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초보만

2020.01.10 17:3101.10

초보만

 

발사대를 따라 배관이 휘감겼다. 관을 따라 일제히 초저온의 액체 헬륨이 주입되었다. 로켓은 둔중한 진동과 함께 짙은 수증기를 쉼 없이 뿜어냈다. 화살촉 모양의 대가리로부터 이어진 그 매끈한 외양은 광택을 두른 맑은 은색이었다. 햇살이 그것을 두들길 때마다 그야말로 섬광이 번쩍번쩍 퉁겼다. 멀리서 보면 커다랗게 곧추선 부엌칼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보다 수만 배 이상 복잡하고, 또 그보다 수천 배 이상 위대한 업적을 막 이루려는 차였다.

하늘은, 발사일로 지정된 만큼 당연한 일이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했다. 저지선 너머로는 안테나를 단 중계차와 갖가지 영어 이니셜을 단 방송국 직원들이 가득했다. 그 밖에도 각계각층의 유명인사와 저명한 석학, 사비를 털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자 걸음한 일반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더 있었다. 다른 이들이 있는 곳보다 좀 더 낮고 보잘것없는 곳. 그러나 그만큼 더 은밀하고, 더 가까운 곳에 기척을 죽인 채로.

“적응훈련을 마쳤지만 여전히 힘드네요.”

둘 중 좀 더 어린 쪽이 입을 가리며 내뱉었다.

“믿을 수가 없어요. 내 스스로 이 부식성 대기를 삼켜서, 그게 시시각각 내 몸을 산화시키도록 내버려 두다니.”

말마따나 그는 숨을 들이고 내쉴 때마다 지푸라기가 목구멍을 푹푹 쑤시는 것처럼 굴었다.

“좀 참게. 여기까지 와서 그러기 있나? 자네도 나도 피차 빨리 끝내고 떠나자고.”

좀 더 나이가 든 쪽이 사근사근 동료를 타일렀다. 그렇게 당부하면서도 그의 눈은 줄곧 발사 대기 중인 로켓에 고정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거체. 어떤 무작위라도 용납될 수 없으리만치 정교한 복잡성. 그보다도 더욱 위대한 화학 추진체의 힘. 순식간에 행성을 벗어나 진공을 찢어발기며 전진할 기술의 괴물. 돌이 무너져 생긴 모래와 열복사의 부산물로 생겨나는 바람조차 아직 움트지 않은, 어리고 가녀린 세계에 그네들의 깃발과 발자국을 새겨넣을 정복의 척후병.

한편 식(式)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신사 숙녀 여러분. 인류 최초 성간 유인우주선의 발사를 현재 우리는 앞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순간에…!”

따분한 소리가 몇 마디 더 이어지고 모인 이들이 그에 응답했다. 손바닥 부딪히는 소리는 그야말로 천둥처럼 웅장했다. 그 열띤 환호가 모든 진동과 기계 돌아가는 것과 마이크를 쥔 기자들의 멋들어진 클로징 멘트마저 잡아먹었다. 이를 훔쳐 듣던 두 사람이 어색한 눈빛을 교환했다.

 

“소름이 다 끼치네요.” 젊은 것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쪽도 묵묵히 동조했다.

“이들에겐 아직 이런 것들이 먹히니까.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에 응답하는 박수가 단일하면 단일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만큼의 실수를 이미 하지 않았나요?” 젊은 것이 머리를 흔들었다.

“이것은 당위성과는 관계가 없다네. 오히려 생리작용이나, 감각적인 차원의 쾌(快)에 가까운 게야. 이들에게는. 그러니 우린 이해할 수 없는 것이야. 그러나 혐오하고 무작정 꺼려서도 안 되네. 우리의 전쟁학을 있게 한 성현들을 위해서라도.”

다소 엄한 투로 그는 말을 끝맺었다. 젊은 것은 흐린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네. 그래야죠. 하지만… 모르겠어요. 정말 이들의 몸을 입는 게 좋은 선택이었을까요? 다른 수단이 있었다면.” 그는 말끝을 흐리며 넌지시 마무리를 넘겼다.

“그런 게 있었다면 나도 얼마나 좋았겠나. 이 나이에 의식 전이라니.”

그는 팔을 괜히 들썩거렸다. 어디서 깃털이라도 풀풀 날릴 것처럼 경박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 말 들었잖나. 녹은 물과 유독한 산화 가스로 충만한 행성이라니. 애초 이런 곳에 생명이 있으리라 생각하질 않으니 달래 연구도 없었지. …이제 조용히, 저길 보게.”

동료의 턱짓에 젊은 것이 고개를 돌렸다. 두 명의 인간이 나란히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젊은 것의 입이 미끄러지듯 벌어졌다. 등 근육이 수축하며 어깨와 팔뚝이 끌려 올라왔다. 단 한 번도 실제 인간의 몸으로 ‘살아본’ 적이 없음에도, 그들의 몸은 원형의 정서 반응을 적절히 모사했다.

“저게, 그럼. 이들의….” “폭력 투사 기구라네. 맞아.”

두 쌍의 눈길이 경비원의 허리춤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홀스터에 담긴 채 개머리 일부와 공이를 드러낸 것은 수수한 디자인의 권총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급격한 산화 반응으로 말미암아 물질의 부피를 팽창시키고, 그 힘을 고형체에 고스란히 전달하여 빠른 속도로 밀어내지.”

그는 힐끗 젊은 것을 곁눈질했다. 입밖으론 내지 않았지만 걱정스런 기색이 엿보였다.

“세상에,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정말… 어떻게 저럴 수가.”

젊은 것의 손등에서 작은 털이 부숭부숭 일어났다. 얼굴 위편과 목 뒤편에선 작은 방울들이 배어 나왔다. 동료는 그것이 어떤 정서 반응인지 잠시 헤아렸으나 잘 떠오르지 않았다.

“폭력을 전쟁에 접목시키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 이상이지. 이들의 전쟁은 그 자체가 곧 폭력의 연장선에 있어. 어떻게 하면 더 크고 무서운 폭력을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투사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이들 전쟁학의 골자지.”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요? 그럼 우리의, 아니 다른 모든 우주의 전쟁학은 이곳에선 피어나지조차 못했겠군요?” 젊은 것이 경악스럽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전쟁학의 기본 원리는 생명과 체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기 마련이라네. 다만 이들의 경우 이를 하나로 묶어주는 담론과 그 수요가 없을 뿐. 가령 이들 세상의 미학이나 수사학, 분석철학의 일부 분파가 우리 전쟁학 구성 요소의 극히 일부를 담고 있지. 갈가리 찢어진 명제와 매개를 찾지 못한 변인의 형태로.”

“철학이라고요? 생각하는 법을 훈련하는? 우리 고향에서처럼”

젊은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그렇다네. 이들에게도 철학이 있어.”

“철학을 고안할 정도의 문명이 어떻게, 고도로 정교화된 폭력을 그대로 전쟁학으로서 추대하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한 겁니까?”

“놀랄 것도 없네. 나도 처음 이 행성에 대해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기모의 4단계 이론은 알고 있겠지?”

“네, 폭력을 전쟁학의 대체재로 삼는 문명에서, 아니 그 유일한 실례로서 현재 확인된 이들, 인간들이 무기를 자각하는 관념이죠.”

젊은 것은 낮게 중얼거렸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것처럼 들렸다.

“1단계,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물리량을 이용한 적대적 환경 조성. 2단계, 이를 통한 생물학적 및 심리적 고통을 상대에게 가함. 3단계 상대의 본래 의사(意思)를 말소하거나 뒤틀어 자신과 합치하도록 조정함. 4단계이자 마지막, 폭력투사의 목적. ‘승리’ 즉 상대의 본래 의사를 알맞게 조정하는 것을 달성함. 하지만….”

동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책망한다기보다는 얕은 공감에 가까웠다. 누군가 한때 자신 또한 걷던 길을 답습할 때 그것을 보면서 지을 법한 눈웃음.

“여전히 이해는 안 되지?” “네!”

쌓인 게 많은지 젊은 것은 대뜸 고성을 내질렀다. 마침맞게도 재차 떠들썩한 박수 소리가 그것을 감추어주었다.

“전쟁학의 기본 목적은 이곳에서도 같은 게 맞죠? 나와 의사가 다른 자를 감화시키는 것. 그렇다면 왜 그 정서와 의지에 직접 작용하지 않고, 대신 육체적 고통을 매개하는 수단을 택한 건지 이해가 안 돼요.”

“거기에 대해선, 나도 지금처럼 척척 답을 주진 못하겠구만.”

그는 긴 수염을 만지며 하기에 딱 좋은 대사를 입에 담았다. 긴 한숨이 그 뒤를 따랐다.

“어쩌면 일부 극단론자들의 주장이 정말일지도 모르지. 이들에겐 자신의 승리와 상대의 파괴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는 소리 말이야.”

 

젊은 것이 몸을 떨었다. 눈빛이 갈팡질팡 떠돌았다. 동료의 얼굴이나 손끝을 훑다가도 이내 전혀 다른 곳으로 숨었다. 갑자기 로켓 발사를 둘러싸고 이는 모든 요란과 떠들썩한 환호가 두꺼운 벽 너머의 일처럼 느껴졌다.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건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왜? 내가 ‘세뭄테’들 같은 소릴 해서?”

아 좀! 젊은 것은 몸서리치며 내뱉었다. 비좁은 귓구멍을 검지로 박박 긁어냈다. 외이가 벌겋게 부어오르는 색다른 감각이 그의 머릿속을 내달렸다.

“굳이 그걸 꺼내야겠습니까? 일부러 말 안 하고 있었는데.”

“그 혐오에 찌든 놈들이 하는 말을 다 들을 필요는 없지. 그렇다고 전쟁학의 공리마저 무시할 셈인가? 모든 의사는 원론적으로 정합하다. 각각의 모든 맥락은 원론적으로 개별하다. 어떤 보편자도 거기에 들이댈 수 없다. 이들에겐 이들 나름의 개연이 있을 수도 있지. 겪은 고유한 환경압과 진화과정을 따라가면 알 수 없는 일이야. 정말 그러한 결핍을 겪었을지도.”

“아, 알았어요. 그래요. 우주는 넓으니까 어딘가엔 정말 그런 종족이 있을 수도 있죠. 실제로 여기 있을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제가 너무 선입견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제 말은, 아까부터 계속 어떻게, 어떻게 타령만 하는 것 같은데.”

실로 옳은 말이었다. 동료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제 막 성간항행법을 개발하고 행성 부양한계선을 넘은 이들이에요. 우등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뒤떨어지는 부진아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의 문명이 어떻게 가장 기초적인 전쟁학적 감식력조차 없을 수 있죠?” “다 폭력의 환상 아니겠어.”

그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통제된 폭력이라는 환상. 아니면 믿음? 내가 폭력을 오롯이 통제할 수 있다는. 어떤 자기 이익적 동기도 뒤섞이지 않은 순수한 이성이, 수단으로의 폭력을 철저히 길들이리라는 믿음.”

“그것 참 괴상하네요.”

젊은 것이 코웃음 쳤다. 인간의 몸을 ‘입었음’에도 제법 자연스러웠다.

“목줄을 채워 뭔갈 내게 속박한다 해도, 그 뒤부터 내 손을 거기서 뗄 수 없어지는 건 피차 마찬가지인데.”

“글쎄. 어쩌면 위대한 도전일지도 모르지.” 말투가 꼭 누구에게 고백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네?” “쉿. 이제 그만 하지. 거의 다 되었네.”

그는 로켓을 가리켰다. 그리고 과연 그의 말대로, 발사가 임박했다.

크고 복잡한 일일수록 정작 그 준비가 더 거창한 것은 이상할 게 없었다. 이제까지 이어진 온갖 요란한 식과 각계각층의 야단법석이 거짓말처럼 정작 본편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하긴 기계적으로 혹은 전산적으로 이미 수백 수천 번은 더 시뮬레이트된 절차였다. 발사는 그렇기에 특별할지 몰라도 고유할 순 없었고, 때문에 모든 게 척척 들어맞지 않으면 애초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되었다. 삽시간에 배관이 텅 비고 자잘한 지지대들이 거둬들여졌다. 로켓은 어느 때보다도 에너지로 충만하여 그르렁거렸다.

“10, 9, 8, 7!”

군중이 소리높여 초읽기에 들어갔다. 둘은 숨죽인 채 일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젊은 것이 기계를 꺼내 들었다. 일회용 종이컵만 한 크기에 길쭉한 손잡이를 별도로 달고 있었다. 몸통에는 전파를 들이고 내는 접시, 정보를 시각화하는 얇은 디스플레이, 이런저런 제원을 입력하고 또 값을 변경하는 자판이 있었다. 군중이 읊는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바닥을 때렸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자세를 잡았다. 곧 뼈까지 쥐어짜는 어마어마한 진동이 둘을 덮쳤다. 깜빡 짓뭉개져 그대로 바닥의 얼룩이 되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예상했고 또 대비한 바였다.

“지금이야, 입력해!” “네!”

기계는 단조로운 멜로디로 필요한 모든 항이 입력되었음을 알렸다. 곧 계산이 시작되었다.

 

둘은 진동이 가라앉고 한참이 지나서야 제대로 주위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얼핏 모자나 스카프 따위가 훌쩍 뛰었다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래편에선 사람들이 흥분에 겨워 펄쩍펄쩍 뜀뛰기를 했다. 그러나 정작 시야가 걷히고 보게 된 그런 광경이야말로 그들에겐 진정 두려운 것이었다. 이 행성에서 둘을 진정 괴롭게 만드는 건 언제나 그랬다. 천둥이나 화학 추진체의 떨림과 같은 자연물 대신 수백, 수천의 의사가 모여 경악스럽게도 이루어내는 단일한 의식 구조의 집합. 어떤 요철도 어긋난 모서리도 허용치 않고 도려내 버리는 그 무정한 집단성. 소리로 이루어진 이빨이 머릿속을 잘근잘근 물어뜯는 감각에 둘은 고통 받았다.

「예상 궤도 산출되었습니다. 방해물 결집을 시작하기 위해선 사용자 인증이 필요합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쪽은 제 머리를 부여잡던 젊은 것이었다. 기계를 확인하자 아이도 알 법한 쉬운 그래픽으로 로켓의 예상 궤적이 드러났다. 한편으론 붉게 표시된 점들이 대기권 곳곳에 나타났다. 초속 십여 킬로미터란 속력은 인간의 기준으론 까무러치도록 빨랐지만 기계의 관점에서, 그리고 행성의 관점에서 보면 하품보다도 느렸다. 젊은 것은 화면을 조작하여 몇몇 빨간 점을 선택했다. 그것들의 예상 경로를 표시한 점선이 적절한 위치와 속도로 로켓의 그것과 겹쳐지도록 만들었다. 충돌을 모사하는 들쭉날쭉한 성게꼴 기호가 화면을 메웠다.

“조심하게. 세부 사항 어기지 않도록.”

“걱정 마세요. 이들은 자기네 우주 쓰레기가 어쩌다 일으킨 사건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젊은 것은 전에 없이 확신에 차 있었다. 동료는 왠지 뜨뜻미지근한 기분이 되었다. 전자기기와 그것을 사용하는 신세대,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보는 손윗사람이라는 상황 자체에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괜히 인간의 헛기침을 하며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다른 사항도 물론 유념해두었겠지?” “물론이죠.”

시원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듣기는 좋았다.

“발사 시도를 좌절시키되 치명적인 수준의 폭력은 엄금할 것. 그것이 의도적이건 우발적이건 간에.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올 충돌지점은 최대한 피했습니다. 가령 연료가 연쇄 산화를 일으킨다거나, 이들이 설치한 중추 시스템이나 탈출 기작이 망가지지 않도록. 동체는 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지되 파일럿들은 멀쩡할 겁니다. 그리고….” 젊은 것이 말을 늘였다.

그리고? 그리고라니?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다른 지령이 있었던가?

“이 행성의 누구도 폭력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라는 명확한 지시가 내려와 참 다행입니다. 설령 그게 우리 손이 아니라, 저들의 기계, 화학적 공예에 의해 유발된 거라고 해도요.”

 

흐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그것이 어떤 정서 반응에 말하자면 연결되었는지도 모르면서. “왜?”

동료의 물음에 젊은 것은 허를 찔린 것처럼 반응했다.

“왜 다행이냐고요? 그건, 간접적인 폭력의 투사잖아요. 게다가 전 이들이 아무리… 기형적이라고 해도. 그게 우리한테 이들을 단죄할 자격이 있다고는 생각 안 하거든요. 물론 원칙적으로 어느 누구도 다른 아무나를 단죄할 자격은 없겠지만요.”

“조만간 그렇게 될지 몰라.”

그는 얇은 껍질을 까듯 말했다.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진 로켓과, 그 뒤를 따라 커다란 바늘땀처럼 치솟은 연무를 보며. “예?”

“조만간 우리는, 어쩌면 우리 둘이 아니라 정상적인 전쟁학을 배운 모든 이들이 말야. 아무런 자격도 없이 이들에게 ‘단죄’를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젊은 것은 눈꺼풀만 끔뻑거렸다. 속눈썹이 저들끼리 비벼지고 맞물리고 쉴 새 없이 몸을 섞는 그 모습마저 강하고 침략적이었다.

“이들과 우리의 차이점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지. 우리가 폭력에 단단히 채운 당위성이라는 족쇄를 풀어준 것. 이건 좀 웃긴 말인데, 사실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 대다수는 자기가 어떤 자격이 있거나 상대를 단죄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럼, 왜 그러는 거죠?” “승리하기 위해서지.”

그는 주먹을 하늘로 쳐들었다. 젊은 것이 의뭉스런 눈길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하늘하늘 늘어진 손가락을 쥐고 펼쳐보았다. 수수깡을 꺾어 구부리듯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이것 보게. 자네와 달리 난 의식 전이를 몇 번이나 거치고도 심리 도식을 유지할 만큼 약하지 않아. 이 동작은 육신에 새겨진 경향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거야. 손가락을 단단히 모음으로써 타격력을 응집하고 상대에게 내지르는 행동. 그 준비 동작인 이 상태가 인간에게 대표적인 폭력의 표상이라는 것은 알고 있나?”

젊은 것은 모호하게 몸짓했다.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동료는 받아들였다.

“승리라는 관념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관찰하게. 순환계가 들뛰고, 근육이 팽팽히 땅겨지고, 주먹을 쥐지. 곧장 누군가를 찾아 이를 휘둘러야 할 것처럼. 이들에게 승리와 폭력은 이만큼이나 뗄 수 없는 관계야. 그렇기에 이들은 아주 그럴싸한 당위성이나 명분 없이도 폭력을 이용하는 거야. 이해가 되나? 아까도 말했지만 이들의 승리는 우리와 똑같아. 상대의 의사를 말소하거나 이쪽에 유리하도록 바꾸는 것. 거기에 다다르기 위한 절차로서 이들은 폭력을 내세웠고, 그 까닭에 우리만큼 엄격하게 폭력을 억누를 수 없지.”

“그렇군요….”

그는 애초 이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조차 떠올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말줄임표를 누덕누덕 깁다가 가까스로 맥락을 붙잡았다.

“그래서 그게 무슨, 혹시 아까 위대하다던가 하던 말이랑 관련이 있나요? 발사 직전에.”

“집중하고 있는 게 보기 좋구만.” 그는 정말 기분이 좋은 것처럼 굴었다.

“맞아. 기억났어요. 정확히는 ‘위대한 도전’이라고 했죠. 근데… 인간들이 어떻게 위대해질 수 있어요?”

좀 더 해보게. 같은 몸짓으로 그는 젊은 것을 채근했다.

“그래요. 우리와 목표가 같은 건 알겠어요. 그렇다 한들 그 수단으로 폭력을 택한 건 변하지 않잖아요. 줄기가 뿌리를, 잎사귀가 줄기를, 열매가 잎사귀를 어떻게 거역할 수 있죠? 이들은 위대함이 아니라 강력함을 택했고 그래서 위대해지지도 못할 거예요. 그저 강력해질 뿐.”

“이젠 자네가 세뭄테같은 이야길 하는군그래.”

빙그레 웃는 동료에게 젊은 것은 언짢은 듯 흰자위를 드러냈다.

“그 이름 좀 그만 말하면 안 될까요.” “그러지. 불편하다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이지, 각자의 렌즈가 있고 그 틈으로 해석하는 가치와 기준이 있단 말이지. 이들이 생각하는 위대함이란 곧 강력함인 거야. 그리고 이들이 충분히 강력해지면 결국 우주의 나머지도 그 기준을 받아들여야 할 거라고.”

이젠 툭툭 던지는 말마다 반응하는 것도 지쳤다. 젊은 것은 그저 동료가 말을 이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생각해보게. 이들이 폭력의 길을 걸으며 터득한 온갖 기예를 좀 봐. 우리가 동력을 만들기 위해 1000년이 넘도록 어르고 달래는 우주의 힘을 이들은 단 천 분의 일 초 만에 훑어내릴 수 있다네. 그 결과로 커다란 구덩이와 전리방사선의 커튼을 남겨놓지. 그밖에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폭력을 투사하기 위해 이들이 만들어낸 것들을 봐. 구부러지지 않는 기둥, 스스로 생각하는 손가락, 가장 맹렬한 별보다도 뜨거운 빛살. 그렇게 철저하게 길들인, 갈고 닦인 폭력이 어느 날 정말 이들의 바람대로 된다면? 인간들이 드디어 근거 없는 믿음에서 벗어나 폭력을 완전히 통제하게 된다면?”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왔다. 떠들썩하게 달궈진 발사장의 분위기를 식혀줄 법했지만 그 둘에겐 아니었다.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주변이 서늘해졌다.

“행성 모니터링하면서 자네가 가장 많이 본 게 뭔가? 이들의 정보통신망을 가장 쉽고 또 빠르게 달아오르게 만드는 것. 미사일과 탱크, 총, 칼, 돌, 몽둥이, 곤봉, 맨주먹과 구둣발. 우리가 온갖 윤리규범을 칭칭 감아 폭력의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동안 이들은 가장 하찮고 별것 아닌 명분으로도 폭력을 사용하는 법을 익히지. 전사. 그러나 우리의 전사가 아니라 폭력을 다루는 법을 대신 훈련받은 이형의 살육자들. 그 공격성. 그 단일성. 그날이 오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건가?”

“우린 우리의 전쟁학을 써야죠.”

젊은 것이 부러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료가 코웃음 쳤다. 깡마른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무너지는 순간, 그것을 난도질하는 칼날에게 안의 것이 얼마나 저항할 수 있겠나? 이들은 우리의 전쟁학에 무지할뿐더러 그것에 특별히 감응할 이유 또한 없지. 이들은 같은 의사를 늘리는 대신 다른 의사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니까. 우리의 전쟁학은 승리를 달성하는 것에선 폭력보다 효율적이지만 어떻게 해도 따라잡기 서툰 분야가 있어.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 모르지. 인간의 ‘승리’가 우리 전쟁학의 용어와 같다는 것조차 오만일지도. 이들의 승리가 곧 ‘상대 진영의 죽음’을 뜻한다고 하면, 우리가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젊은 것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날이 오면, 이들이 인간만의 기준을 다른 모든 우주에 설(說)할 만큼 강력해지고 또 그래서 스스로의 위대함을 참칭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기존의 전쟁학을 버리고 이들의 것을 받아들여야 할 거야. 손에 익지도 않고 그래서도 결코 안 될 폭력 투사 기구를 들고, 살상을 목적으로 벼려낸 온갖 맵고 쓴 전략‧전술을 익혀야 할 거야. 운이 좋다면 이기겠지. 아무렴 우린 훨씬 크고 오래되었으니까. 그런데 그때의 우리는 이미 우리가 아닐 거야. 폭력으로 이루어진 전쟁학이라는 흉터, 그것으로 말미암아 손에 넣는 승리의 방법론. 결코 원래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게 된 우리에게 인간은 영영 극복할 수 없는 흉터가 되겠지.”

기계가 듣기 싫게 삑삑거렸다. 외부 회선을 잡아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임무를 마친 병사에게 남은 것은 당연히 기지로의 복귀였다. 하늘 저편에서부터 좁은 역장이 내려왔다. 뼈와 살이 아니라 의식만 전이시키기 위해서였다. 둘의 몸이 점점 가벼워졌다. 신경적으로가 아닌 정신적인 결락이 먼저 찾아왔다. 회로의 가장 작은 소자를 하나씩 비틀어 뽑듯 차차 인간 육신의 감각이, 도식이, 경향이 흐려졌다.

와중에도 젊은 것은 그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한 말은 그거라네. 이런 가능성을 상부에서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벌어질 일 말이야. 우리에게 떨어질 보다 원색적인 세부 사항. 오늘처럼 앙증맞은 방해 공작으론 그치지 않을 폭력의 유발. 불간섭 원칙을 깨고 이들을 죽이라는 명령. 실상 우리 중 누구에게도 자격이 없음에도 이들을 단죄하라는 명령. 로켓이 아니라 이들의 집과 고향을, 북적이는 거리와 시장을 훼손하고 압도적인 공포를 심으라는 명령. 그렇게 인류 문명의 팔다리를 잘라 영영 감히 우주선을 쏘아 올리지도 못하게 만들라는, 영영 이 행성에 고개를 처박고 살게끔 만들라는 잔인한 명령.”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공고] 2020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19.12.31 0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0
2539 단편 이달의 네일 김청귤 18시간 전 0
2538 단편 기억하는 자 다른이의꿈 2020.01.26 0
2537 단편 파랑새 거우리 2020.01.25 0
2536 단편 예술가에게 맞지 않는 부업 (SF 단편) 김달영 2020.01.22 0
2535 단편 전쟁의 이름 거우리 2020.01.19 0
2534 단편 탈반 김성호 2020.01.15 0
2533 단편 닿을 수 없는 홍청망청 2020.01.12 0
2532 단편 안 무는 개가 어디 있어? (SF 초단편)2 김달영 2020.01.11 0
단편 초보만 거우리 2020.01.10 0
2530 단편 [심사제외 (사유: 팬픽)] 게슈타포 : 정치경찰 (SF 초단편) 김달영 2020.01.08 0
2529 단편 포스트 아포칼립스 1999 (SF 초단편) 김달영 2020.01.08 0
2528 단편 [심사제외 (사유: 타 공모전 당선작)] 구름, 저 하늘 위에 (SF 초단편) 김달영 2020.01.08 0
2527 중편 혼자서 고무보트를 타고 떠난다 해도 조성제 2020.01.03 5
2526 단편 경계선, 인격, 장애 최의택 2020.01.02 0
2525 단편 당신은 나의 애정 캐릭터니까 두영 2019.12.31 3
2524 단편 너머 서여름 2019.12.31 0
2523 단편 야구의 신은 몇 번 염색체에 거하는가 두눈뜬왕 2019.12.29 0
2522 단편 금강굴 다른이의꿈 2019.12.26 0
2521 단편 우울 수치 차원의소녀 2019.12.26 0
2520 단편 보호자 김성호 2019.12.09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7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