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엄 씨

2020.05.15 05:3405.15

1

 

엄 씨에게서 온 전화다. 나는 두 번 거절하고 세 번째에 받는다. 그의 말이 고막을 비껴나간다. 나는 네, 네, 두 번 대답한다. 전화를 끊는다. 학교 정문 앞으로 학부모들이 몰려온다. 문예창작과 실기 시험이 끝난 때문이다. 나를 기다리는 이는 없다. 엄 씨는 깜박했다며, 지금이라도 마중 나가겠다고 말한다. 나는 꺼지라는 말을 아주 매우 정말 완곡한 어투로 전한다. 그는 알았다면서, 대신 집에서 맛있는 걸 해먹자고 했다.

 

그리고 병원에 갔다 왔다고 그는 말을 잇는다. 호르몬 주사 맞는 날이라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이해한다는 듯이. 그의 성이 진짜 ‘엄’이고 이름이 ‘마’이면 이런 얕은 죄책감조차 느낄 필요가 없다. 단지 나는 진짜 여성인 진짜 엄마와 구별하기 위해 부를 뿐이다. 엄 씨 성을 가진 ‘마’라는 사람이라고.

 

애인은 고생했다는 카드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인 바닐라 라떼 교환 쿠폰을 보냈다. 그에게 전화를 걸고, 시험 시제가 뭐였느니, 어떤 걸 골라 어떻게 썼는지, 기분은 어떤지 시답잖은 애기를 주고받는다. 이번에도 엄마를 죽였느냐는 말에 나는 죽였지, 그래도 이번엔 잔인하진 않아, 라고 말한다.

 

그러지 말라니까. 너 그러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 책에서 맨날 죽을 걸. 소설에서 실제 인물 죽이는 거, 그거 저주 같은 거나 마찬가지래.

 

누나도 미신 같은 걸 믿는구나.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나는 웃음으로 대화를 갈무리한다.

 

신호등 앞에 선다. 차는 적은데 8차선 사거리라 신호등이 여기저기 버티고 있다. 뒤로 학부모와 학생들이 메뚜기 떼 마냥 달라붙는다. 초록불로 바뀐다. 얼른 애인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들어선다. 생각한다. 이 골목에서 처음 엄 씨를 보았을 때를. 엄마와 아버지가 합의 이혼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엄마는 다짜고짜 1층 현관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무거운 거라도 들고 있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계속 빨리 내려와 봐, 말만 반복했다. 나는 엄마를 마중하기 위해 나갔는데, 웬 사람이 그의 옆에 있었다.

 

네가 재훈이구나.

 

웬 사람이 말했다.

 

 

 

2

 

그년을 엄마라고 생각하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병원 내에 세정제 냄새가 진동한다. 엄마인지 엄 씨인지 모를 여자가 두고 간 과일주스 한 박스에 텅 빈 병들이 나뒹군다. 병원 5인실은 너무 작았다. 답답하고, 목에 무언가 걸린 느낌이다. 의식불명에서 깨어나 엄 씨를 그년, 이라고 발음하기까지 아버지는 무수한 고역을 치렀다. 6층에서 떨어졌으니 말이다. 처음 아버지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당신이 준비하던 공인중개사 시험에 떨어졌다는 줄 알았다. 그래서 아빠야 매번 떨어지잖아, 했을 때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언제 또 이런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공인중개사 시험 얘기하는 거 아냐? 엄마는 아니라고, 백병원 응급실로 오라며 말끝을 흐렸다. 네 아빠 아직 안 죽었어.

 

아버지가 자살을 시도한 것 같다고, 의사는 말한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엄마가 엄 씨와 만나고 자신과 합의이혼을 한 후부터 줄곧 죽고 싶다고 말해왔던 남자이므로. 언제고 예고할 수 있는 일이었고, 다만 그게 그날이었을 뿐이다. 살아나겠지.

 

나는 병동 휴게실에 앉아 잠시 TV를 응시한다. 예능 프로그램은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주지 못한다. 아무 생각이 없다. 멍하다. 알림 소리에 문자를 확인한다. 오늘 왜 오지 않았느냐는 국어학원 보조교사의 문자다. 답장을 하지 않은 채 문자를 삭제한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부모의 돈을 뜯어내며 학원을 다니는 나다. 그 학원비의 절반 이상을 책을 사는 데 쓴다. 일반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읽는다. 그저 시험이 싫어 생긴 버릇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학원에는 다음 달에 수업료 나머지를 내겠다고 미루고 미뤘다.

 

처음으로 나의 만행이 드러난 날(이라고 까지 하면 좀 어투가 세지만), 아버지는 세무조사하듯 나를 낱낱이 파헤쳤다. 모든 용돈이 다 끊겼고, 통금과 외출제한도 부활했다. 아버지에게 맞는 건 물론이었고, 그의 새로운 주사에 남은 가족은 시달려야 했다. 온 집안을 부수는 것도 모자라 엄마를 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말리는 나를 때리기도 했다. 아니, 그건 ‘때린다’라는 세 글자로 감히 말할 수 없는 지옥이었다. 그 때문에 엄마는 중증 우울증을 앓았고, 내가 맞든 말든 아무 표정 없이, 동물의 왕국을 보듯 관망했다. 조심스레 가방에서 <황금나침반> 2권을 꺼내 읽는다. 들키지 않아야 한다.

 

연락을 받고 처음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엄마와 엄 씨는 수술실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엄 씨를 본 건 그때가 세 번째였다. 퇴근하는 엄마를 마중 나갔을 때, 또 한 번은 엄마와 영화를 보고 나서 우연찮게 만났을 때였다. 엄마는 나와 엄 씨 간의 침묵을 견디다 못해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이미 이혼까지 다 정리가 된 일인데 네 아빠 혼자서 저 난리를 피운 거라는 둥. 나는 다시 엄 씨를 바라보았다. 실핏줄이 터져 붉게 물든 그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은 채 내 주위의 허공만 더듬었다.

 

 

 

3

 

아버지에게 저녁 식사를 갖다 주고 탕비실에 돌려다놓는다.

 

병실에 돌아와도 아버지는 여전히 제자리에 누워 중얼거리기 바쁘다.

 

그년은 엄마가 아니야.

 

저 갈게요, 인사를 해도 아버지는 바로 누운 채 그년, 그년, 이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4

 

그날 밤, 재훈이라고, 엄 씨에게 이름이 불렸을 때 내 삶에 기다란 금이 갔다. 엄마는 뭐하냐고, 나더러 얼른 인사하라고 했다. 나는 멀뚱히 눈을 가늘게 뜬 채 엄 씨를 바라보았다. 그는 괜찮다고, 밤중에 ‘남의 집’에 온 자기 잘못이라고 하며 악수를 건넸다. 나는 마지못해 그의 손을 잡았다. 차갑고 딱딱했다. 컸다. 곧 삭아 부러질 나뭇가지 하나를 움켜쥔 느낌이었다. 거친 손바닥과 손가락에 핀 굳은살에 손끝이 닿았다. 기묘한 경험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안녕하세요, 한 번으로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버지는 해외출장을 간 상황이었다. 집엔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내가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할 때까지 거실에서 TV를 보며 떠들고, 웃었다. 엄마가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했을 때를 떠올린다. 뱃속에서 엄마와 밀담을 나눈 이후로 가진 첫 밀회였다.

 

새벽에 잠이 깨 부엌에 물을 마시러 갔을 때, 나는 열린 방문 틈으로 엄마와 엄 씨를 발견했다. 둘은 상대의 옷을 천천히 벗겨가며 애무하는 중이었다. 나는 물을 마시러 나온 것임을 잊고 그 틈을 엿보았다. 손이 가슴과 사타구니를 연신 오가고 방문을 닫으면 들리지 않을 신음소리가 미약하게나마 허공을 배회했다.

 

여자친구는, 트랜스젠더야. 엠티에프, MTF. 그리고 레즈비언.

 

다음 날 엄 씨가 떠나고 난 점심 때 엄마가 말했다.

 

그렇게 안 보이던데. 남자에서 여자가 됐는데, 똑같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거지?

 

남잔데 여자가 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여자였는데 생물학적으로 남성으로 태어난 거지.

 

무슨 사탄의 저주도 아니고. 그런 사람하고 왜 만나? 그냥 아빠랑 사는 게 더 낫겠다.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이혼 얘기가 오갔을 때였다.

 

함부로 말하지 마. 좋은 사람이야. 누구에게든.

 

나한테도?

 

그래, 심지어 너한테도.

 

뭐하는 사람인데?

 

소설 쓰는 사람이야.

 

무슨 소설?

 

그것까진 몰라. 내가 책 읽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어떻게 만난 거야, 둘이?

 

서점에서. 라페스타에 중고서점 있잖니.

 

엄마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사람이 보여서 무작정 따라갔어. 책이면 어때. 책이야 읽으면 되는 거지.

 

엄마는 잠시 말을 아끼다 생각났다는 듯 말을 잇는다.

 

그래, 너 소설 좋아하지? 엄마 좀 도와줘. 그 사람이랑 책 얘기할 때 말할 게 없더라. 계속 응, 응, 그렇구나, 그래? 이 지랄만 하다보니까 무슨 말 못하는 강아지하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 나는 엄마의 성공적인 연애를 위한 책사가 되었다. 좋아하는 장르와 작가를 확실히 하고, 거기서 유명한 작품들 몇 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거나 읽으라고 했다. 갈수록 엄마는 밝아졌다. 집에 아버지가 없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엄 씨와 만나면서 새 삶을 되찾은 양 늘 분주했고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어느 날 엄마는 치킨 한 마리 쿠폰을 보내며 머잖아 그 사람, 엄 씨를 집에 초대할 거라고 말했다.

 

재훈아, 안녕.

 

이후로 엄 씨는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자고 가는 것도 예사로웠다. 나는 종일 방에서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애인과 통화하느라 그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하루에 딱 한 번, 같이 모여 먹는 저녁식사 자리가 불편했다. 아버지가 출장에서 돌아오기까지 이틀이 채 남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그리고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혼자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쯤 엄 씨가 입을 열었다.

 

재훈아, 너 소설 쓰지 않을래?

 

 

 

5

 

엄 씨는 신발을 정리하고 있다. 발부리가 집 안쪽을 향하게끔. 나는 아무 말 않고 그를 지나친다, 다시 되돌아본다. 신발은 왜 그렇게 정리해요? 내 물음에 그는 이렇게 정리하면 복이 들어온대, 대답한다. 미신 같은 거예요? 아줌마 미신이나 무당 그런 거 믿어요? 엄 씨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니 그냥, 빨간색으로 이름 안 쓰는 거랑 똑같은 거야, 말한다.

 

아직 결과 안 나왔니?

 

나는 무슨 말이냐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다.

 

대학 실기 말이야. 내가 보기엔 꽤 괜찮게 썼던 걸. 아버지의 죽음과도 연계 잘 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에서 죽는 건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엄 씨였다.

 

망한 것 같아요. 애초에 나는 글 쓰던 사람도 아니잖아요. 읽는 거랑 쓰는 건 다르죠.

 

엄 씨에게서 무료 소설 과외를 받게 된 건 순전히 엄마 탓이었다. 어차피 넌 공부로 좋은 대학 못가니까, 네가 좋아하는 책 읽으면서 글도 써보고, 그러다 운 좋으면 인서울 해서 네가 원하는 거 할 수도 있고, 그런 논리였다. 맞는 말이라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어차피 수시 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한 번이라도 해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그 여자한테 돈 주려고 그러는 거잖아. 소설 과외 핑계로.

 

엄마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가난한 사람이야, 그렇지만 똑똑하고 인성 갖춘, 이라는 말만 되뇌었다. 나는 나한테 돈 주면 내가 알아서 좋은 선생 골라 과외 받을 거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학원비로 책을 몰래 사댔던 사건이 발목을 붙잡았다. 결국 나는 엄마의 말을 따랐다. 엄마의 말대로 정말 엄 씨를 믿어볼까, 그에게서 제대로 소설을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다만 엄마가 죽을까봐 두려워서였다. 엄마의 연애까지, 사랑까지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것들에 크게 데인 사람이므로.

 

둘은 크게 차이 없어. 읽는 사람이 쓰고, 쓰는 사람이 읽는 거니까.

 

아줌마, 과외생 저밖에 없죠? 문예창작과인가 뭔가, 거기 애들 보내려고 홍보하고 찾아다니는 것 같던데. 애꿎은 애들 인생 망치려고 하지 말고 엄마한테나 잘해줘요. 괴롭히지 말고, 울리게 하지 말고, 화내지 말고.

 

엄 씨는 페브리즈를 뿌리며 여전히 신발을 정리한다.

 

나는 잠시 방문 앞에서, 엄 씨는 현관 근처에 앉아있다.

 

내가 그렇게 싫으니, 그래....... 나도 그만큼 네가 싫어.

 

난 아줌마가 그냥 평범한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나는 밀려오는 울음을 애써 억누른다.

 

아니, 그냥 난 엄마하고 아빠가 있는 게 좋아요.

 

엄마가 두 명이면 어때. 그런다고 세상이 망하진 않아.

 

적어도 내 세상은 망할 것 같아요. 씨발. 난 어렸을 때처럼 엄마 아빠가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고, 엄마가 필요할 땐 엄마를 찾고 아빠가 필요할 땐 아빠를 찾고 싶어요. 부모는 자식 먼저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 여자도 아닌 게.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벌어진 문 경칩 새로 들어오는 엄 씨의 울음을 듣지 않기 위해 먼저 울기 시작한다. 찰나, 어느 울음이 누구의 것인지 헷갈린다. 그만큼 많이 울었다. 운다, 라고밖엔 설명하지 못할 행위이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방을 나와 엄 씨가 있던 현관으로 다가선다. 모든 신발들이 집 안쪽을 향해 정렬해있다. 나는 신발들을 마구 뭉개고 짓밟고 거울에 집어던지고 난장을 피운다. 개중엔 내 것도 있고 엄마 것도 있고 아버지 것도 있고, 심지어 엄 씨의 것도 있으리라.

 

엄 씨가 엄마와 함께 돌아온 건 늦은 저녁때다. 닭도리탕을 해주겠다고 엄 씨는 말한다. 엄마는 나를 보고 기대되지 않느냐면서, 얼른 수저하고 앞그릇 좀 가져오라고 성화다. 그리곤 케이크를 꺼내 보였다. 갑자기 웬 케이크냐고 묻자 엄마는 곱게 접은 종이 한 장을 내민다. 펼쳐본다. 혼인신고서다. 자세히 보니 진짜가 아니다. 엉성한 레이아웃에 맞지 않는 글씨체와 폰트, 구글에서 아무 거나 갖다 붙인 붉은 도장까지.

 

가짜잖아.

 

나는 말했다.

 

아무렴 어떠니. 우리에게만 의미 있으면 되지.

 

아빠는?

 

한 달 정도 더 있어야 한대.

 

 

 

6

 

그럼 저 사람은?

 

나는 엄 씨를 가리킨다. 그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반응이 없다.

 

다만 엄마만 화를 내며 지금 누구한테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거냐고 되묻는다.

 

진짜 여자도 아니잖아. 그 혼인신고서처럼 가짜지.

 

그릇이 날아온다. 어묵 무침이 머리부터 온 몸에 튄다.

 

그런 말, 너, 엄마한테 하는 거, 아니야. 아니라고. 날 살려낸 사람이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엄 씨는 저녁이라도 먹고 가라고 말한다. 무시한다.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7

 

닭도리탕을 먹으라고 하던 날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뒤다. 열린 방문으로 부엌이 내다보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식탁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엄마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묻고, 뒤이어 엄 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집안을 샅샅이 뒤진다. 어디 숨어있진 않을까, 우리 집에서 나갔을 리 없다는 이상한 확신에 찬 상태로 엄 씨를 찾는다. 부엌에 딸린 방을 연다. 주식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가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에게 퇴원 했느냐고 묻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여전히 흐느끼며 울고 있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나는 엄마에게 엄 씨가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그는 몰라, 한 마디를 내뱉는다.

 

네 아빠랑 다시 같이 살기로 했다. 너 원하는 대로 됐어. 엄마 한 명, 아빠 한 명.

 

그 사람은 어디 갔는데?

 

아직까지 사람이라 불러줘서 참 고맙구나.

 

엄마는 나를 노려보듯 쳐다본다.

 

아빠는 한 달 더 있어야 한다며.

 

한 달 더 있을 돈이 없어. 쫓겨났다.

 

무심코 엄 씨에게 돈이 있지 않을까, 돈이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의 밀려난 소매에 드러난 자해 자국과 주저흔을 본다. 저러다 죽겠다, 라는 결론에 이른다.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 고양이 마냥 우는 모습이, 그렇게 낯설어보였다. 누군가를 그렇게 떨리도록 사랑한 사람. 나는 엄마에게 엄 씨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재촉한다. 기존 번호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제 핸드폰을 내게로 밀친다.

 

엄 씨의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처 목록을 샅샅이 뒤진다.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다 엄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냐고 묻는 그의 말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아들,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 나는 엄마 아들이요, 라고 대답한다. 한참동안 건너편에선 말이 들리지 않는다. 계속 되는 정적에 나는 애가 탄다.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순간 몸이 붕 떠오르더니 이내 깊이 모를 심연 속으로 추락한다.

 

눈을 뜬다. 손에 핸드폰이 들려있다. 키패드에 낯선 번호가 보인다. 무작정 전화를 건다. 엄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재훈이니?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줌마 지금 엄마랑 장 보는 중이야. 먹고 싶은 거 있어? 곧 저녁인데.

 

......없어요.

 

통화를 끊으려다 엄 씨의 목소리가 재빨리 끼어든다.

 

결과는 나왔니? ......말하고 싶을 때 말해주렴.

 

아줌마, 죽을 때까지 엄마 옆에 있을 거예요?

 

나는 입을 뗀다.

 

아니잖아요. 언젠간 헤어질 테고 그날엔 정말 엄마가 죽을 지도, 몰라요. 친아들인 나한테도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 아줌마를 받아들였는데, 그래서 조금 행복을 알아가는 중인데....... 난 엄마를 살릴 수 없어요. 20년 넘게 같이 살았지만 여전히 낯을 가려서. 영정사진을 뒤집어 놓아야 할지도 몰라요.

 

상대편 저쪽에선 말이 없다.

 

떠날 거면 지금 떠나요. 조금이라도 이를 때 떠나야 엄마 도와주는 거예요.

 

나는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는다. 잠시 방 안을 둘러보고 침대 끄트머리에 걸쳐 앉는다.

 

문자 알림이 울린다. 엄 씨겠지, 생각하다 무심코 화면을 클릭한다. OO대학교 실기고사 결과가 나왔다는 내용이다. 나는 천천히 링크를 누르고 수험번호 등 개인 인적사항을 입력한다. 나는 확인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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