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달의 바다

2020.03.08 23:4703.08


 이제 별을 두 눈으로 한 가득 담아 볼 수 있는 곳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씩 더 많은 것들이 바뀌어 가는 이 지구에서는, 밤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대도시에선 별은커녕 달도 잘 올려다볼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이곳에는 아직 조망권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밤중에도 하늘을 날아다는 차들이 떼 지어 휙휙 지나다니곤 한다. 사람들은 잘 멈출 수가 없다. 변명하고 가볍게 잊으면서 어디론가 질주하곤 한다. 도무지 잘 멈출 수가 없다. 나 같은 다 늙어가는 남자마저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은 이렇게 달이 있는 곳을 올려다보곤 한다. 내가 저 황량한 위성에서 봤던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지금도 그게 환상인지 아닌지는 잘 확신할 수가 없지만 말이다.


 내가 그녀를 만난 건 아직 휠체어를 쓰지 않았을 무렵, 달에서였다. 북쪽 지방에 있는 물을 직접 채취해오는 게 내 임무였다. 아직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달에도 물이 있다. 서리 같은 형태로. 실은 우주에서 물은 꽤 흔한 물질이다. 지구에서처럼 액체 상태로 흐르고 있는 환경이 아주 드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착륙한 곳은 '고요의 바다'였다. 달의 바다는, 바다라곤 하지만 물이라곤 한 방울도 없다. 아주 오래전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 갈릴레이와 케플러가 땅에 덮인 암석질의 검은 얼룩을 ‘바다’라고 착각했을 뿐인데, 이미 꽤 많은 사람이 달에 다녀간 지금까지도 그대로 부르고 있다. 과학계에선 어째서인지 그러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태양계의 행성들도 그리스 신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고. 설마하니 낭만이나 향수를 위해서는 아닐 테지만 말이다.

 고요의 바다는 내 원래 목적지와는 상당히 떨어진 지역이었는데, 본부에서 갑자기 지시를 내려 달 표면에 떨어진 찬드리안 3호를 회수해오라고 했다. 그 무인기는 몇 년 전 계획대로 달 표면의 자료를 수집해 인도로 전송하는 것으로 임무를 마친지 오래였다. 이제 와서 가져오라니. 게다가 그 지시는 기존 채널이 아니라 다른 비정규 채널로 내려왔기 때문에 미심쩍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전설적인 ‘레이 창’의 목소리인 게 분명했으니 오류 일리는 없었다.

 아무튼 나는 우주선을 궤도에 올려둔 채 착륙선을 타고 바다로 내려왔다. 멈춘 지 오래 된 찬드리안의 잔해 바로 옆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두터운 우주복을 입고서, 밖으로 나와 내 흉골 만한 기계를 안아 든 참이었다. 정면으로 딱 마주친 것이다.

 인어였다. 우주복도 입고 있지 않았다.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진한 붉은색 머리칼을 지닌 인어는 달의 바다의 작은 크레이터 아래 그늘진 곳에 지느러미를 뻗고 앉아 있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입을 다물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설레지는 않았다. 설렐 리가 있겠냐.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천천히 기계를 내려놓고 손목에 있는 액정의 내 생체정보를 확인했다. 몸 어딘가에 문제가 생겨 환각을 보고 있는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몸에도, 우주복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자 뒤늦게 심박수가 조금 오르는 게 보였다. 고개를 들어 다시 눈을 깜빡였지만 인어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늘을 벗어난 부분의 지느러미 비늘에 반사되어 색색으로 비치는 빛깔까지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인어는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도도하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무인기를 품에 안은 채 착륙선으로 돌아왔다. 통신을 켜 예정대로 기계를 회수했고 극지대로 이동하겠다고 말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다는 말이지?” 레이 창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공식 채널이었다. 본부에선 주요 책임자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섰다. 레이는 젊은 시절 두 번이나 홀로 달에 다녀 온 기록이 있는 원로격의 직원이었다. “잘 알겠네. 아무 문제도 없다는 그 부분 말일세.”

 교신을 마치고 나는 “아무 문제없다”고 말한 내 대답과 어딘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던 레이의 어조에 대해 생각했다. 보고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인어에 대해 말했다간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게 뻔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다시 우주복을 걸치고 스패너를 쥔 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밖으로 유영하며 나왔고 작은 크레이터 쪽으로 이동했다.

 고요의 바다는, 가까이서 보면 그냥 얼룩진 평원이었다. 날아 온 소행성에 부딪혀 발생한 에너지가 달 내부의 현무암 지질을 녹이고 그것이 분출되어 표면을 매끄럽게 뒤덮은 채 굳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유영이라고 해도 느리게, 느리게 걸어갈 뿐이고 인어 또한 살고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인어는 내가 네 걸음 정도 앞으로 다가갈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너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야.”

 영어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있을 리 없는 달의 대기를 따라 곧바로 귀에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왔다.

 나는 아버지 집 정원에서 잠수복을 뒤집어쓰고 있는 멍청이처럼 서 있다가, 양 팔을 펼쳐 느리게 흔들면서 말했다. “들립니까?” 인어는 나를 보며 하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나를 성가셔 하다는 건 명백했지만 우주복 너머로 내 목소리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왜 이런 곳에 있는 겁니까?” …내 입에서 나온 질문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평범해서 멍청해 보였다. 나는 손목에 있는 내 생체정보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인어가 말했다. “기다려.”

 나는 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게 명령이 아니라 대답이라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여기는 바다가 아닌데요.”

 내 입에선 검토할 새도 없이 다시 바보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말이야?” 인어가 말했다. “인간들은, 여기를 바다라고 부르는 게 아니야?”

 “여기엔 물이 없잖아요.”

 이미 현실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터라 나는 우주 헬멧 너머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이라면 남북극 지역에 있으니까……. 그곳에도 극소량이긴 하지만……. 당신이 누굴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적 생명체이긴 할 테지만…….

 그러니까 나는 진지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경악하며 발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친! 나는 지금 달 위에서 인어와 대화하고 있잖아! 그 두 가지 상태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알게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느 쪽이든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건 과학자스러운 발상이기는 했고 아무래도 인어는 그 모든 사고를 책처럼 읽은 것 같았다.

 나를 푸르고 검은 눈동자로 빤히 바라보던 인어는 마침내 귓속으로 특유의 단호한 어조로 목소리를 전해왔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같이 갈래요?”

 “……위에 타겠어.” 인어는 생각해 보다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달의 북극에 있는 달의 분화구로 가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운전대를 잡고서도 내내 내가 환각과 환청을 겪고 있는 것인지, 실제 내 몸은 저산소증에 걸려 우주선 내부에 기절한 채로 엎드려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떨칠 순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도 지붕에 앉아있는 인어가 모든 생각을 듣고 있을 거란 느낌도 들었다. 나는 그러면서도 지구와 교신할 것들은 모두 평소대로 끝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내가 튼 것은 쳇 베이커였다. <Chet baker sings>(1954)

 흥얼거리는 듯 부드럽고 우아한 멜로디는 우주용 차량의 선실을 가득 메우고 특수 처리된 외벽을 넘어서도(아마도) 우주공간으로 전해졌다. 달의 극점을 향해 달리는 차량은 ‘Like someone in love'를 지나 'Time after time'으로 이어졌다. 사실상 대기가 없는 달의 표면 위로 태양빛이 비쳐 내렸다. 조그맣게 어둠 속에 반쯤 가리워진 지구의 모습이 보였다. 달의 황량한 대지는 지구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조금도 매력적인 구석이 없었다. 좋은 점이 있다면 압도적인 외로움 속에서도 지구를, 그 모습을 한 눈으로 담을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인어가 정말 이 달에 살고 있는 거라면, 그녀는 이곳에서 늘 지구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때 인어의 명확한 목소리가 음악 사이로 귀에 내려앉았다. 쳇의 목소리가 ‘My ideal'을 지날 때였다.

 “그 아이를 닮았어.”

 “그 아이요?”

 인어는 입을 다물었다.

 차량 안에 있는 나는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이어서 노래를 듣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Will I recognize the light in her eyes

 that no other eyes reveal

 or will I pass her by and never even know

 That she was my ideal...

 

 그러나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달의 극점은 썰렁한 배꼽 같은 곳이다. 알고 있는가? 사실 지구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달의 단면은 늘 같은 곳으로(‘조석 고정’이라는 것이다.) 다른 단면은 황폐하다는 표현 이상으로 망가져 있다. 지구에서 볼 수 없는 깊은 크레이터로 가득하며 이런 차랑형 기기로는 다니기도 힘들다. 그래서 내가 물 성분을 채집하기 위해 멈춰선 곳도 극점의 외곽에 속했다. 크레이터 사이, 영원히 태양빛이 비칠 리 없는 지역이라면 지질 표면의 구성성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차량이 만들어 낸 전기 조명에 기대어, 나는 내 허리만큼 굵은 기계를 바닥에 설치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차량 위에 앉아 있는 인어를 올려다봤다. 영하 163도에 달하는 그늘 속에 비키니 한 장 만을 걸친 그녀는 마침내 이계의 존재처럼 낯설어 보였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작업을 완료하는 동안에도 두렵지는 않았다. 그건 현실감을 떠나 이곳에 오는 내내 그녀가 쳇 베이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미안한 심정이 들었다. 달의 이런 부분을 구태여 확인시켜 줬다는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네요.” 내가 기계를 살펴보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뭐가?”

 인어는 어둠 속에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시 차량을 몰고 고요의 바다 쪽으로 돌아왔다. 연료에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차량 안으로 들어오지 않겠냐고 물어봤지만 인어는 그대로 있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쳇 베이커를, 하지만 이번에는 노년이 되어(사실 노년이라고 불릴만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시들어버린 후에) 음울한 어조를 띠는 음원들을 재생했다. ‘Almost blue'같은 트랙들로 여러 앨범에서 추린 것들이었다. 그 시기의 쳇 베이커는 연주가 들쑥날쑥해서 정말 괜찮은 연주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싸움으로 앞니까지 모두 잃어 틀니를 껴야했던 그였다.

 그럼에도 선명히 우아한 건, 신에게 부여받은 무언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일까 하고 들을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마침내 인어가 말했다. “아이 한 명을 기다리고 있어.”

 차량은 그늘의 경계를 달리고 있었다.

 “그 애는 달에 인어가 있다고 믿었거든. 언젠가 가볼 거라고 말했어.”

 “……그 때가 언젠가요?”

 “글쎄. 인간들의 시간은 나와는 많이 다르니까. 우리는 말을 타고 마르셀린의 계곡으로 가곤 했어. 소풍 바구니를 들고서. 그 애가 죽기 전에 말이야.” 나는 차창 너머로 이어지는 달의 풍경을 보면서 그녀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를 알았다. 역시 지구였던 것이다.

 “……인간에게는, 윤회라는 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아요.”

 익숙한 개념은 아니었지만, 나는 환생에 관해 얘기했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어 죽었다가 다시 지구 위에 태어나 살아가는 일을 반복한다는 믿음에 대해 얘기해줬다.

 “상냥하구나. 그래. 그 애도 비슷한 것을 믿었어.” 인어가 말했다.

 “그 애는 정말 많은 것들을 믿었지……. 내게 없는 것들.” 인어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괜찮아. 어느 쪽이든 내겐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니까. 저 불이 모두 꺼질 때까지. 그 때까지만 있어보면 돼.”

 나는 어둠에 가려져 그 모습이 전부 보이지 않는 지구를 바라봤다. 이곳에선 볼 수 없지만 궤도를 떠돌 때 볼 수 있는 어두운 단면을 생각했다. 그곳에서 지구는 밤이 되어 어두운 대륙 위에 수많은 인공적인 불빛들이 빛줄기가 되어 뒤덮여 있었다.

 “저 불이 모두 꺼질 때까지.”

 인어가 말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말은 모두 진짜다. 나도 그 후로는 달에 가보지 못했고,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모두가 내가 본 환각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인어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나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기억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버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전부 사실이었다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면 어째서 아직도 달에서 인어의 존재가 보고되지 않았느냐고? 글쎄. 추측이지만 떠나기 전 인어에게 “여기에 계속 있으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도도하게 미소지었다.

 ‘여기서 나를 본 게 네가 처음이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나는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았다. 달 위에 발을 디딘 그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감추고 있던 비밀을. 그러니 혹시 근처에 달을 방문한 우주인을 할아버지로 둔 아이가 있다면, 혹시 달에 사는 인어에 대한 동화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소형 우주선은 모든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다. 달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비밀을 마찬가지로 간직한 채로.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일은 이제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경제성을 이유로.

 그러나 사람들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저 달 위에 새로운 인간들의 도시를 건설할 수 있을 거란 얘기도 나오고 있었다. 내가 죽기 전에 달을 대상으로 일종의 테라포밍이 진행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경제성을 이유로. 그러면 그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는 어떤 것을 더 잃어버리게 되고 또 지금도 잃어가고 있는 걸까.

 그래도 아직 저곳에는, 여기선 바다처럼 보이는 검은 현무암 자국 위에 오직 한 명의 인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푸르고 또 밝아지는 지구를 보며 기다리고 있다. 밤이면 온 대륙 위에서 빛나는 수많은 인공불빛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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