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사내계명

2020.05.01 21:2905.01

「…가 떨어졌다!」

무전기가 울부짖었다. 남자는 치고 난 뒤의 종처럼 징징 울리는 머릿속을 가다듬었다. 새까맣게 탄 흙이 한 줌 귓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세상이 한 발짝 다가왔다. 익숙해졌다고 이미 백 번, 천 번은 더 생각했는데. 실은 그저 잊는 거였다.

“수신 상황이 안 좋다. 반복하라!”

수화기가 온통 침으로 범벅이 되었다. 동시에 코를 찌르는 쇠 냄새. 제발 길이 덜 든 기계에서 나는 냄새이길 그는 바랐다. 그런 남자를 놀리듯 시종일관 짙고 매운 연기가 그들을 덮쳐 눌렀다.

「로그가 떨어졌다! 반복한다, 로그가 떨어졌다! 디버깅 구역은 다음과 같다: 8행…!」

남자는 표정이 얼굴을 뚫고 나갈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그리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본부의 지령을 귀담아들었다. 휘하 부대원들이 겁먹은 눈으로 전장과, 지휘관을 연신 번갈아 보았다. 죽음의 공포가 그들을 한쪽으로, 반면 심장이 갈가리 찢어지도록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또 그들을 다른 쪽으로 내몰았다. 언제 허리부터 뚝 동강 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저 언덕까지는 안전하다! 진입! 진입!”

온몸이 칼끝처럼 곤두서있던 탓일까, 부대원들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뛰어나갔다. 발가락이 꺾이고 다리가 온통 욱신거리도록 달려 나갔다. 차례차례 엄폐물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남자는 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전부 금방 죽을 것처럼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몸이라도 혹사시켜야만 그들을 사로잡은 공포를 잠시 떨쳐낼 수 있었다.

“좋아! 작전 목표가 눈앞이다! 저기 고지 보이나?”

방탄복 구석구석에 전투의 찌꺼기가 달라붙었다. 피나 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부대 일동을 끌어들이는 죽음의 손길처럼 자꾸만 걸음을 늦추었다. 그것을 잘 아는 그이기에 억지로 주의를 환기해야만 했다. 부대원들이 꾸역꾸역 시선을 맞추었다. 몇의 눈동자에는 열망이, 몇의 눈동자에는 희망이, 몇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여기서 능선을 타고 노출된 지형이 있다. 그 말은, 사실상 그곳만….” “버그다!”

엄폐물 가장자리서 노심초사 주위를 경계하던 병사였다. “버그다!”

 

두 팔, 두 다리. 큰 모양만은 인간과 같았다. 그러나 말장난에 불과했다. 언제는 팔이 다리의 위에 있었다. 언제는 팔이 다리에서 나왔다. 언제는 팔이 다리보다 앞에 있었다. 그다음은 다리가 팔보다 멀찍이 위에서 흔들거렸다. 보드라운 살결, 딱딱한 갑각, 미끌거리는 비늘 혹은 물혹처럼 늘어진 주머니. 우거진 녹음의 색, 투명한 열대 바다의 색, 우중충한 흑적색, 맹렬한 불똥의 오렌지색, 정신 사나운 노란색…. 그게 버그였다. 시종일관 종잡을 수 없는 모양으로 성질로 변화하는 결코 종잡을 수 없는 적.

우리는 고정되지 않을 것이다!”

버그에 한해서는 그들의 위턱과 입과 수축공을 각각 구분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티눈을 뺀 구멍처럼 보이는 좁쌀만 한 곳에서도 놈들의 목소리가 각기 흘러나왔다. 부대원들이 허겁지겁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버그들과의 싸움엔 이미 이골이 나 있었지만, 백 퍼센트 완전한 제압은 어려웠다. 버그들이 혜성처럼 다가왔다. 신축성 있는 몸으로 부대원 몇을 통째 덮쳤다.

“아아악!” “거리 유지해! 건드리면 같이 끌려들어 간다!”

남자는 말하면서도 스스로 이를 악물었다. 뒷걸음질 치는 제 발을 손수 잘라버리고 싶었다.

“사격 개시!”

각자 거머쥔 어썰트 라이플(Assert Rifle)이 미친 듯이 화염을 토해냈다. 총알을 뱉는 소리가 귀청을 착암기처럼 깎아먹었다. 키에엑. 키에엑. 판에 박은 듯 덧없고 허무한 신음과 함께 서서히 버그들이 기세를 잃었다.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그 윤곽 안에 그러나 빨려 들어간 부대원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함께 생사를 넘나들며 싸우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작 촌각을 사이에 두고 스러졌다. 빛바래고 잊혀졌다. 그 이름을 기리며 눈물을 삼키기보다 먼저 개머리판을 휘두르고 탄창을 갈아 끼우도록, 그러나 그들은 훈련받았다. 전투에서 승리할수록 그들은 점점,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패배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재현이 안 된다고 합니다.”

통신병이었다. 납빛으로 질린 얼굴을 하곤 더듬더듬 비보를 전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론, 솔직히 예상 못 한 일도 아니었다.

“좋아, 잘 들어라! 괜한 생각하지 말고!”

 

남자는 부대원들의 이목을 끌었다. 목이 아팠다. 성대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조만간 반복적으로 함수 호출이 이루어지면 또 로그가 산더미처럼 떨어질 거다. 거기에서 어디가 안전하고 어디가 그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게 우리 일이다.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봐라, 고지가 저 앞이야! 여기만 해치우면 된다! 그러니 앓는 소리 내지 말고, 쓸데없이 들뜨지도 마라,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제대로 하면 된다!”

말주변이 별로 없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종종 말보다 많은 것을 서로에게 기대야 하는 때도 있다. 부대원들은 군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좋아, 일단 1차 의심 로그는 확보했으니 포격 요청부터 하도록! 인가코드 몬스터-컨피던스-이온음료, 비율은 2:1:1로…!”

통신병이 쥔 수화기에서 잡음이 새어 나왔다. 무언가 새로운 명령이 있다는 뜻이다.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가?” 「상부의 명령입니다. 후퇴하십쇼!」

남자가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그게 무슨 뜻인가? 로그가 안 떨어졌어?” 「아닙니다. 로그는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차분해졌다. 침착해진 것이 아니라, 그만큼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제 앞에 놓인 명령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더불어 그것이 일선의 장병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까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예외처리 걸고 넘어간다는 판단입니다. …상부에서는, 치명적인 것은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제 딴에는 명령의 당위를 보충한답시고 덧붙인 말이다. 그러나 남자의 입장에서는, 아니 방금 전까지 버그의 울부짖음과 고기 타는 냄새에 휩싸여 악전고투를 벌이던 어느 누가 듣더라도,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인터페이스 관련이 더 시급하다는 판단입니다. 후퇴하여 부대를 재배치….」 “웃기지 마라!”

손바닥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남자는 살이 하얗게 번지도록 수화기를 움켜잡았다. 찢어진 전투복 틈으로 힘줄이 울긋불긋, 악귀처럼 솟는 것이 보였다.

“치명적인 게 아니라고… 치명적인 게 아니야!”

부대원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남자와 눈을 맞추었다. 기억에는 있는데, 이 자리에는 없는 얼굴들이 있었다. 얼굴은 떠오르지만, 목소리는 어떻게 해도 떠올릴 수 없는 이름들이 있었다. 장병들은 하나둘 눈을 돌렸다. 후퇴한다니,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니, 그러나 이때까지 잃은 이들은 그렇다면 무엇이 되는 셈인가. 치명적이지 않은, 아무도 죽일 수 없는 목표인데 어떻게 그것이 이미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도 괜찮단 말인가. 이런 때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남자가 수화기를 내던졌다.

“고작 예외처리 한 번 하려고… 이 개 같은 것들, 개만도 못한 새끼들… 치명적인 게 아니라서 고작 예외처리, 고작 예외처리 한 번 하려고!”

 

*

 

“야, 야―일어나. 야!”

그는 꿈뻑꿈뻑 흐린 시야를 씻어 내렸다. 모니터의 빛이 부옇게 주변을 밝혔다.

“가지가지 한다. 음료 뽑아올 동안 자고 있어?” “어?”

“어는 무슨 어야. 이거나 마셔. 너 것까지 갖고 왔으니까.”

그는 동료가 건네는 것을 받았다. 업계에서 두 캔 이상을 한 번에 마시면 심장이 간지러워진다는 소문이 난, 사실 에너지 음료보다는 독약이 아닐까 싶은 물건이었다. 순간 꿈속에서 지휘관이 애처롭게 외치던 인가 코드가 떠올랐다. 몬스터-컨피던스-이온음료!

“…난 됐어. 졸리면 찬물이라도 맞고 오지 뭐.” “그래라.”

으흐, 이 기분. 역시 수명 안 깎아 먹으면 이 바닥에서 일 못 하지. 캔 꼭지 본인도 놀랄 속도로 두 병을 내리 마셔버린 동료의 평이었다. 건강한 삶을 즐기기 위해 일하는 것인데, 정작 건강하지 못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부조리하다. 하면 하지 않고, 그런데 정작 하지 않으면 또 무언가를 하게 되고. 삶이란 원래 힘에 겨운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if … unless문처럼.

당분간은 침묵. 사무실 등마저 먼저 퇴근해버린 와중 둘이 각각 제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만 울렸다.

 

“뻐근한데, 농담이나 한마디 해볼까?” “해 봐.”

난데없고 의미 없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둘의 혀는 휘영청 뜬 달보다도 하얀 죽은 산호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어차피 모두가 잠든 시각 둘만의 농을 주고받더라도, 누군가 해 입는 것은 아니다.

“후배가 문서를 자꾸 이상하게 만드는 거야. 그래서 선배가 하드를 하나 건네주면서, 그 안에 형식이고 뭐고 다 있으니까 이렇게 말했지. ‘야, 포맷 지켜!’ 그리고 잠시 뒤 돌아와 보니 어떻게 됐게?” “상상도 할 수 없군. 어서 결말을 알고 싶은걸?”

그는 입가를 구불거렸다. 워낙 오래 같이 있다 보니, 이미 한 농담과 일단 갈무리해둔 비장의 농담들을 서로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설령 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해주는 사이라는 것은 또 그 나름의 각별한 맛이 있을 것이었다.

“하드를 포맷한 거야.” “응?”

“포맷 지켜, 포맷 시켜!”

그는 뒤의 두 마디를 적당히 뭉개 발음했다. 요지는 그거였다. 포맷이 명사로 쓰일 때와 동사로 쓰일 때, 그리고 급하게 말을 주고받다 보면 으레 생기는 “내가 그렇게 발음했단 말이야?”와 “아무리 들어도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의 환장할 협업.

“푸흐흐흐. 농담이라기보다는 잔혹사인데.”

“후배 잘못도 있지. 뭐, 급하게 이것저것 하다 보면 잘못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잠시 둘 다 웃음. 각기 앞에 ‘박수’나 ‘웃음’ 따위의 프롬프터가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서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시름시름 떠오른 달을, 모니터 야간 모드의 침침한 누런빛이 야금야금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사신의 대낫처럼 그 말이 휘둘러졌다.

“그런데 이것 좀 봐.” 동료는 제 몫의 모니터를 가리키며 손짓했다.

그는 궁둥이를 떼고 지층처럼 억눌린 등뼈를 구부렸다. 눈을 들이밀었다.

 

“이거 변수명이 왜 이래?” “왜, 또 혼자 매개변수 다섯 개쯤 전달해?”

그는 부러 익살을 떨어보았다.

“여섯이야.” 동료는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그건 뭐 익숙해졌고, 이것 좀 봐봐.”

“leviathan이네.” 변수명으로 쓰기엔 조금 화려했다. 그 역할을 직관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 쪽에선 어제 ‘magicwand’나왔는데.” “그래?”

도리어 화두를 꺼낸 동료 쪽에서 호기심을 보였다.

“그건 또 뭐하는 변수인데?” “몰라, 시발. 뭔가 하겠지.” 욕설은 민들레 씨앗처럼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아무튼 레비아탄은 큰 물짐승인데, 뼈대는 놋처럼 강하고 갈비뼈는 쇠빗장과… 어라, 이건 베헤모스였나?” “아니 뜻이야 내 알 바 아니고. 니 매직완드처럼 말이야.”

동료는 손사래까지 치며 질색했다. “레비아탄 이거 뭐 하는 변수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너 쪽에선 이런 거 있었어?”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눈이 퍼렇게 착색되도록 종일 LED 모니터만 바라보는 방향으로 원치 않은 진화를, 그것도 한 쌍으로 묶여 이루어낸 둘이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행동은 때로 바깥세상에서 으레 쓰이는 몸짓과 달리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가령 방금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뜻한 것은, ‘그런 게 없었고 있었어도 난 찾지도 못했을 거다.’에 가까웠다.

“아마 만든 사람도 모를걸. 뭐 하는 변수인지.” “이사회 말이야?”

“우리 회사, 생각해보면 심하게 이상한 곳 아니냐?” 그가 잠시 화제를 돌렸다.

“스타트업도 아닌데 왜 이사님들이 직접 코드 짜고, 우리는 뒤치다꺼리만 맡지?” “이사회야 양반이지. 이건 그 안에서도 탑이야, 탑. 아마 대표이사님이 직접 했을걸.”

침묵. 그것으로 둘은 의견의 합치를 보았다.

“자기가 직접 수정까지 하시지, 왜 유지보수 인원만 잔뜩 고용하는 거람? 듣자 하니 신입들은 소스 코드도 다 이해 못 한다고 하더라.” “우리는 해? 이거 소스 코드?”

프로그래머로서, 남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뜯어고치는 고충을 잘 아는 둘이었다. 말없이 또 웃어넘겼다. 그 뒤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 명은 지금 만난 leviathan과, 다른 한 명은 어제 만나본 magicwand와의 추억을 각기 곱씹었다.

 

“대표이사님이랑 나머지 이사님들, 언제까지 그럴 것 같냐?” 이번에는 그가 침묵을 깼다.

“난들 아나. 만날 서로 으르렁대는 것 좀 그만했으면 좋겠네. 밑에 우리나 힘들지.”

동료는 아까 가져온 음료를 홀짝였다. …두 캔을 한 번에 다 마신 게 아니었나? 그는 의미 없이 궁금해졌다. 1.5캔, 1.75캔, 혹은 1.875캔을 마셔도 심장이 간질간질해질까. 정확히 딱 두 캔을 마셔야만 그렇게 되는 걸까. 혹은 더운 날 마시면, 추운 날 마시면, 슬픈 영화를 보고 마시면, 월급이 두 배로 올랐다는 것을 안 직후 마시면….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하나 같이 시험해보고 싶진 않았다.

“그러게 같이 그냥 좋게좋게 가면 될 것을. 왜 대표이사님 혼자서 다 끌고 가려는지 모르겠어. 이게 무슨 난리야.”

그는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았다. 가볍게 맞장구치며 손목을 풀었다.

“난 그게 제일 웃기더라. ‘이사회가 자기 시장을 횡령한다’고 했든가? 애초에 그게 맞는 표현이긴 한가. 시장이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만들었다고 해도 혼자 다 처먹을 수도 없는데. 결국 다 같은 풀에서 엎치고 덮고 제로섬 게임이지.”

“그 결과가 이거지 뭐. 야근, 초과근무, 잔업, 천년만년 이어지는… 나 이거 분명 다른 데서 본 코드인데.”

대화의 흐름이 결국 고꾸라졌다. 둘이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픈 주제로. 그는 동료의 모니터에 떠오른 코드를 힐끔 보았다.

“웩. 그런 걸 어디서 봐? 회사 창고에, 천공 카드랑 펀칭 된 테이프 쌓인 데서?” “응.”

전부 농담이었는데 동시에 전부 진짜였다. 그는 이 무시무시한 현실에 치를 떨었다.

“…뭐, 코드 남의 거 복붙하면서 만들었겠지. 아예 베끼거나.”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자기가 기초부터 다지지 않고 누가 반쯤 해놓은 프로그램을, 아니 그러면 차라리 낫지 하나의 탄탄한 구조로 된 것의 일부만 동강동강 잘라 얼기설기 기우면 반드시 문제는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둘은 주거니 받거니 제가 지금까지 봐 온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나열했다.

“쓸모없는 코드가 잔뜩 있더라. 뭐가 문제인지 붙잡고 종일 씨름하다가 나중에 쓰레기장에서 헤엄치던 거 알고 다 잘라버렸어.”

“변수 의미도 다 어긋나고, 원본 실수 그대로 업어오니까 yield를 yieId로 써놓은 거 있지.”

“실수라고? 소문자 l 들어갈 자리에 대문자 I 넣으려면 실수를 꽤 정교하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실수겠지. 응, 부디. 그냥 그런 거로 하자고, 우리끼리는.”

하긴. 그는 기꺼이 수긍했다. 굳이 그런 억측이 없어도 둘은 며칠 밤낮을 내리 대표이사를 씹어대며 보낼 수 있었다.

 

“노인네 하여튼. 워터폴(프로젝트 방법론의 하나)로도 개판치시면서 애자일은 뭔 놈의 애자일이야.”

“너 혁신사고 강사님 왔을 때 있었냐? 참 없었지 병가 내서. 난 진짜 다 잊어먹어도 딱 한 가지는 못 잊겠다. ‘팀을 무조건 잘게 쪼개고 설익은 결론을 닦달한다고 그게 애자일이 아닙니다. 파티션을 없애고 영어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사무실에 맥주 기계를 들여놓는다고 무작정 자유로운 분위기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니라 대표이사님이 자기 시다바리들 데리고 들었어야 하는데 말이야!”

“요즘은 또 공유오피스니 뭐니 헛소리하시던데, 그게 뭔지도 정확히 모르나 봐. 멀쩡한 사옥 팔고 진짜 옮길 거 아니면.”

“대체 그런 사람이 이런 코드는 어떻게 만들었, 아니 그런 사람이라 이런 코드 만든 건가?”

수수께끼 같은 물음이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생각하다 보면 닭이 언제부터 닭이고 달걀은 언제부터 달걀인지, 결국은 존재론적으로 으슥한 논리의 막장에 부딪히고야 마는 그런 질문.

“분명 종이테이프에 펀칭하면서 프로그램했을 거야. 참 아까 너가 진짜 있다고 했지.”

“이것 좀 봐, 시발!”

동료의 주먹이 기적적으로 궤도를 바꾸어 책상을 내리쳤다. 시원스레 쾅쾅 키보드를 갈겼다간 나중에 비품비의 백사십사 배쯤 되는 눈총을 윗선으로부터 받기 일쑤였다.

“이건 정말, 아, 열 받네. 왜 표준 라이브러리를 안 썼지? 다 그냥 있는 기능인데 왜 굳이 자기가 만드냔 말야?”

그가 동료의 어깨를 토닥였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자주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진정해. 이 양반이 만드실 때는 라이브러리에 아무 것도 없었을걸.”

“그래, 그건 알겠단 말이야. 회사 연표가 잘 처먹고 쑥쑥 자란 회충보다 기니까 좀 오래된 건 그렇다고 쳐. 표준 생기기도 전이라고 하잔 말야. 근데 그럼 이 양반은 표준을 안 만들고 대체 뭘 만든 거야?”

둘은 각자 생각에 잠겼다. 위험한 일이었다. 대화는 잠시 일로부터 떨어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대화가 끊기면 저도 모르게 집중해버린다. 눈앞의 과제에.

또다시 자판 두들기는 소리가 적막을 뚫고 울렸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면 무섭지 않아?” 이번에는 동료의 차례였다.

“뭐가? 이 작업량이?” “우리 미래가.”

의외로 진지한 답이, 그것도 빠르게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순전히 시간 때우려고 말을 돌린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면 우린 평생 코더야. 뭐 물론 사전적으로 지금 코딩하는 사람이니까 맞긴 한데. 대충 뉘앙스란 게 있잖아 말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니 하는 버터 처먹은 말도 있고.”

코더도 따지고 보면 버터를 바른 이름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 좀 봐… 하고 말하면 넌 대체 이 프로그램 어딜 왜 봐야 하는지 감이라도 잡혀? 붙들어보면 어디가 문제인진 알고? 뭐 하는지도 모르면서 평생 눈앞 코드만 붙들고 낑낑대다가 대가리 다 굳고 나중에 해삼처럼, 코드 던져주면 허우적허우적 디버깅해서 토해내는 기계 되는 거야, 기계. 뭐 생각하는 것도 없고 안목도 없이 뱃살만 붙어서 늙으면 다른 데도 못 가. 그런 놈 누가 불러줘? 낸다고 누가 받아주고?”

“음, 그렇게까지 걱정이면, 지금이라도 이직 알아보는 게 어때?”

푸념이 어디까지 진심인지 알기 어려워, 그는 흡사 처음 만난 사람에게 예의를 차리듯 굴어버렸다.

“괜찮은 곳 많잖아. 여기만큼은 아니라도, 왜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이라든가. 아 요즘은 또 워라하(워크 라이프 하모니)인가. 대세니까.”

“어디 말하는지 알아. 나도 알아봤는데, 거긴 하기에 따라 여기보다 더 심하더라. 여섯 개 계열사 순환근속이래. 신선하지 않냐?”

순환근무나 순환전보는 들어봤어도, 근속이라니? 그는 호기심에 자판을 두드리던 손까지 멈추었다. 중괄호의 기둥과 세미콜론의 갈림길로 이루어진 악마의 미궁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언제나 정신을 꼭 붙잡고 있어야 했다.

“뭐, 처음엔 그룹 제일 낮은 데서 시작해서 나중엔 캐시 카우로 들어가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선형적으로 오르는 게 아니라 계속 그 여섯 개 뺑뺑이 돌면서 일하는 거야. 업종도 근무 환경도 다 다른데. 언제 어디로 갈지 정해진 게 없어. 니 말대로 제일 돈 못 버는 데서 꾸역꾸역 일하다가 갑자기 꿀 빠는 데로 가기도 하고, 반대로 될 수도 있고.”

“신선한데.” “소름 끼치지.” 동료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뭐야? 회사 도박하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월급쟁이가 꾸준히 월급 받으니까 좋지, 그러려면 그냥 하우스 간다 내가.”

미래가 없는 단순·반복 작업은 경계하면서도 한탕주의는 괜찮단 말인가. 그는 그네들의 미래가 위험하다는 동료의 말에 반쯤밖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어쨌든 늦은 밤이었고,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득실거렸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오.” “오.”

이번엔 둘이 동시에 화두를 던졌다. 입맛까지 다시며 각자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큰 거 찾았다. 야 대박이야.” “나돈데. 너 먼저 말해봐.”

겸손하게도 그는 선공을 양보하였다. 동료가 목을 가다듬었다.

“좋아. 나는… 방금 보니까, OS에서 반환하는 코드 검사가 안 돼 있어.”

“음, 좀 약한데?” 솔직한 감상이었다. “어느 게?” “전부 다. 모든 버전.”

. 그는 고뇌에 빠졌다.

“니가 이겼다.” “뭐? 그렇게 빨리 포기해?”

동료는 통쾌하다기보다 허탈하다는 표정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지면 온갖 욕설을 퍼붓지만, 그렇다고 아슬아슬하게 이겨도 자꾸만 미련을 남기는 그 본성이란 참으로 모순적인 것이다.

“넌 뭔데? 말이나 해봐 들어보게.”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후미진 데 보니까 이거 true가 0이고, false가 1이야. 그렇게 설정해놨더라.”

동료가 혀를 내둘렀다. 벌컥벌컥 들이켠 고카페인 수명 단축의 향이 진하게 풍겼다.

“그것도 만만찮은데, 왜 그렇게 빨리 포기했어?” “이 정도면 양호하지 뭘. true가 -1이고 false가 2이거나 할 수도 있었잖아.”

“진짜? 우리가 이제 거기까지 떨어진 거냐?” 동료는 기막혀하며 몸을 들썩였다.

“-1이랑 2가 아닌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할 정도야 우리가?” “…뭐, 굳이 따지면 올라왔지.”

그가 손짓했다. 사무실 한편을 통째로 아로새긴 창을 가리켰다. 불야성의 빛으로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예쁘지 않냐, 그래도?” 그는 코더 선언부터 이어진 동료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래. 실험이 하나 하고 싶어질 만큼 아름답네. 키워드는 중력가속도랑 충격량, 두개골.”

킬킬킬. 조금 전 동료의 말이 그랬듯 제 웃음의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었다.

“죽을 거야, 떨어지면.” “못 떨어지면 계속 살아버리지. 지금 우리처럼.”

울적하게 둘은 입을 닫았다. 슬금슬금 일로 복귀했다.

 

“…인클루드, 에스티디… 어… 아, 여기 있었구나!”

그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때때로 정열적인 몸짓까지 섞어가며. 그럴 때마다 동료가 움찔거리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산자에게 말을 걸고, 버그에게 모습을 드러내라고 위협하고, 변수의 역할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너무 즐거워진 참이었다. 그런 소소한 놀이도 없다면 진작 무직자가 되었어도 되었을 것이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어디 보자, 오호라, 인클루드가 또 있구나! 까다로운 친구로군. 그럼 여기 에스티디는… 음, 어디 한번 보자아, 어, 디, 있, 을, 까, 요….”

“아까 니가 올라왔다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다소 급조한 화두였다. 그만큼 내 혼잣말이 소름 끼쳤나. 그는 살포시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기관실이 나을 것 같지 않아?” 동료는 거꾸러진 엄지로 저 아래편을 가리켰다.

“…별로. 거긴 문제가 생기면 시설이 다이렉트로 뻑 가잖아. 손에 걸리는 책임이 다른데.”

“우린 소프트웨어니까 그럼 깨끗하다 이 말? 피장파장이지. 어차피 우리 프로그램으로 제어장치 돌리고, 프로그램 개판나면 물리적으로 끔찍한 꼴 되는 건 매한가지인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 아니 실은 거의 매일 밤 꾸는 악몽이었다. 종일 궁둥이를 혹사시킨 뒤 퇴근했다. 늘어지게 쉬는데 갑자기 전화기에 불이 난다. 어제 놓친 버그가, 어떻게 해도 재현할 수 없어 정말 끝까지 한다고 해봤는데도 나타나지 않던 버그가 그 사이 터졌다. 기계가 너무 많이 움직이거나 그 반대로 덜 움직였다. 의식도 못하고 자판을 두들기던 사이 저지른 부작위가 어느새 누군가의 죽음이 되어 제 뒷덜미에 얹혀 있었다.

“그래. 즐거워 보이긴, 아니 말이 좀 그런가? 우리보다 좀 더… 일터에 있는 걸 선호하는 것 같긴 하더라. 근데, 그래도, 너도 알잖아? 이미지라는 게 있잖아.”

 

편견은 어쨌든 편견이 될 만큼의 힘이 있기에 되는 것이다. 똑같은 업을 두고 한쪽은 ‘생산직 종사합니다.’, 다른 쪽은 ‘김치 공장 다녀요.’라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이 어감의 차이라는 것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거기 다니면서 그런 일을?’이나 ‘그러려고 거기 들어간 거야?’라는 말도 그다지 희귀한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들어와서 할 일은 아니지.”

그는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나 자책하면서도, 현실이 그러니까, 라며 합리화했다. 일전에 언급한 개방형 오피스니 뭐니 하는 난리에 파티션은 없어졌지만, 그가 있는 쪽에선 여전히 동료의 얼굴을 곧장 확인할 수 없었다.

“몸에서 나는 그 기름내랑 쩐내 하며, 하루종일 입에서 단내나고, 열 뻘뻘 올라오고, 힘들기도 엄청 힘들 거야.” “그래서 우리는, 그런 천한 일 대신 자랑스러운 업에 종사하는 건가?”

얼핏 힐난하는 투였지만 진심으로 그를 헐뜯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각 잡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엔 서로 너무 지쳐 있었다.

“내가 언제 그랬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따지고 보면, 그래. 우리도 네 말마따나 진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면서 이 일 하는 거지.”

여전히 한 줌 남은 자책감이 그의 혀를 길게 늘였다.

“말이야, 어? 저번에 이사 한 분 안 그래도 총대 멨다가 그쪽 분들 싹 다 대표이사님 눈 밖에 났잖아.” “저번이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저번인지, 그 전인지 다음인지도 모르겠네.”

사실 말하는 쪽에서도 헷갈리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했다.

“그게 아예 파벌로 갈렸더라고. 일전에 인사 이동할 때 보니까 반대표 던진 이사님들 라인탄 양반들은 죄다 기관실로 떨어졌어. 무서워 참.”

“쪼잔한 거지, 그냥. 여기가 무슨 동호회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렇게 할 건지 모르겠어.”

동료의 푸념이 막을 닫았다. 침묵이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야, 서로 지금 달라붙은 것만 해결하고 퇴근하자.”

그는 시계를 곁눈질했다. 매번 같은 시간, 분, 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가 막힌 우연일수도 있지만, 역시 언제 한 번 날을 잡아 동력이 다 떨어졌나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너무 바빠서 그럴 새도 없었다.

“벌써?” “우리가 언제는 다 끝내고 갔냐? 내가 보기엔 경제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생각보다 먼저 그의 몸이 반응했다. 맞아! 시야가 아래위로 거칠게 흔들렸다.

“아니, 그래도….” “왜? 지금 뭐 하길래 그래?” “그게 문제야.”

알쏭달쏭한 말이었지만, 동료는 금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컴파일러 경고가 너무 많아서, 내가 지금 뭐 하는질 모르겠어.” “줘 봐, 어디 보자. 어?”

몸을 기울여 화면을 넘겨보던 동료는, 돌연 바이스처럼 입을 꽉 다물었다. 동료의 안색이 디스플레이 야간 모드의 부연 질감으로도 감추지 못할 만큼 창백해졌다. 곤혹스럽게 자신과 모니터를 번갈아 살피는 그 표정을 그는 빤히 바라보았다.

“알아 나도. 이전 버전 붙들고 씨름하는 거.” “아 그래? 야, 어휴, 난 또, 야 식겁했네.”

동료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의자 등받이를 학대하다시피 몸을 파묻었다. 싸구려 지지대가 음산하게 삐걱거렸다.

“왜 굳이 그러고 있어 근데?” “이 버전이 관리자 인터페이스가 더 편해…. 보니까 지금 버전이랑 있는 문제도 똑같은 것 같고. 넌 뭔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가자고 그래?”

“나는 지금 돌파구를 하나 찾았거든!”

그 내용까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흐름상 듣기는 해야 할 말이었다.

“아무리 탐색기 돌려도 나와야 할 게 안 나오길래 드디어 얘가 미쳤나 했는데, 알고 보니 얘를 백슬래시(\)로 쪼개놓은 거 있지? 그래서 거기부터….”

주거니 받거니 떠들면서도 어영부영 일하다 보니 둘 다 사실 퇴근하려면 당장도 가능했다. 도리어 동료의 무용담을 내리 듣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쓴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오케이, 진짜 이제 갑시다, 깔끔하게 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니터가 꺼졌다. 이 지긋지긋한 것들, 이라고 고하듯 벌써 여기저기에 흐릿한 번인까지 생기고 있었다. 둘은 양팔을 각각 반대편 어깨 뒤로 넘겨 힘껏 구부렸다. 한쪽씩 팔꿈치를 잡고 등 뒤편으로 크게 당겼다. 뼈마디에서 과자 부서지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내일도 금방 오겠지.” “젠장, 그걸 굳이 다시 확인하고 가야겠어? 퇴근하는 마당에?”

때려치우고 싶다. 그냥 확 그만두고 싶네. 내가 여력만 되면 진짜 확! 질 나쁜 축음기처럼 둘은 똑같은 말을 조금씩 바꿔서 내뱉었다. 가방을 챙기고, 누전차단기를 내리고, 문을 잠그고, 창문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진짜, 아니 진짜로 이번엔 진짜. 솔직히 그만둬도 되지 않냐? 내 알 바도 아니잖아 어차피? 불쌍한 건 저 안에 든 놈들이지.” “그래도 어떻게 해.” 그는 창문을 열었다.

“불쌍하잖아.” 둘은 눈빛을 교환했다. 동시에 몸을 던졌다.

신비한 섭리가 작용하여 균형을 유지했다. 그들은 땅으로 곤두박질치지도 무작정 하늘로 솟구치지도 않았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무수한 입자, 그 각각이 별보다도 생명보다도 더 오래된 경이들이 공중에 머무는 둘을 켜켜이 둘러쌌다. 이윽고 둘의 머리 위로 빛나는 고리가 하나씩 떠올랐다. 그들은 눈을 되록되록 굴려 위편을 올려다보았다. 활시위에 달라붙은 벌레처럼, 까마득한 회사 건물의 바닥도 꼭대기도 볼 수 없는 어떤 중간쯤 되는 곳에 둘은 있었다.

“아버, 아니 대표이사님. 내일도 봅시다.” “그래요, 우리한테 신경이나 쓰면 말입니다.”

빌딩의 뿌리, 놋쇠 성문을 단 흑요석의 성채에선 유황 냄새가 들끓었다. 역한 증기가 무럭무럭 솟았다. 둘은 코를 감싸 쥐고 걸음을 재촉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공고] 2020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19.12.31 0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0
2604 장편 포츈 팰리스: 더블린 기적의 밤 1화 세레나 2020.05.25 2
2603 장편 꿈속의 숲8. 준비 ilo 2020.05.21 0
2602 단편 마음의풍경 2020.05.16 0
2601 단편 외상 김성호 2020.05.15 0
2600 중편 용의 아이 강엄고아 2020.05.15 0
2599 단편 엄 씨 김성호 2020.05.15 0
2598 단편 스포일러 거우리 2020.05.14 0
2597 장편 꿈속의 숲 7 - 이별 4 ilo 2020.05.11 0
2596 중편 마법사의 원 거우리 2020.05.09 0
2595 단편 퍼즐조각들 독스 2020.05.06 1
2594 장편 꿈속의 숲 6.- 이별 3 ilo 2020.05.03 0
2593 단편 황월영전(黃月英傳) (SF) 김달영 2020.05.02 1
단편 사내계명 거우리 2020.05.01 0
2591 단편 A3008-2036-5-3-confused2 리내 2020.04.30 0
2590 단편 렛잇고 보헤미안 랩소디 마피아책방 2020.04.30 0
2589 단편 마약의 오메가 니그라토 2020.04.30 0
2588 단편 광고 버전 창능 2020.04.30 0
2587 단편 아웃백 아메리카흰꼬리사슴 2020.04.29 3
2586 단편 생명의 오메가 니그라토 2020.04.28 0
2585 장편 꿈속의 숲-5. 이별 2 ilo 2020.04.26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