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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M.U.S.E #8 ; Re:

2019.11.21 17: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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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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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고는 넓은 침대에서 홀로 눈을 떴다. 축축하게 젖은 잠옷과 시트가 등을 통해 느껴졌다. 왼팔은 허전함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오른손을 뻗어 시계 위로 올리자마자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소리를 한참을 듣고 있다가 꺼버렸다. 오른 다리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발끝에서부터 무릎 언저리까지 대못을 박아 넣는 듯한 고통에 머릿속이 울렸다. 그는 머리를 감싸면서 오른 다리를 어루만졌다. 오른손은 얼마 가지 못해 다리의 끝에 다다랐다. 울퉁불퉁한 살 덩어리 틈새를 어설프게 채운 가죽이 느껴졌다. 환지통이었다.

어느 정도 고통이 가라앉은 후에야 그는 몸을 돌려 앉을 수 있었다. 온전하게 남은 왼발은 침대 위에 있어 비틀거리기 일쑤였지만 그는 언제나 침대의 오른쪽에만 누웠다. 그는 간밤에 또 쓰러진 의족을 주워 다리에 끼고 일어섰다. 의사들은 완벽한 수평이라고 했지만 살짝 기울어진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슬아슬하네요. 오늘도 늦으시는 줄 알았습니다, 팀장님.”

“누가 보면 매일 늦는 줄 알겠어.”

프레고는 코트를 옷걸이에 걸고는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문 앞에서부터 기다리고 있던 트레마는 조용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프레고가 앉은 의자가 천천히 돌아가 트레마를 정면으로 마주하자 트레마는 한 걸음 다가와 태블릿을 건넸다.

“이번에도 거의 다 와서 엎어졌어요. 일단 현재까지 테라토마를 형성한 개체는 총 14마리고, 아마 몇 마리 더 그렇게 될 것 같긴 한데, 치명적인 수준으로 진행할 것 같진 않습니다.”

화면은 실험용 쥐의 해부 사진들로 가득했다. 간간이 표와 그래프도 섞여 있었다.

“테라토마를 제거한 11마리는 아직 다른 이상 증세는 보이지 않고 있고, 남은 3마리는 오늘 아침에 확인한 거라 조금 더 상태를 보고 제거 수술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역분화는 전부 됐나? 텔로미어[1] 길이는… 아니, 이건 딱히 물을 필요도 없겠군. 테라토마는 분화가 다 끝난 후에 형성됐지? 그리고 조직 침투 정도는?”

“아직 분석 중인 것도 있지만, 확실히 전보다 엄청 진전했습니다. 역분화에 실패한 걸로 보이는 개체는 2마리 정도고, 형성된 테라토마의 수도 엄청나게 줄었어요. 간간이 엉뚱한 부위에서 형광 표지가 보이긴 하는데 딱히 불필요한 분화를 보이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이젠 정말 성공할 것 같아요!”

트레마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지만, 프레고는 이리저리 화면을 넘기던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아침의 고통이 잔상처럼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태블릿 화면이 검게 변했다. 트레마는 잠시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말했다.

“전 실험실로 돌아가서 마저 분석하고 있겠습니다. 보고서도 좀 보시고 정리도 좀 하시다가 오세요.”

 

***

마니티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게를 나섰다. 그는 양손에 나눠 들었던 누들 박스와 콜라를 한 손에 몰아 들고서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두었던 우산을 폈다. 그는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선팅이 진한 차를 향해 걸었다. 창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창문이 내려가고 안에 있던 로빈슨이 손을 뻗었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어?”

“이거 다 공짜로 받았거든요. 이 가게 한 달 반 전에 도둑 들었잖아요. 그거 범인 잡아줘서 고맙다고 팟타이 두 개, 거기에 시키지도 않은 콜라까지 공짜로 서비스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마니티리는 우산을 두어 번 털고 뒷좌석에 가볍게 던졌다. 그가 조수석에 앉자 로빈슨은 곧바로 누들 박스와 콜라를 건넸다. 박스를 열자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아유, 그렇게도 괜찮다고, 제값 주고 사 먹겠다고 거절했는데, 주인 할머니가 어찌나 완강하던지.”

“거절은 무슨. 넙죽 받아 왔겠지. 어찌 됐든 빨리 먹기나 해. 늦으면 또 경감이 화낼라.”

“최근에, 적어도 저희 구역은 강력 범죄는 줄어들고 있잖아요. 조금 늦는 거 정도로는 뭐라 안 하실걸요.”

잠시 후 마니티리가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나왔다. 그는 부산스럽게 뒷문을 열고 우산을 집어 들었다. 그 짧은 사이에 옷은 이미 비에 반쯤 젖어버렸다. 그는 군데군데 웅덩이가 생긴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쓰레기통 뚜껑 위에서 꼼지락대던 고양이가 그의 기척을 느끼고는 하악거리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가던 그는 갑자기 멈춰 섰다. 로빈슨은 턱을 괴고 남은 콜라를 마시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뭐해? 빨리 버리고 와.”

그녀의 외침을 듣고도 마니티리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무전기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저, 선배님. 고양이가 사람 손가락을 먹고 있는데요.”

 

****

단상에 선 트레마는 연단에 종이 뭉치를 툭툭 내려놓으며 정리했다. 안경을 고쳐 쓰자 커다란 안경알 뒤로 갈색 눈동자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게 보였다.

“프레고 팀장님 대리로 발표를 하게 된 연구원 트레마입니다. 프레고 팀장님께서도 이 자리에 와 계시지만 오늘은 오래 서 계시기 힘들어 제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추후 질의는 직접 받으신다고 합니다. 그럼 중간보고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트레마는 슬라이드를 하나하나 넘기며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연구의 목적과 방법은 간단한 글과 그림으로 보여주다가 연구 과정에 접어들자 본격적인 사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험군 C는 다리나 꼬리 등의 말단을 잘라냈고, D는 소화 기관, E는 호흡 기관, F는 배설 기관, G는 간, H는 뇌 일부분을 제거했습니다. 실험군 B는 정상 집단이지만 부작용을 비교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약을 투여했습니다.”

붉은색이 가득한 화면 때문인지 헛기침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 그런 와중에 셰만은 조용하게 스크린을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프레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 번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결과적으로는 이번 S-21 시약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실험군 C는 늦어도 17시간 이내에 절단 부위에서의 세포 재생 및 조직 형성이 시작됐습니다. 그중 한 마리만 제외하고는 모두 정상적으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분화를 마쳤습니다. 그 한 마리도 관절이 돌아간 상태로 재생한 점 외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장기 일부를 제거한 다른 실험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이쪽은 방향의 중요성이 덜해 훨씬 좋은 결과를 보였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화면에는 앞발이 옆으로 꺾여 자라난 쥐의 사진이나 제거한 기관이 다시 자란 사진 등이 계속 나왔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대개 분화가 완료된 이후에 생긴 것인데, C군부터 H군에 이르기까지는, 각 개체의 재생 완료 시점을 기준으로 42시간 이후, 그리고 B군 같은 경우는 76시간 이후 총 17마리의 몸에서 테라토마가 형성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화면은 이제 단순히 붉은색을 넘어 온갖 기괴한 형상들로 가득했다. 핏줄도 연결되지 않은 채로 뛰는 심장,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아무렇게나 돋아난 뼈, 마치 포도송이처럼 모여 군집을 이룬 안구, 털이 빽빽이 박힌 이빨과 뇌. 콜라주처럼 뒤섞인 광경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전설 속의 잔혹한 악마도 상상하지 못할 것 같은 괴이가 그곳에 있었다.

“이전의 실험들과 비교했을 때, 형성 시점 등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그 수는, 여기 그래프를 보시면, 현저히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개체는 테라토마를 제거한 이후로 건강히 살아 있습니다만, 심장에서 테라토마가 생겨났던 개체의 경우 제거 수술 이후에도 몇 번이고 테라토마가 재발했고 결국 죽었습니다.”

트레마가 연구 결과와 앞으로의 과제까지 모두 발표하고 난 후 프레고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트레마는 옆으로 살짝 빠지면서 자기 옷깃에 달려 있던 마이크를 건넸다. 프레고는 마이크를 톡톡 건드린 후에 옷깃에 달았다. 고개를 들자 손을 든 셰만이 제일 먼저 보였다.

“컬럼비아 대학 암 센터 소장 캔델 셰만입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먼저 역분화 인자로 사용하셨다는 것 중 c-Myc, Klf4는 대표적인 발암 유전자[2]이지 않습니까? 물론 단순히 이 둘을 주입한 것만으로 암으로 변이하지는 않겠지만, 그 위험성 때문에 그 두 인자를 빼고 최소한의 인자만으로 역분화시키려는 시도가 많이 있고 이미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굳이 이 둘을 포함하신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앞으로 연구 결과에 따라 사용할 인자들의 변경도 고려하고 있나요?”

“좋은 질문이네요. 처음 일본의 신야 교수에 의해 iPS(유도만능줄기세포, 역분화 줄기세포)가 성공한 이후로 정말 많은 연구가 있었죠. 그들 대부분이 안정적이고 잘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위험 요소를 줄이고 역분화 효율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네, 물론 효율을 높이는 건 저희 연구도 마찬가지로 상정한 목표지만 연구의 목적은 조금 다릅니다. 약물을 신체에 직접 투여하는 것으로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는 것이죠. 손상된 조직이 어떤 세포로 이루어져 있든 간에 역분화가 이뤄져야 하고, 그 세포를 신체로부터 추출해서 2차 조작 등을 할 수도 없기에 해당 인자들의 포함이 현재로선 필수 불가결했습니다. 이들을 계속 사용할지에 대한 건 아직 말씀드릴 게 없네요.”

프레고의 답변이 끝나자 셰만은 다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질문이 또 있는데, 테라토마는 기본적으로 암이잖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해당 약물의 영향으로 역분화 혹은 분화 과정에 문제가 생겨 줄기세포를 완벽히 통제하는 데 실패했고, 암으로 변이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테라토마가 형성된 부위가 절단 부위와는 상관없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전형적인 암 전이 현상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을 종합해서 보면 결국 약물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암세포로 변이할 확률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건데 이를 확인하셨나요? 또, 약물의 작용을 추적해서 예방하거나 분화를 억제하거나 할 순 없었나요?”

“모두 아시겠지만, 암의 원인은 엄청 많고 그중 하나로 지목받은 암 유전자[3] 같은 경우도 줄기세포 역시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이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다양한 ‘레트로 바이러스’의 RNA에 감염된 것과 같은 상태죠. 가끔은 신화에서 말하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가 이걸 말하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뭐, 이건 지금 우리의 문제는 아니죠.”

프레고는 목을 한 번 축였다.

“문제는 아직까지도 무엇이 이 RNA를 자극하고 활성화하는지 확실치 않다는 겁니다. 발암물질들의 작용 역시 마찬가지고요. 줄기세포 치료는 통상적인 경우보다 많은 분화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텔로미어 길이의 조정이나 기타 세포소기관이 대거 활동하는 등의 메커니즘이 암 발생 과정과 상당수 겹칩니다. 분화가 제대로 일어나 기능을 하느냐 아니냐 정도가 줄기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죠. 이런 일련의 과정이 상당수 겹치기 때문에 일단은 그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 형광물질로 표지한 약물로 실험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형광 반응을 보이는 조직들을 수십번이나 추적조사 했음에도 정확히 무엇에 의해 정상 세포가 암으로 변이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지금으로선 줄기세포를 통제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혈관 내에서 형광 물질을 검출하긴 했지만 극미량이었고, 대부분의 약물은 주입 부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혈관을 통해 줄기세포가 전이하는 것은 아직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암 전이처럼 역분화된 줄기세포가 전이하는 것을 제일 큰 가능성으로 추정하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몇 명의 사람들이 질문을 이었고, 질의 시간이 끝나자 프레고는 연단에서 내려왔다. 그는 다가오는 사람들과 악수를 하며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어느새 셰만이 곁에 와있었다. 그는 벗어 두었던 재킷을 팔에 걸치고 손을 뻗었다.

“오랜만이야, 캔델, 잘 지냈나?”

“언제나 그대로지.”

“그런데 슐츠가 아니라 셰만이라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크리스랑 갈라서면서 예전 성 되찾았어.”

셰만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작게 도리질을 하고는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보다 당신은 걷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네. 10 년 전만 해도 엄청 뒤뚱거리고 그랬는데.”

프레고 역시 그녀에게 맞춰 불편한 대화를 더는 길게 끌지 않았다.

“정확히는 12년이지. 그리고 자네와는 마지막으로 본 게 5년 전인가? 그사이에 안 익숙해져서야 쓰나.”

그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지나간 시간을 계산했다. 막상 떠올려보니 오랜 시간이었다. 함께 연구하던 동료인 셰만과 이렇게나 오래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는 그였다.

“당신이 그간 잘하던 연구 때려치우고 줄기세포 쪽으로 간다고 했을 땐 농담인 줄 알았고, 또 정말로 갔을 땐 빈자리 때문에 막막하고 솔직히 좀 원망스럽기도 했었는데, 잘 하고 있는 거 보니까 또 마음 놓이고 그러네.”

셰만과 멀어지게 된 것은 순전히 자신 때문이라는 걸 프레고도 알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사고나 재활은 그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복귀 후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사직서를 내고 다른 분야 연구실로 갔던 건 그의 의지였다. 오래전부터 가졌던 부채감이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연구실을 옮기는 건 더욱더 민폐일 뿐이었다. 그저 미안함을 평생 안고 사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땐 정말 미안했어. 지금 와서 말하기도 뭐하지만, 아내가 그렇게 되고 나서 진짜 정신 놓고 살았으니까. 아무도 못 하면 내 손으로라도 고치겠다고 이것저것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지금 이 자리네.”

“협력 제안도 이미 몇 번인가 거절했다며? 당신 고집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을 텐데. 가끔은 당신이 존경스럽기도 해.”

“홉킨스 소장이 많이 도와줘서 가능했어. 애초에 그녀가 없었으면 이 연구소에 들어오지도 못했겠지.

셰만은 프레고의 어깨를 주물렀다. 바로 딱딱한 뼈가 만져졌다.

“당신 정말 잘 하고 있는 거야. 근데 왜 이렇게 말랐어?”

 

*****

“아, 병원 쪽에서 말씀하신 분들이군요.”

방문자 패스를 걸고 있는 로빈슨과 마니티리에게 트레마가 다가왔다. 그가 악수를 청했고 둘은 차례차례 이에 응했다.

“NYPD의 엘르슈드 로빈슨 형사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마니티리입니다. 형사요. 프레고 박사님이신가요? 엄청 동안이시네요.”

트레마는 그의 말에 소리 내서 웃었다. 로빈슨은 팔꿈치로 마니티리의 옆구리를 세게 쳤다. 덕분에 마니티리의 자세가 살짝 무너졌다.

“프레고 박사님은 연구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새 여러 일 때문에 바쁘신 데다가 몸도 좀 편찮으셔서요. 전 연구원 션 트레마입니다. 제가 안내해드리죠.”

트레마가 앞장서고 둘은 그를 따라 걸었다. 트레마는 지나쳐가는 방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면서 이 방에선 유전자의 중복을 조절하는 연구를 한다는 둥, 저 방에선 분화 횟수의 한계 실험을 한다는 둥의 내용을 시시콜콜하게 전부 이야기했다. 자기네 방에선 괴물처럼 생긴 종양이 안 사라져서 힘들다는 한탄까지 늘어놓았다. 그렇게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다.

“팀장님, 연락 주신 형사님들 오셨어요.”

안에서 프레고의 목소리가 들리자 트레마는 문을 열었다. 둘은 들어갔고, 하나는 떠났다. 두 형사의 시선은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프레고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바지의 오른쪽 밑단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렸다.

“소파에 앉으세요. 그리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프레고는 연구실 한편의 작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상태로는 이동 중에 엎지를 것 같아서 말이죠. 휠체어는 오랜만에 사용하는 거라.”

프레고는 자신의 오른 다리를 내려다보고 한 번 쓸어내렸다. 마니티리는 고개를 내밀어 그 모습을 지켜봤다.

“오랜만에 쓰신다고요?”

“아, 보통은 의족을 씁니다.”

프레고는 허벅지 사이에 끼웠던 우유를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잔을 가져오기 위해 다시 몸을 돌렸다. 마니티리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도와드릴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비록 집도 아니고 그냥 연구실일 뿐이지만 일단은 제가 주인이고, 형사분들이 손님이니까요. 영화 같은 데서 보면 브랜디나 스카치 같은 걸 주로 마시던데, 역시 그건 무리겠죠?”

“우유면 괜찮습니다.”

로빈슨의 대답에 마니티리는 살짝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왜 의족 대신 휠체어를 쓰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파블!”

로빈슨은 마니티리를 쏘아보며 외쳤다. 프레고는 다리를 잠시 긁다가 세 개의 잔에 차례대로 우유를 따르며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사실 별거 없어요. 아무리 의체 기술이 발달했다곤 해도 정기적인 점검이 필요한데, 그런 비슷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최근에 좀 안 맞게 돼서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오신 건 아닐 테고.”

“박사님의 귀중하신 시간을 낭비할 순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희는 의학적, 생물학적 자문을 얻고자 왔습니다. 최근에 이 근방에 살인 사건의 가능성이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살인이요? 그런 일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프레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로빈슨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 마니티리는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과 펜을 꺼냈다.

“아직까진 가능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신체 조직의 일부를 발견했는데, 감식반에서 말하길, 조직들의 활동 정도가 비정상적이라고 하더군요. 분명 진즉 죽었어야 할 세포들이 엄청 오래 살아 있다고 얘기하는데, 솔직히 과학 쪽은 문외한이라 이해도 못 하겠고,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헷갈릴 지경입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묻고 싶은 건, 사람은 죽었는데 그 안의 세포는 살아 있는 게 가능한가요?”

프레고는 휠체어에 기대 턱을 쓰다듬었다. 꺼끌꺼끌한 수염을 쓰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까다로운 질문이군요. 그걸 이야기하려면 세포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생명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세포의 작동 원리는 알고 있습니다. 전기화학적 반응이죠. 뭐, 좀 더 원론적으로는 물리겠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넘어갑시다. 세포는 화학 반응들의 연속으로 움직입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여러분이 듣는 것도, 우유를 마시고 나중에 화장실을 가는 것도, 근육을 하나하나 움직이고 외부에서 들어온 세균과 싸우고, 수정해서 번식하고, 심지어 생각하는 것까지. 그 어떤 것도 이 원리를 거스를 순 없죠.”

프레고는 남아 있는 우유를 비웠다. 유리잔의 벽에 매달려 있던 흰색이 모두 바닥으로 채 미끄러지기도 전에 그는 우유를 한 잔 더 따랐다. 그 사이에도 마니티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이냐. 그런 세포들이 모이기만 한다고 생명이 되는 건 아닙니다. 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일부 있더라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갓 도축한 고기의 근육이 ATP, 아 그러니까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에서 꿈틀거린다고 그 고깃덩어리를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마니티리는 열심히 움직이던 펜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음,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세포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화학 반응이고, 생명은 그 소모할 에너지를 찾아서 흡수하는 과정 비슷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개체가 더는 이런 순환을 지속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을 때, 가령 밥을 먹지 못하는 상태로 오랜 시간이 지나거나, 에너지를 몸 전체에 퍼뜨려줄 심장이 멈추거나, 뇌가 명령을 내리지 못하거나 할 때, 그래서 더는 이런 과정을 지속할 수 없을 때를 우리는 보통 죽음이라 부르죠.”

마니티리는 이제 하품까지 했다. 로빈슨은 다시 한번 그를 쏘아보았다. 마니티리의 반응을 보며 손을 쥐었다 피기도 하고 다리를 긁적이기도 하는 걸 보니 프레고는 대체할 더 쉬운 표현을 찾는 듯했다.

“설명이 어려웠나 보군요. 간단한 비유를 들자면 생명은 달리는 자동차와 같고, 세포는, 음 바퀴라고 해두죠. 잘 달리다가 기름이 부족하든 배터리가 나가든 해서 엔진이 멈추면 죽는 겁니다. 그럼 그 순간 차가 그 자리에 바로 서느냐. 그렇지 않죠. 관성 때문에 차는 얼마간 더 진행합니다. 엔진이 꺼져도 바퀴는 굴러가는 거죠.”

“그럼 오래 살아있다던 세포들도…….”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는진 모르겠지만, 에너지가 꽤 많이 저장되어 있었나 봅니다.”

마니티리는 그제야 입을 벌리며 작게 탄식했다.

한참 후 세 명은 연구실에서 나왔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빈슨은 복도도 아니고 연구실도 아닌 애매한 문간에 멈춰 선 프레고와 악수했다.

“아닙니다. 제가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는걸요.”

마니티리도 이어서 그와 악수했다. 로빈슨은 그 사이에 안주머니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프레고에게 건넸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오늘 말씀해주신 걸 감식반 쪽에 가능한 한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저흰 잘 모르겠지만 그쪽 사람들에겐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아, 그럼 잠시만요. 좀 오래된 거긴 한데, 제 명함도 드리겠습니다. 또 연락 주시면 제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프레고는 다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 한동안 서랍을 뒤졌다. 그는 서랍 속 물건을 이것저것 책상 위에 올려놓더니 자기 명함을 두 장을 들고 나왔다. 직책에는 아무런 것도 없이 그냥 연구원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

“인정할 수 없네!”

프레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홉킨스도 자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반동으로 의자는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네가 인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주희, 당신도 봤잖아. 이제 조금만 더 하면….”

“8년이야, 8년, 데이브. 나도 자네를 도와주고 싶지만, 지금 우리 연구소 자금이 그 정도로 넉넉하지 못해. 그리고 연구를 중단하는 것도 아니잖아. 산학 협약을 맺는 거뿐이야. 기술에 대한 권한만 넘기는 거라고. 그 대신 자금난도 해결하고, 자네는 아무런 문제 없이, 아니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계속 연구할 수도 있어.”

프레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 하나 편해지자고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 내가 왜 이 연구를 시작했는지도. 내 아내가 그렇게 되고서도 줄기세포 제어가 아니라 역분화에 더 힘썼던 이유가 뭔지 말이야!”

홉킨스는 이마를 짚었다. 그녀의 손짓이 조금 더 현란해졌다.

“그래, 자네의 박애 정신 다 알고 있어! 그 자리에서 즉시, 누구나 시술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 자네가 그랬지. 난 ‘누구나’는 아니더라도 ‘즉시’ 만큼은 이뤄주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자네가 아무리 싫어해도 미국은 그런 나라라고.”

“그러니까 지금 자네 말은, 회사 하나가 기술을 독점하게 하고 가격도 자기네들 마음대로 책정하게 방관해서 결국은 또다시 돈 있는 사람들만 치료받게 하자는 거지? 손가락 다 잘려도 어느 손가락이 제일 가치가 높을지 계산하고 앉아 있어야 하고, 장애인 등록되고 직장도 잘리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그런 세상 그대로 말이야!”

프레고는 매우 냉담하게 조소를 지었다. 홉킨스가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렸다. 프레고를 따라 나오는 그녀보다 그가 문을 닫는 게 먼저였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홉킨스는 문고리를 붙잡고 서서 그를 향해 외쳤다. 온 복도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연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늘 당직을 서는 연구원은 잠시 밖에 나간 듯했다. 창문 밖은 어느새 깜깜하게 변해 있었고,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프레고는 나지막이 내뱉었다.

“절대로 뺏길 수 없어.”

그의 눈에 새로이 조정을 마친 샘플이 보였다. 오른 다리가 다시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달리는가 싶더니 비틀렸고, 뛰는가 싶더니 불에 탔다. 종잡을 수 없는 감각이 그의 뇌를 휘저었다. 하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걸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프레고는 어느새 샘플을 들고 있었다.

“요새 뭔가 좀 바뀌신 것 같아요, 팀장님.”

트레마가 프레고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한창 스테이크를 썰고 있던 프레고는 칼질을 멈추고 트레마를 쳐다봤다.

“내가? 잘 모르겠는데. 그대로 아닌가?”

트레마는 와인 소스 스테이크 바로 옆의 볼로네즈 파스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식욕이 엄청 느셨어요. 지금도 남들 두 배는 먹고 계시지 않습니까?”

“너무 맛있어 보여서 시킨 거야. 왜 그런 날 있잖나. 충동적으로 과식하는 날.”

프레고는 커다란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트레마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런 게 열흘도 넘게 이어지는 일은 보통 없죠. 그뿐입니까? 예전엔 일주일에 한 번씩 채워도 적당하던 냉장고가 이제는 사나흘이면 동나요. 마트도 먼데, 얼마나 귀찮은지 아세요?”

“이해 좀 해줘. 요새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미팅하느라 에너지 소비가 많아서 그래. 진짜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울 정도로 내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걸 알잖아.”

확실히 프레고는 많이 먹는 만큼 엄청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가 인정하고 말고는 매우 미시적인 차원의 문제였다. 홉킨스의 말대로였다. 그는 연구의 진행 대부분은 일단 연구실 직원들에게 맡겨 두고 산학 협력의 일을 중점적으로 신경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의 일상을 바쁘게 만드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바쁘신데 이제 슬슬 의족으로 바꾸시면 안 됩니까?”

“몇 번이나 말했잖나. 단순 점검이 아니라 의족에 문제가 있어서 수리 중이라니까. 자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접합 부위도 안 맞고, 균형도 안 맞아서 그런지 고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 듯하네. 어쩌면 아예 새로 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프레고는 마지막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마지막 조각이니만큼 가능한 한 천천히 씹으면서 식감과 맛을 음미했다.

“언제 수리되는지는 혹시 모르세요? 지금 진짜 바쁜데 이동하는 데에까지 시간 뺏길 여유는 없잖아요.”

프레고는 스테이크 접시를 치우고 파스타를 끌어왔다. 그는 포크에 묻은 소스를 깨끗하게 빨아먹고 파스타 면을 풀기 시작했다.

“자네들한텐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특히 차에서 타고 내릴 때 도와주는 거 말이야. 그래도 오랜만이라서 그렇지, 이제 휠체어에도 어느 정도 적응해가고 있으니 괜찮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소비하는 시간은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건 확실히 프레고의 문제였으므로 트레마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트레마는 찜찜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트레마가 느낀 프레고의 변화는 좀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것이었다. 그는 식탁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프레고의 다리를 바라봤다. 프레고의 팔이 움직이는 걸 보니 식탁 아래에서 다리를 긁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근에 습관도 하나 생기신 것 같아요.”

“습관?”

“네, 그… 아닙니다. 사람 습관이야 한둘이 아니니까요.”

트레마는 말을 잇지 않고 자신의 식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민감한 문제여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어렴풋이 추측하고 있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를 감당할 만한 자신이 트레마에게는 없었다. 또한 그때가 왔을 때 달라진 프레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로는 프레고도 마찬가지였다. 프레고는 그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다리는 다시 자라고 있었다. 다리를 만질 때마다 느껴지는 이물감이, 가만히 있어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질감이 모든 것의 증명이었다. 오랜 기억 속의 성장통도 느껴지는 듯했다. 아직은 그 혼자만 간직해야 할 비밀이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매일 저녁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서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그의 은밀한 일과가 되었다.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매일의 기록을 개인 자료에 업데이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새 발목 부근까지 재생한 다리에 기쁨과 대견함을 느끼기도 했다. 혹시나 누가 알아볼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긴 바지를 입고 있으니 알아챌 사람은 없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장애인의 다리나 옷자락을 함부로 만질 사람도 없으니 다행이었다.

“뭐 바쁘신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가끔이라도 실험실에 들려주세요. 팀장님 안 오시니까 이전 같지 않아요.”

프레고의 접시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렇게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다들 약간 설렁설렁하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는 생화학 폐기통에서 실험용 쥐가 산 채로 나왔어요. 일 대충 하냐고 제가 주의를 좀 주긴 했는데, 역시 팀장님이 해야 효과가 더 크겠죠.”

프레고는 여태껏 실험실 관리나 안전 수칙 등에는 철저한 편이었기에 이런 일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런 것으로 화를 내거나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실 그는 스스로가 그럴 자격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용히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앞으로 좀 더 신경 쓰지. 그럼 난 다 먹었으니 이만 가보겠네.”

프레고는 접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 정리만 해두세요. 반납은 제가 할게요.”

“그래 주겠나. 그럼 부탁하네. 고마워.”

“비도 오는데 제가 차 타시는 거 도와드릴까요?”

“아니야, 괜찮네. 혼자 하는 데 익숙해져야지. 그리고 비 좀 맞으면 좀 어떤가.”

트레마는 천천히 멀어지는 프레고를 쳐다봤다. 프레고는 실험실에 잠시 들렀다가 연구실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점심쯤부터 내리던 비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짐부터 뒷좌석에 두고 한 발로 서서 트렁크에 휠체어를 접어 넣었다. 그리고 콩콩콩 뛰어 운전석까지 이동했다. 다리 하나로 움직이는 데에도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크게 했다. 오른 다리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확실히 성장통은 아니야. 그보다 그새 더 커진 것 같은데.”

그의 손가락 끝에선 다리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 느껴졌다. 그간 꼼꼼히 확인한다고 한 게 무색할 정도로 상당한 크기로 자라 있기도 했다. 눈으로는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각도여서 알아차리는 게 늦은 모양이었다. 그는 이미 늦지 않았나 하는 걱정도 했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많았다. 프레고는 전공 덕분에 관련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었고, 그의 연구소에는 많은 것이 충분했다. 더욱이, 그는 고통에 익숙했다.

 

*******

로빈슨은 인근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책상 위로 던졌다. 그 충격에 절전 상태였던 모니터가 다 밝아졌다. 화면 속에는 지도가 띄워져 있었고, 군데군데 빨간 핀들이 박혀 있었다. 토막 난 신체 부위들이 발견된 장소였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빨간색으로 발견 시각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점퍼를 벗어 맺힌 빗방울을 털고는 의자에 걸었다. 투덜거리며 늦은 저녁을 이제 막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였다.

“선배님! 감식반에서 결과 나왔어요!”

마니티리가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로빈슨은 거의 빼앗듯이 마니티리 손의 자료를 낚아챘다. 며칠 전에 본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DNA 검사 결과 동일 인물입니다. 이제 손가락 두 개, 발가락 네 개, 그리고… 눈 하나가 됐네요. 그리고 그때 현장에서 발견한 모르핀 병에 묻은 지문과 일치하는 전과자는 없었어요. 일반 시민 대상으로 지문 조회하기엔 좀 까다롭고 너무 광범위한데… 그런데 이거 범죄처럼 보이긴 하는데, 정말 범죄가 맞긴 할까요?”

로빈슨은 입안의 내용물을 삼키고는 조용히 마니티리를 올려다봤다.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좀 이상하다는 거죠. 아무리 토막 살인이라도 이 정도로 작게 자르는 경우는 보통 없잖아요. 납치인가 싶었는데 일단 신고 들어온 것 중에 40~50대의 백인 남성도 없었고, 심지어 실종도 없었고요.”

“그래서 단순 사고의 가능성도 열어둔 거잖아. 인근 병원에 협력 요청도 해둔 상태고. 마침 마취제 병도 발견돼서 혹시 자가 치료라도 한 거 아닐까 하고 말이야.”

“제 말은 그것도 이상하다는 거예요!”

마니티리는 로빈슨이 보고 있던 자료를 다시 자기 손으로 가져왔다. 그는 몇 페이지를 넘기더니 로빈슨에게 들이밀었다.

“보세요. ‘절단된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임’ 뭐 때문에 잘렸는진 모르겠지만 손가락 발가락 잘린 사람이 며칠 후에 또 잘린다? 그리고 자기 눈까지 파낸다? 이런 경우가 대체 어디 있죠?”

로빈슨은 팔짱을 끼고 되물었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제약 회사에선 뭐래? 아직 회신 안 왔어?”

“오늘 오전에 와서 메신저로 전달했는데, 안 보셨어요?”

“오늘 너한테 온 메시지라면 늦잠 자서 좀 늦을 거라는 징징거림 밖에 없었는데?”

“아, 보내는 거 깜빡했나? 분량 얼마 안 되니까 그냥 말씀드릴게요.”

“넌 기억력은 좋은데 꼭 뭔가 하나씩 까먹은 채로 기억하더라. 수첩에 적는 것도 그때뿐이고. 밥 먹을 때마다 한 번씩 확인해도 그럴 일 없겠다.”

로빈슨은 다시 샌드위치를 손에 들었다. 두 번째 입이었다.

“앞으로 꼭 그럴게요. 흠, 그래서 제약 회사에선, 일단 해당 약병 하나하나를 어디서 구입했는지 추적하는 게 그리 쉽진 않대요. 기본적으로 박스 단위로 대량 구매하는 경우가 많고, 또 주마다 운송이나 약물 관련 법이 조금씩 다른 게 있어서 배달 방법도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뭐, 일단 그 시리얼 넘버면 프린스턴 대학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네요.”

“프린스턴? 거긴 뉴저지잖아. 그럼 거기 게 여기까지 왔다고?”

“어디까지나 가능성 중 하나고, 바로 옆이니까 먼 것도 아니잖아요? 누군가 거기서 구입하거나 반출해서 여기까지 가져왔을 수도 있고요.”

로빈슨은 봉투에서 냅킨을 빼내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았다.

“그리고 해당 약물은 일반 약국으론 잘 안 가고, 전문의약품이라 약국에서도 사려면 의료 면허를 소지해야 한다고 하네요. 점점 이상해지지 않아요?”

“확실히 그렇긴 하지. 살인이나 납치 등으로 보기엔 지지부진한 진행, 단순 사고라기엔 지속적인 피해와 구하기 힘든 약물, 그리고 코빼기도 안 보이는 피해자. 흐음, 파블, 네가 보기에 이건 무슨 사건 같아?”

마니티리는 자료를 가지런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글쎄요. 전 아직은 그냥 이상하다는 느낌 밖엔. 하하.”

마니티리의 말에 로빈슨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심지어 어느 정도 잔뼈가 굵은 그녀도 이와 비슷한 사건은 듣도 보도 못했다. 선배와 동료 형사들 역시 매한가지였다. 차라리 추리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사건들이 더 그럴듯해 보일 정도로 이 사건은 이해 안 가는 것투성이였다. 어떤 가능성에 대입하더라도 설명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남았다. 그때 동료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새 신체 부위 발견했다]

[근데 이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 거 같은데]

뒤이어 수신한 사진에는 피범벅이 된 발이 있었다. 정확히는 발이라고 추정되는 무언가였다. 마치 불가사리처럼 사방으로 튀어나온 발가락이 그 사실을 부정하면서도 긍정하는 것 같았다. 로빈슨은 말없이 그 괴상한 형상을 보고만 있었다. 그 침묵을 깬 건 마니티리였다.

“생긴 게 꼭 ‘더 씽’에 나오는 괴물 같네요. 언젠가 비슷한 설명을 들었던 같은데, 막 이상하게 생긴 종양 연구한다고 하던…….”

“프린스턴.”

“맞아요! 그 연구소! 그러고 보니 약병도 거기 거일 확률이 높고… 연락해볼까요?”

마니티리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로빈슨은 우선 그를 제지했다.

“이런 시각에 사람이 남아 있는지 모르고, 또 따로 직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는 번호 있어?”

“그때 명함 교환했잖아요.”

로빈슨은 놀란 눈을 짓더니 품에서 지갑을 꺼내 뒤졌다. 구겨진 명함들 사이에서 빳빳한 새 명함을 골라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프레고 박사님? 지난주에 방문했던 로빈슨 형사입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만, 급히 여쭐 것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최근에 연구실 물품이 도난당하거나 불법적으로 반출된 정황 같은 게 있었나요?”

“아, 네, 형사님. 근데 물품 도난이요?”

수화기 너머에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일단 기본적으로 외부인이 쉽게 드나들 순 없기에 도난이 있기는 힘들고, 반출은 글쎄요…. 커다란 장비라면 모를까 작은 도구 같은 건 알아차리기 힘들죠. 정기적으로 수량 조사를 하긴 하지만 부족한 물품의 구매를 위한 거고. 그리고 어차피 연구실 밖에선 딱히 쓸모도 없는 건데 굳이 가져나갈 이유도 없죠.”

 

********

시끄러운 소리에 셰만은 눈을 떴다. 깜깜한 방 안에서 열 몇 개의 숫자만이 초록색으로 빛나는 게 보였다. 그녀가 불을 켜는 순간에도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외치면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데이브?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셰만은 황급히 문을 열었다. 문에 기대 있던 프레고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산도 없이 온 것인지 그는 물에서 나온 것처럼 젖어 있었다. 덕분에 현관은 그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빗물로 엉망이 됐다. 그와 동시에 작은 권총 하나가 프레고의 품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권총보다 셰만을 더 놀라게 한 것은 프레고의 다리였다. 이미 붉게 물든 바지를 넘어 현관에까지 핏물이 흘렀다. 피의 양만으로는 꽤 심한 부상인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야? 당신 다리는 왜 그러고, 또 저 총은 뭐야?”

“나 좀 도와줘. 일단 그냥.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프레고의 팔이 떨리고 있었다. 셰만은 그를 일으켜 세워 거실로 데려갔다. 순간 카펫에 핏물이 스며드는 게 걱정이 됐지만, 그의 상태를 보고는 금방 떨쳐냈다. 그녀는 그를 소파에 앉히고 담요를 가져와 덮어주었다. 프레고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스스로를 대상으로 실험했다는 거잖아. 그리고 부작용 때문에 계속 혼자서 그 짓을 했다는 거고. 그것도 연구실 물품으로.”

셰만은 하얀 김이 올라오는 머그잔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왔다. 그중 하나를 프레고에게 들이밀었지만, 그는 바닥만을 쳐다보느라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부어버리기 전에 빨리 받아.”

프레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담요 사이에서 나온 손은 떨리고 있었다. 차가 넘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리고 무슨 과자 봉지도 아니고 그걸 그냥 버려? 사람들이 발견하면 어떻게 될지도 생각 못 한 거야?”

“자네 말 대로야. 아무런 생각도 없었어. 그건 나한테 그저… 그저 정말 작은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그냥 잘라내면 되는 그런 거 말야. 손톱이나 머리카락처럼. 생각해 봐. 누가 그런 걸 신경 써?”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자르는 경우는 흔치 않지. 그게 계속 자라는 경우는 더더욱. 뭐, 그래, 그건 그렇다 치자. 이 총은 뭐야? 설마 사용한 건 아니겠지?”

셰만은 그의 맞은편에 앉고서 테이블 가운데에 놓은 총을 가리켰다.

“아냐, 그냥 호신용으로 챙긴 거야. 혹시 몰라서….”

아까부터 인상을 쓰고 있던 셰만은 얼굴을 더욱 찡그렸다.

“호신? 지금 제일 위험한 건 당신이야! 당신은 윤리위원회의 징계는 물론이고, 새로 개정된 실험윤리특별법으로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도 있어! 이건 연방법이라서 다른 주로 도망쳐 봤자야. 애초에 도망치는 순간 도주까지 죄에 추가되겠지만. 고작 총 한 자루로 당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그 총이 이미 범죄자가 된 당신으로부터 당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그냥 조용히 있을 테니까, 쥐 죽은 듯이 말이야. 그러니까 잠시만 여기서 지낼 수 없을까? 며칠밖에 안 돼도 상관없어. 적어도 지혈이 어느 정도 돼서 걸을 수 있게 될 때까지라도.”

프레고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양손으로 머그잔을 감싸 쥔 채로 차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셰만은 한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오래 머무를 수는 있겠어?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거 같다며? 당신 흔적 찾아서 내 집까지 오는 건 일도 아닐 텐데.”

“다 놔두고 왔으니까 빨리 찾진 못할 거야. 차도 그대로 두고 왔고. 휠체어도 눈에 띌까 봐 중간에 버렸어.”

“그럼 그냥 걸어왔다고? 여기까지? 당신 집 토튼빌 아니었어? 대체 몇 시간을 걸은 거야?”

프레고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려 했다. 손목을 돌리는 순간 머그잔도 같이 기울었고 뜨거운 차가 다리 위로 쏟아졌다. 그는 곧장 머그잔을 똑바로 들었지만 이미 상당한 양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아픔도 못 느끼는지 찡그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셰만이 그보다 더 놀라 소리쳤다.

“괜찮아? 안 뜨거워? 당신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냐?”

셰만은 주방으로 달려가 행주에 찬물을 묻혀 가져왔다. 프레고가 행주를 받으려는 듯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그 손을 치우며 직접 바지를 닦았다. 축축한 천 너머로 다시 자랐다는 그의 다리가 느껴졌다.

“감각은 다 살아 있어. 그냥 익숙해졌을 뿐이야.”

셰만은 행주로 몇 번을 문지르다가 일어섰다.

“일단은 옷부터 갈아입자. 이대로면 분명 감기 걸릴 테니까. 바지는 피범벅이기도 하고.”

“옷도 다 집에 두고 왔는데. 내 집에.”

“걱정 마. 크리스 옷이 있으니까.”

셰만은 프레고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똑바로 서지 못하고 다시 삐딱하게 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약 기운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비틀대는 탓도 있었다. 그녀는 그를 부축하며 욕실로 향했다.

“괜찮을까? 아직 자른 지 얼마 안 됐는데. 아물지도 않아서 피도 계속 묻을지도 몰라. 근데 자네 남편은 어디 갔어?”

셰만은 다시 한번 인상을 썼다.

“지난번에 이혼했다고 말했잖아. 이제는 입을 사람 없는 옷이니까 신경 쓰지 마.”

그녀는 프레고를 욕실 안에 밀어 넣고 2층으로 올라갔다. 한동안 열지 않았던 서랍에는 크리스티앙의 옷이 그대로 있었다. 옷에선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다. 그녀는 두꺼운 상의와 대비되는 반바지를 챙겼다. 그리고 응급 상자까지 들고 1층으로 내려왔다. 현관에서부터 거실 소파까지, 그리고 다시 소파에서 욕실까지, 붉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로빈슨은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번호를 저장해두는 성격이었기에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혹시 아는 번호인가 하고 기억을 더듬었지만 그녀가 처음 보는 번호임이 확실했다.

“줄기세포 연구소의 션 트레마라고 합니다. 2주쯤 전에 저희 연구소에 들르신 형사분 맞으시죠?”

“아, 네, 트레마 씨. 맞습니다. 로빈슨 형사입니다.”

그녀의 기억엔 트레마와 번호를 교환한 일도 없었다. 옆에서 운전 중이던 마니티리도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안내해주셨던 분이시군요. 그런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아시고?”

“프레고 팀장님 책상 위에 명함이 놓여 있더라고요.”

“아, 명함. 네, 무슨 일로 연락 주신 거죠?”

수화기 너머에서 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실종 신고 비슷한 걸 하려고 하는데요.”

“그런 거라면 그냥 911로 전화하셔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런 게 아니라, 형사분들이 그때 연구소에 방문하셨던 그 이유와 연관 있는 것 같아서요.”

로빈슨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마니티리를 쳐다봤다. 마니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스피커폰이 아니라 자기만 그 말을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곧바로 스피커폰으로 상태를 전환하고 차량용 거치대에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희 박사님께 오랫동안 살아서 활동하는 세포에 대해 질문하셨었죠? 그게 저희 쪽에서 연구하던 유도만능줄기세포 때문인 것 같아요. 복잡한 내용 다 빼고 말씀드리면, 약물을 주사해서 절단된 신체를 재생하는 연구인데, 두 달 전에 만든 샘플이 계산과 달리 부족한 일이 있었어요. 그 이후로도 몇몇 비품들이 전산 기록과 안 맞는 게 확인됐어요. 취급에 주의해야 할 게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단순히 이 정도라면 사용하고 나서 얼마만큼 썼는지 기재하는 걸 까먹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냥 넘어갈 텐데, 한 달쯤 전부터 프레고 팀장님이 좀… 변하셨거든요.”

“어떻게 변했다는 거죠?”

마니티리가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며 물었다. 로빈슨은 그의 팔을 한 대 치며 수첩을 뺏어 왔다. 마니티리는 그녀에게 작은 소리로 사과하고 다시 핸들에 손을 올렸다.

“두 분이 박사님을 보셨을 때 다리가 어디쯤에서 잘린 것 같았나요? 물론 줄곧 긴 바지를 입고 있으셔서 눈치채지 못하셨을 수도 있어요.”

“실례가 될까 봐 유심히 보지는 않았지만 정강이? 아니면 무릎 부분에서 잘리신 것 같았습니다. 아닌가요?”

“역시 두 분도 그렇게 보셨군요. 그렇지 않아요. 박사님 오른 다리는 허벅지 중간쯤에서 절단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됐다는 건 거의 확실하게…….”

로빈슨은 한 달 반 동안 자신들을 괴롭히던 의문들을 떠올렸다. 뜨문뜨문 발견되던 신체 조각,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괴상한 발, 감식반이 말하기를 통상보다 오래 살아남는 세포들, 일반인이 구하기 힘든 약물, 그리고 신체 재생 연구. 순간 어제 있었던 프레고와의 통화가 기억났다.

“혹시 사라진 것 중에 모르핀도 있습니까?”

“네, 있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모이는 듯했다. 검은 실루엣으로만 그려지던 피해자와 용의자의 몽타주가 하나로 겹쳤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신고 접수했습니다. 프레고 박사님은 저희가 찾아내겠습니다.”

로빈슨은 전화를 끊으면서 무전기를 손에 들었다.

“별칭 미니 토막 사건의 용의자 신원을 파악했다. 이름 데이브 프레고. 색슨 계열의 54세 남성. 프린스턴 대학 줄기세포 연구소 재직 중. 그 나이대로 보이며 머리 길이는 길지 않고 수염도 기르지 않음. 오른 다리가 절단당한 상태이다. 현재 통신 두절 상태이며 마지막으로 확인된 행적은 어제 직장에서의 퇴근. 현재 도주 중인 것으로 파악. 당장 수배령을 내리고 용의자의 계좌를 막을 것을 요청합니다.”

그녀는 무전기를 내려놓고 손을 허공에서 빙빙 돌렸다.

“파블, 당장 차 돌려. 우린 바로 박사님 자택으로 간다.”

 

**********

프레고는 셰만의 집에 숨은 채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햇빛이라고는 커튼 사이로 가늘게 들어오는 게 고작이었다. 핸드폰도 두고 왔기에 셰만의 집에 있는 TV와 컴퓨터 외에는 외부와 연결될 길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고, TV도 셰만이 없을 때는 음소거 상태로 자막만으로 내용을 판단해야 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다행인 것은 어떤 매체에서도 프레고가 우려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가끔 경찰차가 순찰을 도는 광경을 보긴 했지만 일상적인 수준이었다. 몇 시간을 아스팔트 바닥에 짓이기느라 뭉개졌던 상처도 다 아문지 오래였고, 셰만이 구해준 목발도 있어서 움직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사실 어느 정도 발이 형성되어 있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밖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점점 잦아졌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그거 중독이야.”

셰만은 장 봐온 식자재를 냉장고에 채워 넣으며 말했다. 프레고는 식탁 옆에 기대 있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그래도 맨정신으로 하다 쇼크로 기절해서 과다 출혈로 죽는 거보단 이게 훨씬 낫지.”

“운동 능력이 떨어져서 다리도 절고 수전증까지 오고, 지금도 동공 풀려 있고, 잠도 제대로 못 자잖아. 일상이랄 게 완전히 파괴됐는데 그게 괜찮다고?”

프레고는 셰만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 기대 있는 것조차도 겨우 해내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고통 때문에 밤마다 깨어나기 일쑤였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마취 없이 살을 도려낼 결심은 쉽게 들지 않았다.

“아니었으면 고통 때문에 제정신 유지하기도 힘들었을 거야.”

“어쨌든 안 돼.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건 이만큼이 한계야. 내가 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어떻게든 그걸로 버텨.”

냉장고 정리를 마친 셰만은 식탁 중앙에 둔 모르핀 병 하나를 가리켰다. 그 옆에는 새 주사기도 같이 있었다. 프레고는 묵묵히 약병을 손에 들었다. 수전증 때문에 출렁이는 액체가 보였다.

“여기 돈도 좀 두고 갈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써. 식료품점은 몇 블록 위에 있어. 어차피 지도 보면 다 나오니까 그거 보고 찾아가고.”

셰만은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왔다. 프레고 혼자 집에 두고 나오는 게 걱정되었지만, 그녀에게도 그녀만의 삶이 있었다. 프레고도 이해하고 있었다. 오히려 최대한 빨리 그녀의 집을 나오는 게 자신은 물론 그녀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프레고가 그녀의 집에 오래 머무를수록 그녀에게 부정적이리란 건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됐든 그는 여러모로 은신처가 필요했다. 그의 몸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자, 로빈슨은 문을 두들겼다. 프레고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했지만, 반응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녀는 마니티리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고 둘은 총을 손에 쥐었다. 마니티리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을 걷어찼다. 문고리 부분이 부서지면서 어두운 내부가 드러났다. 먼저 들어간 로빈슨이 불을 켰고, 뒤따라 들어간 마니티리가 그녀와 등을 맞대며 이곳저곳을 살폈다. 집 안에는 움직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테니까 그동안 문 지키고 있어.”

로빈슨은 훤히 보이는 거실과 주방은 대충 눈으로 훑고서 침실로 향했다. 침대 한 부분은 핏자국이 굳어 검붉게 변해 있었다. 옷장은 한 칸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성복이었다. 6년 전에 사별했다는 아내의 것으로 보였다. 그것 외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강도가 든 것처럼 어지럽혀져 있지도 않았다. 욕실도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은 2층도 마찬가지였다. 매우 평범한 집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둘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각자 흩어져서 집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프레고는 많은 것을 그대로 두고 집을 나갔다. 어쩌면 아예 아무것도 안 갖고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갑에선 현금만 없이, 신용카드와 사회보장카드 등만 꽂혀 있었다. 핸드폰도 배터리가 조금 남은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부재중 전화는 31통에 달했다. 방 한구석에서는 수리 중이라던 의족도 발견되었다. 테이블이나 사진 등에는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사진 속의 남녀는 나란히 서서 웃고 있었다.

혹시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쯤, 마니티리는 화장실에서 일반 가정집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을 발견했다. 주사기와 메스와 같은 몇몇 도구들이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깨끗하게 씻은 것인지 혈흔 등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휴지통에서 피가 말라붙은 수술용 장갑들을 발견했다. 그는 위생장갑을 찾아 끼고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로빈슨이 2층의 수색을 끝내고 내려왔다.

“베라자노 협교 근처에서 휠체어 발견했댄다. 물론 대중교통 이용하면 끝이지만, 그래도 차가 남아 있길래 안도했더니 아무래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게 확실한 것 같네.”

“작게 잡아도 브루클린, 퀸스, 맨해튼까지 넓어지겠네요. 일단 다른 덴 몰라도 여기 욕실은 증거물 투성입니다. 신체 절단할 때 사용한 거로 보이는 도구나 장갑 등이 한 무더기예요. 여기 폴리스 라인 치고 싹 다 감식반에 보내서 분석해야 할 것 같아요.”

 

************

프레고는 소파에 누워 있다가 눈을 떴다. 그는 신음을 내며 일어나 앉았다. 환지통과 금단 증상, 그리고 온몸을 밀어내는 이물감이 그를 휘감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모르핀 병에 손을 뻗었지만 공기만 들어찬 빈 병이었다. 그는 그 빈 병을 손에 꼭 쥔 채로 반나절을 끙끙거리며 버텼다. 크리스티앙의 잠옷은 땀에 젖어 들러붙었고, 그는 입에서 흐르는 침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다. 셰만은 앞으로 이틀이나 더 지나야 돌아올 예정이었다.

프레고는 결국 소파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균형을 맞추기에는 아직 발의 면적이 같지 않았지만 다리 길이는 어느 정도 비슷해져 있어 이전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역시 목발이 있는 편이 훨씬 걷기에 편했다.

그는 서랍에서 크리스티앙의 옷을 꺼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침대에 앉은 탓도 있었지만, 이틀 전에 자라난 이상한 조직을 잘라내고 나서 붕대를 감은 왼손 때문에 옷을 입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오른발에 옷감이 스치는 느낌이 들 때마다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온 감각이 발끝에 몰려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옷을 다 갈아입고 나서 셰만이 남겨준 돈과 스스로 챙겨온 돈을 같이 챙겼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려는데 셰만이 치운 권총이 생각났다. 그녀는 그 권총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소리쳤었지만, 프레고는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좀 신경 쓰이더라도 더 챙기는 것이 낫다는 것이 그의 평소 생각이었다. 프레고는 다시 온 집안을 뒤져 권총을 찾아냈다.

프레고는 밖으로 나왔다. 열흘 만에 전신으로 받아내는 햇볕이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을 음미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는 힘겹게 목발을 짚으며 미리 위치를 확인한 약국을 향해 걸어갔다. 종종 멈춰 서서 점퍼 오른 주머니의 돈과 왼쪽 안주머니의 권총을 확인하기도 했다. 셰만은 몇 블록 떨어져 있지 않다고 했었지만 현재 그의 상태로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일반 약국에서 강력한 진통 효과가 있는 약물을 구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설령 그게 가능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그 어떠한 증서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그는 약물에 중독된 노숙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보이는 약국마다 들어갔지만 계속 거절당하는 데는 그 이유가 컸다.

집에서 나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으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프레고를 갉아대는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오른발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눈에 부시는 햇빛마저 고통스러워 태양을 피해 걸었다. 어둠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점점 더 허름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건물 한 채를 지날 때마다 더 오래된 건물, 더 낡은 차들이 눈에 띄었다.

저 앞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경찰차가 보였다. 프레고는 번갈아 반짝이는 불빛을 보자마자 으슥한 골목을 향해 뛰었다. 나름 속도를 낸 것이었으나 절뚝거림 때문에 걷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정도였다. 게다가 맞지 않는 균형 때문에 골목 어귀에선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는 목발을 챙기는 것도 잊은 채 멈추지 않고 골목 안쪽으로 계속 기어갔다.

중간쯤 다다랐을 때, 그는 골목 끝에서 담배를 피우던 무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프레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 중 키가 가장 작은 남자가 담배를 버린 것을 필두로 그들은 프레고에게 다가왔다. 레게 머리를 한 남자가 쪼그려 앉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형씨. 혹시 크리스털 좀 필요해? 아니면 위드도 있는데.”

“제일… 제일 강한 거로.......”

프레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전부 꺼냈다. 쪼그려 앉은 남자는 그의 손에서 빼앗듯이 돈을 낚아챘다. 액수를 확인한 남자가 키 작은 남자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키 작은 남자는 고갯짓으로 대로를 가리켰다. 무리 중 한 명이 대로에 세워진 차를 향해 가더니 커다란 더플백을 꺼내왔다. 키 작은 남자는 지퍼를 열고 안에서 주사기 몇 개를 꺼냈다.

“다 크리스털이야. 원래 이렇게까지 싸게 안 주는데, 형씨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러는 거니까, 운 좋을 줄 알아. 딴 데 가서 나불거리지 말고.”

남자는 프레고의 앞에 주사기들을 두고 일행과 함께 그 골목을 벗어났다. 프레고는 누가 볼세라 그 주사기들을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앞에는 더러운 골목이 보였고 뒤로는 한산한 도로가 보였다. 돌아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또 경찰이 순찰을 돌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벽을 짚고 일어나 골목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다.

하늘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 그는 지하로 향하는 한층 더 깊숙한 계단을 내려갔다. 문이 잠겨 있어 건물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잠시라도 몸을 숨기기에는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그는 주사기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당황하며 몸을 더듬다가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점퍼를 벗어 털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주머니에서 주사기와 권총이 떨어졌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사기 하나를 손에 들었다.

프레고의 전신을 휘감던 경련이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고, 피처럼 맴돌던 고통도 사그라들었다. 어지럽게 흔들리고 구겨지던 시야도 점점 바로 섰다. 마비되었던 이성도 조금씩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곧 다시 덧없는 환각에 빠질 것이었지만, 그 잠깐의 정상 같은 상태가 너무 반가워 그는 눈물을 흘렸다. 더러워진 옷 소매로 눈물을 닦고 나니 바닥에 널브러진 주사기들과 권총이 보였다.

프레고는 손을 뻗었다. 작고 네모난 하늘에는 구름 한 조각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짧은 천둥이 울렸다.

 

*************

“난 이래서 할렘이 싫어.”

로빈슨은 벽에 들러붙은 조직을 핀셋으로 떼어내며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마니티리는 지퍼백을 벌려 그녀가 떼어낸 조직을 담았다. 그는 적당히 공기를 빼내 지퍼백을 밀봉하고 가방 안에 도로 넣었다. 가방 속 다른 지퍼백에는 탄피나 주사기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총격이 있었으면 좀 바로바로 신고도 하고 그러지. 총소리 나는 게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그냥 넘어갔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인지… 아, 저기 바닥에 더 있어요.”

마니티리는 가방에서 빈 지퍼백을 꺼내 로빈슨에게 들이밀었다. 그녀는 허리를 펴다 말고 다시 바닥을 향해 숙였다. 날이 저물어가는 탓인지 그녀가 잘 찾지 못하자 마니티리는 플래쉬를 비쳤다. 마지막 조각을 뗀 그녀는 지퍼백에 담기 전에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곤 벽의 혈흔과 탄흔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조직의 모양이나 색깔, 그리고 벽의 이 자국들. 아무래도 그거겠지?”

“네, 제가 보기에도 뇌일 것 같아요.”

“아, 진짜 골치 아프게 하네.”

로빈슨은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이 발견한 게 뇌 조직이 맞는다면, 뇌 조직이 튀어나올 정도의 상해를 입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죽었을 테고 그 시체는 범행 장소에 놓여 있을 거라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시체를 처리한 거라면 그 사람은 꼼꼼하지 않은 사람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근처에 있던 CCTV는 골목 어귀만을 찍고 있었기에 이 골목으로의 사람들의 출입을 확인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최근 며칠 동안 골목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가서 마찬가지로 자기 발로 걸어 나왔다.

“이것도 아마 그 박사님 DNA로 나오겠죠?”

“그렇겠지. 진짜 징글징글하다.”

로빈슨은 일어서서 기지개를 켜고는 폴리스 라인을 넘었다. 마니티리는 가방을 정리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쯤 되면 그 박사님을 예전에 봤던 그분이랑 같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정말 머리통 날라가고도 살아있는 거면, 진짜 완전 괴물처럼 변한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겠다. 그런 게 중요하겠냐. 뭐가 됐건 간에 일단 잡아야지. 여하튼 오늘은 이거나 감식반에 넘겨주고 좀 쉬자.”

로빈슨은 맥없이 걸어가 조수석에 앉았다. 마니티리는 뒷좌석에 가방을 올려 두고 빙 돌아가 운전석에 앉았다.

“진짜, 암 덩어리가 따로 없는 것 같네요.”

 

**************

‘나의 몸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나는…….’

 

 

 

 

***************

“팀장님?”

 

[1] 염색체의 양 끝에 붙어있는 반복 염기서열. 세포분열 시 DNA가 손상되지 않도록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2] 일반적으로,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아니고, 이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기능을 하지 못하면 암으로 변이하기에 발암 유전자라고 칭한다.

[3] 일반적으로 말하는 발암 유전자와는 반대로 활성화되면 정상 세포를 암으로 변이시키는 유전자. 대부분의 동물에게서 이런 유전자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오래 전부터 바이러스가 침입하며 남긴 유전자가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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