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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리와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2020.03.28 앞부분 수정)

 

1.

편의점은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두 사람의 길이 갈라지는 길목에 있었다. 견우가 처음 우주적 불행의 총량 문제에 대해 들은 것도 주황색 가로등으로 밝혀진 그 조용한 길에서의 일이었다. 재원은 뜬금없이 불행의 양은 증가하기만 할 것이라고 한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알 수 있잖아. 행복하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서 나중에 갑자기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어. 언젠가는 자기 불행의 양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버티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단지 우주적 불행의 총량을 증가시키고 있는 거지.” 재원은 마치 모든 증명을 마치고 최종적 결론을 내리는 사람처럼 차분한 투로 말한다.

 “그러면, 그런 곳에서 태어나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견우는 묻는다. 재원은 아무래도 자기 가족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혼자서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것 같았다. 그녀와 매일 같은 길로 독서실에서 돌아오고, 편의점 창가 자리에 앉아있는 동안에도.

나는 우주적 불행의 총량을 증가시키고 싶지는 않아. 그렇지 않아도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잖아.” 재원은 심각하게 말한다. “좀 데려다줄게.”

견우는 어둠에 잠긴 아파트 현관에 도착하고 그가 돌아설 때까지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서로 충돌하는 생각들이 있었다. 한편으로 그녀는 그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확실히 행복 총량의 증가를 위해 설계된 집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집들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불행에 수렴할 그 시간들을 그녀는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 가을 그와 함께 걸었던 서울의 어두운 구석들이 좋았고, 동네 학원과 부동산과 김밥집 간판 너머로 보이는 새 멀티플렉스의 빛이 좋았다. 그리고 그녀 방 이불의 오래된 하늘색이,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같이 죽자고 한 다음에도 엄마가 잊지 않고 차려주는 저녁밥의 따뜻함이 좋았고, 집에서 몇 분 걸어나가면 보이는 한강 교각의 반짝임이 좋았다. 물론 그녀는 개인적 기분에 휩쓸려 우주적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

그런데 환생한 다음은 어떻게 하려는 거지? 견우는 문득 생각한다. 재원이 원하는 것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면 세상에는 물론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고 해서 우주적 불행의 총량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던가? 어쩌면 재원은 다음 생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도 몰랐다. 재원의 부모님은 유명한 무영혼론자 교수 부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역시 부모님처럼 영혼의 존재는 조작된 것이라고 믿고,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

수능이 끝나고 독서실 회원권이 만료된 뒤에도 재원은 반 년 전 빌려갔던 범프오브치킨 2집을 돌려주러 한 번 아파트 앞으로 찾아온다. 그는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잊은 사람처럼 목도리도 코트도 없이 슬리퍼만 신고 온다. “전에 네가 빌려준 목도리 위에 있는데 갖다 줄까?” 그녀는 묻는다.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들은 바람을 피해 비상계단 구석에 서서 나군과 다군 지원에 대해, 동네 빵집과 프랜차이즈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에 대해 말하지만,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그는 중요한 얘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목도리도 없이 돌아간다.

그렇지만 수능과 입시 결과 발표 사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사이,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그 시간에 견우는 그와 우주적 불행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일부러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그녀는 새해가 되면 그를 찾아가서 우주적 불행과 행복의 계산 문제에 대해 한 번 제대로 얘기 하기로 결심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계산에 있어 그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확실히 하나는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주가 이미 그렇게 무한에 수렴하는 불행으로 가득하다면, 그가 조금 더 보탠다고 해도 총량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견우는 급하게 연락하지는 않는다. 수능도 끝났고,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2.

하지만 행복과 불행의 총량에 대한 견우와 재원의 서로 다른 계산법은, 그들의 이번 생에 대한 계획과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상관없게 된다. 그들 둘 다의 계산을 전부 엉망으로 만들 정도로 거대하고 익명적인 폭력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가던 반지하 대형마트에서 일어난 화재였다(고 견우는 듣는다). 청소년 기사자(旣死子) 상담센터에서는 죽음의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굳이 기억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한동안 견우는 죽었다는 것의 의미를 크게 실감하지 못한다. 죽어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일이었다. 그들은 사후20년을 보장하는 유령화 보험금에 가입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첫 5년간은 정부 보조금도 나왔다.), 일단 식비가 들지 않았고 관리비도 살아 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적게 나왔다. 

처음에는 오히려 더 좋아진 것도 같았다. 막 졸업한 타이밍과 겹쳐서였기도 했지만, 견우에게 죽음 이후는 마치 계속되는 방학처럼 느껴진다. 그날 죽은 동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동네는 봄꽃 사이를 산책하는 죽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그날 죽은 사람들 중) 재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의 유령을 본다. 옆 학교 과학 선생님이던 203호 아저씨는 2동 화단 앞 벤치에 하루 종일 앉아 있었고, 그녀를 보면 활짝 웃으며 인사했으며, 살아있을 때는 별로 친하지 않던 아영은 볼 때마다 낡은 아파트의 아무렇게나 자라난 화단을 점거한 길고양이들을 구경 중이었고, 살아 있을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은 그만두어야 했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아도 그만둘 생각이었고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한다. 엄마는 동창회 기사자 소모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고, 친구들과 중년 기사자 독서 모임을 만들어 머지 않아 회장까지 된다. ‘죽은 사람이라고 해서 죽은 것처럼 있을 필요는 없어.’ 엄마는 말한다.

견우도 엄마의 권유로 죽기 전에 합격한 H대학에 등록하고(마침 그곳은 죽은 사람들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였다.), 살아있는 여대생처럼 옷을 입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녀는(불에 타 죽은 유령들이 흔히 그렇듯) 겨울이 얼마나 추운 계절인지 종종 잊는다. 2월에 반팔 원피스를 입고 나갔던 그런 날들 때문이었는지, 식사 자리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살아 있을 때처럼 산 사람들 사이에 잘 섞여들지는 못 한다. 그녀는 점점 학교에는 많이 가지 않고,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견우는 동네를 살아있을 때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게 된다.

*

견우는 몇 번 재원이 살던 신축 아파트 바로 앞까지 가서 그 별 같은 빛들을 올려다보지만, 11층 집들은 하나를 빼고 다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가 내려져 있지 않은 그 하나의 집이 재원의 집일 확률은 얼마나 됐을까? 재원의 가족 중에 사상자는 재원 뿐이라고 그녀는 졸업식에서 건너건너 듣는다. 그의 영혼은 어디로 간 걸까, 견우는 생각한다. 사실 죽은 사람 자신이 유령이 될지 되지 않을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유령이 되었을 리가 없었고, 환생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살아있는 동안 원하는 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죽어서 갑자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다. 그 해 견우는 광화문 교보문고의 민간신앙과 유령학 섹션에서 긴 시간을 보내지만, 사람이 언제 유령이 되고 유령이 되지 않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칙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폭력적이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경우에는 어쨌든 얼마간 원래 살던 장소를 떠나지 못한다고 했고, 미련이 있는 경우에도 그렇다고 했지만, 아무도 확실한 기준을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3.

서울시에서 기사자 보조금이 나오는 것은 사후 5년까지라는 것을 안 것은 그녀가 처음 동사무소에 기사자 등록을 하려고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다음은요?” 견우는 나중에 그녀가 해경 언니라고 부르게 되는, 유난히 친절했던 그 직원에게 묻는다. 해경 언니는 5년 제한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견우가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한참 후의, 그러니까 거의 5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죽어 있었으면 그것을 잊기 쉬웠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알던 유령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산 사람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아영이가 성불했고,  201호 할아버지가 유령이 되지 않고 이번 생을 떠났으며, 할머니는 강원도 요양 시설로 옮겨졌다는 것을 뒤늦게 안다. 재원의 집이 이사간지 오래란 것도. 어느 밝은 겨울 밤, 그녀는 겨울 스웨터를 입는 것도 잊어버리고, 불을 켜는 것도 잊어버리고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를 발견한다. 엄마는 TV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화면은 꺼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났을 때도 놀라지 않는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나 했지만 엄마는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았고, 베란다에도 다용도실에도 없었다. 약간 뿌옇지만 분홍색이고, 창틀을 만지면 차가운데 소파는 따뜻한, 예쁜 봄날이었다. 베란다에는 엄마의 화분들이 물기에 반짝이고 있었다. 견우는 아마도 이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처음부터 너무 오래 유령으로 있고 싶지는 않다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다니는 1층 아저씨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1층 복도를 서성였기 때문에 모두 1층 아저씨라고 부르는 그 유령은 사실 아파트 주민이 아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6.25 때부터 있었다고 했다.)

*

미루던 엄마의 성불 신고를 제출하러 동사무소에 간 길에, 그녀는 새로 온 젊은 남자 직원에게서 공지를 듣는다(해경 언니는 출산 휴가 중이라고 했다). “이제 곧 5년이죠?” 그는 견우의 서류를 뒤적이며 묻는다. “5년을 넘기면 지박령이 됩니다. 이 시점 전후해서 성불하는 경우도 많지만요. 혹시 최근 갑자기 잠이 많아지거나 날짜나 단어 같은걸 잊어버리는 증상이 있었나요?”

뭘 잊어버린 적은 없는데.. 며칠씩 자고 그런 적은 있어요.”

그러면 5년이 되기 전에 성불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일단 우리 관할이 아니게 되요. 중앙 기사자 관리공단에 가셔서 따로 등록하셔야 되고, 또 하나 복잡하게 되는건, 사시는 단지가 곧 재건축 들어갈 확률이 높거든요.” 나중에 다시 입주한다고 쳐도 공사 기간 동안 나가 있을 곳을 찾아야 하는데, 원래 살다가 죽은 집이면 몰라도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기사자들은 원칙상 안 받는 곳이 많다고 그는 경고한다. “저희가 도와드릴 수도 있지만요.”

수많은 서류를 엄마의 오래된 손가방에 넣고 나오면서, 얼른 환생하는게 좋지 않을까 견우는 생각한다. 계속 죽어 있기로 한다는 것은 꽤나 번거로운 일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멍하니 있다보면(이를테면 조만간 이사할 집을 구하지 못하거나 기사자 관리공단 등록을 깜빡하거나 하면), 엄마 걱정대로 시간 속에 영영 집을 잃고 1층 아저씨처럼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녀는 엄마가 죽고도 자주 갔던 동네 사주집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엄마는 교회도 다녔지만 죽은 다음에는 잘 가지 않게 되었고,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렇듯 무속신앙과 기독교를 겸하고 있었지만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하면 진짜로 믿는 것은 무속신앙이었다. 그녀는 딱 한 번 따라가본 적 있던 그 집을 찾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 단지 1층에 가정집인 척 하고 있는 그 점집의 문은 열리지 않고, 엄마 지갑에 있던 명함의 번호로도 통화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그 근처에는 2층 연립주택들과 회색 방음막들 사이를 따라서 한강 고수부지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생 때부터 제일 좋아하던 그 길을 어렵지 않게 찾는다. 서울처럼 복잡한 도시에는 시간이 내버려두고 지나가는, 아주 놀랄 정도로 변하지 않는 구석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느낄 수 없었지만) 추울 줄 알고 껴입고 나오면 부드러운, 산책에 딱인 가을 날이었다.

*

견우는 그 동네 사람들만 가끔 오는, 한강 공원 한 구석의 계단에 자리를 잡는다. 그녀는 거기 앉아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재원이나 엄마는 그걸 잘 했지만 그녀는 아니라서, 거리를 두고 생각하려면 준비가 필요했다. 양 옆의 사람들과의 사이에(혼자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거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서류가 가득 든 가방을 내려놓고, 그녀는 성실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견우는 교각의 그늘이 방향을 바꾸고 풀들이 저녁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다. 그 동안 그녀를 방해하는 것은 다섯 걸음 쯤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고등학생 커플이 자리를 뜨는 발소리와 간헐적으로 등 뒤의 풀잎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 소리 뿐이다.

그녀가 생각을 마쳤을 때는 일곱 시가 넘어 **철교가 초록색으로 빛나기 시작하고, 강가의 밝음이 시월 밤의 차가움에 잠겨가고 있었다. 몇 계단 아래 수풀에 숨어있는 낚시꾼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낚시대 끝에 작은 초록색 불들을 켠다. 그녀는 혼자 추위를 못 느끼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엄마가 지난 겨울에 넣어둔 스카프나 장갑이라도 있지 않을까 가방 주머니들을 뒤져본다. 그러나 동사무소 서류들 밑에는 언제 것인지 모를 목사탕 몇 알만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주변이 완전히 인기척 없는 어둠에 잠긴 것은 아니었고, 간간이 그 속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반짝임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 해 마지막 저녁 산책의 미련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확실히 재원은 그날 유령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여기 남았다면 단 한 번도 그녀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리는 없었으니까. 적어도 그녀의 생각에는 그랬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우주적 불행만을 무한 생산하는 이 수레바퀴를 떠났던 걸까? 하지만 이곳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깔끔한 세상인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녀는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하지 못한 말이 있어도 그대로 끝이고, 영혼도 몸도 남지 않게 되는 곳에 산다는 것은. 그런 곳에서는 목숨의 무게가 아주 차갑고도 무거울 것 같았다.) 그는 물론 그런 세상이 더 취향이었겠지만, 그들이 사는 이곳은 아무래도 한 번 있었던 것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한 번 만났던 것들은 서로를 그렇게 쉽게 잊지 못하는 세상인 것 같았다.

그러므로 그녀가 지금 성불한다고 치면 그들은 어떻게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영혼은 어차피 살던 곳을 멀리 떠나지 못한다고 했으니 더더욱. 그렇지만 문제는 기억이었다. 영혼의 RNA는 지난 생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그러면 우주적 불행 총량 계산에 있어서의 그의 오류를 그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왕 이렇게나 기다린 김에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교각 위를 지나가는 버스가 마지막 태양 빛을 반사하는 이 동네에서. 환생한 그를 유령으로 다시 만나는 것을. 잘 생각해보면 바로 서둘러 환생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녀는 여전히 이곳을 많이 좋아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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