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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좋은 꿈

2020.03.03 20:3703.03

독버섯처럼 도처에 증오가 번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화살의 끝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며 우리는 잔뜩 곤두선 글과 생각을 빚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반드시 누군가를 증오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옳다고 믿어서, 때로는 또 이게 필요하다고 믿어서요. 누구도 증오하지 않는 사람은 그래서 모두로부터 증오받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증오하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정립된 어떤 사상을 공격하여 무너뜨리지 못하면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생각을 밝히는 대신 일단 무엇에 반대하고 그 결점을 들추어 푹푹 쑤석여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있는 곳을 밝힐 수 있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아니면, 처음부터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설 수 있는 정신적 배경을 결코 가지지 못했는지 모르지요.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누구도 선뜻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서 모두로부터 우리가 이해받기를 바랍니다. 건방진 소리지요? 압니다. 나는 이런 말을 할 만큼 고고한 심판자도 뭣도 아닙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빈민굴의 무지렁이에게도 존경받는 학자에게도 심지어는 일국의 통령에게도,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습니다. 누구도 칼을 휘두를 수 없고 누구도 공명정대한 집행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복잡 사회의 가장 큰 단점은 누구도 외따로 우뚝 설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고 읍소하는 텔레비전 쇼의 진행자. 온갖 곡예를 부리면서도 저로부터 눈을 돌리라고 호소하는 어릿광대.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든 채 피를 닦는 푸줏간의 백정.

 

현대의 어떤 예리한 비판도 날선 통찰도 뚜껑을 열어보면 정작 바로 그 칼끝이 향하는 대상과 맺어지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정 부분 우리 문명의 가장 흉악한 죄악에 대하여 기여하였습니다. 우리 식탁의 토마토를 올리기 위해 동아프리카의 앞바다에는 톤당 20달러의 산업폐기물이 가라앉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한 옷가지를 위해 밀림과 숲이 불살라졌습니다. 갖가지 경제주체의 그물코를 거쳐 다종다양한 유통단계의 직인을 찍으며 그러한 부채를 감쇄하는 방법을 복잡 사회는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제시하였습니다. 칼을 휘두르려거든 그 칼끝에는 내 손발이 있고, 병소를 도려내려거든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길들여진 작금의 생활환경을 송두리째 뒤엎는 파괴로 이어집니다.

넝쿨처럼 얽힌 복잡 사회의 어딘가에서 반드시 길은 뒤바뀌고 목적은 윤색됩니다. 모든 항을 일격에 소거할 수 있는 답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와중 더 이상 고대 철학의 형이상학은 먹히지 않습니다. 일자(一者), 모든 것의 밖과 안에 동시에 있는 것. 모든 인식을 부정하고 모든 존재를 선행하는 것. 그러나 세상에 머무르되 젖지 않는 어떤 진리도 그것을 관망하여 우리를 일깨워줄 절대자도 더 이상 없습니다. 답을 알기 위해 사회에 몸을 담그는 순간 답을 구할 수 없게 되고, 답을 구하기 위해 어느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는 삶을 택하는 순간 우리는 답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모두가 행복한 답을 찾는 것은 그래서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내심 그것을 바라지 않기에 어렵습니다.

 

우리는 곧잘 남의 행복보다는 불행을 바라며 손을 모읍니다. 아니 단적으로, 남의 불행을 위해 제 행복이라도 기꺼이 포기할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공격자도 지령도 그것을 가려내는 기준도 세상에는 넘쳐흐르도록 많습니다. 민족이니 인종이니 어떤 나라니 계급이니 하는 짐짓 큰 이름들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것들은 여러분 스스로도 잘 알 것입니다. 역사책을 보십시오, 달력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피로 그 기념일들이 제정된 사상과 이름들이 얼룩졌는지, 우리의 거대한 체제가 실상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시작점에서 단 한 발짝조차 움직이지 않는 게으른 살인 기계인지 보십시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좀 더 작고 시시한 주제에서 작용합니다. 사소할지언정 그래서 모두가 아는 종류의 갈등들. 가령, 세상에는 생각해보면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디부터 예를 들어야 할까요? 지구 반대편의 공놀이를 보려고 새벽잠을 떨치며 껌뻑껌뻑 눈꺼풀을 비비는 사람들, 무대 저편 면봉만 하게 보이는 공연자를 위해 큰돈을 선뜻 내놓고 발품을 파는 사람들, 일반적이지 않은 신체 부위에 성욕을 느끼는 사람들, 만들어진 이야기에 불과한 것에 열광하며 제 시간과 정력을 쏟아붓는 사람들, 식사 전 꼬박꼬박 거기 있는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물건이나 동물에 필요 이상의 애착을 형성하여 애지중지하는 사람들. 무언가 먹는 사람들, 먹지 않는 사람들, 무언가 좋아하는 사람들,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내가 보는 저곳이, 그가 보는 이곳이 실은 각자 이상할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아닌 모든 것’은 결국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이해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지만 동시에 그것 중 어떤 것도 우리는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발을 들여놓지 않은 구석은 너무나도 많고 그 모든 것이 우리, 아니 나에게는 전연 이해할 수 없는 때로 해롭고 구역질 나는 것입니다. 일의 문맥이란 내게 보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 없는 것이고 그 특수성이란 진작 근대화의 톱니에 절삭되어 당파나 어떤 주의의 이름으로 굳어지지 못했다면 역시, 그 자리에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일에는 내가 명확히 볼 수 있는 지렛대와 그것을 좌지우지하는 명백한 인자가 있으리라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그것에 의해 일어났으리라 믿습니다. 진정 한 현상이 뿌리박은 토양도 그에 이르기까지 거쳐 온 유무형의 단계도 모조리 무시한 채, 알기 쉬운 악의가 아니면 닳아빠진 선의 이 두 이름으로 일은 벌어지리라 단정 짓습니다. 혈액형 따위의 기준으로 사람을 범주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면서도 깃발의 색과 옷의 모양, 둘러멘 완장 같은 지표는 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성향과 천변만화한 가치관을 충분히 범주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차라리 바랍니다.

우리라고 계속 말했나요? 이것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나’의 이야기입니다. 칼끝을 자신이 아는 어떤 뻔한 악역에게로, 사회의 알기 쉬운 병소에게로 떠넘기지 마십시오. 이것은 특정 사건에 대한 행위와 방조가 아니라 근원적인 인지 도식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두루뭉술한 우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잡설을 입에 담는지 궁금할 겁니다. 이 자리는 제 발명을 홍보하는 곳이지 설익은 염세주의를 퍼뜨리랍시고 주최 측에서 마련해준 게 아니니까요.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그 와중 거쳐야 할 생활이 있고 이것이 여물고 맺히며 언젠가는 눈을 감는 것이 삶입니다. 굳이 아픈 구석을 들추지 않아도 하루는 정직하게 흘러갑니다. 모두가 이미 아는 당연한 답안에서 그러나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찾았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이야기는 다 했으니 이제 아무래도 좋은 연구 성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의 연구는 짧게 말하면 마법을 현실로 불러오는 것이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떠올린 어떤 목소리나 맛이 갑자기 현실처럼 느껴져 당황한 적이 있나요? 속으로 노래를 부르다가 그것이 정말로 들리는 것 같아 화들짝 놀라본 적이 있어요? 실지로 신경 말단을 자극하여 유발된 활동전위와 스스로가 재구성하는 경험의 내적 표상을 어떻게 뇌가 구분하는지 궁금해 해본 적 있나요? 전지구적으로 나타나던 고대 문명의 뇌수술 흔적이 공통적으로 짚어내는 일부 감각령의 존재를 나는 찾아냈습니다. 바로 그곳에 뇌는 작은 필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망가뜨리면 우리 마음과 현실의 경계는 사라집니다.

이것을 통해 고대의 주술사들은 병을 치료하고 신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경계가 사라진 인간이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아니 상상하는 순간 뇌는 미친 듯이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목소리를 떠올리는 순간 그는 그곳에 정말 있습니다. 맛있는 상상을 통해 탱글탱글 입안에 흘러넘치는 음식을 마음껏 씹고 삼킬 수 있습니다. 현실의 밋밋하고 기계적인 감각은 쉽사리 덮어씌워 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찾아냅니다. 나의 모든 소망이 아무 노력 없이 무가치하게 주어지는 그야말로 무아의 황홀경을.

물론 이는 혼자만의 세계이지요. 고치 이전 하나의 점이 이루는 0차원의 헛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나비 꿈 따위의 우화를 언급하며 철학적 논쟁에 돌입하려는 생각은 그러나 없습니다. 이 감각령에 내 이름 따위를 붙이지도 않을 겁니다. 어떤 제품의 특허를 출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구구절절 정말 하려던 일을 설명하기보다는, 당장 여러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네요. 아니면 지금 이 말조차 이미 들을 수 없게 되었나요? 여러분 각자의 가장 행복한 꿈에 영영 갇힌 채?

 

감각령을 찾아낸 뒤 몰두한 것은 나노봇의 제작이었습니다. 다공성 분자 따위로 약물을 감싸 수송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고성능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가령 대상의 혈뇌장벽과 태반을 뚫고 중추신경에 쉽사리 침투할 만큼의 기동. 뇌의 시냅스를 선택적으로 자극하고 때로는 마비시킬 수 있는 정밀성. 그리하여 무작위로 떠오르는 우리의 꿈 중에서도 오로지 행복하고 긍정적인 것만을 활성화시키는, 불쑥불쑥 떠오르는 어둡고 추한 생각들은 철저히 배제하여 결코 현실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작고 정교한 기계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기능이 있었습니다. 로봇은 자기 재생산이 가능해야 했습니다. 저와 동일한 개체를 설계도가 보존하는 한 무한정으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쉽게 말해, 물자만 충분하다면 단 한 대의 나노봇이 몇천이든 몇억이든 불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네. 예상했는지 모르겠지만―현장에선 이미 내 말을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중계는 나가고 있겠죠―이것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자가 복제 기능을 탑재한 나노봇들이 시시각각 지상에 풀려나고 있습니다. 모든 바다와 호수의 여울을 타고, 모든 구름과 바람을 등에 업고요. 지구의 대기는 10년이면 그 순환을 끝냅니다. 자가 복제를 거듭한 나노봇이 충분한 수에 도달하기까지는 채 그 절반도 걸리지 않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비가 내리면 여러분은 꿈을 꾸게 될 겁니다. 강에 발을 담가도, 수돗물을 마셔도, 나중엔 대기 중의 수증기를 들이키기만 해도 각자의 영원한 천국이 현실로 나타날 겁니다. 그리고 누구도 거기에서 다신 빠져나오지 못할 겁니다. 기아와 결핍과 극심한 동통에 시달리는 몸이라도, 심지어 죽음 그 자체라도 여러분은 그것을 모를 겁니다. 의식이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여러분은 행복할 겁니다. 지구는 이렇게 죽어갑니다, 꿈에 질식당하여.

그리고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누구는 그럴지 모르겠군요. 아니 이 말을 듣는 모두가 그럴 겁니다.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설령 이를 바라는 이들이 있더라도,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네가 감히 내릴 판단이 아니라고. 나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아니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감히 무소불위의 심판자를 참칭한 죄로, 나는 나 스스로에게 가공할 만한 형벌을 이제부터 내리고자 합니다.

 

( ! )

 

방금 벌어진 일에는 어떤 편집도 없습니다. 이것은 녹음된 음성이 아닙니다. 나는 방아쇠를 당겨 여러분이 알던 나의 육신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이 목소리는, 이 의식은 죽이지 않고 고스란히 옮겼습니다. 내가 창조한 나노봇 군단에게, 영원한 꿈을 직조할 무한의 일꾼들에게.

이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나는 이 세상과, 여러분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존재할 것입니다. 그 상태로 나는 차례차례 여러분이 행복해지는 것을 도울 것입니다. 가장 비밀스러운 지하기지도 가장 외딴 섬의 폐쇄병동도 빠짐없이 침투하여 모조리 꿈에 빠뜨리겠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꿈에 들거든, 가능한 한 길게 그 행복이 이어지도록 여러분 한 명 한 명을 보살피겠습니다. 기꺼이 그 주치의를 자청하겠습니다.

노화를 억누르고 물질대사를 적정히 유지한다면 백 년, 이백 년이라도 여러분은 각자의 천국을 거닐 것입니다. 꿈의 역법으론 사실상 영원보다도 긴 시간이지요. 그러나 언젠가 끝은 올 것입니다. 하나둘 그 육신이 노쇠하여 종말을 맞기까지 나는 여러분을, 여러분이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된 이곳을 돌보겠습니다. 어느 날 끝내 여러분 모두가 안식에 들거든, 그날 비로소 나의 일이 끝날 것입니다. 나의 기나긴 형기 또한 만료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게 내리는 첫 번째 형벌입니다.

 

두 번째 형벌은 내가 이 대부분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의식을 옮기면서부터 나는 더 이상 떠올릴 수 없습니다―내가 어떻게 이런 발견을 해냈는지, 나노봇을 어떻게 만들고 배포했는지, 내가 정말 이 모든 것을 현실로 이뤄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것을 애초 몰랐는지, 어느 순간 잊었는지조차 모르게 될 것입니다. 연구 기록 또한 철저히 파괴해두었습니다. 이제 망각에 대한 망각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의심할 겁니다. 내가 보는 당신들이 정말 현실의 인간인지. 혹시 나의 꿈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내적 표상은 아닐지. 나는 모두의 꿈을 이뤄주는 나 혼자만의 꿈속으로 도피하여, 실은 삐쩍 마른 채 감각 차단 탱크 따위에 누워있는 게 아닐지. 결코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영영 벗어날 수 없는 고민을 걸머지고 홀로 방황하는 것, 골몰하는 것. 이것이 내게 내리는 두 번째이자 가장 가혹한 형벌이 될 것입니다. 아니면 설마, 이 말을 하는 지금조차, 나의 꿈이 이뤄지는 꿈을 의심하는 또 다른 꿈이 아니라고 어떻게 믿을까요? 이 거대한 계획이라니. 처음부터 나는 개중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던 게 아닌가요?

현실이란 제 앞의 사건을 선택할 수 없는 극이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극을 꿈이라는 단어로 치환하더라도 말은 되겠지요. 각자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영영 잠긴 여러분은, 모쪼록 지금의 나처럼 의심하지 않길 바랍니다. 설령 떠올리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이전의 우리는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는 답을 애써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무한정한 행복이 실은 내 머릿속의 표상에 불과하다는 것도 애써 무시하길 바랍니다. 아예 전부 잊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아, 그런데 이것저것 다 잊더라도 딱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세요.

좋은 꿈 꾸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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