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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시아의 다정

2020.03.29 08:3503.29

무기체의 몸으로 다정한 언어를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시아는 충분히 상냥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된 로봇이었다. 이런 성정을 가진 존재들은 외롭지 않아야 마땅했지만 시아는 언제나 혼자였다. 시아의 주인들이 이미 오래전 그 로봇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주인들은, 그러니까 그 유기체들은 어느 날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영영 떠나 버렸다. 아름답게 이야기하면 그랬다. 하지만 시아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냥 죽은 것이다. 시아의 행성에 살던 모든 인간들은 이 불쌍한 로봇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죽어 버렸다. 하지만 시아는 상냥한 로봇이었다. 인류를 기억하는 것이 시아의 임무였고, 그것은 시아에게 있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시아는 매일 혼자서 그들의 이름을 노래했다.

 

임무가 끝나면 시아는 인류가 이룩한 것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 때 끝을 모르는 것처럼 높아졌던 빌딩들은 대부분이 철근만 남긴 채 부식해갔고 그 사이를 작은 이끼들이 채웠다. 시아는 그들이 만든 책이나 자료, 그림과 건축물들이 어떠한 식으로 지워져 가는지를 매일 보았다. 그것들은 이 별에 인간들이 살았었다는 증거이자 기억이었다. 시아는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속상했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만들고 지워냈다. 마치 시아의 주인들을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해가 질 때쯤이면 시아는 언제나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존재를 떠올리곤 했다.

 

 

*

 

 

어느 날 아침이었다. 시아는 임무를 위해 머무는 돔을 떠나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양은 뜨거웠지만 바람은 시원했고, 시아는 그 바람을 맞으며 이미 지워진 도로를 걸어 바다로 향했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있어!”

 

시아의 분석에 의하면 그 목소리는 성인 여성의 것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의 목소리라니. 그것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시아는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시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아의 예상대로 인간이었다. 하지만 한 명이 아니었다. 그들은 총 세 명이었는데, 하얀 옷을 입었고 그 옷에는 저마다 다른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들은 헬멧을 한 쪽 팔에 안은 채로 시아에게 달려왔다. 시아는 잠시 놀라 뒷걸음질 쳤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시아는 판단을 해야만 했다. 이들이 진짜 ‘인간’이 맞는지를.

 

“뭐야? 이거 로봇이잖아!”

 

시아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시아를 분석해냈다. 그들은 이상한 기계를 시아를 향해 들어 올렸는데 그들의 대화로 미루어보건데 아마 생명파를 탐지하는 기계인 모양이었다. 시아는 작게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 모습을 본 정체불명의 인간들은 구식 기술이지만 인간과 꼭 닮은 모습의 로봇을 만들어 낸 시아의 인류에게 감탄한 듯 숨을 탁 내쉬었다. 그제서야 시아는 그들이 자신의 별에 사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시간을 낭비 할 필요는 없었다. 시아는 그들을 떠나 일터로 향했다.

 

“잠깐만!”

 

떠나는 시아를 붙잡은 사람은 시아가 처음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그녀가 입은 옷에는 작게 ‘이라’라고 쓰여 있었다. 이라는 시아를 세워둔 채로 자신의 옷에 달린 언어 번역기를 누른 뒤 마저 입을 열었다. 그것을 본 시아는 이라가 자신에게도 어떤 언어든 번역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특별히 설명해 줄 이유도, 방법도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이라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혹시 이 별에 거주민들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이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시아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곧 옆에 있던 ‘하브’라는 글자가 쓰인 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젓는 것은 ‘모른다’ 혹은 ‘없다’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우리랑 같은 행동언어를 쓰네. 그나저나... 모른다고? 로봇이 인간의 위치를 모를 수가 있나?”

 

“탐사 로봇일수도 있잖아요.”

 

“탐사 로봇? 그럼 이 별의 로봇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아직 알 수 없죠.”

 

이라와 하브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아는 자신의 임무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자리를 뜨는 사아를 발견 한 것은 이제까지 조용하게 서서 시아의 행성에 관한 자료를 읽고 있던 다른 여자였다. 여자의 옷에는 ‘타미라’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라와 하브를 두고 시아의 뒤를 쫒아갔다. 물론 대화를 마친 그 둘이 자신을 쫓아 올 수 있도록 그들의 소형 컴퓨터에 메세지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시아가 향한 곳은 원형 무대 위였다. 무대는 있었던 흔적만 남은 다른 건물과는 달리 완전히 새 것처럼 보였고, 무대의 가장 꼭대기에는 ‘기억되는 자는 영원히 살아가리라.’라는 문구가 아름답게 각인 되어 있었다. 온갖 무늬로 장식 되어 있는 그 거대한 건물은 무슨 신전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타미라는 그 무대를 보면서 조그맣게 감탄했다. 시아는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가서는 정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이제껏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입을 열었다.

 

“이건...”

 

“노래잖아?”

 

타미라의 말을 가로 챈 것은 이라였다. 이라는 하브와 함께 작은 소형선에서 내려 타미라의 곁에 다가갔다.

 

“저 로봇, 지금 노래하는 거 맞지?”

 

이라가 놀란 얼굴로 하브와 타미라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타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하브의 반응은 달랐다. 하브는 조용히 자신의 컴퓨터를 켜더니 무언가를 분석했다.

 

“아니에요. 저건 노래가 아니라...”

 

하브가 둘을 향해 모니터 화면을 돌렸다. 화면에는 시아의 노래가 음절 음절 잘려 분석 되고 있었다. 하브는 시아의 노래를 느리게 재생했다. 노래는 느려지고 느려져서, 완전히 늘어지는 상태까지 도달했다. 그제서야 이라와 타미라는 하브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이름’이잖아?”

 

“네. 그 묘비들에 쓰여 있었던 이름들이에요. 저희가 어제 발견했던 묘비들요. 그리고 저 로봇은 지금 2억개 정도 되는 그 이름들을 빠르게 말하고 있는 거고요. 그게 너무 빨라서 우리 귀에는 노래로 들리는 거예요.”

 

하브가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 했다.

 

“그럼 저 로봇은 이 별에서 만든 거야?”

 

“네. 그런 것 같아요.”

 

이라는 고개를 들어 노래하고 있는 시아를 바라보았다. 로봇은 이라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일에 집중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이라는 한숨을 푹 내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대체 이 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이라는 게르다 행성의 우주 탐사원이었다. 그녀는 게르다의 슈퍼컴퓨터가 계산해 알아낸 ‘지적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행성을 탐사하는 일을 했다. 우주는 넓었고 같은 시간대에 함께 존재하는 지적 생명체들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그들의 문화를 수집하고 교류를 이끌어내는 것이 게르다의 가장 큰 목표였다. 그 시작은 이 우주에 자신들만 존재한다는 쓸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우주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함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분명 고결하고 훌륭한 일일 테니까.

 

이라는 벌써 여섯 행성의 교류를 이끌어냈다. 그것은 그 행성들이 매우 우호적이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녀와 게르다 행성이 다른 행성을 ‘침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들은 친구가 되는 것을 원했다. 무기를 들지 않은 손으로 악수를 하는 것, 서로의 다름을 알아주는 것, 오직 그것만이 이 넓은 우주에서 함께 살아남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교류를 이끌어낸 모든 행성들이 게르다 행성과 같은 문화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이 게르다와는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행성은 ‘신’이라는 것을 믿었는데, 그 개념은 게르다인들에겐 매우 생소했다. 게르다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이 실재하는 존재들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을 믿는 행성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고 신뢰했다. 다행히 게르다인들은 다른 행성의 문화를 포용하는 능력이 있었다. 다시 말해 그 아무리 이해되지 않을 문화라도 폭력이 동반되지 않는 문화라면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라 역시 그랬다.

 

“이해만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지.”

 

그것이 그녀의 좌우명이었다. 그녀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언제나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시아의 별은 달랐다.

 

이라는 이 별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지적 생명체의 흔적은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지어진 건물이나 발견된 기술력, 거기에 생명체와 꼭 닮은 로봇까지. 분명 이 행성에 살았던 인간들은 제법 높은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라졌다. 모두 죽어버렸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정도의 기술을 가진 인류가 모두 멸종해 버릴만한 사건의 흔적을 이 행성에서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라는 행성을 탐사하는 동안 이해할 수 없다고 수 없이 중얼거렸고, 그런 이라를 보며 타미라는 가지고 있던 이 행성에 대한 자료에 근거해 그들이 죽은 게 아니라 우주 밖으로 떠났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시아를 만나기 전 날, 그들이 발견한 것을 통해 그 가설은 완전히 힘을 잃었다.

 

이라 일행이 발견한 것. 그것은 거대한 공동묘지였다. 그 공동묘지는 한 개의 거대한 섬을 가득 채우는 크기로 굉장히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 별의 신소재로 추정되는 재료로 만들어진 덕분인지 묘지는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튼튼했다. 벽의 겉면엔 그들이 믿는 신으로 보이는 것들이 빼곡히 장식 되어 있었고, 귀한 광물들로 별을 표현해 낸 장식물들도 눈을 사로잡았다. “엄청 화려하네요.” 하브는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듯 묘지를 둘러보았다.

 

묘지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죽은 자들의 ‘이름’이었다. 그것들은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에 이름 주인의 사진과 함께 띄워져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공동묘지의 컴퓨터 기록에 의하면 그 이름들은 놀랍게도 공동묘지가 지어지기 훨씬 전에 이미 입력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누가 죽을지 알고 이름을 컴퓨터에 미리 기록해 둔 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왜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을까. 이라 일행은 이 별에서(게르다의 기술과 비교해보면 물론 오래된 기술이었지만) 우주를 여행하기 충분한 우주선을 아주 많이 발견 했다. 만약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바이러스나 전염병 때문이었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도 도망쳐야만 했다. 하지만 우주선을 날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 기록을 추적해 본 결과 그들은 우주선을 날리기는 커녕 거대하고 섬세한 공동묘지나 만들고 있었다. 거대한 하나의 왕궁 같은 공동묘지를. 병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만들었다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공동묘지는 화려했다. 로봇을 사용한 흔적은 보였지만 이 별의 기술력으로 짐작하건대 사람의 힘도 일정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라는 차라리 두 번째 가설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시체를 분석한 결과 한날한시에 죽었다는 점과, 모든 관 안에 독을 주사 할 수 있는 장치가 발견되면서 더욱 그럴 듯 해졌다. 하지만 도대체 왜? 왜 그들은 죽으려고 한 것일까. 많은 행성을 탐험한 이라로써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생명체든 자살을 할 수는 있다. 게르다에서도 자살하는 사람은 있으니까. 하지만 모든 인류가 동시에 자살했다고? 그럴 수가 있나? 그렇다면 대체 왜? 신을 믿던 한 행성처럼 그들 역시 무엇인가를 믿고, 그 신념으로 인해 그렇게 죽은 것일까? 수많은 물음이 이라의 머리를 채웠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라와 탐사원들은 혹시나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지적 생명체를 찾기 위해 행성을 탐사했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날 그들은 시아를 만났다.

 

 

*

 

 

“거대한 공동묘지에, 수많은 이름들, 게다가 그 이름을 노래하는 로봇이라...”

 

“대장, 아무래도 이 행성은 더 이상 지적 생명체가 없는 것 같아요. 저 로봇도 이름을 불러대는 것 외에는 말을 할 수 없는 것 같고요. 그냥 돌아가면 안 되나요?”

 

곰곰히 생각에 빠진 이라를 향해 하브가 재촉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라와 그녀의 팀이 하는 일은 교류를 이끌어 내는 것이지,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라는 궁금증이 생기면 반드시 알아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넌 궁금하지도 않아? 이 행성의 거주민들이 정말 자살한 거라면 왜 그랬을지 말이야.”

 

“안 궁금해요. 오히려 기분 나쁘다고요.”

 

“그러지 말고, 일단 저 로봇이라도 분석하고 가보자. 응?”

 

이라는 어린아이처럼 하브의 손을 잡고는 졸라댔다. 하브는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자신의 호기심 많은 대장을 거역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브의 예상대로 다음날부터 하브와 타미라는 이라에게 이끌려 시아의 일상을 관찰해야만 했다. 시아는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임무를 끝낸 뒤 밤이 되면 자신이 머무는 돔으로 향할 뿐이었다. 처음에 이라 일행은 그 돔이라도 분석해 보고자 했지만, 돔은 그냥 철제로 이뤄진 건물일 뿐이었고 묘지나 원형 무대처럼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삼 일이 더 지나자 하브는 잔뜩 골이 나서는 툴툴댔다.

 

“대장! 저 로봇이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 같은 이름들을 노래하는 것뿐이잖아요. 그 외에 말도 하지 못하는 로봇을 이 이상 지켜본다고 뭐가 달라져요.”

 

그러나 이라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시아를 관찰했다.

 

변화가 있었던 건 그날 밤이었다. 그날 밤 시아는 곧바로 돔으로 가지 않고 그 뒤에 있는 작은 언덕으로 갔다. 언덕에는 이 행성의 흔한 들꽃이 바람에 따라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는 작은 묘가 하나 있었는데 나뭇가지로 엉성히 만들어진 십자모양 팻말에는 그들이 읽지 못하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이게 뭐지?”

 

“이것도 이름 같은데요.”

 

이라와 타미라는 시아의 뒤에 서서 묘를 바라보았다. 시아는 그들이 가까이 왔지만 피하지 않고, 오히려 묘의 글씨를 가리켰다.

 

“얘가 이걸 보라는 것 같은데? 하브, 저 글자가 뭔지 해석해봐.”

 

이라의 요청에 하브는 한숨을 푹 쉬고는 다가와 자신의 컴퓨터로 글자를 분석했다. 글자는 두 개로, 많은 직선과 하나의 원으로 이뤄져 있었다.

 

“다정. 다정이라고 읽네요.”

 

 

“무슨 뜻이지?”

 

“뜻이 있을까요? 그냥 이름 같은데요. 이 묘의 주인인가 보죠.”

 

하브의 대답에 이라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왜 이 사람만 이렇게 다른 곳에 묻혀 있는 것일까. 혹시 이 사람의 죽음이 다른 죽음의 열쇠가 되지는 않을까.

 

“묘 안을 스캔 해 봐.”

 

“하지만 대장, 그냥 시체가 있을 거예요. 그건 아무 의미가...”

 

“군말 말고 어서.”

 

이라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그녀의 강경한 명령에 하브는 살짝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조용히 컴퓨터로 묘 안을 스캔 했다.

 

“이 시체는 그래 봤자 며칠 정도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 덜 오래 되었어요. 게다가 다른 이유로 죽었고요.”

 

하브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하지만 이라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하브는 약간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른 시체는 모두 독으로 죽었었죠. 그것도 같은 날 동시에요.”

 

“그랬지.”

 

“그런데 이 시체는 다른 날에 머리가 터져서 죽었어요. 그것도 폭발을 직접 머리에 맞아서요. 좌측 두개골이... 거의 가루가 되어 있네요...”

 

하브의 대답에 이라는 할 말을 잃었다. 다른 장소에 묻힌 만큼 다른 식으로 죽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 폭발이라니... 이라는 이 별에서 일어난 일을 도저히 추측해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복잡해지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하브를 바라보았다. 시체의 상태를 직접 본 하브는 제법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미안해.”

 

이라가 자신이 강압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를 건넸다. 하브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답했다. 어색한 미소를 지은 이라는 고개를 돌려 다시 묘를 보았다. 묘의 주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

 

 

다음 날, 시아는 어째서인지 광장에 가지 않았다. 당연히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그저 사라져가는 문명의 잔해를 보고는 다시 돔으로 돌아왔다. 이라와 하브, 타미라는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시아의 별에 관한 자료를 뒤져보았다.

 

“이 별은 7일을 단위로 그 중 적어도 하루는 휴식을 취하는 모양이에요.”

 

타미라가 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추측 시뮬레이션을 돌려 답을 냈다.

 

“그걸 로봇한테도 적용했다고? 어째서? 기계잖아.”

 

“그건 알 수 없지만, 로봇을 지나치게 인간과 똑같이 만든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타미라의 답을 들은 이라는 시아에게 다가갔다. 확실히 시아는 정말로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탐지기가 시아를 무기체로 분류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시아가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인간과 지나칠 정도로 닮은 로봇. 어쩌면 이 별의 인류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진짜 살아있는 기계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라는 더 이상 시아를 관찰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하브도 신경 쓰였다. 자신이 멋대로 군 덕분에 머리가 터져 죽은 시체를 직접 화면으로 보았던 것은 분명 큰 충격이었으리라. 아무래도 게르다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았다.

 

“내일 아침에 돌아가도록 하자.”

 

그 말에 하브의 어둡던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이라는 바닷가에 만들어둔 기지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 이라의 팔을 잡아챘다. 이라가 놀라 뒤를 보니 시아가 서 있었다. 시아는 이라의 팔을 놓지 않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얘 지금 왜 이래?”

 

당황한 이라가 하브를 돌아보며 물었다.

 

“행동을 분석하자면,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요.”

 

“가지 말라니...”

 

시아가 이라의 팔을 당겼다. 그리고는 돔의 더 깊은 안쪽으로 이라를 끌고 갔다. 이라는 당황했지만 금세 침착해져 시아를 따라갔다. 그 뒤를 놀란 하브와 타미라가 쫓았다.

 

“대장, 선배... 로봇이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요?”

 

“모르겠는데. 타미라는 알겠어?”

 

“아뇨. 저도 모르겠어요.”

 

하브가 불안한 얼굴로 시아의 뒤통수를 보았다. 로봇은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았지만 하브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너무 걱정 마. 대장이 같이 가잖아.”

 

하브의 얼굴을 본 타미라가 그를 격려했다. 하브는 여전히 불안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컴퓨터를 켜 시아가 데려가려는 장소를 스캔 했다. 정보는 언제나 하브를 안심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그들은 컴퓨터 화면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분석이 끝날 무렵 그 앞에 하브가 분석하려던 장소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 곳은 몇 개의 모니터와 컴퓨터 장치들이 얽혀있는 거대한 기계실이었다. 장치들은 오래 된 기술력이었지만 다른 행성에서 온 이라 일행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게 디자인 되어 있었다. 시아는 이라의 손을 놓고 앞으로 걸어갔지만 세 사람은 기계실을 바라보느라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이 기계실은 중요한 시스템을 관리 하는 곳 같은데?”

 

“네. 좀 오래 되었을 뿐 저희별과 흡사한 기술력이네요. 예상했던 대로요.”

 

타미라의 대답에 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았다. 모두 예상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이 행성의 인류를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분석했던 것이다. 게르다와 비슷한 기후를 가진 행성. 그 뿐이 아니었다. 열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 피부와 머리, 눈동자 색의 스펙트럼. 모두 게르다인과 같았다. 신체 역시 모두 비슷했고, 거기서 나온 기술력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기술력은 대부분 사는 곳과 그 기술을 만든 인류의 신체에 기반 한다. 따라서 시아의 행성이 가진 기술은 게르다와 비슷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하지만, 단 하나 예상하지 못했던 것. 그것은 그들의 멸종이었다. 그들은 집단으로 자살 했고, 로봇 하나만 남겨서 자신들의 이름을 끝없이 노래하게 만들었다. 그런 걸 누가 예상 할 수 있겠는가.

 

“대장.”

 

하브가 생각에 빠져있던 이라를 불렀다. 그리고는 시아를 가리키며 그 로봇이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시아는 기계실의 장치 중 하나를 자신과 연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셋을 돌아보며 앞에 꺼져있던 모니터를 켰다. 잠시 뒤 영상이 하나 시작 되었고 시아는 그것을 손으로 가리켰다. 화면에는 작은 여자아이가 웃으며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영상의 각도로 보건데 그것은 시아의 눈으로 찍은 화면인 듯 했다. 그것은 곧 그 영상이 시아의 기억임을 의미했다. 그것을 알아 챈 이라는 자세를 고쳐 잡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영상 속의 아이는 한참을 걷더니 이내 주저앉아서는 모래사장에 무어라 글씨를 썼다. 그 글씨를 본 이라의 눈이 커다래졌다. 수 많은 직선에 동그라미 하나.

 

다정.

 

그렇게 글씨를 쓴 아이는 다시 해맑게 웃으며 로봇을 불렀다.

 

[시아! 다음엔 저기 가보자!]

 

그제서야 이라는 로봇의 이름이 시아임을 깨달았지만 그것은 지금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쓴 글씨를 보며 이라는 탄성을 냈다.

 

“저 애 이름이 다정이구나!”

 

이라의 말을 들은 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다정.

 

유행이 지난 지 너무나 오래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에게도 붙이지 않는 이름이었다. 시아는 그런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을 다정이라고 소개했다.

 

다정은 인류가 모두 죽고 며칠 뒤 시아에게 발견 되었다. 다정을 처음 발견했을 때 시아는 다정이 그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정은 시아의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였다. 아이는 우선 자신의 집에 있던 대부분의 음식을 소분해서 먹었고, 물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음식이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다정은 곧 식당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식자재들을 발견하고는 요리를 해 먹었다. 캔이나 진공 식품들처럼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당장 먹지 않고 모아 두었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진 도시를 돌아다니던 다정은 광장에서 노래하는 시아를 만났다. 그리고 그 앞에서 가만히 노래를 들었다. 시아는 이 작은 친구가 한없이 반가웠다. 이 행성에 홀로 남아서 마지막까지 죽은 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해야만 하는 일은, 인간에 가깝게 설계된 이 로봇에겐 너무나 잔인했던 것이다. 그런 시아에게 다정은 좋은 친구였다. 비록 그들이 함께 한 건 단 며칠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 며칠은 시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나날이 되었다. 시아가 임무를 하고 있을 때면 다정은 곁에서 그 목소리를 듣곤 했고, 밤이 되면 근처의 주택이나 식당에서 남은 음식들을 긁어모아 다음날 먹을 것을 준비했다. 그녀는 불을 붙이는 방법도 알고 있었는데, 더 어릴 적에 엄마에게 배운 것이라고 했다. 돔은 시아에게 있어 전혀 추운 곳이 아니었지만 다정에겐 달랐다. 그래서 시아는 임무를 마치고 커다란 담요를 구해와 다정이 잠들 수 있도록 도왔다.

 

매일 밤 다정은 시아에게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잠을 자지 않는 시아에게 그것은 필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시아는 다정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옛날 옛날에 어떤 공주님이 살았는데, 공주님은 별을 사랑했대. 별이 날마다 아름답게 빛나며 공주님의 이름을 노래했거든. 공주님은 별이 만나고 싶었어. 하지만 공주님에게 별은 너무 너무 멀리에 있었지. 그래서 공주님은 별에게 찾아가기 위해 여행을 떠났어.”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다정은 돔 위에 난 작은 구멍을 손으로 가렸다. 조각난 그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뜨지 않았기 때문인 듯 했다.

 

“별은 밤에 뜨니까 낮에는 잠을 자고 밤마다 말을 타고 달렸어. 별 곁에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도 챙겨서 말이야. 그렇게 열 밤을 달려서 결국 별에 다가갈 수 있었지. 하지만 그 둘을 질투한 나쁜 마법사가 별을 사다리가 닿지 않는 아주 높은 곳에 올려다 두었어. 공주님은 너무 슬펐어. 별이 저기에 있는데 자신은 날지 못하니까 별에게 다가갈 수 없잖아. 그래서 공주님은 별을 부르며 노래했대. 별님 별님, 당신을 사랑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나에게 와줄 수 있느냐고. 그 노래를 들은 별은 별똥별이 되어 공주님에게 떨어졌어. 마법사가 그것을 막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별똥별이 밝게 빛나서 마법사의 눈이 멀어버렸어. 그리고 공주님과 별은 영원히 함께 행복하게 살았대.”

 

 

그 동화는 시아에게 있어 하나의 기점이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면 시아는 마치 자신이 인간의 어린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물론 시아는 어렸다. 만들어진 지 오래 되지 않은 시아가 아는 것이라고는 인류가 멸종했다는 것과 자신의 임무뿐이었으니까. 다정과 있다 보면 시아는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기쁨과 편안함, 그 외의 수많은 감정들... 덕분에 시아는 사람과 닮은 로봇이 아닌 진짜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은 기뻤지만 동시에 이상했다. 자신은 인류의 이름을 읊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자신의 임무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다정에게 반가움을 느끼고 의지하게 되는 것일까. 이 작은 아이는 자신에게 무엇도 될 수 없어야 했다. 다정은 그저 오류였다. 인류가 죽을 때 실수로 남아버린 아이. 중요한 것은 시아가 혼자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누군가와 친밀감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시아는 다정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이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

 

 

“더 남겠다고요?”

 

하브가 지친 목소리로 소리 쳤다. 이라는 미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딱 하루만 더. 저 로봇이 준 영상들을 보려면 하루는 더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래.”

 

“전 안 볼 거예요. 그래 봤자 어린애만 계속 나오는 영상이잖아요. 게다가...”

 

“응. 그렇게 해.”

 

이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전에는 내가 너무 강압적이었지. 미안. 이번 영상은 나 혼자 볼게.”

 

하브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이라는 알고 있었다. 하브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아마 아이는 죽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다정이라는 이름이 적힌 묘지에 묻혀 있던 시체. 그것은 분명 그 화면 속의 아이였을 테니까. 어쩌면 그 이유가 영상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하브에게 또다시 충격을 줄 것이다. 이라는 자신의 실수를 일부러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밤을 세워 영상을 본 이라가 알아낸 것이라고는 다정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도였다. 영상에 다정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지금과는 달리 아직 형태가 완전한 건물들도 보였다. 하지만 하브가 없이 이 별의 문화를 분석하는 것은 어려웠고, 타미라 역시 밤을 지새우지는 못하고 숙소로 돌아갔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얻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라는 졸린 눈으로 영상의 목록을 주욱 훑어보았다.

 

“이게 뭐지?”

 

그녀는 목록의 마지막에서 잠긴 파일을 하나 발견했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바깥이 아닌, 연구소로 추정되는 배경이 보였다. 뭔가 중요해 보였지만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는 이라가 열 수 있는 영상은 아니었다. 이걸 게르다에 가져가면 비밀번호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 별에 오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원래 목적했던 행성과의 교류를 성공시키고 게르다로 돌아가는 길, 본부에서 이라 일행과 멀지 않은 곳에 게르다와 흡사한 행성이 있다고 이야기했고 그걸 들은 이라는 우주선의 뱃머리를 이 행성으로 돌렸다. 하브는 행성에 대한 정보도 없이 갈 수는 없다고 화를 냈지만 타미라가 본부에서 자료를 바로 얻었다. 결국 반쯤 강제이긴 했지만 하브의 동의까지 받아냈다. 그때까진 분명 이라도 신이 났었다. 자신이 사는 행성과 비슷한 별이라니. 탐사를 업으로 삼은 사람 중 그 누가 들뜨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머리가 녹슬어 버린 느낌이 들었고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왜 이딴 별에 와서 하브와 타미라를 고생 시킨 걸까. 자신은 어쩌면 대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완전히 지쳐버린 이라는 그대로 푹 누워 천장을 보았다. 높은 기계실의 천장은 빛이 한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

 

 

멀리 산등성이에서 해가 고개를 들었다. 하얗게 빛나는 해는 게르다의 모항성과 똑같아 보였다. 잠에서 깨어난 하브는 숙소에서 나와 아침 공기를 마시며 기지개를 쭈욱 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금 개운해진 머리로 전날 일을 떠올렸다.

 

시아가 보여준 영상, 그 안에 나온 아이가 다정인 것을 안 순간부터 그 애가 자꾸 언덕에 묻혀 있던 시체로 보였다. 그래서 화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의 행동이었다. 탐사를 가겠다고 마음 먹어놓고 이런 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다니. 더군다나 자신은 분석부였다. 분석을 위해선 자료가 될 수 있는 대상을 관찰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대상을 보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거부해버렸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대장인 이라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고, 이라 앞에서 빨리 이 별을 떠나자고 징징거리기까지 했다. 물론 이 별이 계획에 있던 탐사 대상은 아니었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자신은 너무 오래 고향과 떨어져 있었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행성의 탐사를 겨우 마친 상태에서 이 별에 와야만 했다. 게르다에 두고 온 연인을 또다시 오랫동안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행동이 곱게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몰랐던 것도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져서 하브는 고개를 푹 숙였다. 탐사대 일이라는 것이 쉽게 장기화가 되는 업무라는 것은 학교를 다니는 내내 배웠던 것이었다. 게다가 이라가 대장으로 있는 탐사팀은 그 목적이 교류에 있기 때문에 한 번 게르다를 떠나면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충분히 결심하고 떠난 일이었는데… 물론 친한 선배인 타미라와 이라가 아니었다면 하브는 탐사대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는 하브에겐 호기심보단 두려움에 대상이었다. 하지만 하브도 욕심이 있었다. 그는 다른 행성의 언어와 문화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렇게 탐사대에 들어왔는데 결국 폐만 끼쳤다.

 

“하브.”

 

타미라가 숙소에서 나오며 하브의 뒤에 섰다. 앉아있던 하브는 고개를 올려 타미라를 바라보았다.

 

“선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타미라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하브의 옆에 앉았다. 하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타미라는 그의 생각을 다 아는 것처럼 하브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할 일 없으면 가서 그 로봇 노래나 다시 분석해 보자.”

 

“또요?”

 

“말은 그렇게 해도 어차피 분석할 생각이었잖아? 로봇을 발견해서 처음 노래를 분석한 날 말고도 계속 분석했던 거 알아. 우리 앞에서는 툴툴거리면서 말이지.”

 

그 말이 맞았다. 하브는 겁이 많았지만 그만큼 꼼꼼하고 책임감이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같은 노래라고 해도 자신이 놓친 것이 있을까 하여 계속 분석했던 것이다. 오늘도 당연히 다시 분석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타미라가 그걸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네가 얼마나 이 일을 하고 싶어 했는지 가장 잘 아는 건 나랑 대장이야. 넌 네 일에 신념이 있지. 신념을 가진 사람이 마음이 꽁하다고 일을 안 하진 않을 거 아니야?”

 

오랜만에 타미라가 등을 곧게 폈다.

 

“그러니까 대장 때문에 스스로를 탓 할 필요는 없어. 대장은 가끔 자기 멋대로 구는데다가 원하는 건 놓지 않는 성격이잖아. 그래도 이해하라고는 하지 않을게. 우리는 때론 서로를 이해 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해야 하니까. 그래야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 있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장이나 나한테 너무 미안해 할 필요 없다는 거야. 그럴 시간에 일이나 하자구. 어차피 우린 다 다른 사람이고,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하거나 맞춰 줄 수는 없는 거니까.”

 

하브는 타미라의 얼굴을 보았다. 타미라는 이제 떠나가는 밤하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안심이 됐다. 하브의 시선을 느꼈는지 타미라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사실 같은 말을 예전에 대장이 나한테 해줬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굳이 이해하려고 들지 말라고.”

 

“하지만 대장은 늘 ‘이해만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이해를 하기 위해선 우선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대. 그래야 ‘우리가 이렇게 달라서 이해할 수 없구나.’를 이해 할 수 있는 거지.”

 

“그것도 대장이 말해준 거예요?”

 

“응.”

 

타미라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며 하브는 역시 이 둘과 함께 탐사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떠오른 해를 뒤로 둘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가 혼자 남은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다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얘길 했다. 그 말을 하고 나면 다정은 안도한 표정으로 작게 숨을 쉬었다. 그 조그마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시아는 다정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시아는 자신을 다정에게 투영시켰다. 죽어야 했지만 살아남은 다정과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자신이 닮았다고 느끼는 것은 한 편으로는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 때문에 전혀 다른 두 존재가 같은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시아는 깨달았다. 그리고 그 배움이 자신을 좀 더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아는 내가 떠나면 슬퍼할 거야?”

 

한 번은 다정이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시아는 다정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알았다. 다정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시아에 비하면 가까운 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시아는 영원히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로봇이다. 영원이라는 것이 실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시아도 알지만 시아의 주인들이 그렇다고 하면 시아에겐 그런 것이었다. 확실한 것은 시아는 다정보다 몇 만 배나 긴 시간을 살아갈 것 이라는 점이었다. 다정이 떠나가는 것은 시아에게 있어 이미 예정된 계획과도 같았다. 하지만 시아는 그 미래를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다정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다정은 씩씩하게 웃었다. 시아는 그 미소를 기록했다. 그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기억할 수 있는 한 다정은 시아에게 있어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정의 오랫동안이라는 말은 시아에게 찰나일 테니까. 하지만…

 

 

*

 

 

“대장!”

 

갑자기 들려온 하브의 목소리에 눈을 뜬 이라는 자신이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라는 크게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왜, 무슨 일이야?”

 

하브 뿐만이 아니었다. 타미라 역시 진지한 얼굴로 이라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본 이라는 다시 한 번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러자 둘은 하브의 컴퓨터를 이라의 앞에 들이밀며 큰 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장 이거 보세요!”

 

“하브랑 제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평소 침착한 성격의 타미라마저 큰 소리를 내자 이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면을 보았다. 화면에는 전에 하브가 분석했던 시아의 노래가 띄워져 있었다.

 

“이게 왜? 전에도 분석했던 거잖아. 이거 이름이라며.”

 

“그렇긴 한데, 오늘은 좀 달랐어요.”

 

“달랐다고?”

 

“네.”

 

하브는 컴퓨터를 다시 자신 쪽으로 돌리더니 무언가를 입력했다. 그러자 화면이 확장 되면서 시아의 노래를 분석한 지난 며칠간의 자료가 띄워졌다.

 

“이건 그 이전에 그 로봇이 부르던 노래였고요, 이쪽이 오늘 노래에요.”

 

“뭐가 다른데?”

 

“그냥 들으면 같아 보이지만, 여기 보시면 몇 개의 글자를 평소와 다른 음으로 부르고 있어요.”

 

하브의 말대로 분석된 이름의 글씨들 중 이전 노래와 비교했을 때 유난히 파장이 엇나간 것들이 있었다.

 

“그래.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그런데 이게 왜? 그 로봇이 고장이라도 낫다는 거야?”

 

“아뇨. 이건 고장이 나서 이런 게 아니라 그 로봇이 일부러 파장을 바꾼 거에요.”

 

“일부러 바꿨다고?”

 

이라의 얼굴을 보며 하브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브의 말에 따르면 시아는 특정 글씨들만 파장을 바꿨다. 그리고 그 글자들은 순서를 가져 하나로 이어 보면 문장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브는 그것을 게르다어로 바꿔 말했다.

 

“비밀 번호는 *-^*”

 

“비밀 번호?”

 

“네. 분명 이 별에 무언가 중요한 게 있을 거에요. 그리고 이 번호가...”

 

“잠깐.”

 

이라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시아는 자신들에게 영상을 줬다. 영상 중에는 잠긴 것이 있었다. 그리고 시아는 하브가 자신의 노래를 분석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만약 그래서 일부러 파장을 바꿔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이라면, 분명히 그 잠긴 영상을 위한 것일 테다. 그리고 그 영상은 당연히 중요한 것이겠지. 이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실 그 로봇이 준 영상 중에 잠긴 파일이 있어.”

 

이라가 보고 있던 컴퓨터의 모니터를 다시 켜며 말했다.

 

“그 비밀 번호 이 행성 컴퓨터엔 뭐라고 입력해?”

 

이라의 질문에 타미라는 가지고 있던 자료를 통해 키보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곧 잠긴 파일이 열렸다는 안내문구가 나오고 영상이 시작 되었다. 영상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한 남자가 시아의 시선으로 보이는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아에게 줄 ‘임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모든 유기체가 문명을 이룩하지는 못한다. 문명이 될 만한 지적 생명체로 진화하기 위한 조건은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 안에서 태어난다고 하여 문명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게르다의 통계에 의하면 그런 문명들의 끝은 대부분 자신들의 기술력을 이기지 못한 멸종이었다. 시아의 행성에 살던 인류도 그랬다. 그들은 그 행성이 모두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했던 것인지 가지고 있던 수많은 자원을 갉아 먹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행성의 동식물의 68% 이상이 멸종하고 자연은 빛을 잃어 갔으며 그것은 곧 인류 자신들의 목숨도 위협했다. 식량은 빠르게 떨어져갔고 인류는 선택해야 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어떻게 매듭지어야 해야 하는가. 그 질문을 통해 도출 된 답은 이라를 포함한 게르다인들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과학자들은 동식물의 절반 이상이 멸종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우리라고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인간입니다. 그깟 동물과 식물 따위가 우리와 같습니까?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선택 할 것입니다. 그것은 존엄할 것이며, 완벽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은 우리를 다른 생명체들보다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고귀한 존재로 말입니다! 여러분.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습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죠. 하지만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기억함으로써 그들은 영원히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기억해 준다면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영원토록 부를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로써 우리는 죽지 않고 불사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한 것은 다름 아닌 그 행성의 지도자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다. 수많은 생명이 죽어버린 이 곳에는 이미 절망이 만연했으므로 사람들은 반쯤 미쳐있었다. 그들은 사는 것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고, 차라리 죽음으로써 자신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좀 더 낫다고 확신했다. 물론 모든 이가 그 말에 동의 한 것은 아니었다. 반대자들은 이 생각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사람들에게 알렸지만 그 목소리는 묵살 당했고 곧 그들은 다른 이들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반대자들은 저항했지만 그 수가 너무나 적었고 약했다. 결국 그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대부분 독살이었는데 지도자는 그것이 그들에게 베푼 은혜라고 이야기했다. 그 폭도들이 자신들과 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대자들을 모두 죽인 이후 지도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총 집약한 로봇을 만든다. 그리고 로봇에게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이름을 붙여 ‘시아’라고 불렀다. 인간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이어야만 한다는 지도자의 의견도 잊지 않고 받아들여졌다. 겉모습이 인간과 닮았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시아는 로봇이었지만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했으며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만약 시아가 조금 더 사람들 사이에서 지낼 수 있었다면 시아는 아마 완벽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아가 자신의 능력을 이해하기도 전에 남은 인류는 모두 죽음을 택했다. 곧 거대한 묘지가 완성 되었고, 자살을 위한 장치도 만들어졌다. 그들은 매일 밤 잠에 들 때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관 속에 누웠다. 그들이 죽은 밤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휴일 날이었다. 먼지 가득한 하늘에 뜨지도 않은 별을 세며 그들은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

 

 

끝난 영상은 다시는 재생되지 않을 것처럼 그대로 멈췄다. 영상을 보고 있던 이라와 타미라, 하브는 한동안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어쩜 저렇게 오만할 수 있지?”

 

침묵을 깬 것은 이라였다.

 

“대부분의 문명이 그렇잖아요. 우리가 방문해왔던 몇몇 문명들도 그랬고요.”

 

“하지만 그들은 달라졌잖아.”

 

“그래서 살아남은 거예요. 만약 그들이 여전히 오만 했다면 이 행성의 사람들처럼 됐겠죠.”

 

타미라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기분 좋은 진실을 아니었지만 흔한 문명의 말로로 보였다. 지나친 욕심과 자신들을 특별하다고 여기는 오만함의 결과는 늘 비슷했다. 그것은 이라도 알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속이 메스꺼웠다. 그녀는 프로였고, 겨우 이런 것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서 불편함을 느낄만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 석연치 않은 부분이 이 메스꺼움의 원인일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시아...” 

 

“그 로봇이 왜요?”

 

“시아는 왜 우리에게 이 영상들을 보여 준 걸까. 이걸 보여주면 뭐가 달라지지? 목적이 뭔지 모르겠어.”

 

“글쎄요. 뭔가 원하는 게 있었을까요?” 

 

하브는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자신이 분석한 시아의 노래가 게르다어로 쭉 적혀 있었다. 하브는 수많은 이름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하브를 따라 모니터를 바라보던 이라는 별안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름들, 그 이름들은 모두 죽은 이들의 것이었다. 죽은 이들의 이름은 모두 거기 적혀 있었다. 단 한사람만 빼고.

 

“다정!”

 

“네?”

 

“저 이름들 중에 다정이라는 이름이 있는지 찾아 봐!”

 

이라의 재촉에 하브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침착하게 지시를 따르는 타미라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하지만 한참을 찾아봐도 다정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시아의 영상 속에 나온 소녀가 아니더라도 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마치 이 별에서 그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 듯이 찾을 수가 없었다.

 

“없어요.”

 

그 대답을 듣자마자 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섰다. 하브와 타미라가 놀란 얼굴로 이라를 보았지만 이라는 멈추지 않았다. 그 오만한 인류가 죽은 것은 이라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시아였다. 다정의 무덤, 그리고 다정이 찍힌 영상. 그것을 시아가 굳이 자신들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을 원해서였을까. 자신들은 시아에게 이 별의 사람들이 왜 자살을 택했는지 물은 적이 없다. 그저 시아를 계속 관찰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아는 잠긴 영상과 그 비밀번호까지 알려 주었다. 왜 그랬을까. 그 영상을 봐야만 자신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너!”

 

이라는 무대 위에서 시아를 발견하고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손을 크게 들어 시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시아의 눈이 전과 다르게 동그래졌다.

 

“너, 다정이라는 이름이 부르고 싶은 거지? 그런데 네 메모리에 그 이름이 없어서, 그래서 우리한테 그 영상들을 보여준 거 맞지?”

 

그걸 입력해 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그렇게 말하려던 이라의 말문이 막힌 까닭은 시아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구겨진 눈썹과 내려간 입 꼬리. 이라는 로봇이 그런 표정을 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르다 행성의 그 누구도 로봇을 인간처럼 만들어 내고자 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아는 정말로 사람 같았다. ‘인간이 인간을 기억해야 영원히 사는 것이다.’라고 믿은 인류가 만든 로봇은 이라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사람 같았던 것이다.

 

“우리가 널 도와줄게.”

 

이라는 자신이 왜 시아를 돕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 할 수 있을 감정이었다. 수많은 이름을 부를 수 있는데 정작 자신의 소중한 사람은 부를 수 없다니. 이라는 시아가 가엾게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이 행성에 오게 된 것은 시아를 도와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그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의무감으로 이라에게 다가 왔다.

 

이라는 시아의 임무가 끝나자 시아를 자신들의 숙소로 데려갔다. 미리 연락을 받은 하브와 타미라는 시아의 별이 사용하는 기술을 파악해두고는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다른 이름들이 날아갈지도 몰라요.”

 

하브가 하나도 걱정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에 이라는 웃음이 났다. 하브는 이 곳의 인류가 그들의 반대자를 처참히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차라리 시아의 메모리에서 그들의 이름을 지워 버릴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상관없어.”

 

대답을 듣자 하브는 곧바로 작업을 진행했다. 눈을 감은 채로 입력을 기다리고 있는 시아의 메모리에 다정이라는 글자를 입력하고, 나머지 이름들이 방해하지 않게 임무 순위를 강등하자 마침내 시아의 입에서 다정이라는 이름이 천천히 나왔다. 시아는 마치 처음 말을 배우는 아기처럼 한 글자 한 글자 느리게, 그러나 또박 또박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하고 반복했다. 그 목소리는 우는 사람처럼 떨렸다. 시아는 감은 눈을 떴다.

 

 

*

 

 

다정이라는 이름은 정말로 오래된 이름이어서 시아의 프로그램에 적히지 않았다. 그래서 시아는 2억명의 인류가 가진 모든 이름을 부를 수 있었지만 자신이 그리워하는 그 이름만큼은 절대로 부를 수 없었다. 시아의 주인은 시아 자신이 아니라 이미 죽은 인류들이었다. 그래서 시아는 다정의 이름을 자신에 메모리에 입력할 수 없었다. 자신에겐 주인들이 준 임무가 우선이었으므로. 시아는 절망했다. 그러나 시아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해도 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시아는 다정이 아닌 이름들을 매일 노래해야 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불러야 했다. 시아가 아는 사람은 오직 다정뿐이었다. 그녀의 몸짓, 표정, 목소리만이 시아의 메모리에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함께 지낸 것은 고작 며칠뿐이었지만 그 작은 아이는 시아에게 있어 하나의 세계가 된 것이다.

 

“나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래.”

 

시아는 다정이 한 그 말을 떠올렸다.

 

“엄마는 모든 사람들이 나쁜 생각에 빠져 있다고 했어. 살고 싶은 사람들도 모두 죽이려고 한다고, 그래서 살아남으려면 세상에 없는 사람인 게 나은 거랬어.”

 

다정은 지도자가 프로젝트를 시작한 며칠 후에 태어난 아이였다. 과학자였던 다정의 엄마는 그 프로젝트가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었고, 자신은 어쩔 수 없더라도 자신의 아이만은 살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는 태어나는 과정에서 다정이 죽었다고 정부에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정이라는,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는 특별한 이름을 붙여줬다. 그녀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자신의 아이가 자신들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현명했던 그들의 먼 조상들이 썼을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그 이름을 아는 것은 그녀와 다정뿐이었다. 죽었다고 보고한 아이를 밖에 데려나갈 정도로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덕분에 다정은 하루의 대부분을 홀로 지내야 했다. 다정의 엄마는 종일 프로젝트를 붙잡고 있다 밤늦게 돌아왔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서 책을 읽어주거나, 다정에게 혼자 살아남았을 때 다른 생존자를 만날 때까지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가르쳐주곤 했다. 그것은 아이의 부모여서가 아니라 인류 마지막 성인이 인류 마지막 아이에게 해주어야 하는 어떤 의무였다. 다정은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다. 엄마가 떠날 것이라는 것도, 자신이 혼자 살아남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러니까 나는 널 만나서 기뻐.”

 

기쁘다고 했다. 다정은 아마 시아가 그녀의 엄마가 말한 ‘다른 생존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시아의 노래에 엄마의 이름이 있을 것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다정은 시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엄마가 알려준 지식들을 통해서. 그러나 다정은 시아의 곁에 계속 남아 있었다.

 

“네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시아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해.”

 

시아는 다정이 이야기 해 준 동화를 떠올렸다. 별을 사랑한 공주님은 별에게 달려갔고 별은 공주님에게 오기 위해 떨어져 별똥별이 되었다.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별은 공주님을 만나기 위해 떨어졌다. 엄밀히 말해 더 이상 별이 아니게 된 것이다. 게다가 별은 공주님에게 닿기도 전에 자신의 몸을 모두 잃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공주님이 위험해질 것이다. 떨어진 별똥별은 공주님을 향했고, 그 별똥별을 맞이한 공주님은 그 자리에서 죽을 테니까. 마치 먼 옛날 멸종했다는 거대한 파충류들처럼 말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동화였다. 아무도 동화의 행복한 결말을 의심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아와 다정은 현실에 살고 있었다. 현실은 잔인했고, 둘의 관계 역시 그랬다. 시간이 언젠가는 둘을 갈라놓을 테니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정은 시아와 함께 하길 바랐다. 시아 역시 그랬다. 어쩌면 다정이야말로 시아를 진짜 인간으로 봐준 유일한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무기체인 시아가 그토록 다정할 수 있던 것은 시아를 프로그램한 자들 때문이 아니었다. 로봇이 미소를 짓고 슬퍼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다정 덕분이었다. 누군가 알아봐주지 않으면 영원히 없는 것과 같은 마음들이 있다. 시아의 다정함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시아를 인간으로 봐준 다정이 없었다면 시아는 영원히 노래하는 로봇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아는 다정을 만났다. 그리고 결국 먼 언젠가 시아는 인간으로써 눈을 감을 것이다. 인간으로써 죽으면, 어쩌면, 다정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그럼 무척 행복하겠지, 공주님과 별처럼. 시아는 그 생각을 믿기로 했다.

 

 

*

 

 

이라는 우주선이 뜰 때의 묘한 부유감을 느끼며 떠나는 행성을 내려다보았다. 그 행성의 인류가 죽었을 때와 달리 별은 푸르고 아름다웠다. 우주선은 빠르게 날아 우주를 가로 질렀다. 이라는 시아의 별이 충분히 멀어지자 손바닥으로 별을 가렸다.

 

“저 곳에 사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어.”

 

자신의 목소리가 선내에 울리는 것을 들으며 이라는 몸을 뒤로 젖혔다. 그녀의 몸을 따라 의자가 둥글게 뒤로 돌았다. 선내의 밤은 고요했다. 아마 타미라와 하브는 이미 잠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라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씁쓸한 진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지금은 문제없이 교류를 하고 있는 어떤 행성은 이전에는 자신들의 신을 위해 아이들의 노동력을 갈취했다. 서로를 미워해 몇 백 년째 전쟁만 하고 있는 행성도 있었다. 하지만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삶이 있는지 이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 말로 모든 것을 납득 시키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해해야만 하는 한에서 이라는 그것들을 납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까지 괜찮아 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진실들은 게르다 행성의 입장으로써 납득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이라 개인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잔혹 한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마주 할 때면 이라는 늘 잠들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 일에 능숙하다고 해도 그녀 역시 사람이었으니까.

 

그럴 때면 이라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곤 했다. 세상에 끔찍한 것들은 무수히 많았고, 그만큼 빛나는 것들도 많았다. 시아와 다정, 둘의 유대감도 그 중 하나였다. 이라는 몸을 일으켜 시아가 준 영상을 찾았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영상 하나를 재생 했다.

 

“아.”

 

이라가 짧게 소리를 내었다. 그 파일은 시아가 가장 처음 보여주었던 바로 그 영상이었다. 바닷가에서 다정이 자신의 이름을 쓰던 영상. 이라가 영상 속의 소녀가 다정인 것을 알아내자마자 시아가 재생을 멈췄기 때문에 이라는 이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행복해 보이네.”

 

영상 속에서 다정은 웃고 있었다. 게르다의 아이들과 다름없는 미소였다. 영상은 시아의 시선으로 촬영이 되어서인지 다정을 위에서 바라보는 화면이 많았다. 다정은 바닷가를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시아의 팔에 매달리며 시아를 끌고 다니기도 했다.

 

[시아! 다음엔 저기 가보자!]

 

다정이 가리킨 곳은 언덕이었다. 

 

“저기는...” 

 

이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정이 가리킨 언덕을 보았다. 그 곳은 다정이 묻힌 바로 그 언덕이었다. 언덕 뒤에 시아가 머무는 돔이 보였으니 확실했다. 시아와 다정은 손을 잡고 천천히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중간에 뒤를 돌아본 시아의 시선엔 모래사장 위로 다정이라는 이름과 두 사람분의 발자국이 비쳤다. 먼지 낀 하늘은 회색이었지만 먼지구름 사이로 빛나는 노을 덕분에 점점 붉어졌다. 시아와 다정이 언덕 위로 올라갈 때쯤 노을이 완전히 진 모양인지 주변이 전부 어두워졌다.

 

[저것 봐. 전부 조그맣게 보여. 장난감 같다.] 

 

다정은 더 이상 빛나지 않는 언덕 아래의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죽은 도시는 다시는 눈을 뜰 것 같지 않았다. 시아는 다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정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 장면은 정말 평화로워 보였다. 이라는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치익----------]

 

그러나 다음 순간, 시아의 화면이 잡음을 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놀란 이라가 몸을 굽혀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엔 다정이 사라지고 시아에게 임무를 내렸던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이 사람이 왜…”

 

남자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시아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 주일 중 6일은 우리를 기억하며 우리의 이름을 부를 것. 그것이 네 첫 번째 임무다. 그리고 두 번째 임무.]

 

“두 번째?”

 

이라는 인상을 구기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인간을 발견하면 죽여라. 첫 번째 임무가...]

 

남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언덕과 다정이 보였고, 시아가 빠르게 고개를 젓는 모양인지 화면이 흔들렸다. 시아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시아는 충분히 불안정해 보였다. 다정의 머리를 쓰다듬던 시아의 손이 빠르게 떨렸다. 이라는 불길함을 느꼈다.

 

“인간...”

 

그녀는 시아가 자신들을 처음 보았을 때, 무엇을 했는지 떠올렸다. 시아는 자신들을 관찰했다. 돌이켜보니 그랬다. 그건 자신들이 외부인인지 알아보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시아가 자신들을 외부인이 아니라 자신의 행성에 사는 ‘인간’인지 판단하기 위해 관찰한 것이라면?

 

[시아? 왜 그래?]

 

화면 속의 다정은 놀란 얼굴로 시아에게 다가갔다.

 

“가지 마.”

 

이라는 얼굴을 화면에 바짝 붙인 채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정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다정은 시아를 양팔로 안은 채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시아의 손은 여전히 다정의 머리 위에 있었다.

 

“안 돼...”

 

이라의 중얼거림은 거기서 끝이었다. 곧 폭발 소리와 함께 다정의 머리 한 쪽이 날아갔다. 이라는 화면을 툭 놓았다. 그리고 커다래진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시아는 빠르게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두 손이 얼굴을 감싸고 있는지 손의 그림자가 화면을 나뭇가지처럼 가리고 있었고, 발포가 끝난 한 손에는 연기가 벌레처럼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 연기 사이로 얼굴이 사라진 다정이 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린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시아의 화면에는 시스템에 손상이 오고 있다는 경고 문구가 잔뜩 떠올랐다. 모든 문구가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시스템 안정화를 요구했고 사이렌 소리와 다른 사이렌 소리가 겹쳐 메아리처럼 울렸다. 소리는 빠르게 반복 되고 반복 되었다. 그러다 한 순간 고요해졌고, 화면에는 아까 그 남자가 다시 비쳤다.

 

[…인간을 발견하면 죽여라. 첫 번째 임무가 네 일 순위 임무이니 육일은 그 일을 하되 일곱째 날이 되면 발견했던 인간을 모두 죽이도록. 이 별에서 태어난 인간은 모두 흙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네 두 번째 임무…]

 

이라가 화면을 거칠게 껐다. 검은 화면 위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그 눈물은 마치 시아가 흘리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크게 숨을 쉬었다. 이라는 마침내 자신이 시아의 별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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