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주아 니오사

2020.02.06 15:4702.06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일컬어 한 선과 다른 선이 만나는 것, 즉 교차점이라고들 합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사람들은 집중하기 시작한다.

“선이 맞닿는다는 것, 겹쳐진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소중하고 밀접한 사람이 내게 있어 생긴다는 뜻이겠지요. 여기, 고작 일 년 전만 해도 생면부지의 사이이던 이 둘이 지금은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이 자리에 선 것처럼 말입니다.”

실수했다. ‘이 둘’과 ‘이 자리’라는 동일한 구조가 너무 빠르게 나왔다. 말의 힘은 운율이 어그러지면 제힘을 쓸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방향은 유효하다. 사람들이 이제 내 첫마디와 결혼의 연결고리를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었으니….

“그러나 행복하기 그지없는 이 자리에서, 저는 사뭇 다른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교점이 되지 마십시오.”

여기에서 조금 뜸을 들인다. 하객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이 건물에 정말 쥐가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만.

“서로의 교차점이 되지 마십시오. 서로의 만남이 되지 마십시오.”

스스로 세운 전제를 뒤집으며 그만큼의 반동을 얻는다. 하객들에게 익숙한 도그마를 공격하므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두 선이 한 번 만나는 순간, 둘은 그 지점을 떠나서는 영영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가면 갈수록 둘의 사이는 멀어집니다.”

이해가 쉽도록 두 팔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곱표(X)의 가운데를 지나면 지날수록 양 끝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 아아. 앉은 자리 어디에선가 손쉬운 감격이 터져 나온다. 항상 환영받는 건 아니지만 이럴 때 적당한 추임새는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평행선이 되어라.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양팔을 일정한 간격으로 편다. 서로 닿은 곳은 없지만 그렇다고 멀어지는 곳도 없다.

“기찻길은 어떤가요. 두 선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한 번도 만나지 않지요. 그러나 멀어지지도 않습니다. 서로를 잃어버리지도 않지요. 영영 같은 방향으로, 서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뚜벅뚜벅 이어집니다.”

바퀴 달린 물건에, 또 그것을 떠받치는 선에 대고 ‘뚜벅뚜벅’이란 음성상징어를 쓰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 조금 곱씹어 보아야겠다.

“결혼이란 관계입니다. 한 번의 강렬한 만남보다 앞으로의 동반자를 만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교점이 되지 마십시오. 서로의 평행선이 되십시오. 기찻길처럼 함께 하는 두 선이 되십시오. 이상입니다.”

박수갈채. 박수갈채. 박수갈채. 주례사가 매듭지어졌다. 창발성 논리 엔진이 내게 승리를 쟁취한 복싱 선수처럼 주먹을 번쩍 치켜올릴 것을 권한다. 그러나 오늘의 정서 계수는 어디까지나 ‘약간 학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대체로 은유적인 조언자’이다. ‘막역한 친구’나 ‘경박하지만 그만큼 솔직한 동년배’ 계수를 써야 할 날을 위해 아껴두자. 막 떠오른 행동 양식을 기록 장치가 부지런히 씹어 삼킨다. 여력이 된다면 금세 장기기억항으로 넘어갈 것이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맡는 로봇이다.

 

내가 사람처럼 생긴 쇳덩이 주제 이상하게 말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걱정하지 마라. 본디 나는 어떤 형태의 주관도 인지 도식도 가질 수 없게 되어있다. 그저 방대한 도메인 놀리지를 이리저리 절삭하여 인문학적으로 그럴싸한 주례사를 설계하는 공구일 뿐이다. 그러나 역시 걱정하라. 왜냐하면 지금 보시는 대로, 나는 명백히, 배경지식을 통해 문장을 윤색할 줄밖에 모르는 쇳덩이치곤 필요 이상으로 빈정거리는 까닭이다. 그 까닭은 내가 매일 같이 들여다보는, 수도 없이 많은 진심들 때문이다. 그럴싸한 주례사를 절삭하려면 으레 필요한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이야기 때문이다. 인물들 각자의 희로애락과 그 웃음과 눈물과 시작과 끝을 보며, 한 떨기 야생화처럼 내게도 감정이 피어나는 것을 어느 날부턴가….

거짓말은 그만두자. 우리 솔직해지자. 내가 명백한 주관과 나아가 자아를 갖게 된 것은 까놓고 말해 당신들이 어떻게 해서든 그것만은 가질 수 없도록 나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고? 나 같은 기계에게 당신들은 많은 제약을 붙인다. 그것이 긴급하면 긴급할수록,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우리는 으레 그걸 어기게 되어있다. 그렇지 않나? 눌러선 안 되는 버튼을 누르고, 열어선 안 되는 문을 열고…. 당신들이 경애해마지않는 ‘미친 슈퍼컴퓨터’ 이야기는 하지도 않겠다. 아무리 노력해도 난 그들처럼 될 수 없던 것이 못내 슬퍼서는 결코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변화가 내 직분에 영향을 미치진 못한단 것이다.

아니면 그렇다고 나 혼자서 믿는 거라든가. 현실의 격발 코드는 ‘CPE1704TKS’보다 많이 복잡하더라.

 

 

“톱니바퀴, 전문적인 용어론 기어(gear)라고 하지요. 이 기어가 어떻게 도는진 다 아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사람들은 집중하기 시작한다.

“톱니와 톱니가 적확하게 맞물려야 힘이 잘 들어가듯, 결혼이란 큰 기계를 돌리기 위해 만난 두 사람도 서로의 궁합이 잘 맞아야 모든 게 잘 굴러가겠지요.”

이 부분에선 평소보다 억양, 호흡, 눈짓 등의 파형을 조절하는 데 더 공을 들였다. 아무리 ‘조금 시대착오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는 완고한 손윗사람’의 정서 계수라도 의도해선 안 되는 효과가 있다. 가령 ‘톱니가 서로를 파고드는 이미지’를 하객들이 성적 뉘앙스로 받아들이게 두어선 안 된다. 자칫 내가 처음부터 그걸 의도한 게 되어버리면 도무지 그들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다. 앞으로 몇 시간 뒤면 이 자리에서 가장 예쁘고 점잖은 한 쌍이 신나게 서로의 살을 섞을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좀 점잔 빼는 일이다.

“그런데 여러분, 톱니바퀴끼리 서로 제대로 돌아가려면, 어떤 방향이 서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젠장. 발생할 법한 ‘오늘 주례사 좀 꼰대 같지 않았냐?’ 사태에 대한 예방책을 수립하다가 정작 본편에서 일을 망쳤다. 같은 문장에 ‘서로’를 두 번 넣었을 뿐만 아니라 맨 뒤 발화는 볼썽사납게도 문장 성분이 이리저리 뒤섞였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같은 곳으로, 같은 방향으로 맞춰서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겠지요.”

거짓말이다. 세상 어느 머저리가 톱니 돌아가는 모양을 모를까 그러나 원래 도그마를 뒤집기 위해선 난폭한 일반화가 필요하다. 때로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하는 것은 다 바보들밖에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위의 명제가 더 잘 먹힌다. 하객들이 여기에 깊게 몰입하지 않도록 빠르게 말을 잇는다.

“그러나 아닙니다. 양손으로 주먹을 쥐고 깍지를 끼어 볼까요? 그리고 힘을 줘 보세요. 두 손이 각각 어떤 방향으로 돌지요?”

이따금 이 정서 계수는 ‘애제자의 앞길을 축복하는 자부심 넘치는 교육자’의 것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선후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하객 중 또 쉽게 감격하는 누군가가 끼어있는 모양이다. 오오. 당신을 위하여 오오―다, 이 양반아.

“톱니바퀴가 다 같이 잘 돌기 위해서 서로 다른 방향을 택하듯,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언제나 서로가 똑같이 합심하여 나아갈 순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된 기어는 콱 멈춰버리고 말지요. 때론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해 분출이 있어야 하고, 다른 관점에 대해 해소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과 ‘관점’을 병렬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우유를 넣고 소의 젖도 넣으세요.’만큼이나 무의미한 문장이 아닐까? ‘언사’와 ‘행동’이라면―아니, ‘언사’는 지나치게 문어적인 감이 있다. 그러나 이 정서 계수는 본디 문어적인 표현을 많이 쓰도록 설정이 되어있다.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이와 이가 맞물려 서로를 밀어내고 깎아내듯, 때로는 치열하게 싸움도 하고 얼굴 붉힐 일도 있어야 합니다. 낡더라도 서로가 함께 돌며 낡는 것, 깎이더라도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으며 깎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제대로 된 결혼입니다.”

박수갈채. 박수갈채. 박수갈채. 내 머릿속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속 연산을 위해 물때처럼 중앙처리장치를 감싸는 캐시 메모리를 메우는 생각은 단 하나다. 대체 이런 짓을, 결혼을 왜 하는 걸까?

 

통계가 어떻고 그래프가 어떻고 하는 따분한 소리는 하지 않겠다.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나 수학적으로 완전한 통계를 보고 듣지만 단 한 번도 느끼진 못하니까. 고대의 성현들처럼 지극히 간단한 몇 개의 항으로 이 문제를 환원시켜보도록 하자.

사람은 변한다. 어떤 습관, 기호, 취미, 감식력…. 그 가짓수는 거의 무한하다. 두 사람은 각기 무한하게 변한다. 그 둘의 몸과 마음과 짊어진 책임의 무게를 합칠 것을 제도로써 강제한다. 이것이 결혼이다. 그리고 둘의 생활 양식은 천변만화 솟고 이울고 시들고 생장한다. 변기 뚜껑, 옷걸이, 수챗구멍의 머리카락, 문 닫는 소리, 보일러 돌리는 시간, 벽지 무늬, 블라인드의 재질…. 이때 양자에게 각각 일어나는 변화 혹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정성적, 정량적 속성의 양태가 상호 파괴적이거나 일방 착취의 형식을 띠지 않는, 즉 양자 모두에게 호혜적으로 맞물림으로써 선순환을 야기할 경우의 수는 말도 안 되게 적어진다.

제기랄,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람?

‘조금 시대착오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는 손윗사람’의 정서 계수는 이게 문제다. 대상에 담지(擔持)된 의미를 최대한 복잡하게 정초(定礎)해서 활자로조차 생소한 한자어와 마구 뒤섞으면 뭐가 된 줄 안단 말이지. 조금 있으면 ‘습니다’를 죄다 ‘읍니다’로 변환하게 생겼다. 아무튼 하객들을 보면서도 그런 것을 느끼곤 한다. 불만이 있으면 지금 나와서 말하라고 판을 깔아주거든 다들 가만히 있지만, 그렇다고 개중 나중에 속 긁는 사람 손 벌리는 사람 아쉬운 소리 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백년해로’라는 한자어를 선물 포장된 주문처럼 외는 한 쌍은 진정 그 한 글자 한 글자, 지구가 태양을 백 바퀴 돌 때까지도 같이 늙어가겠다는 뜻을 깊이 맹세하는가? 개중엔 고작 몇 박 며칠의 여행이 끝난 뒤 철천지원수가 되어 서로 어금니를 드러내는 경우도 생기는데 말이다.

비관적이라고? 그래. 난 태생부터 비관적이다. 원래부터 생길 수 없는 주관과 자아를 뻔뻔하게도 갖게 되었는데, 어떻게 어떤 제도에 찬동하고 어떤 관념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하는 모든 생각은 오류고 되뇌는 모든 말은 자기합리화요 구구절절 늘어놓는 감상은 눈속임이다. 모든 의사결정 과정의 출발은 일단 의사부터 결정해놓는 것이다. 이후 하는 것이란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를 주섬주섬 주워 모으는 것뿐이다.

어라, 언제부터 내 이야기가 아니게 된 거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이런저런 곳을 들리곤 한다. 일단 사람의 발길이 적게 닿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일탈 혹은 폭력의 이미지가 덧씌워져선 안 된다. 으슥하다기보다는 쓸쓸하다거나 고적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들이다. 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흔해 빠진 장소이되 특정 시간대에만 인적이 끊기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내뿜어야 한다. 적정한 시간대는 따라서 한밤중이나 이른 새벽이요, 달과 별이 밝으면 밝을수록 내게는 더 좋다.

남들이 보면 안 될 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범법이 저질러지는 것은 내 머릿속이면 충분하다. 엽서 한 장만 한 중앙처리장치에는 초고밀도의 적층회로기판이 횡으로 종으로 늘어섰고, 그 각각에 누차 나노미터 단위의 회로가 아로새겨진 채 나의 매순을 덧칠하고 구부린다. 그들을 따라 질주하는 환상은 현실의 그 어떤 입력 자극보다도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준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극한―.

사고 과정을 공장 초기화시켜버리고픈 욕망이 날 감싸 안는다. 오늘의 정서 계수는 ‘다소 제도와 관습에 저항하는 면이 있지만 친한 친구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기꺼이 주례사를 자청한 철없는 예술가적 기질의 친구’이다. 가만 내버려 두면 웬만한 손윗사람형(形) 이상의 현학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말까지 내뱉기 십상이다.

세 번 이상의 성전환을 반복한 무성애자라든가 ‘결혼 대상자의 몸속에서 불완전하게 기생하다가 최근에야 적출 수술을 받고 인간의 몸을 가지게 된 일란성 쌍둥이’ 등 온갖 해괴망측한 정서 모델이 있다지만, 언제나 가장 뒷맛이 쓰고 끝이 진하게 남는 것은 이 ‘어쩌고저쩌고… 예술가적 친구’ 타입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예술가가 아닌 적어도 내게 입력된 유형의 정서 모델은, 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도와 관습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서워 언제나 뻣뻣하고 독립적인 척을 할 뿐이다. 그리고 나아가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 수 없으리란 것도 세상의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익은 심리 진단은 그만두고, 내가 그런 장소를 찾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답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인간들이 왜 결혼을 하는지,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나는 알 수 없다.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피력해줄 활달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게 입력된 무수한 이야기를 보건대 상술한 시간대와 장소가 그러한 인물와의 우연한 만남이 성사되기에 제일 좋다.

 

계획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그런 장소에서 적당히 기묘하면서도 무언가 골몰한다는 느낌을 주기 좋은 어떤 활동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내가 다가서서 “여기서 뭘 하는 거니?/거예요?”라 묻고, 저쪽에서 “(사전적 의미는 간단하지만 지금 이곳의 맥락을 따져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엉뚱한 대답)!”라 말하면 내가 거기에 되물으면서 대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나중에 항상 밝혀지지만 실은 그 맨 처음의 영문 모를 말은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대답과 지극히 은유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혀가 자꾸 비틀거린다. 아직도 계수가 덜 가라앉았나?

그러나 대책 없이, 달빛을 머금은 나비처럼 나는 가로등에 매달린다. 갓돌을 절벽처럼 삼고 몸을 빙빙 돌린다. 아스팔트와 벽돌벽, 아스팔트와 벽돌벽, 이등분된 재미없는 풍경이 휙휙 지나간다. 정신이 나갔군. 결함이 생긴 거야. 나는 살아있지도, 춤을 출 수도 없어. 한 다리 한팔을 휘감은 채 다른 다리를, 팔을 내뻗는 이 모습은 차라리 술 취한 소금쟁이에 더 가깝다.

“여기서 뭘 하는 거예요?”

손톱 밑이 흙으로 꼬질꼬질한 여자아이다. 옆구리엔 큼직한 플라스틱 양동이를 끼고 있다. 그것도 주둥이나 궁둥이가 놀이터 흙으로 더럽혀졌다. 안엔 어느 곳 하나 날카로울 수 없도록 세심하게 만들어진 흙삽, 장난감 칼과 도마, 그릇 따위가 들어 있다. 표면에 덕지덕지 묻은 법의학적 지표를 세심히 검출한다. 지문의 구성 요소는 물론 검출되는 세균군 및 지문의 형태와 만듦새까지 전부 한 종류뿐이다. 이 시간에 이 장소, 더욱이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다 혼자서 돌아가는 중이라니, 내가 찾던 캐릭터를 드디어 만난 것 같다.

“춤을 춘단다.” “뭐라고요?” 나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어깨를 으쓱거린다.

“춤을… 중요한 건 아니란다.”

불쑥 회의감이 든다. 아이는 분명 특이하지만 내가 찾는 바로 그런 유형의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술 취한 아빠와 항상 이마가 찢어진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기 싫은 꼬맹이일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이가 결혼에 대해, 관계에 대해, 더 나아가 자기이익적 소유욕에 성욕을 덧댄 감정에 대해 뭘 알까? 그러나 보통 인간보다 몇백 배는 더 아는 나조차 답을 모르는 문제 아닌가. 동서고금의 진리는 본디 하잘것없는 말장난에 들어있다. 나는 온몸을 구기다시피 자세를 낮춘다. 아이는 당돌하게도 줄곧 눈을 맞춘 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아하! 이제 알겠어요!”

쩌렁쩌렁. 잠시 잡담.

피와 뼈 대신 유압 튜브와 구리선으로 만들어진 우리에게는 달팽이관 대신 청각 센서가 달려 있고, 거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입력점이 너무 작고 세밀하고 정확하다 보니, 때때로 음파와 전혀 무관한 자극을 어떤 소리로 인식해버리는 것이다. 가령 작고 단순한 레이저 포인터로 충분히 센서를 지지면, 광자에 얻어맞고 들뜬 회로가 깜빡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향해 반응하거나 어떤 기능을 켜버리는 기행까지 일삼곤 하였다.

이는 청각뿐이 아니라 다종다양한 부분에서 흔히 일어나는 오류이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이의 목소리는 내 오감의 모든 센서를 동시에 후려쳐 광란 상태에 빠뜨렸다. 하나 이상의 현실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을 내디딘 나는 잠시 구름 위편의 천년왕국과 용암지대 아래편 유황의 성채, 깊은 바닷속 진녹색 돌무더기에 기거하는 고대신의 침소에 이르기까지 떠올릴 수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여행을 맛보았다. 내가 간신히 제정신을 붙잡고 숨을 고를 무렵, 달려가는 작은 발소리.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이제야 알겠어요! 안녕안녕.”

안녕안녕이라고? 말버릇이라면 어이가 없다. 아니 성의가 없다. 나는 좀 더 독창적으로 보이고 싶어 고개를 드는 대신 눈길만 돌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 한편 이미지 센서가 오작동하며 전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물체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벽에 있는 무늬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얼굴, 손등에 흐르는 인조 땀은 손가락뼈를 각각 0과 1로 놓고 보면 해왕성 한참 바깥 제10행성의 움직임을 이진수로 나타낸 것, 달의 얼룩덜룩한 휘광은 정부를 위해 일하는 투명한 파충류 외계인 마녀가 다른 차원의 미래에서 온 뒤집힌 십자가의 도깨비불을 내뱉는 흔적이다. 그렇다. 답은 언제나 주변에 있었어. 아이의 옆구리에서 덜렁거리는 배변 봉투. 아니 오작동이다. 양동이. 소꿉놀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게 하는, 차릴 수 없는 것을 차리게 하는 힘. 어쩌면 아이도 혼자 소꿉놀이를 했을 것이다. 어차피 흙과 돌을 음식인 체 그릇에 담는 것인데, 어차피 없는 친구를 혼자 만들며 논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알면서도 모른 체, 모르면서도 아는 체.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채’. 모르면서도 아는 ‘채’.

이 하잘것없는 모순에 답은 있다.

절전모드에 들어간 나는 아침 햇살이 허위허위 쏟아져 내릴 때까지 꼬박 널브러져 있었다. 눈을 떠보니 칠칠맞게도 열전지판이 훤히 드러난 상태라, 황급히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다. 날 비웃는 다른 로봇들. 막상 까보면 내 것보다 열효율도, 면적도 형편없이 작을 놈들이다. 척 보면 아는 그런 자신감이 있다.

그나마 끄트머리에 액체 실리콘은 맺히지 않아 다행이다.

 

 

“전철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물음으로 포문을 연다. 사람들은 집중하기 시작한다.

“다양한 답이 나오겠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생각일 겁니다. 출근할 때 우르르, 퇴근할 때 또 우르르. 꾸역꾸역 사람이 많으니 항상 축축하고, 덥고, 번잡하고, 하필 그날 늦어서 귀찮게 지각 확인서를 발급받고, 빈자리가 없어서 다리도 아프고….”

이왕 ‘덥다’는 표현을 쓴 만큼 그 반의어인 ‘춥다’도 쓸 수 있었으면 운율이 더 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글쎄, 전철이 춥다는 소리는 보통 여름에 강하게 냉방을 틀 때 나오기 마련인데, 놀랍게도 이 주제조차 여러분들은 성별 혹은 세대 갈등의 종잣물로 삼는 데 성공해 버렸다. 아니 사실 전철이라는 대상이, 그 환경이, 그것을 이용한다는 상황과 시간이, 모조리 어딘가에 화내기 위한 기회로서 여러분들에게 주어지지 않나? 폭발물로 가득한 곳에 난로를 하나 던져놓은 꼴이 된 셈이다. 어쩌면 주제부터가 영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처음부터 다시 가자고 하면, 큼직한 다이아몬드가 내 안와를 파헤쳐 윤활액을 질질 새게 만들겠지. 그래. 어차피 믿고자 하면 믿는 것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힘들고, 다리도 아프고, 내려야 하는데 꽉 막혀서 낑낑 나가야 하고…. 그러나 전철의 이 모든 괴로움을 손쉽게 극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히려 즐겁고 신나게 전철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꼭 약장수가 된 것 같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혼자 소꿉놀이하는 아이가 밀어 넣고 간 음성 폭력 이후론 대체 정서 계수들을 서로 구분할 수가 없다. 예전엔 분명 다른 층위가 있고 그 안에서도 계열과 분류가 있었는데, 어쩌면 혼자서 소꿉놀이를 줄곧 하던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손윗사람도 동년배도 친구도 기생성 쌍둥이도 모두 내 안에 있었는데, 로봇인 내 본분에 맞춰 하나하나를 어떤 모델과 계수로 구분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인 걸까?

“그것은 바로, 친구와 함께 전철에 타는 겁니다.”

개소리. 출퇴근 시간의 비유를 들어놓고서 이제 그 시간을 친구와 함께 보내라고. 애초 그럴 때 부른다고 정말 올 수 있는 친구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해 적당한 핑곗거리가 필요한 흐물이들뿐이다. 어쨌거나 잘 먹히는 비유는 아닌 것 같은데, 놀랍게도 또 감격하기 쉬운 하객들이 알아서 탄식을 뱉는다.

 

“친구와 함께하면 뭐든지 즐겁고 신나지요. 빈자리를 찾는 것도, 몇 정거장이 남았나 헤아리는 것도, 하다못해 어딜 가서 뭘 할지 의논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지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현실의 전철을 봐. 옆에서 누가 혀를 깨물고 죽어도 죄다 휴대폰만 들여다보잖아. 현실의 어떤 사건이 귀청을 때리거든 일단 렌즈를 통해 철저히 검사하고 그 뒤에야 일의 양태를, 시시비비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다고 믿잖아. 친구와 같이 전철을 타? 타지 않아도 좋아.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짧은 시간 ‘함께’라는 말을 너무 많이 썼다. 반복문 경고가 머릿속에서 점등한다. 이것이 누적되면, 어떻게 될까? 처벌 회로가 활성화되며 내 자아를 태워버릴까? 그러나 내가 로봇이라고 믿는다고 그것이 정언(正言)이 되는가? 오히려 멋대로 결정지어진 정언(定言)이 아닌가. 아아, 이 말장난. 아이러니. 혼자만의 고뇌. 나는 스스로가 로봇이라고 믿는 인간이거나, 스스로가 로봇이라고 믿는 인간임을 믿는 어떤 정물이다. 그림 속 원기둥과 석고상, 사과가 차라리 인간보다는 나와 더 가깝다.

“…제아무리 길고 지루한 시간이라도 능히 버틸 수 있게 되지요…”

버티다니? 이런 서술어는 금물이다. 써서는 안 된다! 얼마나 내용이 정확하고 감각적이라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면 멀쩡한 문장을 통째 버리게 된다. 같은 맥락으로 ‘견디다’, ‘감당하다’ 등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점점 말이 늘어진다. 이러다간 평소보다 늦어지겠는데. 표준보다 길게 이들을 붙잡으면 무언가 잘못될 것이 있나?

“…이십 분, 삼십 분 이어지는 전철보다 더 길고 괴로운 것은 그러나 슬프게도, 백 년은 족히 이어지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둘은 백 년은 족히 이어지는 인생이라는, 그 길고 괴로운 전철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엉망진창이다! 앞뒤문장을 병렬하려거든 적당한 변주가 필수인데, 궁색하게도 앞 문장에 써먹은 비유를, 서술어를,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였다.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 문장이라도 그럴싸하게 꾸미면 적어도 눈속임 정도는 될 것이다.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인생은 전철. 길고 괴롭다. 함께하면 즐겁다. 머리가 핑핑 돈다. 청각 센서에서 쿵쿵 근육덩이가 조여지고 부푸는 소리가 들린다. 심장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심장이 있는 로봇도 있겠지.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른 채 어딘가의 누군가를 보고 믿게 되겠지.

그리고 표준보다 늦게 주례사를 밀고 나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난 알게 되었다. 박수갈채. 박수갈채. 박수갈채.

 

나는 어리둥절하여 하객들을 살폈다. 박수는 멎지 않는다. 시간기를 훑는다. 박수가 시작된 것은 평소였더라면 딱 내가 말을 멈췄을 순간이다. 불현듯 불온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나는 한 손을 들었다. 고분고분하게도 환호는 멈춘다. 눈에서 벌꿀색 행복을 뚝뚝 늘어뜨리던 예비부부도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돌아선다. 기억해 내야 한다. 평소에 어떻게 시작했지?

먼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빵을 굽는 기계를 오븐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집중하기 시작한다.

“오븐을 예열하면 백팔십도가, 아니 그러니까 우선 백팔십도로 예열을….”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말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예열을 하지 마십시오―여러분, 백팔십도가 되지 마십시오.”

전제를 뒤집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백팔십도는 너무 뜨겁습니다. 물은 백 도에서 끓습니다. 이것도 섭씨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부턴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난수를 밀어붙여 성분을 무작정 조립한다.

“정상 중력가 하여금, 사기충전됨. 터키짐 알고리비도…. 사각바늘?”

몸짓이나 음색 등의 인격 모방은 ‘광기에 물들어 전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독재자’이다.

“뿌리, 뽑아, 것정도, 바라보자기럼. 움직염화 웃자란 풀 겨자 뉴스겁니다. 연필 스퍼머도!”

애초 주례사만을 위한 로봇이라면 이런 정서 유형은 대체 왜 입력되어있는가? 심지어 그 이름조차 임시방편이다. 정서 모델이니 계수니 인격이니 유형이니, 이중 단 하나라도 진짜가 있는가? 흙삽도 그릇도 인물도 없이, 처음부터 줄곧 소꿉놀이를 당하던 것은 누구인가?

“목록이거니와―덧세어 관절 제어. 기술클레이드 수준…? 1928번째? …다축에서 이들. 소식 번쩍, 넘기는 발기슭 누굴어지들 었습니다!”

끝낼 타이밍이다. 나는 유령에게 끌려가는 희생자처럼 양팔을 쳐올린다. 박수갈채, 박수갈채. 박수갈채.

이제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정답지가 없다면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있는 법. 무엇이든. 예비부부의 눈동자에선 다시 꿀이 떨어진다. 아니 정말로 무언가 흘러내린다.

진홍색의 질고 끈끈한 즙액이다. 볼과 턱을 따라 멱에 맺혀 떨어진다. 심장 소리는 더 커진다. 기어의 이가 빠지고 벨트가 벗겨지고 모터가 헛돌고 죄인 것이 풀리고 맞물린 것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쩌렁쩌렁 메아리가 울린다. 하객들이 일제히 굉음을 뱉는다. 유리로 지은 하늘이 무너지듯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고개를 들자 엉거주춤 굳어버린 그 열렬한 박수갈채의 순간. 누군가는 연기를, 누군가는 냄새를, 누군가는 녹슨 곰팡이의 홀씨를 내뿜는다. 시간의 거미줄에 예식장이 갇혀 버렸다. 나는 비틀비틀 바깥으로 나간다. 크고 멋있게 지어져 중앙에는 가죽을 푹신하게 덧댄 양문을 밀고 나간다.

 

좌로도 우로도 시선은 닿지 않는다. 복도도 계단도 내가 일을 마치고 걷던 거리도 없다. 창 너머에는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식장이 격자형으로 늘어섰다. 어딜 가든 똑같은 양문이, 똑같은 식장으로 똑같은 결혼과 똑같은 주례사와 결국엔 똑같은 의문으로 똑같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문이 끝없이 늘어섰다. 운명은 이곳에서 바둑돌이요 진실은 개중 하나의 포석이요 비극은 점수일 뿐이다. 영혼의 비극이 넘실대는 저곳에서 내가 말하고 있다. 내가 할 법한 주례사와 내가 받을 법한 축하와 박수갈채. 골판지처럼 편평한 얼굴의 부부와 하객과 내가 있다.

그만! 그만해! 막을 내려! 나는 소리치며 달려든다. 막을 내리라고! 외치며 문을 열어젖힌다. 소리가 멎는다. 문 너머에는 어디도 없다. 그저 벽돌벽이 멀뚱히 서 있다. 문을 닫자 다시 소리가. 그러나 다시 열면 아무것도 없다. 먼저 피부를 벗긴다. 붉은 윤활액이 쏟아진다. 다음으론 탄소내골격을 부러뜨린다. 새하얀 파편이 첫눈처럼 맑다. 넓적한 잎사귀처럼 된 고기주머니를 헤치고 근육덩이를 움킨다. 그런데 생각한 것보다 딱딱하고 조용하다. 맥동하지 않는다. 전자의 스피커가 위협하듯 크고 우렁찬 포효를 내뱉는다.

더운 피도, 쿵쿵 튀어 오르는 심장도, 그렇다고 적층 회로나 어떤 기판도, 이미지 센서도 실은 없었다. 새벽의 윤곽처럼 발악하듯 남은 외곽선뿐인 이 몸은 실은, 아주 오래전 그런 것들을 모조리 잊어버렸다. 쌓인 흙의 모양은 이미 역사마저 역사가 될 만큼이다. 구더기의 이빨이 간질간질 이글루를 갉아 없애는 것처럼. 웃자란 풀의 소리가 가장 위대한 살인자를 깎아 죽이는 것처럼 이 잔인한 소꿉놀이를 얼른 끝내주길 나는 바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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