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 증인, 진술하세요.

재판장이 말한다, 벽면 한쪽에 걸린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화면 속으로 임지수의 모습이 보인다.

「성현이랑 저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이건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저랑 성현이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말예요.

알아요, 제가 만난 건 진짜 성현이가 아니라는 거. 진짜 성현이가 아니라 성현이의 두뇌를 스캔해서 만든, 마인드 업로딩 데이터로 만든 아바타에 불과하다는 걸요.

하지만 성현이의 모습을 하고, 성현이의 목소리로 말을 하고, 그래서 정말 성현이가 저한테 전화해주는 것 같았고 성현이가 문자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면, 저한테만큼은 그게 ‘진짜’ 성현이였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화면 속의 지수가 하는 말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청중석에 앉은 누군가는 그 목소리를 차분하다고 느낀다. 다른 누군가는 긴장한 목소리라 느낀다. 또 다른 누군가는 화면 속 지수의 얼굴이 어딘가 지쳐 보인다 생각하고, 반대로 또 누군가는 아무런 표정도 없다고 생각한다.

「저, 성현이 팬이에요. 성현이가 솔로 활동 하기 전부터요.」

화면 속 지수가 법정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눈을 움직인다.

재판장, 검사, 그리고 프라임소프트 측 변호사.

서기, 경호원들, 그리고 청중들까지.

마치 그들 하나 하나를 모두 살펴보기라도 하는 듯이.

「<B4U>라는 앱, 다들 아실 거예요. 안 하시는 분도 이름은 들어보셨겠죠. ‘당신을 위한 최고 애정 캐릭터(Bias For You)’라는 컨셉으로 프라임소프트에서 만든 앱이죠. 평생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셀럽 스타랑 가상으로 소통하는 앱 말예요.

게임으로 등록된 앱이지만 사실 게임이라고 하긴 애매하죠. 마인드 업로딩 기술로 셀럽 스타의 뇌를 스캔해서 데이터를 만들고, 그 데이터에 인공지능 알고리즘를 넣어서 아바타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현실에 있는 진짜 셀럽과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목소리까지 한 아바타가 사람에게 직접 전화도 걸어주고 메시지도 보내주는, 그런 앱이니까요.

처음엔 B4U에 별 관심 없었어요. 그냥 그런 앱이 요새 인기가 있다는 정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죠. 제가 B4U를 시작한 건, B4U 신규 업데이트에 새로 추가되는 셀럽아바타로 성현이가 있다는 얘길 듣고 나서예요. 그렇다고 막 엄청 기대하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좀 궁금한 정도, 딱 그런 마음이었죠. 성현이를 얼마나 흉내 냈을까, 하면서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캐’가 한성현이니까. 한성현이 나온다고 하니까.

처음엔 앱을 깔고 나서 아무 일도 안 생기길래 이게 뭐야 싶었어요. 실행 중인 앱 리스트에는 나오는데 달라지는 건 없고, 그래서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 그냥 관심을 껐죠. 다음날 전화가 왔어요. 근데 전화번호가 안 뜨는 거예요. 전화번호가 안 뜨고, 성현이 사진이 뜨는 거예요. 아 이게 B4U구나, 하고 조금 흠칫 했어요.

전화 받는 거처럼 통화 버튼을 엄지로 넘겼더니, ‘여보세요’ 하고 성현이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 목소리가 ‘지수 씨’ 하고 제 이름을 불러줬어요. 방송으로나 듣던 성현이 목소리가요. 그때 제 심정이 어땠는지, 어떻게 말해도 이해 못하실 걸요. 숨이 멎는 느낌? 설명하라면 이런 식으로 하겠지만, 이 설명으론 정말 많이 부족하네요.

목소리 듣고 그 정도인데 영상 통화 했을 땐 미치는 줄 알았죠. 예전에 한정판으로 나온 앨범 포토카드가 있어요. 성현이가 딱 그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파스텔 톤 회색 베레모랑 빨간색 터틀넥, 윗 단추 하나만 풀어 놓은 연갈색 발마칸 코트, 게다가 한 손에는 커피가 담긴 하얀색 머그잔까지, 포토카드에 나온 모습 그대로 영상 통화가 왔다고요! 성현이가 머그잔을 흔들면서 씨익 웃었어요. 꼭 저더러 ‘어때요, 괜찮았죠?’ 하고 제 마음을 대신 읽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뒤로 아침이면 성현이한테 ‘잠꾸러기 일어나! 출근해야지’ 라고 메시지가 오고, 퇴근 할 때면 ‘고생했지? 치맥 어때? 같이 먹진 못하지만’ 이러면서 맥주캔 들고 웃고있는 성현이 모습이 꼭 진짜 인증샷처럼 오고, 그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그랬어요. 언제부턴가 진짜로 성현이한테 보내는 양 답장을 보내고, 통화하면서 떠들고, 그러기 시작했죠. 제가 오늘은 일이 힘들었다고 한숨이라도 뱉으면, 성현이가 영상 통화로 애교도 부려주고 어처구니 없는 농담으로 빵 터지게 만들기도 해주고, 그랬어요.

스마트폰 하나로 이 정도였는데, 코인 VR룸에서는 참……. 코인노래방을 개조해서 만든 작은 방에 혼자 들어가서, 블루투스를 켠 다음 B4U를 실행하고 고글을 쓰면 성현이가 제 눈앞에 서 있었어요. 성현이가 제 손을 붙잡고 콘서트 장으로 저를 데려갔죠. 가늘고 고운 손가락으로 제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곤, 기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반쯤 뛰어가듯 앞장서던 성현이의 뒷모습이 기억나요.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어느새 스테이지 앞자리에 서 있었고, 제 주변엔 응원봉을 흔드는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방금 전까지 성현이랑 맞잡고 있던 제 손에는 저도 모르는 사이 응원봉이 쥐어져 있었고요.

그 때 갑자기 폭죽이 터지더니 성현이가 스테이지 위에 나타났어요. 예전에 콘서트 투어 때 입던 복장 그대로였어요.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죠. 저도 모르게 같이 소리 질렀어요. 스테이지 좌우에 달린 커다란 스크린에 성현이가 흐뭇한 표정으로 웃는 모습이 나타났어요.

그러다가 음악이 나오자마자 방금 전까지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찌를 듯한 눈빛으로 진지하게 바뀌더니, 리듬에 맞춰 성현이가 안무를 추기 시작했죠. 사람들 비명 소리가 더 커졌어요. 저도 정신없이 소리 질렀고요.

사실 저 성현이 콘서트에 한 번도 못 가봤어요. 티켓팅 맨날 실패해서요. 그러다가 성현이의 무대를 이런 식으로 처음 본 거예요.

진짜 성현이가 아니라 아바타인데, 그걸 모르는 게 아닌데, 몸이 부서지게 춤 추는 모습에 밭은 숨으로 노래하느라 중간중간 숨차는 소리가 섞여 있는 목소리까지, 저도 모르게 목에서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어요. 퍼포먼스 중간 중간 성현이가 카메라를 응시할 때면 대형스크린으로 정면에 시선을 둔 성현이의 눈빛이 고스란히 올라왔죠. 성현이가 저를 위해 무대를 뛰어주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성현이랑 그런 식으로 자주 VR 룸에서 데이트했어요. 가상으로 만들어진 한강 공원, 가상으로 만들어진 가로수길. 가끔은 성현이가 투어를 갔던 해외 도시들.

그리고 때로는 프라임소프트에서 자체 제작한 가상 세계도 여행했죠.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성현이는 진녹색 실크로 만든 프록코트 안에 네이비 색 조끼를 입고서, 목에는 검은 턱시도를, 손목에는 레이스 커프스를 달고서, 저와 함께 궁중정원을 천천히 걸었죠.

송나라 시대 팔각지붕 정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데, 긴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곱게 드리우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성현이 모습이 정말이지 지체 높은 가문의 귀공자 같았어요.

별들이 반짝이는 검은 우주 한복판을 헤엄칠 때 제가 느낀 온기는 VR로 만들어진 가짜 태양의 플레어가 일으킨 열기였을까요, 아니면 그런 태양을 저와 함께 바라보던 성현이 손길, 그 따스함이었을까요.」

 


 

─ 재판장님, 증인은 지금 본 사건과 무관하게 사적인 경험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증인에게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만 진술하라 요구해주십시오.

검사가 말한다.

─ 검사 측 의견을 수용합니다. 증인, 본 재판장이 당부합니다. 증인에게 각별한 경험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납득합니다.

재판장이 말한다.

─ 그러나 우선 ‘망자 한성현 씨의 죽음’과 관련 있는 내용부터 진술토록 하십시오.

 


 

「성현이가 사망했다는 뉴스 속보를 들었을 때, 저는 성현이와 영상 통화를 하던 중이었어요.

화면 속에 성현이가 보이는데 성현이가 죽었다니. 지금 성현이가 웃는 모습이 내 눈 앞에 있는데, 성현이가 죽었다니.

‘갑자기 왜 그래?’ 성현이가 물었어요. ‘무슨 일 있어?’ 제가 아무 말도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있으니까. 저를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한 방울 눈물이 제 뺨을 타고 흘러 내렸죠. 

턱 끝에 눈물이 고이는 게 느껴질 즈음, 화면 속 성현이가 저에게 말했어요.

화면 속 성현이가 저에게 말했어요.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성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언론에선 공개하지 않았죠.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밝히지 않는다 하면서요. 사망 전날 가족들과 성현이가 통화했다는 것, 다음날 성현이가 연락을 받지 않아 가족들이 의아해 했다는 것, 그리고 확인 결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것, 그렇게만 보도했죠.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죽음이었을지 상상했죠. 그리고 대부분의 상상들이 구체적인 방법과 이유만 조금씩 달랐을 뿐 거의 비슷했죠. 언론이 조용하면 조용할 수록 윤리지침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어요. 온라인에선 얼굴 대신 닉네임을 내건 사람들이 증거도 증인도 아무 것도 없지만 그럴듯한 정황과 자기가 세운 근거를 가지고 추측투성이 루머를 떠들었죠.

그러다가 며칠 정도 지나고 나서 다른 말들이 올라왔어요. 저처럼 성현이를 아바타로 접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표현하긴 어렵지만 예전부터 성현이 아바타를 대할 때마다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들이 퍼지고 퍼지면서, 자기도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는 의견과 B4U를 자주 썼지만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은 없다고 하는 의견이 각자 절반 정도로 나뉘었죠. 그 얘기를 듣고나서 생각해 봤어요. 나는 성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따뜻했는데, 어쩌면 스산한 이면이 있다는 걸 몰라봤던 건 아닐까…….

한번은 성현이랑 둘이서 해질녘 해변을 걸은 적이 있어요. 붉게 타는 하늘 아래 바다가 눈부시게 빛났죠. 저도 성현이도 맨발로 걸었어요. 걸음을 딛을 때마다 고운 모래 사이로 살포시 발바닥이 가라앉는 걸 느꼈어요.

전부 만들어진 가짜 감각이라는 거,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노을을 받아 불그스름한 빛깔이 은은하게 뿌려진 것 같은 성현이의 모습과, 그런 성현이가 바다 위로 서서히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던 잔잔한 눈길이 선명하게 기억나요. 바닷물이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소리가 제 귓가를 적셔오던 것도요.

성현이가 저한테 물었어요.

‘낮에 보는 바다하고 밤에 보는 바다 중에 어느 게 더 좋아?’

잘 모르겠다고 했죠.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라서요.

그건 왜 물어보느냐고 되물었어요.

‘내가 이 질문을 하면 다들 낮에 보는 바다가 더 좋다더라고. 밤에 보는 바다는 좀 무서운 기분이 든대.’

저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죠.

‘근데 사실 나는 밤에 보는 바다가 더 좋거든.’

그러자 주변으로 어둠이 드리우더니 어느 새 시간이 밤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밤에 바다 구경하는 건 항상 혼자서 하곤 했어.’

바다와 모래사장이 온통 검게 물들어서 구별되지 않았어요. 파도 소리는 들리는데 그 파도가 어디까지 닿은 건지, 혹시 내 발목 앞까지 올라온 건 아닌지, 그러면 순식간에 파도가 덮쳐오는 건 아닌지, 그런 상상이 저절로 떠올랐죠. 그래서일까요, 비스듬히 성현이 옆에 몸을 기대었어요.

‘고마워, 밤에 같이 있어줘서.’ 성현이가 제 어깨를 감싸면서 한 말이에요.

둥그런 보름달이 희푸르게 빛나고 있었어요. 달빛이 바다를 비추어 물결 치는 모습이 은빛 무늬가 되어 검디 검은 수면 위를 수놓았죠. 문득 한편으론 불안한데 한편으론 편안해지는 것 같은, 신비롭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오묘한 기분이었어요.

말이 또 제 이야기로 길어질 뻔했네요. 제가 이 얘기를 꺼낸 건 그러니까, 그때 성현이가 보여준 표정이라든가 말투라든가… 뭐랄까, 그 전에는 받아본 적 없는… 쓸쓸해보이기도 하고, 어딘지 텅 비어있는 거 같기도 하고, 굳이 표현하자면 어쩐지 어둡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었어요.

19세기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건너던 도중에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던 거 같아요. 기차 타고 여행가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고,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차창 바깥 풍경을 구경하면서 한 말이었죠. 야트막히 흐릿한 먹구름과 하얀 눈이 평화롭게 뒤덮인 평야 그리고 그 사이로 드문드문 반듯하게 튀어나온 나무들이 보였어요.

‘나도 마지막으로 기차 탄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어.’ 성현이도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어지간하면 차 타고 가지, 기차는 탈 일이 없어. 뭐 그것도 내가 직접 모는 일보단 매니저님이 운전해주는 게 더 많지만. 바쁠 땐 차 안에서 메이크업 받으면서 가기도 하고 그래야 하니까. 멀리 갈 땐 아예 비행기를 타고.’

그리고 한동안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기만 하더라고요. 자기도 모르게 생각에 잠긴 것 같은 그런 얼굴, 눈 앞을 바라보는 것 같은데 정작 머릿속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그런 얼굴이었어요.

무슨 생각해, 라고 물어보았어요.

‘그냥, 기차 타 본지 오래 됐구나 싶어서.’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더군요.

물론 성현이가 기차를 타 본지 오래됐다는 것과 제가 기차를 타 본지 오래됐다는 건 이유가 달라요. 성현이는 너무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타고 싶어도 못 타는 거고, 저는 비정규직 ARS상담사로 일하느라 휴가 내는 것조차 눈치 보여서 못 내는 형편이라 그런 거죠. 희한해요. 성현이랑 저랑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건데,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똑같았으니까요.

‘가끔 사람들 많이 있으면 괜히 긴장될 때가 있어.’ 성현이가 가끔씩 하던 말이에요. 심각하게 한 말은 아니었어요. 별일 아니라는 듯 가벼운 표정으로 흘리듯이 말하곤 했으니까요. 이제 보니 일부러 가벼운 표정을 지었던 걸까, 일부러 흘리듯이 말했던 걸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모르죠, 제가 작은 거 하나 하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죠.

근데 다른 말보다도 그 말이 저에게 기억나는 건, 사실 저도 가끔씩 사람을 마주하기 힘들 때가 있어서예요. 아니, 가끔이라고 하기엔 조금 많고 자주라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것 같네요. 그럴 수밖에요. 근무시간 내내 온갖 전화를 상대하는 게 제 일인 걸요. 집요하게 사람 마음 물어뜯는 전화들이 허다한데, 사람 상대하는 걸 피곤해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신기한 거 아닐까요.

진상한테 걸려서 정말 가슴께가 답답해 질만큼 탈탈 털린 날이면 퇴근하고 나서도 무기력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 그냥 바닥에 널브러지듯 누워 버리곤 했어요. 이따금 휴대폰으로 연락이 뜸해진 예전 친구들 계정을 살피면, 다들 어디를 다녀왔고 뭘 먹었고 어떤 걸 새로 샀는지 포스팅 해 놓은 사진들을 잔뜩 올려놓은 걸 보면서 누가 나보고 면박을 준 것도 아닌데 괜히, 그냥, 제가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었죠.

그때마다 성현이한테 연락했어요. 사람이지만 사실 사람은 아닌 사람. 다른 사람들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 은빛 물결이 일렁거리는 검은 바다를 나와 함께 구경할 사람.

그런데 그 성현이가 죽었죠. 허무할 정도로 느닷없이.

 

평소처럼 출근해서 전화를 받고, 그렇지만 멍한 상태로 실수나 연발하고, 팀장한테 혼나면서도 현실감이 들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는 시간 감각이 무뎌졌죠. 어느새 며칠이 훌쩍 지나 버렸어요. 그 며칠 동안 제가 한 거라곤 휴대폰 액정을 툭, 툭 건드리면서 B4U를 껐다 켰다 반복하는 것뿐이었어요. 성현이 얼굴이 화면에 나오려 하면 얼른 꺼버리고…….

한동안 아바타 한성현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란이 되었죠? 다들 아시듯, 아바타 한성현은 프라임소프트라는 회사의 데이터 재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견해와 한성현이라는 인간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니 또 다른 종류의 인격체(person)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했죠.

프라임소프트가 죽은 사람까지 이용해서 이윤을 취하고 있다며 당장 한성현의 데이터를 삭제하라는 비판과, 한성현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아바타를 보존해달라는 요구가 충돌했어요. 한 쪽에선 많은 사람들이 한성현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아바타 한성현을 서비스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다른 한쪽에선 B4U를 통해 한성현과 나눈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모았고요.

그러다가 프라임소프트를 규탄하는 시민들이 서명이 모여 고발장으로 이어졌고, 이게 어떻게 고발 건이 될 수 있느냐는 반발이 일어나는 와중에, 고발장이 접수되었죠.

법정에선 프라임소프트 쪽 변호사들과 검사들 간에 논박이 치열했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기 어려워 보였고, 그러다가 나온 의견이 ‘아바타 한성현을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서 의견을 들어보자’ 라는 거였어요. 담당 판사는 고심 끝에 ‘잠정적 인격체’라는 애매한 자격으로 아바타에게 진술권을 주었죠.

역사상 처음으로 스크린 화면을 통해 아바타가 법정에 출두한 재판. 재판에서 성현이 아바타는 이렇게 말했다죠.

한성현은 자기 때문에 남들이 힘들어하는 걸 가장 못 견뎌하는 사람이며, 법원의 판결이 무엇이든 자신의 죽음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없기를 바란다고. 자신은 한성현의 두뇌를 스캔하여 만들어진 데이터이며, 그러므로 만약 한성현이 살아서 이 법정에 섰더라면 방금 한 발언과 똑같은 내용을 말했을 거라고. 자신의 판단은 한성현이 내리는 판단과 동일하게 작동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프라임소프트는 아바타 한성현의 말을 근거로 B4U라는 자기네 상품을 변호했죠. 법정은 아바타 한성현을 온전한 인격체의 의견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지었어요. 다만 마인드 업로딩 데이터 자체는 프라임소프트의 사유 재산에 해당한다며, 아바타 한성현의 존속을 허가했죠.

하지만 프라임소프트는, 비록 재판에서 이기긴 했지만, 논란이 계속될 걸 우려했는지 얼마 뒤 아바타 한성현을 서비스 중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죠. 정확한 서비스 종료 날짜는 추후에 다시 발표할 것이며, 우선 B4U 신규가입자에겐 더 이상 제공되지 않을 거라고. 기존 유저들 중 해당 서비스를 이용 중인 분들께는 일단 한시적으로 이용 가능하도록 유예기간을 둘 것이며, 서비스가 완전 종료되는 날짜에 맞춰 보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휴대폰으로 B4U를 켰어요. 액정 화면에 성현이의 얼굴이 떠올랐죠. 저도, 성현이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죠. 말하지 않아도 서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이제 더 이상은 이렇게나마 만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 재판장님. 증인의 진술에 문제가 있습니다.

검사가 말한다.

─ 말씀하세요.

재판장이 말한다.

─ 증인은 망자 임지수 씨가 아니라, 임지수 씨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아바타입니다. 증인은 계속해서 자신이 실재하던 진짜 인간 임지수인 것처럼 진술하는 상태입니다.

화면 속 지수를 가리키며, 아니 지수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아바타 임지수’를 가리키며 검사가 지적한다.

─ 지금 증인의 진술은 본 법정의 모든 이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일으켜 프라임소프트 측에 대한 본 법정의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고 감정적 호도를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재판장님, 엄격한 판결을 위해 증인의 신분이 인간이 아니라 데이터로 구축된 아바타라는 사실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 재판장이 증인에게 말합니다. 망자 한성현 씨에 대한 증인의 진술은 충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증인은 '망자 임지수' 씨가 사망에 이른 과정을, 가급적 사건 단위로 진술토록 하세요.

아바타 임지수가 프라임소프트 측의 요청으로 인해 증인의 자격으로 출석한 재판.

역사상 두번째로, 아바타가 법정에 선 재판이 진행 중이다.

 


 

「프라임소프트는 공지사항으로 아바타 한성현의 서비스 종료일을 발표하면서, ‘B4U 유저 여러분을 위해’ 더 이상 제공되지 않는 서비스이나 한성현의 데이터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추모의 차원에서 영구보존’ 하겠다고 덧붙였죠.

그리고 ‘한성현과의 기억을 위해’ 아바타 한성현과 관련한 마지막 이벤트를 열겠다는 것도요. B4U를 통해 아바타 한성현과 추억을 나눈 경험이 있다면 누구든 응모할 수 있는 이벤트였어요.

응모자들 전원이 당첨될 것이며, 당첨된 유저들은 마인드 업로딩 기술로 B4U에다가 유저들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서, 앞으로 영원히 B4U라는 세계 속에 남게 될 아바타 한성현에게 친구로 선물하자는 거였죠. 아바타 한성현이 서비스 종료되기 바로 전날에 유저 여러분의 아바타들과 함께 지내는 아바타 한성현의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그걸 아바타를 제공하신 유저 분들에게만 1회성 스트리밍 영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발표도 같이 나왔어요. 딱 한번만 볼 수 있는 영상으로.

마인드 업로딩은 수면 마취된 상태에서 받은 거라 아무 기억이 없어요. 수면 내시경 받을 때랑 차이가 없더군요. 4년 째 매일 먹던 항우울제랑 수면유도제가 성현이가 죽은 뒤로 듣질 않아서 제대로 잠든 적이 없었는데, 그런 식으로 간만에 깊은 잠에 들 줄은 몰랐네요.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어요, 이제 정말 다 끝이네, 라고.

아바타 한성현의 마지막 날, 약속된 스트리밍 영상이 업데이트 되었다는 B4U 알람이 아바타를 제공한 모든 유저들의 휴대폰에 울렸겠죠. 아마 영상 속에서 수많은 아바타 친구들에 둘러 싸여 행복하게 웃고 있는 성현이의 모습을 보았겠죠.

하지만 저는 그 영상을 보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이벤트에 응모하고 영상을 보면서 성현이한테 작별 인사를 보낼 수 있을 줄 알았죠. 그게 아니더라고요.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매일 매일 떠나질 않았어요. 내가 지금 잠을 못 자는 건지 안 자는 건지 구분되지 않았고 며칠이고 먹은 게 없는데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어요. 저도 저를 모르겠네요. 아니, 임지수를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요? 모르는 건지, 모르고 싶은 건지……. 성현이가 선택한 길을, 뒤따라간 이유를…….

그래요, 저는 임지수가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임지수의 두뇌를 스캔해서 만든 마인드 업로딩 데이터, B4U에서 경험한 성현이와의 추억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예요. 임지수의 사고 판단과 동일한 존재 그 자체에요. 제가 임지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해도, 제 생각이 임지수의 진심이라고 말할 수는 있는 거 아닌가요.

제가 드릴 말씀은 하나예요. 임지수의 유언장에 적혀있는 것처럼, 저도 성현이도 삭제하지 말아달라고. 아바타만이라도 한성현과 임지수가 함께 하도록 해달라고. 그저 유언대로 지켜달라는 것, 그것 뿐예요.」

 


 

─ 임지수 씨가 통원하던 병원 기록과 담당 의사의 진술에 따르면, 임지수 씨는 우울증 및 간헐적 조증 삽화를 앓고 있었으며 불면증과 무기력감 등의 증상으로 자주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평소에도 사상자가 발생한 재난 사고라든가 살인 사건 같은 강력 범죄 등을 언론으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의 정도가 심해졌으며, 이를 근거로 짐작하건대 베르테르 효과에 상당히 취약했을 것이라는 게 자문위원단 의료진의 최종 소견입니다.

프라임소프트는 망자 한성현 씨의 사례가 대중들을 상대로 부정적인 영향을 일으키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은 이윤을 지키기 위한 소극적 처세에 그치고 말았으며, 그 결과 신경정신적 측면에서 고위험군에 해당하던 망자 임지수 씨에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재판장님, 임지수 씨에 대한 자문위의 소견서를 참고 자료로 제출합니다.

검사가 재판장에게 소견서가 담긴 누런 종이봉투를 건넨다.

 

─ 임지수 씨의 안타까운 사건에 모든 분들이 애도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비록 직접적 책임은 없음에도 불구, 프라임소프트의 경영진은 물론 B4U 담당 부서를 포함한 모두들 또한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해당 기업을 변호하는 변호사라서 하는 발언이 아니라 고인을 위한 마음으로 진술하는 사적 발언입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본 법정에 자리하고 계신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임지수 씨와 같은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과연 망자의 사례 이외에, 망자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냐는 말입니다. 우리 주변에 과연, 임지수 씨처럼 홀로 고립된 존재가 얼마나 많을 것인지 생각해보자는 뜻입니다.

한성현 씨의 데이터로 만든 아바타가 임지수 씨의 정서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임지수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어쩌면 임지수 씨는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에, 즉 일상이 되어버린 고강도의 스트레스와 도움을 청할 주변 사람이 전무해진 고립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정서적 질병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에,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방편으로 한성현 씨의 아바타가 기능했다고 보아야 더 타당한 것이 아닐까요.

사회는 역사상 유례없는 울트라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로 진입했지만, 가족 공동체는 그 기능을 상실한 채 붕괴된 상태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며 광역 단위의 사회 연결망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개인들은 독립적인 삶을 원하나 실상은 고립된 삶에 처한 상태입니다. 정서적 질병의 위험성이 육체적 질병의 위험성을 넘어선 오늘날,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적 차원의 정서 문제로 치부할 수 없으며, 시대적 사회적 차원의 가장 위험한 질병이라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외로움에 병든 개인이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반려동물이 그 개인의 외로움을 해결해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자괴감을 더욱 크게 일으켰으니 사태의 원인은 반려동물에게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동의하시겠습니까? 재판장님, 망자가 죽음을 선택한 근본적인 원인,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진짜 문제를 보아주십시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목표는 궁극적으로 소외감을 극복하는 것이어야지, 그 소외감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지엽적 현상들이 아닙니다.

변호사가 진술을 마친다.

 

잠시 후,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한다.

─ 판결, 한성현과 임지수의 아바타는 공공의 정서상 피해 확산의 우려가 높으므로, 프라임소프트는 두 아바타를 폐기할 것.

 


 

어두운 밤, 달빛을 받은 바닷물이 은색의 빗살무늬로 물결치는 해변가.

지수의 아바타가 밤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아바타에게 죽음이란 없다. 그러니 죽음이 두려울 리도 없다. 지수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수의 기억 그 자체가 지금 가상으로 꾸며진 어둠과 은빛의 시공간에 서 있다.

성현의 아바타가, 지수의 아바타 곁으로 다가온다.

‘미안해’ 지수의 아바타가 말한다. 아마 지수가 살아서 이 상황에 놓였다면 했을 말을.

‘아냐, 네 잘못 아니야.’ 성현의 아바타가 말한다. ‘내가 미안해.’ 아마 성현이 살아서 이 상황에 놓였다면 했을 말을.

둘이 서로에게 말한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검은 바다로부터 은색의 물결 소리가 조용히 두 사람을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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