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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2년생


 "2012년생은 뭘 해도 안 돼."

 무기력하게 현진이가 중얼거렸다. 그 손에는 이번에 발령된 공문이 들려 있었다.

 "그러게."

 "그러게는 무슨 그러게야! 채욱, 너 이 공문의 뜻이 뭔지 모르는 거야!?"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현진이가 벌떡 일어섰다. 현진이의 손에 들려있는 공문에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이 명시되어 있었다.

 "알아. 학교의 개념이 바뀐다는 거잖아."

 나는 방과 후, 현진이와 나밖에 없는 책상 위에 누워있다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우리 학교도 우리 학년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을 테고."

 팔을 들어서 눈을 덮었다. 더 이상의 신입생은 없을 것이었다. 우리의 학교는 우리 2012년생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우리의 후배들은 이제 우리의 적일 뿐이며, 더욱이 슬프게도 세상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지도 않다.

 "야구부...... 폐부하지나 않을까."

 우리 학년 중에서 차기 야구부 부장이라고 불리는 유망주, 현진이의 말이었다.
 야구 명문고라고 불리는 우리 [동원고]에서, 나 [채우기]와 현진이는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1학년때 이미 대회 선발로 나선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1학년이 들어오지 않는 야구부의 운명은 결국 뻔하다.
 더욱이 그 1학년이 2013년생이라면 더 문제가 있다.

 "그러게......"

 지난 여름이 마지막 여름이었을까, 하고 나는 늘어졌다. 그렇게나 즐겁고, 하고 싶은 야구인데,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왜냐면 우리는 2012년생이니까.

 

0. 슈퍼 베이비

 2012년, 인류는 놀라운 사건들 이후 거대한 하나의 합리적인 정부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 인류라는 종 자체는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정부가 곧 제정한 법, [슈퍼 베이비 계획] 때문이었다.

 2013년 1월 이후에 태어날 모든 태아는 나노바이러스를 이용해서 유전자 조작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 그 법의 요점이었다.

 그렇게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신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건강하고, 더 똑똑하고 더 강하며 더 위대해졌다.
 그러므로 유전자 조작의 혜택을 받은 2013년생과 달리 우리 2012년생은, 덜 건강하고 덜 똑똑하며 덜 강하고 덜 위대한 구세대들의 마지막 세대인 것이다.

 이 세계의 어느 누구도 우리 2012년생들을 원하지 않는다. [구세대]를 옹호하는 무리들은 우리보다 나이 많은, 진짜 [구세대]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회사는 우리 2012년생을 고용하느니 보다 유전자적으로 더 유능한 2013년생을 고용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나와 현진이는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마저도 이 세계에 빼앗긴 채로, 그 교실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2. 부활(部活)! 야구부!

 "야, 들었어 들었어?!"

 수업이 끝나고 내가 내 여자친구 [김 아가타]와 이야기 하고 있었을 때였다. 갑자기 교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현진이가 마라톤 전투의 결과를 보고하려는 듯이 뛰어들어왔다.

 "뭔데."

 "어, 현진아 안녕."

 "어이, 정말 중요한 일이야! 들어봐 들어봐!"

 현진이는 내 여자친구의 인사도 무시한 채로 말을 이었다.

 "우리 야구부 활동, 계속해도 좋대!"

 "뭐? 진짜?"

 나는 놀라서 수업시간 동안 생겨난 졸음기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일어섰다.

 "그래. 이번에 많은 운동부 폐부하잖아. 그 폐부된 운동부 중에서 야구라도 하고 싶다는 애들이 많아서 말이야, 결국 꽤 많은 수가 모여서 야구부는 폐부를 면했어!"

 "그, 그래?"

 나는 가슴 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야구부가 폐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은 날부터 사라졌던 기운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잘됐다 채욱아! 계속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거잖아!"

 아가타도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고 있었다. 아가타는 비록 야구를 모르긴 하지만, 운동을 하는 나는 좋아하는 것 같다.

 "응! 비록 마지막 학년뿐이고 다른 스포츠 하던 애들이긴 하지만, 모두 운동신경이 좋아. 너와 나까지 있으면 이번에 전국대회 우승도 꿈은 아니야!"

 "헤에, 이왕 가는 김에 세계대회 우승은 어때?"

 "하하하! 이 녀석! 하하하!"

 우리들은 그렇게 가볍게 웃고 있었다.
 우리가 갈 길이 얼마나 험할지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3. 절대적 유전자

 우리들은 배울때, 인간은 타고난 유전자와 환경으로 결정된다고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환경이 유전자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들었다.

 -깡!

 "또 쳤다, 또 쳤다!"

 하지만, 우리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현진이는 입을 벌리고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나의 표정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야구라는 스포츠에는 타고난 운동신경보다 경험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야구 선수의 전성기는 신체 능력이 이미 노쇠한 30대에 오며, 40대에도 은퇴하지 않는 선수도 있을 정도다. 즉, 1년이라도 더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야구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며, 그렇기에 1학년보다는 2학년이 더 야구를 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그런 상식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었다.

 "타율 6할 7푼......"

 꼬마들 동네야구에서도 안 나오는 타율이 우리들 앞에 들이밀어져 있었다. 말 그대로 타고난 운동신경과 반사신경으로 동물처럼 공을 때려내는 그 모습은 우리들의 기를 죽였다.
 2013년생.
 우리와는 달리 유전자 조작을 받은 아이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신의 섭리를 벗어난 아이들]의 첫세대.
 하지만 우리는 무의식 중에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강하고, 조금 더 외우는 것이 빠른 것 뿐이라고 자기자신에게 말하며 위로했었다.
 노력하면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우리 2012년생과 저녀석들 2013년생의 차이. 그것은.......


 -깡!

 "오! 오오오! 또 홈런이다!"


 절대적인, 재능(유전자)의 차이......

 

 

 "결국 완패했어......"

 나는 한심한 경기 결과를 떠올리며 아구부실에 앉아있었다.
 경기 결과는 10:0. 1회전은 우리와 같은 2012년생 팀을 상대로 가볍게 이겼지만, 2회전에서 만난 2013년생 팀을 상대로는 가볍게 압패 당했다.

 "하, 하지만 괜찮아! 상대가 나빴던 거 뿐이잖아!"

 아가타가 나를 위로하려는 듯이 다가왔다. 아가타는 언제나 나에게 힘을 주는 참 좋은 아이다. 나한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이번에는 그다지 힘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우리가 만날 상대는 모두 나쁜 상대일 뿐이라는 것이지."

 고개를 돌려보니 현진이가 앉아 있었다. 나 뿐 아니라, 이 야구부실에서 모든 야구부원들이 주저앉아 있었다. 모두 힘을 잃은 표정이었다.
 무리도 아니다. 자신들이 해왔던 운동 경력, 재능, 능력을 모두 부정당한 느낌일 것이다. 단순히 져서 분하다가 아닌, 우리의 근본부터 부정당한 느낌이다.

 "...... 이 정도의 차이라면, 다음 청룡기 야구대회에서도 우리의 완패는 정해져 있어. 물론 야구에서 진다고 큰 문제는 아니야. 열심히 한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고, 청룡기에서도 나와서 이렇게 또 시합을 할 수도 있어."

 갑자기 현진이가 일어섰다. 현진이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더니, 눈을 떴다.

 "하지만 난 이기고 싶어. 반드시...... 이기고 싶다. 그래서 말할게."

 부장인 현진이가 우리 부원들 모두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 야구부는 이제부터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고 야구 연습에만 매진한다. 여름방학도 자유시간은 없다. 정말 말 그대로 야구 하나만을 위해 모두 희생한다."

 현진이의 터무니 없는 말에 부실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 단지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야구부에 온 사람은 탈퇴해도 좋아."

 마침내 현진이는 뒤로 돌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남은 사람들을 진정시켜야 할지, 아니면 따라 나서야 할지 고민하다가 곧바로 일어서서 현진이를 쫓아 나갔다. 현진이는 부실 밖에서 가만히 운동장을 내다보고 있었다.

 "야, 현진아!"

 내가 쫓아왔음에도 현진이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더니 녀석은 나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너도 야구부 그만둬도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이 야구부의 에이스잖아. 나 없으면 오랫동안 공을 던질 수 있는 사람 있어?"

 "하지만 채우기 너에게 나 같은 열혈을 따라오라고 강요할 순 없어."

 현진이는, 우리 학교의 4번 타자인데다가 포수까지 하는, 분명히 2012년생이 아니었으면 야구선수가 되었을 우리의 에이스는 또다른 에이스인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처음부터 단지 야구를 하고 싶어서 우리 부에 들어온 거잖아?"

 

4. 야구. 단지 그뿐

 밤새 결심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열었다. 내 여자친구인 김 아가타에게 문자를 보낸 나는, 조금 준비를 하고 약속장소인 공원으로 향했다.
 조금 기다리자 아가타가 새빨간 얼굴로 왔다.

 "미, 미안 늦었지?

 그녀의 옷은 붉은 색의 쫙 빼입은 차림이었다. 나는 아차했다. 정확한 용건을 말하지 못했기에, 아가타가 나의 이야기를 데이트 약속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나는 죄악감을 느끼면서, 하지만 반드시 지나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아가타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미안해."

 "응? 가, 갑자기 왜?"

 "나,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어. 헤어지자."

 잠시 아가타는 이해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눈물을 짓고, 그리고 나서 입술을 앙물고,

 -찰싹!

 내 뺨에 그녀의 손바닥이 직격했다.

 단지, 야구가 하고 싶었다.
 그뿐이다.
 하지만 야구를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면 기꺼이 버릴 수 있다.
 이기고 싶은 것도, 선수가 되고 싶은 것도, 따로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야구가 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가타와도 헤어졌으니, 이미 루비콘 강은 건넜다. 나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야구 뿐이다.
 그렇게 다짐한 나는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면서 야구 부실 문을 열었다.

 "안녕."

 현진이가 나를 보더니 살짝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부실을 둘러보았다.
 현진이는 야구를 하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정말, 2012년 생은 뭘 해도 안 돼."

 현진이는 살짝 웃으면서 뒤를 바라보았다.

 "모두 이런 아무런 의미 없는 스포츠에 몰두하는 바보들뿐이니 말이야."

 거기에는 우리 야구부 전원이, 완벽히 타오르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5.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마침내 여름은 지나갔고, 마침내 청룡기 야구대회가 시작되었다.
 우리의 대진운은 너무나 좋지 않아서, 첫 경기부터 봄의 황금사자기 대회 우승자인 [서울 13고등학교]와 맞부딪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하기로 결심했다.

 "야, 너 정말 할 거야? 그런 바보같은...."

 "할거야. 어차피 우승은 무리야. 그럴 거면 여기서 화려하게 불태우는 것도 좋겠지."

 난 현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현진이는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쉬고는 양보했다.

 "그래. 너는 이렇게 한번 고집불통이 되면 절대 못 막지. 그래. 해라."

 현진이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순간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부터 청룡기 야구대회 1차전, 동원고 대 서울 13고등학교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발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잘 해. 내가 갈 때까지 부탁한다."

 그들은 잘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 여름방학을 포기해 가며, 다른 모든 것을 내팽개쳐 가며 연습을 해왔겠는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다. 나는 팀메이트들의 재능은 믿지 않았지만, 그들이 노력해 온 시간은 믿고 있었다.

 "...... 알았어. 그럼."

 현진이가 나가자 방에는 나와 의사선생님만이 남았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앉은 의자에 전극을 설치하다가 마침내 한숨을 쉬었다.

 "진짜로, 그만 두면 안 되겠니? 이렇게까지 해야해?"

 "틀려요 선생님."

 나는 선생님에게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밖에 못하는 거에요."

 나는 극초음파를 발산하는 특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몸의 신경에 특정의 강한 극초음파에 노출시키면 신체 능력과 반사신경이 단시간 극도로 상승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져 있었다. 특히 이 방법을 사용하면 단순한 어깨힘이 아닌 제구력까지 상승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극초음파가 고교 야구에서 도핑 따위로 취급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잠시 극도로 상승했던 운동신경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망가져서, 평생의 선수생명이 끝나게 된다.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야구협회에서 아직 이 행위를 금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극초음파 처리를 받기로 했다. 이런 자멸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저 2013년생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정말 괜찮은 거야? 선수생명이 평생 끝나는 거라고. 일상생활 할때도 몸이 불편해져서 힘든일은 전혀 못하게 돼. 그래도 되는 거야?"

 물론 그래도 될 리가 없다. 나는 어리지만, 아니 어리기 때문에 선수생명이 끝나고 몸이 반불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 제가 커서 몸이 불편하고, 직업도 제대로 못 찾을 때가 된다면 이 어린 날에 이 시술을 받은 것을 후회하게 될 지도 몰라요."

 직업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절대로 프로 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 저 2013년생이 있는 한, 우리 2012년생을 뽑으려는 야구구단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다른 스포츠도 모두 사정이 비슷하겠지.
 사실 그것이 내가 쉽게 이 운동신경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있다.

 "하지만 만약 지금 이 시술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이번 경기에서 진다면...... 저는 평생 저 자신을 저주할 거에요. 두려워서 앞으로 나가지 못한 바보라고요."

 나의 말에 의사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나는 이런 것을 하기 위해서 의사가 된 것이 아닌데.'하고 중얼거리면서 극초음파 의자에 나를 앉혔다.

 "이게 옳은 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마디는 하마."

 의사선생님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꼭 이기렴."

 나는 눈을 감았다. 의사선생님이 극초음파 의자의 스위치에 손을 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신체 강화된 다음에도 조심해. 강화된 상태로 던지는 공에 자기자신이 익숙해지지 못하면 큰일나니까. 너도 야구선수이니 알겠지만, 약한 공이 갑자기 강한 공으로 바뀌면 아무리 프로라도 대응하기 힘들잖아?"

 그 다음 극초음파가 나를 꿰뚫었고, 나는 고통을 참으며 오직 하나만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이 치지 못할 공을 던질 수 있을지, 그것만을 이미지 했다.
 저들도 인간인 이상 모든 공을 칠 수는 없다. 타율 6할이란 것은 4할을 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 계속 그 4할이 일어나게 하면 이긴다.
 2013년생은 강하지만, 2012년생은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야구라면 할 수 있다.
 아니, 야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나는 척추를 압박해오는 고통을 참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6. 플레이 볼

 내가 마운드에 올라간 것은 3회부터였다. 스코어는 1:0으로 우리가 지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 적게 실점을 했기에 의외의 눈으로 나를 대신해 선발로 던졌던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 학생은 기진맥진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던지면 고작 2회 던지고 저렇게 지칠 수 있는 걸까.

 "잘 할 수 있겠어?"

 포수인 현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점도 내주지 않겠어."

 투수 마운드에 서면 언제나 세상이 달라 보인다. 평소에 보던 사람들이 달리 보이고, 자신감이 생겨나는 동시에 오직 하나의 생각만 남고 나머지는 사라진다.
 가볍게 몸을 푼 나는, 그대로 공을 던져보았다.
 최상이다.
 이 상태라면 상대가 누구든 던질 수 있다.
 타자의 눈빛이 변했다. 방금 던진 공이 심상치 않음을 꿰뚫어 본 것이다.
 어느 새 내 마음 속에 2013년생, 2012년생 하는 단어가 사라져 있었다. 나는 그대로 크게 와인드업 하고 공을 한 가운데로 던졌다.
 지금은 그저, 타자와 포수와 내가 있을 뿐이었다.

 "스트라이크!"

 아, 그리고 심판도 있었구나.


 경기는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었다. 나는 거의 매 회마다 위기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그 모든 위기를 실점 없이 처리하면서 게임을 진행해 나갔다.
 분명히 극초음파의 향상효과 덕분이다. 제구도 구위도 강해져서 삼진도 한 번 잡아냈다. 하지만 상승한 신체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보니 주자가 있어도 와인드업을 그대로 했다. 1루에서 2루로 가는 도루는 처음부터 막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도루를 쉽다고 생각하게 된 상대에게 갑자기 견제구를 던져서 아웃시킨 적도 있었다.
 상대의 4번 타자, 무려 6할 7푼의 타율을 기록한 녀석은 무조건 걸러냈다. 그리고 다음 상대는 외곽에 공을 찔러넣어서 병살타를 유도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최상의 수단을 이용해서 상대를 공략했다. 아슬아슬하게, 마치 외줄타기 하듯 공을 던졌지만 아직까지는 그 줄 위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잘 하고 있어. 채욱아."

 우리의 공격차례에 나는 애들의 말을 들으면서 체력을 보존하고 있었다. 지금은 무실점으로 계속 이어나가고 있지만 공격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어차피 질 것이다.
 그러나 조급해 하지 않는다.
 타자를 믿는 것이 투수의 역할이니까.

 "그럼, 나도 투수의 노력에 보답하도록 할까."

 현진이의 차례였다. 상대 서울 13고등학교의 투수는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그야말로 초고교를 넘어서 초인급 투수였다. 제구(볼을 컨트롤 하는 능력)가 불안정하긴 하지만 그 강속구는 약간의 변화구와 섞어서 던지기만 해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상대팀에게 가장 약한 구멍이 있다면 그것은 투수다. 이미 데이터 베이스볼에서 야구에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구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에 약한 제구는 치명적인 결점이다. '구속은 재능, 제구는 노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재능(유전자)를 타고난 저들이라도 아직은 제구가 불안정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포볼로 주자가 가끔씩 나가고 있었다. 지금도 포볼로 인해 1루에 주자 있고 타석에 현진이가 들어섰다.

 "사실 포볼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저 공에 배트도 못 갖다대고 있잖아."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지당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현진이를, 아니, 현진이가 노력해온 그 시간들을 믿고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해가며 연습에 매진했던 현진이라면 뭔가를 해줄 것이라고, 나는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깡!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배트가 휘둘러졌고, 야구공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플라이인가, 안타인가, 홈런인가. 우리는 모두 그것을 주의깊게 보고 있었고, 나는 갑자기, 현진이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투수의 구위가 강하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한 번 제대로 맞으면 크게 날아간다는 이야기야. 무서울 거 없어.'

 쭉쭉 뻗던 공은, 수비수를 간신히 넘겨서, 뛰어오른 수비수의 글러브를 종이 한장의 차이로 비껴나가서 떨어졌다.
 홈런이었다.
 이제까지 단 한번의 안타도 내지 못한 우리들이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안타를 더 쳐낼 것 같지 않은 우리들이었지만 그 한 방으로 우리는 2점을 따냈다.
 현재 스코어 2 대 1. 우리가 이기고 있었다.

 

7. 마지막 이닝


 "관객들이 모여들고 있어."

 누군가가 경기장 관중석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의 경기에는 관중이 별로 없었다. 프로야구도 아니고, 고작해야 청룡기 야구대회 제 1회전에 관중들이 모일 리가 만무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많은 이들이 이 경기장에 모이고 있었다. 야구를 아는 사람들에서 모르는 사람들까지, 관중석이 점차 채워져 가고 있었다.

 "왜 저렇게 많이 오는 거지?"

 누군가가 그렇게 물엇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 그 질문이 대답이 필요가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원고 화이팅!"

 어느새 관중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승리를 바라고 상대, 황금사자기 야구대회 우승팀인 서울 13고등학교의 패배를 기원하고 있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온 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이제 8회말이 끝나고 우리의 공격 차례였다. 아슬아슬하게 어떻게든 실점만 하지 않고 이닝을 벌고 있는 나는 정신도 신체도 한계였지만, 기분만은 매우 좋았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100구라도 더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이미 100구 훨씬 넘었어. 그거 알아?"

 현진이가 날 걱정하면서 수건을 받아주었다. 어쩐지 힘들다 했더니 그렇게 많이 던졌나.

 "자, 여기 물이라도...... 왜 그래?"

 나에게 물병을 건내던 현진이가 눈치를 채고 일어섰다. 나는 최대한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며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역시 그거구나!"

 지금 내 몸은 엉망이었다. 몸안의 모든 신경이 불타오르는 듯이 아파왔고 팔은 제대로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벌써 극초음파에 의한 향상 효과가 끝나가고, 선수생명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내가 던지지 않으면 어차피 다른 투수도 없었다.
 아직 극초음파의 효과가 남아있을 동안 던져야 한다.

 "동원고! 이겨라!"

 "이겨버려 동원고!"

 "신세대들에게 지지마!"

 응원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선수를 모르는 관중의 응원만큼 무심하고 잔인한 것도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만큼 힘을 주는 것은 없다.

 "현진아."

 "응?"

 "나, 깨달았어. 아니, 언제나 알고 있었고,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다시 깨달았다고 할까."

 "뭐를."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물병의 물을 마신 다음, 작게 말했다.

 "야구란 거, 정말 재밌구나."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9회 말. 이번 회만 무사히 넘기면 우리의 승리였다. 현진이가 포수였고, 상대는 8번 타자였다. 관중석에서는 자꾸만 우리를, 그리고 나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채우기! 채우기!"

 "동원고 이겨라!"

 나는 응원석의 소리를 들으면서 현진이의 리드를 따라 유인구를 던졌다. 곧 땅볼이 나와서 1루에서 아웃되었다.
 9번 타자는 몇 번 찔러주다가 마지막에 포크볼을 던졌다. 플라이 볼이 나왔지만, 그만 수비에러에 의해 1루타가 되었다.
 1번 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9번 타자가 도루했다. 하지만 상관 없이 던졌다. 이번 경기 두번째 삼진이 나왔다. 투아웃이었다.
 2번 타자는 꽤나 상대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안타가 나왔다.
 3번 타자는 너무 긴장했는지 폭투가 나왔다. 포볼. 결국 진루했다.
 이걸로 9회말 투아웃 만루. 그리고 타자석에는 이제까지 거르기만 했던 6할 7푼의 공포의 4번 타자가 나오고 있었다.
 만루이니 거를 수도 없었다.
 그런데다가 이제 팔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서있기도 힘들었다. 극초음파 시술의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채우기!"

 "원아웃만!"

 관중석의 사람들이 나를 필사적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그들은 모두 나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아직 몸에 남아있던 모든 힘을 사용해 그대로 던졌다.

 "스트라이크!"

 상대 4번 타자는 내 초구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뭘 본 거냐. 겨우 구질 하나 봤다고 내 모든 공을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크게 와인드업하기 위해 발을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몸에 힘이 없어지면서 시야가 몽롱해졌고, 깨닫기도 전에 몸이 땅에 그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채욱아!"

 나는 쓰러지면서도, 어 이건 보크(투구동작 중에 부정한 행동을 하는 것) 아닌가, 그럼 밀어내기 득점이 되어서 정말 위험하잖아, 하고 생각하면서 무의식 중에 공을 던졌다. 그리고 땅에 쓰러졌다.

 "채욱아!"

 포수였던 현진이가 나에게 달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가까스로 던졌던 공이 1루에 가서 보크가 선언되지는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만족했다.

 "채욱아. 얼른 내려와. 몸이 못 버텨!"

 "싫어. 계속 던질 거야. 포수는 포수답게 어서 마스크 쓰고 베이스에 가. 그리고 리드해."

 나는 일어설 힘도 없으면서 현진이에게 미소를 보였다. 현진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거다. 이것은 나의 게임이었다.

 "어떻게 할 겁니까, 선수교체?"

 심판의 무정한 소리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현진이에게 기대서 겨우 일어섰다.

 "아뇨. 곧 우승 투수가 될 건데...... 이걸로 쓰러질 수는 없잖아요!"

 허세를 부리면서 일어서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결국 현진이는 나에게 졌다는 듯 고개를 으쓱하고는 포수 위치에 가서 앉아섰다. 그러더니, 내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안쪽 슬라이더를 지시했다.
 현진이는 바보같다. 방금 전 나의 상태를 보고도 그런 제구하기 어려운 공을 요구하는 건가.
 물론, 반드시 성공해 내겠지만.
 나는 몸 안에 있는 모든 힘을 끌어 모았다. 이 마지막 공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슬라이더 피칭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 공이라고 굳게 믿고서, 그대로 던졌다.

 -땅!

 그렇게 던진 순간,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내 공이 그대로 쭉 뻗어나아갔다. 나는 그 순간 홈런을 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풀썩, 하고 힘이 풀려 다시 몸이 쓰러져 내렸다. 끝났다. 하긴, 이제까지 실점을 한 적이 없는 것이 기적이었다. 나는 4번 타자의 내 초구를 보고 지은 미소가 떠올랐다.
 공 하나를 보고 내가 던질 모든 공을 예측해낸 것인가. 믿기지가 않는 일이지만, 그 2013년생(이제야 다시 지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그리고 나는 2012년생이다)은 그 정도의 재능(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미안 현진. 이길 수 없었어.
 아가타 미안해. 너를 버린 나는 꼴좋게도 여기서 쓰러졌어.

 "채욱아! 일어나!"

 현진이가 나를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미안해 현진아. 하지만 좀만 쉴게. 어차피 게임도 끝났잖아.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그리고 나의 친구이자 포수이자 4번 친구이자 우리 학교의 에이스인 현진이는 나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직 안 끝났어 이 자식아! 방금 그거 파울이었다고!"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금 고개를 올리니 거기에는 현진이가 있었다.

 "빨리 던져 자식아! 그렇게 폼 잡으면서 던지겠다고 말했으면, 자기가 쳐지른 불은 자기가 꺼야 할 거 아냐!"

 

8. 야구의 의미


 듣자하니, 4번 타자가 내 공을 친 순간 갑자기 돌풍이 불었던 모양이다. 그 덕분에 분명히 홈런이었을 이번 공은 완전히 바람에 밀려나가서, 아슬아슬하게 파울이 된 모양이었다.
 정말 악운의 여신이 우리들을 돌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채우기! 채우기!"

 관중석에서 응원이 들려왔다. 그들은 내가 마침내 이 팀을 승리로 이끌 것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어설 힘조차 없었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긴 무리였다.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 하지 마.'

 내 마음이 나에게 말했다.

 '일어설 힘조차 없다면서, 그럼 지금 마운드에 서있는 것은 누군데?'

 그 말대로였다. 시야는 이제 흐릿하고, 팔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어깨는 이미 감각조차 없고 몸 안의 모든 신경이 타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마운드에 서 있었다. 9회 말, 만루,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끝낼 공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채우기! 최강투수 채우기!"

 "동원고! 동원고!"

 응원석에서 우리의 승리를 바라는 간절한 외침이, 응원이 들려왔다. 분명 그들은 나를 통해서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을, 그리고 희망을 보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약소팀이 저번 대회 우승자를 상대로 역전승하는, [기적]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일군 땀의 가치에는 관심 없는 채, 그들이 보고 싶은 기적을 요구한다.

 구세대로 이루어진 팀이 신세대로 이루어진 팀을 이기는 것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구세대들이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구세대와 차별화된 신세대를 두려워한 나머지, 아직 구세대가 폐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우리들을 응원한다.

 단지 재능(유전자)이 없는 우리가 있는 상대를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서, 그래서 노력이 재능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보고 싶어하는 무리들도 있다. 그들은 재능이 노력을 이기는 것보다 그 반대가 훨씬 아름답다며,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자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우리를 응원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찾고 있든 간에 나는 흥미가 없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싶든 간에.
 그들이 어떤 희망과 목적을 기대하고 있든 간에.
 그들의 야구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내가 지금 공을 던지는 이유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저. 나는, 아니, 우리는.
 야구가 하고 싶었을 뿐이다.

 팔을 높이 들어서 와인드업했다.

 환호성이 들려왔다.

 현진이의 리드는 [가장 자신있는 공을 던져]였다. 정말 무책임한 포수인 동시에, 최고의 포수였다.

 공을 든 손이 뒤로 젖혀지면서 들어올린 다리가 땅에 닿았다.

 상대 4번 타자의 눈이 빛났다. 정말 현진이 녀석, 가장 자신있는 공이라고 해도, 이런 괴물 같은 녀석이라면 어떤 공이든 칠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는 몸을 고무줄처럼 이미지해서, 모든 힘을 끌어모아서, 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지탱하는 마지막의 힘까지 써서 공을 던졌다.
 아니, 던지려고 했다.

 던지는 그 순간, 볼이 내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던 그 순간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나의 몸에는 이미 끌어모아서 마지막으로 쏟아낼 힘조차도 없다는 것을.
 이미 그 전의 투구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지금 나갈 것은 힘 없는, 치기 너무 쉬운 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너무나도 맥없이 힘없는 공이 현진이를 향해 날아갔다.

 나는 곧 크게 날아갈 공을 생각하며, 자포자기한 눈으로 공을 쫓았다. 그러나 그 순간, 상대 4번 타자가 갑자기 맥 없이 공이 아직 오지도 않은 공간에 헛스윙했다.
 헛스윙 후에 힘없는 공은 그대로 떨어져서 땅에 맞고 튀어서 현진이의 글러브 속에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아웃!"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고 나는 생각하다가 곧 깨달았다.


 '약한 공이 갑자기 강한 공으로 바뀌면 아무리 프로라도 대응하기 힘들잖아?'


 반대로 강한 공이 갑자기 약한 공으로 바뀌면 대응하기가 힘들다. 슬로우 볼은 실제로 MLB에서도 통하는 전략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는 그대로 땅으로 쓰러져내렸다. 주변이 시끄러워지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대로 누워서 정신만을 침전시켰다.
 저 관중들이 나에게서, 우리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구세대가 신세대에게서 얻은 승리라거나, 노력의 승리라거나 하는 것도 전혀 와닿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그러려고 한 게 아니니까.

 우리는, 그저 야구가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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