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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살아있는 오이들의 밤

2020.02.04 00:3702.04

 

알고 보면 나는 정말이지 죽을 뻔한 것이었다.

“오이가 얼마나 맛있는데 이걸 버려? 오이가 있어야 씹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니까.”

문제의 당일, 콩국수에서 오이를 덜어놓았다는 이유로 점심시간 내내 내게 잔소리를 해대던 박 부장이, 내가 덜어놓은 오이까지 모조리 가져가 먹은 박 부장이, 회의 중에 피를 토해내며 죽은 뒤에도 지금 회사 복도에서 다른 직장동료의 살덩이를 씹고 있는 ‘저것’이라면 말이다.

O바이러스 사태에 대해 알려진 원인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사망하기 시작했고, 그 즉시 다시 살아나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좀비로 변한 것이었다. 물린 사람도 좀비가 되고, 머리를 쏴야 죽는 뭐 그런.
그날 이후 일주일째 회사 탕비실에만 숨어있는 내가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오이를 의심하게 된 것은 변하지 않은 이들 모두가 오이를 먹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였다.

 

*

“저는 오이 안 먹거든요.”

탕비실 냉장고에 있던 샌드위치에는 누군가 급히 돌아가야 했는지 한 입 크게 베어 문 자국이 남아있었다. 이것만큼은 먹고 싶지 않았지만, 3일째 물과 과자만 먹고 버티다 보니 먹다 남은 게 무슨 대수냐 싶었다. 오히려 유통기한이 더 지나기 전에 빨리 먹어치우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탕비실에는 나 말고도 두 명의 회사 동료가 있었다. 좀 전에 샌드위치를 삼등분으로 나누어 건네었을 때 “저는 오이 안 먹거든요.” 했던 것이 기술팀 인턴 남모 씨였다. 이름을 감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이름이 ‘모’였다. 여러모로 피곤했겠다 싶다.

“어. 저돈데!”

이 눈치 없는 사람은 영업팀 정 대리다. 그리고 그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나도 오이를 먹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신중한 사람이 바로 나, 오...

“혹시 오 대리님도 오이 안 먹어요?”

“...네.”

“대박! 초대박! 이렇게 모이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다...!”

나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다 까먹었는지 크게 호들갑을 떨던 정 대리를 중단시키며 말했다.

“쉿. 죄다 모이게 할 생각이예요?”

“아, 죄송해요. 조용. 조용.”

우리는 숨을 죽였다. 조용해지자 탕비실 문 밖 어디에선가 들리는 오도독 뼈씹는 소리만이 남았다.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오이를 뺀 샌드위치를 한 입 깨물었다. 먹던 자국이 있는데는 피해서.
남모 씨가 물었다.

“핸드폰 충전 다 하셨어요?”

“네. 쓰세요.”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바이러스가 발병한지 3일이 지났어도 전기라든가, 인터넷 연결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충전기가 하나뿐이라 번갈아가며 충전해야 했다. 나는 충분히 충전된 핸드폰으로 하루에도 수백 번은 검색하고 있는 검색어, ‘좀비’를 검색하기 위해 트위터를 켰다. 포털사이트 뉴스들은 이미 더 이상 업데이트가 이어지지 않고 있었고 SNS만이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끔찍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들을 업로드하고 있었다. O바이러스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나, 좀비들의 최초 발생 시간이 3일전 박 부장을 시작으로 회의하던 직원들이 연이어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는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수준으로 초토화되었다던가 하는 것처럼 도움이 되는 정보들것들도 많았지만, 연예인 누가 좀비가 된 것을 봤다든가, 매번 그렇듯 북한의 소행이라던가 하는 믿을 수 없거나 잘못된 정보들도 많아서 점점 더 구별해내기 쉽지 않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인기 검색어 태그에 엉뚱한 내용 하나가 새롭게 올라와져 있는 것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오이먹지마’

오이? 나는 좀 전의 대화를 떠올리며 태그를 눌러봤지만 둥글게 돌아가는 로딩 중 표시가 멈추지 않았다. 한두 번 뒤로 돌아갔다 다시 눌러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배터리 잔량 옆의 LTE 안테나 표시가 어느새 ‘X’가 되어 있었다.

“정 대리님, 인터넷 돼요?”

“네. 어? 아니 잠깐만요.”

이 판국에도 핸드폰 스도쿠나 처하고 있던 정 대리는 뒤늦게 그걸 알았고.

“저도 안되네요.”

충전 중이던 남모 씨의 핸드폰도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그 태그는 뭐였을까. 오이를 먹지 말라는 게 무슨 뜻일지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배는 고프고, 이 좁은 탕비실에 성격도 잘 안 맞는 것 같은 세 사람이서 딱히 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무서워서 잠도 안 오고, 뭐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초반에 이야기했던 콩국수 일화다. 우리들 중에 가장 먼저 좀비가 된 박 부장은 그날 점심에 오이를 먹었다. 내 것까지 가져다 먹었다. 그가 우리들 중에 최초의 좀비가 된 것이 우연일까? 살아남은 세 사람이 모두 ‘오이 헤이터(hater)’라는 것이 정말 우연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머리가 이상해진 걸까? 나는 말하고 말았다.

 

“괜찮아요?”

정 대리가 내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한숨이 나왔다.

“저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물론 이런 구성으로 모인 게 대박이라고, 예. 그런 얘기를 제가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가 봤다니까요. ‘#좀비, #좀비_약점, #자살, #안전지역’ 이런 태그들이랑 같이 ‘#오이먹지마’가 왜 있었겠냐고요.”

“뭐 SNS에 그런 애들 많잖아요. 괜히 장난으로...”

“이 판국에 누가 그런 장난을 해요? 다 자기 같은 줄 아나.”

정 대리와 내가 괜한 말다툼을 하는 동안, 아까 샌드위치에서 빼내버렸던 오이를 들고 뚫어져라 살피고 있던 남모 씨가 안경을 고쳐쓰며 입을 열었다.

“쿠쿠르비타신.”

뜬금없는 주문시전에 정 대리와 내가 미쳤나 싶은 얼굴로 쳐다보자, 남모 씨는 자신의 이마를 짚으려는 정 대리의 손을 걷어내며 말을 이어갔다.

“가능성이 없진 않아요.”

아직 말을 안 했던가, 우리 회사는 식품회사다. 정확히 말하면 26년간 만두류 생산에만 전념해온 전문 업체로서 ‘믿을 수 있는 맛, 정직한 맛’을 사명으로 하는 건강한 식생활 문화에 앞장서는… 암튼 그런 기업이다. 그리고 남모 씨는 기술팀의 인턴으로 식품공학 전공자이기도 했다. 그가 말했던 ‘쿠꾸르..다신?’

“쿠쿠르비타신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이에서 쓴맛을 감지하지 못하지만, 오이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쓴맛을 느끼고 싫어하는 경우가 많죠. 바로 이 쓴맛이 오이의 중요한 기능성 성분인 쿠쿠르비타신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건 사실… 독성물질이에요. 해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오이가 만든 거죠.”

나는 물었다.

“독성물질이 오이에?”

“네. 하지만 이 성분은 암세포 전이를 막고, 예방하기도 하는 등 인간들에겐 보통 좋은 효과를 내죠.”

“좋은 거네 몸에. 에이, 그래도 싫더라 나는.”

정 대리가 추임새를 넣었다.

“사실 우리 같이 오이를 먹지 않는 사람들은 쿠쿠르비타신에 예민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그건 유전적인 문제이기도 해요. 7번 염색체에 존재하는 ‘TAS2R38’ 유전자의 타입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거죠.”

“그걸 어떻게 다 외워? 아무리 전공이라고 해도.”

“전공과는 상관없어요. 온갖 데서 하도 오이 먹어보라는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과학적인 근거로 조지면 되거든요.”

“아…”

“그러니까 이런 이유들로 오이를 못 먹는 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인 차이에서 오는 겁니다. 오이 먹으라고 하지 좀 마세요. 이렇게요.”

실로 정성 들인 반격이 아닐 수 없었다. 솔직히 좀 눈물이 날 뻔도 했다. 그간 오이로 인해 귀찮고 힘들었던 과거들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정 대리도 크게 공감이 되었는지 별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우리는 3일 만에 탕비실에서 하나 됨을 느꼈다. 하지만 감동은 잠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근데 그렇다면 쿠쿠르비타신이 갑자기 왜 좀비까지 이어진 걸까? 그것도 오이를 먹은 지 바로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서 막 그렇게 된 건데…”

“글쎄요. 그것까진 저도… 하지만 과학적으로 아주 근거가 없는 건 아니란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추측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마주 앉은 우리는 또 잠시 조용해졌다. 바닥에 버려진 네 조각의 샌드위치용 오이가 더욱 흉물스럽게 느껴졌다.

정적을 끊은 건 역시나 또 정 대리였다.

“어릴 때요... 수련회나 어디갈 때 김밥 단체로 시키잖아요.”

“어, 나 알아요.”

말문이 트인 남모 씨가 말을 이어갔다.

“김밥에 오이 큰 거 든 거 걸리면. 당근이랑.”

“그쵸? 진짜 싫었다니깐요. 빼고 먹으면 편식한다고 또 뭐라 하고. 근데 남모 씨도 당근도 안 먹어요?”

“네.”

“어, 나돈데! 대박. 오 대리님도 설마?”

난 당근은 먹었지만, 단합된 분위기를 굳이 깨고 싶지 않아 고개를 젓는 걸로 대답했다.

“대박. 아 맞다. 조용히 대박… 맞다. 전 그런 적도 있어요. 서브웨이 샌드위치에 분명히 오이랑 피클은 빼달라고 했는데…”

어느새 죽이 맞은 정 대리와 남모 씨는 자신들의 오이 수난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보다 조금 더 이성적이고 침착한 나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원인이 오이에 있다는 걸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의 배고픔이, 이제는 인터넷 연결도 되지 않는 이 상황이, 탕비실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절박한 상황임을 나는 눈치채었던 것이다.

 

**

깜빡 잠이 들었었다. 일주일 째였다. 어제부터는 물 밖에 먹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건물 내 전기도 나가버려 핸드폰도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시간을 확인할 때 빼고는 함부로 켜지 못하고 있었다. 오후 10시 20분이었다. 평소였다면 자기 전에 침대에서 넷플릭스로 좀비 드라마나 보고 있었을 시간이었을 텐데. 그리 생각하니 우습기도 했다.
한동안 친하게 지내던 정 대리와 남모 씨는 어젯밤부터 멀리 떨어져 등을 돌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양말 안에 몰래 초코바를 숨겨놓고 혼자 먹던 걸 들켰기 때문이다. 물론 정 대리가 말이다.

그때였다. 분명 박 부장이었다. 탕비실 문밖에서부터 박 부장의 어슬렁거리며 샌들을 끄는 특유의 소리가 점차 가깝게 들려왔다. 평소 일할 때에도 질색했던 소리였기에 확실했다. 분명 무언가 눈치를 채고 여기까지 다가온 듯이 보였다. 나는 숨까지 멈추고 소리를 죽였다. 그 순간.

“아이씨, 오이는 빼고요.”

정 대리의 잠꼬대였다. 문밖에 굶주린 좀비가 있는데 잠꼬대라니, 머리라도 한 대 갈기고 싶어질 때쯤 박 부장이 먼저 반응했다.

“크아앙!”

한번 눈치를 챈 좀비는 웬만해선 멈추지 않았다. 박 부장의 계속되는 울부짖음에 응답이라도 하듯 곳곳에서 좀비들이 울부짖었다. 물론 자다 깬 정 대리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먼저 깨어있던 나에게 되려 원망의 눈빛을 보내왔다.

“오 대리님! 이게 어떻게?!”

“내가 묻고 싶다! 잠꼬대가 웬 말이야! 잠꼬대가!”

“냉장고로 문을 막아요!”

그나마 침착해 보이는 남모 씨가 냉장고를 잡아끌며 말했다. 우리는 냉장고를 눕혀 문을 막긴 했지만, 미친 듯이 잡아 흔드는 박 부장의 힘에 문고리가 부서지며 빠져버리고 말았다. 문이 열린 것이다. 정 대리와 나는 문을 막고 있는 냉장고를 밀며 더 이상 열리는 것을 막고자 애를 썼지만, 박 부장은 좀비가 되어 회춘이라도 한 것인지 50대인 주제에 엄청난 힘으로 문틈을 사수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작은 문틈으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끼워 넣었다. 여럿의 피로 얼룩진 얼굴과 새빨갛게 충혈된 눈, 우리를 깨물고자 하는 필사적이고 날카로운 이빨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정 대리는 나보다 그것에 멀리 있었음에도 겁내고 피하느라 냉장고를 제대로 밀지 못하고 있었고, 덕분에 문 틈은 점차 넓어지고 있었다.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 나를 향한 박 부장의 격렬한 턱운동을 보자 일전에 그가 했던 말이 리버브가 잔뜩 끼인 채로 들리는 듯했다.

“오이가 얼마나 맛있는데 이걸 버려? 버려...버려… 오이가 있어야 씹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니까…니까…니까...”

괜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바닥에 버려져있는 오이를 보자 더 그랬다. 그러길래 왜 그렇게 내 오이까지 처먹어서는, 이게 다 무슨 꼴이야, 게다가... 유전적이라잖아!
나는 바닥의 오이를 집어 박 부장의 얼굴에 던지며 외쳤다.

“너 다 처먹어라!”

네 조각의 오이 중 두 조각이 절묘하게도 박 부장의 벌린 입안으로 들어갔다.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 같았지만, 그 순간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탕비실 천장의 한켠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아야 했다.
어디 구석에 숨으러 간 줄 알았던 남모 씨가 어느새 찬장을 밟고 올라가 환풍구로 통하는 천장을 때려 부순 것이었다. 오오! 올해 초 봤던 사주에 북쪽에서 온 귀인을 만날 거라 했는데 이따가 남모 씨가 어디 사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그 순간 잠깐 했다.

정 대리와 내가 남모 씨를 따라 천장의 환풍구로 올라갔을 때였다.

“저기 좀 봐요!”

남모 씨가 가리키는 것은 배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박 부장이었다. 어쩐지 따라오지 않는다 싶었는데 아까부터 상태가 좀 이상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놀랍게도 박 부장은 ‘펑!’하고 터져 죽어버렸다. 그의 파편이 탕비실 사방으로 튀었다. 우리는 도망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껴야 했는데,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박 부장의 파편에서 오이 냄새가 엄청나게 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박 부장은 정말로 오이 때문에 좀비가 되었고, 오이 때문에 폭발한 것이라는걸.

 

이러한 나의 가설을 증명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환풍구를 따라 이동한 다른 방이 다름 아닌 식자재 보관 창고였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먹을 수 있는 채소들이 많았고 물론 오이도 있었다. 그것도 대량의 박스째로.

 

***

며칠 뒤 트위터의 인기 검색어에는 새로운 태그가 하나 올라왔다.

‘#오이로_좀비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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