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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우울 수치

2019.12.26 03:1612.26

나는 외롭지 않다고 주문을 외우며 자랐다. 나는 나의 외로움을 수치화 할 수 있다. 외로움의 최고가 100이라면 나는 99다. 그 수치가 거울을 볼 때 면 머리 위에 둥둥 떠다녔다. 그때부터 집안의 거울이란 거울은 다 부셨다. 핸드폰 액정에 비친 내 모습이 싫어 핸드폰 액정을 망치로 깼다.

 

 

 

너는 우울하고 음침하고 외로움 덩어리야. 수치는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 같았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해도 수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수치는 100으로 올랐다.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때까지 올라 버린 수치는 적색 신호를 보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의 우울 수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울했다. 밝은 얼굴로 좋은 아침이야. 말하던 사람의 우울 수치는 70이었다. 그때 처음 밝게 웃는 것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번은 한강에서 투신하려는 사람을 구조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의 우울 수치는 생각 안 해도 당연히 100이겠지. 하지만 0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아서 일까? 왜 0일까 하고 한 참을 생각한 적이 있다.

 

 

 

우울이 심하면 해탈 한다고 하던가? 자신을 다른 모습으로 가둬 버린 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소개팅을 왔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예쁘게 꾸미 모습은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이다. 최대한 밝게 눈웃음을 치며 한명만 걸려라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지런히 모은 두 다리가 이 자리를 대변해 주고 있다. 숟가락의 반에 반만 밥을 떠서 오물오물 씹는 것도. 억지로 웃느라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을 것만 같은 클래식이 흘러나온다. 남자는 이 음악 아세요? 하고 묻는다. 그때 남자의 우울 수치는 50이다. 나는 들어 본 적은 있다고 말한다. 클래식에 무지하다는 걸 알면 남자는 나를 교양 지식도 없는 무식한 년이라고 욕할까? 아니면 못 사는 집안 이라고 욕할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지만 애써 눈웃음을 지어 보인다.

 

 

형식상의 소개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의 우울 수치는 100이다. 어쩌면 긴장이 풀려 진짜 내가 나온 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울 수치를 숨기고 산다. 본인은 안다. 오늘 내가 얼마나 우울한지를 하지만 웃는다.

 

 

웃음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눈웃음 특히 조심해야 하는 웃음이다. 잘 못 하다가는 꼬리치는 년이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너무 큰 소리로 웃다가는 교양 없는 정신 나간 년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나는 사람들의 우울이 수치로 보인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다. 누군가의 우울을 안다는 건 참 여러 가지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 우울 수치가 높다라면 왠지 더 챙겨줘야 할 거 같고, 또 너무 챙겨주거나 관심을 가지면 오지랖 넓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홍대 거리를 걷다 보면 잘 살든 못 살든 학벌이 좋든 나쁘든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잘 살면 우울하지 않을 거 같지만 또 그거 나름의 우울함이 있다.

 

 

노력도 마찬가지다. 대학에 떨어진 사람에게 너는 노력을 안 해서 떨어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면 뭐든 잘하는 사람에게 노력 안 해도 잘 해서 좋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버스 안이다. 90년 대 음악과 2010년 대 음악이 번갈아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듣는다. 그 순간 사람들의 우울 수치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우울해도 우리는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

 

 

누구나 마음 속 꿈이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흐드러지게 필 벚꽃을 상상했다. 예쁘게 피어나기 위해 그리고 그 잠깐의 행복을 전해주고 또 내년을 기약하는 벚꽃처럼 우리 내 삶도 벚꽃 같지 않을까 싶다.

 

 

잠시 눈을 감고 내릴 역을 지나쳐도 좋아. 벚꽃이 핀 그 길 한 가운데 내가 있는 상상을 해본다. 이대로 잠이 들어 버릴 것 같은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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