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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영혼을 부탁해

2020.01.31 20:5701.31

0.

           재우의 부탁은 서울을 떠나있는 동안 영혼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흔한 부탁이라고 할 수는 없었고 예상에도 없던 것이었지만 은주는 선선히 승낙한다. 뜬금없는 서류 작업을 해달라는 엄마 친구의 부탁이든 영혼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옛 친구의 부탁이든 그녀는 부탁은 거절하지 않는 주의였다. 그녀에게 있어 부탁은 항상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고, 그녀는 어떤 미래든 간에 미래를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 때문이다. 은주의 다음 질문은 영혼을 맡아주는 동안 어떻게 하면 되는지, 특별히 잊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 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녀는 백수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영혼이 혹시 돌보기 어려운 식물이나 햄스터 같은 것이라면 다른 문제였다. 전에 남의 햄스터를 맡아주었을 때도(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것은 아니었지만) 먹이를 너무 많이 준 적이 있었고, 남의 영혼을 실수로 어떻게 하는 것은 햄스터를 어떻게 하는 것보다도 배는 있어서는 같았기 때문이다. 재우는 별로 어려울 것은 없고, 직사광선을 피해 바람이 통하는 곳에 상온 보관하면 된다고 한다. 즉 냉동고나 창고 같은 곳이 아니라 그냥 방 안에 두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잘못되면 상하거나 썩기도 하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은주는 조금 걱정이 되어 묻는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진짜 괜찮아,” 재우는 영혼을 맡길 곳을 찾아 헤매는 사람치고는 묘하게 운명론자적인 투로 답한다. 영혼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사람의 영혼은 보통 열일곱이나 열여덟 쯤에 생기는데, 대부분은 - 위험한 곳에 들고 가서든 이상한 사람에게 줘버려서든 제대로 보관하지 못해서든 -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어떤 형태로든 영혼을 잃어버렸고, 그러고도 잘 살았기 때문이다. 재우는 영혼처럼 깨지기 쉬운 물건을 지금 가는 곳에 들고 갈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부모님 집에 맡기고 가면 청소하다가 실수로 버리거나 추석 때 친척 동생에게 줘 버릴 것이 뻔했다. 그러므로 그녀가 영혼을 맡아준다면 고맙지만, 조금 상하거나 한다고 해도 큰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은주는 알겠다고 한다. 언제 받으러 가면 ? 어디서 보지?” 그녀는 빛나는 하얀 창에 묻는다. (이것은 카카오톡의 노란색 이전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나가다가 학교 근처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그런 날들은 그들 모두에게 이미 과거가 되어가고 있었다. 은주는 벌써 학기 째 휴학 중이었고, 대학에 들어가는 대로 돈을 모아서 집을 나오기로 했던 계획은 포기한지 오래였으며, 그녀가 알기로는 그도 아직 복학을 하지 않고 있었다재우는 학교 근처 PC방인데 괜찮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은주의 동네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단지 내 상가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녀는 아파트 단지로 오는 버스 번호를 불러준다. 그녀는 어두운 상가 계단에서 그를 만나, 종이 쇼핑백에 담긴 영혼을 넘겨 받는다. 세탁소와 엄마 친구의 미용실이 있는 이층은 완전히 불이 꺼져 있었지만, 일층은(여전히 히딩크 때 포스터가 붙어있는) 복도 저쪽 끝 맥주 집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밝았다. 여름은 지났지만 계단은 아직 앉아있지 못할 만큼 차갑지는 않았다. 쇼핑백 안에는 신문지로 싸인 주먹만 한 영혼이 들어 있었다. 어딜 그렇게 멀리 가는데?” 은주는 지나가듯 가볍게 묻는다. 굳이 말하자면 어학 연수 비슷한 건데,” 말해도 되는지 아직 모르겠다고 그는 얼버무린다. “나중에 밥 한 번 제대로 살게, 정말 고마워.” 그리고 그는 , 아까 깜빡하고 말하지 못했는데 봄에는 영혼이 가벼워져서 날아가 버리기도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같은 넣어두면 되는 거지?” 은주는 묻는다. 그러면 좋지,” 재우는 답한다.

 

1.

           은주는 영혼을 보관한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쓰던 색깔 있는 코르크마개 병에 보관하지만(여고생들 방에는 한둘씩 있고 졸업 후에도 정도는 살아남는 통들의 용도는 영원히 불명이지만, 은주의 것에는 지우개 조각과 동전들이 들어 있었다), 너무 밀폐형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국민학교 때 잡동사니들 틈에서 찾은 동전 저금통으로 바꾼다. 다음해 여름에는 광화문 교보문고에영혼 크기에 딱 맞는 작은 어항을 산다. 영혼의 빛은 작아서 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은주 엄마는 그것이 또 그녀가 어디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쓸데없는 작은 조명기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사 횟수와 그런 쓸데없는 작은 물건들의 생존율은 반비례하기 때문에, 그런 물건들은 은주네 집에서 유난히 오래 살아 남는다. 그녀는 번은 오래된 아빠의 빚 때문에, 번은 취직하고 독립할 해서 딱 두 번 이사한다. 이사할 때는 영혼이 혹시라도 눌리거나 찌부러질까 이사 박스에도 넣지 않고 배낭에도 넣지 않고, 따로 뽁뽁이와 종이로 겹을 싸고 캔버스 백에 넣어 직접 안고 간다. 영혼은 은주와 엄마를 도와주러 온 외삼촌의 차에 실려간다. 번째 이사는 첫번째보다 쉽다. 은주는 영혼을 - 처음에 이사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잘 감싸서 들고 가서 구석의 책장에 올려놓는다. 주말에 엄마 대신 들른 삼촌은, 엄마는 이제 신경 쓰지 말고, 남자 친구도 만들고, 집에서 행복하게 살라고 충고하지만, 그녀의 집은 엄마의 엄격한 기준으로도 충분히 안전한 곳으로 남는다. 은주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친한 친구를 만드는 법을 결국 배우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강제로 서로 친해지는 곳에서가 아니면 어떻게, , 누구와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주말이나 추석에 아빠 차로 할머니를 보러 일도 없었다. 번인가 , 일박이일로 회사 단합대회를 다녀오지만, 그 외에 그녀는 웬만해서는 집을 비우지 않는다. 아침에 나갈 때는(아주 춥지만 않으면)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가고, 몇 년이 지나 서울에서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이 어렵게 된 다음에는 공기 청정기를 산다.

           영혼은 의외의 방식으로 그녀가 혼자 사는 법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혼자 사는 집이란(아주 불행한 방식으로 방음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면) 어쩔 없이 조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 자신도 몰랐지만거실에서 들려오는 티브이 소리 같은 것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는 타입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던 미연은 음악을 틀고 자거나, 아니면 동물을 키워보라고 제안하지만, 은주에게는 동물과 영혼의 관계에 대한 본능적 불신이 있다. 개든 고양이든 분명 언젠가는 영혼을 쳐서 떨어뜨리고 말 것 같았다. 음악을 틀어놓는 방법은 아예 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곡이 문제였다. 좋아하는 곡은 좋아서 자꾸 결정적인 순간에 깨고, 그렇다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틀어놓으면 다른 의미로 잠이 오지 않았다. 봄 밤은 특히 그랬다. 밤은 종종 쌓인 한겨울밤보다 적막했기 때문이다. 하얀 꽃과 하얀 나뭇가지들 너머(본격적 따뜻함 전에 오는 차가운 봄에, 나뭇잎보다 앞서 피는 꽃들은 이상하게 전부 그런 색이었다.) 봄 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이 없었다. 은주가 영혼에 소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것도 그런 어느 아무 소리 없는 밤이었다. 은주는 음악을 꺼도 멈추지 않는 정체 모를 낮은 소리가 아직 쇼핑백에서 꺼내지 않고 책장에 올려둔 영혼에서 나는 것임을 깨닫는다(이사온 것은 겨울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그녀는 짐을 반밖에 풀지 않은 채였다). 아빠가 술을 취해 부엌을 헤매고 엄마가 손에 휴대폰을 들고 차가운 마루를 서성이곤 했던 옛 집에서는 년을 두고도 눈치채지 못한 소리였지만, 이불과 닫힌 문과 반쯤 책장 밖에 없는 집에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재우가 약속대로 영혼을 찾으러 오는 날을 -- 그녀는 기다린다기보다 기대한다. 만약 기다리는 것이 내내 생각하는 것이라면 시간을 내내 그가 언제 영혼을 찾으러 올지 생각하면서 보낸 것은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언젠가 영혼을 찾으러 것이라는 믿음은 은주가 재우의 영혼을 방에 두고 보내는 시간 동안 계속 그녀와 함께 한다. 기대는 구체적인 형태를 띤다. 은주의 상상속에서 영혼의 반환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영원한 뒷담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엄마와 잠깐 살던 빌라 말고, 아빠가 떠나기 전, 아빠의 빚이 생기기도 전부터 살고 닳을 정도로 돌아다녔던 그 옛 동네었다.) 계절은 사월 막바지, 실외의 어둠과 실내의 밝음이 뒤바뀌고, 건물 그늘이나 학교 복도의 서늘함이 기분 좋아지기 시작하는 그 무렵이어야 했다. 그녀는 그런 어느 평화로운 낮, 집에 있다가 그의 연락을 받고 영혼을 돌려주러 나가는 꿈을 꾼다. 그곳에 살던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겉옷 하나와 핸드폰만 들고 나가서 봉투에 든 영혼을 돌려주고, 콘크리트 계단에 앉아 아무 것도 아닌 얘기를 나누는 꿈이었다. ( 다음에는 아마 동네로 함께 저녁을 먹으러 것이었다.)   

           그 미래가 실제로 오지 않을 미래인 것은 알고 있었다. 다른 것은 제쳐 두고라도 일단 아파트들은 이상 그런 모양으로 설계되지 않았으므로, 지금 남은 것들이 모두 재건축되고 나면 마을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서울에서 낯익은 복도식 아파트와 그 아파트들의 그늘진 뒷담과 위에 진달래들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날이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주는 영혼을 돌려주는 장면을 다른 식으로 상상할 없다. 이상한 식으로 그녀를 용서해주는 것 같은 그 꽃들과 건물들 없이 그녀는 행복한 미래를 상상할 없었고, 시간을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오래된 동네에서 진달래는 혼자 피지 않는다. 영영 그녀의 기억을 떠나지 않을 다른 분홍색 노란색 꽃들과 섞여 피고, 떨어질 때도 벚꽃이나 목련의 하얀 색과 뭉쳐 봄비에 젖은 보도블럭 가장자리에 떨어진다. 언제는 마치 아파트들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적은 없지만 그녀는 막연히 죽은 아파트들이 비슷하게 생긴 아파트들을 남기고, 상가 건물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피아노 학원과 금은방, 태권도 학원 간판이 달린 비슷한 상가들이 생겨나, 그렇게 이어지는 미래상상했던 같았다. 그렇지만 진짜 세상에서 죽은 아파트는 똑같이 생긴 아파트들을 남기지 않았다. 죽은 아파트를 기억하는, 인구 피라미드 모양을 따라 차근차근 줄어드는 수의 사람들을 남길 뿐이었다.

 

2.

           은주가 대학을 (남들보다 조금 오래 걸려) 졸업하고, 동네를 잃고,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지는 동안에도, 그 다음에도 재우는 영혼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 정말 아무 소식도 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 동기들 페이스북 페이지를 구경하다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의 친구 목록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 들어가본 적도 있었다. 계정에는 프로필 사진도 글도 없고 미국 어느 대학 한인학생회 페이지만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대학이 어떤 곳인지, 세상 어디 쯤에 있는지 퇴근길 지하철에서 검색해보지만, 그곳이 그가 말했던 곳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국 중부 작은 도시는 분명 아주 곳이었고 미국은 사람들이 영혼을 잃어버리기 쉬운 같았지만, 지금은 없는 상가 계단에서 떠나는 것을 얘기했을 그는 조금 더 아득히 먼 것을 염두에 두고 있던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느낌에 불과했고, 실제로 그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단지 미국이라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려고 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디애나에서 학부 생활을 했던 미연은 미국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 같은 다른 세상이 아니라고 단언한다(뉴욕이나 캘리포니아면 몰라도, 그런 백인들만 사는 오래된 시골 도시는 다른 세상도 무엇도 아니고 단지 혼자 방에 영원히 있게 되는 무인도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은주는 그가 있는 곳이 적어도 그것보다는 좋은 곳이기를 바란다. 그녀는 뒤늦게 그들이 영혼 보관 기간의 상한을 –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으면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해도 되는 시점을 - 정해놓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유기동물 보호소든 지하철 사물함이든, 이 세상에 물건을 무한정 맡겨놓을 있는 곳은 없었다. 이상 답이 오지 않은 페이스북 메시지나 몇 달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입사 지원서를 우리가 거절이라고 해석하듯, 그녀에게도 그의 이 지속된 침묵을 계약의 해지라고 해석할 권리가 있는 같았다.

           설거지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앉으니 어느새 깊은 봄이었다. 하얀 꽃들이 피는 달도 지나고, 어둠 나무들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밤은 밝고 조용했다. 영혼은 여전히 - 여름, 천장에 거울이 있던 리모델링 교보문고에서 사왔던 - 어항에 담겨, 은주의 방 책장 위에 있었다.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이제 아무래도 그녀에게 달린 문제 같았다. 정말 미국에 있든 곳에 있든 어디를 떠돌고 있든, 재우는 영혼 없이 어떻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았고, 영혼 없이 산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 불행인지는 몰랐지만 앞으로도 영혼을 찾으러 올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시인 키츠는 세상이 영혼 제련의 골짜기라고 했다. 그것은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말로, 연도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은주는 사월 마지막 날의 편지였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학 때 교양 수업의 유인물들을 버린 적이 없었으므로(그것은 그녀가 대학 가서 첫번째 들었던 영문과 교양으로 “영시의 이해” 수업이었다.), 키츠의 편지는 아마 아직도 그녀의 책장 어딘가에 끼워져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그 편지를 다시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것을 찾으려면 년은 정리하지 않은 책장에서 옛날 제본 책들과 프린트 묶음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아야 할 것이었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키츠의 편지는 세상이 어째서 이토록 고통으로 가득한 곳인지, 아주 끔찍한 일이 없을 때에도 연속되는 작은 불행들로 가득하며, 계속해서 어려운지 불평하면서 시작한다.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영혼이었다. 세상은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찬 곳이지만, 고통 속에 영혼이 태어나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우리는 그곳에서 두드려 맞고 단련되고 시험을 거치면서 영혼으로 변화하게 되며, 세상이 구원받는다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인지도 모른다고 키츠는 쓴다. 그것을 처음 읽은 날 은주는 집에 와서 숨이 막힐 정도로 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의 편지는 정작 그녀가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키츠는 영혼이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태어나는지 말해주고, (우리가 그의 말에 설득당하기로 한다면) 세상을 조금은 이해할 있도록 해주지만, 그렇게 해서 태어난, 밤에 빛나는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전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난의 골짜기에서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 가만히 내버려두면 결국 어디로 가는지야 말로 은주가 알고 싶은 부분이었고, 당장이라도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은주는 그 이후로도 영혼에 대해 가르쳐줄 수업을 찾아 인문대를 기웃거리지만, 키츠의 글만큼 도움이 되는 것은 두 번 다시 찾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칸트도 영혼에 대해 길게 쓰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말하는 영혼은 그녀 방 책장 위에 있는 그 영혼은 아닌 것 같았다.

           옛날이라면 할머니 팔순 기념 외식 같은 것을다가 핑계를 대고 빠져나와 혼자 도심을 가로질러 돌아왔을 법한, 말랑말랑한 봄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은주는 그때의 가슴과 피곤한 마음을 별로 싫어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녀의 삶이 향해가는 방향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끼어 앉아 저녁 식사를 할 일은 앞으로 평생 없을지 몰랐다. 영혼은 평소보다 조금 크게 웅웅거리면서 촛불처럼, 풍등처럼 빛을 낸다. 대학 교양 수업들을 찾아다닐 때만큼은 아니지만, 졸업한 다음에도 은주는 영혼 얘기를 하는 책들을 정기적으로 찾아 읽은 터였다. 마르크스는 세상이 영혼 없는 곳이라고 했지만,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벤야민은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마음과 영혼과 자신의 전부를 세상에 바친다고 한다. 단지 아무 것도 되돌려 받지 못할 뿐이었다. 은주는 자신의 영혼도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급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집을 나오고 세상에 들어가려던 과정에서 제대로 값도 받지 못하고 팔아버렸던 것이었다. 물론 벤야민 말대로, 바친다고 해도 세상에 들어갈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누군가 정말 세상에 들어가기는 하는 걸까? 은주는 궁금하게 생각한다. 어릴 적 자란 동네를 떠난 뒤 남는 것은 세상이나 무한한 가능성 같은 것이 아니라, 한밤의 메신저 채팅창과 불 꺼진 상가 건물 옆 거대한 영혼 같은 나무들기억 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상한 딜레마였다. 필요하면 자기 영혼을 도구로 쓰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도, 미연도, 엄마도 그런 적이 있었고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의 영혼 얘기가 되면 갑자기 모든 것이 터무니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가 되고, 영혼을 함부로 쓰는 것은 상상도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에 두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실용적인 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혜민 스님 책들은 책장 칸에 있었고,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아래쪽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로 갔는지 당장은 보이지 않았다. (학부 때 교과서들 옆에는 유행이 지나고 늦게 읽은시크릿 있었다. “시크릿”에서는  영혼의 빛으로 세상을 정복할 있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은주는 생각한다.) 하지만 영혼에 물을 주고 좋은 것을 보여주고 여하튼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런 책들도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소중히 하면 되는 것인지, 그렇게 보관된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 책들은 결국 자기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얘기라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말해줘도 사람과 떨어진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문제였다. 키츠 말대로 영혼이 세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더욱 그랬다. 영혼이 예를 들어 천구백구십년대 서울 아파트 단지가 주는 특별한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면, 그곳이 그 영혼의 집이 아닌가? 하지만 천구백구십년대는 사라지는데 영혼만 살아남는다면시대는 영혼을 통해 구원 받는다고 쳐도 - 고통의 골짜기에서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밝고, 밤이 되면 조금씩 따뜻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친구의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은주는 알지 못했다. 물론 앞으로도 이십 년이나 삼십 년 쯤은 하면 사십 가까이도 - 그녀의 집에 있겠지만 다음은? 녹거나 죽거나 물거품처럼 증발해버린다고 해도 문제였고, 그렇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였다. 미래는 어쩌면 아주 외로운 곳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영혼의 주인이 아니면 결정할 없는 문제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좋은 책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어차피 이미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므로 그녀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2월 4일 주인공 이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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