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탈반

2020.01.15 15:3501.15

식수대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물이 입에 닿는 순간이다. 뒤에서 누군가 내 허리를 붙잡는다. 이어 자신의 하반신에 비비고 피스톤질 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M이다. 그는 씩 웃으며 내 엉덩이를 두드린다. 하지 말라는 말이 혀뿌리를 간질이다 이내 목구멍 뒤로 숨는다.

“뭐, 불만 있냐?”

“.......아니.”

나는 시선을 피하며 식당을 떠난다.

M은 날 괴롭히는 아이들 중 우두머리 격이다. 형은 오늘 나오지 않았다. 한 학년 위인 내 친형 말이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하루라도 그가 M과 그 무리들의 폭행과 성추행을 견디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므로. 그들은 형을 게이라고 놀려대며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고, 돈을 빼앗고, 성폭력을 가했다. 부모란 작자들은 오래 전에 각자 집을 나간 지 오래였고, 보살펴주는 보호자 따위는 없다. 형이 왜 게이라고 놀림 받는지 나는 안다. 내가 게이 포르노 사이트 주소를 형의 계정으로 형의 친구들에게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그때 형과 나는 기억나지도 않는 사소한 이유로 싸운 상태였다. 결국 형이 울면서 내게 사과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렇게 싸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매번 형은 울음을 터뜨리며 미안하다고 울부짖었다. 나는 형이 샤워하는 동안 그 사이트 주소를 형 친구들에게 보냈다. 그 이후로 형은 ‘유명한’ 게이가 되었다. 어딜 가나 게이라고 불렸고 욕을 먹었다. M이 그 놀림에 가장 주도적이었다.

형은 게이가 아니었다. 게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헤테로란 증거는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거실 한쪽에 놓아둔 컴퓨터 검색 기록엔 항상 포르노 사이트가 알지 못할 주소들-들어가면 페이지가 만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뜨는-사이에 끼어있었는데, 전부 남녀 간의 정사를 다룬 야동이었다. 어차피 야동 본다고 혼낼 부모님이나 어른은 없으니. 형은 여자친구를 사귄 적도 있었다. 짧게 두세 번 만난 게 전부이지만. 형이 들어간 포르노 사이트를 다 알고 있는 이유는, 나도 역시 야동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과는 좀 다른. 그러니까, 게이 포르노 말이다. 남자 둘이 격렬하게 섹스를 하는 내용의 야동들을 보며 나는 남몰래 성욕을 채웠다. 자위는 지겨웠다. 퀴어 커뮤니티에서 번개 할 사람을 찾는 게 내 주된 취미였다. 만나서 술이나 담배를 하기도 하고, 적당히 끌리면 섹스도 하고. 개중 대부분은 오럴 섹스지만. 어쨌든 나는 게이다.

형은 야자라고 늦게 올 터이다. 나는 가방을 침대 위에 내팽개친 뒤 거실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다. 컴퓨터를 키고 게이 포르노 사이트를 들어간다. 나는 급히 교복을 벗고 팬티를 내렸다. 쪼그라든 성기가 점차 부풀어 오른다. 나는 ‘teen’과 ‘twink’를 차례대로 옵션에서 체크한다. 나는 느긋하게 나를 위로할 생각이었다. 남자 둘이서, 아니면 그 이상이서 내뱉는 신음소리와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집안을 잠식해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사정의 순간에 도달하는 중이었다. 순간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 왔어. 형의 말에 나는 급히 팬티와 바지를 추어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정액은 튀어나왔다. 키보드와 책상까지 튄 정액과 형을 나는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연실색한 표정의 나를 형은 마주보았다.

“뭐하고 있었어?”

바지를 입다 만 상태였다. 얼른 바지를 추어올리며 나는 실수로 아이스크림을 흘렸다고 말한다. 형은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내 돌아서며 라면이나 끓여먹자고 한다. 나는 재빨리 휴지를 꺼내와 키보드와 책상을 박박 문질러 닦는다. 시발. 오르가즘에 닿을락 말락하다 추락한 기분이다. 부엌으로 향한다. 라면은 두 봉지밖에 남아있지 않다.

 

괴물이 다시 나타났다. 학교 안이었다.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맞은편 복도 끝에서 괴물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언제나 흐릿했다. 한 번도 선명히 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것이 내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미친 듯이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발소리는 점차 커졌다. 어느 순간 하반신에 한기가 돌았다. 내려다보니 성기가 덜렁이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하반신이 눈에 들어왔다. 괴물은 내가 입고 있었을 바지를 찢으며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다시 달리려고 했지만 두 발이 갑자기 슬로모션 버프에 걸린 양 매우 느릿해진다. 괴물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식은땀이 나고 긴장이 되었다. 누군가 심장을 쥐고 위 아래로 세게 흔드는 것 같았다. 온몸이 허공에서 허공으로 내던져지는 기분이었다.

세한아.

왼쪽 귓가에서 힘도 리듬도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할 수만 있다면 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괴물이었다. 다만 그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떡 진 머리는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탔다. 그날, 내 주먹에 깨졌던 안경이 깨끗했다. 그가 내 허리를 두 손으로 감싼다. 그 촉감에 나는 불에 덴 듯 놀라 빠져나왔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칼, 칼이 필요했다. 어디선가 칼을 판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칼이 있어야 그놈의 목을 찌를 수 있었다. 칼 좀 주세요! 나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소리쳤다. 칼.......

“학생, 학생!”

지하철 안이다.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바라본다.

“칼 필요해?”

한 남자가 끌카에 인 파란 상자에서 맥가이버 칼 하나를 꺼내 내 앞으로 내민다.

“칼, 칼. 그래, 칼이 필요해요. 죽이려면.......”

“오천원인데, 학생이니까 천원 깎아줄게.”

잡상인 남자는 내가 건넨 천원짜리 네 장을 얼른 채간다. 나는 그가 다음 칸으로 이동하는 것을 멀찍이서 지켜본다. 왠지 낯이 익다. 한참을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다 나는 구매한 칼을 살펴본다.

‘장미칼보다 더 단단하고 강한 칼! 무엇이든 자릅니다.’

나는 칼을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자기는 글렀다. 지하철이 정발산역에서 정차한다. 나는 가방을 앞으로 뺀 뒤 꼭 안았다. 대화역에서 내려야 한다. 주변을 살핀다. 이어폰을 낀 채 영화를 보는 여자와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라 적힌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는 남자 한 명이 전부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가방 주머니를 뒤져 약통 하나를 찾아낸다. 약을 한 알 먹는다. 그놈이 다시 나타날 줄이야. 그놈은 죽었는데. 분명.

 

“웬 칼이야?”

“필요해서 샀어.”

“누구 죽이기라도 하게?”

“말을 왜 이렇게 살벌하게 해.”

“장난이야.”

그리고 형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근데, 누가 알아, 진짜로 죽일지.”

“저리 가.”

나는 형을 툭 밀친다. 그는 러닝셔츠만 입고 있었다. 팔과 등에 멍이 가득했다. 아까 집에 막 들어설 땐 명치를 맞았다며, 물을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몇 컵이나 들이킨 뒤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숨을 쉬었다. 나는 다시 신고하자고 했지만 형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랬다간 더 심하게 할 거야.

“아직도 놀리고 그래?”

“게이라고 아직도 놀리지. 시발, 욕을 해도 그런 더러운 욕을 하냐.”

“뭐가 더러운데?”

“게이 말이야. 차라리 창녀나 씨발새끼가 낫다.”

나는 입을 다문다.

“미안. 괜한 소리 했다.”

“형은 맨날 나한테 뭐가 그렇게 미안해?”

내 물음에 그는 잠시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보았다.

“그냥. 형으로서, 못해준 게 많으니까.”

그의 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밤 12시가 넘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퀴어 커뮤니티 ‘이반, 삼반’에 접속한다. 자유게시판, 연예게시판, 공부 게시판, 번개 게시판 등등 여느 커뮤티니와 다를 바 없다. 다만 게이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 그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나는 로그인을 한 뒤 게시물들에 몇 차례 댓글을 단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게시판은 소설 게시판이다. 제목이 ‘항문을 열어라’인 소설을 클릭한다. 읽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낀다. 뭐 이딴 빻은 글이 있지. 댓글들 역시 퀴어가 퀴어 혐오하는 글 썼다면서 난리도 아니다. 나는 게시판을 나온다. 자유게시판에서 댓글로 떠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한다.

‘탈반하고 싶은 인간들 들어와라.’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나는 게시물을 클릭한다.

붉고 진한 글씨체로 ‘강령술이야. 조심해.’ 라고 적힌 문구가 보인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들어가려던 포르노 사이트를 닫고 그 게시물을 읽기 시작한다. 주요 내용은,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강령술이라고 한다. 나는 아래로 스크롤을 계속해서 내린다. 준비물도 복잡하다. 과정도 까다롭기 그지없다. 맨 밑의 세줄 요악을 먼저 읽는다.

 

1번,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로 바꿀 수 있음.

2번, 존나 위험함.

3번, 하지만 성공하면 님들 똥꼬충 소리 안들을 수 있음

 

황당하기 짝이 없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댓글을 마저 읽는다. 정확히 두 부류였다. 진짜 믿는 사람과 속아주는 척 하는 사람. 나는 본문을 다시 천천히 정독했다. 프로필 사진을 확인한다. 누가 봐도 예쁜, 여자였다. 하지만 예쁘다, 그 정도였다. 성적으로 끌리거나 사랑이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핸드폰 화면 캡쳐로 프로필 사진을 저장했다.

핸드폰을 끄고 불도 끈 채 침대에 바로 누웠다. 천장이 정면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인생을 나름 추측해본다. 뭐 게이라고 해서 남들과 다를 건 없겠지만....... 다를 건 없겠지만, 아니, 다르다. 내가 서른살 쯤 되면 동성결혼 법제화가 이루어져 있을까, 군대에 갈쯤 되면 차별금지법이 제정될까. 누구의 고민도 아닌 동시에 누구들의 고민이다. 그때도 퀴어축제는 열릴까. 나는 갖은 상상을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놈이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린다.

 

형이 떨어진 건 3교시가 막 시작되었을 즈음이다. 국어 시간이었고, 몇 명의 열심인 애들을 제외하곤 전부 딴 짓을 하거나 졸았다. 나는 오늘 새벽에 본 강령술 글을 다시 읽으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찰나, 헉! 누군가가 소릴 질렀다. 금세 아이들의 이목이 그 애에게로 향했다. 사람이, 사람이 떨어졌어요. 그 애의 목소리가 떨렸다. 학생들 모두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누군가 떨어졌다. 사지는 기괴하게 뒤틀렸고 머리에선 피가 흘러나온다. 나는 1층 화단으로 뛰어 내려가는 아이들 뒤를 쫓아간다. 벌써 떨어진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든 상황이다. 나는 사람들 속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불길한 예감이 한순간 엄습해온다.

형이었다.

나는 형임을 확인하자마자 옥상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옥상 문은 잠겨 있다. 형은 어떻게 들어간 건지 알 수 없다. 나는 과학실로 달려간다. 동아리 시간이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드론을 한 개씩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선생에게 말한다. 잠깐, 아주 잠깐이면 되니까 옥상에 드론 올려 보내면 안되겠느냐고. 내 형이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선생은 허락했고, 나는 이름 모를 아이와 함께 드론을 옥상으로 날린다. 화면에 비친 옥상엔 아무도 없다. 범인이 없다는 얘기였다. 다만 종이뭉치 하나가 바람에 휘날린다. 나는 과학실을 나온다.

 

수술을 마쳤지만 형은 의식이 없다. 밤이다. 선생과 학생 몇이 다녀간 뒤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산소호흡기를 낀 채 미동도 않는 형을 옆에서 내려다본다. 나는 가방에서 종이뭉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종이뭉치는 자필로 적힌 형의 유서다. 형이 지금까지 당한 폭력에 대해 아주 세세히 적혀있다. 마지막 문장이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게이가 아니다.’

나는 중간중간 호흡을 멈추고 읽어야 했다. 심장이 느닷없이 빨리 뛰었다. 고개를 숙였다.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미안해, 형. 그 순간 핸드폰 진동음이 울린다. 나는 재빨리 전화를 받는다. M이다. 그는 8명이면 충분할 것 같다면서 현재 병원 앞이라고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올라와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잠 든 틈을 타 M과 몇 명의 아이들이 병실로 들어온다. 1인실이라 달리 주의해야 할 사람은 없다. M과 아이들은 형을 휠체어에 앉혔다. 산소호흡기와 링거 주사도 모두 뺐다. 우리는 서둘러 새벽의 병원에서 탈출해야 한다. 나는 형의 머리에 모자를 깊숙이 씌운다.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1층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M의 친구들이 우리를 도왔다. 미리 대기해놓은 스타렉스에 올라탄 나는 집으로 가자고 했다.

우리 집까지 형을 옮긴 뒤에서야 나는 숨을 돌렸다. M은 아이들에게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 집 안을 살피며 존나 작네, 중얼거린다. 방은 그래도 두 개네. 나는 화장실로 가자고 말했다. M은 형의 방을 가리키며 여기서 해달라고 말했다. 나는 싫다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바로 주먹이 날아왔다. 머리는 식탁 모서리를 가까스로 피해 바닥에 부딪혔다. 그는 바지와 팬티를 벗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난 게이는 아니고, 그냥 남자가 해주면 어떤가 궁금해서. 근데 내 전여친 시발년들보다 잘 하네. 앞으로 종종 부탁해?”

M이 사례가 들린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문이 닫히고 도어락이 잠겼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침대 위에 눕혀놓은 형을 바라다보았다. 핸드폰으로 강령술에 관한 그 게시물을 다시 천천히 읽었다. 준비물은 이러했다.

제물이 될 사람, 잘라낸 귓불, 소금주머니와 칼, 각서 및 계약서. 그리고 피 등 기타.

나는 서둘러 준비를 마쳤다. 나는 형을 정면에 두고 앉았다. 귓불을 잘라내야 했다. 귀신에게 최소한의 공물을 바쳐야 한다면서. 글쓴이는 신체부위를 잘라낼 때 가장 아프지 않은 곳이 귓불이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가위를 귓불 근처로 가져갔다. 손이 떨렸다. 이게 무슨 짓이지, 하며 문득 회의감이 밀려왔다. 나 뭔가에 홀린 것 같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가위를 내려놓았다 들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하지. 나는 게시물을 다시 읽었다. 댓글들은 계속해서 새로 추가되고 있었다. 이따 후기를 올리겠다느니, 다 뻥이라느니,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느니 등등. 게시물에선 무엇보다 본인의 ‘이성애자가 되고 싶은’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다시 가위 날을 귓불에 갖다 댄다. 하나, 둘,

셋, 나는 비명을 지른다. 잘려 나온 귓불은 조그만 살덩이에 불과하다. 나는 이어 형의 귓불도 잘라낸다. 나는 그 둘을 물에 타고 주문을 외운다. 라틴어인 때문에 게시물의 한국어로 적힌 라틴어 발음을 그대로 읊는 수밖에 없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안된다고 했다. 잘못하면 악령을 불러낼 수도 있다고. 나는 틀릴 때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겨우 다 읽었다. 그 다음,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촛불 두 개만 켜놓는다. 소금물을 입에 가득 머금는다. 40초 동안 숨을 참아야 했다. 그래야 귀신이 나타나도 사람인줄 알고 잡아가지 않는다고. 40초는 매우 길었다. 나는 속으로 시간을 재촉하며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삼십 칠, 삼십 팔, 삼십 구, 사십. 나는 그대로 소금물을 내뱉는다. 그 다음 지하철에서 잡상인에게 산 칼을 집어 든다. 손등에 칼끝을 갖다 대고 조금씩 긋는다. 핏방울이 배어나온다. 나는 귓불이 담긴 물에 핏방울을 떨어뜨린다. 형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죽은 건 아니겠지. 나는 중간중간 형의 상태를 확인했다. 눈물이 밀려나왔다. 미안해, 형. 하지만 형은 이미 게이라고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깨어나봤자 곧 죽을 거잖아. 날 위해 희생해줘. 나는....... 더 이상 게이로 살고 싶지 않아. 지긋지긋해. 사람들의 동정과 연민, 혐오와 차별, 전부 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차라리 귀신이 되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미리 작성한 각서와 계약서를 가져온다. 각서엔 ‘이 모든 의식을 행하기 전 단 한 명의 사람도 죽인 적이 없는 순수한 몸임을 증명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나는 손등을 훑어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피를 묻힌 뒤 지문을 찍는다. 아래에 여백을 비워두었다. 귀신이 잘라갈 곳이다. 다시 게시물을 읽는다. 놓친 게 없는 지 꼼꼼히 확인한다. 그리고 계약서. 저희의 제물을 가지시고 저주를 바꿔주소서. 저주란, 동성애자로 태어난 것을 의미한다. 나는 각서와 계약서를 모두 깨끗한 물에 담갔다. 글자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귀신이 읽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는 종이의 글자들을 노려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종이들은 백지가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한다. 108배, 무슨 귀신이 절을 받나 싶지만 게시물에선 불교에서 열반에 오르지 못한 스님이 귀신이 되어 맡는 강령의식이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믿어야 했다. 그래야 나는 이성애자가 되고, 형이 동성애자가 되므로.

잠시 눈을 감고 뜬다.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 한다. 그 남자가 앞에 있었다. 중학생 때 교회에서 주최한 동성애 치유 캠프에서 만난 남자였다. 우리는 조별로 나눠 한 달 동안 성경공부를 하며 탈동성애 치유를 받았다. 그놈은, 남자는 내가 속한 4조의 멘토였다. 그는 친절했다. 자상했고,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무엇보다 서로 잘 맞았다. 성격도, 흥미 면에서도.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고, 마침내 그와 사랑을 나누기까지 했다. 스물넷의 몸 좋고 얼굴도 잘생긴, 무엇보다 내 취향인 남자였다. 그러나 섹스는 하기 싫었다. 그때의 나는 반드시 동성애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한 ‘열혈환자’였다. 죄책감이 더 이상의 관계를 가로막았다. 남자는 계속해서 나와 성관계를 가지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리고 이를 집사에게 알렸고, 그놈은 바로 캠프에서 쫓겨났다. 물론, 그냥 쫓겨난 것은 아니었다. 사과를 빌미로 나를 불러낸 뒤 나를 강간했다. 그리고 내가 경찰에 신고한 뒤 잡힐 뻔 한 날, 그는 다니던 학교 옥상에서 투신했다.

“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

나는 게시물을 다시 확인했다. ‘잘못 읽으면 악령을 불러낼 수 있음.’ 내가 잘못 읽었나. 머릿속이 혼돈의 잔해로 가득했다. 온몸이 긴장되어 손가락 하나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놈은 반투명해서 건너편이 그대로 내보여졌다.

“안녕.”

그의 목소리는 손가락으로 칠판을 긁는 듯했다.

“오랜만이네.”

“씨발놈, 씨발놈, 씨발놈. 꺼져.”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이런 강령술, 좋지 않아. 그리고 뭐? 동성애와 이성애를 바꿔?”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침묵을 할퀴어댔다.

“너 그건 아냐? 너, 원래 이성애자였어.”

“아니, 나는 동성애자.......”

“그래그래, 이성애자여도 퀴어일 수는 있지. 그런데 말야, 너는 비퀴어 이성애자였다고. 네 형은 동성애자고 말이야.”

“우리 형은 게이 아니야. 사람들이 놀리는 것.......”

“이 의식, 네 형 옛날에 한 번 했었어. 그러니까, 한 마디로 네 형이 옛날에 선수쳤다는 얘기야. 원래는 네가 이성애자고, 네 형이 동성애자였다고. 그리고 형이 이 의식에 성공해서 네가 동성애자가 된 거고.”

“그게 무슨 소리야. 거짓말 하지 마.......”

“진짜야.”

“거짓말.”

“진짜래두.”

나는 형하고 싸울 때마다 형이 울면서 내게 미안하다고 했던 장면을 생각해낸다. 분명 내가 잘못한 상황이었는데도 형은 항상 미안하다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허상일 뿐이었다. 그를 쫓던 내 칼은 형의 심장에 정확히 꽂혔다. 형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쳤다. 너무 놀라 비명 한 톨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불쌍해라. 난 귀신이라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고.”

나는 주저앉았다. 허탈함이 몰려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내가 묻는다.

“처음 그 탈동성앤지 뭔지 하는 캠프에서 만난 게 네 형이야.”

불현듯 형이 한 말이 떠올랐다. 캠프를 가기 전 날, 몸 조심히 오라고. 그리고 캠프를 갔다 온 날. 어디 이상한 사람은 없었냐고. 나는 양 귀를 틀어막았다. 오한이 났다. 전신이 떨리고 두 가슴이 차례로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의식은, 이 의식, 실패한 거야?”

“아니. 108배니까 마저 더 해.”

그가 킥킥킥, 웃으며 말한다.

“마저 더 해!”

그가 소리친다. 나는 칼을 집어던진다. 잡히는 대로 그놈을 향해, 형을 향해 내던졌다.

“다 필요 없어. 둘 다 죽일 거야.”

“난 이미 죽었는데?”

“그럼 나도 죽어서, 똑같이 귀신 돼서 괴롭혀주지.”

나는 내던진 칼을 찾아 주운 후 손목을 마구 긋기 시작했다. 아픔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손목을 긋고 자살하려면 거의 붉은 살을 쑤셔야 한다는데. 픽, 하고 피가 튄다. 시야가 기울어진다. 세상이 뒤집어진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간다.

 

“쉬고 왔으니까 잘 좀 해주고. 알았지?”

담임이 조례를 끝냈다. 아이들이 내게로 몰려든다. 무슨 일이 있던 거냐고. M은 제 자리서 나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그냥, 좀 다쳤어. 형 보살펴주다가.”

나는 핸드폰 갤러리를 들어가 사진 하나를 클릭한다. 커뮤니티에서 강령술 게시물을 올렸던 그 여자 사진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아, 그리고 나 여자친구 생겼어.”

나는 헤헤 거리며 웃었다. 화면이 일순 꺼졌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다시 핸드폰을 켠다. 사진을 다시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여자는 여전히 예뻤다. 그녀에게도 한쪽 귓불이 없다. 핸드폰을 쥔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그리고 미소를 띤 얼굴로 묻는다.

“예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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