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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여우의 밤

2020.02.03 22:0202.03

[여우의 밤]

 

그 해 8월은 어느 때보다도 긴 밤들이 이어졌다.

나는 그 밤들의 모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장담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평소의 아늑한 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밤들은 더욱 차가워졌고, 난폭해졌다. 밤의 세계에 들어간 누구도 쉽사리 그곳을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마을에 아이들이 사라졌을 때 주민들은 그 밤이 아이들을 먹어치웠다고 수군거렸다.

"밤의 숲 속엔 괴물들이 살고 있어."

그것은 마을에 내려오는 오랜 미신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죽어간 원혼들이 괴물이 되었다는 소문. 괴물들은 밤마다 주민들을 노렸고, 밤새 돌아오지 않은 부모를 찾아 집을 나선 어느 물정 모르는 아이가 괴물의 먹이가 되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21세기가 되었지만 마을은 그런 곳이었다. 스마트폰이나 아이돌 그룹의 군무가 아닌 어둠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여전히 지배하는 곳.

나를 비롯해 20여 명이 채 되지 않은 이 학교의 고등학생들은 마을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녀석들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다현이가 사라지기 전에, 창밖에서 누가 자신을 쳐다보았대."

정아가 말했다. 정아는 짧은 단발이 잘 어울렸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머리를 길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싹둑 잘라버렸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정아는 의자를 뒤로 쭉 빼서 뒷다리만으로 위태롭게 앉아 까딱거리고 있었다. 뒤로 넘어가지나 않을까 내심 조바심이 났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정석이가 눈을 치켜떴다. 방금 전까지 고개를 책상에 박은 채 시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미동이 없던 녀석이다.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목소리는 중성적인 녀석이다. 녀석은 목소리를 듣고 웃으면 항상 화를 내곤 했다.

"사라지기 하루 전에 나한테 얘기했는데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대. 누가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방엔 아무도 없었어. 그런데 너무 뒷목이 서늘해서 창밖을 봤는데, 번쩍거리는 두 눈이 자길 보고 있었다는 거야."

나는 순간 허공에 떠 있는 노란 두 눈을 상상했다. 창밖에서 먹이를 노려보는 맹금류의 눈.

"그게 무슨 소리야? 다현이가 진짜 그렇게 얘기했다고?"

"맞아. 그런데 그 두 눈이 너무 또렷하고 소름끼쳐서 계속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단 말야."

"꿈꾼 거 아니고? 진짜 그런 얘기를 했다고?"

정석이가 혀를 찼다.

"2년 전 사라진 애들과 관계 있는 걸까?"

나와 정아가 순간 시선을 교환했다.

키다리 선생이 들어와 자율학습 종료를 알린 건 그때였다.

"끝났다. 얼른 들어가라."

키다리 선생의 본명은 김지훈이며, 8명이 수업을 듣는 옆 반 담임에 중등부 부담임이다. 30대 초반이라고만 알고 있으며, 키가 185cm 이상으로 추정된다는 것 외엔 특별히 나와 얘기를 나눠본 적 없는, 제3자의 시선으로는 특징적인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 선생님이다. 현재 중등부 담임이신 황시현 선생님이 신혼여행 중이라 업무가 몰려 있어서 조금 피곤해 보이는 요즘이었다.

"주영아. 넌 잠깐만."

이 선생님이 내게 말을 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동생과 같이 들어가라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내 동생 유성이가 교실 뒷문에 나타났고 나는 짐을 챙겼다. 정아랑 정석이 등 우리 반 녀석들은 모두 나간 뒤였다.

내가 동생에게 말했다.

"가자. 다 챙겼지?"

녀석이 그렇다고 했다. 우리가 나가기 전 지훈 선생님이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이게 뭐죠 선생님?"

선생님은 부적이라고 했다.

"몸조심하고."

나는 그 부적을 뚫어지게 내려다 보았다. 알 수 없는 문양이었다.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별 내색 하지 않았다.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키다리 선생님이 말했다.

"잡귀를 쫓아주는 부적이란다."

그러고 보니 생각났는데 이 선생님, 무당 집 아들이었더랬다.

이젠 자신의 반 학생 하나가 실종된 무당 집 아들이었다.

나는 대충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동생과 교실을 나섰다.

 

학교를 나서 집으로 가려면 강둑을 따라 걸어야 한다. 강둑을 따라 나란히 난 이름모를 풀들이 흔들거리는 모습은 때론 내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왜 심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강과 주위의 여러 생명들이 만들어내는 겨울의 이해할 수 없는 열기. 그 생명체들의 군무는 오히려 내가 그 안에 속할 수 없을 것같은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왜일까. 숨막히는 슬픔의 순간들. 나는 강에 비친 내 모습이 사라지는 순간에야 집에 도착한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오늘도 집에 없었다. 식탁에는 어머니가 차려놓은 도시락이 두 통 놓여 있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보는 광경이다.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아들들. 엄만 일해야 하니, 밥 잘 먹고 치워놓자.' 나는 동생과 같이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간단한 식사 후, 내 방에서 키다리 선생이 준 빨간 문양이 그려진 부적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지러운 곡선과 직선의 교차와 어느 기원을 알 수 없는 고대 문명의 문자처럼 보이는 귀퉁이. 잡귀를 쫓는 부적이라기엔 더러 불온한 모습으로도 보였다.

유성이가 들어와서 그런 내 모습을 보곤 말했다.

"형도 들었어?"

"뭘?"

"다현 누나 이야기."

나도 모르게 근육이 긴장됐다.

"들었어. 너도 뭔가 들었어?"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얘기를 들었는데?"

"다현 누나가 없어진 날 즈음, 동네 사람들이 이상한 걸 봤대."

"이상한 거?"

동생의 말은 그랬다.

그 날은 달이 너무도 기이한 빛을 내뿜는 날이었다. 평상시처럼 창백하던 달이 아닌, 무언가 불경스러우리만치 빨간 달이 대지를 비추고 있었고, 이상한 물체가 밤의 마을을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음에도, 마음 한 켠으로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던 건 아닌가 생각했다. 이 마을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무언가 있었던 것일까?

"형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동생에게 정아에게 들은 인광 얘기를 해주었다. 인광. 새빨간 달을 배경으로 번뜩이는 두 개의 인간의 것이 아닌 눈이라니.

"형은 그걸 믿어?"

모르겠다. 동생이 물어보았지만 난 뭐라고 답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경찰차들이 학교에 와서 몇 명에게 참고인 자격으로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선생님들과 학생들 몇 명이 양호실에서 경찰들의 질문을 받았다. 다현이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질문은 모든 학생과 선생님들에게 던져졌다. 양호실에서 나온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말하길, 수년 전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왜 그걸 묻는 걸까?"

정아가 말했다. 정석이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얘기는 이 마을에서 금지된 이야기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밤이 찾아오면 그 얘기를 꺼내곤 했다. 지금처럼 달이 몽롱한 빛을 뿜는 이 때 마을 아이들 네 명이 사라진 이야기를 말이다. 낮에 잊혀진 금기들은 꿈과 부주의, 그리고 호기심의 힘을 빌어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재생산되었다. 밤에 사라진 아이들은 결국 밤이 되어서야 다시 살아나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밤을 밟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낮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철저히 금지된 세계였다. 그것들을 다시 꺼내 놓는다는 것은 낮의 이면에서 결코 나타나서는 안 될 악몽을 마을 사람들의 생의 한가운데에 던져버리는 짓이었다.

"그 다음은 주영이 너니?"

양호실 문을 닫고 나온 키다리 선생이 내게 말했다. 내가 그렇다고 했다.

"별 건 없단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돼."

"그럴 거라 생각해요, 선생님."

"잘 얘기할 수 있지?"

"그럼요."

"부적은 가지고 있니?"

나는 그를 기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주머니 속 지갑 안에 고이 접어둔 부적을 뒤적거렸다. 키다리가 손을 내저었다.

"굳이 보여주진 않아도 돼."

"선생님?"

"하도 흉흉한 일이 많으니까, 꼭 지니고 다녀."

키다리가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양호실 안으로 들어서자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3개의 하얀 베드 위 시트는 정갈하고 개어져 있었다. 의약품 상자가 선반 위에 있었고, 각종 약품들이 저마다 용도를 밝히며 비치되어 있었다.

"안녕."

눈길을 돌리니 젊은 형사 하나가 있었다. 물 건너 마을 마트 아들인 박종현 형사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박 형사는 나와 나이 터울이 많이 있어 어릴 적 그와 마주했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런 연배 차이였다. 즉, 서로 말은 별로 나눠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다만 마트를 가서 가끔씩 비번 때 어머니를 돕고 있는 그와 눈 인사를 몇 번 한 적은 있다.

"주영이지? 앉아라."

그 역시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박 형사가 콜라를 건넸다.

"마셔. 우리 집에서 가져온 거야."

"감사합니다."

칙, 하는 소리와 함께 탄산이 내 목을 파고 들었다. 긴장감을 느꼈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이런 상황에 나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던 헛헛함이 꺼져가는 탄산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박 형사가 웃었다.

"콜라가 효과가 있어.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던 사람들도 편안해지거든."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어떤 여자들은 저기에 흠뻑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형사, 수완은 인정해줘야겠는걸.

"그럼 이제 궁금한 걸 물어봐도 되겠니?"

"네. 질문하세요 형사님."

"본론으로 바로 넘어갈게. 우린 아는 사이니까."

나는 동의의 고갯짓을 했다. 그가 말했다.

"다현이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니?"

나는 다현이를 보았던 일주일 전으로 돌아갔다.

 

작은 마을의 더 작은 학교는 도시에 비교하면 일찍 마치는 편이었다. 나는 모르지만, 적어도 어른들은 그렇다고 했다. 자율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학습일 뿐, 정규 시간이 끝나는 3시쯤이면 고등학생 19명 중 절반 이상은 귀가하곤 했다. 다현이도 그 중 하나였다. 갈색 웨이브가 잘 어울리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앳된 얼굴의 여고생.

학교는 고등부 두 반, 중등부 두 반, 초등부 한 반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다현이는 내 옆 반인 2반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여러 번 같은 반을 한 적이 있었던 터라 다현이와도 자주 얘기를 나누곤 했다. 어떻게 봐도, 납치나 실종 등의 사건에 연루될 거라 상상하기 힘든 18살이었다. 사건이라는 놈이 표적을 가리지 않겠지만.

다현이는 자율학습 시간에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곤 했다.

가끔 나는 빵이나 이온 음료를 사서 부활동실에 들러 다현이에게 주곤 했다.

"오늘은 무슨 춤이냐?"

"빅뱅"

"뱅뱅뱅?"

"배드보이야."

"걸크러시하구나."

다현이가 피식 웃었다. 나도 웃었다. 다현이는 구김없는 웃음이 매력적인 여자였다.

아마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정말 매력적인 여성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그 날 부활동실에 갔을 때 다현이는 없었다. 다현이와 같이 춤을 추곤 했던 윤수가 다현이가 일찍 들어갔다고 전했다. 나는 가져온 간식거리들을 윤수에게 건네곤 부활동실을 나왔다.

다시 생각해보면 다현이는 분명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옆반과 같이 합동 체육 수업을 할 때도 운동장 한 켠의 의자에 다른 여자애들과 앉아 남자들 쪽을 흘끗 쳐다보기만 했다.

농구공을 몇 번 튕기던 정석이 내게 와서 말했다.

"쟤 좀 힘없어 보이지 않냐?"

"누구?"

"이다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인가 보지."

"너 저 녀석 그 날도 알아? 무슨 관계냐?"

"너보단 친할거야."

정석 녀석이 내게 야유를 보내며 공을 던졌다. 나는 공을 쳐내고는 다현이를 보았다. 다현이는 정아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날 밤 녀석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본 마을 아주머니들이 녀석이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했다.

이다현, 어디 있니?

어떤 보지 못한 어둠이 너를 집어삼킨 걸까?

지금 너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을지, 나로선 알 수가 없네.

 

나는 그 날의 일과 정아가 말한 인광에 대해 박 형사에게 털어놓았다.

박 형사는 눈살을 잠시 찌푸렸지만 곧 표정을 풀었다.

"그 얘기는,"

그도 콜라를 따서 한 잔 입에 털어넣었다.

"나도 들었다. 정아한테. 조금 난처하구나."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나도 보고를 해야 하는 처지이거든. 뭐랄까. 기록으로 남기기 힘든 얘기랄까. 하지만 기록해야겠지."

그가 힘없는 표정을 짓자, 송구스런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어요 형사님."

"왜지?"

"저희 말고 마을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이상한 걸 보신 분들이 몇 분 계시거든요."

"아, 그건 나도 안다. 이미 다 듣고 왔지."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가 고등학생 소년과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는 점에 당황하고 있다는 게 너무도 역력했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 마을은 조금 많이 특이하잖니?"

조금과 많이가 붙어서 이런 독특한 뉘앙스를 줄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 뜻을 완벽히 이해했다. 이 말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이방인일 것이다.

"전... 모르겠어요. 형사님. 다만 다현이의 실종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그런 것이다. 요 며칠 간 정말 알 수없는, 그러면서도 기운이 빠지는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박 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젓더니 바닥을 응시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응시하고는 말했다.

"그게 그런 거 같아. 믿으면 믿을 수록 사실이라고 느끼게 되는 거지. 사람의 뇌는 그런 경향이 있어. 처음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것임을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면 우리 뇌는 어느새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돼. 난, 예전에 한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단다."

박 형사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형사 생활을 하면서 다른 지구대로 파견 근무를 갔다가 보았다는 한 아이 얘기를 해주었다.

여자가 있었다. 쾌활하고 영민한 여자였다. 맵시있는 몸놀림과 웃음은 많은 사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모두가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는 한 남자와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했으며, 아이를 가졌다. 아이 역시 약간은 고집스럽지만 귀여운 여인의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 가족을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가 병에 걸렸다.

아내를 깊이 사랑한 남자는 그녀의 곁을 지키며, 어떻게든 아내를 고치기 위해 힘썼다. 병원을 가고, 약을 먹이고 굿도 해보았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다. 그녀의 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손쓸 도리가 없는 미지의 것이었다. 여자는 사랑한다는 말과 아들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토록 외롭고 서글픈 세상에.

아이가 변한 건 그때부터였다. 아이의 말수가 적어졌다.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내던 아이는 누구보다도 깊고 슬픈 눈매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호의와 선의보다 세상에 더 흔한 것은 악의와 적개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자 아이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처음에 그것은 무늬처럼 보였다. 햇빛이나 광원을 오래 쳐다보면 눈 앞이 어지럽고 그림자 같은 것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점차 커지고 더 빈번해져서 비문증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다. 몸이 안 좋은 것이라고.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 넘겼다. 그러나 계속 커진 무늬는 마침내 아이의 시야 한가득히 차지해버렸다. 아이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울었다.

어느날, 무늬가 아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무늬는 아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무늬가 속삭였다. '너의 비밀을 말해주렴.' 그리곤 아이를 유혹했다. '아이야 나를 너의 집으로 초대해주지 않으련?"

아이는 무늬를 자신밖에 보지 못함을 알았다. 아이는 깨달았다.

인간이 아닌 것들이 아이의 눈에 보이게 된 것이다.

박 형사는 기침을 했다.

"그 아이한테 세상에 그런 건 없다고 모두 얘기했지만, 아이는 믿지 않았어. 어느 순간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거야."

이상한 기분이었다. 몸 곳곳이 간지러운 느낌. 내 표정을 읽은 박 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나."

그가 웃으며, 들고 있던 수첩을 덮었다.

"조사는 이 정도면 된 것 같구나. 나가봐라."

나는 잠시 무슨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문고리를 잡았을 때 박형사가 말했다.

"주영아. 혹시 '아이들'을 본 적 있니?"

"네?"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가 조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아이들'을 본 적 있냐는 말이었어."

내 몸 곳곳의 근육이 경직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형사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박 형사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누가 봤다더구나."

 

"학교 끝나면,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바로 집으로 귀가하고, 절대 으슥한 곳으로는 가지 말 것."

전유라 선생님이 말했다. 키는 작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그녀는 우리 반 담임이다. 나는 정아랑 정석이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보았다. 뭘 꾸미고 있는 거야, 저 놈들은?

"마을 어른들 분위기 잘 알 거야.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 마을에 고3이 하나도 없는 게 참 다행이라 생각해. 이런 분위기에서 시험 준비가 되겠니? 어쨌든 되도록 짝을 지어서 귀가하도록 하고. 뭔가 위험해보이거나 수상한 걸 보면 절대 가까이 가지 말고 경찰이나 어른들을 불러야 해. 알겠지?"

정말 위험한 걸 보았을 때 경찰을 부를 시간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매우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누군가 '아이들'을 봤다고 했다는 얘기 들었어?"

정아가 속삭였다. 다현이가 사라져 침울해하고 있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정석이가 정아에게 핀잔을 줬다.

"헛소리겠지."

정석이 헉, 하고 숨을 삼키는 건 정아가 눈을 부라려서만은 아닐 것이다. 것보다는 정아가 녀석의 발을 밟아서인 것 같다.

"그거 버섯 캐러 갔던 영준 아저씨가 본 거래."

영준 아저씨는 버섯 사냥꾼이 별명인 독지가다. 마을 대부분의 땅이 예전에는 아재의 아버지 땅이었고, 그 땅들을 주민들에게 헐값에 넘기고 지금은 땅을 판 돈으로 주택 세 채와 숲 속 산장을 마련하여 걱정 없이 살아가는 남부러운 인생이었다. 그러니까 마을 어른들이 하는 말들을 빌리자면 말이다. 어른들은 영준 아재와 돌아가신 아재의 아버님을 존경했다.

영준 아재가 헛소리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

정아가 말했다.

"숲에 가보자."

정석이가 정색했다.

"거길 왜 가? 미쳤어?"

"너 가기 싫어?"

"아니, 굳이 가봐야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래? 괜한 짓 하지 말자는 거야. 거기를 가는 건 미친 짓이라고. 젠장."

정아가 정석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 무섭지?"

"무서워? 무섭냐고? 그래, 무서워 오줌 지릴 거 같다. 벌써 잊었어? 건망증이 지나친 거 아냐? 그때 그 꼴을 보고서도 가겠다고?"

정석이는 분명 화가난 것 같다. 녀석의 마음이 너무 잘 이해되었다. 아이러니한 마음이다.

정아가 내게 물었다.

"주영아. 넌 갈 거지?"

정아가 날 무척이나 신뢰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거북해서 눈길을 돌렸다. 잠시 빽뺵하게 서 있는 나무와 바위들을 생각했다. 정아의 얼굴을 보았을 때, 녀석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숲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사라진 2년 동안.

그 자리를 목격한 게 우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정석이는 나와 정아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평소보다 한층 더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너 정말 겁먹었구나. 평상시라면 놀려줬을 텐데 녀석이 너무 기죽어서 그러진 않았다.

전유라 선생님의 말이 끝나고, 다들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마을 북쪽 아스팔트 길이 끝나는 시점부터 시작되며 크게 감싸고 도는 형태의 숲은 활엽수와 침엽수가 어지러이 섞여 있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이토록 울창하고 깊은 삼림이 있다는 건 학생인 내 눈에도 참 놀랍게 보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숲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숲은 항상 그곳에 우뚝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더 깊은 자신의 치부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그 치부를 본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영준 아재처럼 버섯이나 숲의 비밀에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숲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밤이면 오래된 나무들은 음울한 속삭임을 바람에 실어보냈고, 그 뿌리를 지구 깊숙이 뻗어나갔다. 아주 오래전부터 숲은 전쟁터의 원혼이 떠도는 곳이었으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2년 전, 4명의 아이들이 사라진 곳이기도 했다.

우리는 숲의 입구에서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집에서 교복을 갈아입고 남방과 티셔츠, 반바지로 갈아입고 온 터였다.

내가 유성이한테 말했다.

"그런데 넌 왜 여기 있냐?"

"형이 가잖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석이가 집에서 몰래 가져온 아버지의 알루미늄 방망이를 휙휙 휘둘렀다. 그러곤 뭔가 안심되는 표정을 짓는 게 너무 웃겼다.

정아가 우리를 슥 둘러보더니, 젠체했다.

"난 괜찮은데, 다들 문제없지?"

아무래도 정아 자신의 의도대로 말이 나오진 않은 듯하다. 목소리가 갈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입구를 가리켰다.

"되게 어둡긴 하다."

철문 안쪽으로 우거진 숲길로는 빛이 많이 비추지 않았다.

지금 시간은 5시 반이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친구들."

정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전등을 들었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후레쉬는 들어가서 켜자."

"왜?"

"배터리 아껴야지."

정석이가 아, 하며 탄식을 질렀고 정아가 쯧, 하며 눈을 흘겼다. 나는 철문을 보고는 지갑 속 부적을 만졌다.

이윽고 우리는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2.

 

2년 전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미친 듯한 습기와 열기가 마을을 덮쳤고 모든 사물에 녹아들었다. 무겁고 끈적거리는 공기에 사고가 정지해버리는 여름.

그 날, 난 숲 초입의 계곡에서 친구들과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낮에는 물 속에서 몸을 식히고, 저녁이 되어서 가지고 온 냄비에 라면과 스팸 등을 넣고 끓여 먹고 있었다.

"무슨 소리 안 들리냐?"

정석이가 말했고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다현이가 눈을 번쩍 떴다.

"무슨 소리?"

"쉿, 들어봐."

우리 모두 숨을 죽였다. 계곡 주변의 숲의 공기가 변한 것은 그때였다.

짧은 비명 소리와 다급한 발소리.

그리고 이상한 바람 소리.

그 다음은 고요가 찾아왔다.

우리 중 아무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아가 소리쳤다.

"저기!"

숲속에서 엉망진창의 몰골을 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다현이가 비명을 질렀다. "으악!" 그러나 그 소리는 정석이 녀석이 더 크게 외쳐대서 잘 들리지 않았다. "...이게 뭐야!" 우리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에서 구르거나, 뒤로 펄쩍 뛰었다.

"....어졌어."

우리들이 서로 정신 못차리고 호들갑을 떠는 걸 보면서도 여자가 처연하게 말했다.

"다 사라져버렸어.."

나는 그 난리 중에서도 간신히 그 말을 알아들었다.

"잠깐만......."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유현 선생님?"

분명히 초등부 이유현 선생님이었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상의로 입고 있는 야상 자켓이 어지럽게 찢어진 채 왼쪽 손에서 피를 뿜고 있긴 했지만 이유현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왼쪽 손의 네 번째 손가락이 없었다. 선혈이 그곳에서 계속 흐르고 있었다.

"세상에.......!"

정아가 두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선생님이 앞으로 무너졌다. 우리는 계곡에 엎드리고 쓰러진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야 했다. 내가 다현이에게 말했다.

"다현아, 얼른 내려가서 어른들 불러와."

이다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덜덜 떨면서 계곡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정석이가 집에서 가져온 본인의 아버지의 캠핑용 의자를 가져왔다. 남은 우리 세 명은 선생님을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혔다. 그녀는 아기처럼 가만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지금 피를 많이 흘리신 듯 해요. 정신 놓지 마셔야 해요."

선생님의 동공이 풀렸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아랑곳 없었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분명 아이들이랑 같이 걷고 있었어......."

"혼자가 아니셨어요?"

나는 짐 속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마땅한 약은 없었지만 일단 이런 상황에서 지혈하고 붕대라도 감아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땅히 지혈할 게 없어서 하나밖에 없는 붕대를 꺼내 선생님의 손에 가져다댔다.

선생님이 나를 보았다.

그렇게 절망적인 눈은 지금도 본 적이 없다.

"숲을 걸었어. 그냥 숲을 걸었는데....... 길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녀가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상반신을 휘적휘적 움직였다.

"누군가 말을 걸었어.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분명 아이들이랑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들이 내 아이들을 앗아가 버렸어."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알기 힘든 말만 지껄였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말했어. 내 손가락은 숲을 들어온 대가이고, 아이들의 생명은 이 숲을 나가기 위한 값이라고......."

 

내가 기억하기로, 우리 학교 초등부에 변변한 보이 스카우트는 없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다양한 야외활동을 강조하는 편이었고, 초등부 담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마을 주변의 숲과 계곡을 다니곤 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진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후 이 숲과 계곡은, 특히 밤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금단의 영역이 되었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유현 선생님의 말을 믿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숲에 들어갔던 주민들 중 이상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늘면서, 모든 사람들이 그 숲을 꺼리게 되었다.

한 달 뒤 숲을 방문했던 아랫마을 이불 가게 용현이네 가족은 행방불명 되었다가, 삼 일이 지나서야 삼림 순찰조들에 발견되었다. 용현이네 어머니는 혼자서 하늘을 보며 자리에 앉아 알 수 없는 말들을 뇌까리고 있었고, 아버지는 손톱이 부러질 때까지 땅을 파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렸지만 용현이 아버지인 덕수 아저씨는 '그놈들을 모두 묻어 버려야 된단 말이야.' 라는 말만 지껄여댔다.

용현이와 여동생은 웅크리고 앉아 있었는데 죽은 새끼 노루 한 마리의 시체를 파먹고 있었다.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이 충격적인 사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군가는 숲에 귀신이 들렸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무당을 부르려면 타지까지 가야 했다. 마을의 내림신을 계승한 무당이었던 키다리 선생님의 아버지인 시도 아저씨도 돌아가신 지 몇 년 되었고, 키다리 선생님은 전문적인 무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스레 마을 사람들은 밤의 숲과 그 근처에 절대 아이들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으며, 본인들도 낮의 숲에만 어쩔 수 없을 때에만 가곤 했다. 숲지기들과 삼림 순찰대에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숲을 조금이라도 강단있게 휘젓고 다니는 사람은 영준 아저씨 외엔 전무했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낮의 숲에서 이상한 속삭임을 들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 속삭임은 숲의 더욱 깊숙한 부분으로 들어오라고 사람들을 꼬드겼으며, 그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도 계속 한 방향으로 숲을 돌게 된다고 한다.

숲지기들이 자살한 이유현 선생님을 숲의 입구에서 발견한 건 다음해 여름이었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마치 한 달 전 죽은 사람처럼 시체가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의 숲에는 알 수 없는 어둠이 깃들어 버렸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녹아들었다. 그런 모습으로 숲은 우리의 일상에 자리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돌아와 그 숲에 들어와 있다.

숲을 들어가 걸으면서 풍경이 바뀌었다. 잠시 후 우리는 그것이 색조가 바뀐 것임을 알아차렸다. 불길한 색조였다. 숲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밝은 빛깔을 띄던 사물과 나무들이 우중충하고 어두운 색조를 띄고 있었다.

정석이가 가장 앞에 서고 그 뒤를 내가, 다음이 정아와 유성이가 따랐다. 중간 중간 나와 정석이가 자리를 바꾸었다. 그럴 땐 정석이 야구 방망이를 내가 들었다. 정석이는 이미 손전등을 켠 상태였다. 고등학생 세 명과 중학생 한 명. 유사시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거라곤 야구 방망이 한 개.

이건 미친 짓이다.

벌써부터 후회가 밀려오는 듯했다. 그날 본 것은 야구 방망이 한 개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우리들 스스로가 너무 잘 알았다. 우리가 본 것은 학생들의 말랑말랑한 상상력으로는 알 수 없는 어둠의 모습이었다.

숲은 기분 나쁘리만치 조용했다. 마치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온 먹이들을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어서와. 찾아가기도 전에 스스로 찾아 왔구나.'

나는 박 형사가 이야기했던 아이의 눈에 보인 무늬를 곳곳에서 발견했다. 숲의 짐승 같은 공기 곳곳에 무늬가 녹아 있었다. 방망이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 생각에 늦어도 8시 전에는 이 숲을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형."

유성이가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동생을 괜히 데리고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에서 2시간 반. 그 정도가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일 것이다. 그 이후 시간이 넘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들 둘이 모두 실종되면 어머니는 충격에 빠지시겠지.

우리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이 숲은 태백산맥의 등줄기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계속 걸으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을 볼 수 있으리라. 지나가다가 한 번씩 정아가 아버지 창고에서 가져온 파란색 락카로 표시를 했다. 파란색 표시가 있는 나무는 우리가 이미 이곳에 왔었다는 걸 뜻했다.

그렇게 계속 걷던 우리 앞의 숲이 어느 순간부터 어두워졌다. 그리고 나무들의 높이가 듬성듬성해졌다.

내가 말했을 때, 목이 너무 심하게 갈라져 있어 나도 놀랄 지경이었다.

"지금이 몇 시지?"

정석이가 시계를 보았다.

"6시."

정아가 어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말도 안 돼.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정석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이렇게 오랫동안, 깊이 걸었는데 그 정도 시간밖에 지났을 리가 없었다. 동생이 시계를 보았다.

"이상해. 내 시계는 멈췄어."

나는 내 핸드폰을 급하게 꺼내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시간이 이상하게 떠."

시계에는 '00:00'만 표시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시계가 모두 망가진 걸까?"

정아의 목소리에 초조함과 두려움이 배어나왔다.

"아니, 한 명의 시계가 망가진 거라면 몰라도, 스마트폰 시계와 일반 손목 시계까지 한꺼번에 망가질 리 없잖아.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야."

"잠깐, 뭐지? 형, 여기 아까 왔던 곳 아냐?"

유성이가 말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나무에 칠해져 있는 파란색 락카 표시가 보였다. 우리가 다시 돌아왔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한 방향으로만 걸었다. 그럴 리가 없다.

"잠깐!"

정아가 외쳤다.

"무슨 일이야?"

"내 가방이 없어."

"뭐?"

"내가 메고 있던 가방이 없어졌어."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정아가 메고 있던 캉골 백팩이 어느 순간부터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정석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디다 두고 깜빡 잊어버린 거 아냐?"

"아냐, 절대 그렇지 않아.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메고 있었다고."

"윤정아, 이런 상황에 장난치지 마!"

정석이가 소리쳤다. 녀석은 조금씩 당황하고 있었다. 녀석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는 게 평상시완 달리 전혀 즐겁지 않았다.

"장난 아니야! 누가 장난으로 이런 짓을 해?"

정아가 소리 질렀다.

"잠깐만, 형, 누나. 저게 뭐지?"

동생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우리는 유성이가 손가락을 들어 지목한 곳을 보았다. 나무들 사이에 줄기가 어지러이 얽힌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정아의 백팩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아래를 보니 내용물은 모두 쏟아져 잎사귀들이 깔린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정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제기랄, 누가 이런 장난질을 친 거야!"

정석이 녀석이 악을 썼다. 장난? 그래, 질 나쁜 장난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그건 사람의 장난질이 아니었다. 난 그때 깨달았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어."

"뭐?"

"이 숲에 들어올 때부터, 누군가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어. 아니, 그건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짐승인지 사람인지, 혹은 완전히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것들이 있어."

"'것들'이라니?"

정아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다란 가지를 찾았다. 가지 두어개를 엮어서 가지고 온 끈으로 묶었다. 그리고는 정아의 백팩을 가지로 쑤시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정신을 찾았다. 황망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던 녀석들은 유성이가 허공으로 돌을 던져 백팩을 맞추자 정신을 차렸다. 녀석들이 와서 비슷한 식으로 가지를 만들어 백팩을 쑤시거나 돌을 던졌고, 몇 분 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돌에 맞은 백팩이 떨어졌다.

정아는 자신의 백팩을 들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저주스런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건 뭐지?"

정아가 자신의 백팩 안에서 노트를 꺼냈다. 정석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 노트잖냐?"

일반적인 노트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정아가 잠시 숨을 멈추더니 내뱉듯이 말했다.

"이건 내 물건이 아냐."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정아가 노트를 내밀었다.

"봐."

바랜 노트 표지에 소유자의 이름이 삐뚤빼뚤 쓰여 있었다. '초등부 5학년 박동희.'

동희는 2년 전 사라진 아이 중 하나였다.

 

그 후로 우리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했지만 도무지 현재 상황에 대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토론은 꽤 오래갔다. 하지만 이렇게 끝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까지 숲에 왔던 것보다 훨씬 깊이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목적이 있었다.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이제는 시간을 알기도 힘들었다. 체감상 이미 우리가 이 숲을 나가기로 한 8시는 넘은 것 같았으나, 구체적인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빽빽한 나무들은 빛을 차단했고, 저마다의 침울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듯했다.

중간에 바위가 나타나 오르던 중이었다.

...의 이름은.......

"뭐라고?"

갑자기 정석이가 물었다. 정아가 놀라 녀석을 쳐다봤다.

"뭐?"

정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았어?"

"아니, 안 그랬는데.......?"

"그래?"

녀석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정석이는 어깨를 으쓱거렸고,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시 얼마를 걷다가 정석이 녀석이 정아의 어깨를 잡았다.

"윤정아. 너 자꾸 뭐라고 하는 거야?"

"왜 이래?"

정아가 화를 냈다. 유성이는 둘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당혹스러워했다.

내가 정아에게 물었다.

"정아야. 너 정석이한테 뭐라고 말했어?"

정아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안 그랬어. 갑자기 혼자서 이상한 소리하고 있어, 진짜."

정아가 손에 들고 있던 정석이의 손전등으로 우리를 비추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얘기한 거 아냐?"

나도 캠핑용 라이트를 높이 들었다.

돌풍이 불었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내 손을 쳤고 라이트가 파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꺄악!" 정아도 손전등을 놓쳤고, 땅에 떨어진 손전등이 꺼져 버렸다. "잠깐, 이게 뭐...!" 정석이가 비명을 질렀고, 유성이가 날 불렀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무언가다 다다다, 달리는 소리가 나더니, 친구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다들 어디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유성이가 내 손을 잡았다.

그러기를 수 분, 이윽고 바람이 멈췄고 소리도 사라졌다.

잠시 후, 나는 땅에 떨어진 손전등을 주웠다. 몸을 일으켜서 손전등으로 친구들을 비추었다.

"다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응. 아 정말....... 주영이 너도 괜찮아?"

"난 괜찮아."

그 순간, 나는 우리들이 '다섯 명'인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 옆에 아이가 하나 서서 정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아가 비명을 질렀다. 정석이가 깜짝 놀라 방망이를 들어올렸다.

손전등 빛이 또 꺼졌다. 그리곤 몇 초 뒤 바로 켜졌다.

정석이는 멍한 표정으로 방망이를 들어올린 채였다.

정아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았다.

"아이가 있었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 아이였어."

난 그 아이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양갈래 머리의 푸른색 원피스.

그 날, 사라진 아이 중 하나. 노트의 주인. 박동희 양.

동생도 아이가 누군지 알아챈 모양이다. 정석이는 방망이가 땅에 떨어진 것도 모르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밤의 숲이 부리는 기묘한 이야기 속으로 끌려들어온 것을.

정아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우리 또 돌아와 버렸어."

나무들에 락카가 칠해져 있었다.

 

잠시 후, 정석이가 말했다.

"돌아가자, 얘들아."

"정석아."

"우리 정말 잘못 생각한 거 같다 주영아.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돼. 여기 누군가가 있어. 무언가가 우리 주위를 계속 배회하고 있는 것 같아."

정아가 입을 깨물었다.

숲은 이미 어두웠고, 지금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손전등 빛 말고는 없었다. 방향감각을 잃은지 오래였다.

무엇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난 불현듯 다현이를 생각했다.

빅뱅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던 이다현. 항상 뒷자리에서 잠만 자다가 점심시간에 행복한 얼굴로 도시락을 펼치던 이다현.

이다현, 사라진 친구. 이 알 수 없는 귀신들의 숲 속에서 아직도 혼자 헤매고 있는 건 아니니?

혼자가 아니라면?

...유성.

나는 움찔했다.

"누가 내 동생 불렀어?"

모두 날 바라볼 뿐 반응하지 않았다. 그 무반응이 더 무서웠다.

정석이가 간절하게 말했다.

"우린 지금 이 숲에 들어온 지 고작 몇시간 만에 이상해지고 있어, 주영아. 제발 나가자. 난 더 이상은 여기 못 있겠어."

나는 친구들의 얼굴에서 같은 감정들을 느꼈다. 공포와 피로감. 아까부터 정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게 간신히 자신의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래, 얼른 여기를 뜨자."

다현아, 미안해.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직 손전등 불빛 하나만 의지해서. 내가 방망이를 들었고, 정석이가 손전등을 들었다. 그 빛이 제발 숲의 입구를 다시 거슬러 찾아가기를 바랐다.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던가.

밤공기가 너무도 차갑고 맑았다. 우리의 다급한 마음과 맞지 않게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누군가가 부르는 듯한 소리를 계속해서 들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에 응답하지 않았다. 숲이 만들어내는 환상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와 노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동생이 내 손을 꽉 쥐는 게 느껴졌다. 몸에서 땀이 계속 났다. 바짓단 한 쪽이 수풀에 걸려 찢어졌다. 정아는 어디선가 머리끈이 끊어져 머리가 풀어져 있었다. 한밤중의 필사적인 도주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속도가 붙지 않은 느낌이었다. 계속해서 한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의 뒤를 쫓고 있음을 알았다. "형." 유성이가 속삭였지만 난 본능적으로 그것이 위험한 존재임을 느꼈다. "돌아보면 안 돼, 유성아. 앞만 보고 계속 가." 정석이와 정아도 그 존재를 느낀 듯하다. 녀석들도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뒤를 절대 돌아봐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뒤를 쫓는 존재는 그렇게 빠르게 우리를 따라오지 않았다. 움직임도 매우 느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음에도, 그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중간에 정아가 흐느낌과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얘들아......." 정석이가 지친 정아의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끌었다.

이상한 도주였다. 도주하는 쪽은 분명 필사적이었고 쫓아오는 쪽은 느린데, 그 거리가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죽기살기로 달리고 있었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불가해한 존재를 피해.

오, 제발.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우리를 뒤따라오는 존재는 온 몸이 푸르게 빛났다.

번쩍거리는 인광.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다.

놈이었다. 다현이가 본 인광의 정체. 다현이가 없어지기 직전에 창밖으로 목격한 존재.

놈은 한쪽 손에 무언가를 높이 치켜든 채로 인간처럼 두 발로 걷고 있었다.

저걸로 우릴 죽이려는 거야.

내리치고, 찢고 난도질하려는 것이다.

정아가 울고 있었고, 정석이 녀석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가 외쳤다.

"포기하지 말고 뛰어!"

그 존재가 어느새 우리 뒤까지 다가왔음을 알았다. "형!" 놈이 유성이를 향해 팔을 뻗으려 했다. 나는 그 순간 귀신의 형체를 똑똑히 보았다. 사람과 비슷한 실루엣이었지만, 희끄무레하고 푸르른 인광으로 이루어진 초자연적인 존재를. 놈이 손에 들고 있는 건 도끼였다.

귀신이 유성이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려 했다. 내가 온힘을 다해 그 사이로 끼어들며 유성이를 감쌌다.

"안 돼!"

순간적으로 빛이 번득였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가라!" 정석이와 정아가 고꾸라지는 모습이 보였고, 도끼를 든 존재가 휘청거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사이에 하얀 물체가 네 발로 뛰어다녔고, 잠시 후 도끼를 든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둠.

 

눈을 떴을 때, 나는 키다리 선생님, 즉 고등부 2반 부담임인 김지훈 선생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괜찮니?"

그가 손을 내밀었고, 난 멍하니 그 손을 보다가 말했다.

"선생님?"

"그래. 나다. 위험한 짓을 했구나."

나는 키다리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도 다들 아무런 이상 없이 앉아 있었다.

"이게 대체.......?"

키다리가 씩 웃고는 말했다.

"밤의 숲에 들어오는 건 매우 위험하다. 목숨을 걸어도 모자라지. 일단 먼저 그 말부터 해줘야겠구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우물쭈물거리고 있자니, 키다리가 말했다.

"부적을 꺼내라."

"네?"

"내가 준 부적 말이다."

난 퍼뜩 정신을 차렸다. 뒷주머니를 뒤적거려서 지갑을 꺼내 펼쳤다.

검은 잿가루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키다리가 말했다.

"왠지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 부적을 주기 잘했구나. 하지만 이토록 강력한 귀(鬼)들이 숲을 떠돌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 방에 가루가 되다니."

그가 혀를 찼다. 나는 그때서야 키다리가 왜 내게 부적을 준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정석이가 말했다.

"선생님은 여기서 뭘 하시고 계시는 거죠?"

정아도 두려움 속에서도 궁금했는지 눈을 치켜떴다. 키다리가 정석이를 바라보자 녀석이 움찔거렸다.

"보다시피, 내 일을 하고 있단다. 난 무당이거든."

정확히는 무당의 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정아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무당이 되기로 하신 거예요? 내림신을 받으신 거예요?"

키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의식이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지금도 시간을 내서 내림신들을 받고 있는 중이란다. 물론 아직은 마을엔 비밀이다?"

키다리 선생이 한쪽 눈을 윙크했다.

우리들은 밤의 키다리 선생의 다른 모습을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가업도 계승했으며, 마을 대대로 내려오던 내림신을 받기로 했다고 방금 말한 것이다.

"그런데 너흰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그가 물었다. 내가 어깨를 움츠렸다.

"그게..."

"그게?"

내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정아가 말했다.

"저흰 다현이를 찾으러 왔어요."

그 말을 듣자 키다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아가 말했다.

"다현이는 선생님 학생이잖아요."

"그렇단다."

"저희 친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기가 귀신들린 숲인 건 알지만....... 그래도 우리가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준 아재가 이곳에서 2년 전에 사라진 아이들을 봤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정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무당, 그리고 마을의 어른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해봤자 우리를 혼내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크게 다르게 생각하진 않았다. 유성이도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나도 그 얘기를 들어서, 이 숲에 왔던 거다."

키다리가 말했다. 정석이가 외쳤다.

"정말요?"

"너희들이 원한 것처럼, 나도 다현이를 찾고 싶다. 다만, 최근의 숲은 너희들이 오기엔 좀 위험한 장소라고밖에 말할 수 없겠네. 음기가 예전보다 무척이나 강해졌거든. 이미 너희들도 겪은 듯 하지만 여기서 헤매다가는 그 기운에 딱 빨려들기 쉽다."

선생이 날카롭게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니 얼른 들어가라."

우리는 주눅이 들어,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나는 퍼뜩 뭔가 생각이 떠올랐다.

"선생님."

키다리가 날 바라봤다.

"혹시 아까 그 네 발 달린 흰 물체는 선생님이 부리는 사역귀인가요?"

키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도 비밀이다. 아직 완성되지 못해서. 남들이 알면 알 수록 부정을 타고 안 좋은 영향이 내게 미친다. 알겠지?"

우리는 알겠다고 했다. 키다리는 숲의 입구 방향을 알려주었고, 그쪽으로 조금 걷자 입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빛도 함께.

그 흰 짐승,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어디서 본 건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숲을 나가서 시계를 보니 저녁 6시였다.

숲에서 그 수난을 당했는데 고작 30분이 지난 것이었다. 우리는 황망한 얼굴을 한 채 서로를 보았다.

우리의 모험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3.

 

다음날이 되었을 때, 정석이가 사라졌다.

처음엔 녀석이 어디 아픈 줄 알았다. 그러나 전유라 선생님이 들어와서, 아침에 일어나서 정석이 어머님이 방문을 열었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다. 증발해버린 것처럼. 정아 쪽을 보자 시체같은 얼굴을 한 녀석의 표정이 보였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던가.

마을 사람들이 쑥덕였다. 사람들은 분명 정석이가 숲으로 사라진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 소문과 두려움의 화려한 합주곡.

나와 정아는 김지훈 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는 인상을 쓰고 교재들을 펴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어이가 없었다.

"정석이가 사라졌어요 선생님!"

"안다."

정아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세요? 그 날 이후 정석이가 사라졌는데. 분명 그 숲으로 사라진 거예요."

"그래 맞다."

"네?"

"그 숲으로 사라진 거 맞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키다리가 우리를 흘끔 보았다.

"도와주세요 선생님."

내가 애처롭게 말했다.

"선생님은 무당이시잖아요."

키다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낮고 빠르게 말했다.

"여기서 그런 얘기 하지 마라! 부정을 타게 되면 내 힘도 빼앗겨 버리게 된다! 아직은 그렇게 얘기해선 안 돼."

우리가 움찔하자 키다리가 표정을 부드럽게 바꿨다.

"미안하다. 하지만 그 얘기는 남들 앞에선 조심해라."

그러더니 그는 교재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선생님 이건?"

그건 교재가 아니었다.

어지럽게 그려진 문양과 주술진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었다.

"정석이가 어디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어. 그 때 나를 도와주렴."

정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는 그러겠다고 했다.

키다리가 말했다.

"특히 주영아. 너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단다."

그가 눈을 찡긋했다.

 

집에 돌아오니, 식탁에는 언제나와 같이 도시락이 차려져 있었고, 어머니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유성이는 먼저 식사를 한 뒤였다. 동생은 숲에서의 일을 겪은 뒤 부쩍 말수가 줄어들었고 잠만 자는 일이 많아졌다. 동생을 숲으로 데리고 간 것이 점점 후회스러웠다. 나는 동생에게 주려고 탔던 꿀물을 냉장고에 넣어놓고는 동생의 책상 위에 일어나면 꿀물을 마시라는 쪽지를 남겨놓았다.

그날도 일이 많았던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12시까지 가디리던 나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소파에서 문득 잠이 들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숲을 걷고 있었다. 달이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사라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거기엔 동희도 있었다. 동희가 나를 보고 웃으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문득 나는 동희가 누군가를 닮은 것을 알았다. 동희와 사라진 아이들이 천진하게 웃으며 앞서 나갔다. 밤의 아이들. 나는 어둠의 일부가 된 아이들을 따라갔다. 숲에 앉아 있던 갖가지 귀신들이 나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아이들이 나를 안내한 곳에 다다르니, 어느 순간 내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숲이 사라지고 나는 어느새 학교에 와 있었다.

나는 밤의 학교를 처음 보았다. 온갖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그곳. 1층의 초등부 쪽 교실들에는 외눈의 외팔이 귀신들이 모여 서로 인간의 어느 부위가 맛있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2층에는 물에서 죽은 귀신들이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3층에는 짐승의 형태를 한 네 발 귀신들이 어지러이 뛰어다녔다.

아이는 나를 고등부로 안내했다. 올라가면서 귀신들이 우리 뒤를 밟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왠지 모르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이 나를 해코지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동희와 아이들이 안내한 곳은 우리 반이었다.

내가 문고리를 잡자 아이들은 씩 웃고는 저마다 알 수 없는 얘기를 나누고는 사라졌다.

...의 이름은........

교실 문을 열자, 한가운데 웅크리고 앉아 있는 정석이가 보였다.

'주영아.'

녀석이 몸을 일으켜 나를 본다. 그가 손을 내민다. 너무도 축축하고 창백한 손을.

'주영아.'

 

며칠 간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무성했다.

혼자 남아 자율학습을 하던 2반의 수진이가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쳐다보던 사람이 마치 정석이 같았다는 것이다.

나는 정아에게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했다. 국사 시간이었다. 정아가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밤에 우리 반에 왔었다고? 그 안에 뭐가 있었던 거야?"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 뭔가 있었어. 만약 그 안에 있던 게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정아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그게 정석이나 다현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야?"

"아니면, 그 아이들이 자신들이 이곳에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거일 수도 있지."

"하지만, 주영아."

정아가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잖아. 뭔가 이상한 게 보이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낮과 밤의 학교는 달라. 완전히 다른 장소로 변한다고. 나는 봤어. 수많은 귀신들이 이 학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정아가 부르르 떨었다.

"너까지 올 필요는 없어. 그렇지만 난 밤에 다시 학교를 올 거야."

정아는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녀석은 곧 한숨을 쉬었다.

"같이 가자."

난 정말로 녀석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고맙다 정말."

"아냐. 나도 가야해. 다현이랑 정석이를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그 세계에 두고 싶진 않아. 그런데 그럼, 지훈 선생님한테는 얘기할 거야?"

나는 고민했다.

"그래야겠지? 그 사람 말고는 아무도 떠오르지 않아."

나는 키다리가 부리는 하얀 빛을 발하는 네 발 짐승을 떠올렸다.

 

김지훈 선생, 그러니까 키다리 선생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표정이 밝아지기가 무섭게 그가 덧붙였다.

"단, 박 형사도 같이 간다."

"네?"

정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 형사님도요?"

"그렇게 말했는데."

"그 분도 무당이에요?"

키다리가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웃었다. 그는 몸까지 들썩거리며 웃더니 눈물을 흘렸다.

"재밌구나. 당연히 아니지."

"그런데 왜 같이 가야 하는 거죠?"

키다리가 손뼉을 탁 쳤다.

"벌써 잊었나 보구나. 내가 선생님이란 걸. 귀신 말고 그 외의 잡것들로 인해 또다시 학생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학부모들을 어떻게 보겠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그렇게 돼버렸다.

 

키다리는 10시 반에 학교 앞에서 모이자고 했다. 자시(子時, 11시 ~ 1시)에 하늘이 열리고 음의 기운이 열리기 때문에 신과 귀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게 되는 시간이란다.

손전등, 라이터, 집구석에 굴러다니던 성경책, 염주 등을 챙겼다. 집을 나서려고 방에서 나오자 현관에 서 있는 유성이가 보였다.

"어디 가, 형?"

녀석이 물었다.

"유성아, 형 정석이 형 찾으러 갈 거야."

"학교에 가는구나?"

"맞아. 너도 들었니? 밤에 2반 수진이가 정석이를 봤대."

"알아. 나도 들었어."

유성이의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쉬고 있어. 유성아. 꿀물 꼭 마시고. 정석이 형 데리고 올게."

나는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가려던 찰나, 동생이 나를 불렀다.

"형."

"응?"

"조심해."

"걱정마."

내가 웃자 동생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야. 김지훈 선생님, 그 사람을 조심해."

 

정아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별다른 짐 없이 나타났다. 죽도 하나만 달랑 들고 있었다.

"어차피 이 죽도가 소용없으면 나도 죽은 거야."

10시 40분에 키다리가 박 형사와 함께 나타났다.

박 형사가 아는척했다.

"다시 보는구나."

나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키다리는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다들 준비 됐니?"

그랬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제 곧 자시가 되면 들어간다."

박종현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에도 본 적 없는 긴장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뭘 기다리는 거죠, 선생님?"

"네가 본 거."

정아가 날 보았다. 내가 본 거? 아이들?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이제 곧 낮에는 볼 수 없는 모든 종류의 밤의 주민들이 여기서 뛰어놀 것이다. 진귀한 장면이 되겠지."

키다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왜 하필, 학교일까요?"

"뭐?"

모두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왜 하필 이곳으로 귀신들이 우리를 안내한 걸까요?"

아이들이, 혹은 저 너머의 존재들이. 키다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밤의 주민들은, 사람들의 활기와 꿈을 먹고 사는 존재들이다. 여기보다 많은 꿈과 활기를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

다현이와 정석이는 꿈을 먹히고 난 뒤, 저 너머로 넘어간 것일까?

자시가 되었다.

 

"아이들이예요!"

정아가 숨막히는 목소리로 외쳤다.

키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멀리, 그들이 보인다.

사라진 아이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어했던, 그러나 볼 수 없었던 아이들.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어 논다.

아이들은 말쑥한 옷차림이었다. 실종된 날의 옷차림. 여자 아이 둘, 남자 아이 둘. 이리저리 움직이는 발걸음이 어지럽다. 까부러지며 서로 합쳐졌다가 나뉘었다가 이지저리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우리들은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키다리마저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동희도 거기에 있었다. 짧은 양갈래 머리에 원피스를 입은 그날의 모습.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애타게 보고 싶어 했던, 그러나 아무도 볼 수 없었던 아이들.

이제는 어둠의 일부가 된 아이들.

키다리가 말했다.

"움직이자."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 아이들이 1학년 교실 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내 말 잘 들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해선 안 되고 말을 해서도 안 돼."

 

우리는 교실 안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따라갔다. 곳곳에서 어슴푸레한 형체들이 뛰어다녔다. 달이 미칠 것같은 붉은 기운을 지상의 모든 사물에 뿌려대고 있었다. 형체들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속삭여댔다.

선두에 선 키다리 선생님은 혼자서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며 앞장섰다. 낮지만 법문처럼 끊이지 않는 말들이었다. 잘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법문이나 주술을 끊임없이 입에 올리고 있는 듯했다. 옆을 보니 박 형사가 긴장된 표정으로 계속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 위치에 총을 집어 넣은 홀스터가 있는 듯했다. 정아는 죽도를 휘두른다기보단 토템처럼 품에 꼭 쥐고 후미에서 걷고 있었다.

우리는 귀신들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말소리들이 어렴풋이 들렸다. 희희낙락하는 소리, 우는 소리, 욕을 해대는 소리,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들. 갖가지 소리들이 청각을 어지럽혔다.

...의 이름은.......

...의 이름은.......

키다리 선생이 내 손을 잡아챘다. 그가 날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박 형사가 옆에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모르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쪽은 학교 밖을 통해 숲으로 향하는 길 쪽이었다. 정아가 두려움과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날 보았다. 난 감사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키다리가 입술 앞에 검지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걸 보고 간신히 말을 참았다.

우리는 1층 교실들의 끝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교실들 안에서 아득하게 어떤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아이들을 따라갔다.

몽환적인 악몽의 한가운데를 붉은 빛을 배경으로 거니는 그 모습이라니. 온갖 그림자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그림자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것도 있었고, 짐승의 모습을 한 것도 있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태를 한 것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어떠한 말들을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2층에 도달했다. 박 형사가 정아를 잡아 끌었다. 정아 역시 3층이 아니라 복도 반대편 깊은 어둠을 향해 걷고 있었다. 우리 모두 한 번씩은 홀린 것처럼 굴었다. 키다리는 아까보다 땀을 더욱 많이 흘려댔다. 그의 양손이 허공을 향한 채였는데 방금 전보다 더욱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 옆으로 머리를 빗어넘겨 노출된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3층에 도달했다.

뛰어가던 아이들이 우리 교실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교실 문이 우뚝 서 있었다. 항상 보던 우리 반 문이 그렇게 낯설게 보일 수가 없었다. '어서 와서 그 문고리를 당겨보라고.'

키다리가 입을 열었다.

"다 왔구나."

박 형사가 막 움직이려는 찰나, 키다리가 제지했다.

"종현아, 잠깐만. 아직은 아니야."

키다리의 주술이 깨진 것은 둘이 친구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쨍, 하는 소리가 난 것 같았으나, 사실 그런 소리가 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 뭔가가 깨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뒤이어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정아의 것인 듯했다. "정아야!" 박 형사와 정아가 쓰러졌다. 키다리는 필사적으로 버티고 서서 두 손을 교차했다. 그의 주위로 알 수 없는 물체들이 떨어져 내렸다. 매서운 바람들이 우리들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나는 귀신들을 보았다.
다섯 개의 머리를 가진 귀신. 머리는 없으되, 몸통에 수만 가지 눈을 가진 귀신. 자신의 다리를 물어뜯으며 울부짖는 귀신.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한 채 어떤 인간을 잡아갈지 탐색하는 귀신. 수많은 귀들이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숲에서 우리를 쫓아왔던, 인광을 내뿜는 귀신도 보였다. 키다리의 주술이 밤의 존재들과 우리 사이를 흐릿하게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귀신들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처음에 그것은 어떠한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점차 알아들을 수 있는 의미들로 바뀌어갔다.

...의 이름은.......

그의 이름은.......

그의 이름은 ...성

...신 중의 ...신

...사도 ....의 주인

갑자기 귀가 너무 아팠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 같았고, 몸이 불타는 것 같았다. 귀신들이 내게 해코지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수만 마리의 귀들이 내 몸을 할퀴고, 드나들고, 각 부위를 백만 조각으로 찢어대는 감각이었다.

...의 이름은 ...성

그의 ...은 .......

세상이 폭발하고 있었다. 시야가 흐려졌고 의식이 사라져갔다.

그러나 나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귀신의 목소리들이 또렷하게 내 귓가에 들려왔다.

 

그의 이름은 유성.

내림신 중의 내림신.

밤의 사도이자, 바람의 주인.

천 년 넘은 여우의 이름이라네.

 

4.

 

키다리가 쓰러지는 날 잡았다. 우린 어느새 고등부 1반 안에 들어와 있었다. 정아는 쓰러져 있었고, 박 형사는 창백한 표정이지만 불안정하게 의식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정아가 걱정됐다. 내가 키다리를 뿌리치고 정아에게 다가갔다. 정아는 의식은 잃었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괜찮아. 죽진 않았으니까." 키다리가 말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교실 안. 아이의 그림자가 교실 귀퉁이에서 반대쪽 귀퉁이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림자는 네 개였다.

키다리가 말했다.

"주술이 깨졌었다. 잡귀들이 아무래도 네게 힘을 얻은 모양이야."

키다리의 음성이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무슨 말씀이죠 선생님?"

키다리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박 형사가 키다리와 나 두 명을 번갈아 주시하고 있었다.

"귀신들이 뭐라고 했니. 다 들었니?"

"전......."

"유성이라는 이름을 들먹였나? 여우의 이름이 유성이라고 말이지?"

"네, 맞아요. 선생님도 들으셨죠? 그게 무슨 뜻이죠? 유성은 제 동생의 이름이잖아요."

키다리는 대답하지 않고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내 동생. 혹시라도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집에 가봐야겠어요."

내가 허둥지둥하자 키다리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여기까지 와놓고 집에 간다는 말이니?"

"농담이 아니에요. 유성이한테 가야 해요. 지금 당장."

키다리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해할 수가 없구나."

"선생님도 들으셨잖아요. 귀신들이 제 동생의 이름을 들먹였다고요. 지금 유성이를 보러 가야 합니다."

이 양반이 대체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굴지? 키다리가 피식 웃었다. 그 얼굴에 펀치를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걸."

키다리가 말했다.

"네?"

키다리가 나를 가리켰다.

"네가 유성이라고."

 

박 형사가 몸을 일으켰다. 계속해서 나와 키다리 선생을 번갈아 쳐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지훈아. 이제 시작인 거지?"

키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뭐가 시작이란 걸까?

난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칠 계제인가요 선생님?"

"장난친 적 없다."

키다리의 싸늘한 어조에 순간 한기를 느꼈다. 그는 날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윽고 품 속에서 부적을 꺼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맘에 들지 않은 동작이었다.

키다리가 부적으로 날 가리켰다.

"아직도 네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럼 내가 말해주겠다. 넌 인간이 아니야.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내림신, 천년 여우 유성신(劉成神)이다."

"뭐라고?"

"네가 지금껏 수호신의, 내림신의 책무를 망각하고 이토록 자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 마을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 거다."

그가 부적을 계속해서 꺼내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서 내 기분은 더욱 나빠졌다. 분명 그 부적들 때문인 듯했다. 무슨 용도일까?

내가 알아챌 순간도 없이, 키다리의 부적들이 어느 순간 내 몸에 붙어 있었다.

그가 낮게 말했다.

"기억은 나는가, 유성신?"

나는 깨달았다.

우리 반 바닥에 분필로 그은 여러가지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그것은 키다리가 준비한 술법이었다.

순간 온 몸이 뜨거워졌다.

나는 보았다.

네 다리로 달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산야를 자유로이 뛰어서 내달리고 있는 하얀색의 한 짐승을. 그 몸을 지탱하고 있는 근육들이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나는 신이었다.

대지의 주인이자 변덕스러운 하늘의 피조물. 그 오랜 세월 동안 인간들이 수많은 이름을 붙인 영물. 하늘이 열리고 바다가 대지를 품으려 달릴 때 나타난 풍요와 변덕의 여우. 비를 내리고 오곡을 열리게 하지만, 화가 나면 분노의 얼굴로 흉년과 전란을 가져다준 하얀 여우. 하늘과 땅의 어떤 존재도 함께 나란히 바라볼 수 없는 신수(神獸).

그 하얗고 매끈한 몸이 지축을 내달리고 있었다. 대지가 자신의 주인에게 고개를 숙여 복종했다.

 

나는 눈을 떴다.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호흡이 진정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이 마을의 주영이라는 평범한 학생으로서 살아온 기억과 더 오랜 옛날의 기억들이 마구 뒤섞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해버렸다.

"그럼 유성이는 누구지?"

'김지훈 선생님. 그 사람을 조심해.'

그 말을 하면서 난 동시에 답을 알아버렸다.

"네녀석이 만들어낸 사역귀구나."

내가 쏘아보자 키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녀석은 나와 내 아버지의 어린 모습을 본따 만들어 낸 놈이다. 네가 너 스스로를 기억하라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그 모든 게 다 네 작품이구나."

키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응답에서 많은 것을 읽어냈다.

"내 어머니도.......?"

키다리는 단지 한 마디만 했다.

"실제로 어머니를 본 적이 있나?"

없었다.

항상 같은 내용으로 그 자리에 있던 도시락과 포스트잇.

그 모든 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키다리가 내 표정에서 대답을 읽어내곤 말했다.

"나도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부모를 볼 수가 없게 됐다. 네 덕택에 말이다."

내 안에서 통찰력이 커져갔다. 삼라만상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육감을 이용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이해했다.

나는 내 무당이 될 수도 있었던 녀석의 모든 것을 이해했고 느꼈다. 그 녀석이 흘린 눈물을 대지가 기억하고 있었던 탓이다.

"네 어머니도, 시도 녀석도 모두 죽었지."

김지훈은 목석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박 형사 쪽을 보고는 씩 웃었다. 박 형사가 움찔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귀신을 보게 됐다던 아이가 바로 지훈, 너였구나."

박 형사는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고, 지훈은 악귀같은 표정을 한 채 나를 노려보았다.

미물들.

나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그렇군."

다음 순간, 나는 하얀 여우로 변했다. 내게 가장 익숙한 모습으로. 매끈하고 아름다운 은회색에 가까운 하얀 털들이 내 몸에서 흘러넘쳤다. 주둥이가 빳빳이 하늘을 향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지훈이 내게 보여준 하얀 짐승은 바로 날 모방한 것이었다.

녀석에게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다.

박 형사가 숨막히는 비명을 질렀고 키다리는 부적을 허공에 띄웠다.

내 주둥이가 열렸을 때 나온 건 신의 음성이었다.

"너, 네 어미의 죽음이 내 탓이라고 원망하고 있구나."

나는 지훈을 비아냥거렸다.

"지금도 무늬의 말이 들리느냐, 애송아?"

무늬의 말을 듣던 옛날의 꼬마는 이를 갈며 손가락을 교차시켰다.

"지금도 널 원망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내림신을 받기를 거부했지. 하지만......."

녀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젠 후회한다. 내 어리석음에 마을에 이 사단이 나버렸으니."

나는 지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2년 전, 아이들이 사라졌을 때, 죽어가던 시도는 아들 지훈에게 내림신을 받을 것을 요구하였으나, 지훈은 거부하였다. 그 결과 현세에서 자신을 대신해줄 무당을 찾지 못한 충격으로 내림신들은 영적 폭풍을 일으켰다.

그 중 가장 강력한 내림신이 바로 나였다.

폭풍으로 인해 밤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렸고, 아이들이 사라졌다. 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기억을 잊은 채로 이 마을의 일원이 되었다. 내 정체를 파악하고 있던 건 시도의 아들인 지훈 뿐이었다.

그날부터 마을의 숲에 귀신들이 출몰하곤 했다.

"그래서 이렇게 늦은 다음에야, 내게 속박의 언(言)을 하러 온 것이냐? 이제 와서 나를 계승하겠다고? 이 고약하고 철부지 같은 술사 같으니."

내 노기 어린 목소리에 박 형사는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느새 부적들이 내 주위를 휘감고 있었다.

김지훈이 낮고 강하게 말했다.

"얌전히 속박 되어라, 여우!"

나는 포효했다.

 

김지훈은 분명 훌륭한 술사, 무당이 될 소질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녀석은 내 힘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1300여년 간의 세월 동안 나와 필적한 인간은 단 한 명 뿐이다. 시도? 지훈? 다 시시한 놈들이다. 내가 딱 한 번 만나본 진짜 술사, '그 녀석'에 비하면.

그러니까 내 포효와 함께 지훈의 모든 부적이 찢어지고, 녀석과 박 형사가 날아가서 기절해 버린 건 응당 일어날 법한 일이란 것이다.

부적이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나는 으르렁 거리며 앞발을 휘둘러 지훈의 주술진까지 박살내버렸다.

네발로 지훈에게로 걸어갔다. 지훈은 후두부에 큰 충격을 받고 기절한 상태였다. 이 난장판에서 어디엔가 머리를 부딪힌 모양이다. 뇌진탕에나 걸려버려라.

나는 발톱을 지훈의 목에다 가져갔다.

이대로 죽여버릴까.

잠시 생각했다. 놈은 분명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죽음이 내 탓이라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놈의 아비인 시도의 내림신이었으나,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자연히 내 음기에 끌린 잡귀들이 시도의 아내를 죽게 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놈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한 무당의 업을, 시도의 내림신을 거부함으로써 마을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계속 가지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나는 발톱을 내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누워 있는 정아 쪽을 보았다.

내 친구들. 다현이와 정석이.

녀석들과의 시간은 내게도 분명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여우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을 홀리는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인간 세상에, 그 즐거움에 녹아들어 인간 행세를 하고 살아오고 있었다.

나는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 녀석들을 다시 세상에 데리고 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이들.

귀퉁이에서 계속 형체만 남아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의 실루엣이 선명해졌다.

동희가 달려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동희야!"

나는 놀랐다. 기절한 줄 알았던 박종현 형사가 달려온 것이다.

"동희야! 아빠다. 아빠가 여기 있어! 내가 보이니, 동희야?"

나는 깨달았다. 어디선가 본 듯하다고 생각했었던 동희는 박 형사의 딸이었다. 가슴 한 켠이 시려왔다. 그렇군. 그가 이 자리에 온 건 딸을 보기 위해서였다.

동희는 천진하게 웃으며 박 형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이가 박 형사를 아버지로 정말로 인지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동희를 포함한 네 명의 아이들은, 이미 밤의 주민이었기 때문이다.

다현이와 정석이의 경우와는 달랐다. 나는 동희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냐고 물었다. 동희는 고개를 젓고는 입모양으로 말했다. '싫어.' 나는 이해했다. 밤의, 일상의 뒷편에 자리한 그 세계의 잔혹함과 아름다움에 한 번 맛을 들인 인간은 돌아오기 힘들다. 특히 아이들은 더욱.

나는 허공을 향해 주둥이를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손을 내밀고 있던 동희가 다른 아이들 세 명과 함께 사라져갔다.

"동희야!"

박 형사가 울부짖었다. 그가 오열하면서 나를 보았다.

"안돼요! 제발 우리 동희를 이대로 보내지 마세요! 전 이 순간만 기다려 왔습니다! 제발 제게서 아이를 뺏지 마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밤의 주민들을 억지로 이 세계로 끌어오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거기엔 분명 대가가 따른다. 박 형사가 내 거부의 의지를 읽었다.

그가 눈을 희번득 거리면서 내 앞발을 끌어 안으며 울었다.

"그게 힘들다면 차라리 제가 저쪽 세계로 가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여우님. 여우신이시여, 제발. 제 인생은 동희가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단 말입니다. 제발 저를 보내주세요!"

박 형사가 울부짖는 모습에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내려다 보다가 엎드려 울고 있는 그의 귓가에 주둥이를 가져다 대었다.

"그렇게 해주겠다."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나는 박 형사의 소원대로 해주었다.

박 형사가 사라지고 난 뒤, 누워 있는 키다리를 보았다. 부정적인 감정이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누워있는 정아의 안쓰러운 모습이 그 감정을 사그라들게 했다.

나는 그들을 두고 그곳을 나왔다. 수많은 귀와 신이 저마다 흥미롭게 내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날, 하얀 여우가 붉은 달이 빛을 뿌리는 마을과 숲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온 몸 가득히 넘치는 힘으로 미칠 것 같은 밤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는 다현이와 정석이가 등교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날은 수업이 진행될 수 없었다. 온종일 경찰차가 왔다갔고, 마을 주민들이 학교에 몰려들었다. 다현이와 정석이는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얘기했듯이, 사람들을 홀리거나 망각하게 만드는 건, 여우에겐 일도 아니다.

키다리는 의외로 깨끗했다. 안타깝게도 뇌진탕에 걸리거나, 기타 다른 아픈 곳은 없어보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내가 물었다.

"뻔뻔하군. 아직도 그 모습을 하고 나타나다니."

난 한껏 웃었다.

"잠시 더 이 모습으로 더 있기로 했다. 아직 내림신이 되기에도, 떠나 버리는 것도 내키지가 않아서."

그리고는 녀석에게 경고했다.

"호락호락하게 네놈의 내림신이 되어줄 생각 아직 없으니 시도할 생각 말아라."

키다리는 코웃음을 쳤다. 분명 녀석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해볼테면 해보라지. 건방진 놈.

2년 전에 사라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순전히 아이들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밤과 하나가 되어 살아갈지, 아니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지. 그건 나마저도 속단하기 쉽지 않았다.

박종현 형사가 실종된 사실도 마을에 알려졌다. 마을은 돌아온 아이들 외에 박 형사의 실종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그 역시 지금쯤 밤의 세계를 걷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아이와 함께 있을지, 아니면 돌아올지 역시도 그의 선택이다. 나는 항상 밤의 주민들의 선택을 존중하니까.

정석이와 다현이 정아, 나 이렇게 넷은 오랜만에 모였다. 우리는 학교를 마치고 어른들 몰래 맥주를 사서 계곡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다현이의 댄스 실력을 오랜만에 감상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유성이도, 도시락과 포스트잇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 년 넘은 여우다. 밤의 사도이자 바람의 주인, 이 마을의 수호신이다. 그리고 고등부 1반의 김주영이며, 밤과 낮의 세계의 균형추이기도 하다.

당분간 마을의 밤은 계속될 것이다.

붉은 달이 대지를 비추고, 밤의 주민들이 배회하는 여우의 밤 말이다.

그 때 우린 즐거이 뛰어노는 네 명의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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