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칼은 파에톤 때문에 죽었다. 저 아래 지면에 발을 붙이고 있는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늘 위에서 돌고 있는 우리들 전부가 알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기 ISC-SaTh(International Space Center-Satellite in Thermosphere)의 회의실에 앉아 스크린으로 전송되는 장례식 영상에 대고 그의 명복을 비는 것밖에는 없었다.

“주님의 종 칼 에넷을 대신해 기도드리나이다.”

화면을 한가득 채운 목사는 뭐라 뭐라 중얼거리며 중간중간 그의 이름을 발음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건 그리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칼은 무교에 무신론자였고, 교회도 아주 어릴 때 빼고는 안 갔다고 했으니 분명 저 목사보다는 내가 그를 더 잘 알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느낌은 조금 이상했다.

칼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처음 보자마자 이런 걸 알기는 힘들다. 그래도 그와 계속 부대끼다 보면 누구라도 그가 많은 것들을 내비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그를 두고 가면을 쓰고 연기한다며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까칠하고 툴툴거리는 겉보기와는 달리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섬세하게 챙기는 스타일이었기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적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한창 우주기지 ISC-SaTh, 통칭 SaTh 를 건설하던 때였다. 기지의 건설 책임자 중 한 명으로서 현장 인원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게 내 업무였다. 우주에서 건설하는 탓에 완공 전까지는 책임자이면서도 가보지 못한다는 게 아이러니였지만, 현장 상황을 구현한 홀로그램을 면밀히 분석하고 계기판과 비교해 가며 작은 사고 하나라도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이를 위해 설계 부서를 마치 내 부서인 것처럼 드나들었다. 그는 그 중 사출기 모듈 쪽 소속이었다.

 

내 손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대충이나 어림짐작이라는 말이 나옵니까? 그 작은 오차 때문에 현장 기술자들이 죽고 프로젝트가 추락하고 하는 거라고요!”

말이 끝나갈 때쯤에는 땅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운데에 위치한 입에서는 천둥 같은 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출근하면서 소리 지르는 횟수를 반으로 줄이자고 결심한 지 2시간 만에 일어난 폭발이었다. 칼은 이마를 문지르며 내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네, 대충이라는 표현을 쓴 건 사과할게요. 근데 그 오차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니까요. 어차피 진짜 복잡하고 짜증 나는 건 프로그램이 다 해주잖습니까. 가상 공간 내의 문제든 현실 세계에서 작업하는 거든 그게 더 압도적으로 정확하니까. 그러니까 계산에 따르면, 기껏 나 봤자 nm 단위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러니까 그 오차가 얼마나 작던 간에, 그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냐고요!”

칼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데스크를 한 번 가볍게 쳤다. 금속의 둔중한 소리가 얕게 울렸다.

“우리 대단하신 케플러 아저씨가 수백 수천 번 시뮬레이션한 결과, 사고 발생 가능성은 0.0003% 미만이고, 초프라 씨가 걱정하는 사출기 모듈 관련한 걸론 아예 계산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오차가 없다고요.”

그에게서 듣고 싶던 말이 그나마 비슷하게라도 나온 순간이었다. 아침에 받은 보고서를 검토하는데 사출기가 전체 선체의 미치는 영향이 누락이라도 된 것인지 보이지 않았었다. 엔진이나 발전기 같은 필수적인 모듈도 아닌 주제에 각운동량의 변화를 최소화한답시고 사출기가 선체 중심에 위치하도록 한 과학자들의 센스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외부 요소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장 많이 쌓일 사출기가 선체 전체 부분에 연결되는 관계로 발생할 문제를 고려하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사출기의 영향이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은 보고서에 관해 설명을 요구하니 한다는 말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뿐이었으니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연구원들 전부가 의지하는 케플러 7.8인가 뭔가 하는 궤도 계산 프로그램을 싹 밀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제 하나 해결되었으니 다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때 칼이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절대 잘못될 일 없고, 만에 하나 잘못된다고 해도 프로그램 문제니까 인공지능 싹 다 갈아엎고 다시 하면 돼요.”

그 마지막 말이 나를 정말 화나게 했다. 지금처럼 친해진 상황에 그 얘기를 들었다면 턱에 주먹을 한 방 먹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테니까 옆구리 한 방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오히려 더 냉정해졌다. ‘차갑게 식는다’라는 말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얼음 같은 분노가 나를 채우는 느낌이었다.

“계산이나 공정은 기계로 넘겼을지라도, 결정은 사람이 하고, 책임도 사람이 집니다.”

내 반응이 갑자기 차분해진 탓인지 칼은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확실히 자신의 실수를 깨우친 표정이었다.

“제가 말하려던 건 그런 게 아니고… 아, 진짜 입만 열면 이러네. 제가 말 주변이 안 좋아서, 아마 이 친구가 더 잘 설명해줄 겁니다.”

그는 옆에서 우리의 언쟁을 듣고 있던 오르베에게 일을 떠맡기고 문으로 향했다. 책임을 전가 받은 오르베는 내가 칼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시선을 돌리자 손을 뻗었다.

“오르베 트리지드입니다. 니샤 초프라 씨 맞죠?”

“네, 맞습니다. 근데 저 에넷이라는 사람, 원래 저렇습니까?”

“아, 에넷이요?”

오르베는 머리를 긁적이고 특유의 처진 눈을 찡그리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초프라 씨는 저희 부서엔 처음 오시는 거라 모르실 수도 있는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에넷이 그렇게까지 삐딱하거나 나쁜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가끔 저래요. 뭐랄까 스트레스 수치가 점점 쌓이다가 한계를 뚫은 것 같은 그런 날? 그러다가 다시 0으로 리셋되고. 그러니까 가끔 한두 번만 적당히 지나가시면 될 거예요. 그런 것보다 혹시 더 필요하신 거 있어요? 에넷이 설명한 것 중에 이해가 안 되셨다는 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어찌나 친절히 설명해주셨는지 아직도 머릿속에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맴도네요. 대신 그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을까요? 아무리 가끔이라도 이렇게 또 충돌하면 스트레스를 안 받진 않을 테니까, 한쪽이라도 조심해서 서로 신경 긁는 일 없도록 해야죠.”

“에넷에 관해서라…. 1년 넘게 같이 일하긴 했는데 제가 아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네요. 일단 과거 얘기만 나오면 입을 딱 다물어버려서 말이죠. 여기 오긴 전엔 어디서 뭐 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나도 칼에게 과거에는 뭘 했었는지 몇 번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단순히 부끄러워하거나 꺼리는 수준이 아니라 난감한 표정으로 황급히 대화 주제를 돌리려 했었다. 술을 마시던 도중에도, 물론 애초에 그는 만취할 정도로 마시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과거 얘기만 나오면 술잔을 내려놓고 콜라를 마시며 술에서 깨려고 애썼다. 그런 모습을 본 이후로는 그에게 비슷한 질문은, 심지어는 전날 뭘 먹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래도 일은 정확하게 잘하니까 딱히 문제는 없는데, 과학 싫다, 계산 싫다 하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서 처음에는 오해도 조금 있었고요.”

정말 말버릇인 건지, 칼은 나한테도 자신은 계산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아까 전 그의 말마따나 복잡한 계산은 프로그램이 다 해주는 마당에 뭐가 그리 싫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게 업이 되면 정이 떨어지기 마련이라곤 하지만 그는 정도가 심했다. 단순한 선입견을 넘어서 내가 자주 겪었던, 실제로도 깐깐하고 숫자 얘기만 늘어놓는 다른 연구원들과는 달랐다. 한 번은 왜 그렇게 계산을 싫어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너무 많이 해서 이골이 나고 귀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귀찮음이 그렇게까지 발전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갔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과거 이야기를 할 때의 난처한 표정에 더해 슬픈 눈까지 짓고 있는 그에게 계속 물어볼 자신이 없었다.

“내성적인 것도 없잖아 있어서, 분명 나가서 또 콜라 마시면서 후회하고 있을 거예요. 아, 혹시 펩시 좋아하세요?”

“네? 코크랑 펩시 둘 중에서 말하는 거예요? 탄산 안 좋아해서 둘 다 별로인데, 왜요?”

“걔가 펩시 좋아하거든요. 나중에 펩시 주면서 화해 요청해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말라고요. 자기 딴에는 나름 부담스럽지 않게 소소하고 당분으로 기분도 좋게 하는 선물이라는 것 같은데, 역시 이상하죠?”

오르베의 말대로였다. 그 언쟁이 있고 난 뒤 일주일쯤 후였을 것이다. 칼이 음료를 한 병 건네면서 화해를 요청해왔다. 콜라인 줄 알았는데 비타민 음료였다. 아마 오르베에게 내가 탄산을 안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언어 습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화해도 하긴 했지만, 그리 좋은 시작은 아니었다.

“아, 곧 결혼할 사람도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얼굴도 못 봤네요.”

 

목사가 옆으로 사라지고 화면은 곧 반으로 작아졌다. 한쪽에 칼의 모습이 비쳤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눈만 감은 채로 누워 있는 게, 정말로 잠깐 잠이 든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하품을 하며 펩시를 찾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싫어하더라도 몇 번 닦달하면 마치 미리 준비했다는 듯 자세한 수치를 말해주던 모습이 그 평온한 얼굴과 겹쳤다.

다른 반쪽에는 노이카가 나타났다. 그녀는 며칠 사이에 상당히 야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쯤 전의 통화에서 그녀는 트레이드마크인 덧니를 살짝 내보이며 출장에서 돌아가면 칼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며 놀라게 해 줄 거라고 소소한 계획을 말하며 들떠 있었다. 그녀 역시 칼처럼 과거 얘기는 좀체 안 하는 편이라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어렸을 때 난소암을 앓아 임신은 어렵다고 했었던 것 같았다. 그런 탓인지 그녀는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연애나 사랑 같은 거에 둔감한 나로서는 다소 신기하면서도 부러운 심정으로 축하를 해줬었다. 그랬던 그녀의 눈가는 지금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르기 직전이었고, 칼에게는 절대 먼저 말하지 말라며 입술 가운데를 꾹 누르던 손가락으로는 입술 사이로 소리가 새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노이카는 눈물이 흐르려는 걸 힘겹게 참고서 추모사를 읊기 시작했다.

 

<초프라 안전 관리자님, 지금 바로 제 1회의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초프라 안전 관리자님, 지금 바로 제 1회의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시끄러운 안내 방송이 나를 깨웠다. 안대를 벗으니 옅고 푸른 불빛이 희미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붉은 경고등이 켜지지 않았으니 기지에 위급 상황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간단한 설비 고장이라면 비번인 나를 깨울 일도 없을 테니 더욱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시간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귀마개였다. SaTh에 올라오기 전엔 자주 썼지만 올라온 이후 4개월 동안 열어보지도 않았었다. 당장이라도 저걸 꼽고 다시 잠들고 싶었다. 잠자리에 든지 이제 겨우 3시간째였고, 근무까지 8시간이나 남아있었다. 하지만 귀마개 바로 옆에서 이어넷이 삑삑거리며 반짝이고 있었다. 슬슬 짜증이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바로 내 일이니까.

“잠 좀 자자! 망할 놈들아!”

제 1회의실은 기지 전체 인원의 반을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제일 큰 회의실이었다. 그렇기에 관리자급 인원은 모두 모여도 가운데의, 옆구리가 잘린 원탁에 앉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고작 이만큼의 인원과 회의하려고 제 1회의실을 쓰는 건 약간 공간 낭비가 아닐까 싶었지만, 괜히 작은 회의실에 모여 몇 명은 벽에 달라붙어 애처로운 각도로 회의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게다가 굳이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나는 뻐근한 눈을 비비며 내 자리를 찾아 앉고서는 벨트로 몸을 고정했다. 춤은커녕 운동 다운 운동도 할 수 없는 환경이어서 그런지 몸을 비틀 때마다 우두둑 소리가 났다.

“우선 비번까지 참석하게 해서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앞으로 매주 이 시간에 대책 회의가 열릴 것이니 추후에 지원팀과 함께 각자 시간표를 조정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모두 모였으니 시작하지요. 트리지드.”

친루이밍 소장이 한껏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 사람 얼굴을 화면이 아닌 실제로 보는 건 그때가 4번째였다. 좋은 일로, 아니 나쁘지 않은 일로 본 건 처음 기지에 올라왔을 때 한 번뿐이었고 나머지는 죄다 문제가 터져서 그런 것이니, 이번에도 분명 안 좋은 일일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걸 방증이라도 하듯 오르베 역시 평소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멍청한 표정 대신 입을 굳게 다문 채로 나타났다.

“관측실의 오르베 트리지드입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영상은 본 기지에 적재된 태양 관측용 망원경 발두르로 찍은 사진들을 편집한 것입니다. UTC(협정 세계표준시) 기준 21시부터 00시까지 약 3시간 가량의 관측 사진을 하나의 영상으로 만든 거죠.”

벽면째로 하나인 거대한 스크린에 광활한 우주가 펼쳐졌다. 검색 엔진에 ‘우주’라는 키워드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나올 것 같은, 매우 평온한 모습이었다. 태양 관측용 망원경이라길래 붉게 꿈틀거리는 구의 모습을 기대한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저 영상, 움직이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 영상에 어떤 의미가 있긴 할 테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평생 봐도 그걸 알아내지 못할 것이었다.

“코로나 관측을 위해 일출 전부터 대기하던 중에 이상한 현상이 감지됐습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급한 대로 망원경 호루스까지 돌려서 지금도 계속 관측 중입니다.”

그런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것인지 화면에는 초록색 원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표시됐다. 원은 아무것도 없는 정 가운데, 그저 검기만 한 우주의 아주 작은 한 부분에 위치했다. 오르베는 머리를 한 번 긁적였다.

“잘 안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발견한 것도 저희가 아니라 관측 프로그램 베셀입니다. 여기 표시한 부분의 밝기를 조절해서 보면….”

작고 희미한 점이 보였다. 그 점은 천천히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태양계 행성들은 모두 북극성을 기준으로 반시계방향으로 공전한다. 지구 궤도 안쪽의 행성이라면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여야 했다. 바깥 궤도인가 싶었지만 이내 화면 한 귀퉁이에 다른 행성들의 현재 위치가 떠올랐다. 그 어느 것도 일치하는 게 없었다. 우주의 별 중에서도 저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내가 알기로 없었다.

“새로운 혜성을 하나 발견한 것 같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외우주를 향해 약 15,000km/h의 속력으로 금성 궤도 근처를 날아가고 있으며 크기는 아무리 커도 3000m³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3000m³면 상당히 작은 크기다. 대충 어림짐작으로 반지름이 10m도 안 되는 크기. 제일 유명한 핼리 혜성의 반지름이 km 단위인 걸 보면 민망할 정도이다. 속력도 마찬가지다. 겨우 저만큼의 속력으로 궤도를 돌려면 주기가 터무니없이 길어 주기 혜성으로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우연히 태양계를 통과하는 비주기 혜성일 수도 있었다.

스크린 앞 무대에 홀로그램 영상도 떠올랐다. 태양, 지구, 그리고 문제의 혜성이 표시됐다. 세 개의 천체는 정삼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삼각형은 지구의 황도면[1]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녀석의 궤도에 있습니다. 궤도 시뮬레이션 결과, 앞으로 두 달 후에 거의 100%의 확률로 녀석은 지구와 충돌합니다.”

커다란 삼각형 위에 지구가 작게 떠 올랐고, 혜성으로 추정되는 하얀 선이 지구 주변을 빙빙 돌다가 지표면을 직격했다.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수많은 운석 충돌 예고가 있었지만 모두 빗나갔었다. 내 눈에는 꽤나 큰 오차였지만 당시의 계산으로는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것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소행성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충돌들도 90%가 넘는 정확도로 예측할 정도로 인공지능이 발달했다. 이번 예측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이 혜성이 태양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혜성의 궤적은 직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곧장 태양으로 뻗어 나갔다. 얇고 하얀 선은 혜성과 태양을 잇고 있었다. 그제야 홀로그램 한 귀퉁이에 왜 굳이 태양을 넣어 놓은 건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 혜성을 파에톤이라 명명했습니다.”

 

“당신과 나, 모두 아픔을 겪었어도 의지하고 기댈 서로가 있었기에 현명하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눈물을 대신 닦아줄 수 있었고, 손을 뻗어 일으켜 세워줄 수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이 이토록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죄스럽습니다. 당신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손을 뻗어주지 못한 게 너무 한스럽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했던 모든 행동들이 정말 미안하고, 당신이 나에게 해준 모든 것들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비록 당신은 알지 못했고, 내가 미처 이를 전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 대한 나의 변함 없는 사랑,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모든 사랑을 담아 우리의 아이를 키우겠습니다. 당신처럼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고, 섬세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겠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주었던 사랑으로 우리의 아이를 사랑하겠습니다.”

노이카는 추모사를 미처 끝마치지 못했다. 그녀는 구겨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종이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입을 가리고 강연대 위로 기울어졌다. 그마저도 버티지 못한 가녀린 몸은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몇몇 사람들이 그녀에게 다가가 부축하는 게 보였다. 회의실에서도 그녀를 따라 기울어진 몸을 다시 세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었던 오르베가 나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나는 눈언저리에 고여서 흔들리는지도 몰랐던 눈물을 닦아냈다. 우리들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칼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개인실로 들어오자마자 몸에 걸쳐 있던 모든 걸 집어 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망만 따지자면 당장 벨트에 몸을 고정하고 싶었지만 땀에 절은 채로 잠들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의할 거리는 늘어만 갔고, 점검해야 할 내역도 덩달아 늘어갔다. 외부 장갑과 기타 구획의 설치와 그를 위한 물자 관리, 충돌 시의 충격 완화와 피해 복구 시뮬레이션 및 실전 대비, 손상 구역별 우회 구역 선정 시뮬레이션, 비상사태에서의 대피 훈련 등등. 시설관리부와 자재지원부의 업무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매일 매일 이런 것들을 점검하느라 전화가 왔던 것도 잊고 있었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시간을 보니 다행히 휴스턴은 지금 아침이었다.

“뭐야? 집이야?”

화면에 비친 칼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말끔하게 책상에 앉아 콜라나 마시고 있을 걸 예상했기에 나는 살짝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가 겹쳤거든. 비번인 데다가 노이카는 지금 파견 가 있어. 그래서 오랜만에 늦잠 자는 중이었지. 마침 잠 깬 김에 아침이라도 먹을까.”

나는 혜성 발견 이후로 3주간 단 하루도 쉬지 못했는데, 게다가 거의 매일 12시간을 풀로 뛰는데, 저 녀석은 그냥 쉬는 것도 모자라 푹신한 침대에 누워 태평한 모습을 보자니 그렇게 부럽고 배알 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무중력 상태에 하도 오래 있다 보니 몸이 파묻히는 푹신함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분명 이런 걸 알고서 일부러 날 도발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칼은 실제로는 별다른 생각이 없을 것이었다. 주방으로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는 그의 표정만 봐도 그걸 알 수 있었다. 되려 그것이 더 짜증이 났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이 시기에 파견이라고? 운석 요격 프로젝트 가동 중이라더니 거기 불려 간 거야?”

“아, 그쪽 일은 아니야. 그전에 파견 간 거기도 하고. 보츠와나의 칼라하리 사막에서 크레이터가 하나 발견됐대. 거기 가 있어. 왜 그녀가 차출됐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면 귀띔은 해주겠대.”

내가 알기로 노이카는 핵물리를 전공했었다. 물론 심오한 학계의 세계에서는 핵물리와 운석 충돌 크레이터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핵폭발과 운석 충돌을 혼동하지 않는 이상 둘을 어떻게 엮을 수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요격 프로젝트도 말인데, 그것도 시원치 않아. 상당수의 연구원들이 반대하고 있어. 어차피 크기도 작으니까 요격이나 경로 변경 같은 거 하지 말고 지구에 떨어뜨려 조사해야 한다면서. 어디 오르트 구름 같은 데에서 날아오는 흔한 혜성이 아니라 태양에서 오는 건데, 인류 역사에서 이보다 기념비적인 사건은 없다면서 말이야. 태양에 대해 알아낼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아주 생떼를 쓰고 있다니까.”

새삼 느끼는 거지만 과학자들이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재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막대한 인명 피해가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연구할 생각에 빠져 있다니. 가끔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망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 과학자 중의 한 명일 테지만, 그래도 좀 더 감성적인 칼은 전자레인지에 레토르트를 돌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 어느새 펩시까지 한 병 들고 있었다.

“절충안으로 추진기를 달아 궤도 변경해가지고 위성 궤도를 돌게 하자는 것도 있어. 그럼 충돌도 안 하고 조사는 조사대로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야. 그런데 나사 하나까지 설계하는 인공위성 띄우는 것도 그 난리를 치는데, 혜성을 위성 궤도로 옮기는 데 두 달, 아 이제 한 달 남았지. 하여튼 그 짧은 사이에 그걸 계획하고 실행할 재원과 여유는 없다고 거의 묻히는 분위기야. 잘못하면 연쇄 충돌로 다른 인공위성들 잃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우주 개발 쪽 사람들은 안 그래도 SaTh 관련한 문제 때문에 죽어 나갈 판에 혜성 궤도 변경까지 추가되면 다 파업할 거라고 하더라. 거기 사람들도 거의 그쪽이지?”

“뭐, 대체로 그런 의견이긴 한데, 사실 논쟁은 그냥 흐지부지됐어. 확률은 낮긴 하지만 막말로 여기랑 충돌하면 끝장인데 파업은 자살하자는 거잖아. 그 후론 그냥 항시 관측하면서 파에톤 궤도 계산하고, SaTh 궤도 이동 계획 손보는 중이야. 이대로 있을지, 잠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게 나은지, 아니면 위성 몇 개랑 충돌하더라도 밀고 내려가는 게 덜 손해인지. 그거 때문에 정비 팀은 거의 매일 비상 대기 상태야. 하도 모의 훈련을 많이 해서 이제 탈출 프로세스는 꿈에까지 나올 지경이다.”

방금 정비팀의 브리핑에서 들은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기지 전체에 강화 패널이 전부 적용되지는 않은 상황이라 저궤도로 이동하는 건 무리라는 게 모든 설비기사들의 중론이었다. 설령 기적적으로 인공위성과 충돌하지 않는 궤적을 찾아 이동한다고 해도 선체가 가속, 마찰, 압력 등에 의한 피로를 버텨줄지도 미지수였다. 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머리 아픈 얘긴 됐고, 차라리 가십 거리나 얘기해줘. 여긴 정보 통제나 보안 때문에 인트라넷 말고는 다 막혔어. 네가 NASA 연구원만 아니었으면 너하고도 통화 못했을 걸?”

“TV는 있지 않아? 어차피 그건 일방향이니까.”

“TV야 틈만 나면 보지. 그래도 좀 더 생생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뉴스에서는 완전 세기말 같은 이야기 밖에 안 보이더만.”

“하긴, 거긴 과학자와 공학자로 가득 찬 유토피아니까 여기 같은 일들은 안 일어나겠지. 여긴 진짜 장난 아니야. NASA에서 지구 충돌 가능성을 발표한 이후로 세상이 바뀐 느낌이야. 왜 그런 거 있잖아. 정부에선 안전하다, 모든 조치를 다 취하고 있다 공표하는데, 사람들은 그런 거 싹 다 무시하고 통조림이며 방공호 관련 상품 같은 거 싹쓸이하는 거. 아노미라 하던가? 그나마 크기가 작아서 대기권 내에서 엄청나게 증발할 수도 있고 위력도 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막 소요까지는 안 일어나니 다행이지. 그런데 몇몇 치안 약한 나라나 충돌 가능 지역에 걸리는 나라들은 좀 심각한 모양이더라.”

칼은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꺼내 왔다. 무슨 음식인지 확인하기는 힘들었지만 치즈가 김을 내뿜으면서 포크를 따라 늘어나는 게 보였다. 그 옆으로 싱크대 한 편에 쌓인 각종 레토르트 상자와 배달 음식 상자가 보였다. 그는 요리를 상당히 좋아했고, 그만큼 자주 요리를 하는 편이었다. 그 취미를 위해 주방을 늘 깔끔하게 유지하던 그였다. 최근의 일 때문에 주방 정리도 못할 정도로 바빴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쓰레기가 저만큼 쌓일 정도로 방치했다는 게 놀라웠다.

“사이비 종교도 판치고 있어. 그 혜성이 태양으로부터 왔다니까 신의 심판이라고 외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고, 얼마 전에는 모두 회개하라면서 NASA 건물에 침입하려는 사람도 있었대. 환경 오염의 대가를 치르는 거라면서 백악관 앞에서 당장 모든 공장을 폐쇄하라는 시위도 있었고. 진짜 웃기는 게 신의 심판까지는 신화적으로 이해한다 쳐도, 공장은 대체 그게 무슨 연관인지 모르겠다니까. 과학 지식이 없는 건지 논리가 없는 건지, 어쩌면 둘 다 없는 건지.”

여기까지는 뉴스에서도 몇 번 보도했던 내용이었고,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칼이 전해주는 내용보다 왜 평소 답지 않게 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굳이 레토르트까지 먹고 있나 하는 의문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일본 여자는 가사에 능하다는 편견을 깨고 설거지나 곧잘 한다는 노이카 대신 매일 식사를 준비하는 그였다. 그 좋아하던, 어머니와 연결되는 느낌이 드는 강한 끈이라던 요리마저 밀어 둔 그의 모습은 낯설었다.

“온라인에서 음모론자들이 또 온갖 망상 펼치는 건 봤어? 아, 볼 수 없지. 그 뭐냐, 나치 있잖아. 관짝까지 썩어 있을 그걸 다시 꺼내서는 그 잔당이 태양 근처에 숨어 있다가 돌아오는 거래. 외계인이 태양 근처에 숨어 있다가 침공하는 거라는 말도 있고, 심지어 어떤 건 태양이 사실 외계인들 기지거나 외계인 그 자체랜다. 그나마 봐줄 만한 게 태양에서 힘을 충전한 슈퍼맨이 돌아오는 거라는 만화 이야기라니까.”

확실히 음모론 쪽이 다른 어떤 것들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신선하긴 했다. 난해한 수식과 복잡한 설비만 주야장천 보다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허항된 이야기를 들으니 허탈하면서도 재미있어서 웃음이 났다. 이런 거에도 웃음이 나올 정도라니 많이 힘들긴 한가 보다라고 나 자신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다지 좋은 시기도 아니고 내용도 긍정적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썩 즐거운 대화로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러려는 느낌이었다. 그가 달라 보이지만 않았다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죄를 짓습니다. 교만한 자세로 상대를 대하기도 하고, 정직하지 못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속이기도 합니다. 작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도 쉬이 화를 내고, 자비를 잊고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이들을 해하고 죽이는지 알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다시 강연대에 올라선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장례식장 전체를 보여주는 화면에서 노이카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화면 구석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들이 노이카를 달래주려는 몸짓이 보였다. 멀리서 찍히는 모습으로도 그녀가 상당히 왜소하게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죄 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방탕한 아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잔치를 벌였던 아버지처럼, 우리가 살면서 지었던 죄를 뉘우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실 것이고 우리의 가슴 속에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다른 이들이 받을 고통에까지 함께 슬퍼했던, 자신의 죄를 고하며 아파했던 에넷은 천국으로 인도되었을 겁니다.”

“니샤, 니샤.”

옆에 앉아 있던 오르베가 나를 쿡쿡 찔렀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돌아온 탕자라는 이야기인데, 혹시 알아? 미리 재산 받고 딴 나라 갔던 자식이 쫄딱 망하고선 돌아온다는 내용이야.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족들이 천대할 줄 알았는데, 죽은 걸로 치던 아들이 돌아왔으니 기쁘지 않겠냐면서 잔치 여는 이야기.”

그는 손으로 입까지 가리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여기는 교회도 아니고 저 쪽에서 알 방도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럼 누가복음 15장 11절부터 읽으며 칼 에넷을 위한 추모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충돌까지 보름 정도가 남은 시점에서 월 정기 회의가 열렸다. 관리자급 인원은 매번 앉던 자리에 앉았고, 각 팀에서 몇 명씩 차출된 인원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그 뒤로 둥근 벽 스크린에 전 세계의 연구 기지들이 연결되었다. 모두 어두운 얼굴이었다. 친루이밍이 개회를 선언했다.

“그럼 5번째 파에톤 충돌 대책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은 전과 마찬가지로 이곳 SaTh의 관측실 팀장 트리지드가 맡으며, 발언은 모두 그의 허락을 맡고 해주시길 바랍니다. 트리지드, 시작하세요.”

오르베가 어둠에서 미끄러지듯 나와 단상을 붙잡고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부스럭거리며 벨트로 단상에 몸을 고정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지난 한 주 간의 내용을 발표하기에 앞서 이전에 발표했던 내용들을 간단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대책 회의에서는 파에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짧게 끝났지만, 그 후로 점점 브리핑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이미 공유 채널로 관련 자료를 전부 공유했을 테고, 이 회의에 새로 참석하는 연구소도 많지 않을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관측 결과 파에톤은 실제로는 2000m³ 정도였고, 상당히 뜨거운 편인데도 꼬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즉, 무언가가 증발을 막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스펙트럼 분광으로 확인된 구성 성분을 볼 때, 아마 가벼운 원소들은 진작에 다 날아갔을 거고, 비교적 무거운 탄소부터 철까지는 어떤 화합물을 이뤄 상당히 단단하게 결합해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로선 그 구조를 파악할 수 없으나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면 확인할 수 있겠죠.”

물론 그 전에 충돌하겠지만. 그리고 파에톤이 지금까지처럼 대기권 내에서도 증발하지 않는다면 저 중량 그대로 지구와 충돌할 것이었다.

“파에톤의 구성 성분과 관련해서 약간의 논란이 있는데, 지금까지는 홍염응축설이 제일 합리적인 가설로 보였습니다. 단순히 표면에서 작게 폭발하는 수준이 아니라, 어떤 원인에 의해 태양 중심부의 철까지 끌어 올려서 거대한 홍염 폭발이 일어났고 그 홍염이 뭉쳐졌다는 것이죠. 이걸 홍염으로 분류하는 게 적절한가 하는 논의도 있지만 뭐, 어찌 됐든 이 가설 외에 파에톤의 궤도와 구성 성분을 동시에 설명하는 가설은 현재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일부 연구원들은 파에톤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를 따지고 있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고서는 내놓는다는 게 터무니없는 가설이 전부라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구로 치면 화산 폭발로 지구 내핵의 철과 니켈 등이 뿜어져 나왔다는 말이니, 도저히 납득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걸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얘기하는 게 과학자라는 사람들이었다. 충돌을 막을 방법이나 충돌 시의 대책 마련 등이 더 시급해 보였지만, 과학을 한다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에, 그런데 이 가설도 폐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르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다음 슬라이드에 그래프가 하나 나타났다. 그래프는 다양한 피크를 찍고 있었다.

“여기 이 그래프는 사흘 전에 분석한 파에톤의 스펙트럼 분광입니다. 대부분의 피크는 이전의 분석과 일치하는데, 여기 피크를 보시면 그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새로운 원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르베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화면에서는 사람들이 귓속말을 주고받는 장면도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저 피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파악한 듯했다. 사전에 자료를 받았을 걸 생각하면 오히려 이상한 반응이긴 했지만.

“그동안 탄소부터 철까지밖에 안 보였고, 또 태양에서 제일 무거운 원소가 철이니까, 아, 물론 이론적으로요. 그래서 그게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건 일종의 껍질 같은 거고, 얼마 전에 확인한 작은 틈새로 안쪽에 더 무거운 원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름도 없이 존재하던 피크에 원소기호와 이름이 붙었다. [우라늄] [플루토늄] 인류가 알고 있는 최악의 독. 파에톤은 그 끔찍한 것을 내부에 품은 채로 지구와 충돌할 예정이었다. 그때 CNES(Centre National d'Etudes Spatiales, 프랑스 국립 우주 연구 센터) 쪽에서 불이 켜졌다.

CNES의 마릴린 르두아앵입니다. 정말로 저 피크가 의미하는 게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맞나요? 그러니까 틈이 작다면서요? 잘못 봤다거나 빛이 중간에 간섭을 받았다거나, 아니면 겉에만 살짝 묻어 있는 걸지도 모르잖아요?”

“아니요, 마담.”

오르베의 답변은 단호했다. 그와 르두아앵 소장 사이의 관계 때문인가 싶기도 했지만 지나친 억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 때문이라 할지라도 어차피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고, 지금은 매우 공적인 자리니까 오히려 살갑게 대하는 게 더 이상할 것 같긴 했다.

“저희도 이미 수십 번 재분석한 거고, 중간에 간섭을 받았다면 다른 피크들 또한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겉에만 묻어 있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천체들이 다 그런 것처럼 무거운 원소가 가장 안쪽에 가라앉아 있겠죠. 그러니까 겉의 수십 cm의 얇은 층을 제외하면 내부는 전부 우라늄과 플루토늄, 그리고 어쩌면 더 많은 무거운 원소들로 채워졌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이번에는 Roscosmos(러시아 연방 우주국)에서 불이 켜졌다.

“러시아 연방 우주국의 이브제니 벨랴코프입니다. 현재까지의 분석으로는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만약 저 내부가 전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고 방사성 동위원소도 포함되어 있다면, 일종의 핵폭탄 같은 상태인 건가요?”

“아뇨, 그렇진 않을 겁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임계 밀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 저 온도일 리도 없고, 벌써 폭발했겠죠. 아마 자연에서 주로 보이는, 비교적 안전한 비율로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나는 저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금 어떤 상태에 있고 하는 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신경 쓰는 건 오로지 안전, 그뿐이었다. 그리고 파에톤이 우리가 예측한 것과 다르다면 분명 대책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파에톤 대책에 관한 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말을 꺼낸 이상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다.

“저 내부가 전부 우라늄 같은 거라면 지금까지 예측했던 질량이랑 수 배 차이가 날 텐데, 대기권 내에서도 증발하지 않고 그대로 지구랑 충돌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이라도 궤도 변경을 위해 미사일을 쏜다든가 추진 장치를 부착한다고 해도 분명 다시 계산하고 해야 할 텐데, 시간과 자원은 충분한가요?”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비록 기독교 쪽 얘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오르베의 간단한 설명 덕분에 대략적인 윤곽은 잡힌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신화가 비슷한 것처럼 돌아온 탕자 이야기라는 것도 비슷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유별난 건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것은 결국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적어도 그렇게 되는 것이 올바르다는 이야기.

낮과 밤이 반복되고 계절이 반복되고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것처럼. 힌두교에서 윤회를 통해 카르마[2]를 쌓고 또 그 카르마가 윤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결국 삼라만상은 돌고 도는 것이고 종국에는 아트만[3]이 브라만[4]을 깨달아 브라만과 하나가 되는 것처럼. 힌두교의 브라만이 기독교의 천국이자 신일 것이다.

 

노이카로부터 칼의 부고를 전하는 메시지가 왔다. 그걸 보자마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직 정신이 없는 건지 그녀는 받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녀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녀는 칼이 목을 맸다고 알려주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도대체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을 때 그가 평소 답지 않긴 했지만, 그건 청소에서만 보였을 뿐 다른 모습은 전부 그대로였었다. 만약 그게 그 증표 같은 것이었다면 내가 먼저 말을 꺼냈어야 했을까. 혹시 뭔가 힘든 일이 있었다면, 매번은 아니더라도 가끔 나한테 털어놓았던 것처럼 가볍게 언질이라도 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일도 없었다. 창밖을 보지 않는 이상 내가 지금 하늘에 떠 있다는 걸 잊어버리는 것처럼 그가 죽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고민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피곤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렇게 꿈속 같은 느낌으로 하루가 시작됐고,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내용이 땅에서부터 올라왔다.

한국에서 발음하기도 어려운 ‘혼천의’라는 궤도 계산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했다고 한다. 조금 더 정확히는 단순 궤도 계산뿐만 아니라 천체의 변화 같은 것까지 계산할 수 있다고 한다. 과거에 있었던 여러 현상들을 시공간 좌표에 맞춰 입력하면 된다는데, 오르베가 자세히 설명해주려 했지만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프로그램으로 태양의 과거나 미래의 홍염 폭발이나 전자기장 변화 등도 예측하고 분석해서 그 영향까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파에톤의 궤적을 분석하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파에톤은 태양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다. 파에톤은 태양을 수십 번을 돌다가 튕겨져 나온 천체였다. 마치 인류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위해 스윙바이로 행성의 에너지를 빼앗는 것처럼. 그리고 파에톤의 처음 출발지는……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목사의 설교에는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간간이 울리는 안내 방송이나 주변 사람의 이어넷 호출 등이 흐름을 끊는 탓도 있었지만, 부모님 때문에 기독교보다 차라리 힌두교가 더 익숙한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대신 내 신경은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노이카에게 가 있었다. 이전에 몇 번 참석했었던 장례식에서처럼 그녀가 칼의 유언을 대신 전하는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에게 전해 듣기로, 칼의 유서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물론이고, 나를 포함한 SaTh의 동료들에게도, NASA의 동료들에게도, 마샬이라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지구상의 모두에게도.

노이카가 처음 그 내용을 전했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마샬이라면 아마 6, 7년쯤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순간이동 실험에서 실종된 그 사람을 말하는 걸 것이다. 그와 관련된 자료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지금 찾아보려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확실히 남아 있는 사건으로 알고 있다. 물론 아무도 관련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면 안 좋은 이야기라는 걸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가 그 사건을 언급했다는 건, 그리고 그동안 과거 이야기를 꺼려했다는 건 모호하지만 확실한 연결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와 마샬이라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알고 있는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보다 더 의문이 드는 건 마지막 말이었다. 지구상의 모두에게 미안하다니, 그렇게나 유약한 사람이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런 말을 한 걸까. 스스로를 내던지는 상황에서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할 정도의 일이 뭐가 있을까. 그때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해결되었다. 파에톤에 관한 전부를 알게 되면서 모든 의문이 다 풀렸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에서 제일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관점은 무엇일까.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아니면 과학적? 만일 어떤 해결책이 그 모든 관점에서 최선의 방안이라면, 진정으로 최선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을까. SaTh의 완공이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그런 문제가 터졌다.

SaTh는 지금껏 지어진 우주 기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규모가 큰 만큼 기지를 유지하고 운용하기 위한 에너지도 많이 들어갔다. 그만한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선 그에 비례하는 자원이 있어야 함은 자명한 이야기다. SaTh가 아무리 크더라도 발전에 드는 원료와 그 부산물을 무한정 실을 공간을 확보할 순 없는 노릇이었고, 그런 공간을 마련하는 건 확실한 낭비였다. 계획상 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우주 공간에서부터 열권 하층부까지 궤도를 변경하게 될 것이었지만 땅에서 떨어져 하늘에 고립되는 건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부피도 적게 차지하고 부산물도 적게 만들면서 발전 효율은 상당한 발전 방법이 필수적이었다.

수십 년 전 이야기였다면 분명 핵분열 발전을 이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성인이 될 때쯤 핵융합 발전이 안정적으로 완성되었고 이 발전기를 우주상에 건조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핵융합 발전을 주 전력으로, 태양광 패널을 보조 전력으로 하는 SaTh는 핵융합 발전에 쓰일 원료만 주기적으로 공급되면 절대 멈출 일이 없도록 설계되었다. 문제는 그것을 처음으로 가동하는 데 있었다. 위대한 불균형이 있기 위해 최초의 작은 섭동이 필요한 것처럼, SaTh가 완공되기 전까지, 그리고 최초의 불씨를 밝히기 위해 다른 전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두 말 할 필요 없이 핵분열이었다.

SaTh가 완공되고 기지 내에는 필요 없는 핵연료봉을 포함한 방사성 폐기물이 남았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가 모듈을 붙여가며 확장될 기지에 저렇게 위험한 물건을 그대로 둘 수도 없었고, 안전하게 보관할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다른 방사성 폐기물과 함께 안전한 처리 장소에 매설하는 게 최선이었을 테지만, 국제 기지라는 특성이 이를 어렵게 했다. 예측보다 늘어난 폐기물의 양을 보고는 애초 협약과는 다르게 그 어느 나라도 위험한 물질을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다.

각 나라가 기 싸움을 하는 동안 연구원들은 저 골칫덩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골머리를 앓았다. 기지 내에 계속 보관할 수도 없다고 해서 마냥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렇게나 방출했다가는 인공위성이나 차후에 발사될 다른 발사체 등에 부딪힐지도 몰랐다. 혹시라도 지구의 중력에 잡혀 추락하는 날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악몽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다른 천체에 충돌한다고 하더라도 생물 오염과 방사능 오염 등은 차후의 지구 외 식민지 개척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었다. 그때 칼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태양으로 쏘죠.”

처음 들었을 때는 또 이상한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칼은 자신감에 찬 표정이었다.

“태양에 빨려 들어가면 나중에 조우할 걱정도 없고, 굳이 복잡하게 궤도 계산 같은 거 할 필요 없이 각도만 잘 맞춰서 쏘면 되잖아요? 그리고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도 없고.”

그의 거침 없었던 태도처럼 곧 사람들의 질문이 물밀 듯이 쏟아졌다. 에넷은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답변해나갔다.

“태양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수십 억 년 동안 태양에 흡수된 소천체가 얼마나 많은데, 겨우 이 정도로 문제 생기겠습니까. 우리도 쌀 한 톨, 면 한 가닥 더 먹은 걸로 다이어트 걱정하거나 그러진 않잖아요? 쏘는 데도 그렇게 큰 자원이 들지 않을 겁니다. 로켓 같은 걸 준비할 필요 없어요. 우린 이미 사출기가 있잖아요.”

사실 사출기는 궤도 엘리베이터 대용이었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엔 아직 인류의 기술력이 부족한데, 우주로 진출할 필요성은 나날이 커지는 상황이었다. 현재의 인류는 성장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착취할 외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첨단 기술이 적용되어 궤도 엘리베이터를 성공시킬 듯했지만, 어느 하나 시뮬레이션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궤도 엘리베이터 계획은 잠정 보류로 처리되었다. 말이 보류지 실상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유럽 쪽에서 색다른 제안이 나왔다. 마치 징검다리처럼 중간중간 기지를 건설하여 토스하듯 물자를 주고받자는 내용이었다. ISC-SaTh는 그 프로젝트의 첫 시작으로서, 인류가 지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첫발을 디딜 기지였다. 사출기 역시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것이었다. 모두가 단순히 이 용도만을 고려하고 있던 것을, 에넷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한 것이다.

“노후한 운송 섹터에 폐기물들 몰아넣고 사출기로 태양을 향해 퓽!”

그리고 그의 제안대로 기지 내의 온갖 폐기물들을 모아 태양을 향해 사출하게 되었다. 동시의 사출기의 성능 점검도 따로 할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치가들은 불평도, 거부도 하지 않는 존재가 등장한 것을 무엇보다 반겼다. 폐기물 보관이나 설비 성능 점검 등에 드는 자원과 시간을 더 아낄 수 있다는 점 또한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점이었다. 기지 내 위험 요소가 예상보다 빨리 사라지게 되는 점은 나를 포함한 안전 관리팀 전원이 제일로 꼽은 장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처리가 곤란한 여러 폐기물들을 끌어모아 태양을 향해 던졌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멘.”

내가 기독교에 관해서 그나마 아는 것이라곤 무언가의 끝에 ‘아멘’이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중간에 몇 번 ‘아멘’이라 외쳤으니 전체의 끝에만 말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지만, 방금 목사가 그 말을 했으니 적어도 설화 하나는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일 거다. 그렇게 점점 장례식도 막바지에 다가가고 있었다.

 

파에톤의 궤도를 변경하는 건 결국 무산됐다. 충돌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추측 질량이 틀렸다는 걸 안 이상 계획을 변경하여 실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시뮬레이션과 실제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할 뿐이었다. 미사일 요격으로 파괴하는 것은 아예 거론되지도 않았다. 내부에 방사성 물질이 있으니 파괴 시의 방사능 낙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수많은 과학자들이 원했던 대로, 물론 지금은 별로 원하는 것 같지도 않고 어떻게 손 쓸 도리도 없는 상황이지만, 파에톤은 지구에 그대로 충돌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계산상으로는 태평양에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해안 지방은 대피령이 떨어져서 난리 통이긴 하지만, 그대로 바다에 처박혀서 별다른 인명 피해 없이 영원히 잠기는 것이 그나마 바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겨우 그 정도였다.

파에톤은 태양신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바다의 신의 혈통도 잇는다고 한다. 그는 태양신인 아버지를 졸라 태양 마차를 끌게 되었지만, 실력이 없는 탓에 난동을 부리며 지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결국 천벌을 받아 추락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과학자들이 이름 하나는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아멘.”

 

[1] 지구의 공전 궤도가 이루는 면.

[2] 업 또는 업보.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인과의 연쇄관계에 놓이는 것이며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3] '참된 나', 윤회의 과정에서 계속하여 존재하여 없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나라는 생명의 본질'을 뜻한다.

[4] 우주의 진리 또는 우주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힌두교의 최상위 목표는 '참된 나'인 아트만이 '우주의 진리'인 브라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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