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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달의 네일

2020.01.28 22:0501.28

이달의 네일

 

알람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로 손을 뻗어 더듬었다. 핸드폰을 찾았는데 잡을 수가 없었다. 다시 더듬거리려는데 손가락이 꼼지락거리지 않았다. 퉁퉁 부어서 그런가? 언니가 일어나서 알람을 끌 법도 한데 조용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하긴 일주일 내내 야근이었으니 휴일인 오늘은 늦잠자야지. 1분이 지났는지 알람 소리가 멈췄다. 10분만 더 누워 있고 싶었다. 옆에 있는 언니를 끌어안았다. 에어컨 온도가 많이 낮았나? 언니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불을 잘 덮어줬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것 같은데 8시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제는 정말 일어나야 했다. 나는 평일에 쉬고 언니는 주말에 쉬었다. 평일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서 늦장 부리면 먼저 일어난 언니가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이마에 뽀뽀도 해줬다. 그러면서 일어나, 일어나야지, 하고 속삭였다. 그럼 나는 그게 좋아서 정신이 들었어도 괜히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 몇 번의 입맞춤 끝에 언니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이게 우리가 아침을 시작하는 방법이었다.

언니가 일어나길, 일어나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길, 뺨을 어루만지고 이마에 뽀뽀해주기를 기다렸다. 어느새 알람 소리가 멈춰있었다. 방안이 너무 고요했다. 무서울 정도였다. 5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놨기 때문에 다시 한번 알람이 울렸다. 언니는 아직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핸드폰을 어디에 뒀더라? 더듬거리는 손 아래 핸드폰이 잡혔다. 느낌이 이상했다. 손가락으로 터치를 해도 알람이 꺼지지 않았다. 몇 번 더 손짓을 하니까 조용해졌다. 핸드폰을 바꿀 때가 된 걸까? 돈을 생각하니까 작게 한숨이 나왔다.

일어나서 기지개를 피고 이불을 걷으려 손을 뻗었다. 시야에 보이는 손이 이상했다. 가늘고, 하얗고, 길어서 언니가 참 좋아하던 손. 주먹을 쥐면 손등뼈의 굴곡이 유려해서 언니가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던 손. 파랗게 비치던 핏줄이 강이 흐르는 것처럼 예쁘다고 말해줬던 손. 그랬던 내 손이 온통 회색이었다. 언니와 지난 주말에 우연히 예약이 겹친 척 같은 샵에서 만나 이달의 네일 중 같은 디자인을 고르고 색만 다르게 했던 젤네일만이 기이하게 반짝거렸다.

내가 미세먼지 인간이 되었다.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려 언니를 바라봤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유물처럼 혹은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아 몇 년 동안 방치된 도자기 인형처럼 먼지로 뒤덮인 언니가 보였다. 먼지를 모아 언니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 같았다. 언니의 위로 소복이 쌓인 먼지를 거둬내고, 얼굴을 매만지고, 입술에 입술을 맞추며 온기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내밀은 뻗은 손이, 사람의 손이 아니라서 거둘 수밖에 없었다.

망연히 언니를 바라보고 있다가 재빨리 침대를 벗어났다. 방 모서리에 있는 공기청정기를 확인했다. 전원에 불은 들어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미세먼지 인간에 대한 것들이 생각났다. 진실과 거짓과 진짜와 가짜와 안이함과 선동이 뒤섞여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들.

미세먼지 인간으로 변이한 사람은 전세계에서 백 명도 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미세먼지 인간으로 변이하여 사라지지 않고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며 살아있는 미세먼지 인간은 백 명도 되지 않는다.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는 이상 모르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변이하고 부서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세먼지 인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한 미국와 한국에서 동시방영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영화 시상식이었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상을 받고 울며 웃으며 수상소감을 말하던 중이었다. 언니와 나는 다음날이 공휴일이라 모처럼 쉬는 날이 겹쳐 어깨와 어깨가 닿은 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서로의 입에 순살치킨을 넣어주며 드레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도 나중에 저런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자느니, 둘 다 턱시도를 입는 게 더 멋있지 않겠느냐니 하는 대화를 나누며 웃었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정면을 바라보자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아니, 생방송이니까 기이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던 배우의 얼굴이 천천히 회색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방송사고인 줄 알았으나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화려한 와중에 배우의 색만이 이상했다. 배우의 조화로운 얼굴과 공들여 만진 머리와 펄을 발라 반짝거리는 가슴팍과 가늘고 여린 팔 모두 회색으로 완전히 변했다. 배우가 품 안에 들고 있던 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을 잡고 있을 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제야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우리 둘의 손에서도 맥주캔이 떨어졌다.

배우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죄를 지은 것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무대 위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앞도 제대로 보고 걷지 않아 긴 드레스 자락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배우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바닥으로 뻗었고, 그대로 손이 사라졌다. 몸이 사라지고 얼굴이 사라지고 존재가 사라졌다.

다이아몬드를 엮은 듯 반짝거리는 어깨끈이 눈물자국처럼 바닥에 흩뿌려지고, 등 뒤에 달린 긴 천은 은하수처럼 길게 늘어졌다. 섬세한 자수를 자랑했던 드레스는 하얀 장미처럼 보여, 사라진 사람을 애도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화면이 까맣게 되며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발치에서 흐르는 맥주캔만 차갑게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 뒤로 세상은 변하지 않은 듯 변하지 않았다. 외계인이니, 나사니, 약물중독이니, CG니 말은 많았지만 해결되거나 밝혀진 건 없었다.

다음 미세먼지 인간이 나타났을 때 미국의 대처가 가장 빨랐다. 강대국이며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앞세워 다른 나라에서 등장한 미세먼지 인간을 전담 관리했다. 그 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은 미세먼지 인간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미국은 누구보다도 많은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미세먼지 인간에 대한 사실을 발표했다. 사람이 갑자기 미세먼지로 변이했을 때, 변이자를 중심으로 그 일대의 미세먼지 농도 수치가 0이 된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 공기 정화가 된다. 미세먼지로 인해 지구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이런 신인류가 등장하는 건 영웅이 탄생한 것과도 같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따로 신인류센터를 만들어 이를 관리할 것이며, 앞으로도 많은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세먼지 인간은 백악관에서 머물면서 그 일대를 청정구역으로 만들었고, 미세먼지가 극심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곳으로 가 미세먼지 수치를 천천히 낮추었다. 사람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 등장했다고 열광했다.

이들을 인간으로 생각해야 할 것인가 하는 말들도 많았다.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 좀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의 저주를 받았다며 종교계에서 말을 하기도 했고,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 신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 나타났다고 즐거워하는 사람, 세상이 멸망할 징조라며 두려워하는 사람, 이런 능력이 생겨 유명해지고 싶다는 사람……. 정말 다양한 반응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갔다.

미세먼지 인간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청정구역을 만들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은 변이자가 자신의 집 근처에 살기를 원했다. 몇몇 사람은 집으로 미세먼지 인간의 가족들은 모두 초대해 성대하게 대접하고는 했다. 가족들을 초대하면 미세먼지 인간도 같이 와서 호흡을 해주니까 미세먼지 수치가 낮아지고 공기가 청량해졌다. 부자에게나 미세먼지 인간, 그 가족, 그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었다.

미세먼지 인간을 위한 법안도 만들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게 세금 면제다. 미세먼지 인간의 직계가족은 50% 세금감면, 대학등록금 무료, 각종 할인혜택 등 미세먼지 인간이라고 알리면 바로 각종 편의가 제공될 것이다. 비싼 집, 많은 월급, 미세먼지 인간을 위해 특수제작한 맞춤옷, 미세먼지에 강한 핸드폰과 노트북을 비롯한 전자기기, 미세먼지 농도 수치 안정화를 위한 지원금 등.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까지도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미세먼지 인간은 다른 사람과 접촉할 수 없었다. 특수제작 맞춤복을 입고 잠깐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할 수 있지만, 온기는 느끼지 못한다. 맛있는 음식도 좋은 침대도 필요 없다. 일정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잠을 자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사람인 이상 잠을 자야 한다며 시간 맞춰 잠을 청하는 미세먼지 인간이 많았다. 잘 때는 의식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으니 공기가 통하지 않는 침낭이나 밀폐된 공간을 마련해서 그 안에 있어야 했다.

나는 언니를 사랑한다. 잠을 잘 때마다 해주는 팔베개, 요리하는 언니의 뒤를 껴안을 때마다 새어 나오는 웃음, 머리카락이 앞을 가릴 때마다 귀에 걸어주는 손길, 영화를 볼 때 팝콘통 안에서 얽히는 손가락,

미세먼지 인간이 등장하기 전이나 후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지 못하고, 공기청정기 세 대를 번갈아 가며 끊임없이 작동시키고, 외출할 때는 얼굴을 감싸는 미세먼지 전용 마스크를 썼다. 외출하고 집에 오면 현관에 있는 공기청정기를 작동한 채 옷을 턴 후에 공기청정기에 파란불이 들어오면 중문을 열어 집안으로 들어온다. 번거롭지만 익숙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온 언니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야근하고 오면 야식도 챙겨주고, 일주일에 두어 번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같이 씻고, 맥주를 마시며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상. 나는 행복했다. 그 누구에게 떳떳하게 말할 수 없겠지만 정말 행복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모습인 걸까. 언니는 왜 가만히 누워만 있는 거지?

 

내가 출근하지 않자 핸드폰으로 몇 번 연락이 왔으나 받을 수가 없었다. 일렁이는 몸뚱이를 끌어안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들이마시는 숨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가 빨려 들어와 나를 구성하는 게 느껴졌다. 내뱉는 숨은 미세먼지가 하나도 없는 깨끗한 공기였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눈물이 터져나오듯 숨을 터뜨렸다. 조금씩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반대편이 보일 정도로 흐릿한 몸이 점점 진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있다 보면 언니 위를 덮고 있는 먼지도 다 내가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뻗어 언니의 얼굴을 매만지고 싶었다.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고 살살 먼지를 털어내고 오늘은 내가 먼저 일어났다고 자랑하며 볼에 입 맞추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한방에 같이 있는 것조차 괜찮은지 오히려 더 나빠지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내 이기심인지, 간절한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었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는데, 미세먼지가 되니까 의식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게 못내 서럽고, 두렵고, 혼란스러웠지만 그런 감정들은 넘겨야만 했다. 조금씩 천천히 호흡하면서 언니를 깨우는 것에만 매달렸다.

내가 생각하면서 의식적으로 하는 호흡은 무언가 이상했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공기가 폐로 들어와 가슴이 찬 느낌이 들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신다는 생각을 하면 몸 안에서 바깥에 있는 먼지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것들이 내게 달라붙어 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것도 피부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렁거리는 피부에 미세먼지가 닿아 간지러운 것 같다는 감각까지 들었다. 이제 간지러움, 따스함, 시원함, 발저림, 따가움 이런 감각들은 느끼지 못할 텐데도.

아파트 내 방송을 하려는지 스피커에서 알림음이 들렸다.

아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 지금 이 일대를 덮는 청정구역이 발생했습니다. 혹시라도 아파트 주민 여러분 중 미세먼지 인간으로 변이하신 분이 있다면 신호를 주십시오. 경찰관과 소방관분들이 이 일대를 순찰하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시면 소리를 질러주시기 바랍니다. 곧 한국과학연구소에서도 연구원분들이 오신다고 하니 변이하신 입주민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침착함을 유지해주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말을 똑같이 반복하고는 방송이 끝났다. 소리를, 소리를 질러야 하는 걸까? 언니를 살려달라고? 그럼 살 수 있나?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언니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국가의 인증을 받은 미세먼지 인간은 공무원이 되어 많은 월급을 받고 나라를 위해 일한다거나 대기업에서 더 많은 월급을 주어 고용할 거라거나 그도 아니면남모르게 어떠한 실험대상이 된다거나. 알 수 없었다. 미세먼지 인간은 너무 적었고 한국에서도 몇몇 사람이 변이했으나 대부분 사라졌다. 남은 건 깨끗한 공기뿐. 미세먼지 인간들은 주변의 모든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인간으로 형상화했다가 부서지기 일쑤였다.

손가락을 잡고 힘을 주어 잡았다. 모래가 바스라지듯 형체도 없이 검지가 사라졌다. 손가락이라는 것이 사라진 게 아니라 손가락을 이루고 있던 먼지가 사라진 것뿐이라 젤네일만 허공에 떠 있었다. 숨을 쉬니 잘린 부위에 흐릿하게 형체가 생겼다. 마치 햇살 아래 일렁이는 먼지가 보이듯, 연약하고 덧없는 모양새였다. 손날을 세워 어깨를 가로질렀다. 걸리는 것 없이, 마치 두부를 자르듯 부드럽게 손이 들어갔다. 어깨 아래로 아무것도 없었다. 숨을 계속 쉬고 있으니 왼팔의 형체가 희미하게 생겼다. 아프지는 않았다. 아프지가 않았다.

 

햇볕이 따가워 보였다. 이 방은 해가 정중앙에서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햇볕이 환하게 들어왔다.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열 수는 없지만, 에어컨을 틀고 누워있으면 몸은 따뜻하고 공기는 시원해서 따로 피서를 가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아직 에어컨 청소를 하지 않아 에어컨을 켤 수가 없었다. 언니는 더위를 많이 타니까, 계속 햇볕을 맞으면 땀을 뻘뻘 흘리며 투덜거릴 터였다. 커튼을 쳐주고 싶었다. 언니의 단잠을 방해하는 햇볕을 가려주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걸어서 커튼을 잡으려고 했으나 손가락만 부러져 사라졌다. 아직 아무것도 만질 수가 없었다.

언니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내 몸을 투과한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언니를 어루만졌다. 손을 들어 언니의 머리를, 뺨을, 어깨를 쓰다듬는 시늉을 해보았다. 그림자마저 흐릿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울지는 못하지만 웃을 수는 있으니까.

바깥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경찰차와 소방차, 그 외 차들이 아파트 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 지역의 모든 경찰관과 소방관이 출동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다른 곳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걱정될 정도였다. 그만큼 미세먼지 인간의 등장이 중요한 사항이라는 걸까.

이미 이 일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들이를 온 듯 아스팔트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사람, 오토바이를 탄 각종 배달부, 뛰어오는 아이들, 더 신나게 뛰는 개들이 보였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도로에 차를 세워둔 채 걸어오는 이들이 보였다. 국회의원이라도 온 걸까? 인사를 받는 사람도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누가 누구인지 모른다. 다 고만고만하다. 경찰이든 국회의원이든 부자든 노동자든 다 똑같다. 경찰차, 소방차, 검은 차, 하얀 차도 다 장난감 같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만 경쾌하게 들렸다.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안내방송 알림음이 들렸다.

아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알립니다. 지금 경찰관, 소방관, 국회의원님들도 오셨으며 뒤이어 서울에서 연구원들이 올 예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입주민께서는 댁에 방문한 경찰관, 소방관의 말씀에 따라주시면 됩니다. 입주민 여러분께서는 평소처럼 있으시면 됩니다.”

평소처럼? 평소처럼이면 난 집에 없었다. 카페에 출근해서 열심히 샷을 뽑고 있겠지. 웃으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진상 손님에게 한껏 죄송하다 허리를 숙이고, 틈이 나는 대로 언니와 연락하고 있어야 했다. 언니는 쉬는 날에도 부지런해서 무언가 하고 있어야 했다.

요즘에는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원피스와 여러가지 문양의 레이스, 여러 가지 색의 조화, 여러 가지 큐빅. 바닥에 원피스를 놓고 레이스와 보석과 조화를 이리저리 배치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가 지치면 공기청정기 필터를 체크하고, 집에 남은 수량이 얼마나 되었나 체크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냉장고 청소를 하고, 사진 찍어 자랑하고, 공기 정화 식물에 물을 주고, 허브를 매만지고, 그렇게 평화롭고 안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몇 시간 동안 언니 앞에 서서 햇빛을 가리고 있었는데도 피곤하거나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았다. 눈을 깜박이지 않아도 눈이 아프거나 눈물이 고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몇 시간 동안 언니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만질 수 없었다. 일정거리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건 슬프고, 괴롭고, 힘들었다. 언니 위로 쌓인 먼지가 줄어들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곳에는 언제 찾아올까.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니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나는 티와 팬티만 입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언니는 어떻게 하는 걸 원할까.

언니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정상과 평범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 것 같았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그저 옆집에 사는 낯선 이웃. 그게 다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서 누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더라도 인사를 하지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엘리베이터를 먼저 타서 문이 닫히길 기다리다가 아파트 입구에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오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을 만큼의 사교성만 있어서, 누군가와 말을 섞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언니와 사귀고 있는 것도, 언니가 매우 밝고 사교적이며 특별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언니는 아파트 입구나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만나면 밝게 인사했다. 아이를 보면 귀엽다며 안녕 인사를 했고, 할머니를 아침에 마주치면 아침부터 어디 가시냐며 안부를 물었다. 언니는 확실하게 어른들이 좋아하는 싹싹하고 애교 있는 며느리상이었다. 이웃 주민들이 오며 가며 애인은 있냐, 결혼은 언제 하냐를 물으며 선을 침범해도 언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애인 없어요, 없으면 내가 소개 시켜 줄까, 내가 아는 애 중에 대기업 다니고 키도 크고 착한 애 있는데, 애인 있어요, 누구냐, 집까지 데려다준 적도 없는 놈을 뭐하러 만나냐, 내가 아는 애 중에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하는 건실한 애 있는데.

언니는 소개팅도 하고 선도 봤었다. 그게 언니가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면 받아들어야 했다. 내 집에서 나 혼자 라면을 끓여 먹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그러다가 언니에게 문자를 했다. 오늘은 떡볶이의 날이야. 그러면 언니는 내가 좋아하는 가게의 떡볶이, 튀김, 김밥을 사서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집의 벨을 눌렀다. 나는 언니 손을 잡고 앞집으로 건너가 투덜거리면서도 언니의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었다.

몇 번의 소개팅, 몇 번의 선, 가벼운 만남, 진지한 만남. 그 끝은 모두 거절이었지만, 이를 통해 그 누구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짐작하지 못했다. 그거면 됐었다.

그렇게 지켜온 이 관계가 밝혀질 위기에 처했다. 그것도 나 때문에. 그것이 무척이나 괴롭고 서글펐다. 언니에게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위아래 세트인 잠옷을 입혀주고,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고, 덥지 말라고 에어컨을 틀어주고 싶었다. 그 후에 내 집으로 건너가 혼자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누군가가 벨을 누르는 이 순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벨을 몇 번 더 끈질기게 누르다가 아무도 없는 빈집이라 생각했는지 앞집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앞집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언제 다시 오려나. 오늘 저녁? 아니면 내일 저녁? 월요일 아침? 어쩌면 수시로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 모르겠다. 언니를 안고 싶다. 언니에게 안기고 싶다.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자고 싶다.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잠도 오지 않고, 장시간 호흡을 하지 않으면 몸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어디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이런데도 미세먼지 인간이 과연 인간인가? 나는 과연 언니가 사랑했던 사람이 맞나? 언니에게 묻고 싶었지만 언니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밖을 내려다보니 텐트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었다. 내일이 일요일이니 여기서 잠까지 잘 모양이었다. 치킨 시키신 분! 족발 시키신 분! 피자 시키신 분! 여기저기서 배달부가 음식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언니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았다. 언니를 덮고 있던 먼지들은 다 사라졌는데 깨어나지 않는다. 내가 왕자님이 아니라서 깨어나지 않는 걸까. 조금 더 선명해지고 단단해진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그때 언니가 살짝 몸을 뒤척였다. 너무나 감격스럽고 기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오진 않았지만, 그런 기분이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으나 창가에서 물러나 방문 쪽으로 갔다. 어두워서 내가 보이지 않도록. 구석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눈을 떴는지 안 떴는지 모르겠다.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언니가 눈을 뜨면, 코앞에서 눈을 마주치고 볼을 쓰다듬고 잘 잤냐고 인사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서 자다가 일어나자마자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서 더 서글펐다.

하늘아?”

금방이라도 꺼질 것같이 작은 목소리였다. 온 신경을 쏟고 있지 않으면 놓칠 만큼 희미한 부름이었다. 나는 밝은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잤어?”

, 너도 잘, , 잤어? 왜 이렇게 어두워? 아직 새벽이야?”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상함을 느낀 듯 언니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에 힘이 잘 안 들어가는지 몸을 지지하던 팔이 꺾여 휘청거렸다. 당장이라도 곁으로 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언니는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앉아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에 안도감을 느꼈다.

아니. 토요일 저녁이야. 언니 하루종일 잤어. 어디 아픈 곳은 없어?”

? 너 퇴근할 때까지 잤다고? 미안, 일 잘 갔다 왔어? 오늘은 진상 손님 없었어?”

언니는 다정했다. 하루종일 잘 만큼 피곤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를 먼저 걱정해준다. 목도 잠기고 허리도 아플 텐데도 나를 먼저 생각한다. 그것이 기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일 못 갔어.”

? 나 때문에? 아니면 어디 아파? 무슨 일이야?”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 걸까. 도망가고 싶었으나 도망갈 수 없었다. 몸이 아직도 불안정해 문고리를 잡아 열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망설임에 입술만 달싹이고 있는데 언니가 핸드폰을 조작해 안방 불을 켰다. 비명이 당연하게 터졌다.

높고 째지는 목소리에 온몸이 떨리는 것 같았다. 팔을 구성하고 있는 먼지들이 허공으로 파스스 흩어졌다 다시 달라붙었다. 그것 말고는 귀가 아프지도 않고 심장이 거세게 뛰지도 않았다. 비명이 어둠을 타고 창밖으로 나갔는지 어딘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하는 말이 들렸다.

지금, 지금 이게 뭐, 뭐야? 변이인가 뭔가 하는 그거야?”

언니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내게 가까이 다가올 듯 손을 뻗었다가도 다시 거둬들였다. 걱정과 공포가 뒤섞인 이상한 표정이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선이 내 눈만은 바라보지 않았다. 그게 서글프면서도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장 도망치지도 않고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지도 않았다. 그냥 놀라서 비명이 나온 거다.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아?”

아프지는 않아.”

언니는 두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나는 혹시라도 언니가 미세먼지를 마실까 끊임없이 호흡했다.

언니가 깨어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호흡을 한다는 건 꽤 귀찮은 일이었다. 언니랑 대화를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호흡이 멈춘다. 정신을 차리면 몸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이래서 많은 미세먼지 인간들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뭘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어?”

너 같은 괴물에게 내 도움이 필요하냐는 뜻으로 들리는 건 내 착각이고 자격지심이다.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이제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언니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많이 놀랐는데 괜찮냐고, 얼굴을 쓰다듬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심장이 옥죄이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럴 심장이 없으면서도.

언니는 괜찮아? 숨 쉬는 게 불편하지는 않아?”

? . 나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내가 일어났을 때 언니, 언니가 제대로 숨을, 내가, 너무 놀라서, 언니가 안 일어나서 얼마나, 얼마나.”

목소리가 떨리고 말을 더듬거렸지만, 울음기가 묻어나지는 않았다. 코가 막히거나 눈에 열이 몰리지도 않았다.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언니는 내 말을 듣고 놀라서 몸을 굳히더니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 듯 아예 벽을 보고 서 있었다.

내가 죽을 뻔 했다고.”

미안해.”

내 잘못이 아니란 걸 우리 둘 다 알지만, 사과를 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주먹을 강하게 쥐자 손안에서 손가락이 흩어졌다 붙기를 반복했다.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비명이 들린 곳을 찾아다녔던지 벨소리와 함께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세요? 경찰입니다. 혹시 비명을 지르지 않으셨나요?”

언니는 가만히 있다가 옷을 껴입고 성큼성큼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도 방문은 조심스럽게 닫아주었다. 그 행동에 언니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괜찮을 거라고. 그냥 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죄송해요. 바퀴벌레를 보고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질렀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바퀴벌레요? 정말입니까? 다른 일이 있는 건 아니고요?”

. 정말 죄송해요.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알려주세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방으로 바로 들어오지 않았다. 난 이 방 안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계속 이렇게 있을 수 있다. 먹지도 마시지도 잠을 자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않는다. 고통이나 피곤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일도 그만둔 채 언제까지고 이 방 안에서 살 수 있었다. 내 몸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호흡만 하면 그럴 수 있겠지. 그러나 언니는 다를 터였다.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회색빛의 괴물과 같이 살 수 있을까. 같이 산다고 해도 문제였다. 미세먼지 인간의 가족은 세금을 비롯해 각종 혜택을 받는다. 그저 그 지역에 살고 있기만 해도 지원금이 나오고 세금도 감면받는다. 미세먼지 인간의 가족이라면.

우리는 가족이 아니었다. 그저 옆집에 사는, 얼굴만 아는 남이었다.

내가 이 집에서 발견되고, 기사화되고, 미세먼지맨으로 활동을 한다면? 아무리 언론을 통제하고 정보를 막아도 입에서 입을 통해 나에 대해, 언니에 대해 알게 될 수 있었다. 왜 두 사람이 한집에 있었나, 둘은 어떤 관계인가. 관심이 쏠리고 파헤쳐질 것이다. 이런 걸 언니가 견딜 수 있을까? 평범함을 가장하려고 악착같이 노력하는 언니가?

문밖에서 언니가 이리저리 걷는 소리, 정수기에서 물을 따르는 소리, 다 마셨는지 컵을 닦는 물소리가 들렸다. 깊게 내뱉는 한숨소리도.

고개를 돌리니 하얀색 원피스가 보였다. 그 누가 봐도 웨딩드레스를 떠올릴 수 없을, 단정하고 특색 없는, 그저 하얀색이기만 한 원피스. 언젠가 셀프웨딩을 하자고 농담처럼 말하고, 그때 입을 웨딩드레스를 스스로 만든다고 이것저것 사서 가끔 바닥에 늘어놓고 꾸미지만, 그건 그냥 일종의 취미였다. 컬러링북, 페이퍼아트, 프랑스자수. 그동안 해왔던 취미처럼 금방 구석에 처박힐 그런 것. 조화로는 집을 꾸미고, 큐빅으로는 악세사리를 만들며, 레이스로는 에코백을 장식할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 재료비를 아낄 수 있어서 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

손이 단단해지기를 바랐다. 그러자 몸 안에서 무언가가 꾸물거리며 손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몸이 날아갈 듯 연해진 대신 손에 밀도 높게 먼지가 뭉쳐있었다. 그 손만을 써서 옷을 벗었다. 티 하나, 팬티 하나가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졌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언니 집에 내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내 집으로 건너가서 해결했다. 그게 참 다행이었다.

창문을 열었다. 한 뼘도 안 되게 열었는데도 옷보다 훨씬 무거워서 손가락 몇 개가 떨어져 나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다시 집중해서 손을 단단하게 하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호흡을 몇 번 하자 다시 손가락 형체가 불투명하게 생겼다. 그러다가 이제 호흡이 무슨 상관인가 싶어 멈추었다. 손의 형태 안에서 먼지가 별처럼 반짝였다. 어디선가 본 우주의 모습처럼 먼지가 너울거리고 빙글빙글 돌고 산개했다.

웃음이 나왔다. 고통 없이 죽는 것. 많은 사람이 꿈꾸는 일을 나는 할 수 있었다. 죽기 전에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괜찮았다. 맞아. 또 언제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 날아보겠어. 발걸음 소리도 없이 뛰었다. 시야 가득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날이 너무 좋았다.

 

작은 도트 무늬와 손톱을 뒤덮은 큰 하트가 어우러진 이달의 네일 열 개가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다. 너무 가벼워서 떨어지는 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묻히고, 지나가는 사람의 발아래 하트가 쉽게 으스러지고 말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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