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화성의 붉은 대지가 관측 창을 가득 채웠다.

RKB20, 플라이-바이 시퀀스 돌입. 

기체가 가볍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가압복을 입은 토마스는 가슴을 조여 오는 통증에 양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토마스는 외행성까지 날아가는 화물선 파일럿이다. 

RKB20, 고도와 속도 정상. 

심해어처럼 생긴 화물선 레쿱(Rekub)의 배면은 솥 바닥처럼 달궈지기 시작했다. 중력이 3G를 넘어섰다. 토마스는 짧은 호흡을 반복하며 버텼다. 부족한 연료를 중력으로 보충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싫어도 견뎌야 한다. 

RKB20, 항로 정상, 선외 압력 정상, 온도 예상치 범위. 

모든 고통은 벗어나기 직전이 가장 참기 어렵다. 토마스는 이를 악물었다. 관측창에 플라즈마 불꽃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졌다. 

RKB20, 플라이 바이 시퀀스 종료, 모든 게이지 정상 범위. 

마침내 화성이 돌팔매질을 하듯 화물선을 튕겨냈다. 

RKB20, 오토파일럿 레벨-2에서 레벨-3로 전환 완료.

 

“항해모드 변경. 모든 시스템 정상. 궤도수정 없다.”

 

라그랑주 포인트 4에 있는 베이스 셀레네(Selene)에서 2억4백만 킬로미터나 날아왔다. 플라이-바이를 마쳤으니 항해의 절반 이상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토마스는 비행 상태를 빠짐없이 음성으로 보고하지만 기지는 일일이 응답하지 않는다. 그것이 관례로 정착된 외행성 항해의 룰이다.임무 설계를 벗어나는 특별한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 한, 기지의 피드백은 없다. 가장 가까운 외행성 화성만 해도 음성 신호를 실은 전파가 편도로 이동하는 데 10분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X형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헬멧을 벗고 손목부위 링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풀었다. 벽에 붙여두었던 임무 매뉴얼이 진동 탓에 떨어져 나와 공중에서 빙빙 돌았다. 레쿱은 안정성이 뛰어나 플라이-바이를 채택하는 선주(船主)들이 선호한다. 토마스가 소속된 스페이스 인더스트리가 이 기종을 가장 많이 운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창밖은 다시 완전한 어둠이다. 깊이를 알 길 없는 어두움. 별빛은 어디까지나 그 압도적인 무대 위에 장식처럼 얹혀있을 뿐이다.

 

토마스는 바닥에 살짝 발을 굴렀다. 공중에서 한 번 턴을 하고 정비 칸 쪽으로 날아갔다. 벨크로로 봉해져있던 개인 포켓을 열고 상단에 ‘Walkman’이라는 글씨가 프린트된 작은 상자 같은 물건을 꺼냈다. 얇은 자기 테이프에 음성신호를 기록하는 20세기 골동품이다. 버튼을 누르자 철컥 하는 기계음이 들린 뒤 모차르트 환상곡 3번 D단조가 흘러나왔다.

 

걱정 했던 것 치고 단독 임무는 꽤 견딜만하다. 백금 덩어리 소행성 2011-UW158을 붙잡아 가면 회사는 6,000억 달러 이상을 벌 것이다. 토마스는 연질 캡슐 두 개를 입에 털어 넣고 양미간을 찌푸렸다. 근육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매일 먹어야 하는데 이번 것은 맛이 최악이다. 폐타이어를 씹는 것 같다. 회사는 비싼 동면장치를 도입할 생각이 없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코타나가 메시지를 알렸다. 코타나는 레쿱의 운항·통신 보조 시스템이다.

 

발신자는 레이 리. 1분32초 분량입니다.

 

기지를 떠난 뒤 서른한 번째 메시지다.

 

토마스는 음악을 정지시키고 화상 메신저 쪽으로 헤엄쳤다. 레쿱 선실 설계 정원은 3명, 화상 메신저가 설치된 곳은 근력유지 운동장치 옆이다. 원래는 칸막이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ECHO를 추가로 설치하느라 칸막이를 뜯어냈다. 어차피 토마스 한 명뿐이니 상관은 없다.

 

“축하해! 20번째 플라이-바이. 별 일 없을 거 알알지만 계속 지켜봤어.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그걸 10분 뒤에나 알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매번 기다리는 거야. 뭐, 특별히 할 얘기는 없어. 혹시 내 메시지가 벌써 귀찮아진 건 아니지?”

 

레이는 일부러 볼을 불룩하게 만들며 심술궂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레이의 작고 붉은 입술이 더 도드라져보였다.

 

“이번 임무엔 당신 혼자잖아. 당신 목소리 들으면서 말하고 싶은데. 녹화된 메시지 말고. 훗, 아무래도 나 그 ECHO 때문에 신경이 좀 쓰이나봐. 이것도 질투일까? 하하. 금방 또 할게.”

 

레이는 달아나듯 서둘러 스위치를 내렸다. 멋쩍어했다. '질투?' 토마스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레이가 지켜보기라도 하듯 토마스는 화상 메신저 옆 ECHO를 무심하게 툭툭 쳤다.

 

마지막 순간까지 토마스는 이번 임무를 수락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었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 본사에서 이반 파블로프를 만났다. 흰색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그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형적인 엘리시안 사람이었다. 루나 디스트릭트-제로가 위치한 ‘고요의 바다’는 원래부터 그들의 구역이다. 정육면체에 가까운 방은 밝고 천장이 높았다. 효율이 떨어지는 설계다. 두 벽면에는 창을 대신한 전면 디스플레이가 붙어있었다. 바람에 춤을 추듯 초록색 식물들이 싱그럽게 하늘거렸다.

 

“그러니까, 그건 소행성 포획 임무와는 별개로 쳐준다고요?”

“맞아요.”

“레이를 데려오라는 거죠?”

 

이반은 애써 미소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시 요약해드리죠. 이번 테스트는 외행성 여행객들을 상대로 베타 테스트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점검이에요. 여러 번 설명했지만 ECHO의 핵심은 고객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상대, 아바타가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하는 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 이번 테스트에서는 당신과 레니? 레이? 이름이 뭐든, 당신과 대화할 상대가 얼마나 잘 모델링 되는가가 관건이겠죠. ECHO 코어는 L5 엘리시안에서 공수해온 최신 AI 엔진이에요. 아주 비싸죠. 그런데 데이터를 안 넣어주면 깡통이나 다름없어요. 당신과 레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악센트로 말 하는지, 무슨 얘기를 주로 하는지를 사전에 학습을 시켜줘야 작동합니다.”

 

그의 설명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니었다. 데려오기 싫었을 뿐이다. 며칠 전부터 레이의 외골격 슈트에 문제가 있었다. 레이가 엘리시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절뚝거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토마스를 답답하게 쳐다보던 이반이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집중해요! 나를 보라고요. 다른 데 쳐다보지 말고. 원격으로 개인 단말 DB에 접속하는 건 간단해요. 답답하고 번거로워서 그렇게 싹 긁어오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불법이랍니다. 그리고 가능하다 해도... 불필요한 게 너무 많아요. ECHO에 그 뭐랄까... 쓰레기 같은 걸 넣고 싶지 않아요. 당신 동거인 개인 단말 DB에는 당신 성기가 오른쪽으로 휘었는지 왼쪽으로 휘었는지까지 아주 역겹고 쓸데없는 정보까지 다 담겨있을 테니까.”

 

상대의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전형적인 엘리시안 사람의 화법이다. 토마스의 관자놀이가 꿈틀했다. 이를 악물었다. 수명을 깎아먹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사성 입자가 쏟아지는 우주로 뛰어드는 ‘막장 인생’들. 그들에게 참는 일이란 어쩌면 숙명이다. 게다가 중요한 거래를 그르칠 수 없다.

 

이반 파블로프는 토마스의 주먹 두 개를 끌어당겨 자기 앞에 나란히 놓았다.

 

“자, 답답한 조종사 양반, 잘 봐요. 오른쪽 주먹이 당신이고 왼쪽 주먹이 당신 동거인이에요. 레니? 레이? 뭐든. 원래 화상 메시지는 전파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요. 그런데 이게 조금만 멀어지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베테랑이니까 경험했겠죠. 실시간으로 대화를 하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이반은 토마스의 두 주먹 사이를 벌리고 자기 주먹 두 개를 나란히 들이밀었다.

 

“자, 여기 내 왼쪽 주먹과 오른쪽 주먹이 'ECHO AWAY', 'ECHO HOME'이에요. 아 상품명이니까 외울 필요 없고요, 이 두 아바타가 끼어들어서 대화를 중개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마치 실시간 대화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겁니다. 당신이 유로파에 가던 엔켈라두스에 가던, 아예 카이퍼 벨트를 벗어나건 간에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이반 파블로프는 마치 정치 선동가처럼 손가락 5개 하나하나를 힘줘 흔들며 들어올렸다. 자신의 말에 스스로 취한 것 같았다. 토마스는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일만 잘 끝내면 레이가 슈트를 벗을 수 있어.’ 기본 운임의 세 배가 넘는 위험수당을 주는 단독항해였다. ‘유니버셜 리소시스 쇼크’이후 거의 사라진 일자리였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계약서에 ‘ECHO를 끝까지 켜지 않는 경우라도 실험 대가를 주겠다.’고 되어있는 부분이었다. 그것 또한 ‘실험의 일부’라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토마스도 잘 알고 있었다. 우주 개발 초기, 멋모르고 외행성 단독항해 임무를 강행했던 1세대 파일럿들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 유니버셜 리소시스라는 회사 소속이었다. 해안으로 헤엄쳐와 스스로 죽음을 택한 돌고래처럼 그들은 목성이나 토성 같은 행성 표면을 향해 직각으로 뛰어들었다. 기체 운항 시스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달 식민지 조사위원회는 ‘근본적인 사고원인은 인간의 나약함’이라는 내용의 백서를 냈다. 엄밀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12건 가운데 11건은 '조현병에 따른 자살'로 조사가 종결됐다.

 

커피 튜브에 뜨거운 증기를 불어넣으며 토마스가 픽 웃었다. 갑자기 고해성사를 하듯 허공에 대고 주절거리던 동료 파일럿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장기 임무에서는 코타나같은 단순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단독 임무도 아니고 동료가 있는데도 그랬다. 외행성 파일럿은 일반적으로 동성이건 이성이건 결혼 생활을 지속해 가기가 어려운 조건이다.

 

토마스는 자신이 있었다. 레이의 화상 메시지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지로 귀환할 때까지 ECHO 덮개를 벗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각별했다. 연인이었지만 함께 기체를 몰았던 동지이기도 했다.

 

레쿱 선내에 느닷없이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경고, 미확인 물체 접근. 경고, 경고, 20초 뒤 자동 회피기동. 경고, 경고, 가압복 착용.

 

토마스는 헬멧도 쓰지 못한 채 서둘러 조종석으로 돌아왔다. 관측 창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레이더도 마찬가지였다. 센서 오작동일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코타나가 제시하는 회피기동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회피기동, 기체를 15.3도 돌립니다. T-4,3,2,1 자세조정 엔진 분사.

 

갑작스럽게 선체가 뒤틀리자 낡은 레쿱의 뼈대가 ‘끼익’하는 소리를 냈다. 만에 하나, 충돌로 구멍이라도 뚫린다면 임무 전체가 실패할 것이다. 손상된 기체로는 UW158까지 갈 수가 없다.

 

근접까지 T-4,3,2,1. 콘택트.

 

"악!"

 

토마스와 레이의 라그랑주-루나 셔틀은 오렌지 빛이 도는 빨간색이었다.

 

그들은 L5-305번 게이트에 도킹해있었다. 관측창 밖으로는 푸른 별 지구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륙을 허가하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108번 게이트, 클리어. 305번 게이트, 발사 시퀀스 시작해도 좋습니다.

 

L5 터미널은 분주했다. 여느 날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셔틀을 탈 때, 시퀀스가 시작되면 그들은 음악을 틀었다. 테이프 플레이어는 레이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환상곡 D번은 해변을 간질이는 파도처럼 넘실대며 시작된다. 곡이 단조에서 장조로 넘어가 빠른 리듬을 탈 때쯤, 두 사람은 스텝을 밟듯 함께 메인 엔진을 점화시켰다. 두 사람은 부족할 게 하나도 없었다. 빠듯한 삶이었지만 매 순간이 달콤한 농담 같았다.

 

“T-15,14,13,12...”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특징 없는 화물 운송용 알루미늄 케이스를 하나 더 실었다는 정도. 화주가 무게에 비해 돈을 많이 쳐주겠다는 물건이었다. 그걸 셔틀 화물칸에 실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은 그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도크 락(Lock) 해제. T-4,3,2,1 엔진 스타트!”

 

L5를 출발한 토마스와 레이의 셔틀이 달 궤도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월면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도무기 한 발이 화물칸에 명중했다. 폭발로 두 동강 난 셔틀은 운석이 낙하하듯 그대로 월면에 내리꽂혔다. 셔틀의 가벼운 잔해들은 눈이 내리듯 소리 없이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조종석의 용골(龍骨), 스피어-프레임(Sphere-frame)은 용케도 형태 유지했다. 그러나, 달에서 태어난 레이의 척추는 그 충격에 으스러졌다.

 

그 일 이후 오랫동안 토마스는 악몽에 시달렸다. 잔해 속에서 누군가의 익숙한 얼굴을 보는 꿈이었다. 그러나 잠에서 깨면 그 얼굴은 매번 흔적 없이 사라졌다.

 

삐- 삐- 삐- 삐- 삐-

 

RKB20, 시스템 재부팅. 점검 모드로 가동. 생명 유지장치... 이상무, 추진 시스템... 이상무, 자세제어 시스템... 이상무, 도킹 시스템... 이상무, ISSC1, ISSC2 모듈... 이상 감지... 차단. 정상모드로 재부팅. 자세 수정... 완료. 항로 자동 수정... 완료. RKB20, 평시 모드로 재가동.

 

토마스가 눈을 떴다.

 

코타나가 파일럿을 깨우기 위해 연속적인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선체에 충격이 가해질 때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레쿱의 주-동체 옆면을 무언가 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오토파일럿이나 센서 오류는 아니었다. 토마스는 계기판에 붉은색으로 활성화되어있는 생존 버튼을 눌렀다. 버튼이 푸른색으로 바뀌며 경고음이 꺼졌다.

 

RKB20 메인 시스템이 재기동 되었습니다. 임무 지속 가능합니다. 다만 음성 및 화상을 송수신하는 ISSC1 모듈, 백업 모듈 ISSC2가 손상되었습니다. 다른 피해는 보고되지 않습니다.

 

오른쪽 이마 쪽으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손을 대 보았지만 출혈은 없었다. 토마스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메인과 백업 한꺼번에? 어떻게 동시에 그럴 수 있지? 이게 정말 우연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래부터 목표가 그랬다는 듯이, 레쿱의 수십만 개 구성요소 가운데 정확히 딱 하나, 통신모듈만 파괴되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남은 임무 기간 내내 화상 메시지도, 기지와의 통신도 불가능했다. 이 광막한 우주에, 어두움의 사막에, 홀로 유배된다는 뜻이었다.

 

“자동 복구는?”

물리적 손상으로 자동 복구 불가능합니다.

“그래? 그럼, 수동으로 고치는 건?”

이 지역은 선외활동 불가 구역입니다.

 

토마스는 가압복을 벗기 시작했다. 직접 밖으로 나가서 고쳐볼 생각이었다. 다행이 통신 모듈은 예비부품이 있는 몇 안 되는 모듈 중 하나였다.

 

경고, 경고, 이 지역은 선외활동 불가 구역입니다.

 

토마스는 손잡이를 잡고 반동을 이용해 에어-록(Air-Lock)으로 빠르게 직진했다. 그러나 코타나가 더 빨랐다.

 

에어-록 사용을 차단합니다.

 

딸깍 소리를 내며 해치가 잠겼다.

 

이 지역은 추적되지 않는 물체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해적선 공격으로 파괴되어 궤도에 붙잡힌 우주선 잔해들로 추정됩니다. 선외활동을 할 경우, 0.15%의 확률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에어-록으로 연결되는 해치를 차단했습니다.

 

0.15%면 매우 높은 확률이다. 토마스는 씩씩거리며 다시 조종석으로 돌아왔다. 오토파일럿 스위치 안전 캡을 제거했다.

 

경고, 이 행위는 항행규정 1-3-5 위반입니다. 반복합니다. 항행규정 1-3-5 위반입니다.

 

레쿱을 수동으로 전환할 생각이었다.

 

경고, 이 로그는 어떤 방법으로도 삭제되지 않으며 회사로 전송됩니다.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해고까지 될 수 있음을 고지합니다.

 

코타나의 경고에도 토마스는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스위치를 내렸다. 코타나는 사라졌다.

 

동체 보호 패널을 열고 모듈을 바꿔 끼우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 아니다. 실외 우주복은 에어-록 오른쪽 벽면에 걸려있었다. 형광 조명 탓에 흰 외피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토마스는 거치대를 당겼다. 스탠바이 버튼을 확인하고 등 쪽을 열었다. 다리와 팔, 머리까지 모두 넣고 팔뚝에 장착된 키패드에 7자리 숫자를 넣었다. 생명유지장치와 보조추진장치가 설치된 백팩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스스로 잠겼다.

 

감압이 시작됐다. 이탈 방지 로프를 가슴에 걸고 토마스는 심호흡을 했다. 에어-록이 열렸다. 밖에는 어둠의 심연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래도 위도 좌우도 없는 막막한 공간. 헬멧 내부 마이크로폰을 통해 숨소리가 증폭되어 들렸다. 토마스는 과감하게 몸을 던졌다.

 

토마스와 레이의 숙소는 달의 남반구 ‘디스트릭트-9’에 있었다.

 

밤의 시간이 끝나고 낮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태양광을 끌어들인 유리섬유 조명이 서서히 조도(照度)를 높이기 시작했다. 레이는 눈을 감은 채 토마스의 뺨에 자신의 뺨을 대고 있었다.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고운 살 냄새가 났다. 토마스는 오른쪽 팔꿈치로 침상을 받치고 살짝 상체를 일으켰다.

 

"레이,"

“아니, 아무 말도 하지 마.”

 

레이는 토마스의 얼굴을 보며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이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별 거 아니야.”

 

토마스가 그래도 말을 하려 하자 레이는 휙 몸을 돌려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레이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그녀의 등에 자신의 가슴을 댔다. 레이를 꼭 안았다.

 

“레이...”

 

한참을, 레이는 답하지 않았다.

 

“어쩐지 불길해. 이번 일.”

 

레이를 만난 곳은 푸른 지구였다.

 

두 사람은 높은 중력에 맞서기 위한 G-Test 차례를 기다리다 인연이 맺어졌다. 한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서해 위성 발사장 훈련소는 잦은 안전사고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훈련비용은 ‘지구 최저가’였다. 파일럿이 되려면 누구나 지구에서 일정 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만 했다. 어김없이 구토를 하고 나오는 동료들을 지켜보며 토마스와 레이는 대화를 나눴다. 닥칠 일에 대한 걱정이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무너뜨렸다. 그날 훈련소 복도 끝 창문에는 짙은 노을이 걸렸다. 붉은 곱슬머리의 레이에게서 따뜻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레이는 밝고, 맑고 사려 깊었다.

 

서로를 품게 된 건 지구 정지궤도 미소중력 훈련공간이었다. 기체에 구멍이 뚫린 상황을 가정한 격렬한 훈련이 끝난 직후 에어-록으로 공급되는 전원이 차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실내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체온을 덜 빼앗기기 위해 두 사람은 끌어안았다. 그 일 이후,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리 없는 공간에 노란 경고등 불빛이 요란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선외 우주복을 입은 그대로, 토마스는 레쿱 에어-록에 떠 있었다.

 

산소 잔량 3%, 산소 잔량 3%.

 

그제야 생각난 듯 토마스는 해치 옆 녹색 버튼을 눌렀다. ‘쉭’ 소리를 내며 에어-록에 공기가 다시 채워졌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건지, 어떻게 에어-록으로 들어왔는지 기억이 없었다. 통신 모듈이 부서진 게 전부가 아니었다. 보호 패널과 모듈을 고정시키는 프레임이 충격으로 휘어지면서 봉인을 한 것처럼 꽉 끼어버렸다. 고장 난 부분을 제거하는 게, 수리하는 게 불가능했다.

 

축 늘어져있던 토마스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 것처럼 움찔했다. 다급하게 헬멧 바이저를 올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눈동자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목소리를 들었을 리 없어. 누가 있을 리 없잖아.' 레쿱은 벌써 화성을 지나왔다. 처음부터 단독 임무였다.

 

토마스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우주복을 벗고 도망치듯 에어-록을 빠져나왔다. 해치를 잠갔다. 착각이라기엔 너무 선명했다. 분명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토마스는 정비칸을 지나며 ECHO를 주시했다. 덮개는 그대로였다. 조종석에 앉았다. 코타나를 불러내기 위해 오토파일럿을 다시 켰다. 오른 손이 떨리고 있었다.

 

RKB20, 생명 유지장치... 이상무, 추진 시스템... 이상무, 자세제어 시스템... 이상무, 도킹 시스템... 이상무, 통신 모듈... 차단 지속, 자세 수정... 보조 엔진 가동... 수정 완료. 항로 자동 설정... 완료. 시스템 부팅 끝났습니다.

 

안녕하세요 토마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토마스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2011-UW158로 가는 발사 윈도(launch window)가 열리기 일주일 전, 토마스는 최종적으로 결정을 했다. 언더그라운드 튜브(underground tube)는 달 식민지에서 혼잡이 가장 덜한 대중교통수단이다. 고요의 바다까지 가는데 30분이 걸렸다. 레이가 튜브에서 내려 걸을 때 외골격에서 반복적으로 모터 겉도는 소음이 들렸다. 기계적인 고장이었다. 부품 여러 개가 부서진 것 같았다. 레이는 절뚝거렸다. 마음이 아팠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두 사람은 이반 파블로프의 방으로 안내됐다. 그는 스캔을 하듯 레이를 아래위로 훑었다.

 

“그랬군요. 목돈을 쥐면 하려는 게 뭔지 알겠어요.”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상자에서 가운데가 비어있는 팔찌 같은 물건을 꺼냈다.

 

"바로 시작하죠. 손목을 좀 내밀어 주시겠어요? 개인 정보 단말에 이 소켓을 덧씌울 거예요."

 

레이의 손목 개인 단말 위로 수갑이 채워지듯 철컥 소리가 났다. 빨간색 불이 들어왔다.

 

“무겁지 않겠어?”

 

레이는 아령을 들듯 왼손을 굽혔다 폈다 해봤다. 견뎌보겠다는 뜻으로 토마스를 향해 씩씩하게 웃었다.

 

“지금 추가한 장치는 개인 단말로 입력되는 정보 가운데 꼭 필요한 것만 ECHO 서버로 전송합니다. 가이드라인에 따른 테스트니까 사생활 침해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이반 파블로프는 재미난 장난감을 양손에 쥔 악동처럼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개발 과정에서 ECHO의 발화 내용을 분석해본 결과 구현된 대화의 톤 앤 매너(tone & manner)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문장의 동일성도 90%에 이르는 걸로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이 말은, 진짜 만나서 얘기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는 얘기에요."

 

그래도 레이를 생각해서인지 지난 번 보다는 한껏 예의를 차렸다.

 

“그냥 새로운 화상 전화라고 생각하세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어요. 어차피 세상에 진짜는 없으니까. 화상 메시지도 많이 주고받았을 텐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진짜 얼굴, 진짜 목소리는 아니잖아요. 전기 신호로 재구성된 가짜지. 다를 게 하나도 없어요.”

 

시간은 원래 모호하다. 언제나 기준이 필요하다. 절대적인 시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레쿱의 망가진 통신 모듈을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비창에 입고해 레이저 블레이드로 구겨진 부분을 완전히 잘라내지 않는 이상 고칠 수 없었다. 기지와의 연결이 끊겼다는 인식만으로 레쿱의 시간, 토마스의 시간은 순식간에 엉켜버렸다. 시간이 여전히 흐른다고 해도 구분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낮도 밤도 없었다.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바로 그 꿈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점이 있었다. 물속 깊은 곳으로부터 형체가 윤곽을 드러내며 올라오듯 그때 알 수 없던 악몽 속 얼굴이 서서히 모양을 갖춰갔다.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서늘한 불길함이 조금씩 더 높이 차올랐다. 심장을 조여왔다.

 

토마스는 러닝머신처럼 생긴 근력 유지장치에 집착하듯 매달렸다. 망상을 덜어내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오히려 몸은 야위어갔다. ECHO를 시야에서 지워버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가시처럼 그의 영혼을 찔러왔다.

 

이반 파블로프의 말이 성난 벌떼가 내는 소리처럼 머릿속에서 웅웅거렸다.

 

"만나 얘기하는 것과..."

 

"차이가 없어요."

 

“만나 얘기하는 것과...”

 

“차이가 없어요.”

 

드럼통을 머리에 씌운 상태에서 쿵, 쿵 내리치는 것 같았다.

 

레이는 ‘고요의 바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

 

튜브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외골격 수트에서 나는 삐걱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엘리시안 사람들 앞에서 용감한 척을 했던 레이는 지쳐보였다. 나란히 걷던 토마스는 팔꿈치로 레이를 툭 쳤다.

 

“같이 읽었잖아, 계약서... 포장도 안 벗길 거야.”

 

레이는 물끄러미 토마스를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토마스의 손가락 사이에 레이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알아, 그래서 당신이 겪을 고통을 생각했어. 이 일도 나 때문에 자원한 거잖아. 그럴 사람이야. 나를 생각하며 끝까지 참을 사람. 그러면서 고통스러워하고 지쳐갈 사람.”

 

눈물이 어린 레이의 얼굴은 사라졌다. 대신 눈앞에 선명한 그림이 떠올랐다.

 

그를 괴롭혀온 악몽 속 얼굴. 몸은 추락한 셔틀 잔해 속에 깔려 피를 뿜고 있었다. 노출된 손과 발은 부풀어 올랐다. 흐릿하던 카메라 뷰파인더가 갑자기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알아볼 수 있었다. 그건 토마스 자신이었다. 목소리가 들렸다. 귀를 틀어막았지만 계속 들렸다.

 

레쿱에는 도망칠 공간이 없었다. 두려움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얼굴은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로 범벅이 되어 미끌거렸다.

 

토마스는 ECHO의 스위치를 올렸다.

 

토마스! 토마스! 어떻게 된 거야!

 

레이는 숨이 넘어갈듯 토마스를 부르며 울먹였다.

 

지금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당신이 어떻게 된 줄만 알았어.

 

“미안해, 레이. 통신이 끊겼어.”

 

순간적으로 입 밖으로 대답이 나왔다. 조건 반사 같은 것이었다.

 

대답을 하고서야 토마스는 잘못을 깨달았다. ECHO의 화면에 등장한 것은 진짜 레이가 아니었다. ECHO AWAY, 레이의 껍데기를 씌워놓은 AI 엔진이었다. 그건 레이일 수 없었다. 토마스는 바로 ECHO 스위치를 내렸다. 후회했다. 하지만 ECHO에서 등장한 건 어디로 봐도 레이였다. 끄기 직전 ECHO의 레이는 토마스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다. 마치 다시 보지 못할 연인과 이별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두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시 환각이 시작됐다. 붉은 흙 위에 붉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월면이 아니었다. 붉은 별 화성이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해 지표를 파고들던 남자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건 토마스였다. 토마스가 토마스의 죽음을 목격했다. 모래바람이 불었다.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토마스의 눈은 붉게 충혈됐다. ‘ECHO 속 그 레이는 레쿱의 코타나와 다를 것도 없다. 아무 일도 아니다.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심지어 토마스가 수행해야 할 임무의 일부였다. ‘살아서 임무를 끝내는 것이 옳다.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달에서 기다리고 있을 레이를 위해서.’

 

토마스는 다시 손을 뻗었다. ECHO의 스위치를 켰다.

 

ECHO 화면 속 레이는 침대 위에 있었다. 디스트릭트-9에 있는 두 사람의 낙원에.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곳.

 

“레이.”

 

토마스는 그의 손바닥을 ECHO 화면에 댔다. 레이는 토마스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토마스 쪽을 보지는 않았다. 정물화처럼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었다.

 

“레이.”

 

토마스는 레이를 공들여 바라보았다. 발끝에서 정수리까지, 어느 한 부분도 다시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레이가 입을 열었다.

 

나도 알아, 토마스. 나는... 레이가 아니야.

 

그 말은 은으로 만든 탄환처럼 토마스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뜻밖이었다. ECHO속에 들어있는 존재는 불러준 말을 따라하는 앵무새가 아니었다. 자신이 레이가 아니라고 고백했다. 레이가 아니라고 했지만 완벽히 레이였다. 붉은 곱슬머리도, 목소리도, 'T'를 강하게 발음하는 악센트도 같았다.

 

알아. 날 두려워한다는 것도. 나는 당신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레이, 제발 나를 봐줘.”

 

출발해서 한 번도 레이에 관해 업데이트를 받지 못했어.

당신이 ECHO를 작동시키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레이가 아니야.

 

“제발, 부탁이야.”

 

그제야, 레이는 천천히 돌아섰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토마스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내 당신을 생각했어.”

 

토마스의 눈물은 작은 물방울이 되어 선내에 흩어졌다.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토마스의 시간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레쿱의 시간은 다시 빠르게 정렬되고 있었다. 이제 토마스는 ECHO를 중단시킬 수 없게 됐다. 모든 행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듯, 위성인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 듯 레이는 구심력이 작용하는 축이 되었다.

 

토마스는 ECHO 회로를 레쿱의 선내 CCTV와 연결시켰다. 밥을 먹을 때도, 정비칸 침낭에서 잠을 청할 때도, 조종석에 있을 때에도 레이는 토마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자 이렇게, 로봇 팔을 움직이는 거야."

라그랑주-루나 셔틀에 이 팔이 달려있었으면 꼭 거미 같이 보였겠는데?

“그런가? 소행성을 만나면 레쿱이 이 팔을 표면에 고정시켜 소행성과 한 몸이 될 거야. 자기 몸집보다 더 커다란 똥을 굴리는 쇠똥구리처럼 아주 찰싹 달라붙는 거지.”

쇠똥구리?

“레이 엄마 집에서 많이 봤다고 했잖아... ”

 

ECHO의 레이는 레이의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없었다. 학습되지 않은 데이터이니까.

 

“아, 미안.”

나는 괜찮아!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서 기억이 안 나는 것인가 보지 뭐.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 토마스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처럼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레이는 기억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아가는 사람처럼 눈을 반짝이며 토마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서해 위성 발사장에서 처음 만난 이야기, 원산-갈마 해수욕장에 갔던 이야기, 지구를 떠나오던 이야기, 함께 셔틀을 몰게 된 이야기, 루나 베이스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야기를.

 

각각의 형태와 색을 가진 작은 퍼즐 조각들이 프레임 안에 모여 커다란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토마스의 과거, 레이의 과거, 두 사람의 과거가 다시 그려졌다. 그러나 같은 과거는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정답게 웃고 떠든 경험이 과거를 새롭게 각색했다. 기억은 녹화된 영상물과는 다르다.

 

작은 알람 소리가 났다. ECHO 옆 화상 메신저가 작은 불을 깜빡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토마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토마스는 메신저 앞으로 다가가 화면을 등지고 섰다. 레이의 눈, ECHO 상단에 달린 카메라를 막아서기라도 하려는 듯이.

 

"잠시만 레이, 시스템을 잠시 내렸다가 올려야 할 것 같아."

레이는 순순히 토마스의 의도에 따랐다.

응 토마스. 좀 있다가 봐.

 

선내 CCTV에 연결된 레이가 새 메시지가 왔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다. 그리고 굳이 ECHO를 꺼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에서 보낸 레이의 메시지였다. 75초 분량, 다소 짧았다.

 

토마스는 팔짱을 끼고 한동안 선내를 서성거렸다. 메신저의 불빛이 계속 깜빡였다. 통신 모듈이 망가진 상태에서 어떻게 메시지가 들어올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코타나!”

 

코타나를 부르는 토마스의 목소리는 화가 나 있었다.

 

“코타나, 어떻게 들어온 거지? 통신 모듈이 모두 망가졌잖아.”

 

조난신호를 보내는 저용량 통신채널은 별도로 존재합니다. 모스 부호 정도를 보낼 수 있는 수준의 대역폭입니다. 화상 메시지가 들어온 걸 보면 기지에서 시스템 코딩 일부 변경을 승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명백히 목적 외 사용이기 때문에 전송 검증률은 50% 미만입니다, 메시지 재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발송된 날짜는 한 달 전. 레이의 31번째 메시지와 같은 날, 통신 모듈이 망가지던 그날이었다. 토마스는 땀을 닦았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메시지를 보낼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보낼 수 없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토마스는 재생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ECHO의 전원을 내렸을 때, 이미 정해진 결과였다.

 

달에 있는 레이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실이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달의 레이, 그리고 ECHO의 레이가 충돌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우선권은 당연히 달의 레이에게 있다. 75초 메시지를 재생하면 ECHO는 그 메시지를 학습해 업데이트 된다. ECHO의 레이는 처음부터 달의 레이가 보낸 메시지로 재구성될 운명이었다. 그게 두려웠다. 한 달 여 동안 곁을 지켜왔던 레이를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토마스는 화상 메신저의 전원을 꺼버렸다. 깜빡거리던 알람이 사라졌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

 

토마스는 홀가분해진 표정이었다. 정비칸으로 헤엄쳐갔다. 개인 포켓에 넣어두었던 테이프 플레이어를 다시 꺼냈다. ECHO의 전원을 켰다. 화면 속 레이는 토마스를 보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아니 아무 일도.”

토마스, 들고 있는 건 뭐야?

“아 이거, 본 적 없을 거야. 골동품이지.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야. 내 쌍둥이 동생이 남긴 물건이야.”

 

토마스는 테이프 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철컥 하는 기계음이 들린 뒤 모차르트 환상곡 3번 D단조가 흘러나왔다. 피아노 위에서 D단조의 음들을 훑어가는 손가락처럼, 부드럽게 바다 속을 유영하는 돌고래처럼, 토마스는 차분하게 조종석으로 돌아왔다. 콧노래로 선율을 따라갔다.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토마스, 궁금한 게 있어.

“뭐가?”

동생이 있었다는 건 내 기억에 없는데?

“얘기 안 했구나. ‘토마스’라는 이름이 원래 ‘쌍둥이’라는 뜻이야. 내 쌍둥이 동생은 유명한 AI 엔지니어였지.”

아 그렇구나.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생겼네. 동생에 대해서 좀 더 얘기를 해줘.

“동생은 죽었어. 네오-러다이트의 습격으로 사망했어.”

미안해. 괜히 나쁜 기억을 들췄네.

“아니, 이젠 극복했어. 어... 잠시만, 저게 뭐지?”

 

관측창 전방에 거대한 삼각형의 구멍이 나타났다. 너무 어두워서 그 형체의 거리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구멍 내부에는 별빛조차 없었다. 암흑 그 자체였다. 레쿱이 그곳으로 곧장 빨려들고 있었다.

 

“코타나! 코타나! 자세 180도 회전! 주 엔진 점화! 코타나! 코타나!”

 

코타나는 답하지 않았다.

 

오토파일럿을 껐지만 소용없었다. 조종간은 말을 듣지 않았다. 토마스는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계기판이 흐물거리며 흘러내렸다. 주위의 모든 것이 경계와 형체를 잃고 사라지고 있었다. 토마스와 토마스 아닌 것의 구분도 흐려졌다. 모든 것이 빅뱅을 되돌린 것처럼 순간적으로 수축했다. 끝내 어두운 점 하나로 수렴되었다.

 

. . . . .

 

“시뮬레이션은 여기까지입니다.”

“아주 독특한 캐릭터네요. 토마스? 토마스라고 했죠?”

“시뮬레이션은 항상 가장 나쁜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니까요. 최악의 시나리오에 항상 쓰이는 인공인격이에요.”

 

“실제 인격의 복사본인가요?”

“네, ‘유니버셜 리소시스 쇼크’ 12명 가운데 한 명에서 추출된 인격이라고. 그러나 확인된 건 없어요. 이쪽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돌려쓰죠. 그냥 ‘AP_UR12’라고만 불러요. ECHO가 없으면 100% 조현병이 발병하고 자살하게 되는 캐릭터죠.”

 

“그런데... ECHO가 있는데도 마지막에 약간 분열을 일으키는 것 같던데?”

“날카로우시네요. ‘테이프 플레이어’ 얘기죠?”

“말이 달라져요. 쌍둥이 동생 유품이라고...”

“분열은 아니고, 방어기제로 추측합니다. 그건... 설명이 약간 필요한데, 인공인격은 자기가 죽었다고 정보가 입력되는 순간 붕괴되는 경우가 많죠. 스스로 그걸 막으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 거의 3백만 번 이상 반복했지만 디테일은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져도 한 번도 임무를 실패한 일이 없었어요.”

 

“꼭 그 인공인격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냥, 말버릇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긴 해요. 하지만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살아있든 죽어있든. 어차피 AI는 모두 ‘중국어 방’인 걸요.”

“중국어 방?”

“아, AI가 진짜 살아있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영혼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튜링테스트를 해도 끝내 증명할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복잡하네. 하여튼 ECHO는 예정대로 출시해도 되겠죠?”

“직접 보셨잖아요. 의심 많은 ‘토마스’를 단숨에 사로잡는 힘을. 아마 ECHO는 스페이스 인더스트리와 함께 우주 개척사에 큰 족적으로 남게 될 겁니다.”

 

. . . . .

 

모차르트 피아노 환상곡 D단조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슬픔을 건너, 오른손의 화려한 기교가 매력적인 장조의 터치로 마무리된다. 토마스는 그 선율에 귀 기울이며 우주의 처음이 그랬듯, 고요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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