장의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어머니! 이럴수록 엄마가 정신을 차려야 되요. 이렇게 정신 놓고 있으면 애 찾는 게 더 힘들어져요. 우선 차안에 앉아서 마음을 좀 가다듬고 차근차근 얘기해요.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병나요. 건강해야 애도 찾지.”

소장은 아이 엄마의 어깨를 꼭 안고 일으켜 세워 승용차 뒷좌석으로 데리고 갔다. 용 경장이 아무리 달래도 요지부동이던 아이 엄마는 인심 좋은 옆집 언니 같은 인상과 말투를 가진 소장이 안아주자 순순히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저 엄마 말이 사실일까요? 용이라니요? 우리나라에서 용이 멸종된 지 100년이 다 되가는데…….”

김 순경이 용 경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우리나라의 용은 김 순경 말대로 일제강점기 때 호랑이와 함께 사라졌다. 머리에 난 뿔부터 꼬리털까지 피를 제외하고는 뭐 하나 약재가 아닌 것이 없는 용은 일본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학살되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을 잡기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한 일본군은 용 사냥 과정에서 폭격으로 희생된 민간인 마을에 대해 어떠한 배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인은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을 뺏는 해로운 짐승을 잡는 사업에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당연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희생을 감수하며 협조한 조선인들에게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고 신문에 떠들어댔다. 그러더니 정말로 쑥대밭이 된 마을에 일본군이 몰려와 연설문을 낭독하고 박수를 치고 갔다. 호랑이도, 표범도, 곰도 다 해수구제사업(害獸驅除事業)이라는 명목으로 그렇게 씨를 말렸다. 그런 용이 사라진 지 100년이 다 되가는 이 마당에 난데없이 나타나 어린 아이를 채갔다고 신고가 들어온 것이었다.

잊을만하면 가끔씩 표범 발자국이나 표범을 목격했다는 말이 들리잖아. 용도 그렇게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숨어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

용 경장은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김 순경은 감탄한 얼굴이 되었다.

와아! 진짜 용이 나타난 거면 보통 일이 아니네요. 우리나라 용이 살아있다는 게 알려지면 온 나라가 들썩일 텐데…….”

김 순경아! 용도 용이지만 지금은 아이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자. 용의 둥지가 있을 만한 곳을 수색할 궁리부터 해야지. 형사가 꿈이라는 애가 사건을 대하는 자세부터 틀렸잖아.”

용 경장의 지적에 김 순경은 핸드폰을 켜고 용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하는 내내 들뜬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용송경찰서에서 수사팀이 내려오자 용 경장과 김 순경 등 파출소 팀은 그들에게 사건을 인계하고 물러났다. 그날 각 처에서 온 기자들과 야생동물 관련 협회 사람들, 개인 적인 관심으로 온 사람들로 읍내가 북적였다. 저녁 뉴스 첫 기사로 이 사건이 나가자 다음날엔 새벽부터 전국에서 몰려온 개인방송인들, 전문 수렵인, 산악인, 관광객들까지 몰려와 읍내를 넘어 시내까지 바글거렸다. 용송시의 숙박업소와 식당들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그 다음날엔 각 당에서 한자리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내려와 아이를 잃은 부모를 만나 위로의 말을 전하고,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하고 돌아갔다. 또 그 다음날엔 국무총리가 내려와 아이 부모에게 아이를 무사히 찾아 부모의 품에 안겨주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전하고, 용송경찰서장에게 아이가 납치된 게 언젠데 아직 아무런 다서도 못 찾았냐며 호통을 쳤다. 경찰서장은 국회의원들과 국무총리를 상대로 이틀 연속 브리핑을 준비하고 꾸중을 듣느라 신경이 예민할 대로 예민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아무리 근처 야산을 뒤지고 약초꾼들에게 탐문해 봐도 용의 행방에 관한 단서는커녕 아이의 생사조차도 감을 잡지 못해 높으신 양반들에게 보고할 거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땅에 무슨 단서를 남겼겠는가 말이다.

방송사들마다 수의학이나 생물학 전문가를 모시고 인터뷰 경쟁을 했다. 우리나라는 용이 멸종된 지 100년이 다 되가는 나라다. 그러다보니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용을 글로 배웠다. 외국에 가서 용 연구에 잠시 참여했다는 전문가가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교환교수로 중국에 가서 1년간 용을 연구했다는 이 교수가 가장 신뢰도가 높았다. 이 교수는 용이 대체로 인간을 잡아먹지 않지만 중국의 경우를 보면 가끔 인간을 잡아먹는 용이 출현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용은 절대 인간을 잡아먹지 않아.”

핸드폰으로 이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보던 용 경장이 소리쳤다.

깜짝이야!”

용 경장 옆에 앉아 보고서를 쓰고 있던 김 순경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용 경장을 쳐다봤다.

용이 사람을 안 먹어요?”

용 경장은 김 순경의 물음을 못 들은 건지, 안 들은 건지, 말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요? 같이 가요.”

그러나 용 경장은 김 순경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순찰차를 몰고 가버렸다. 김 순경이 황망한 얼굴로 작아지는 순찰차를 바라보고 서 있는 사이 출동 나갔던 소장의 순찰차가 돌아왔다.

용 경장 혼자 어디 가는 거야? 신고 들어왔어?”

소장이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

용 전문가라는 사람이 인터뷰한 거 보더니 막 화내면서 갔어요.”

? 외지인들 땜에 여기저기 사건 터져서 바빠 죽겠는데 핸드폰이나 쳐다보고 있었어? 오전에는 내내 쥐약 먹은 닭처럼 처져있더니만……. 너는 거기 서서 뭐해? 빨리 따라가지 않고……. 짝꿍 옆에 항상 붙어 있으랬지!”

여자유도 미들급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지냈던 소장의 당당한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호통은 김 순경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김 순경은 소장에게 다소곳이 두 손을 내밀었다.

?”

…….”

오토바이!”

소장은 냅다 소리 질렀다. 김 순경은 얼른 안에서 키를 꺼내 오토바이를 타고 용 경장이 사라진 방향으로 사라졌다.

 

김 순경은 용에게 납치당한 아이의 집 앞에 서 있는 순찰차를 발견하고 오토바이를 세웠다. 몇 년 전 조성된 전원주택단지에 자리한 이 집은 대문이 열려 있었다. 마당을 지나 현관문 앞에 서서 계십니까?’하고 소리쳤다. 대답이 없었다. 분명히 용 경장님이 안에 있을 텐데 하며 문을 열자 문은 쉽게 열렸다. 당연히 잠겨 있으리라 생각한 김 순경은 제풀에 놀라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잠깐 문이 열린 사이 용 경장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였다. 문 안으로 살짝 고개를 들이밀자 거실에 앉은 세 사람이 보였다. 용 경장이 침까지 튀어가며 아이의 부모에게 단단히 이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전문가라고 인터뷰하는 사람들 말 믿지 마세요. 그 사람들 용에 대해서 쥐뿔도 몰라요. 아까 이 교수라는 사람 인터뷰한 것도 보니까 용이 사람을 잡아먹네 어쩌네 하면서 헛소리 하던데, 용은 절대로 사람 안 잡아먹어요. 그런 헛소리 듣고 충격 받지 마시고요, 용에 대해선 제 말만 믿으세요. 아드님은 절대로 안 죽었어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중국에선 용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이 있다면서요?”

아이 아빠가 물었다.

그건 중국 공산당 정권이 들어설 때, 용이 황실을 상징하는 동물이니까 막 잡아 죽이면서 사람들이 용을 싫어하게 만들려고 퍼뜨린 가짜뉴스고요, 실제로 용은 소나 호랑이는 잡아먹어도 사람은 안 잡아먹어요.”

아이 엄마는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 경장의 말에 일말의 희망을 가져 보려는 몸짓이었다.

용 순경님은 어떻게 그렇게 용에 대해 잘 아십니까?”

아이 아빠는 미심쩍어했다.

저희 아버지가 용에 미친 사람이었어요. 용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계셨어요. 저는 그 옆에서 많이 얻어 들으면서 자랐고요.”

아이 아빠는 그래도 못미더운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용을 직접 본 적도 있으셨나요?”

그럼요. 용 많이 보셨지요.”

순경님도 본적 있으세요?”

.”

어디서요?”

용 경장은 잠깐 멈칫했지만 아이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빨리 대답했다.

중국…… 에서요.”

용 경장이 여기서 말 한마디 잘 못하면 아이 부모는 이 교수의 말만 믿고 절망에 빠질 것이었다. 이 가련한 부모가 절대로 이 교수의 말을 믿지 않길 바랐다. 간절히…….

저는 용 형사님 말 믿어요.”

아이 엄마가 말했다.

우리 수안이 살아 있는 거죠?”

간절하게 묻는 아이 엄마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럼요. 살아 있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용 경장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 아빠는 더 이상 의심에 찬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의심을 숨기고 아내의 희망을 꺾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었다. 용 경장은 아이 부모에게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받고 나서야 파출소로 향했다.

참 좋은 경찰이긴 한데, 믿을만한 경찰인지는 모르겠어. 쓸데없는 희망만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용 경장이 간 후 아이 아빠가 중얼거렸다.

난 저 경찰 믿을 거야. 우리 수안이 살아 있을 거야.”

아이 엄마가 다짐하듯 말했다.


 다음날 500명가량의 군인들이 마을에 들어왔다. 그동안 헬기와 드론을 동원해 주변 산을 다 뒤졌지만 용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제 산은 푸르름을 더해가고 잎들은 무성해져 더 이상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수색은 무의미해졌다. 군인들은 며칠 동안 열을 지어 산을 이 잡듯 뒤졌으나 아무런 소득 없이 철수했다.


 “이제 용이랑 그 애기 생각은 접어. 외지인들 때문에 신고도 많이 들어오는데 우리 일에 집중해.”

소장이 좀처럼 아이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용 경장에게 말했다.

생각을 접을 수가 없잖아요. 아이를 어서 찾아야지, 이렇게 오래 용한테 잡혀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용한테 잡혀간 것보다 더 큰 무슨 일이 뭐가 있어? 애가 용한테 잡아먹혔으면 그것도 제 팔자인 거지.”

용은 절대로 사람 안 잡아먹는다니까요.”

용 경장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아이, 깜짝이야!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용이 사람을 먹는지 안 먹는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소장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요.”

용 경장 아버지가 용 박사라도 돼? 그러면 그 아버지 모셔 와서 애 좀 찾아달라고 하든가.”

에잇!”

용 경장은 열이 나는지 소리 한번 지르고 일어나서는 정수기에서 텀블러 가득 냉수를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다 마신 용 경장은 턱에 흘러내리는 물을 소매로 닦으며 소장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두고 봐요. 내가 살아있는 애 찾아올 테니까. 용이 사람 안 잡아먹는 거 증명할 테니까. 그 때 나한테 소리치신 거 후회하지나 마세요.”

니가 애를 무사히 찾아오면 널 업고 동네 한 바퀴 돈다, 내가. 그리고 이제부터 애 부모한테 애가 살아있다는 둥 헛소리 하면 아스팔트 바닥에다 업어치기 할 줄 알아.”

소장이 파출소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경고하자 용 경장은 , 진짜!’하고 고함을 빽 지르고 나가버렸다. 그 뒤를 김 순경이 허겁지겁 쫓아갔다.

어디 가?”

소장이 소리쳐 묻자 김 순경은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희, 지금, 순찰 시간…….”

소장은 귀찮다는 듯이 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용 경장은 가장 어두운 곳, 나무 그늘에 서서 저수지를 둘러보았다. 멀리 낚시꾼들이 방갈로에 켜 놓은 불빛이 보였다. 낚시꾼들은 오직 자신의 찌에만 집중하고 있을 것이었다. 혹은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이나……. 졸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 아무튼 낚시터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 낚싯대에서 눈길을 돌려 이쪽을 본다 해도 검은 다이빙슈트를 입고 달빛을 가린 검은 그림자에 숨어 있는 용 경장을 알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용 경장은 시, , 후각을 활짝 열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몇 미터 안의 모든 생명의 흐름을 느꼈다. 풀숲을 지나다 조용히 숨은 벌레, 그 벌레를 잽싸게 잡아 물고 가는 쥐, 그 쥐를 놓치고 다른 먹잇감을 찾아 스르르 미끄러져 가는 뱀까지……. 살아있는 것들 중에 인간은 없음을 감지한 세 개의 감각은 용 경장에게 이제 움직여도 좋다고 말했다. 용 경장은 한 발, 한 발 천천히 내디뎠다. 까슬한 풀과 거친 돌이 맨발에 닿았지만 상처 같은 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조용히, 천천히, 그러나 거침없이 저수지를 향해 나아가던 용 경장은 발목이 잠기고, 무릎이 잠기고, 허리가 잠기고, 가슴까지 잠기자 비로소 허리를 숙이고 저수지 바닥으로 쏜 화살처럼 내리꽂혔다.

30분 정도 후, 잔잔한 저수지 수면에 작은 파장이 일며 용 경장의 머리가 서서히 올라왔다. 물이 살짝 부풀어 오른 것처럼 눈까지만 내놓은 머리는 수면과 이질감이 전혀 없었다. 주변을 살피고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자 저수지로 들어갈 때처럼 걸어서 나왔다. 저수지에 누가 들어갔다 나왔다는 사실을 저수지도 못 알아챌 만큼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내일 뵙겠습니다.”

용 경장!”

칼퇴근을 꿈꾸며 힘차게 나가던 용 경장은 소장이 부르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소장을 돌아보았다. 소장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이리 오라고 했다. 용 경장은 의아한 얼굴로 소장 앞에 섰다.

너 요즘 클럽 다니냐? 외지에서 온 여자들이 예쁘디?”

이 시골 도시에 제대로 된 클럽이 어딨다고 그러세요? 관광나이트지.”

그래 관광나이트. 너 요즘 밤마다 거기 죽치고 사냐? 왜 만날 초췌한 얼굴로 출근해서 오전 내내 졸고 앉아있어?”

졸긴 했어도 순찰 잘 돌았고, 출동도 잘 했잖아요.”

용 경장은 졸았지만 할 일은 다 했으니 봐달라는 메시지를 담아 얼굴 가득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소장은 계속 엄한 표정으로 용 경장이 밤마다 뭘 하는지 다그쳐 물었다.

그냥 소소하게 개인적인 취미생활? 아주 개인적인 일이라 말씀드리긴 뭣하고, 저는 이만 퇴청합니다.”

용 경장은 대충 얼버무리고 냅다 도망쳤다.

김 순경, 이리 와 봐.”

용 경장이 나가자 소장은 김 순경을 불렀다.

 


용 경장은 가슴까지 물이 차자 허리를 굽히고 바닥을 디디고 있는 발을 힘차게 차냈다. 용 경장의 몸이 저수지 깊은 곳을 향해 뻗어 내려갔다. 속도가 줄어들면 돌고래가 꼬리지느러미로 물을 차듯 다소곳이 모은 두 다리를 앞뒤로 움직여 몸에 파동을 만드는 식으로 속도를 높였다. 캄캄한 새벽의 저수지 속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디에 부딪히는 일도 없이 곧바로 가장 깊은 지점을 찾아 들어갔다. 10여 미터를 내려간 용 경장의 손에 바닥이 만져졌다. 용 경장은 빛 한 줌 없는 저수지 바닥을 살펴보기도 하고, 손으로 더듬어보기도 하면서 샅샅이 뒤졌다.

10분인지 20분인지, 한참을 뒤지다가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위 사이에서 커다란 구멍을 발견했다. 용 경장은 주저하지 않고 구멍 안으로 쑥 들어갔다. 구멍은 용 경장이 두 팔을 벌려도 양 끝이 닿지 않을 만큼 크고 깊은 굴로 연결되었다. 앞으로 향하던 굴은 어느 순간 꺾어져 위를 향해 올라갔다. 용 경장은 굴을 따라 올라가다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용 경장의 눈에 넓은 공간이 들어왔다. 파출소와 파출소 앞 주차장에 그 옆에 있는 200여 평 되는 밭까지 모두 합친 넓이는 되어 보였다. 천장도 3층 높이 정도로 보였다. 용 경장이 들어왔던 저수지 옆의 산 속을 파서 만든 이 넓은 공간은 용의 둥지였다.

용 경장은 물 밖으로 나와 땅 위에 올랐다. 용 경장이 나온 물은 저수지로 연결된 굴 폭과 같은 크기의 웅덩이처럼 보였다. 용 경장은 곧바로 한쪽에 똬리를 틀고 그를 노려보고 있는 용에게로 걸어갔다.

오랜만이네요.”

용 경장이 인사를 건넸다.

그렇구나.”

용이 나직이 대답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속 썩이는 자식 때문에 별로…….”

용의 냉담한 반응을 이미 예상은 했지만 막상 접하고 보니 용 경장은 다음에 할 말을 잇지 못했다.

나를 어떻게 찾았냐?”

용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한 달간 이 근방 저수지를 다 뒤졌어요. 여기가 서른 번째 쯤 될 거예요.”

!”

용은 콧방귀를 뀌었다.

죄송해요.”

뭐가?”

자주 못 찾아 봬서요.”

그걸 아는 놈이…….”

용은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이가 자는군요?”

그런 거 없다.”

아이 부모가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어요. 아이는 부모에게 돌려줘야 해요.”

용은 용 경장을 노려보았다.

그 말 하러 왔냐?”

멸종된 줄 알았던 용이 100년 만에 나타나서 어린 아이를 채간 바람에 세상이 시끄러워요.”

한 달 전 일이다. 이제는 조용 할 거야.”

전혀 아니에요. 처음에는 아이를 찾으려고 온 산을 뒤졌지만, 이젠 멸종된 우리나라 용을 찾겠다고 군대가 첨단장비들까지 동원해서 산을 들쑤시고 있어요.”

용 경장을 향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던 용은 똬리를 틀고 있는 자신의 몸 위에 머리를 얹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인간들 참! 이미 없어진 용을 찾아서 뭐하려고……. 나는 여기서 절대 나가지 않을 거야. 그러면 결국 아무도 날 못 찾겠지. 너만 조용히 하면 돼. 이제 가라, 반가웠다.”

아버지는 여기서 안 나간다고 쳐요. 그러면 아이는 어떡하실 건데요? 인간은 이런 환경에서 살 수 없어요. 그리고 아버지도 이 안에 오래 계시면 건강이 나빠진다고요.”

용 경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네가 언제부터 날 걱정했다고 그래? 자식새끼들이냐고…….”

용의 언성도 덩달아 높아지자 똬리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용은 자세를 고쳐 똬리 안에 있던 아기를 밖으로 꺼내 두 앞발로 받쳐 들었다. 아이는 용의 두 앞발 안에 쏙 들어가 앉았다. 용의 앞발은 용 경장의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고, 아이는 용의 발가락에 가려져 용 경장은 아이의 뒤통수만 겨우 볼 수 있었다. 용은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앞다리를 흔들어 어르고 달랬다. 아이는 금세 조용해졌다.

너 때문에 애 깼잖아. 방해하지 말고 어서 가라.”

그런 거 없다면서요?”

용은 못 들은 척 아이만 바라보았다.

오구! 내 새끼 저 헝아 땜에 깨쪄요?”

내 새…….”

용 경장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우리 애기 배고파쪄요?”

걔가 왜 아버지 새끼예요? 걔네 부모 새끼지.”

용 경장은 소리를 빽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아이가 다시 울음을 터뜨리자 용은 호들갑스럽게 앞다리를 흔들어 다시 어르기 시작했다.

우리 애기 뚝하고 맘마 먹자, 맘마, 맘마.”

아이는 맘마라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울음을 그쳤다. 용은 천장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배에 힘을 주었다. 배가 꿀렁꿀렁 파도치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들었던 머리를 아기 쪽으로 확 숙였다. 그러자 입안에서 작은 덩어리가 튀어나와 아이가 앉아있는 용의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아이가 그 덩어리를 움켜쥐자 부드럽고 질척이던 덩어리가 손가락 사이로 비어져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손에 잡힌 것을 입으로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이 짜장면을 처음 먹어본 아이처럼 금세 지저분해졌다. 아이의 뒷모습과 소리만으로도 상황이 그려진 용 경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그렇게 먹이세요? 지저분하게.”

너도 이렇게 키웠어.”

용은 용 경장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보다는 네 엄마가 잘 했지. 엄마는 네 영양까지 생각해서 고기며, 과일이며, 채소를 골고루 먹었다. 그런데 나는 이 안에 있으니 저수지 물고기 밖에 먹을 게 없구나. ! 그렇지.”

용은 뭔가 떠오른 듯 용 경장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너 다음에 또 올 거지? 다음에 올 땐 과일을 좀 가져와라.”

아흐으, 정말!”

용 경장은 짜증이 확 났다.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줘야 한다니까요. 아이는 친부모가 제대로 키우죠.”

용 경장이 소리치자 용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 내가 키워서 네가 제대로 못 컸구나. 미안하다. 이런 아비 다음에 또 찾아올 필요 없다. 앞으로 영원히 올 필요 없다. 어차피 다음에 와도 날 못 만날 거다. 내가 입구를 막아버릴 거니까.”

용은 아이를 받쳐 들고 똬리를 튼 채 벽을 향해 돌았다. 용 경장을 향한 용의 뒤통수는 마음이 단단히 상했다고 외치고 있었다. 용 경장은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든 용의 마음을 풀어줘야 했다. 아이를 위해서.

아니, 그게 아니라……. 아버지 덕분에 저는 잘 컸어요.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저를 이렇게 잘 키워 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 애는 부모가 애타게 찾고 있잖아요. 어느 아이든 친부모가 가장 잘 키울 수 있는 거예요. 저야 갓난아기 때 버려져서 모르지만 저 애는 얼마나 엄마, 아빠가 보고 싶겠어요?”

지금껏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운 적 없다.”

그건 아버지 생각일 뿐이죠. 애가 울 때마다 어르고, 먹이고, 그래도 울면 그냥 재워버렸을 거 아니에요?”

용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 애기 다 머거쩌요? 얼굴이 지지 됐네. 세수 하자.”

용은 아이 만큼 커다란 혓바닥으로 정성스럽게 핥아 주었다. 용 경장은 그런 용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말을 해 줘야 마음이 풀어질까 고민했다.

오구구, 오구구! 우리 애기 놀구 시포?”

용의 몸이 부스럭거리며 똬리를 풀었다. 지름이 어른 팔로 두 아름 정도 되는 원통형의 기다란 몸뚱이가 구불거리며 바닥을 쓸었다. 동그랗게 말았던 몸을 풀고 네 발로 서자 용의 배 아래로 벌거벗은 어린 아이가 뛰어 나왔다. 아이는 용 경장 앞에 우뚝 서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놀라 용의 꼬리 쪽으로 달려갔다. 용의 꼬리 끝에 난 풍성한 털에 파묻혀 용 경장을 쳐다봤다.

낯선 사람을 보고 놀랐구나. 그래도 겁을 먹진 않은 것 같군.”

용은 자신의 꼬리털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는 아이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역시 훌륭한 용이 될 아이야.”

용이라니욧!”

용 경장이 소리 질렀다.

쟤는 인간이라고요. 인간 세상에서 살면서 학교도 다니고, 많은 걸 경험하고, 여러 가지 꿈을 꾸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돼요. 용의 삶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요.”

학교라…….”

흥분해서 떠드는 용 경장에 반해 용은 먼 산 불 구경 하듯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널 학교에 보내는 게 아니었어.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더 이상 그 애들과 못 놀게 했어야 했어. 그랬으면 지금쯤 넌 네 경찰복만큼 짙푸른 비늘을 가진 용이 되어 있을 텐데, 노을이처럼…….”

학교랑은 상관없는 거예요. 저는 원래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걸 좋아해서 학교에 가고 싶었던 거고요, 노을이 형은 원래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형의 꿈은 오로지 용이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거였고요, 저는 아버지가 주신 이 좋은 신체조건을 이용해서 사람들 도와주는 게 꿈이었어요. 저 애도 제가 원하는 꿈을 꾸게 해 줘야 돼요. 굴속에 가둬서 용이 되는 것만이 숙명이라고 착각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요.”

용 경장이 침을 튀어가며 떠들고 있는 사이, 아이는 어느새 용 경장 옆에 와서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용 경장도 말을 끊고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가람이가 너한테 호기심이 생겼나보다.”

용은 아이에게 가람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수안이에요. 얘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수안이에요.”

이제는 가람이다. 내가 얘 아빠고. 네 엄마가 깨어나면 얘 엄마가 될 거야.”

용 경장은 뒷목을 잡았다.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게 이보다 덜 답답할 것 같았다.

엄마는 언제부터 주무신 거예요?”

“1년이 채 안 된 것 같지, 아마?”

용의 수면기가 2년에서 3년 정도 되니 엄마가 깨려면 넉넉잡고 2년쯤 남은 것 같았다.

그 때까지 아버지 혼자 얘를 키우신다고요? 이 어린 애를요? 무리예요.”

용 경장의 말에 용은 오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걸로 날 겁줄 생각 접어라.”

용의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진 것이 아까 잠시 토라졌던 건 이미 잊은 것 같았다. 용 경장은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열거해서 아이를 포기하게 만들기엔 아버지는 너무 육아의 달인 아니, 달룡(達龍)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용 경장은 이 용이 키운 네 번째 아이였다. 용 경장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첫째는 용 경장을 키운 엄마용이 낳은 알에서 부화한 진짜 용이었다. 첫째가 독립하기 서너 해 전 두 번째 용 새벽이가 부화했다. 1년쯤 뒤, 용 경장의 아버지가 부모 잃은 인간 아이를 데려왔다. 용 부부는 이 아이에게 노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용혈(龍血)을 꾸준히 먹이면서 새벽이와 함께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노을이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 아버지는 보육원 앞에 버려진 갓난 용 경장을 데려왔다. 용 부부는 이번에도 아기에게 마루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용혈을 먹이며 키웠다. 용 경장이 기억하는 새벽이 형과 노을이 형은 사이가 좋았다. 사고도 치고 거칠게 놀아서 아버지에게 자주 혼이 났지만, 둘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인간이었던 노을이 형이 날아다니는 새벽이 형을 시샘해 짓궂게 장난치는 건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새벽이 형이 워낙 무던한 성격이라 화도 잘 내지 않았다. 어떤 땐, 새벽이 형이 자신보다 훨씬 약한 존재인 노을이 형의 장난 따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용 경장이 10살이 되던 해에 노을이 형이 변태(變態)를 했다. 아기였을 때부터 용혈을 먹은 게 효과를 발휘한 것이었다.

용의 피는 독이라고 알려져 있다. 용의 뿔부터 꼬리털까지 약재 아닌 것이 없었지만 피만은 독이었다. 그렇다고 그 피가 맹독은 아니라서 실수로라도 먹게 되면 토사광란이 일어나 일주일은 변기를 끌어안고 살아야할 지경이 될 뿐, 몸에서 독기가 다 빠져나가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용의 피는 꼴 보기 싫은 직장 상사 커피에 몰래 한 방울 탈 게 아니라면 만고에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알지 못했던 용혈에 대한 진실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노을이의 변태였다. 인간이 살아있는 용의 피를 어려서부터 꾸준히 먹으면 성인이 된 후 용이 된다. 성장기 동안은 오감과 체력이 초인적으로 증강하고, 1년간의 변태 과정을 거치면 외모도 완전한 용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용의 자손이라는 전설이 있다. 인간들 사이에선 그저 옛날이야기로 치부되기 때문에 인간이 죽은 용을 발견하면 사체를 해체해 약재로 사용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직접 사냥하기도 했다. 그러나 용은 그 전설이 진실이라는 걸 알기에 절대 인간을 잡아먹지 않는다. 만약, 인간이 살아있는 용의 피를 접할 기회가 있거나 그 효능을 알았다면 용을 사로잡으려고 혈안이 됐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살아있는 용의 피를 먹고 자란 용 경장은 저수지에 들어오기 전에 시, , 후각으로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움직임을 읽었고, 별다른 장비 없이 물속에서 20분 이상을 잠수했고, 빛이라고는 반딧불이조차도 없는 용의 둥지에서 불편함 없이 용과 아이를 보고 있었다.

용혈 덕분에 크게 다치지도 병에 걸리지도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용 경장을 보고 용 부부는 노을이처럼 썩 괜찮은 용이 될 거라 기대했지만, 용 경장은 인간의 삶을 선택했다. 변태를 거부하고 경찰 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 용 부모와 갈등이 생겼다. 눈만 뜨면 용이 되라는 용 부모의 성화에 급기야 용 경장은 가출하기에 이르렀다. 10년이 지난 지금 용 경장은 가출 후 처음 보는 아버지를 유괴 피의자로 만나고 있었다.

애는 왜 저렇게 벗겨 놓으셨어요? 엄마가 계셨으면 깨끗이 빨아서 입혔을 텐데. 거봐요. 아버지 혼자 애 키우는 건 무리라니까요.”

옷이 작아졌다.”

용 경장은 할 말을 잃었다. 아이 옷이 작아서 입힐 수가 없었던 거였다. 용혈을 먹은 아이는 한 달 동안 무럭무럭 자라버린 것이었다. 어린 아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용 경장은 지금의 수안이 제 또래보다 크다는 사실을 몰랐다. 용이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놓은 수안의 옷을 건넸다.

갈 때 가져가서 버려라. 어린애가 사는 곳인데 쓰레기는 제때 버려야지.”

지금 이 환경에서 청결을 논하시는 거예요?”

너 키울 때보다는 깨끗한 것 같은데……. 너 어렸을 땐, 새벽이랑 노을이가 하도 이상한 걸 많이 주워 와서 둥지가 많이 지저분했지.”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했다. 아이를 여기서 내보내야할 어떤 핑계도 소용없음을 깨달은 용 경장은 오늘은 이만 철수하기로 했다. 아이를 데려가는 일은 장기전이 될 것 같았다. 용 경장은 제 주위를 돌며 신기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에게 두 팔을 뻗으며 허리를 숙였다. 순간, 용의 꼬리가 용 경장을 쳐 올렸다. 용 경장은 5미터쯤 날아가 나동그라졌다. 육중한 꼬리로 맞았을 때 숨이 턱 막힌 용 경장은 바닥에 구르면서 겨우 숨이 돌아왔다. 용은 똬리를 틀고 아이를 제 몸 안에 가두었다.

뭐하는 짓이냐? 가람이를 그런 식으로 납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냐?”

용 경장은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몇 초 동안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울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볼멘소리를 했다.

아버지야말로 무슨 짓이에요? 아들을 죽일 참이에요?”

난 널 그렇게 약하게 키우지 않았다.”

용의 말대로 그 정도 충격으로 용 경장이 입을 수 있는 부상은 찰과상이 전부였다.

제가 애를 데리고 뭘 할 수 있겠어요? 아직 폐도 약한 애를 데리고 여길 잠수해서 나갈까요? 애 잡을 일 있어요? 그냥 한번 안아보려는 거였어요.”

용은 겸연쩍게 에헴!’하며 헛기침을 했다. 아이를 살려서 친부모에게 데려가는 걸 최우선으로 여기는 아들에게 자신의 반응이 과했다는 걸 인정하는 에헴!’이었다. 그러나 속으로만 인정했다.

납치할 것처럼 보였다.”

용은 시치미를 뚝 떼고 머리를 돌돌 말린 제 몸에 얹고 눈을 감았다. 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영 미안했다.

납치는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한 거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한 달 보듬은 아이 때문에 20년을 키운 아들을 어떻게 그렇게 쳐낼 수가 있어요? 너무하시네.”

용 경장은 !’하고 일어나 저수지로 절뚝절뚝 걸어갔다.

저 가요.”

용 경장이 물속으로 퐁당 들어가자 비로소 용은 고개를 돌려 용 경장이 남긴 파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용 경장이 집으로 들어가니 벌써 아침이었다. 저수지에 젖은 몸을 씻고 출근하자 용 경장의 손이며 얼굴에 난 긁힌 자국을 보고 파출소 사람들이 놀라 물었다.

별거 아니에요. 자전거 타다가 굴렀어요.”

자전거는 안 탔지만 구른 건 사실이었다.

자전거 타다 굴렀는데, 그 정도면 다행이네. 어디 부러지거나 접질린 데도 없는 것 같고…….”

과묵한 이 경사가 점잖게 말했다.

에이! 용 경장님은 용가리통뼈잖아요. 그렇게 쉽게 부러질 분이 아니죠. 버스 정도는 밀고 가야…….”

촐싹맞게 떠들던 김 순경은 용 경장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자 말을 맺지 못했다.

소장님은?”

용 경장이 소장의 빈자리를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전 씨네 개가 또 사고 쳤대요. 마을회관 옆에 파란 지붕 집 할머니 댁 있죠? 그 댁 닭장에 들어가서 개판을 쳤나 봐요. 물려 죽은 닭에, 놀라 죽은 닭에 병아리도 여러 마리 죽고……. 그래서 소장님이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 받고 집에서 곧장 그리로 가셨어요.”

파란 지붕 집이라면 전 씨네에서 2키로나 떨어진 집이었다.

그 집은 개 좀 잘 묶어놓지, 거참!”

용 경장은 모닝커피를 타며 무심하게 말했다.

 

 

퇴근 무렵 용 경장이 소장에게 물었다.

요만한 애기는 옷 사이즈가 몇이에요?”

용 경장의 손이 아기 키를 가늠한 곳은 수안의 머리 높이였다.

작은애가 중3이야. 그런 애기들 사이즈를 내가 아직까지 기억할 거 같아? 누군데?”

소장이 물었다.

친구 아들이 생일이라서요.”

그냥 옷 가게 가서 물어봐. 알아서 잘 골라 줄 거야.”

용 경장이 퇴근하자 소장은 김 순경을 불렀다.

쟤 어제 정말 자전거 타디?”

제가 어제 밤 11시까지 지켜봤는데요, 계속 집안에 있었어요. 11시에 불 꺼진 다음에도 혹시나 하고 30분 정도 더 있었는데 나오지 않았어요.”

근데 얼굴이 왜 저모양이야? 오전엔 왜 또 그렇게 졸고?”

소장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빠졌다.

오늘도 감시할까요?”

형사가 되어 영화처럼 강력범죄를 수사하는 게 꿈인 김 순경은 기대에 차서 물었다. 김 순경은 용 경장의 뒤를 밟는 게 잠복근무하는 형사라도 된 것처럼 신이 났다.

쟤가 무슨 중죄인이라고 감시까지……. 그냥 밤에 잠 안 자고 뭐하는지만 알아보라는 거였지. 중요한 거 아니니까 관 둬. 너도 피곤하겠다.”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꼭 알아오겠습니다.”

김 순경은 사명감에 차서 하지 말라는 짓을 굳이 해내겠다고 다짐하고 나갔다. 소장은 이삼 일 저러다 제풀에 지쳐 포기하려니 하고 내버려 두었다.

 


수안에게 줄 새 옷을 여러 개의 지퍼팩에 나눠 담고, 그 지퍼팩들을 커다란 밀폐용기에 모아 담았다. 용 경장은 용기 뚜껑을 덮어서 현관 앞에 놔두고 집안의 등을 전부 껐다.

김 순경 쟤는 언제까지 있으려나?’

김 순경의 냄새가 활짝 열려 있는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어제부터 김 순경의 체취가 가깝게 풍겨 왔다. 용 경장은 김 순경이 제 뒤를 밟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김 순경은 들킨 줄도 모르고 신나게 형사 놀이 중이었다. 김 순경의 형사 놀이는 어제가 처음이었지만, 혹시 오늘도 그 놀이를 할까 싶어 퇴근 전에 소장에게 약을 쳐 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늘 용 경장이 시내에 나가 어린 아이 옷을 산 걸 보고해도 소장은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소장님도 참! 그냥 밤마다 나이트 가서 노나 보다 하고 말지 왜 애 피곤하게 미행을 시켜?’

용 경장은 김 순경의 미행이 그다지 기분 나쁘진 않았다. 다만, 김 순경이 철수할 때까지 기다렸다 나가야 하는 게 귀찮을 뿐이었다.

 


새 옷을 입은 수안을 보고 용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예쁘구나.”

밝은 데서 보면 더 예쁠 거예요.”

용은 수안을 용 경장에게서 슬쩍 떼어 놓았다.

안 데려가요, 안 데려가! 거참, 왜 그렇게 아들을 못 믿으셔?”

너 같으면 에미, 애비 버리고 도망 간 아들을 믿겠냐?”

제가 엄마, 아부지 싫어서 집 나갔어요? 하도 용 되라고 성화 하니까 듣기 싫어서 나간 거지.”

용은 커다란 얼굴을 용 경장 코앞에 들이밀고 나직이 말했다.

용 되거라.”

아버지, 자꾸 그 소리 하시면 저 안 와요.”

용은 뒤로 물러나 똬리를 틀었다. 용 되라는 말을 또 해도 어차피 아들은 아이 때문에 다시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용도 아들을 용으로 만드는 일에 장기전을 예상하고 있었다. 용 경장은 옷이 들어있는 밀폐용기를 한쪽에 놓고 그 옆에 몇 가지 과일이 든 커다란 밀폐용기를 놓았다. 어제 안 가져간 수안의 헌 옷을 한 손에 돌돌 말아 쥔 용 경장이 물었다.

뭐 필요한 거나 드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물고기만 아니면 다 좋겠다. 한 달간 물고기만 먹었더니 물리는구나.”

내일 올게요.”

용 경장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용은 아들이 만든 파장을 물끄러미 보았다.

 


다음 날, 용 경장은 쇠고기를 사 갔다. 한우는 엄두가 안 나 고기는 질보다 양이지!’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수입소를 잔뜩 샀다. 쇠고기를 둥지에 내려놓고 수안이 벗어놓은 빨랫감을 빈 밀폐용기에 넣어서 가져왔다. 용이 손처럼 쓰는 앞발은 투박하고 거대했으나 단단하고 뾰족한 발톱을 이용해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용은 수안의 옷도 그런 앞발을 이용해 잘 갈아입혀 놓았다. 그 다음날엔 돼지고기와 수안이 먹을 만한 과자류를 사 갔다. 그리고 또 빨랫감을 가져왔다. 용 경장은 그렇게 매일 아버지와 수안의 먹거리와 깨끗이 빤 옷을 가지고 저수지로 뛰어들었고, 빨랫감과 쓰레기(음식쓰레기는 하나도 없었다.)를 갖고 나왔다. 그러는 동안 수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고, 용도 아들에게 용이 되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김 순경은 끈질기게 형사 놀이에 집착했다.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 산속을 헤매고 있던 소장은 비탈길을 오르느라 헉헉거리면서도 구시렁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놈의 개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유치장에 가둬버릴라.”

소장이 머리에서 김이 피어나는 게 보일 만큼 화가 난 이유는 전 씨네 개 때문이었다. 그 개의 죄상은 화려했다. 유 씨네 새끼 염소를 물어 죽이고, 파란 지붕집 할머니 댁 닭장을 초토화시킨 건 빙산의 일각이었다. 오늘 저녁엔 유 씨네 염소 우리에 들어가 난동을 부렸다. 염소 농장 주인인 소장의 당숙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소리 지르자 그 커다란 개는 놀라 산으로 도망쳤다. 약한 짐승에겐 한없이 난폭하고, 사람에겐 한없이 비굴한 개였다. 그 바람에 포근한 이불속에 들어가 잠이 막 들었던 소장 부부의 전화기가 동시에 울렸다. 전 씨인 시작은아버지는 남편에게로, 유 씨인 당숙은 소장에게로 각각 전화를 걸어 난리가 났으니 빨리 오라고 아우성을 쳤다. 당숙네 식구들은 다친 염소는 없는지, 임신한 염소들은 놀라 유산의 기미는 없는지, 우리는 얼마나 망가졌는지 등의 피해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시작은아버지는 산으로 들어가 개를 찾자고 했다. 소장의 남편이 아침 되면 어련히 알아서 돌아오지 않겠냐고 했다가 크게 꾸지람만 들었다. 개가 산에서 헤매다 멧돼지라도 만나면 어떡하냐는 거였다. 그 말을 들은 소장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상대는 앞에 자가 들어가는 어른이었다.

뭐여? 송아지만한 똥개새끼는 멧돼지 만나면 위험하고 사람은 안 위험하다는 거여? 개새끼 때문에 내 목숨 초개같이 버리란 말이여? 우쒸!’

소장은 입안에서 맴도는 온갖 반항의 말들을 꿀꺽꿀꺽 삼켜 내리며 산으로 향했다. 뿔뿔이 흩어져 개를 찾기로 했는데, 소장이 맡은 곳은 터우리저수지 쪽이었다. 전 씨네 사람들 중에 다리가 가장 튼튼하다는 이유로 가장 높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 투덜거리면서도 중간중간 개를 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쎄바아스촤안!”

개 이름하고는…….’

덩치는 송아지만하고, 먹는 건 미련 곰탱이 같은 게 눈치는 빨라서 사람이 화가 난 듯하면 재빨리 숨어버리는 녀석이었다. 소장은 최대한 부드럽게, 즐거운 척, 놀자는 뉘앙스를 풍기려 애쓰며 불렀다. 그렇게 꾸역꾸역 올라오다 보니 어느덧 터우리저수지가 보였다. 낚시터도 없는 작은 저수지를 둘러싼 둑길을 따라 천천히 걷던 소장의 눈에 뭔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달빛에 희끗하게 보이는 것이 애타게 찾던 세바스찬인 것 같았다.

이렇게 높은 데까지 올라와서 뭐해, 세바스찬? 이모랑 집에 갈까?”

개가 도망이라도 갈까봐 톤을 높이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며 다가가던 소장은 가까워질수록 세바스찬보다 작다는 걸 깨달았다. 거리가 3미터 정도로 가까워지자 웅크린 개라고 생각했던 물체가 밝은 색 스포츠가방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가방이 있는 위치는 저수지 물이 찰랑이는 곳에서 1미터쯤 떨어진 곳이었다. 가방 옆에는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장은 불안한 마음에 가방을 뒤졌다. 대충 구겨 넣은 옷가지와 지갑과 핸드폰이 나왔다.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확인한 소장은 너무 놀라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 너 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소장은 가방을 더 뒤졌다. 마른 수건이 두 장 나왔다. 가장의 작은 주머니까지 싹싹 뒤졌지만 유서는 나오지 않았다. 소장은 수건을 쳐다보며 고민했다. 유서는 없고 수건이 있다는 건, 물속에서 죽으려는 게 아니라 물 밖으로 나올 계획이라고 확신했다. 소장은 가방 옆에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소장은 핸드폰을 켜서 기다린 지 20분 정도 흘렀다는 것을 확인한 후 시선을 다시 저수지로 옮겼다. 용 경장이 밤마다 하는 취미생활이라는 게 저수지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건가 생각하며 저수지를 바라봤다. 찰랑이는 검은 물을 따라 달빛이 반짝였다. 주위엔 여전히 인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따금씩 바람이 한차례 불어 잠든 풀잎을 깨웠다. 그때마다 풀잎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웅얼거렸다. 나를 깨우지 마세요. 잠든 채로 내버려 두세요. 소장은 풀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새벽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니 아까 잠들었던 이불 속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저수지도 지금 잠을 자고 있을까. 소장의 머릿속이 점점 잠에 대한 열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개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

용 경장! 너도 자냐? 나올 거면 빨리 나와라.’

개는 아침이 되면 제 발로 기어들어올 것이었다. 용 경장이 무사히 나오는 것만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다.

 

 

저수지 밖으로 머리를 내민 용 경장은 가방 옆에 서 있는 소장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놀라 굳어버리긴 소장도 마찬가지였다. 고요하던 저수지에 갑자기 떠오른 용 경장의 머리는 상상과 너무 달랐다. 소장이 기다리고 있던 시간만 한 시간 가까이 되었다. 당연히 산소통을 짊어지고 얼굴엔 외계에서 온 괴물 같은 장비들을 달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용 경장은 젖은 머리를 제외하곤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머리만 내밀고 쳐다보고 있었다. 소장은 숨이 꼴딱 넘어갈 것만 같았다.

결국 너는 귀신이 되었구나!’

소장은 혼비백산해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았다. 용 경장은 소장의 비명에 또 한 번 놀라 소장을 향해 튀어나왔다. 소장은 다가오는 용 경장에게 오지 말라고 손을 내저으며 소리 질렀다. 풀밭에 엉덩이를 끌며 뒤로 물러났다. 용 경장은 진정하시라고 같이 소리치며 소장의 어깨를 잡았다. 순간 소장의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소장은 여자유도 미들급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던 적이 있었다. 용 경장의 검은 다이빙슈트는 물어 젖어 달빛에 반짝였다. 반짝이는 용 경장의 검은 몸이 허공을 가르며 회전했다. 용 경장은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지만 며칠 전 아버지의 꼬리에 채여 날아갔을 때에 비하면 충격이랄 것도 없었다. 얼른 일어나 소장의 어깨를 잡아 바닥에 눌렀다. 이번에는 소장의 기술이 용 경장의 완력을 이기지 못했다. 용 경장은 소장을 꼼짝 못하게 누르고 소리소리 지르며 진정시켰다. 소장은 하나님 아버지부터 부처님, 보살님, 알라신까지 귀신을 쫓는 데 일가견이 있을 것 같은 신은 죄다 부르며 발버둥 쳤다.

 

 

서늘한 푸른빛이 세상을 깨우고 있는 시각, 소장과 용 경장은 둑길 가장자리에 나란히 앉아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용 경장 옆에는 베이지색 스포츠가방과 커다란 밀폐용기 두 개가 있었다.

저 밑에 있는 요……, 너희 아버지가 수안이를 키우려고 데려갔다 이거지? 외로움에 사무쳐서…….”

제가 죽일 놈이죠. 그래도 가끔, 하다못해 일 년에 한 번은 찾아가 봤어야 했는데……. 이젠 엄마도 안 계시니까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서 사고를 치신 거예요.”

너희 형들은 왜 안 찾아오는 거야? 그 사……, 용들도 너희 아버지 자식이잖아.”

인간 용 경장의 아버지와 형들이 용이라는 사실 때문에 소장은 자꾸 말을 정정해야 했다.

지긋지긋해서 그러겠죠.”

뭐가?”

태어나면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숨어 살았어요. 살던 곳이 정들만 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고요.”

왜 그렇게 숨어서 살아? 이젠 세상이 변했는데……. 이젠 일본군 따윈 없잖아. 용을 죽일 사람은 없어. 오히려 세상에 나오면 완전 핵인싸 될걸?”

용 경장은 한숨을 한번 크게 쉬었다.

불쌍한 우리 엄마, 아부지,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숨어 있는 다른 용들도 트라우마가 너무 심해서 그래요. 일본군이 용 사냥할 때 큰 용들은 어쩌지 못했고 작은 어린 용들만 사람들이 피신시켰어요. 그 어린 나이에 큰 용들이 전투기에 당하는 꼴을 봤으니 충격이 얼마나 컸겠어요. 해방 후에는 이제 슬슬 세상으로 나가볼까 했는데, 6.25 터졌잖아요. 전투기 소리랑 총포소리에 옛날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심지 약한 용들은 미쳐 날뛰다가 죽기도 했대요. 전쟁 끝난 후에도 용들을 살렸던 사람들은 대를 이어서 계속 찾아와서 살펴 줬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들고 온 세상 이야기가 너무 무서웠어요. 4.3사건, 4.19, 5.18, (KAL)기 폭파 등등 하나같이 용들이 세상에 나가기엔 공포스러운 사건들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특히 우리나라 마지막 반달가슴곰이 죽은 신문기사를 보고 충격을 많이 받으셨대요.”

소장은 쯧쯧하며 혀를 찾다.

그래서 아버지는 절대 세상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고, 형들끼리는 어른이 되면, 정확하게는 노을이형이 변태(變態)를 마치면 용이 신기하지 않은 나라로 가자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둘은 넓은 세상에서 살래요.’ 하고는 훌쩍 떠나버렸어요. 아들놈 셋이 복작거리던 집에 갑자기 어린 저 하나만 남으니 부모님이 많이 허전해하셨어요. 저까지 형들처럼 떠나 버릴까봐 노심초사 하셨죠. 형들 덕분에 저는 좀 자유롭게 살았어요. 형들은 다 클 때까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저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내버려 두셨거든요.”

? 동네 아이들과 만나?”

소장이 의문부호가 가득한 얼굴로 용 경장을 쳐다보았다. 용 경장은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기억에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다.

대를 이어서 일제강점기 때 살아남은 용들을 도와주시는 분들 모임이 있어요. 딱히 이렇다 할 이름은 없지만 서로 회원님이라고 불러요. 노을이 형이랑 저는 그 분들이 자주 찾아와 돌봐주셨어요. 옷도 사오고, 이발도 시켜주고, 사람들 얘기도 해주고……. 노을이 형은 인간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저는 인간들 사는 곳이 너무 궁금해서 아버지를 졸라서 회원 중에 용태수라는 아저씨랑 마을 구경도 했어요. 그러다 친구도 사귀고, 친구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죠. 그래서 회원 분들이 가짜 신분증도 만들고 저를 용태수 아저씨 아들로 만들었어요.”

그래에! 그러면 혹시, 그 회원들이 용을 신으로 받드는 무슨 종교랑 관련 있으신 건가?”

아니에요.”

용 경장은 손사레를 쳤다.

그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예요. 얼마 전에 자기네들이 용신과 접신해 수안이를 찾아주겠다고 수안이 부모님한테 돈을 요구했다가 잡혔잖아요. 교주가 사기 전과도 있던데, 그 사람들 아니에요. 용태수 아저씨랑 회원 분들은 정말로 용을 위하는 분들이에요.

그랬구나! 네가 용의 아들이라서 용 씨였던 게 아니었구나.”

용 경장은 크게 웃었다.

그냥 우연의 일치였어요. 제 이름이 하필이면 마루인 것도 아버지가 최고의 용이 되라는 뜻에서 지은 건데 가짜 신분증을 만들다 보니 용마루가 된 거예요.”

소장도 큰 소리로 웃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 사이로 소장의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소장은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 자기야. 개는 찾았어?”

소장의 남편이었다.

그래? 거 봐. 아침 되면 알아서 기어들어온다니까 작은아버님은 이렇게 사람을 고생시켜. …… 나는 지금 피곤해서 저수지 앞에 앉아서 쉬고 있었어. 곧 들어가야지. …… .”

소장이 전화를 끊자 용 경장이 물었다.

알프레도가 들어왔대요?”

세바스찬이야. 얼마나 산을 헤매고 다녔는지 하얀 털이 흙이랑 잡풀이랑 엉망진창이 돼서 들어왔는데, 발 하나를 절뚝이더래. 가시 같은 게 박혔나봐. 아침 댓바람부터 노인네가 동물병원 문 두드리게 생겼네, 동네 시끄럽게…….”

소장은 일어서서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용 경장도 가방을 메고 밀폐용기 두 개를 양 손에 들고 일어섰다.

그 집은 왜 개를 안 묶어요? 만날 사고만 치는 개를…….”

자식들이 교수면 뭐하고, 판검사면 뭐하니?”

소장은 뜬금없이 전 씨네 자식들 이야기를 꺼냈다.

지들 바쁘다고 명절에도 코빼기도 안 비치는데. 돈만 열심히 부쳐주나 보더라. 그러니 작은아버님이 정 붙일 데가 없어서 개를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완전 개망나니 됐어. 그런 금쪽같은 개를 어떻게 묶어 놔? 자식들이 부쳐준 돈으로 손해배상 해주고 사시는 거지.”

용 경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오늘 하루가 지인짜 기이이이일겠네.”

소장은 산을 내려가며 기지개를 켰다.

 


계세요?”

김 순경은 평일 낮에 사복 차림으로 용 경장의 집을 방문했다. 용 경장은 시청에서 농촌 빈집을 소개받아 수리해서 살고 있었다. 적어도 50년은 넘게 이 집을 지키고 있었을 법한 낡은 나무대문이 열리는 소리는 정말 오래 됐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귀에 거슬렸다. 마당에 서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집안은 고요했다.

그렇지. 남자 혼자 사는 집에 평일 낮에 누가 있을 리가 없지.”

툇마루를 넓히고 알루미늄 창호로 둘러싼 덕에 건물은 그렇게 오래돼 보이지 않았다. 김 순경은 기대 반, 의심 반으로 겹유리로 된 미닫이문을 밀어 보았다. 아무런 저항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이러려고 온 건데 막상 빈 남의 집에 발을 들여놓으려니 보통 주저되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문이 잠겨 있었으면 쉽게 포기하고 돌아갈 텐데, 왜 용 경장님은 문을 안 잠가놔서 날 고민하게 만들까 하고 애먼 용 경장을 원망했다. 그러나 내 꿈은 형사다.’를 속으로 외치며 마음을 다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아이 옷들이 널려 있는 빨래건조대였다. 남자아이 옷이었다.

?’

이 사람이 밤마다 남의 집 삯빨래를 할 리도 없는데 남자아이 옷이 웬 걸까 생각하다가 !’하고 저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질렀다. 김 순경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이 열려있는 방으로 들어가 서랍장을 칸마다 열어 보았다. 맨 아래 칸에서 또 다른 남자아이 옷을 발견했다. 손에 잡히는 윗도리를 하나 꺼내 펼쳐 보았다.

이 정도면 어린이집 다니는 애들 사이즈 아닌가? 수안이보다 큰 애들 옷 같은데?’

용 경장과 수안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애써 생각하며 옷 크기를 가늠해 보았지만, 스물일곱 살짜리 총각의 머리에 어린 아이의 연령별 크기가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닐 거야 하며 펼쳤던 옷을 개어 제자리에 넣으려는 순간 그 옷 아래 있던 다른 옷이 김 순경의 숨을 멎게 했다. 김 순경은 아래에 있던 옷을 꺼내 펼쳐 보았다. 핸드폰에 저장된 수안의 납치 직전 사진도 열었다. 수안의 엄마가 유모차를 꺼내기 전에 꽃을 보고 있는 수안을 찍은 사진이었다. 펼쳐진 옷과 핸드폰 속 사진을 비교한 김 순경은 한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핸드폰 속 수안이 입고 있던 옷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순간 김 순경은 뒤를 돌아보았다. 집안은 여전히 정적만 가득했지만 김 순경은 용 경장이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목을 조를 것 같은 환각에 시달렸다.

이 집 주인은 아이를 납치한 범죄자다.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더 엄청난 힘으로 엄청나게 위험한 비밀을 알고 있는 나를 엄청나게 잔인하게 죽일 것이다. 김 순경은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무시무시한 상상과 사투를 벌이며 겨우 옷들을 개켜 넣고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그대로 대문 밖으로 나가려던 그는 뒤돌아 열려 있는 미닫이문을 닫고 냅다 도망쳤다.

 

 

허겁지겁 뛰어서 파출소 문을 박차고 들어온 김 순경은 용 경장이 소장의 책상 앞에서 침을 튀어가며 열을 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소장에게 용 경장의 비밀을 알려야한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파출소에 용 경장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김 순경은 우뚝 서서 용 경장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살기등등한 용 경장의 뒷모습을 보면 발길을 돌려 다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용 경장 너머에 있는 소장의 존재는 김 순경의 발을 다시 붙여 놓기에 충분했다.

오늘 연찬데 왜 왔어?”

이 경사가 김 순경에게 물었다.

, 저기, 뭘 가지러 왔는데……, 그러니까…….”

김 순경은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물었다.

용 경장님 왜 저래요?”

용 경장은 김 순경이 온 줄도 모르고 파출소가 떠나가라 열을 내고 있었다.

애 없어진 지 두 달이 다 돼 가는데 용의 흔적이 하나도 없잖아. 용을 봤다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그 사건 수사팀에서 애 엄마가 애를 어떻게 하고 거짓말한 게 아니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

이 경사가 대답했다.

애 엄마가 애를 어떻게 하다니요?”

실수로든 고의로든 애를 죽이고, 용이 채갔다고…….”

에에?”

김 순경은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이 경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경악했다.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아직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고, 정치권에서도 잊을 만하면 전화해서 물어보는 통에 수사팀 변 팀장이 무척 힘들어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아이를 납치한 범인이 김 순경의 눈앞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용 경장은 애를 잃어버려서 힘든 엄마를 왜 더 힘들게 하냐고 애먼 소장에게 따지고 있는 중이었다.

애 엄마가 지금 반쪽이 돼 있는데, 자기 자식을 죽인 엄마면 아직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있겠어요? 무슨 근거로 애 엄마를 용의자로 몰아? 소설 쓰고 자빠졌네.”

왜 나한테 와서 난리야? 변 팀장도 뭐가 나오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런 생각까지 한 거지. 용이 없잖아, 용이!”

용 경장과 소장의 목소리가 함께 파출소를 들었다 놓는 중이었다. 용 경장은 괴성을 한번 지르더니 텀블러에 냉수를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 엄마에 대한 의심이 풀리려면 어디선가 용이 짠하고 나타나 주면 될 텐데…….”

소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누구 들으라는 것처럼 목소리는 여전히 컸다. 용 경장은 텀블러를 비우자 의미심장한 눈으로 소장을 바라봤다. 냉수로 속을 식힌 덕에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소장에게 말했다.

정말 용이 나타나면 똥 팀장님도 애 엄마를 안 건들겠죠?”

소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김 순경은 용 경장 눈치를 보다가 오늘은 소장에게 보고하기를 포기하고 조용히 나갔다.

 


용 경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집안의 모든 등을 끄고 40분 후에 나왔다. 보통 소등 후 30분이면 김 순경의 냄새가 사라졌으므로 오늘은 넉넉잡고 40분 후에 집을 나선 것이었다. 일본으로 간 태풍의 영향으로 여기까지 바람이 거셌다. 이런 바람 속에선 특정한 냄새를 찾기가 불가능했다.

 


김 순경은 풀숲에 납작 엎드려 저수지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분명 저 안으로 용 경장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걸 봤는데, 한참이 지나도 용 경장이 나타나질 않았다. 수영선수도 물속에서 이렇게 오래 버티진 못할 일이었다. 김 순경은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설마!’

풀숲에서 튀어나와 용 경장이 두고 간 베이지색 스포츠가방을 뒤졌다. 속으로 아닐 거야.’를 반복하며 유서를 찾고 있었다. 김 순경은 아이를 납치한 용 경장이 아이 엄마가 누명을 뒤집어쓴 바람에 죄책감을 못 이기고 저수지로 뛰어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용 경장의 집엔 아이 옷이 잔뜩 있었다. 서랍에도, 빨래건조대에도……. 그렇다면 아이는 어딘가에 살아있는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용 경장은 항상 아이는 살아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게 후회됐다. 죄책감 때문에 자살할 사람이라면 분명히 유서에 아이의 위치를 남겼을 것이라 확신했다.

 


용 경장은 물에서 나오자마자 소리쳤다.

아버지, 큰일 났어요!”

지구가 망하지 않는 이상 큰일 날 일이 없는 용은 멀뚱히 아들을 바라보았다.

수안이 엄마가 살인자가 되게 생겼어요.”

그 여자가 누굴 죽인다든?”

잔뜩 흥분해서 소리치는 용 경장과 달리 용은 태평하게 물었다.

그게 아니라 수안이 엄마가 수안이를 죽이고 용이 납치했다고 거짓말한다는 누명을 쓰고 있단 말이에요.”

난 또……. 나랑은 상관없다.”

용은 시큰둥하게 말하고 용 경장이 가지고 온 밀폐용기의 냄새를 맡았다.

왜 아버지랑 상관이 없어요? 아버지가 수안이를 납치해서 생긴 일인데, 아버지가 해결하셔야지요.”

용은 아들이 떠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어떤 것을 먹게 될까 기대하며 들뜬 마음으로 용기 뚜껑을 열려는 순간 용 경장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용기를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

이 놈이!”

용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아들을 쏘아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를 잃어버린 불쌍한 수안이 엄마가 세상 사람들 욕을 먹으면서 취조 받고 있다고요. 아버지 때문에…….”

어디서 감히 아버지 밥을 걷어 차? 이젠 가람이와 아무 상관도 없는 여자다. 그 여자 때문에 계속 내 성질 건드릴 거면 이거 들고 나가라.”

화가 난 용은 아들이 가져온 밀폐용기들을 집어 던졌다. 용기들은 벽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용과 용 경장이 싸우는 소리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수안은 밀폐용기가 깨지는 소리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용과 용 경장이 동시에 수안을 향했다. 용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움직였다. 용 경장이 수안을 안으려고 팔을 뻗는 순간, 용은 이미 수안을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용 경장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며칠 전 꼬리에 맞아 날아갔을 때보다 훨씬 멀리 날아간 만큼 용 경장이 받은 충격은 그 때의 몇 배였다. 하마터면 정신을 놓을 뻔했다. 용 경장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를 향해 뛰었다.

오지 마라!”

용은 다시 한 번 용 경장을 쳐냈다. 용 경장은 또 날아가 벽에 부딪혔지만 다시 일어서 용에게 달려갔다. 그의 다리는 휘청거렸고 달리고 있지만 걷는 것과 다름없었다.

수안이 엄마를…….”

용은 또 쳐냈고, 용 경장은 다시 또 일어나 용에게로 기어갔다.

나를 자꾸 속상하게 하는 이유가 뭐냐?”

용 경장이 가까이 왔지만 이번에는 쳐내지 않고 물었다.

저는…… 대한민국…… 경찰이에요. 억울한 사람…… 없게……. 사람들…… 보호해야 해요.”

띄엄띄엄 말하는 용 경장은 이미 자신이 뭐라고 떠드는지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다. 용은 앞발톱으로 아들의 머리를 톡 쳤다. 용 경장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용은 가슴 비늘을 비집고 앞발톱 하나를 밀어 넣었다가 꺼냈다. 발톱엔 피가 묻어 있었다. 아들의 입을 벌리고 그 피를 넣어 주었다.

자식새끼들 땜에 내가 진짜…….”

용은 구시렁거리더니 수안을 금세 재워 아들 옆에 뉘어 놓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용 경장의 가방을 정신없이 뒤지던 김 순경은 물보라 치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저수지 한복판이 용솟음치는가 싶더니 정말로 용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용이 솟구치며 사방으로 튄 물 덩어리는 김 순경까지 덮쳤다. 김 순경은 하늘로 올라가는 용을 보며 고개가 점점 들리다가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용의 검은 형체가 작아졌다.

 


핸드폰 불이 반짝 켜지며 방 안의 어둠을 깨뜨렸다. 벨 소리는 소장의 잠을 깨뜨렸고 소장은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며 발신인을 확인했다.

얘는 이 시간에 잠 안자고 왜……?’

으응.”

소장이 잠에 푹 잠긴 소리로 대답하자 건너편에서 김 순경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용이요, 용이, 용이 나왔어요!”

?”

이라는 말에 소장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용 경장님이 들어갔는데 안 나오더니, 가방을, 유서를 찾는데 용이 푸악 하고…….”

, ! 김 순경아, 진정하고 뭔 소린지 알아듣게 말해.”

소장이 김 순경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옆에서 자고 있던 소장의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반쯤 감겼던 눈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 경감님! 이 시간에 웬일…….”

이쪽에서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경감이라는 사람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장은 뭐하냐고 물었다.

지금 통화중인데요. …… ? …… 경찰서 옥상에 뭐요? ……

소장은 김 순경에게 숨 좀 돌리라고 말하고 남편의 전화기를 빼앗아 귀에 댔다.

 


소장은 김 순경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단단히 이르고 용송경찰서로 갔다. 용송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던 변 팀장에게 수시로 안부를 핑계로 전화를 걸어 사건에 대해 물었더니, 경찰서 옥상에 용이 나타났다고 알아서 연락을 보내주었다. 소장의 차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 안의 모든 경찰이 다 나온 것도 모자라 퇴근했던 경찰들까지 다시 돌아온 듯 주차장에 장사진을 이룬 경찰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장도 차에서 내려 건물 옥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옥상엔 아무 것도 없었다. 근처에서 웅성거리던 경찰들 중 아는 얼굴이 보여 다가가 물었다.

용은 어디 간 거야?”

날아간 지 1분도 안 됐습니다.”

갔어?”

.”

소장은 터우리저수지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소장을 발견한 변 팀장이 뛰어왔다.

유 소장, 언제 왔어?”

지금 막. 용은 날아갔다며?”

. 청에 연락했으니까 그 쪽에서 쫓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일본에 상륙한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도 제법 불고 구름이 많은 날씨였다. 어두운 하늘에는 헬리콥터로 추정되는 검은 물체들이 보일 듯 말 듯 움직였다. 소장과 변 팀장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김 순경이 소장의 어깨를 툭 쳤다.

소장님!”

소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터우리저수지에서 용이 나왔다고 떠들어대면 모두 그쪽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러면 용 경장이 밖으로 나오는 걸 들킬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김 순경에게 자리 지키고 있으라고 했는데, 김 순경이 여기에 와 있었다.

김 순경 왜 여기로 왔어?”

소장이 물었다.

용이 오면 어떡해요? 저 터우리저수지에 계속 있다가 용한테 잡아먹힐까봐 무서워서 왔어요.”

볼멘소리를 하던 김 순경은 소장과 함께 있던 변 팀장을 보자 흥분해서 떠들었다.

터우리저수지에서 용이 나왔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터우리저수지? 확실해?”

변 팀장이 놀라 물었다.

, 확실합니다. 용 경장님이 저수지로 들어가더니 용이 나왔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변 팀장님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소장은 가슴이 철렁했다.

용 경장님이 저수지로 걸어 들어갔는데, 한참동안 안 나오더니 저수지에서 용이 솟아올랐습니다. 아무래도 용 경장님이 용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대체?”

변 팀장은 이 와중에 헛소리를 지껄인다며 화를 냈고, 소장은 김 순경을 감싸는 척하며 더 이상 말을 못하게 막으려했다. 그러나 김 순경은 막무가내로 떠들어댔다. 용 경장이 용이 확실하다고, 용 경장의 집에 남자아이 옷이 있는데 그 중에 수안이 납치되기 전에 입었던 옷도 있다고 했다. 소장은 검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변 팀장은 몇 명을 용 경장의 집으로 보내고, 몇 명을 데리고 터우리저수지로 향했다. 소장과 김 순경도 터우리저수지로 향했다.

 


용 경장은 스르르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일어나 앉으려는데 가슴이 욱신거렸다.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끄응하며 앉았다.

일어났냐?”

옆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용이 용 경장을 살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이틀 쯤?”

에엑?”

용 경장은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가 그대로 비틀비틀 주저앉았다. 머리가 띵했고, 온몸이 다 욱신거렸다.

출근해야 하는데 큰일 났네. 수안이 엄마도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고.”

그 몰골로 일하러 가겠다고?”

일은 못해도 출근해서 병가라도 내야죠. 이렇게 무단결근을 하면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집에 수안이 옷도 잔뜩 널려있는데…….”

용은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아들을 이렇게 만들어서 잡아놓으니까 좋으세요? 자식 잃은 엄마 인생도 망쳐 놓고…….”

용 경장은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지청구를 주었다.

그 여자 일은 해결했다.”

?”

나보고 해결하라며?”

어떻게요?”

용은 용송경찰서에 갔던 일을 얘기했다.

나는 그냥 앉아 있다가 왔어. 아무 말도 안했다.”

용 경장은 머리를 징채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버지가 사람들 앞에 나갔다고? 아버지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용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면 티가 너무 난다. 인간만큼 거짓말 잘 하는 동물도 없었다.

왜 그러셨어요?”

사람들의 눈에 절대로 띄지 않겠다는 평생의 신조를 깬 아버지에게 뭔지 모를 미안함이 들었다.

자식 놈이 목숨 걸고 뭘 해야겠다는 데, 아비가 돼 가지고 그냥 있을 수가 있겠냐?”

용 경장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용은 멋쩍게 콧방귀를 뀌고 똬리를 풀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물속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용의 기다란 몸이 물속으로 다 들어가자 용 경장은 아버지가 만든 파장을 쳐다보았다. 몸을 감싸던 온기가 사라진 것을 느꼈는지 수안이 자다 말고 칭얼거렸다. 용 경장은 얼른 수안에게로 가 옆에 누워 다독였다.

 

한참 후 용이 물에서 나와 품에 안은 것들을 쏟아 놓았다. 저수지에 사는 민물고기들이 펄떡였다.

저수지가 작아서 이젠 물고기도 얼마 없구나. 큰 저수지는 낚시꾼들이 있어서 이 곳으로 정했는데, 물고기가 적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네.”

제가 나가서 뭐라도 구해 올게요. 파출소도 가 봐야 하고…….”

아서라.”

용 경장은 말리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저수지 밖에 사람들이 쫙 깔렸더라. 내가 여기서 나가고 들어오는 걸 누가 봤나봐.”

용 경장은 입이 떡 벌어졌다.

 


소장은 3일째 터우리저수지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어쩌면 용이 그날 나와서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겼을지도 몰라. 그날 날씨가 안 좋아서 헬기가 용을 못 찾았거든.”

변 팀장이 말했다.

잠수부는?”

소장이 물었다.

혹시 용이 나올지도 몰라서 잠수 수색은 못하고 있어. 수중카메라만 내려 보냈는데, 물이 너무 탁해서 거기서도 보이는 게 없어.”

변 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마냥 저수지 밖에 진을 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상부에서도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소장은 며칠째 결근 중인 용 경장이 걱정되었다. 이미 용 경장의 집에선 수안의 것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옷이 잔뜩 나왔다. 용 경장은 저수지에서 나오는 즉시 유괴범으로 체포될 게 뻔했다.

 


물고기를 배불리 먹은 용 경장은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서 유유자적하게 며칠을 보냈다. 그동안 아버지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비롯해 서로의 생각, 가족 이야기 등 용 경장이 부모님과 함께 살던 때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아버지만 아들이 그리우셨는 줄 아세요? 저도 엄마랑 아버지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런 놈이 그동안 한 번을 안 와?”

오면 자꾸 용 되라고 하시니까 그렇죠. 처음 경찰 됐을 때, 순경 됐을 때, 경장 됐을 때마다 경찰복 입고 견장도 보여드리고 자랑하고 싶었어요.”

봤다.”

알아요.”

어떻게?”

태수 아저씨가 미행엔 영 소질이 없어서요.”

용 경장이 경찰이 되고 얼마 안 있어서부터 용태수가 미행을 시작했다. 그는 용 경장이 자신의 냄새를 못 맡게 하려고 싸구려 향수까지 잔뜩 뿌리고 있었다. 용 경장은 오히려 그 향수 때문에 코가 아플 지경이었다. 용태수는 몰래 용 경장의 사진을 찍어서 용에게 보여 주기를 몇 년째 하고 있었다. 용 경장은 알면서도 그동안 내버려 두었다.

경장 다음은 뭐냐?”

경사요.”

경사가 되면 자랑하러 와라. 내가 직접 봐 주마.”

용 경장은 실소를 했다.

저 때문에 일부러 이 동네에서 아이를 납치하신 거죠?”

아마도?”

용 경장은 또 실소했다.

이제 제가 아버지 자주 찾아뵐 거니까 수안이는 데려다 주죠?”

너 없을 땐 어떻게 하고? 네 엄마도 깨려면 멀었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줄을 용 경장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애완동물이라도 한 마리 키우세요. 요즘엔 혼자 사는 사람도 많고 자식 없이 부부끼리만 사는 사람도 많은데, 보통은 애완동물을 키워요. 동물이지만 사람들은 많은 위안을 받거든요, 외로움도 덜 느끼고. 그래서 이젠 반려동물이라고 해요.”

짐승은 짐승이고 사람은 사람이지. 위안은 무슨…….”

아버지의 반응이 시큰둥하거나 말거나 용 경장은 하던 얘기를 계속 했다.

아버지한텐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것들도 괜찮을 것 같아요.”

실없는 소리 하려면 자라. 잘 자야 빨리 낫지.”


작은아버님이 개를 묶어놓지 않으시면 잡아서 구류 조치할 수밖에 없어요. 유치장에 가둔다고요. 이게 그냥 손해배상 한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상습적으로 남의 재물을 손괴하고 계속 이렇게 신고 들어오면 근본 원인인 세바스찬을 작은아버지로부터 압류해야 돼요. 이번까지는 찾아서 데려다 드릴게요. 다음엔 제 힘으로도 어떻게 안 돼요.”

가뜩이나 용 부자(父子)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며칠째 잠을 설쳤는데, 이 그레이트하게 멍청해서 그레이트한 사고만 치는 그레이트 뭐라는 족보 있는 똥개가 또 사고치고 산으로 도망쳤다는 전화 때문에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산을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소장은 전화를 끊으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날 샜네! 출근 시간이네. 이 멍청한 개새끼 때문에…….”

소장은 개가 멍청한 게 아니라 주인이 멍청한 사고뭉치 개로 키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자 들어가는 어른을 욕할 수는 없어서 언제나처럼 개를 욕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입으로는 개를 욕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선 욕의 대상이 섞여 있었다.

 


눈을 뜨니 옆엔 벌써 물고기 몇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용 경장은 부스스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버지는 두 앞발을 모아 수안을 앉혀놓고 아침을 먹이는 중이었다.

아침인가요?”

용 경장이 옆에 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집으며 물었다.

그래. 오늘은 아침부터 밖이 소요하구나. 잠수부들이 들어왔어.”

용 경장의 눈이 커졌다.

잠수부들 피해서 사냥하느라 좀 힘들었다. 물이 탁해서 다행이지.”

여기는 곧 들킬 것 같네요.”

용 경장은 물고기를 내려놓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

이제 수안이를 내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도 다른 곳으로 옮기시고…….”

용도 며칠 째 그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수안의 친부모에 대한 미안함도 점점 커지고 있었고, 이젠 저수지에 물고기도 씨가 말라가는 중이었으며, 무엇보다 지극정성으로 키운 막둥이 녀석의 소원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그새 정든 수안과 헤어지는 게 두려워 말을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용 경장과 수안을 목 뒤에 태운 용은 천장에 난 구멍으로 둘을 데려다 주었다. 구멍은 용 경장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였다.

이 작은 구멍으로 애를 데리고 들어오셨단 말이에요?”

처음엔 크게 뚫었지. 내가 들어온 다음에 숨 쉴 구멍만 남기고 메웠어.”

용 경장은 구멍 안으로 몸을 밀어 넣고 자세를 잡은 후, 밑에 있는 수안을 들어올렸다.

가람이 안 다치게 잘 잡아라.”

용이 불안해하며 말했다.

가람이가 아니라 수안이요. 이젠 가람이라는 이름은 잊으세요.”

용 경장은 한 팔로 수안을 감싸 안고 나머지 한 팔과 두 다리로 구멍 벽을 타고 천천히 올라갔다. 용은 구멍을 통해 올라가는 아들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구멍 벽이 울퉁불퉁하고 살짝 구부러져 있어서 아들은 금세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잘 발달한 후각과 청각으로 둘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짐승이 뛰는 소리가 났다. 소장은 얼른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 세바스찬이 뛰어 올라가는 게 보였다. 소장은 세바스찬을 따라 뛰었다. 여기저기서 경찰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풀에 가려 개는 잘 안보이고, 뭔가 뛰는 소리가 나서 뒤를 쫓는 것이었다. 소장은 저건 그냥 개일 뿐이니 쫓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산을 뛰어오르는 중이라 말할 여력도 없이 헉헉대기만 했다.

나도 이젠 늙었나봐. 하긴, 반백이 얼마 안 남았지.’

세바스찬은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멈춰 섰다. 소장이 겨우 따라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쓴 침을 삼키며 숨을 몰아쉬었다.

저 자식이 닭이랑 염소도 모자라서 이젠 나까지 죽일 참이야!’

세바스찬은 바위틈을 비집고 다니며 샅샅이 냄새를 맡았다. 사람이 가려해도 뭔가를 손으로 짚어야 겨우 갈 수 있는 바위 더미들 사이를 네 발로 위태위태하게 움직였다.

세바스찬! 위험하게 거길 왜 가? 이리와. 이모랑 집에 가자.”

소장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살살 달래며 불렀다. 그 사이 형사와 의경들이 속속 주변에 모여들었다.

뭐야! 저거 개예요?”

형사 하나가 소장에게 물었다.

. 저거 개야. 송아지 아니야. 내가 잘 달래서 데리고 갈 테니까 가서 일들 봐.”

위험하게 바위틈에서 왜 저러고 다닌대요? 혼자 못 내려오게 생겼는데?”

그의 말대로 올라가는 건 어찌어찌 한다 해도, 네 발로 내려오는 건 영 불가능해 보였다. 형사들은 개를 구조해야 할 것 같다며 한소리씩 했다. 소장이 형사들과 개를 어떻게 구조할까를 의논하는데 개가 있는 바위 아래에서 거대한 동물의 포효소리가 울려 나왔다. 모두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 저기 냄새를 맡으며 뭔가를 찾던 세바스찬은 포효소리에 놀라 끙끙댔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바위들 사이를 디디고 내려올 엄두가 안 나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잠시 후 바위 아래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남자의 목소리였다.

 


얼마나 올라왔는지 이제 위에서 내려오는 빛에 바위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용 경장은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스스로를 응원하며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밖으로 나가는 구멍이 1미터쯤 남았을 때 사람머리보다 큰 머리통이 빛을 막으며 들어왔다.

아잇, 깜짝이야!”

머리를 들이밀고 킁킁거리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사고뭉치 전 씨네 개였다. 용 경장의 품에 안겨있는 수안은 커다란 개의 머리가 신기한지 만져보고 싶어서 팔을 내밀었다. 수안은 용혈 덕분에 겁도 없어졌다.

용 경장과 수안이 빠져나간 구멍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용은 갑자기 낯선 냄새가 나자 불안함이 몇 배로 커졌다. 이 냄새는 육식동물의 냄새였다. 아들과 수안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용의 온 정신을 덮쳤다. 용은 그 육식동물을 쫓아내려고 구멍에다 대고 고함을 질렀다.

아잇, 깜짝이야!”

용 경장은 아버지의 고함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무래도 저 개 냄새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개예요. 안심하세요.”

용 경장은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용은 불안감 때문에 아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들이 위험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용은 그대로 물로 뛰어들었다.

 


바위 틈바구니에서 사람의 손이 쑥 올라왔다. 그 쪽만 주시하고 있던 경찰들 모두 각자의 무기를 들었다. 형사들은 권총을 겨누었고, 의경들은 진압봉을 폈다. 바위 사이로 올라온 손이 팔이 되고, 그 팔의 주인 머리가 올라왔다. 용 경장은 수안이 떨어질까 조심하며 바위에 올랐다. 바위에 안전하게 걸터앉은 후에야 주변을 돌아본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용마루 경장, 꼼짝 마! 천천히 내려와서 그 아이를 이리 넘겨.”

형사 하나가 소리쳤다.

아니야! 용 경장은 아이를 납치한 게 아니야. 용으로부터 구해온 거야.”

소장이 형사들에게 소리치며 용 경장을 향해 가려는데, 옆에 있던 다른 형사가 소장의 팔을 잡았다.

부하직원이라고 그렇게 막 믿지 좀 마세요. 그래서 좌천되셨으면서……. 저 놈 집에서 아이 옷이 잔뜩 나왔어요. 누구 말대로 용 경장이 용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적어도 용과 한패일 거예요.”

내가 용이라고? 내가 막 용도 됐다가 사람도 됐다가 변신한단 말이야?’

용 경장은 혼란스러웠다. 아버지와 땅속에 있던 며칠 사이에 대한민국이 판타지 세상으로 변한 건가 싶었다. 형사들이 용 경장을 유괴범으로 단정 짓는 와중에도 소장은 계속 용 경장을 흉악한 용과 싸워 아이를 구해온 영웅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 용 경장은 소장의 말에 맞춰 행동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진정들 하세요. 저는…….”

용 경장이 막 말을 꺼냈을 때, 소리 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발톱이 달린 용의 앞발이 용 경장과 수안을 낚아챘다. 그 광경을 본 경찰들 모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마음 약한 의경 몇 명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용은 두 앞발로 아들과 수안을 끌어안고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아버지, 왜 나오셨어요?”

용 경장이 놀라 물었다. 수안은 하늘을 나는 게 신이 나 소리를 지르며 웃어댔다.

육식동물의 냄새가 났다. 작지 않은 놈이었어.”

그건 그냥 개예요. 크고 멍청한 사고뭉치 개요.”

용은 천천히 날았다. 아들을 위험한 동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나는 것이었으므로 목적지도 없었고, 여유롭기까지 했다.

그래? 그러면 내 발에 있는 놈이 개란 말이냐?”

용 경장은 무슨 소린가 하고 아버지의 뒷발을 보았다.

으허헉! 아버지, 저 놈을 왜 데리고 오셨어요?”

용이 뒷발가락으로 움켜쥐고 있는 것은 전 씨네 개였다. 녀석은 잔뜩 겁을 먹어 꼬리를 다리 사이로 말아 넣고, 입술을 펄럭이며 엄청난 양의 침을 휘날리는 중이었다.

감히 내 아들을 위협하는 놈인 것 같아서 잡아먹으려고 집어왔지.”

잡아먹으시면 안 돼요. 저건 주인 있는 개예요. 주인한테 돌려줘야 해요.”

아는 개냐?”

. 사고도 많이 치고, 골치 아픈 개지만 사람한테는 착한 녀석이에요. 또 어느 집 닭이라도 물어 죽이고 도망쳤나 봐요.”

이름이 뭐냐?”

이름이……, 서양 귀족 이름이었는데…….”

용 경장은 잠시 생각했다. 서양 이름이라도 메리나 해피 같으면 기억하기 쉬운데, 저 놈의 이름은 무려 네 글자나 되었다. 십여 초를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알프레도!”

무슨 개 이름이…….”

개 이름이 마음에 안 들긴 용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 알프레도는 내 거다.”

예에?”

용은 아들의 말대로 애완동물을 키워보겠다 마음먹었다. 덩치가 큰 동물이 필요했는데, 마침 이 녀석이 제격이었다. 용 경장은 아버지의 말이 처음엔 황당해서 말리려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어차피 저 녀석은 집으로 돌아가면 또 사고를 쳐서 모두를 힘들게 만들 게 뻔했다. 전 씨의 마음이 많이 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용이 잘 키워줄 것이라고 달래 주고, 대신 작은 개를 키워 보시라고 구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장도 늘 시작은아버님이 감당할 수 있는 개가 아니라고 말해 왔었다.

위에서 들어보니 사람들이 네가 가람이를 납치했다고 하더라.”

가람이가 아니라 수안이요.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집에서 수안이 옷이 잔뜩 나와서요.”

그래?”

용은 천천히 선회했다. 용 경장은 아버지가 다시 터우리저수지 쪽으로 가 내려주시려나 보다 했다. 그러나 용은 터우리저수지를 향해 내려가더니 사람들에게 크게 포효하고 다시 올라왔다. 사람들에겐 대단히 위협적인 행동이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고, 넘어지고, 저수지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용 경장은 경악했다.

아버지, 이게 무슨 짓이에요? 사람들 놀라잖아요. 사람들이 용을 나쁘게 생각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나쁘게 생각하려면 생각하라지. 대신 너는 누명을 벗을 게 아니냐?”

용 경장은 그제야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자신을 두둔하는 소장의 말에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너는 나 없으면 안 된다니까. 효도해라.”

용 경장은 실소했다. 용은 둘을 내려줄 만한 곳을 찾으며 저수지 위를 빙빙 돌았다. 저수지 주변 나무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숨었고, 형사들은 용을 향해 총을 겨누었지만 용 경장과 수안 때문에 아무도 쏘지는 못했다.

가람이 꽉 잡아라.”

용은 말하자마자 풀이 많아 보이는 곳으로 하강했다. 어른 키 정도의 높이까지 내려왔을 때 두 앞발을 벌려 아들과 수안을 떨어뜨렸다. 용 경장은 수안을 안은 채 경사진 풀숲에 떨어지면서 몇 바퀴 굴렀다. 며칠 전에 다친 뼈들이 아직 덜 아물었는지 온몸에 퍼지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용 경장은 비명을 질렀다. 용은 아들이 무사한지 확인한 후 개를 데리고 멀리 사라졌다. 소장이 먼저 용 경장을 소리쳐 부르며 뛰어왔다. 용이 멀리 날아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도 용 경장에게로 달려왔다. 잠시 후, 용 경장과 수안을 실은 구급차가 병원을 향해 달렸다.

 


용 경장은 온몸에 타박상과 찰과상이 있고, 갈비뼈 몇 개가 금이 간 상태로 며칠간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하게 되었다.

수안은 여름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팔과 다리에 약간의 긁힘이 생겼지만 건강상태가 아주 양호했다. 수안의 부모는 또래보다 우량한 체격과 깨끗해진 피부를 보고, 동화책에서처럼 용이 아이에게 무슨 마법을 건 게 아닐까 아주 잠깐 의심하기도 했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힘든 아토피가 말끔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수면 중인 곳에서 가까운 장소에 새 둥지를 마련한 용은 개와 동거를 시작했다. 용은 애교도 많고 자신을 잘 따르는 개를 좋아했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개가 멍청하다더니 제 이름도 모를 정도일 줄은 몰랐군. 알프레도, 알프레도!”

아무리 용이 이름을 불러도 개는 딴 짓만 했다.

소장은 보고서에 용 경장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용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용을 찾아내었고, 용을 자극하지 않고 아이를 구출하기 위해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고 썼다. 사비를 들여 용과 아이의 식량을 사고 아이의 옷을 사 나르면서 용의 신임을 얻고 아이를 빼낼 기회를 찾았다고도 썼다. 상황을 상부에 미리 보고하지 않은 것은 비밀 유지를 위해 소장이 결정한 것이며, 용 경장은 소장의 말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고 씀으로써 혹시라도 상부에서 질책을 하더라도 용 경장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도록 노력했다. 경찰 당국은 소장의 보고 내용대로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했다. 기자들은 용으로부터 아이를 구출한 용 경장을 인터뷰하려고 했으나 용 경장은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러자 기자들은 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수해 준 용 경장의 아버지 용태수를 찾아갔다.

용태수는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은 후 회원들과 연락을 취했다. 회원들은 전국에 흩어져 숨어있는 용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모든 의견을 취합해 그들이 그동안 꿈꿔온 일을 이룰 때가 왔다고 용태수에게 전했다. 용태수는 인터뷰에서 일제강점기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어린 용들이 100년이 다 되는 세월동안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 왔는지와, 용들을 보살피기 위한 회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용이 아이를 납치한 것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 청와대 게시판에는 열 마리도 남지 않은 우리나라 용의 보존과 번영을 위해 정부에서 관련법을 만들어 보호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틀만에 20만 명이 동의했다.

 

 

몇 달 후, 이제 하늘에 용이 날아다녀도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용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호랑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우연히 용을 가까이서 마주친 사람들 중에는 아이를 용 옆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 극성 부모도 있었다. 용에게 말을 시켜 보고 동영상을 찍어서 올리면 조회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용의 말을 배우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보호받는 신세가 되는 바람에 우리나라 용은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세계 유일 종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보고 외국에서도 용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려는 시도를 했으나, 용이라는 동물이 부모 잃은 새끼나 알까지도 발견 즉시 거두어 키우는 습성을 가진 덕분에 어린 용을 구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법이 그렇듯 국회에선 우리나라 용 보호를 위한 법안이 계류 중이었다. 사람들은 한편으론 그러려니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국회 청원과 소규모 시위, SNS 등을 통해 조속한 법안 통과를 위한 국회의원 압박을 다각도로 하고 있었다. 법안과는 별개로 용들의 생활환경 개선과 양질의 먹이 공급을 위해 시민 단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경사가 되면 자랑하러 온다더니 이제야 된 거냐?”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에게 용이 물었다.

석 달 전부터 계속 찾아왔어요. 그런데 이제 겨우 아버지를 만난 거라고요. 뭐 하시느라 그렇게 바쁘세요?”

용 경장, 아니 용 경사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저기 구경을 다녔지. 우리나라가 이렇게 볼 것이 많은 줄 몰랐어. 요즘엔 네 엄마가 깨어나면 먼저 보여줄 곳을 추리고 있다.”

용 경사는 아버지의 달뜬 모습에 웃음만 나왔다.

엄마가 깨어나면 둥지에 있는 날이 거의 없을 지도 모르겠군. 우리가 보고 싶어도 참고 있어라. 대신, 아무리 멀리 가도 한 달에 한 번은 경찰서 옥상으로 찾아가마.”

됐어요. 아버지가 안 오셔도 어디서 뭐하고 계신지 다 아니까.”

인터넷에서 개룡을 찾으면 아버지의 현재 위치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용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서 실시간으로 SNS에 올리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사진 속 용들 중에 개를 데리고 다니는 용은 아버지밖에 없었다.

 


오늘도 용 경사는 퇴근 후 검색창에 개룡을 쳤다. 오늘 아버지 옆에는 엄마가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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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9 단편 마약의 오메가 니그라토 2020.04.30 0
2588 단편 광고 버전 창능 2020.04.30 0
2587 단편 아웃백 아메리카흰꼬리사슴 2020.04.29 3
2586 단편 생명의 오메가 니그라토 2020.04.28 0
2585 장편 꿈속의 숲-5. 이별 2 ilo 2020.04.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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