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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경비실에서

2019.12.04 13:4612.04

동성혼이 법제화된 지 5년이었다.

 

 

 

급히 운전대를 왼쪽으로 튼다. 자동 차단기를 부수고 말았다. 나는 차를 뒤로 물리며 방향을 다시 잡는다. 부러진 차단기가 차를 인식하고 올라간다. 그대로 나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여전히 이곳 주차장은 음습하고 음흉하다. 광대 살인마가 구석에서 칼을 들고 달려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나는 차 트렁크에서 거대한 붉은색 가방 두 개를 들어 꺼낸다. 혼자 들기 힘든 무게였지만 날 뒤쫓는 한정된 시간이 그 무게를 덜어갔다. 경비실을 찾아야 했다. 나는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머리로 온 신경을 집중한다. 저 밑에 가라앉았던 과거를 한 번, 두 번, 파내기 시작한다. 곧바로 은설이가 얼굴을 드러낸다. 웃고 있다. 그녀의 웃음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불쾌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미소가 너무 천진난만하면서도 아름다워서였다. 그런 미소를 가지지 못한 자기 자신을 혐오하기에 이르는, 그래서 불쾌한 웃음, 미소, 싱글벙글. 잡다한 것들이 부유하는 머릿속에서 은설이는 그 형태를 선명히 한다.

 

우리가 놀던 곳으로 가자.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방을 양손에 들고 발걸음을 옮긴다. 시간이 없다.

 

이곳은 일산에 있는 한 빌라 아파트 단지다. 성저마을 5단지. 햇빛은 따갑다 못해 하나의 세포처럼 살갗에 스며들어 고통으로 녹아내린다. 바람은 없다. 언제나 그랬듯 이 아파트는 태평양 한 가운데의 무풍지대에 서있는 것 같다. 아무리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녀도 그 자리가 그 자리인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경비실을, 정확히 말하자면 ‘버려진’ 경비실을 찾는 내 두 발은 거침이 없다. 경비실을 에워싼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걸음을 멈춘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고스트 스팟이라고 이름이 난 곳이다. 물론 나와 은설이가 그곳에서 놀았던 때는 십 몇 년도 더 되었지만. 이곳에서 목을 매 자살한 사람들이 10명 가까이 된다는 소문을 접했다. 오늘 새벽 두시에. 시체를 묻을 장소를 찾다 떠오른 게 바로 이 경비실이었다.

 

경비실은 그대로다. 단지 구석에 위치한 이 3호 경비실은 관리사무소의 경비 비용을 아끼기 위해 폐쇄되었다. 그것도 십 몇 년전이었다. 한창 동성혼 법제화를 화두로 시위하던 때. 거기서 은설이를 처음 만났다. 그때와 지금의 경비실을 비교해보지만 다를 게 없다. 단지 그때는 여름의 초입이었고 지금은 겨울의 초입이라는 점을 빼면. 무너진 폴리스 라인을 넘어 경비실 가까이 다가선다. 공기의 질이 다르다. 금방 코가 막힌다. 이곳은 바람이 분다. 눈이 따갑다. 나는 가방을 건물 뒤편에 놓는다. 문 앞에 선다. ‘외출중’이라는 카드가 걸려있다.

 

외출 중이라.

 

여긴 내 집이나 마찬가지야. 그녀는 부재중, 외출중, 순찰중, 청소중 등 수 개의 상태표시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문을 연다. 끼이익, 거리는 익숙한 싸구려 공포영화 효과음은 없다. 소리 없이 경비실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갖가지 쓰레기와 부서진 물건들이 산재해 있다.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선다. 어깨에 낯선 촉감이 느껴졌다. 반쯤 끊어진 허리벨트가 바닥에 떨어진다. 고개를 뒤로 젖힌다. 천장엔 어설프게 묶인, 삭아가는 허리벨트 하나가 걸려 있다.

 

누구의 것일까.

 

이중에 은설이의 것도 있을 것이다. 눈을 감는다. 특유의 그 불쾌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벨트를 묶고, 똥구멍보다는 조금 큰 구멍에 목을 걸고, 슛을 날리듯 의자를 걷어차는........ 은설이가 보인다. 고통에 빠르게 굳어가는 그녀의 얼굴이 뒤를 잇는다. 무너져 내린 웃음은 여기, 먼지로 내려앉았을 것이다. 나는 뒤편의 가방을 가져온다. 문을 닫는다. 문고리를 이리저리 돌리다 잠금장치를 발견한다.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다. 창문엔 바깥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낙서가 가득하다. 가방을 연다. 4년간 같이 살아온 여자를 마주한다. 가방 하나엔 상체, 다른 하나엔 하체, 생각보다 깔끔하다. 나는 바닥 위를 발로 쿵쿵 굴러본다. 밑에 깔린 대리석을 들어내자 흙바닥이 나타난다. 나는 가방에 세로로 끼워 넣었던 삽을 꺼내 구덩이를 판다. 꼭 은설이의 말대로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나 신병도 앓아봤어. 사람을 보고, 귀신을 볼 줄 안다는 말이야. 예언도 하고.

 

좋아, 그럼 나에 대한 예언을 하나 해봐.

 

나는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를, 그녀는 나의 불거져 나온 가슴을 핥고 있었다. 우린 막 스무살이 된 대학생이었다. 서로를 탐한 지는 그때를 기준으로 8년은 더 되었다. 온 학교에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소문이 퍼져도 개의치 않았다. 괴롭히는 사람도 없었다. 이따금씩 빻고 빻은 소리를 듣긴 했지만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깟 개소리에 신경 쓰기엔 우리의 시간이 너무나도 적었다. 그녀가 내 허벅지 사이로 손을 가져갔다. 신음이 혓바닥 위를 굴렀다.

 

너 나중에 결혼할 것 같아.

 

결혼? 내가? 나 레즈비언이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쯤이면 동성혼 법제화 됐을 거야. 뭐, 내 말 흘려들어. 어쨌든 여자하고 안 좋은 일이 벌어질걸. 나 같은 여자면 상관없겠지만....... 그리고 시체를 어디다 유기할지 강호순이나 유영철처럼 동물을 죽이며 고민하다가, 그러다가,

 

그녀가 왁, 하고 소릴 질렀다. 나는 찢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우리는 웃었다.

 

은설이는 다시 제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내 안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시체는....... 어디다가, 버릴 것, 앗, 같은데?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삽질을 잠시 중단한다. 미성년자 여자애를 상대로 성매매를 한 이 여자를 얼마나 깊이 묻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차라리 남자가 그런 짓을 했으면 남자니까, 이해하고 죽여 버릴 수는 있는데. 그런 짓을 하고선 하기 싫다고 몇 번이나 말한 내 사타구니 사이를 잣만 한 막대기로 얼마나 쑤셔댔는지. 용서하고, 화를 내고, 용서하고, 화를 내고. 반복이었다. 용서는 품절되었고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 오직 내 안에서만 자라고 뽑히는 감정이므로. 대신 잡초처럼 자라던 그 미미한 감정, 살인을 향한 감정을 나는 발견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다. 할 수만 있다면 크레인이라도 가져와 지구 내핵까지 파낸 뒤 그 끓는 곳에 처박아두고 싶은 심정이다.

 

난 니들 같이 어린 게 좋아. 이렇게 말했다며? 남자 새끼들도 그러진 않겠다.

 

나는 이미 한 차례 그의 면상에 컵을 집어던진 후였다.

 

여자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되물었다. 벌을 받겠다고, 그런 뒤 다시는 그런 짓 안하고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서 포주 마냥 내 몸 곳곳을 눈으로 훑고 손으로 다시 훑어 내렸다. 때마침 칼은 그 옆에 있었다. 된장찌개에 넣을 청양고추를 썰고 있던 참이었다. 칼을 깊숙이 그녀의 몸에 밀어 넣었다. 몇 번이고 다시, 칼로 그녀의 목을 쑤셨다. 눈물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당신을 많이 몰랐던 것 같아. 이렇게, 이렇게 속이 깊은 사람이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힘을 주었다. 칼끝이 목을 관통했다.

 

똑똑. 나는 고개를 홱 돌린다. 발소리가 난다. 잠긴 문이 덜컹거린다. 숨을 죽인다. 삽을 조심스레 벽에 기대어 놓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몇 번 더 문을 두드리는 게 전부였다. 안을 들여다보려는 듯 불투명한 유리에 보랏빛 실루엣이 비쳤다. 누굴까. 자살하러 왔을까.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끝내 이름 모를 이는 그림자만 남겨둔 채 떠난다. 소리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힘들지 않아?

 

순간 나는 고개를 돌린다. 아무도 없다.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안 힘들어. 알바 그거 얼마나 한다고.

 

너 소설가 되고 싶었다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우리는 노트북으로 애니메이션 <코렐라인>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제 엄마 젖가슴을 만지는 양 내 가슴을 조물락거렸다.

 

글을 써. 이 노트북 줄게.

 

말도 안 되는 소리. 쓸 시간도 없고, 너 그거 아버, 아버지한테 받은, 선물이잖아.

 

그러네.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안 되겠다.

 

노트북이야 알바해서 살 수도 있고....... 소설가는 개뿔, 이젠 글자보다 숫자가 더 좋아.

 

상업정보교육과랬나?

 

응. 상고 애들 가르치는 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태표시 카드를 뒤집었다. 밖에선 ‘순찰중’이라고 보였다.

 

또 하게? 나 피곤해.

 

하긴 뭘 해. 머릿속에 떡치는 것밖에 없구나, 울 애인.

 

그녀가 내 볼살을 만지작거렸다.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뭐 하게?

 

순찰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입술을 맞춘다. 나는 슬쩍 떼어내며 시발 결국 또 할 거면서, 혼잣말을 한다.

 

하기 싫어?

 

은설이는 풀 죽은 강아지 마냥 울상을 짓는다.

 

해, 해. 대신 이번에도 못 가면 일주일간 섹스 금지. 알았어?

 

구덩이로 여자의 상반신을 굴러 떨어뜨린다. 두 번째 가방을 연다. 잘리다 만 여자의 가슴이 덜렁거린다. 나는 두 발로 힘껏 차대며 구덩이로 굴러 넣는다. 다시 삽을 잡고 그 위를 흙으로 덮는다. 그러다 나는 삽 끝으로 여자를 수없이 찍어 내린다. 손에 전해지는 느낌이 괴상하다. 고무로 만든 리얼돌 같다. 여자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몰래 돈을 꿍쳐둔 걸 들켰을 때 그녀가 했던 변명이 생각난다. 인형 사려고 했던 거야. 다른 뜻 없어. 인형? 뭔 인형을 사? 쭈뼛거리더니 그는 성인용품 광고지를 내밀었다. 독일 직수입 리얼돌!! 이라고 적힌 싸구려 전단지였다.

 

이 씨발년, 너, 나랑 할 때 그랬구나? 사람을 완전....... 장난감으로 갖고 놀았네?

 

씨발새끼. 나는 중얼거린다. 나는 마지막으로 대리석을 끼워 맞춘다. 온몸이 땀으로 홧홧하다. 상태표시 카드를 ‘취침중’으로 바꾼다. 나는 ‘섹스’라는 글자로 덮인 창문에 기대어 선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몸속 깊숙이 자그마한 물살을 일으킨다. 소리 내어 운다. 누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와서 나를 발견했으면, 그래서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경비실을 떠나겠다고 은설이가 말했다. 나는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고, 대답은 억양 없는 몰라, 였다. 어디로 갈 건데? 같이 가. 그리고 나는 발견했다. 그녀의 목 뒤에 생긴 멍 자국을. 이리로 와봐. 나는 그녀의 목을 살펴보았다.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듯 멍이 수두룩했다. 엄마가 그런 거야. 그녀가 말했다. 별 것 아니야. 같이 살았을 땐 더했으니까. 그녀의 말로는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러 시내에 나갔다가 엄마를 마주쳤다고 했다. 시발, 아빠 제삿날이라고 집에 들어오라고 하더라. 레즈비언 딸 둔 게 창피해서 ‘창녀도 너보단 깨끗하다’고 말한 년이 누군데....... 집에 들어오라고....... 지랄이야.

 

지랄이, 왜 지랄이냐고!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넌 꼭 결혼해라.

 

너랑 결혼할 건데.

 

나 죽고 나서 영혼 결혼식 해주던가.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눈앞이 부옇다. 가릴 것 없이 운 탓이다. 소매로 두 눈을 닦는다. 나는 경비실의 물건들을 바닥에 집어던진다. 누가 들을까 겁나지도 않는다. 한없이 원망스럽고 그립다. 한없이 그립고 원망스럽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성한 끈 아래에 의자를 놓는다. 위에 올라선다. 구멍이 조금 높아 까치발을 해야 한다. 구멍에 가까스로 머리를 들이민다. 은설이가 죽은 것은 그녀의 얘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문예지 신인공모 본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아버지의 제삿날 이후로 종적을 감췄던, 그래서 만나면 죽여 버릴 거라고 마음속에 꾹꾹 짓누르던 생각이 나를 경비실로 인도했다. 여느 날과 같이 문은 열렸다. 그날은 여느 날을 배신했다. 목을 맨 은설이를 발견하고, 끈을 벗기고, 119를 불렀다. 그때의 사이렌 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몸이 절로 사려지는데, 어느 순간 그 사이로 들리는 은설이의 목소리만이 내 귓가에서 맴을 돌았다.

 

넌 그러지 마. 죽지 말라고.

 

경비실을 뛰쳐나온다. 아이들 몇이 경비실 근처에서 나를 쳐다본다.

 

레즈비언 처음 보냐?

 

나는 입을 열었다.

 

안에 시체 있어. 니들도 죽으러 온 거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주차장을 향해 걷는다.

 

뒤에서 아이들이 도망치는 발소리가 들린다. 나는 재빨리 경비실로 돌아간다. 잠금장치를 눌러두고 문을 닫는다. 밖에선 열리지 않게 되었다.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다시 몸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한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자전거를 탄 경비원 노인네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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