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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지우

2019.11.14 01:3811.14

종이컵에 달걀을 담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 위에 유리컵을 덮어두고 가만히 지켜본다. 새벽시간. 내 숨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고 버리고 다시 붓고 반복한다. 달걀은 제대로 익지도 않고 깨져버린다. 나는 싱크대에 깨진 달걀을 쏟는다. 배고팠는데.... 의미 없는 시간이 또 흘렀다

 

혼자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린다. 주거니, 받거니. 외롭지 않았다.

 

 

 

 

 

1.

 

지우를 만나기 위해 용산역으로 향했다. 내일 있을 동창회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참, 오래도 걸렸다. 동창회만큼은 진짜 가기 싫었는데.... 지우의 설득은 3년 전부터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가자. 나를 봐서라도 가자. 내가 지켜 줄 테니 가자. 그런 말이 이젠 지겨워지기라도 한 걸까? 나는 결국 ITX에 몸을 실었다. 열차의 문이 닫힌다. 마음속에서는 다음 역에서 내리자, 화장실 가는 척 내리자.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알기는 하는 걸까? 지우는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결국 종착지인 춘천역에 도착할 때까지 내리지 못했다. 아니 내리긴 했다.

 

“우리 여기서 사진 찍고 가자.”

 

나는 싫다는 표정으로 손을 저어 보였다. 지우는 나의 옷자락을 잡고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 진짜 오랜만에 여행이잖아.”

 

지우의 손에 이끌려 결국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니 지우만 활짝 웃고 있다. 여전히 내 옷자락을 붙잡은 채로.

지우답다. 지우다워. 나는 지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런 희귀한 장면을 지우는 놓치지 않고 찍는다.

 

2.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화천이다. 나의 고향이기도 한 화천. 지우를 처음 만난 곳도 화천이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곳도 화천이었다. 그날의 기억들이 서려 있는 장소들. 가고 싶지 않아도, 보고 싶지 않아도 그곳은 너무나도 좁아서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배고픈데 뭐 좀 먹고 가자.”

 

무언가를 실행하는 것은 항상 지우의 몫이었다. 나는 거의 지우의 말을 따랐다. 이곳에 온 것도 지우의 집념 때문이었다. 지우는 추진력이 좋았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활달하고, 웃음기 많고, 인기도 늘 많았다. 나는 그런 지우가 좋았다. 나와 달랐으니깐. 숫기도 없고, 매사에 되는 일이 없고, 부정적이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서 하는 나를 유일하게 받아준 사람도 지우뿐이었다.

 

처음 보는 식당의 문을 연다. 이곳은 식당도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다 아는 식당인데, 이 식당은 처음 보는 식당이었다. 인테리어로 보아 새로 연 식당 같았다. 지우는 메뉴판을 쓱 보더니,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김치찌개 먹을 거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나 선주문 후 말을 건다. 지우는 나를 앞에 두고 핸드폰을 꺼내 식당 내부를 연신 찍어댄다. 나는 숟가락을 꺼내 지우 앞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주문한 김치찌개가 도착하자마자 지우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곧바로 SNS에 지우의 사진이 올라온다.

 

“우와 진짜 맛있겠다.”

 

지우는 김치찌개를 한 국자 떠서 내 앞에 가져다준다. 나는 말 없이 김치찌개를 한 입 먹는다. 지우는 배가고 팠는지 허겁지겁 먹기에 바빴다. 나중에 서비스로 나온 우동 사리를 나는 먹지 않았다. 지우는 한 번 물어보더니 우동 사리까지 남김없이 다 먹었다.

 

계산하고 식당을 나올 때까지도 손님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것이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었다. 길 건너 김밥천국에만 사람의 실루엣이 유리창 너머로 비췄다.

 

지우가 예약해놓은 여관으로 향했다. 지우는 방문을 열 때까지 투덜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지우도 오랜만에 여행이라면 여행이라서 펜션을 예약하려고 연신 알아보다가 딱 마음에 드는 펜션을 발견했지만 나 때문에 여관으로 온 것이다. 나는 미안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지우의 기분은 역시 단순했다. 깔끔한 방안에는 꽤 넉넉한 크기의 침대와 꿉꿉하지 않은 이불이 깔려있었다. 지우는 침대 위에 푹 하고 올라갔다. 나는 바닥에 앉았다. 지우는 겉옷을 벗어 던졌다. 얇은 속옷 차림의 지우는 내게 옆에 누우라고 손짓했다. 나는 조심스레 지우 옆에 누웠다. 지우는 팔을 벌렸고, 가까이 오라고 했다.

 

“우리끼리 있는데 뭐가 부끄러워.”

 

나는 지우에게 안겼다. 지우의 겨드랑이에는 털이 하나도 없었다. 샵에 가서 제모를 받는다더니 애초부터 털이 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옆으로 봉긋한 가슴 라인이 내 볼에 닿는다. 촉감이 나쁘지 않았다.

 

‘사랑해.’

 

나는 겉으로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속으로 삼켰다. 그런 나를 지우는 꼭 안아주었다. 가만히 나의 정수리 냄새를 맡는 지우다.

 

“좋다.”

 

짧은 한마디에 놀라 품에서 벗어났다.

 

“왜 그래 너는 안 좋아?”

“그게 아니고...”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지우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네가 좋아. 아주 많이.”

 

지우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우가 일어난 자리에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일어난 자리에만 사람이 앉아 눌린 자국과 함께 조금 따뜻했다.

 

“가슴 만지고 싶었는데....”

 

3.

 

시골길을 따라 버스는 움직였다. 커브를 틀 때면 나의 몸은 의자를 자꾸만 탈출하려고 했다. 그런 내 손을 쥐는 꼭 잡아주었다.

 

“저기 봐봐 저 강의 물안개 너무 예쁘지 않아? 우리 저기서 수달 봤잖아.”

 

기억에 잠긴다. 학교가 외진 곳에 있는 걸어서는 2시간이 걸리는 거리 학교라도 일찍 끝나면 우리는 손을 흔들며 차를 잡았다. 그날도 우리는 차를 잡았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운전자인 아주머니는 읍내가 아닌 여기에 우리를 내려주었고, 우리는 함께 그 길을 걸었다. 12월. 찬 바람이 불었지만 우리는 지금처럼 손을 꼭 잡고 강가를 걸었다.

 

그때 봤던 것이 바로 수달이었다. 눈이 내린 강 옆을 노닐던 수달 두 마리 가족인지 연인인지 참 다정해 보였다. 수달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우리는 자리를 지켰다. 해는 어둑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몸을 더욱 바짝 당겼다. 추위 때문인지 잘 몰랐지만 아마 여러 가지 감정이 겹쳤을지도 모른다. 잡고 있던 손, 붉은 노을, 잔잔하게 일렁이는 강물, 소복이 쌓인 눈에 찍힌 수달의 발자국, 그것이 모두 합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의 입맞춤을. 나는 거창하게 부연 설명해본다. 그냥 좋아서 그랬다고 사랑한다고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아직은 그러니까 아직은 나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이 한순간 깨어버릴 꿈처럼 느껴졌다. 그랬을 것이다. 그게 맞다.

 

불안에서 깨어난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버스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춘다.

 

“○○ 고등학교 정문 내리실 분 없습니까?”

“여기 내려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논과 밭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문을 닫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가게만이 우리를 반긴다. 학교로 가는 길. 나는 말 없이 지우의 뒤를 졸졸 따라간다. 여기까지 와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버스는 4시간 뒤에 도착한다는데.... 결국 나는 지우를 따라 학교로 향한다.

 

“늘 만했지. 내가 지켜준다고.”

 

나는 지우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학교는 조용했다. 동창회를 알리는 현수막 같은 건 없었다. 아무도 안 온 건가? 내심 기대를 해본다. 계단을 따라 교실로 올라간다. 변한 것이 없다. 학교는 늘 그대로 학교였고, 변한 건 우리였다.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입술의 각질을 손으로 뜯는 버릇을 가졌던 내가 분홍색 립글로스를 바른다. 손톱에도 살구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두꺼운 뿔테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끼고 운동화 대신 굽이 살짝 있는 구두를 신는다. 교실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다. 지우를 따라 교실로 들어간다.

 

“얘들아, 안녕.”

 

지우는 역시나 밝게 인사를 한다. 성인이 된 후 처음 보는 얼굴들. 지우는 종종 연락하는 건지 어색함이 없다. 나는 쭈그리고 있던 허리를 펴본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문 쪽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지우는 내 앞에 서 있다.

 

“미안해. 오는 게 아닌데.”

 

화를 낼 거란 생각과는 달리 지우에게서 들은 말은 사과였다. 지우는 옆 그네에 앉는다. 얼마간 우리는 말 없이 그네에 앉아 있었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침묵을 깨고 어렵게 꺼낸 지우의 진심이었다.

 

“동정은 인제 그만두지 그래.”

“동정이라니?”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그래. 나 솔직히 네가 부러웠어. 친구들 앞에서도 웃고 떠들고. 혼자 있는 나까지 챙겨주는 모습이 부러웠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이제껏 나 하나 챙기기 바빴어. 근데 너는 친구도 공부도 반장도 다 가졌어. 그리고 봉사까지 하는 거니?”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여기 데려온 건 안 좋은 기억은 이제 잊어버리고 살길 바랐던 거뿐이라고.”

 

나는 지우가 하는 말들이 모두 아니꼽게 들렸다.

 

“그리고....”

 

그때 교실을 내려온 애들과 눈이 마주쳤다.

 

“뭐야. 화장실 간다더니 쟤랑 있었냐.”

 

나는 지우의 손에 이끌려 술집으로 향했다. 신나 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나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술 게임을 하고, 웃고 떠드는 사이. 나는 연신 맥주를 마셨다. 알딸딸함이 몰려왔다. 나는 먼저 간다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곧바로 지우도 따라나선다고 했지만, 애들의 만류에 지우는 조금 더 있기로 했다.

 

새벽이 되니 슬슬 쌀쌀해지는 거 같았다. 나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서 강가로 향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 이제야 화천에 왔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났다. 맥주를 딴다.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오늘은 유난히 맥주가 물처럼 아니 음료수처럼 달게 느껴졌다. 그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누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통곡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런 삶을 사는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에게 남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지우였다. 돌이켜 보면 지우 때문에 살 게 된 거 같았다. 유일하게 나를 감싸줬던 지우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거라고 역시 그 이유밖엔 이 삶을 설명할 수 없었다.

 

4.

 

“전학생을 소개하마. 자기소개해 볼래.”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이름은 임지우라고 합니다.”

 

“지우는 서울에서도 반이 몇 개랬지.... 15반이나 되는 곳에서 왔다는구나.”

나는 다시 시골로 전학을 왔다. 거의 9년 만이다. 서울 가면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거로 생각했던 부모님은 어린 나를 데리고 도시로 이사를 하셨다. 하지만 나의 도시 삶은 치이는 연속이었다. 그때 처음 학교의 무서움을 느꼈다. 관계라는 것이 이리도 힘든지 몰랐다. 내가 왜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몰랐고, 그렇게 자랐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갔다. 이런 나를 부모님은 9년 만에 다시 시골로 데려가셨다. 시골 가면 공기도 좋고 순수한 친구들이 많을 거라고 했다. 9년 만에 다시 간 그곳은 도시 만큼이나 잔인했다. 늘 혼자라는 것. 애써 태연한 척 연기하는 것. 그러다가 익숙해져 버린. 혼자라는 삶. 나는 괜찮았다. 자신을 씩씩한 아이라고 칭했다. 혼자 더 좋아하는 아이라고 믿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5.

 

동이 틀 무렵 나는 여관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지우는 세상모르고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바닥에 눕는다. 바닥이 차갑다. 눈을 감으려는 순간. 인기척을 들었는지 지우가 올라와서 같이 자자고 말한다.

나는 지우의 옆에 눕는다. 지우는 팔을 뻗어 나를 감싼다.

 

“보고 싶었어.”

 

어디 갔었냐고, 왜 이제 들어 오냐는 타박대신 짤막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나는 그 한마디에 눈물이 흘렀다.

 

“너 또 울지. 이고.”

 

지우는 살며시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미안해.”

“뭐가 또 미안해.”

“그냥, 뭐든.”

“그럼 나는 사랑해줄래.”

“평생?”

“당연하지 평생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할 거야.”

“내가 어디가 그렇게 사랑스러운데?”

“가슴.”

 

지우는 말에 나는 그제야 피식 웃었다. 지우의 손을 내 가슴에 갖다 댄다. 나도

지우의 가슴을 만진다. 감촉이 좋다. 빨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나는 지우의 가슴을 빨 수가 없었다.

 

짐을 챙긴다. 여관을 나와 다시 버스에 오른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래도 이곳을 다시 오게 되어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우 덕분에 다신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이곳에 왔으니깐. 이제야 속이 후련해졌다. 버스는 출발했고, 나는 다신 오지 않을 이곳에 작별 인사를 건넸다. 다시 ITX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겠지.

 

6.

글을 쓴다. 원고 마감이 다음 주인데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이후로 멍을 때리며 하루를 보냈다. 지우와 연락을 하지 못한 지도 꽤 되었다. 연락해야지. 생각만 많이 했지 정작 연락할 틈이 없었다. 그건 지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우는 그런 친구였다. 평소에는 애정표현도 서슴없이 하지만 가끔 이렇게 잠적을 하였다. 아무리 카톡을 해도 옆에 붙은 1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지 1은 늘 사라졌지만 돌아오는 답장이 없었다. 언제나 읽기만 했다.

 

언제 한 번 지우는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보는 것이 너무나도 감질난다고. 나는 그때 처음 지우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그냥 친한 친구인데, 지우는 나를 친한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나는 친한 친구 사이에서 흔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말들이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연인 사이에서나 주고받는 말들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럴 것이 나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지우를 만나는 것 외에는 항상 집에서 글을 썼다. 죽어라. 글만 쓴 결과 기획 출판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고, 지금은 마무리에 들어가고 있다. 나에게는 따지고 보면 지우와 글 두 가지가 전부였다.

 

7.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우였다. 연락조차 없던 지우가 큰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 여기서 살려고 왔어, 그래도 되지?”

 

지우는 당당했다. 나는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

 

“집은?”

“처분하고 왔지. 그러느라 좀 바빴어.”

“그럼 이제 갈 곳 없겠네.”

“응응. 그러니깐 우리 동거하자.”

 

어찌 저리 당당할 수 있을까. 나는 지우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동거?”

“응응. 나는 너를 사랑하니깐. 그래서 동거하고 싶었어.”

 

사랑이라는 말에 의미를 잘 모른다. 지우와 내가 느끼는 사랑이란 감정이 서로 다른 거 같았다.

 

“친구끼리 사랑하면 동거하는 거야?”

“친구? 난 너를 애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애인이라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애인은 성별이 다른 그러니깐 남자와 여자가 하는 거잖아. 우리는 성별이 같은 여자인데?”

“그렇게 꼭 교과서적으로 말할 거야? 그럼 우리가 느끼고 행동한 이 감정들은 뭔데?”

 

감정이라. 행동이라. 다시금 돌아본다. 기다려지고 만나면 행복하고 모든 걸 알고 싶어지고 그냥 너의 웃는 모습만 봐도 저절로 흐뭇해지는 그런 것이 사랑이었나. 절친이라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아닌 연인으로서연인으로 써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었다니

 

“사랑.”

 

그것으로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과연 너를 사랑해도 될까. 지우 너를

 

지우는 짐을 풀고 있다. 나는 욕조에 물을 받는다. 서랍 어딘가에 있던 입욕제를 푼다. 지우는 입욕제를 풀고 목욕을 하는 것을 종종 즐겼다.

 

“욕조에 물 받아놨어. 씻어.”

 

지우는 옷을 벗는다. 셔츠 단추를 하나씩 푼다. 속옷을 벗는다. 봉긋한 가슴 아래는 털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우리 같이 씻을래?”

 

지우의 제안에 나는 흠칫 놀란다. 누군가와 같이 씻은 적은 어릴 적 동생뿐이었는데 망설일 시간도 없이 지우는 나의 옷을 벗긴다. 브래지어 훅을 푼다.

 

“아래는 내가 벗을게.”

“아래도 내가 벗겨줄래.”

 

지우는 바지의 후크도 풀더니 팬티까지 벗긴다. 우리는 은은한 장미 향이 나는 욕조 안에 들어갔다.

 

“따뜻하다.”

“비좁지?”

“아냐.”

 

우리는 서로의 몸에 비누칠해준다. 내가 아닌 내 몸이 아닌 우리는 서로의 몸을 닦는다. 내 피부였다면 거칠게 닦았을지 모를 피부지만 손에 적당량을 짜서 지우의 몸에 문지른다. 갓난아기를 다루듯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여기서 나가기 싫다.”

 

지우가 내 몸을 닦아주며 말했다.

 

“왜?”

 

“너의 촉감이 좋아서. 아기 피부 같거든.”

 

지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가슴을 만진다. 처음 느껴보는 낯선 손길. 몸이 파르르 떨린다. 싫진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 만져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좋아. 아주 많이.”

 

목욕을 마치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마신다. 공기가 차갑다. 우유는 따뜻하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한다. 이질적이다. 잠시 정신을 차리면 나는 혼자가 된다.

 

“침대에서 잘래?”

 

나는 지우에게 침대를 권한다.

 

“아냐 내가 밑에서 자야지.”

 

나는 장롱에서 이불을 꺼낸다. 요는 최대한 푹신한 요로 꺼내 바닥에 깐다. 불을 끄고 눕는다. 잠이 오지 않았다.

 

“지우야 혹시 자?”

“아니, 아직.”

“그럼 내 옆에 와서 같이 잘래?”

“좁을 텐데. 괜찮겠어?”

“응.”

 

지우는 내 옆에 눕는다. 나는 지우를 와락 껴안는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나는 잠깐 지우를 껴안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지우야 혹시 자?”

“으응. 으응.”

“우리 연애하자.”

 

8.

 

 

“아침 먹어.”

 

참치 캔으로 끓인 참치 찌개와 전자레인지에서 돌고 있는 즉석 밥 2개. 평소라면 아침은 먹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은 식탁에 앉는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

 

지우는 참치 찌개에 숟가락을 가져다 댄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절로 웃음이 났다.

 

“우와 엄청 맛있는데.”

“진짜?”

“응응.”

 

식탁은 내가 정리했고 설거지는 지우가 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내린다. 오늘따라 커피 맛이 더 좋은 거 같다. 노트북을 켠다. 글을 쓴다. 지우는 조용히 그런 나를 지켜본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예뻐서.”

 

예쁘다니.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처음이다. 지우는 내 앞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다이어리를 정리하기도 한다. 내가 글을 다 쓸 때까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 공원 산책 갈래?”

“그래.”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바람은 적당히 불었고, 춥지는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지우의 손은 살짝 따뜻했다. 많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한 몸이 된 느낌이었다.

 

9.

지우가 같이 산 지도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수없이 입을 맞췄고, 서로의 가슴을 만졌다. 사랑의 증표였다. 이제 지우는 나에게서 땔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서로의 옷을 개고 서로의 몸을 닦아주며 우리는 그렇게 익어갔다.

 

“나 너랑 섹스하고 싶어졌어.”

 

나는 용기 내어 지우에게 말했다. 지우는 그 말에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고마워, 고마워, 정말.”

 

하지만 나는 섹스를 할 수 없었다. 지우가 나간 틈을 타서 자위했다. 외로웠다. 홀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잠을 잤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지우는 더 없다. 지우가 누워 있던 침대를 손으로 쓸었다. 지우의 자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우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이 집 그 어디에도 지우의 흔적이 없다. 늘 혼자였던 사람처럼.

 

10.

 

종이컵에 달걀을 담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 위에 유리컵을 덮어두고 가만히 지켜본다. 가스레인지를 인덕션으로 바꾼 다음부터 사용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빨리 요리가 조리된다는 점도 한몫했다.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붓고 따르고 붓고 따르고를 반복한다. 달걀을 익기도 전에 깨져 버린다. 나는 깨져버린 달걀을 싱크대에 쏟아 버린다. 정적이 흐른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기분이 든다.

 

출간될 책의 표지 시안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표지는 깔끔했다. 제목은 고심 끝에 지우로 정했다. 지우라는 글자가 자꾸만 맴돌았다. 자주 부르던 이름 같았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지우라는 글자를 손바닥에 적어 삼켜버린다.

 

내 앞에 지우가 앉아 있다. 나를 보며 언제나 웃어주던 지우가 앉아 있다. 지우는 나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나는 그렇게 오래 보고도 내 이름 하나 몰랐냐며 투덜거린다.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내 이름을 불러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창고에서 숨겨 놨던 졸업 사진을 꺼낸다. 그 사진 속에는 임지우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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