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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조악리 거주 안내서

2019.11.23 00:1311.23

울에서 무궁화호로 4시간 을 달리고 버스로 40분, 도보로 20분 가량 걸어가면 나오는 마을 조악리는 과거 탄광촌으로 유명한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말 갱도가 무너지고 90년대 중반에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 마을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2000년대 초반에는 홍수로 마을 반이 쓸려나가 지금은 남아있는 사람만이 남아있는 마을이죠. 그래도 나름 많이 남아있는 편입니다. 교통편이나 여러 문화시설 없이 텅 빈 가게들이 더 많지만 나름대로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죠. 물론 워낙 다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마을이라 종종 귀신을 봤다는 사람도 많....아니, 사실 종종은 아니고 자주 봤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도 귀신을 보고 이 마을은 미쳤다고 도망가거나 저 멀리 떠나려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결국 다 돌아오더군요. 안타깝게도 다 사람의 형체로 돌아오는건 아니지만...돌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살아남은 사람들 중 일부는 마을에 음기가 흐른다며 떠났지만 그래도 어찌 알았는지 외지인이 찾아오거나 떠났던 마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곤 해서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도, 마을은 평화롭습니다. 아마도요.

 

 

 

 

1.

A씨는 떠났다가 돌아온 마을 주민들 중 한명입니다. 마을이 아직 정상적으로 돌아갈 무렵 영화학도의 꿈을 안고 서울로 떠났던 사람이죠. 영화 한편을 찍었다는데 그게 쫄딱 망하고 평생 들을 욕 다 듣고 왔다...라고 주변에서 수근거리는걸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저한테는) 워낙 까마득한 옛날이라 저는 그 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는데 아주 우연히 그 영화에 대한 정보를 도보 20분, 버스 40분 거리의 읍내에 위치한 중고서점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책 안에 캡쳐된 장면은 영락없는 고어물 영화라 시대를 앞서가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다만...책 맨 마지막 구절에 ‘당시 이례적으로 고어 장르 영화를 촬영했으나 마지막 장면에서 사망한 배우가 촬영 직후 실제로 실종되었다’는 말이 조금 걸리긴 했습니다.

 

 

2.

조악리의 특성 상 워낙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많아서 굳이 동물을 키우자면 개나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편인데 B씨 할아버지는 특이하게 송아지를 키우시는 분입니다. 그것도 우유 광고에서 볼 법한 얼룩 송아지. 어느날 갑자기 장에 다녀오겠다 나가시더니 송아지를 데려오셨더라고요. 읍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가게는 다 닫은지 오래고 장은 안 선지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그게 중요하진 않으니까요. 송아지는 귀엽습니다. 아주 가끔씩 허락 하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음머- 하고 울기도 하고요. ...뭐, 잠깐 자리를 비우셨을 때 그 송아지가 “먹고 살기 힘드네.” 라고 사람 말을 했다는 걸 제가 우연히 들었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죠.

 

 

3.

C 할머니는 조악리의 번영과 몰락을 전부 다 지켜보신 마을 최고 어르신 이십니다. 듣기로는 일제시대 당시 엄청난 신력을 지녔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점쟁이 여자의 늦둥이 자식이라 하더라고요. 점쟁이 여자가 모든 신력을 다 써버려서 이제는 평온하게 살겠다는 마음으로 (당시 잘나가던)조악리에 집을 샀는데 산사태 때 그만 돌아가시고 혼자 살아남으신게 이분이라고 합니다. 종종 마을을 돌아다니시면서 ‘어머니가 너무 일찍 죽은게 한이 되어버려 자신의 가슴에 자리잡아 버렸다’며 고통을 호소하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확인해보자며 옷을 들출 수도 없으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망이 났다고 여깁니다. 아, 근데 이건 비밀인데요...마을에 몇 없는 제 또래 친구 중 하나가 부모님 심부름으로 그 분 댁에 간 적이 있었대요.그런데 그 분이 옷을 갈아 입고 계셨는데 오른쪽 가슴에 있어야 할 가슴 대신 노파의 얼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지 뭐에요? 물론 약간 허풍이 심한 애라 걸러 듣긴 해야되는 부분은 있답니다.

 

 

4.

도보 20분,버스 40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읍내로 나가면 초등학교,중학교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더 멀리 가야 되니 조악리에서 가까운 학교는 그 둘이 전부죠. 사실 학교라 하기도 뭐한게 학생 수가 워낙 없어서 중학교 건물은 닫고 초,중학교 학생들 모두 초등학교 건물에서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딱 6명 정도 있는데 그중 가장 어린 애가 10살 이에요. 자주 보는건 아니지만 볼때마다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낙서를 하면서 조용하게 놀고 있는게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는 몰래 다가가 뭘 그리나 봤는데 물가로 추정되는 곳에서 만세를 하고 있는 여자애를 그렸더라고요. 바닷가 같은데 가고 싶은건가, 싶어서 말을 걸어봤어요.

 

 

“꼬마야,뭐 그리고 있어?”

“나 꼬마 아닌데. 이거 나 죽을때 그린건데.”

 

생각해보니 그 애, 그림자가 없더라고요. 더 물어볼까 싶다가 그냥 도망치듯이 집으로 갔어요.

 

 

5.

아주 드물게,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외지인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D 아저씨가 그런 경우 입니다.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셨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같이 온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이 두목 이라 칭하는 걸 미루어 볼 때 대충 예상가긴 합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가오를 잡고 다녀서 주민들이 좀 꺼리던 사람이었는데 검은 양복 아저씨들이 다 도망가고(역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두 다 겁에 질린 표정이었던 건 확실했습니다) 혼자 남고 나선 그래도 가끔씩 부침개도 가져다 드리곤 합니다. 이 분, 어디서 구해왔는지 매일 술을 드시면서 ‘마을 이장이 뭘 좀 아네, 매일 밤마다 그렇게 이쁜 애를 넣어주니까 말야!’ 하고 주정을 부리시는데 설명을 들어보면 긴 생머리에 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합니다. 우리 마을에 그런 사람 없는데...일단 이장님은 10년 전에 홍수로 돌아가셨고...요새 들어 그 아저씨, 무슨 기라도 빨리는 거 처럼 살이 쪽 빠지긴 했습니다.

 

 

6.

엠...엠...뭐더라? 하여튼 E 오빠는 미국에서 높기로 손에 꼽힌다는 그 건물만큼 높은 건물을 지으려는 분입니다. 대학도 서울로 가셨고 유능한 건축학도 였는데 잠깐 휴식을 취한다고 조악리에 왔다 눌러앉게 된 경우죠. 이 코딱지만한 마을에 높은 건물 세워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서도 이분 말로는 자신의 옆에 왠 귀신들이 붙어 있어서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동안에는 어딜 가도 따라다니고 이 마을 밖으로 못 나가게 되는지라 차라리 땅에서 멀리 떨어진 건물을 지어 그 곳 꼭대기에 살겠다...라고 하십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라리 바다 위에 배 한척 사서 사는게 더 빠를거 같은데...아, 그래서 건물은 얼마나 지어졌냐고요? 짓기는 무슨, 뼈대를 잡는 족족 무너져서 아직 한층도 없어요.

 

 

7.

F양은 지금 마을에 없는 친구긴 한데 예전에 요양이라고 하면서 왔던 친구에요. 그 친구 부모님이 얼마나 잘 사는 분이신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잠깐 머물다 갈 집이라면서 앞에 잔디를 쫙 깔아주셨던건 아직도 기억해요. 공기 맑지만 척박한 시골마을에서 이런거라도 해줘야 좀 볼만하다나. 쨌든 그 친구랑 저랑 몇 안되는 제 또래 친구들은 나름 친하게 지냈어요. 저희가 놀러갈 때 마다 생크림 케익을 나눠주고 했던걸 보면 확실히 착한 애였건 건 맞는거 같아요. 다만 조악리에 오고나서 한달 정도 지나서였나, 그때부터 눈이 슬슬 풀리더니 온갖 기행들을 펼치기 시작했어요.그걸 여기서 다 풀지는 못하는데...그러다 겨울이라 시든 잔디들을 보더니 예쁘게 칠해주겠다며 칼을 들고...이 다음은 끔찍해서 말하기도 싫어요. 쨌든 그 이후로 그 친구는 자취를 감췄고 잔디가 깔려있던 집은 지금 잡초밭이 되어버렸어요.

 

 

8.

몇십년에 걸쳐 산전수전 다 겪고 다른 마을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한 조악리지만(사실 애초부터 교통편이 안 좋은 편이지만) 정말 신기할 정도로 마을을 자주 찾아오는 옆 마을 사람이 한명 있습니다. 바로 돌팔이 라 불리는 약초상 할아버지 죠. 약초상이면 약초상이지 왜 돌팔이냐면 그 할아버지, 영험한 약초라고 쥐어준 풀이 단 한번도 좋은 효과를 낸 적이 없거든요. 일례로 그 할아버지는 하도 마을 사람들이 약초를 안 사가자 자기가 직접 효능을 보이겠다며 왠 잡초처럼 생긴 풀을 한가득 먹었던 적이 있어요.효과 있었냐고요? 그 할아버지,입에 거품 물고 쓰러져서 일주일간 앓아눕다 새벽에 도망치듯 가버렸어요.그래도 계속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걸 보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아마 우리 마을이 가장 장사가 잘되는 곳인거 같습니다.

 

 

9.

이건 제 얘기는 아니고 마을에서 몇 안되는 젊은 사람인 G 삼촌 이야기에요. 그당시 삼촌 친구 중에는 조금만 무서운 일이 있으면 바로 도망가버려서 별명이 찌질이 인 사람이 있었대요. 삼촌은 물론 마을 주민들까지 그 사람 이름은 몰라도 별명은 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해요.근데 그 사람이 화가 난 건지 친구들을 다 모아두고 당시 무너진 갱도가 있던 숲을 혼자 갔다 오겠다 선언했대요.지금은 숲 옆에 길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같은 길이 없었다는데 그나마 있는 길이 복잡하고 음기가 강해서 낮에 어른들도 여럿이 모여다녔다고 해요. 쨌든 만약 포기하면 나는 찌질이다!! 하고 외치겠다며 그 사람은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그 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더니...네, 마을의 반을 쓸어간 홍수가 내렸대요. 그날 이후 그 친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숲은 숲 옆에 길이 생기면서 들어가는 사람이 없어졌대요. ...사실 삼촌한테 말을 안 했는데, 읍내에 가려고 조금 늦은 저녁 무렵에 숲 옆의 길을 걷다보면 나는 찌질이다! 하는 메아리가 울려퍼져요. 그게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10.

세상에 채식주의자랑 고기알러지 있는 사람 제외 고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냐만 H 아저씨는 유독 고기사랑이 대단한 분입니다. 마을에서 읍내까지의 거리가 꽤 걸리는 편임에도 읍내 정육점에서 (사실상 매일)고기를 받아와 먹는것이 이분의 하루 일과죠.먹는 방법도 구워 먹고, 삶아 먹고, 국에 넣어 먹고...덕분에 공복 상태로 이분 집 앞을 지나가는 것 만큼 고역인 것도 없답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이었나, 몇년 전의 홍수 만큼은 아니어도 꽤 비가 많이 왔던 적이 있었어요. 당연히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은 막혔고 꼼짝없이 사람들은 비가 그칠 때까지 마을 안에 갇혔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고기를 구할 상황도 안되고 저는 당연히 며칠간 고기 냄새를 못 맡을거라 생각했건만...비때문에 연기가 안 나서 그렇지 고기 냄새가 여전히 풀풀 나더라고요. 비냄새와 흙냄새를 뚫을 정도로 진하고 처음 맡는 냄새였어요.다행히 비는 사흘 뒤 그쳤고 그 이후 고기 냄새가 안나서 조금 의아해했는데...얼마뒤에 다시 돌아와서 고기를 구우시더라고요. 두 다리가 없어진 채로.

 

 

11.

조악리는 워낙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굳이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은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편이에요. 이분은 저희 옆집 아저씨 입니다.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를 흰 털의 고양이를 안고 날마다 산보를 다니시는데 반쯤 풀린 눈과 당장 넘어질거 같은 걸음거리로 잘 걸어다니시는 분입니다. 신기한 점은 저 고양이가 자기 발로 걸어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다 고양이가 아저씨에게 안기면 안겼지 땅바닥에 내려오는 꼴을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이웃에 살지만 따로 말을 걸어 본 적은 없는데 딱 한번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다가와 물으시길,

 

“데려갈래?”

“...아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저씨의 표정은 상당히 절망 그 자체였답니다.

 

 

12.

워낙 첩첩산중에 있는 마을이라 첨단 문물이 들어올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낯선 사람들 몇몇이 왔다갔다 거리더니 컴퓨터 한대가 연결됐더라고요. 컴퓨터의 주인은 곧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I양 이었는데 들리는 말에 따르면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 촌티난다는 소리 안 듣게 미리 다 경험해보게 하려고 부모가 설치해준 모양이에요. 타지에 있어서 그런지 처음 들어보는 고등학교 이름이지만 좋은 곳이라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려고요. 그런데 요새 그 여자애의 부모님이 세상이 무너진 거 같은 표정을 짓고 다니세요. 그 여자애가 갑자기 진로를 바꾸겠다고 했다는데...경로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으로 뭔가를 보더니 인생이 너무 허망하다며 멀리 떠날거라 했대요. 근시일 내에 컴퓨터를 버린다는 말이 있어서 조금 아쉽기는 해요. 한번만 써보게 해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13.

이 마을에 홍수가 밀어닥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에 왠 남자 하나가 찾아왔었어요. 저야 어릴 때라 그 남자 얼굴은 기억도 안 나지만 한가지 떠오르는 건 어찌나 구두약을 바르고 광을 냈는지 신발코가 반짝였다는 거에요. 쨌든 이 남자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새하늘님의 구원이 있으면 죽은 사람도 돌아올 것이고 이 마을도 금세 복구될 거라는 거에요. 근데 그 말에 흔들릴지언정 넘어가는 사람은 없었어요. 이미 그 당시에도 음기가 철철 넘쳐서 죽은 사람들은 많이 오갔으니까요. 하도 사람들이 안 믿으니까 그 남자 하는 말이, 자기가 홍수가 난 곳(아직 물이 안 빠져서 급류가 심했던 곳)에 가서 직접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을 보여주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신발 벗고 온갖 쇼를 하다 미끄러져서 그대로 휩쓸려갔는데요? 그 반짝거리던 신발코를 가진 신발은 동네 아줌마가 물이 빠지고 나서 읍내에 가서 팔았대요.

 

 

14.

도보 20분을 걷고 버스로 40분을 더 가야되는 읍내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비어있지만 드물게 몇몇 가게들이 열려있습니다.그중 하나가 바로 책방인데, 바로 옆에 레코드점이 붙어있는 특이한 구조에요. 신간은 거의 없고 중고서점에 가까운 모양새지만 의외로 쓸만한 책들과 음반들이 많아요. 잘 찾아보면 절판된 것들도 구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 가끔씩 궁금해지는건, 이 많은 책들과 레코드들을 어디서 구해왔는지의 여부인데요. 들리는 말에는 주인 아저씨의 친한 수집가 친구가 강도에 의해 살해당하고 가족이 없던 친구분의 책과 레코드들을 아저씨가 가져와서 팔고 있다는...소문이 있습니다.본인 앞에서 말하면 쫓아낼 수도 있으니 쉬쉬하는 이야기지만요.

 

 

15.

귀신이 많이 보이는 조악리 특성 상 굳이 애완동물을 키우자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편인데요. 제 앞집 사람 J군은 강아지를 무려 두마리나 키우고 있었습니다. 근데 집 앞에 강아지 둘을 목줄로 매어두고 정작 본인은 집 밖으로 나오질 않았어요. 마을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이 마을에 살아봐야 몸을 노리는 귀신들이 많아서 차라리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게 나을거라는데...믿어야 될지 말지 구분은 안가는 말이었죠. 그런데 사흘 전인가? 새벽에 강아지들이 엄청 짖어대더라고요. 누군가를 쫓아내려는 것 같기도 하고 무섭게 짖어댔는데, 곧 짖어대는건 멈췄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서 가보니 두마리 모두 다 사라졌더라고요. 그리고 어제부터 그 집에만 있던 앞집 사람이 밖에 나오기 시작했는데...어째, 상태가 영 그래요.

 

 

16.

요건 제 얘기가 아니고 아주 예전 이야기인데, 조악리가 탄광촌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에 과학 쪽으로 관심이 많던 청년 하나가 있었대요. 제가 과학에는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지만 그 사람은 석탄의 시대는 금방 사라질거고 맨틀에 있는 에너지를 사용할 날이 올거라며 미리 그 에너지를 발굴하자 했대요.근데 마을 사람들이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으니까 그 사람은 자신이 직접 증명해보이겠다고 갱도 안쪽에서 아래로 굴을 파면서 직접 내려갔다고 해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다음날 갱도가 무너져 버려서 다 묻혀버렸죠. 일하던 광부들도, 그 청년도.

 

 

17.

읍내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가게들 중에 다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일하는 여자는 정말 섹시한 몸매선과 외모를 가졌어요. 제가 책방에 가면 갔지 다방에 갈 일은 없지만 우연히 길 가다 마주친 그 여자는 제가 봐도 매력적이고 도시로 나갔으면 꽤나 인기 끌었을 것이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특유의 진한 화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라니까요? 여튼 그 여자 덕분인지 이 좁고 사람 적은 마을과 읍내에서도 그 다방은 성황이에요. 아, 그런데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목욕탕을 갔는데요. 처음 보는 남자가 남탕으로 들어가더라고요. 근데 그 남자, 목 뒤에 큰 점이 있더라고요. 제가 그 여자를 봤을 때 그 여자 목 뒤에도 같은 위치에 똑같은 점이 있던데.....뭐,기분 탓이겠죠.

 

 

18.

나이 들면 몸도 안 좋아지고 깜빡거리는게 일상이 된다고들 하지만 K 할아버지는 신기할 정도로 깜박거리는게 유독 심각하신 편이에요. 체력같은 부분은 조악리에서도 손에 꼽힐만큼 좋지만 유독 뭔가를 깜박하는 일이 잦은 편이시죠. 주변에선 갱도 무너질때 남편 잃고, 산사태때 시부모를 잃고, 홍수때 아들을 잃어서 충격으로 그런다고 하는데 정작 장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세요. 오히려 자신의 기억력은 아주 멀쩡하다고 말씀하시죠. ...글쎄요, 오늘 아침에 쥐를 잡는다고 쥐약을 놓았는데 위치가 기억안나신다고 말은 하시면서 정작 그걸 손에 쥐고 계시는걸 제가 봐버려서...

 

 

19.

워낙 이상한 주민들로 가득한 조악리 이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 몇몇 있는데요. L씨는 원래 서커스단 소속 악단에서 기타를 치던 분이셨는데 서커스단이 망하면서 정처없이 떠돌다 조악리에 들어오셨대요. 떠도는 동안 아내랑 아이들은 도망갔다나. 쨌든 마을에 도착한 이후 한달 내내 환청이랑 귀신이 보인다는 소리를 하고 다니다 결국 미쳐버렸는지 녹슨 기타줄이 걸린 통기타를 들고 다니면서 제목도 모를 이상한 노래를 치고 다니시는 분이세요. 근데 영...제정신은 아니신게 기타를 치시다 점심 무렵이 되면 바닥에 앉아 식사를 하시거든요. 그리고 이빨을 깨끗하게 해야된다면서 자기는 치실을 쓴다고 (누가 듣는지도 모를)말을 하다 꺼내는게...아무리 봐도 기타줄이거든요. 그러고보니 기타줄이 걸려있어야 될 곳에는 치실로 보이는게 걸려 있고...참 이상한 사람이에요.

 

 

20.

조악리 근처의 읍내에 위치한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은지 오래인데 그 문 닫은 가게들 중 하나가 바로 악기상이에요. 급하게 떠나버린건지 피아노랑 클라리넷이 전시된 상태 그대로 놓여있어요. 나름 값비싼 악기로 아는데 저라면 일단 팔고 갔을거 같기도 하지만...쨌든, 예전에는 마을에 들리는 악단들이 주로 악기를 사갔대요. 근데 갱도도 무너지고 산사태도 일어나고 마을이 음기로 가득차니까 결국 망했다고 해요. 근데 책방 아저씨 말로는 악기상 주인장이 떠나기 전에 죽은 악단들이 악기를 사러 온다며 겁에 질려 있었다고 해요. 물론 진짜인지 과장이 섞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21.

읍내 레코드점에는 매물이 나가면 나갔지 들어오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근데 말이죠, 얼마전에 레코드를 팔러 온 손님이 있었대요. 아니, 더 정확히는 레코드를 떠넘기고 갔다는게 맞을거 같아요. 어느 늦은 오후에 찾아와서 일단 레코드들을 맡아달라 하고서 가버렸다는데 주인 아저씨도 그 사람이 모자를 푹 눌러쓴 상황이라 얼굴을 못 봤대요. 레코드 커버는 누런 때가 껴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였고 대문짝만하게 빨간색으로 사(死)의 메들리라고 적혀있었어요. 아저씨가 한번 들어나보자고 재생을 해봤는데...글쎄요, 핀도 계속 튀고 알수 없는 말들만 나와서 그냥 듣다 말았어요.

 

 

22.

조악리에 가장 최근에 들어온 사람을 꼽아보자면 이 부부가 아닐까 싶어요. 남편 M씨는 사진가고 아내 N씨는 화가인 예술가 부부인데 나름 친해져서 얘길 들어보니까 사랑의 도피를 했다 하더라고요. 이 마을 사람도 아닌데 젊은 분들이 여길 어떻게 알았나 싶기도 하고...그래도 두분 사이는 꽤 좋은거 같더라고요. 아내분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남편분이 사진찍고 있는 것도 자주 봤어요. 아,맞다. 아내분이 여길 올 당시 만삭이셔서 이곳에서 아일 낳으셨어요. 조악리에선 정말 오랜만에 태어난 아이라 동네 주민들이 부부네 집 근처를 지날 때마다 기웃거리고 가는데...사실, 애기를 본 적 있는데 귀엽더라고요. 난 어렸을 때 이렇게 안 귀여웠는데... 근데 요새 남편분이 조금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세요. 애기 사진을 찍으면 인화했을때 자꾸 애기 어깨에 손이 올려져 있는 형상이 같이 찍힌다네요? 아내분이나 남편분 본인도 이유없이 많이 피곤하다 하시고 자고 일어나면 아내분 그림에 이유 모를 손자국이 남아있고...조금 걱정되지만 그래도...별 일은 없겠죠. 아마도요.

 

 

23.

80~90년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동네 바보가 조악리에도 있어요. 귀신 때문에 미쳐버린거 말고 남들보다 조금 부족한 그런 애요. 연로한 홀어머니랑 같이 살던 앤데, 가장 인상깊은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쥐포에요. 그 애 어머니가 매번 걔 먹으라고 쥐포를 구워주셨고 걔는 그거 먹으면서 마을을 돌아다녔거든요. 가끔 다가가면 걔가 나눠주기도 해서 조금씩 얻어먹은 적도 있어요. 근데 몇달 전에 그 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동네 어른들이 장례를 도와주셨고 이제 걔도 쥐포 먹을 일은 없겠구나 했는데, 뭔가를 먹긴 먹더라고요. 문제는 쥐포가 아니어서 그렇지. 장판 이라던가, 나무 껍질이라던가, 무언가의 가죽이라던가....

 

 

24.

사실 읍내 정육점 아저씨 O씨는 조악리에 거주하시는 분이세요. 맨날 고기를 사가는 사람만 사가서 파리만 날린다고 투덜거리시는데 정작 마을을 떠날 생각은 안 하시는 분이시죠. 태어나서 마을 밖으로 나가보신 적이 없으시다나. 쨌든 아저씨가 어느 날은 고기가 다 상하게 생겼다며 삼겹살을 뭉텅이로 가져오셨어요. 덕분에 마을 사람들 모두 다 오랜만에 고기를 포식했죠. 먹다가 신이 나신건지 어떤 분이 소주 몇병을 가져오셨는데, 어른들은 잔을 기울이시면서 그걸 드시더라고요. 저는 미성년자라 주스 조금 마시고. 근데 파티 끝나고 소주 가져오신 그 어른분이 말하시더라고요. 자기 실수로 농약 넣어뒀던 걸 같이 가져온 거 같다고. ...근데 뭐, 지금까지 탈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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