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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마폴라

2019.11.29 14:0011.29

아내가 오랜만에 둘이서 오붓하게 영화를 보자고 한다. 지인이 추천하는 영화의 DVD를 빌려왔다고. 아내가 요즘 많이 밝아졌다. 약간의 푼수끼가 아내의 매력 포인트였는데 밝아진 표정 덕에 그런 아내의 매력이 다시 살아났다. 아내가 밝아진 것이 나로서는 반갑긴 하지만.. 뭐랄까.. 결혼 8년 차 아내가 일주일 사이에 조금은 갑작스럽게 변한 것 같다.

 

==

일주일 전. 아내는 용한 점집을 소개받았다며 퇴근 후 나와 함께 가자 했다.

“우리 최 여사님. 그럴 돈 있으면 나 용돈을 좀 올려주는 건 어떨까? 응?”

아내는 눈을 흘겼다.

 

 

그 날 저녁.
아내는 만나고 온 무속인을 ‘언니’라고 불렀다.

“그 언니 너무 용한 것 같아. 당신 이름이랑 생년월일시 알려주니까 대뜸 왼손잡이냐고 물어보더라니까. 묻는 눈빛이 너무 무서워서 등 뒤가 서늘해질 정도였어.”

“하하. 대한민국 인구의 10%가 왼손잡이인 거 당신은 잘 모르는구나.”

“그게 다가 아니야. 우리 3년 전인가 추석 연휴 때 외국으로 여행 갔다가 교통사고 나고, 당신 많이 다쳤잖아.”

“오—! 그런 것도 맞춰?”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당신 친가 쪽 오랜 조상님 중에 당신을 늘 지키고 있는 분이 있는데, 그 조상님이 설날이랑 추석에는 차례상을 받으러 가신대. 그래서 차례 지낼 때 당신이 본가에 있어야 그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대. 내가 이 얘기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때 사고 났던 시간이 여기서 딱 차례 지낸 시간이더라고."

나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어렵게 참았다. 나는 점이나 사주 같은 무속 신앙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만에 밝아진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무당 언니 말이 자기가 모시는 신이 옛날에 당신 지켜주는 조상님에게 실수를 한 적이 있대. 그래서 복채도 안 받았어. 내가 억지로 주려고 하는데도 끝까지 안 받더라고.”

“그래? 그리고 또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내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나 요즘 힘들다고 했는데... 막상 생각해 보니까 온통 당신 이야기만 하다 온 것 같네.”

“내 이야기? 어떤 거?”

“그냥... 내가 당신한테 챙겨줘야 하는 것들... 뭐 그런 이야기했어.”

“나한테 챙겨줘야 하는 거? 어떤 거?”

“당신한테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잠시 고민하던 아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당신 혹시 나 모르게 소설 같은 거 쓰고 그래? 당신한테 글 쓰는 재주가 있대. 나더러 당신 쓰는 글 봐주면서 칭찬 많이 해주래. 난 모르는 일이라 했는데....”

총각 때 취미 삼아 소설을 쓰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말 사주팔자에 직업이나 타고난 재주, 뭐 그런 게 보이는 건가?

“하하. 결혼 전에 막연하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긴 했는데... 나 글 쓰는 거 접은 지 꽤 됐어.”

“거 봐— 그 무당 언니 용하다고 했잖아.”

“그리고 또? 나 뭐 챙겨주래?”

“싫어. 말 안 해줘. 언니가 나만 알고 있으라고 했어.”

“혹시 나 용돈 더 챙겨주라는 말은 안 해? 내가 요즘 사고 싶은 게 있거든. 용한 무당이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내는 눈을 흘겼다. 그리고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런데, 뭐?”

“무당 언니가 다시는 자기 신당에 오지 말래."

“왜?”

“살면서 얼굴 두 번 보면 좋지 않은 인연이 있는데, 나랑 자기가 그렇다고 다시 오지 말래.”

 

==
아내가 빌려온 영화. 재미있는 설정의 이야기였다. 매일 얼굴이 바뀌는 남자 주인공과 미모의 여자 주인공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

남자: 나무라는 게 정말 신기한 거 같아요. 기타에서 나는 소리가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다는 게...

여자: 라미레즈, 호세 라미레즈. 이 기타 이름이요.

남자: 이 곡... 알아요?

여자: 네, 이 곡 들어서 깜짝 놀랐어요.

남자: 왜.. 왜요? 여자: 그냥 나랑 좀 비슷한 거 같아서요. 우진 씨.

———

 

영화의 여주인공을 놀라게 한 곡. Amapola라는 곡이다. 영화에서 처음 나왔을 때 나 역시 놀랐고, 그 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릴 때마다 그녀와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녀와 헤어진 날이 2005년 겨울, 그 해 첫눈 내리던 날이니까..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

2005년 9월 24일.
그 날은 나의 스물일곱 살 생일이었고, 그녀와 내가 사귀기 시작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었으며,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의 방한 공연이 있기로 한 날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준비한 날이기도 했다.

 

 

미리 주는 생일 선물이라며 그녀는 모리꼬네 공연 티켓 두 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공연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 나는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 파일을 구해서 그녀의 MP3 플레이어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면 함께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었다. 지하철에서, 조용한 밤길을 걸으며, 공원 벤치에서, 커피 가게에 앉아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며.. 그렇게 함께 음악을 들었다.

“오빠는 어느 곡이 제일 좋아?”

“글쎄.. The Ecstasy of Gold?”

“역시..”

“왜?”

“음... 오빠는 나랑 좀 다른 거 같아서....”

 

 

그녀의 MP3 플레이어 ‘모리꼬네' 폴더에는 Amapola(1)에서 시작해서 Amapola(8)까지 있었다. 그래서 랜덤 재생으로 노래를 들을 때면 세 곡에 한번 꼴로 Amapola가 재생되었다.

“하하. 사실 나도 Amapola가 제일 좋아.”

“치—.”

 

 

엔니오 모리꼬네의 공연을 며칠 앞두고 나는 공연이 전면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공연 후 프러포즈를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는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그녀에게 연락을 했고, 수화기 건너편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것 같았다고...

 

 

공연은 취소되었지만 나는 계획대로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결혼하자는 나의 말에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랑 같이 살면 오빠가 많이 힘들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뭐가 힘든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무슨 조건?”

“우리 제주도에서 살아.”

“제주도? 왜.. 제주도야?”

그녀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거기서 살면 내가 좀 더 건강해질 것 같아서.”

 

 

특별히 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약속 몇 시간 전에 갑자기 몸이 아파서 나오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면서 나는 작은 노트북 컴퓨터를 마련했다. 그녀가 약속을 펑크 내면 나는 주변의 커피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짧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그녀를 만났으면 뭘 했을까 상상을 하며 글을 쓰기도 했고,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소재가 있으면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나의 습작 소설의 유일한 독자였다. 그녀는 노트북을 열어 나의 이야기를 보았고, 글을 읽으며 그녀가 받은 느낌을 나에게 자세히 말해주었다.

 

 

프러포즈를 하고 두 달 후.
우리는 프러포즈를 기념하며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를 고르면서 그녀는 섬이 좋다 했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지 않은 섬. 그런 멀리 있는 섬에 가고 싶다 했다. 그리고 우리는 울릉도로 향했다.

 

 

울릉도에 들어온 다음날.
그녀는 평소에 비해 생기가 있어 보였다. 우리는 성인봉을 함께 올랐다. 성인봉 정상은 안개가 자욱했다. 산 아래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구름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성인봉에서 나리분지 방향으로 내려왔다. 주변 봉우리들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나리분지.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유리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옛날이야기 속. 산에서 길을 잃은 선비가 자신을 인도하는 노루를 따라가서 찾았다던 신비한 마을. 그런 마을이 정말 있었다면 나리분지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다음날.
우리는 관음도에 갈 계획이었다. 그녀는 전날 등산을 하며 무리했는지 몸이 많이 안 좋았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겠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다 했고, 결국 나는 숙소에서 혼자 나와야 했다. 숙소 주변을 서성이던 나는 조용한 커피 가게에 들어가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밤 꿈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야기를 완성하고 나는 도동항 근처를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저녁이 되어 숙소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깨지 않게 조용히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

잠이 들었을까.. 목덜미가 서늘하다.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몸이 뻣뻣해져 움직이지 않는다.
아—! 이게 가위에 눌리는 건가?
나는 가위에 눌린 경험이 없다.
가위에 눌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척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의식이 또렷한데 어떻게 몸을 못 움직이는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나도 가위를 경험하는구나.
두려움 반, 설렘 반.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존재에 몸을 맡긴다.
내 가슴팍에 올라탄 존재의 형체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목을 누르는 것 같은데... 목에 서늘한 느낌만 있을 뿐. 숨이 막힌다거나 특별히 불편한 느낌은 아니다.
형제만 보이던 녀석의 얼굴에 서서히 이목구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녀석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의 목을 누르고 있는 녀석의 손을 통해 나를 향한 녀석의 분노가 전해진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녀석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순간 나의 오른팔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어—? 이건 뭐지?
내가 팔을 올린 것이 맞기는 한데...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내 팔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것이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나는 왼손잡이인데...
나의 오른손이 녀석의 목덜미를 감싼다.
손에 힘이 들어가자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녀석의 손이 서서히 풀리는 것이 느껴진다.
아— 내가 이기고 있구나.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나의 의식 한편은 손아귀에 잡힌 녀석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한다.
그때 다른 한 편의 의식이 말한다.
녀석을 놓아주라고... 시간이 흐를수록 녀석을 놓아주려는 쪽 의식이 다급해진다.
다른 쪽 의식에게 이제 그만 놔 주라며 애원한다.
나는 가위에 눌린 상태가 이제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제발 그만! 순간 가위가 풀린다.
그리고 내 위에서 목을 조르던 녀석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그녀는 노트북을 열어 내가 쓴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오빠.. 이거.. 무슨 이야기야?”

“아.. 아까 도동항에 혼자 나갔을 때 그때 쓴 거야. 좀 무섭지?”

“왜.. 이런 이야기를 썼어?”

“어젯밤 꿈이 너무 생생하고 신기했는데.. 그래서 잊기 전에 글로 남겨두고 싶어서.”

 

 

울릉도에서 돌아오고 일주일이 지나고 영화에서처럼 흰 눈이 예쁘게 내리는 날. 그녀는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녀를 계속 만나면 내가 아플 것이라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나는 그녀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예쁜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자기가 아픈 것이 모두 나 때문이라고. 먹고 있는 약을 이제 그만 먹고 싶다고. 그리고 이제 자기를 그만 내버려 두라고. 내게 악을 쓰는 그녀의 얼굴. 그리고 가위에 눌렸던 밤. 분노에 차 나의 목을 누르던 존재의 얼굴. 두 얼굴이 내 눈 앞에서 오버랩되었다. 나는 가위에 눌린 듯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를 향해 소리를 내지르던 그녀는 나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얼룩졌던 그녀의 뒷모습. 어둠 속 유난히 들썩이던 그녀의 작은 어깨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

영화가 끝났다. 아내와 나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아내는 졸린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나 있잖아... 영화에서 나온 노래 들은 적이 있어.”

“노래?”

“응... 그 남자 주인공이랑 한효주랑 음악 감상실에서 들은 노래.”

“그 노래 알아?”

“몰라. 그런데 내가 지난번 말했던 무당 언니 있잖아...”

“응.”

“그 노래... 거기 신당에서 들었어. 신당에서 그런 노래가 흘러나오니까 분위기가 좀 묘했거든. 그래서 아직도 기억이 나.”

나의 품에 파고드는 아내를 끌어안으며 나는 말했다.

“그거 Amapola라고 꽤 유명한 곡이야. 그 점집 주인이 좋아하는 노래였나 보네.”

— 끝 —

 

아마폴라 곡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bA0Wo_-Z3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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