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조각을 찾아서

2020.03.27 00:0503.27

  조각을 찾아서

                                                                                                                                                                                        

 

 

찰나의 순간에 눈에 번쩍 띄는 것들이 있다. 홀린 듯 날 사로잡은 그 물건은 귀걸이 한 쌍이었다. 섬세한 세공의 은방울꽃 모양이 빛을 굴절시키며 영롱하게 반짝였다. 고요한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겨 멍하니 바라봤다. 그저 예쁘다는 감상 너머에 느껴지는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귀걸이의 주인은 바로 나, 이현서가 틀림없었다. 강한 확신에 차올라 계산을 치렀다.

귀걸이를 꽂으려다가 움찔 놀랐다. 라이프로그 칩이 들어있었다. 유진에게 귀엣말을 건네자 동그란 눈이 두 배쯤 커졌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잠그고 달뜬 흥분을 잠시 가라앉혔다. 모니터를 켜고 라이프로그에 접속해서 칩을 꽂았다. 로그 기록을 조회하니 폴더는 네 개만 남아있었다. 첫 번째 스프링 폴더의 라이프로그를 클릭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로 푸른 풀밭이 펼쳐졌다.

메모러의 양옆으로 성인남녀 한 쌍이 발을 맞춰 걷고 있었다. 그들은 낮은 덤불 근처의 아담한 저수지에 자리를 잡았다. 햇볕에 반짝이는 저수지 윤슬이 퍽 아름다웠다. 상냥한 인상의 여자는 피크닉 바구니에서 꺼낸 샌드위치와 토끼 모양 사과를 접시에 가지런히 놓았다. 여자는 메모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미풍이 여자의 밀짚모자를 날려버리자 남자가 주우러 뛰어갔다. 메모러가 천진난만하게 까르르 웃었다. 이윽고 남자는 이름 모를 들꽃 몇 송이를 따와 능숙하게 화관을 만들었다. 남자가 메모러의 머리에 화관을 얹자 앵글이 위아래로 거칠게 흔들렸다. 행복한 웃음소리가 번지면서 풍경이 빙글빙글 돌았다.

“설마, 아닐 거야…….”

느닷없이 날아든 벌 때문에 메모러가 꺅하며 몸을 움츠렸다. 하얀색 티셔츠에 청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일어섰다. 오른쪽 팔이 엄마와는 달리 흉터 하나 없이 매끈했다. 얼굴만 다를 뿐, ‘우리 딸이 꽃인 줄 알고 벌이 날아왔네.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라며 다독거리는 말투도 똑같았다. 한낮의 평화가 작은 소란에 들썩거리는 어느 봄날의 기억. 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귀에 거슬리는 잡음과 불규칙한 선들이 엉키며 화면을 메웠다. 그리고 꺼져버렸다. 충격으로 검은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야. 내 기억이랑 똑같아.”

우연일지도 모르는데 확신하긴 이르다. 침착하게 다음 폴더인 썸머를 눌렀다.

피서객들이 북적대는 해수욕장 모습에 화면을 뒤로 감았다. 퉁퉁 부은 다리를 끌어안고 자지러지게 우는 메모러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에워쌌다. 해파리에 쏘인 것 같다며 스프링 폴더에서 보았던 엄마인 여자가 울먹였다. 구급차가 오고, 메모러가 들것에 실려 갔다. 이 또한 영락없이 같은 기억이었다. 의심과 혼란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길을 지나다가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내 라이프로그와 앞선 두 영상을 번갈아 비교했다.

그날의 풍경, 부모님과 내 옷차림, 불쑥 끼어든 벌 한 마리나 해파리 따위의 세세한 설정까지 전부 똑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얼굴뿐이었다. 누군가 감쪽같이 우리와 그쪽 가족을 얼굴만 때서 붙인 것처럼 말이다. 여름 피서지에서 해파리에 쏘여 병원에 실려 간 기억이 있을 아이의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정체 모를 불안이 소름처럼 도돌도돌 돋았다.

 

배후에 숨은 음모를 생각하느라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밥알을 깨작대는 모습에 엄마가 퉁명스레 물었다.

“얘, 왜 이렇게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해?”

“엄마, 나 여덟 살 때 저수지에 놀러 갔던 거 기억나?”

엄마의 입이 벌어졌지만, 말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반찬을 뒤적이던 아빠의 젓가락도 멈췄다. 정적을 뚫고 나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애써 침착함을 가장했다.

“그건 갑자기 왜?”

“그때 엄마가 만든 샌드위치 정말 맛있었는데, 저수지도 끝내줬고. 또 놀러 가면 좋겠다.”

“난 또 뭐라고. 샌드위치 내일 만들어 줄까?”

“저수지 앞에서 커피랑 아이스크림 팔던 카페도 계속 있을까? 되게 분위기 있었는데.”

짧은 순간, 엄마와 아빠의 눈이 마주쳤다. 아빠는 지켜보는 내 눈을 의식하곤 밥그릇으로 급히 시선을 돌렸다.

 “뭐 사람들도 많이 가는 곳이니깐 아직도 장사하겠지.”

“흠흠, 오늘따라 밥 먹는 데 왜 이리 말이 많냐. 얼른 먹기나 해라.”

거짓말. 그 저수지엔 우리뿐이고 카페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아빠는 곧 자리를 떴고, 엄마도 서둘러 밥을 비우고는 일어났다. 혼자만 덩그러니 식탁에 남았다. 함께라 믿었던 기억에서 균열의 틈을 목도하자 속이 메슥거렸다. 차가운 물로 입을 헹구고 방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 폴더 속 ‘발레’를 클릭했다.

거울 너머, 소녀의 얼굴이 보였다.

예리한 검은 눈동자를 따라 쭉 뻗은 반듯한 콧날, 차분하고도 야무진 입술과 생기를 머금은 볼은 진한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풋풋해 보였다. 어림잡아도 열대여섯 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화려한 비즈의 발레복을 입은 소녀는 우아한 백조처럼 동작을 연습했다. 앞에 놓인 꽃바구니 리본에는 ‘봄의 공연을 축하한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뒤이어 무대가 나오고 소녀를 비롯한 앳된 발레리나들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화면은 짧은 간격으로 깜빡거리면서 이내 끝났다. 나는 바로 나머지 라이프로그도 켰다.

수평선 위로 하얀 태양이 눈부시게 빛났다. 횟집, 정박한 낡은 배, 방파제. 그리고 어떤 남자의 클로즈업 된 얼굴이 화면 가득 비쳤다. 메모러가 남자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무척 가까운 사이인 듯했다. 파도 소리가 겹쳐서 말소리는 웅얼거렸다.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폴더를 전부 확인하자 깊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여태껏 알고 있던 내 기억이 모두 가짜인 걸까, 라이프로그의 사람들은 나랑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질문들의 아우성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모른 척 덮기엔 나라는 존재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조각난 기억을 모아야만 비로소 이 연극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봄이라는 여자를 찾아야 해. 나랑 어떤 상관이 있는지. 내 어린 시절 기억이 그 여자 기억이랑 똑같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따분하던 이현서 인생에 하루아침에 웬 날벼락이야. 내가 소설을 좀 써봤는데 들어봐. 라이프로그 속 소녀가 실은 진짜 딸인데 사고로 죽었어. 너희 부모님은 딸의 빈자리를 못 이겨 고아인 널 입양해서 가짜 기억을 심은 거고. 왜 치료라면서 기억조작, 암암리에 하잖아.”

“입양이 뭐 그리 대수라고 요즘 누가 그렇게 어려운 방법을 쓰면서까지 숨겨. 엄마도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니깐?”

“하긴! 암튼 그게 무슨 상관이야. 못생긴 얼굴로 종일 심각한 표정 지으니깐 눈 뜨고는 못 봐주겠어. 넌 그저 이 홍유진의 제일 친한 친구라는 것만 기억하면 돼.”

유진의 시답잖은 말에 픽 웃었지만, 생각이 계속 기우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빛과 유전자를 이용한 광유전학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기억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기억이 저장된 세포 무리인 ‘엔그램 세포’를 체취, 기억을 무한히 복제하는 게 가능해졌다. 삭제는 싫은 기억을 떠올릴 때 활성화되는 특정 시냅스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해주면 끝이었다. 쉽고 간편하게 기억의 조작과 삭제가 이뤄졌다.

단,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부작용을 막고자 삭제 시술에는 제한을 두었다. 재난이나 사고를 당한 사람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 않게 치료의 목적으로만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의 왜곡으로부터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려는 사람들은 라이프 로그 이식을 선택했다. 나도 그렇고 유진도 그렇고 대부분 라이프 로그 시술을 받았다.

“헤, 이건 꽤 흥미로운데?”

검색 중 내 눈길을 끈 기사가 있었다.

십수 년 전, 대형 기억치료 클리닉에서 생생한 기억의 아카이빙을 위해 사람들의 기억을 추출하는 임상시험 광고로 도덕적 질타를 받았다는 기사였다. 상황이 커지자 익명의 기증자에게 라이프 칩을 전달받아 기억을 복제 후 재창작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다. 기억치료 시술은 2045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마도 그해 사건 사고가 잦은 탓이 아닐까 추측되었다.

 

여자가 귀걸이를 넘겨야 했을 사유는 무엇이었을까. 라이프로그 속 여자의 얼굴을 캡처해서 페이스 검색창에 넣었다. 데이터들이 빠르게 깜빡이며 찾기 시작했다. 지루한 대기 끝에 여자의 정보가 드러났다. 놀랍게도 청소년 실종센터 사이트의 공고문이었다.

이름 김 봄, 2040년 실종 당시 나이는 18살이었다. 15년 전 일이었다. 공고문의 연락처를 옮겨 적었다. 단순 가출이라면 이미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섣불리 연락하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 머릿속 상상이 제멋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답답한 마음에 냉수라도 들이킬까 싶어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거실에 있었다.

 “아직 안 잤어?”

 “물 한 잔 마시려고.”

불빛 아래, 팔에 있는 흉터가 오늘따라 눈에 들어왔다. 일그러진 형태의 무늬를 우두커니 바라보다 예전에 본 벼락 맞은 나무의 영상과 연결되었다.

벼락을 맞은 직후, 시뻘건 화상의 속살을 드러낸 나무가 뇌리에서 좀체 잊히지 않았다. 화상의 주변부는 까맣게 타들어 가 옅은 회색빛이 기둥을 뒤덮었다. 죽음의 기운을 정통으로 맞은 나무는 시간이 지나 뒤틀리고 갈라져 기괴한 형상으로 남았다. 강렬한 자국 때문인지 다른 나무에 비해 더욱 비범해 보였다. 누군가는 벼락 맞은 나무의 생명력을 찬양하며 소원을 빈다고도 하던데, 엄마는 어떤 여유에서 흉터를 지우지 않은 걸까. 어쩌다 난 거냐고 물을 때마다 엄마의 눈빛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노골적인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엄마는 팔을 슬며시 감추고는 피곤을 핑계로 자연스레 돌아섰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는 오른팔에 화상 자국이 있었다. 인공 피부로 완벽하게 흉터 제거는 물론, 겉으로는 실제 팔과 구분이 안 되는 사이보그 의수까지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엄마는 시류를 따르지 않았다. 첨단의 시대에 왜 그렇게 궁상을 떠냐고 구시렁댔지만, 그때마다 씁쓰레한 미소를 지은 채 별말이 없었다.

침대에 누운 지 한참인데도 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린 시절 추억이라 믿었던 것들을 이것저것 들추어 꺼내 보았다. 이게 다 가짜라면 어떤 상실감이 날 덮칠지 가늠이 안 되었다. 두려움의 눈물 한줄기가 비어져 나와 베갯잇을 적셨다. 창밖으로 어스름이 비칠 때까지 기억을 저울질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학교에서 내 투정을 받아주는 건 여전히 유진의 몫이었다.

 “진지하게 얘기 좀 해볼라치면 기가 막히게 자리를 피한다니깐?”

“너희 엄마 노이로제 걸리시겠다. 그냥 대충 살면 안 되냐? 나까지 피곤하거든?”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기억이 조작당했다는 확신에 쐐기를 박아줄 열쇠였다.

“강아지 끌어안고 있는 이 꼬맹이가 너냐? 되게 귀엽네.”

“나 동물 무서워하잖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사진 뭐냐고 물어보니깐 엄마 반응도 너랑 비슷했어. 내가 무서워하는 걸 왜 모를까 싶었지. 이상한 기색이란 감이 왔는지 왜 자꾸 어릴 때 이야기를 캐묻냐며, 시비 거는 거라면 더 할 말 없대. 딱 자기 말만 하고 나가더라.”

“야, 너희 가족 문제도 없고 화목하잖아. 별것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면 안 돼?”

“이 사진도 가짜야. 확대하니깐 조잡하게 합성한 티 나. 사진도 그렇고 엄마 표정이며 말투, 몸짓 하나하나가 필사적으로 나한테 뭘 숨기고 있다고. 너 말처럼 대수롭지 않은 일이면 그냥 말해줘도 되는 거잖아.”

흥분해서 목소리가 높아지자, 유진은 귀 파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네 일 아니라 이거지? 오늘은 담판을 짓고 말 거야. 기필코 진실을…….”

내 말을 막은 건 비상경보기 신호음이었다. 고음의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진동시켰다. 자동 개폐 시스템이 작동해서 창문과 출입문이 활짝 열렸다. 천장이 뚜껑처럼 아래로 열리면서 산소마스크까지 내려 오자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움찔거렸다. 다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이거 어떡해. 나가, 말아?”

의외로 사이렌이 길어지자 아이들의 웅성거림도 점층적으로 커져갔다. 교실은 긴장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였다. 몇몇 아이들은 복도로 나와 서성이면서 불안의 목소리를 돋웠다. 그때 선생님이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다들 놀랐지. 미안하다. 이번에 비상경보 체제를 강화하라는 공문이 와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바꿨거든.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 바로 수습했다.” 

선생님이 멋쩍은 표정을 짓자 아이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상 연락망인 집으로 알림이 동시에 갔을 거다. 오작동이라고 지금 부모님께도 자동으로 연락이 가는 중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테니 안심들 해라.”

소란했던 교실에 평화가 찾아오면서 다시 수업이 재개되었다. 수업이 반쯤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뒷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뛰어 들어왔다. 다름 아닌 엄마였다.

“엄……마? 뭐야……. 무슨 일이야?”

나를 확인한 엄마의 눈에 긍정의 안도감과 부정의 공포가 마구 뒤섞여 있었다.

“너 무사해? 아무 일 없어, 진짜 괜찮은 거야? 전화는 왜 안 받니!”

“왜긴, 몰라서 물어? 수업 중이니깐 당연히 못 받지!”

“통신이 끊겨서 못 받나 싶었지. 달려오면서도 어찌나 심장이 뛰던지. 정말 다친 데 없어?”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는 엄마 얼굴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유령 같은 얼굴로는 내 양팔을 결박하듯이 꽉 붙잡았다. 아픈 건 둘째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구는 엄마 때문에 수치심이 몰려왔다.

“왜 그렇게 오버해. 시스템 오작동이라고 연락받았잖아.”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널 어떻게 거기서 구했는데! 한 번 더 폐에 화상을 입기라도 하면…….”

자신이 뱉은 말에 놀란 엄마는 뒤늦게 입을 틀어막았다. 엄마에게 재생되는 공포의 기억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며 내게도 생생히 전해졌다. 뭐라 변명도 없이 엄마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서둘러 교실을 나갔다.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경험한 뭔가가 분명히 있는데 정작 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 허락 없이 억지로 봉인한 데서 오는 불쾌감이 구렁이처럼 전신을 휘감았다. 엄마의 과잉반응을 그저 해프닝만으로 넘길 수 없었다.

 

 수업이 다 끝난 후 유진과 나는 운동장 벤치에 마주 앉았다.

“우리가 여덟 살 때면 2045년도지?”

내가 아무 대꾸도 없자 유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해 기억치료 시술이 큰 폭으로 증가했잖아. 너랑 엄마 기억이 엇갈리는 것도 여덟 살 전후고. 네가 여덟 살이던 그 해, 넌 폐에 화상을 입을만한 큰 사고를 겪었어. 뭔지는 모르지만,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게 너에게 무척 고통스러웠을 거야. 네 머리에 남아 지독하게 괴롭히는 끔찍한 기억을 지우려고 너희 부모님은 기억치료 시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조금 전 벌어진 일로 말미암아, 유진의 추리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왜 남의 기억을 훔쳐야만 했는지 엄마가 말해줄 수 없다면 나 스스로 답을 찾고 싶어.”

내내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귀걸이 돌려주러 같이 가줄래?”

유진은 흔쾌히 내 부탁을 수락했다. 목소리로 물을 용기는 없어서 공고문에 나온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냈다. 예상대로 답장이 오지는 않았지만 일단 가보기로 했다.

터미널 앞, 아직은 해가 떠 있어 날이 훤했다. 그러나 서늘함이 날 집어삼키는 건지 온몸에 냉기가 돌아 추웠다. 몸을 부르르 떨자 유진이 입고 있던 후드 점퍼를 벗어줬다.

“난 괜찮으니까 입어.” 

유진이 있어서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아. 여기서 1시간이면 간대.” 

 버스에서 졸다 눈을 뜨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괜한 헛고생은 아닐까 조바심 속에서 주소를 재차 확인했다. 얼마쯤 걸어가자 허름한 단층 주택이 나타났다. 가벼운 떨림을 느끼며 벨을 눌렀다.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여자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김 봄씨 어머님이시죠?”

여자의 눈이 커지더니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전해줄 물건이 있다고 연락한 사람인가요?”

 “네.”

“일단 들어와요.”

누추한 살림살이가 다닥다닥 붙은 어둡고 좁은 거실이었다. 여자가 과일과 주스를 내오고 나서야 서 있던 우리는 쭈뼛거리며 앉았다. 

 “벼룩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김 봄씨의 것인 이 귀걸이를 샀어요. 나중에 보니 라이프 칩이 들어 있어서 왠지 꼭 돌려줘야 할 것 같았어요. 페이스 검색으로 찾다가 실종 신고문을 봤고,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딸은 몇 년 전에 죽었어요.”

짧은 전율이 뒤통수를 훑으며 지나갔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죠. 시신의 유전자를 확인하니 내 딸이라면서.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더군요. 나중에서야 함께 살던 남자친구와 연락이 닿았죠. 봄이가 갑자기 사망해 경황이 없었다더군요. 유품을 정리하던 중 기억조작 클리닉 광고를 봤는데, 자기 딴에는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돈을 안 받고 넘겼대요. 봄이 역시 아픈 상처가 있는 애였으니깐요. 아마도 클리닉에서 기억을 추출하고 처분하는 과정 중에 거기까지 흘러 들어간 듯싶네요. 수고스럽게 먼 길 와줘서 고마워요. 비록 주인은 못 만났지만.”

“감히 이런 말씀 드리기는 그렇지만, 엄마를 많이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적 부모님과 소풍 갔을 때 기억을 가장 많이 조회했거든요.”

용기를 쥐어짜 낸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해준 것도 없는 못난 에미인걸요. 봄이는 발레를 하기에 훌륭한 재능을 가진 아이였죠. 봄이가 원하는 길을 힘껏 지원하려면 돈이 제법 많이 들었어요. 봄이 친아빠와 일찍 이혼한 터라, 혼자 애 뒷바라지를 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어찌어찌하다 봄이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 재혼을 하게 됐어요. 이제 형편이 나아지나 했는데 언제부턴가 애가 부쩍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말수도 줄어드는 게 좀 이상했어요. 이유를 물으면 울기만 하고……알고 보니 새아빠가 봄이를 여러 번 성추행했더군요. 어떻게 다시 이룬 가족이었는데, 난 겁이 나서 알면서도 모른 척했죠. 하지만 그러면 안 됐었는데. 그때 침묵했던 게 내 인생 최대의 실수에요. 왜 아이의 고통을 무시했을까 수없이 자문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순 없었죠. 자식을 죽게 만든 죄책감과 뼈저린 후회가 내 선택의 죗값이라고 생각해요.”

여자의 탁한 회색 눈동자에 물빛이 서렸다. 

 “와줘서 고마워요. 봄이가 살아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거예요.”

 

그곳까지 가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엄마가 끝까지 함구했던 이유,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유진을 끌어안자 말없이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들겼다.

집 앞에 엄마가 서 있었다. 나를 발견한 엄마가 급하게 달려왔다. 엄마는 고개를 떨구며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담담히 말문을 열었다.

“8살 때 우리 가족은 캐논 픽 시티로 여행을 갔어. 밤에도 환한 인공태양 아래서 놀이공원을 즐길 수 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 아마 전날까지만 해도 우리는 들뜨고 설렜겠지. 극단주의 종교단체가 폭발 테러를 벌이는 곳이 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거야. 그 사건으로 인해 너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사망했어. 엄마 팔이 화상을 입은 것도 그날 사건 때문이야.”

2045년, 캐논 픽 시티 테러 사건은 사람들의 치를 떨게 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영상에선 굉음과 함께 시뻘건 불길들이 곳곳에서 치솟았고 즐거웠던 놀이공원은 삽시간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참혹한 비명이 귓가에 생생히 전해져서 영상을 차마 끝까지 볼 순 없었다.

“저, 전부 다 본 거니?”

“난 엄마에게 얘기를 듣고 싶었어.”

미성년자가 기억치료 시술을 받을 경우, 성인이 될 때까지 원래 데이터를 보관하는 게 병원의 의무였다. 병원에 갈뻔한 발걸음을 되돌려 이곳에 왔다. 머뭇거리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어. 일시적인 기계 오류로 곧 있으면 괜찮아진다는 방송을 내보냈길래 처음에 기다렸지. 그런데 기대와 달리 사방이 어두워졌고,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건물들이 화염에 휩싸였어. 사람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 나는 네 손을 붙잡고 아빠와 함께 출구를 찾아 미친 듯이 뛰어갔어. 천장 마감재가 불길에 녹아 덮쳤을 때 간발의 차로 너를 밀쳐냈어. 하지만 미처 내 오른팔에 불길이 떨어지는 걸 막진 못했지. 뒤늦게 온 소방관들이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구조했고, 그 중엔 기적처럼 우리 가족도 포함됐어. 넌 기도와 폐에 약간의 화상을 입은 것 말고는 괜찮았지.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했어. 우리에게 곧 괜찮아진다고 말했던 관리자들은 폭탄이 터졌다는 얘길 듣고 줄행랑을 쳤다더구나. 그들이 사실대로 알려줬더라면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지는 않았을 거야.”

그래서 엄마는 시스템을 못 믿고 교실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던 것이었다. 돌려주러 갔지만, 선물이라며 받은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록하고 싶었다.

“넌 사고의 트라우마로 환청과 고열에 시달렸고, 밤에는 우리를 찾으며 울어댔어. 화마의 악몽에서 도망가려는 아이처럼 말이야. 병원에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했지. 심리치료로 큰 차도를 기대하긴 어려웠어. 그때 고통스러운 기억을 삭제한다는 획기적인 치료법을 알게 되었지. 하루속히 고통을 덜어주려고 난 망설임 없이 시술 동의서에 사인했어. 안전할 거란 의사의 말관 달리 부작용이 있었고, 멀쩡했던 원래의 기억 일부까지 삭제되었어. 네가 혼란을 겪는 걸 피하려고 조작된 기억을 추가로 심었던 거야. 혹여나 이런 날이 올 수 있을 거라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야. 그런데 막상 닥치니 너무 두려워서……. 이렇게 피하고 말았어. 정말 미안하구나, 현서야.”

귀걸이는 발레리나를 꿈꿨던 딸의 성장을 기록하려고 여덟 살 생일에 선물한 것이라 했다. 그 기억이 본래 주인을 잃은 탓에 나는 두려운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삶은 우연을 가장해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엄마의 진심을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축복처럼 여겨졌다.

청소년 성폭력 상담가 ‘틴 키퍼’ 김희은. 여자가 건넨 명함에 적힌 문구였다. 딸의 사망 이후로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후회는 기억보다 더 끈질겨요. 마음의 가장 밑바닥,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심연에 기생해서 진절머리 나게 사람을 갉아먹죠. 그런데도 난 기억을 삭제할 수 없어요. 내 잘못된 선택을 지워서 도망치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끝까지 무책임한 부모인 걸 인정하는 거니깐......

봄이 같은 아이가 다시는 없게 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죠. 때론 상처로 남을 기억이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더군요. 내게 이 기억은 봄이를 떠올리는 문신인 셈이에요.’

바닷물에 쓸린 모래성처럼 허물어진 엄마를 잡았다. 울퉁불퉁한 팔의 흉터가 손끝에 만져졌다. 혼자서 끌어안느라, 잊으려고 몸부림치느라 힘들지 않았을까. 무섭지는 않았을까.

“그 기억, 같이 나누자 엄마.”

살포시 머리를 기대자 엄마의 손이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이테처럼 해가 지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기억을 새길 것이다. 오래 묵은 나무일수록 옹이도 많다. 깊게 박힌 옹이는 아주 단단해서 못으로도 뚫을 수 없다. 단단하게 박힌 상처들이 또 다른 상처를 감싼다는 의미를 나는 아직 명확하게 모르겠다. 만약 앞으로도 이 같은 비극이 벌어진다면, 그래서 지우지 않고 견딜 수 있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알 수 없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그 길을 나는 걸어가겠다. 내 곁엔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든든한 가족과 친구가 있다. 이들이 내 곁을 함께 가줄 것이다.

쉽게 부서지지 않는 것들을 떠올리다 위를 올려봤다. 고요한 하늘 위로 달고 쓴 기억의 조각들이 별빛처럼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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