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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한국말을 하는 이유

2019.11.21 10:4111.21

“We have beef and fish ready. What would you like to have?”
“불고기 주세요.”
“아... 네.”
나의 대답에 한인 승무원이 놀란 표정으로 식사 쟁반을 건넸다.
“저... 그럼... 음료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내가 무엇을 마실지 생각하며 뜸을 들이자 승무원이 다시 물었다.
“Would you... like to drink something?”
“맥주... 아니, 물 주세요. 물.”

나의 이름은 Brian McNeil이다. 캐나다 앨버타 주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고, 지금은 토론토에서 대학에 다닌다.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나는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가고 있다. 참고로 나는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다. 한국에 대해 하는 것 역시 거의 없다.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이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전부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7개월 전.
기말고사가 모두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했다. 아버지는 방학에는 앨버타 시골집에 와서 농장일을 도와달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넉 달간의 긴 방학기간 동안 한 번도 앨버타 집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 나는 대학 친구들과 함께 토론토 교외의 작은 호수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첫날.
우리는 호숫가 백사장에 누워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오한과 함께 열이 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사 온 해열제를 먹었는데도 열은 내려가지 않았고,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친구 하나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911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구급차 안에서 나는 의식을 잃었다.

뇌수막염으로 일주일 가까이 혼수상태로 있었다. 나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정신이 돌아온 첫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 병문안을 왔던 친구의 말로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며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마침 병원에 동양인 간호사 한 명이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나를 어렵게 진정시켰다고. 그 간호사에 따르면 나는 한국어로 집으로 보내 달라고 고집을 피웠고, 간호사가 한참을 설득하고 나서야 다시 병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고 한다.

나의 기억은 다음날 잠에서 깨었을 때부터 시작한다. 내가 눈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Hello, Mr. McNeil. I am Dr. Wilson. How do you feel?”
“Umm... not really good.”
나의 대답에 모두들 약간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동양인 간호사 한 명이 내게 물었다.
“혹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구급차에서 대원과 이야기하다가...... Huh? What did I just say!?”
간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제 저에게 집에 가야 한다고 그랬는데, 기억나세요?”
“No, not really.”
“가능하면 한국말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여기 의사들이 확인하고 싶어 해요.”
“아... 기억나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이 한국말인가요?”
“맞아요.”
“제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나요?”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됐어요. 그런데 한국말 정말 잘하는데 어디서 배웠어요?”
“배운 적 없어요. 그런데... 제가 왜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거죠?”
간호사는 주위의 의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글쎄요. 여기 의사들 중 신경정신과 전문의도 있어요. 아마 그분이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신경정신과 의사는 내가 어떻게 한국어를 할 수 있게 됐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나는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았고,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퇴원할 즈음 신경정신과 의사가 상담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거절했다.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게다가 상담치료를 받으면 아버지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그러기 싫었다.

==
비행기는 이른 아침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의 겨울은 앨버타에 비해 많이 따뜻했다. 가방에서 얇은 외투를 꺼내 입고, 여권은 외투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인천 종합터미널, 그리고 인천 종합터미널에서 철원행 버스에 올랐다. 병원에서 한인 간호사가 건넨 메모를 꺼냈다.
‘강원도 철원군 사요리 1762-8’
내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고 가야 한다던 집 주소다. 인터넷 지도 상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작은 주택이었다. 그런데 그 집에 도착하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

철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사요리 마을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둑어둑했다. 시간을 확인했다. 20시간을 가까이 비행기와 버스에 앉아있었던 셈이다. 피곤했기에 숙소를 잡고 다음날 아침 그 주소지로 찾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을에 도착하자 궁금해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택시를 돌려 간호사가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릴 때까지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기꾼이라고 경찰을 부르지는 않을까? 미친놈이라고 비웃지는 않을까? 비행기 삯만 1800불. 그래, 여행 온 셈 치면 되지. 그럼 어딜 구경하고 가야 여행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는 사이 문이 열렸다. 중년의 남자는 나만큼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구세.... 어? 후..아..유?”
“안녕하세요. 전 Brian McNeil이라고 합니다.”
그의 얼굴은 안도감과 당황함이 섞인 묘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 이 집을 찾아왔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뇌수막염으로 며칠간 의식을 잃었던 일. 의식을 찾은 후 갑자기 한국말을 하게 된 것. 그리고 어떻게 이 주소를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나에게 집으로 들어오라 했다. 그리고 그는 안쪽 방으로 들어가 그의 어머니를 불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거실로 나왔다. 노인은 말없이 나와 그녀의 아들을 번갈아 쳐다보자 아들이 말했다.
“한국말 잘해요.”
노인은 문 앞의 내 캐리어 가방을 보고는 나에게 말했다.
“저녁식사는 하셨소?”
“아직.. 안 먹었어요.”
“우리도 식전이니 같이 밥부터 먹고 이야기합시다.”

노인은 주방으로 들어갔고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과 함께 커다란 상을 차려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여러 가지 한국 음식들이 생각보다 입맛에 맞았다. 밥을 먹으며 나는 노인에게 지난 여름 내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노인은 밥상 맞은편에 앉아 간간히 아들이 채워주는 소주잔을 기울였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이 물었다.
“그래, 그 일이 언제인지 기억은 나고?”
“올해 8월 18일이에요.”
노인은 그녀의 아들을 향해 물었다.
“내가 병원 실려간 게 그쯤이냐?”
“아마 그럴 거예요. 어머니.”
“허허, 신기한 일이네.”
그리고 노인은 여름에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광복절이 지난 어느 날 노인은 정오가 넘도록 일어나지 않았단다. 흔들어 깨워도 의식이 들지 않자 그녀의 아들은 119를 불러 노인을 병원으로 옮겼고, 노인은 병원에서 꼬박 이틀을 자고 일어났다고 했다.
“그렇게 이틀 밤낮을 자는 동안 신기한 꿈을 꿨어. 여기 안방에 누워 있었는데 저승사자가 이제 때가 되었으니 가자는 거야. 아... 미국 학생, 저승사자가 누군지는 알아?”
“네. 알아요.”
“저승사자가 가자는데 어쩔 수 없었지. 그래서 따라나섰어. 한참 저승사자를 따라가다 보니까 앞에 커다란 대문이 보이는 거야. 저게 저승 들어가는 문이구나 싶더라고. 대문 앞에서 미국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우리가 가까이 가니까 저승사자를 불러다가 둘이서 소곤소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노인은 잔에 남은 소주를 들이켰다.
“그러고는 저승사자가 나에게 오더니 대뜸 내가 이승에 아직 갚지 않은 빚이 있다는 거야. 시간을 좀 더 줄 테니 그 빚을 갚고 오라고. 그리고는 나한테 집으로 돌아가라 했어. 나는 지금까지 온 길도 멀고 하니 그냥 저승으로 가자고 했지. 하지만 저승사자가 안된다며 혼자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어.”
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길을 알아야 집으로 올 꺼 아냐. 여기저기 길을 물어도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어. 한참을 헤매다가 어떤 여자를 만났지. 그 여자가 친절하게 내 주소도 물어보고 내가 알려준 주소를 종이에 적더니, 자기가 집에 꼭 보내 줄 테니 저기 보이는 침대에 누워 있으라고 하기에 그리로 가 누웠지. 그러고는 잠이 깼어.”
노인은 소주를 잔에 가득 채워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노인은 나에게 내가 있던 병실의 모양새와 한인 간호사의 인상착의에 대해 물어보았다. 노인은 그날 자신의 영혼이 나의 몸에 들어왔다고 믿는 듯했다. 나는 노인의 이야기를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갑자기 한국말을 하는 것도 믿을 수 없지만, 노인의 영혼이 나의 몸에 들어왔다는 것은 더 믿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느 정도 궁금증은 풀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배가 불러오자 밀린 잠이 쏟아졌다. 노인이 말했다.
“미국 학생, 많이 피곤하구먼.”
노인은 그녀의 아들에게 말했다.
“작은 방에 이부자리 준비해 줘라.”
나는 모텔에서 자고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 했다. 하지만 노인은 나를 잘 대접해 보내야 자기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고집을 부렸다.

다음날.
나는 노인 모자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며 나는 노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님, 어제 꿈 이야기에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꿈에 저승사자가 말한 빚이 뭔지 얘기해 주실 수 있어요?”
“글쎄.. 허허.. 내가 80 평생 살아오면서 누구한테 빚지고 살지는 않았는데... 아마 6.25 전쟁 때를 말하는 것 같아.”
노인은 기억을 더듬는 듯 수저를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전쟁통에 어머니 아버지 잃고, 10살짜리 계집애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거렁뱅이 마냥 구걸하고 다니면서 겨우 목숨줄 붙들고 있었지. 한 번은 며칠을 굶다가 길에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 눈을 뜨니까 미군들이랑 같이 있더라고. 아마도 미군들이 길에 쓰러진 나를 봤는데, 아직 숨이 붙어있으니까 데려갔던 것 같아.”
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서 군인들은 떠났어. 떠날 때 나를 유독 챙겨주던 미군 한 명이 주변에 고아원을 찾아 나를 거기에 맡기고 갔지. 아마도 저승사자 말은 그때 그 미군이 내 목숨을 살려줬으니 그 빚을 갚고 오라는 것 같아. 허허.”
노인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자신의 목걸이를 풀러 나에게 내밀었다. 작은 십자가 목걸이 었다.
“그 미군이 나를 고아원에서 맡기고 떠날 때 준 목걸이야. 자기 목에서 풀러 주면서 영어로 뭐라 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유도 모르고 받았어. 이제 자네가 미국으로 도로 가져가면 되겠구먼.”
“네? 중요한 물건인데 제가 가져가면 안 되죠. 그리고 저는 캐나다에서 왔어요. 미국에는 가본 적도 없고요.”
나는 사양했지만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저승 문턱에서 퇴짜를 맞은 게 그 목걸이 때문이라며 제발 가져가라는 노인의 부탁을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캐나다로 출국이어서 나는 노인의 집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읍내의 모텔에서 묵겠다는 말을 꺼냈다가 노인에게 혼쭐이 났다. 그리고 오후에는 나 홀로 백마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앨버타의 겨울바람만큼 매서운 칼바람이 쉼 없이 불어왔다. 추운 날씨에 노인의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위령비에서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4살 때 죽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집에 큰 불이 났고, 화마는 엄마와 엄마의 물건, 그리고 엄마의 기억까지 모두 삼켜버렸다. 엄마 체취도, 엄마 얼굴도, 심지어는 엄마의 장례식까지 온전하게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그나마 몇 가지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중 하나가 엄마 이름 그리고 그 이름에 얽힌 사연이다. 외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중 백마고지 전투(Battle of White Horse)에서 전사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태어났고, 외할머니는 엄마의 이름을 이곳 지명을 따서 Whitehorse로 지었다고 한다.

나는 한나절 내내 찬바람을 맞으며 백마고지 전투 위령비 주변을 서성였다. 날이 저물고 나서야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노인의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늦지 않게 출발하기 위해 미리 짐을 준비했다. 짐이라고 해봐야 옷가지가 전부라 특별히 정리할 것도 없었다. 노인은 내가 입은 옷을 모아 빨래를 해 널어놓았으니 내일 아침이면 마를 것이라 말했다. 아차 싶었다. 건조대에 걸린 얇은 외투의 안주머니를 확인했다. 물어 젖어 눅눅해진 여권이 나왔다. 나는 여권을 펼치고 들러붙은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다행히 사진과 개인정보가 있는 첫 페이지는 코팅이 되어있어 멀쩡해 보였다. 노인은 연신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괜찮을 거라며 노인을 안심시켰다. 노인은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그랬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무척 속상해하였다. 노인은 여권 사이사이 종이를 끼워 넣었고, 밤새 깨끗한 종이로 갈아 끼우는 것을 반복했다.

다음날 오전.
여권은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보였다. 나는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서울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원래는 새 여권으로 재발급받아야 하는데, 여권 상태가 양호한 듯하고 비행기가 오늘 출발하니 우선 인천공항으로 가라고 했다. 제3국을 경유하지 않아서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데만 문제가 없으면 괜찮을 거라 했다. 하지만 여권의 훼손 정도에 따라 토론토 공항에서 캐나다 입국이 조금 늦어질 수는 있다 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티켓 발권과 출국심사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문제는 토론토 공항에 도착해서 터졌다. 여권이 훼손되었다며 나는 별도의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다. 3시간을 기다려 이민국 직원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여권이 훼손되어서 신원확인이 필요하다 했다. 이민국 직원은 여권을 비롯해서 운전면허증과 의료보험 카드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신분증을 가져갔다. 한참 동안 컴퓨터로 확인을 하던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신원확인이 안 된다 했다. 그녀는 내가 최근 이름을 바꾼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여권 발급받을 때 출생증명서(Birth Certificate) 때문에 애먹은 기억이 나서 말했다.
“(이름을 바꾼 적은 없는데, 제 출생증명서에는 성이 McNeil이 아니고 MacNeil로 적혀 있어요.)”
“(성을 나중에 바꾼 건가요?)”
“(바꾼 건 아니고, 아버지 말로는... 출생신고 사무소 서기가 실수로 잘못 받아 적었다고 들었어요. 출생증명서가 나온 후에는 고칠 수 없었고요.)”
이민국 직원은 컴퓨터로 다시 확인을 했고, 이내 입국심사 도장을 찍어줬다. 직원은 이민국 시스템 상에 나의 성이 MacNeil로 되어있다 했다. 그래서 McNeil로 개명신청을 먼저 한 후에 여권을 재발급받으라고 알려줬다. 입국심사는 끝났지만 내가 직접 경찰을 만나 확인할 사항이 있다 했다. 나는 무슨 일인지 물었고 이민국 직원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했다. 경찰에게 직접 들으라며 나를 공항 내 경찰 사무실로 보냈다.

경찰 사무실에서 2시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경찰관에게 이민국 직원이 준 서류를 건넬 수 있었다. 경찰관은 나에게 미국 여권이 있느냐고 물었다. 미국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미국 여권이 있느냐고 답했고, 나는 경찰관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미국에서 태아난 미국 시민이란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태어났어도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나에게 미국 시민권이 있다 했다.
“(아마도 이민국 직원이 실수를 한 것 같네요. 저희 부모님은 앨버타에서 태어나서 자랐어요.)”
“(어머니 이름이 Whitehorse MacNeil, 아버지 이름이 David MacNeil 아닌가요?)”
“(맞긴 한데…)”
“(Whitehorse MacNeil이 16년 전에 당신 실종신고를 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매년 실종신고 갱신을 해 왔고요.)”
경찰관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당신이 Whitehorse MacNeil을 만날 의사가 있는지 묻는 거예요.)"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매년 나의 실종신고를 해 왔다는 말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경찰관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고 여전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Whitehorse MacNeil과 만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이 서류에 표시하고 서명해서 제출하면 됩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경찰관이 준 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 서명한 서류를 경찰관에게 건넸다. 서류를 건네며 나는 경찰관에게 물었다.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칸에 내가 제대로 표시를 했느냐고. 나의 물음에 그가 ‘Yes, you did.’라고 말한 것까지 나는 기억한다. 그다음은 내가 어떻게 경찰 사무실을 나왔고, 어떻게 공항에서 학교 기숙사까지 왔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다음날 아침.
나는 경찰로부터 엄마의 주소와 연락처를 받았다. 엄마는 미국 텍사스의 달라스-포트워스 공항을 출발해 토론토로 오는 중이라 했다. 나는 공항으로 나갔다. 도착장 게이트 앞에 Whitehorse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기다렸다. 한 사람 한 사람 지나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손에 땀이 흘러 종이를 들고 있기 힘들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혹시 엄마가 이름을 못 보고 지나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때 한 중년 여성이 내가 들고 있던 종이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확인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채 걸어왔다. 그녀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Brian...?”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두 손으로 나의 얼굴을 감쌌다.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I am so sorry, so sorry, I am sorry, Brian.”
나는 온몸에 힘이 풀려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Mom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머리도 마음도 모두 고장이 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가족의 성은 MacNeil이 맞다 했다. 엄마는 아빠와 미국 텍사스의 작은 도시에서 만났다고 한다. 둘이 결혼을 할 즈음... 아빠는 캐나다로 건너가 살자고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엄마가 이유를 물으면 아빠는 캐나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사는 게 꿈이라 했단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캐나다로 이민을 왔고, 앨버타의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했다. 결혼 후 아빠는 엄마가 외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점점 싫어했다 한다. 엄마 역시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어서 집에서만 지내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친정 부모님과 가끔씩 전화하는 것마저도 아빠가 싫어해서 많이 서운했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에 아빠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다고 했다. 반면 아빠는 마을 사람들과 한 명 한 명 무척 친하게 어울렸다고 한다. 아빠가 마을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알고 지내서 엄마 역시 굳이 친구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지만 나의 첫돌이 지나고, 엄마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즈음... 아빠의 폭력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엄마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하소연할 친구 하나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거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맞으며 자랐다. 아빠가 술을 마신 날은 더욱 심하게 맞곤 했다. 나는 어릴 적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맞으며 자라는 줄 알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친구들의 집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학교 선생님에게 아빠의 폭력에 대해 알렸다. 마을 구성원 전부가 친척 같은 아주 작은 마을. 아빠의 가까운 친구의 아내였던 선생님은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나만 아버지 험담을 하고 다니는 질 나쁜 아이 취급을 받았다.

엄마는 아빠의 폭력 견디며 그렇게 2년을 살았다고 한다. 마을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엄마는 걸어서 집과 마을을 탈출했다고. 일주일 후 외할아버지와 함께 나를 데리러 왔을 때 아빠는 이미 나를 데리고 마을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내가 엄마 이름에 대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은 외할아버지가 아니고 외할아버지의 큰형, 그러니까 엄마의 큰아버지였다. 그분의 유해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15년이 지나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분의 유해가 돌아온 해 외할머니는 엄마를 임신했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남자아이면 Louis, 여자 아이면 Whiltehorse로 아기의 이름을 준비했다고 한다.

엄마를 만나고 두 달여가 지난 오늘. 나는 엄마와 함께 텍사스의 달라스-포트워스 국립묘지를 찾았다. 나는 그분 묘소의 작은 비석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Louis Strassmann (1930-1952) Came Back Home in 1968.’
나를 기다리던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주머니에서 노인에게 받은 십자가 목걸이를 꺼냈다. 나는 목걸이를 비석 아래 내려놓고 속삭였다.
“Thanks for bringing my mom back.”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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