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9

2019.11.07 20:4611.07

1

현관의 신발과 구두 발부리를 집 안쪽으로 향하게끔 돌려놓는다. 생전에 9는 자기 집안의 미신 비슷한 거라고 했다. 쭈그린 자세에서 일어난다. 신발 몇 켤레들이 모두 나를 향해 돌아선 모습이다. 꼭 내게로 우르르 달려들 것만 같은 공포에 나는 몸을 돌린다. 9에게 물었다. 이 미신을 지키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고.

그러면 도망갈 것 같아서.

9가 대답했다.

누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나는 냉장고에서 꺼낸 1.5리터짜리 물 페트병 두 개를 에코백에 담는다.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는 14층에 멈춰있다.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간다. 1층에 도착했을 때에도 엘리베이터는 14층에 멈춰있다. 9는 14층에 나와 같이 살았더랬다. 지금 이 아파트 14층 말이다. 그러다 9가 떠나고 나는 4층으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 로비에서 서성이다 나는 14층으로 다시 올라간다. 무릎이 저려오고 다리가 뻐근하다. 10층쯤에서 걸음을 멈춘다. 올라가면 갈수록 불길한 예감이 곰팡이처럼 피어난다.

13층과 14층 사이의 층계참에서 1408호를 슬쩍 올려다본다. 한 가족이 있다.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탄 채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고, 연신 큰소리로 빨리 안 나오면 아빠 혼자 가버릴 거라고 소리친다. 이번엔 다른 남자가 신경질을 내며 유치원 가방을 멘 여자아이 두 명을 붙잡고 나왔다. 그들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우리’였다. 다른 남자는 9이고, 남자는 나다. 아이들은 우리를 빼닮았다. 그리고

다시, 목소리만 남았다. 1408호는 굳게 닫혀 있다.

 

식수대에서 페트병을 다 비운다. 적막을 뚫고 빈 페트병에 물이 채워진다. 10분마다 한 번씩 정확히 여섯 모금을 들이켜야 한다. 9의 버릇이었다. 그런 9의 강박증이 언제부터 내게 옮겨왔는지는 모른다. 학교엔 샤워시설이 없어 나는 편도 두 시간 걸리는 집으로 다시 향하는 중이다. 하루에 네 번. 6시, 1시, 오후 7시, 오후 10시, 샤워를 한다. 그것도 9의 강박증이었다. 그도 가는 데만 두 시간 걸리는 집을 학교 점심시간 때 갔다. 반드시 샤워를 해야 한다며,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면서. 몸에서 짠 내가 나. 소금 냄새가. 9는 그렇게 말했다. 계속 씻어야 해. 그래야 없어지지. 그는 샤워 한 번 하는 데 30분 이상이 걸렸다. 그의 샤워가 끝난 화장실엔 수증기가 가득했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내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고 열면 9는 김이 서려 잘 보이지도 않는 거울을 노려보듯 응시했다. 뭐해? 라고 물으면 바다가 보여, 하곤 우물거렸다. 언젠가 한 번 나도 샤워를 마치고 김 서린 거울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었다. 바다가 보인다니. 나는 거울 가까이 눈을 들이밀었다.

나밖에 안 보이는 걸.

내가 9에게 말했다.

나는 보여. 바다도 보이고, 또, 또....... 희수도 보여.

희수.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온다. 집은 정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로션을 바르고 스킨을 바르고 9가 쓰던 향수도 뿌린다. 희수가 누구야? 그와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물었다. 딸. 9는 말했다. 딸? 형 딸이 있어? 응. 9가 양성애자인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딸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따로 살아? 왜 난 한 번도 못 봤지.

실종됐어. 9는 말했다.

나는 잠시 침묵을 가져와 덮었다. 어디서, 라고 물었다.

바다에서. 9는 웃고 있었다.

어느 바다?

강원도. 강원도....... 무슨 바다였더라.

 

2

9의 이름은 ‘구’였다. 그는 숫자 9로 자신이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는 희수가 내 이름을 숫자 9로 기억한다면서, 그래서라고 대답했다.

물을 들이킨다. 9는 물을 마시고 나서도 짠 맛이 나, 중얼거리곤 했다. 모든 게 바다 같아. 물고기가 된 것처럼. 물속에 사는 것 같아.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물을 빼앗아 마셔보곤 하나도 안 짠데? 반문했다. 아냐, 짜. 그는 우겼다.

오후 4시, 그때면 나와 9는 동네 뒷산에서 등산을 즐겼다. 나는 산을 싫어했고 바다를 좋아했다. 9는 산을 좋아했고 바다를 싫어했다. 바닷가에 사는 게 아니어서 산에 갈 일이 훨씬 많았다. 나는 불평하면서도 결국 그를 따라갔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산. 산 초입의 쓰레기통에 페트병 하나를 버린다. 하나의 페트병을 오래 쓰는 건 좋지 않다고 9는 말했다. 뭐든지 오래 되면 썩게 돼있어. 사람도 마찬가지야. 그는 표정 없이 웅얼댔다.

산을 오른다. 관리가 잘 되어있어서 헤매거나 가기 어려운 길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힘이 든다. 습관처럼 시선을 사람들의 발목에 둔다. 나는 매번 9의 뒤를 쫓았고, 항상 시선은 그의 발목 언저리를 맴돌았다. 그의 발목은 희고 고왔다. 평생 구부려본 적 없다는 듯이 하얬다. 다른 사람들의 얕은 발목들을 나는 눈길로 훔쳐온다. 까무잡잡하다. 9도 꽤 산을 많이 올랐다는데, 어떻게 발목이 그리 곱고 하얀 것인지 알지 못할 노릇이었다. 까맣게 살을 태우던 햇빛이 내 시선에 지워진 걸까.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나무 사이를 헤치며 흘러온다. 중반쯤 왔을까, 나는 길이 없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낙엽들이 발아래서 뭉친다. 전국 산을 다 뒤져도 시체 일부만 찾았어요. 산사태나 태풍 때문에 드러나는 경우가 많으니 좀 기다려보세요. 형사는 그렇게 말했다. 9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와 헤어진 지 두 달 뒤였다. 연락할 보호자가 나밖에 없었다고, 경찰은 말했다. 지갑에 그쪽 사진과 번호가 적힌 명함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멍, 했다. 내 오른쪽이 잘려나간 느낌이었다. 목소리를 잃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왜 죽었냐고 묻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을 되새김질 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일본 비행기편을 끊었다. 도피하듯 간 일본에서 나는 호텔에만 처박혀 지냈다. 어디든 좋았다. 한국이 아니어야 했다. 경기도가 아니어야 했다. 고양시가, 일산이 아니어야 했다. 집이 아니어야 했다. 내 방이 아니어야 했다.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메아리가 되어, 소리가 소리를 낳듯 내게로 찾아왔다.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나는 가방에서 긴 삽을 하나 꺼낸다. 낙엽들을 발로 대충 치운 뒤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렇게 끝없이 땅을 판다. 깨닫는다, 9가 어떻게 죽었는지 나는 모른다. 자세한 건 시체를 찾아야 알 수 있다고 경찰은 말했다. 나는 제일 먼저 바다를 가보았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경포대였다. 한 여름이었다. 모래사장에 즐비한 파라솔들, 부표로 갈라진 바다의 튜브들, 그리고 사람들. 이 모두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퍼즐 같았다. ‘9’라는 퍼즐을 찾아 나는 모래사장을 계속해서 왕복하며 걸었다. 그리고 9가 여기서 희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놓쳤다고 했다.

놓친 장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9는 말했다. 희수가 없는 다음 장면들만 끝없이 머릿속을 배회할 뿐이라고 했다. 아이가 멀어져가고, 자신이 손을 뻗고, 어느 순간 사라진 아이, 그런 것들. 9는 몇 번이고 악몽을 꾸었고, 곳곳에서 바다를 발견했다. 어느 날은 베란다 난간 앞에 그가 서있었다. 뭐하냐고 묻자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바다가 보여, 하며 혼잣말을 했다. 거긴 땅이야. 아무 것도 없다고. 내가 그렇게 말하며 베란다 문을 잠그고 그를 거실 소파에 앉혔다. 잊어버려. 그때를, 걔를 완전히 잊어버리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럴 수 있어. 지금처럼 상담만 잘 받고, 나랑 오래오래 잘 사면 되는 거야.

넌 희수가 아니잖아.

9가 내게 말했다.

있잖아, 나도 잃어버린 적이 있어. 사람이 아니라 개지만.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계곡으로 가족끼리 놀러갔었어. 근데 자는 사이에 비가 왔고 밖에 매어둔 개는 불어난 계곡 물에 떠내려가 버렸어. 슬펐지. 엄청 울었어. 그런데 어떡해. 이미 죽은 걸. 개나 사람이나 똑같아. 언제까지 추억 속으로 도망갈 건데? 도망가지 마.

9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메마른 동공에 저절로 눈물이 고일 때까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집을 나갔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꼼짝 않았다.

나는 희수가 되고 싶었다.

 

3

경찰이 지갑과 함께 찾았다는 신체 일부는 왼쪽 발목이다. 그것은 수술대 위 정 가운데, 흰 천에 덮여 있었다. 마치 고고한 모델을 보는 듯하다. 아니면 조각가의 혼이 담긴 조각상이거나. 흰 천을 벗긴다. 복숭아뼈 바로 위에서 잘려나간 발목이다. 9를 처음 대하는 기분이다. 그렇구나. 발목이구나. 발가락 다섯 개, 발톱 다섯 개, 그리고 평발, 굳은살이 뭉친 뒤꿈치. 그렇구나. 9구나. 인사라도 해야 할 듯싶다.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고 싶다. 나머지가 없어도 9는, 9니까. 산을 오르던 두 개의 발, 짝짝이인 발.

9를 처음 만난 건 지금처럼 방학이 아닌 학기 중이었다. 독서 모임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는 독서모임 장이었고, 나는 뒤늦게 들어온 막내였다. 책을 읽고 와서 돌아가면서 감상을 말한 다음, 논제 하나를 상정해 토론하는 형식의 모임이었다. 초기엔 그와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대개 그와 나는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임 활동이 두 달 정도 지난 뒤부터 나는 자연스레 9의 의견을 따라갔다. 그러다가 서로 반대파로 갈라진 경우가 있었다. 스티븐 킹의 초기작 ‘캐리’라는 소설을 읽고 난 뒤였다. 수잔이 과거 자신이 괴롭혔던 주인공 캐리에게 자신의 남자친구를 졸업 무도회에 함께 가라고 빌려준 장면이 있었다. 과거 그녀가 캐리에게 탐폰을 던지며 괴롭혔던 일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무도회에서 캐리는 돼지 피를 뒤집어쓰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조롱과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논제 하나 나왔네. 그럼 수잔의 행동은 잘한 것일까, 아니면 못한 것일까?

나는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더라도 좋은 의도로 한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고, 9는 의도야 어떻든 수잔이 더 깊이 고려하지 못하고 자신의 죄책감을 얄팍하게 덮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마치 우리 자신이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라도 되는 양 말이다. 하지만 뒷풀이에 가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고 고기를 집어 먹었다. 나는 얼떨결에 9의 옆에 앉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우리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집은 어디니, 무슨 과니, 통학 몇 시간 걸리니, 등등 사적이고 사적인 것들에 대하여.

형. 형아. 왜 이렇게 잘생겼어요?

나는 반쯤 취해 9에게 말했다. 혀도 반쯤 꺾인 채였다.

박보검 닮았다는 소리 많이 듣죠?

아니. 너한테 처음 들어.

앞으로도 못 들을 거예요. 나만 알고 있을 거니까.

짐작하자면 그때 9의 딸은 세 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의 입술에 입술을 가져갔다. 한순간 훅 기가 빨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습관처럼 껍질을 뜯어 항상 피멍이 든 그의 입술은 닮고 싶을 만큼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가 늘 지어보이던 미소의 근육이 입술의 떨림으로 느껴졌다. 아주 짧은, 그 순간 동안 나는 그를 가졌다. 다행히 술에 취해 조는 두 명 외에 나머지는 담배를 피우러 나간 상태였다. 9의 귀는 새빨개졌다. 나는 한 번 더 입을 맞추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건 말건 상관없었다. 나는 탁자 아래서 그의 손을 잡았다. 낯선 익숙함이었다.

나는 발목으로 손을 뻗는다. 의사가 제지한다. 병균이 옮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됩니다만, 사진은 왜요? 의사가 되묻는다. 그냥, 이대로 보내긴 아쉬워서요. 그와는 어떠한 사진도 찍은 적이 없다. 뭘 그렇게 가리고 싶었을까. 어쩌라고 9는 이 희고 고운 발을 남긴 걸까. 발은 입이 아닌데 입을 맞추고 싶다. 나는 핸드폰 카메라를 실행한다. 셀카모드로 바꾸었다. 내 얼굴과 발목이 한 컷에 잡히도록 각도를 이리저리 조절한다.

띠링.

손이 떨려 흐리게 나왔다. 나는 다시 찍는다.

전엔 몰랐는데, 제 남자친구 참 예쁘네요. 그렇죠?

 

4

희수를 만났을까. 9가 죽었다면 말이다. 천국에서, 아니면 지옥에서?

늦은 가을밤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약수터에서 페트병을 채운다. 페트병 두 개를 에코백에 넣고, 일정 주기로 물을 마신다. 언제 옮은 버릇일까. 그는 내 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상한 버릇, 말이다. 나는 그 강박증을 어기려 시도했다. 물을 갖고 나오지 않고 에코백도 갖고 나오지 않은 적이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에서 멀어질수록 불안이 맞은편에서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올라가 페트병 두 개에 물을 채우고 에코백에 넣었다. 그때서야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잔인한 9. 원망하고 싶어 원망했다. 무자비한 9. 9는 ‘나’라는 나라의 폭군이었다. 그런 사람을 누가 죽인 걸까.

어느 날부터 나는 습관적으로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견된 단서나 시체가 있느냐고. 그들은 내 전화를 귀찮아했고 소식이 있으면 알아서 연락을 주겠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어제, 경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순경은 어디 가서 떠들지 말라는 조건을 붙이고 말을 꺼냈다. 대화역 가는 중앙로에서 보도블럭 교체 공사를 하고 있는데, 그게 살인사건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취임하지 얼마 되지 않은 구청장이 살인사건을 덮으려 한다고. 그 순경은 9의 죽음을 하나의 추리소설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일종의 망상이거나. 그럼에도 그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는 나는 당장 중앙로로 향했다. 순경의 말대로 보도블럭 교체 공사가 한창이었다. 커다란 수레에 블록들이 쌓여있고, 회색빛깔 정사각형의 새 블록이 자리를 대신했다. 나는 일하는 인부에게 물었다. 왜 멀쩡한 도로를 갈아엎느냐고. 인부는 자신도 모른다며 바쁘니 저리 비키라고 말할 뿐이었다.

벽돌 좀 살펴봐도 돼요? 제가 다 다시 담을게요.

그들은 안된다 했지만 하도 내가 사정하자 그럼 빨리 보고 정리하라고 말했다. 나는 수레에 쌓인 낡은 블록들을 하나씩 꺼내 살펴보고 바닥에 놓았다. 핏자국이 남아있을 터였다. 나는 벽돌을 면밀히 살폈다. 색깔이 조금만 달라도 나는 의심 벽돌로 구분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벽돌과 다퉜다. 사람을 벽돌들 사이에서 찾으려니 미칠 지경이었다. 거친 벽돌에 손이 베이고 살갗이 까졌다. 어느 순간엔, 그 벽돌들 하나하나가 9의 일부로 느껴졌다. 꼭 9의 피부 같았다. 우리는 맨몸으로 서로를 꼭 끌어안기를 좋아했다. 9의 피부는 아토피로 인해 악어가죽같이 건조하고 딱딱했다. 160센티미터의 내가 191센티미터인 9를 안는 건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았다. 굴곡진 그의 몸은 오르막길이 되었다 내리막길이 되었다. 문제는 정상이 어딘지 몰랐다. 아직 거기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데 죽어버렸다. 아직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뒷산인 채로.

나는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수챗물 색을 띤 구름이 노을의 잔해를 쓸어 담았다. 수레의 벽돌들을 전부 꺼낸 탓에 사방이 어지러웠다. 인부들 대부분은 이미 가버린 지 오래였다. 다만 노인 한 명이 남아있었다. 그는 다가오더니 원하는 걸 찾았느냐고 말을 건넸다.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다시 벽돌을 수레에 담기 시작했다. 노인은 멀뚱히 보고 있다가 벽돌 줍는 걸 도와주었다. 괜찮습니다. 힘드실 텐데 쉬세요. 그러나 노인은 갈 생각을 않았다. 마침 힘들었던 차라 나도 말없이 노인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벽돌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만이 남았다. 수레에 벽돌을 다 채우고 나자 노인은 난데없이 손을 내밀었다.

품삯을 줘야지.

아. 나는 지갑을 만지작거리다 만원 한 장을 꺼내 노인에게 내밀었다.

그는 킬킬거리면서 지하철역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수레로 시선을 돌렸다. 벽돌 하나를 집어 품속에 숨겼다. 그대로 나는 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14층에 멈춘 상태였다. 나는 내림 버튼을 눌렀다. 여러 번, 엄지에 힘주어 눌렀다. 드디어 내려오기 시작한다. 올라탄다. 거울에 붙은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해서 소음이 날 수 있으니 양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1408호.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일 점심때부터 공사라고 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샤워를 했다. 샤워해야 하는 시간을 다 놓친 바람에 나는 극도의 긴장으로 몸을 떨었다. 뜨거운 물도 필요 없었다. 나는 수압을 최대로 올리고 얼굴을 갖다 댔다. 얼굴이 따가웠다. 손의 상처도 쓰라렸다. 혀를 살짝 내밀었다. 수돗물에서 짠 맛이 났다. 수도꼭지를 잠갔다. 멍하니, 아직 김이 채 서리지 않은 거울을 마주보았다. 아직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5

어질러진 현관을 정리한다. 발부리가 집안을 향하도록, 가지런히.

아침을 먹은 뒤 14층으로 올라간다. 1408호는 공사가 한창이다. 나는 현관의 인부에게 집 구경 좀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니 조심하시고. 그가 당부한다. 나는 머리를 주억거린다. 현관 근처의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정말 작다. 침대와 옷장, 책장 하나를 놓으면 꽉 들어차는 방이다. 9의 방이었던. 그 침대에서 우리는 서로의 왼쪽과 오른쪽이 되기 위해 몸을 뒤섞었다. 책장에는 문예창작과를 다니다 중퇴한, 그가 읽던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책을 싫어하던 나에게 그는 자장가를 불러주듯 짧은 단편소설을 낭독해주곤 했다. 내용은 모두 잊어버렸지만 그때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다. 목소리를 되새길 때면 동굴 속에서 처연히 우는 곰 한 마리가 생각났다. 벽과 천장을 뒤덮은 하늘색 벽지는 9가 살던 그때 그대로다. 새로 도배를 하는 모양인지 한쪽 면이 뜯겨나가긴 했지만. 이제 그가 꿈꾸던 하늘은 무너졌다.

거실도 그대로다. 60인치 스마트 TV가 한 가운데 자리했고, 양 옆을 스탠드 스피커가 지킨다. 오른쪽에 안마의자를 낀 커다란 소파가 타원형 모양의 탁자와 함께 놓여있었다. 나는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앉는다. 그는 TV 프로그램 중 ‘세계테마기행’을 좋아했다. 날마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갈 형편이 되지 않으니 대리만족으로 보는 것이었다. 필리핀 편이 방송되었을 때 그는 우스갯소리로 필리핀에선 몇 만원만 쥐어주면 청부살인 할 수 있대, 킥킥 댔다. 누구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 나는 그와 같이 웃으며 물었다. 있지. 누구?

나.

나? 자기자신을 어떻게 청부살인 해.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

그냥 어느 날 집에 갔는데, 강도가 있는 거야. 그러다 우연찮게 재수 없게 죽는 거지. 차에 치이는 것도 좋아. 운전자가 불쌍하긴 하지만. 그런 건 미리 유언장에 써놓을 거야. 운전자는 죄가 없다, 이렇게.

그가 허공에 필기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왜 죽고 싶은데?

아니, 죽고 싶은 건 아니고, 만약 죽을 때가 되어서 죽어야 한다면 그렇게 죽고 싶다는 거지. 내가 괜한 말 했네. 미안.

그러고선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는 채널을 돌렸다.

소파에서 일어난다. 부엌으로 발을 움직인다. 어쩌면 살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의 9의 언행을 보았을 때 자살일 확률이 더 컸다. 그럼 그 발목은 누구 거지. 그렇다, 누가 조작한 것이다. 생판 모르는 남의 절단된 발을 가져다 9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9는, 그는 어디 있지.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꽁꽁 숨어버린 게 아닐까. 그렇다면 왜? 왜 숨은 거지? 아니 어쩌면, 헤어진 와이프와 다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희수도 다시 찾고. 그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드라마를 볼 때면 등장하는 주인공의 가족, 부모 자식 다 살아있는 그런 가족을 부러워했다. 그게 바람직하다면서, 정감 있고 좋다면서.

 

6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거울을 닦고 또 닦는다. 그러나 거울 너머의 바다는 이따금 파도를 토해내며 실재한다. 짠 내가 콧망울을 간질인다. 샤워를 했을 뿐인데. 그런데 바다가 보이다니. 말도 안 돼. 나는 화장실 문을 닫는다. 현관 신발장으로 종종걸음 친다. 맨 아래 수납장에서 각 방 열쇠가 달려있는 열쇠 꾸러미를 집어 든다. 라벨에 ‘화장실’이라고 적힌 열쇠를 검지와 엄지로 꽉 쥔다. 다시 화장실로 가 문을 잠근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도록. 누구도 ‘바다’를 볼 수 없도록. 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9가 미친 걸까. 내가 미친 사람과 사귀었던가. 어떤 물을 마셔도 짰다. 물을 머금고 싱크대에 뱉는 행위를 반복한다. 나는 컵을 벽을 향해 던진다. 짤랑 대며 컵이 산산이 조각으로 흩어진다. 나는 유리 조각을 쥐어 팔을 긋는다. 피가 배어나온다. 꿈은 아니다. 미친 것도 아니다.

나는 베란다로 걸어간다.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연다. 내 복부까지의 높이의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주차장이다. 그냥, 주차장이다. 문을 닫으려다 나는 다시 난간 아래로 시선을 던진다. 꽃무늬 분홍색 튜브 하나가 장애인 주차구역에 놓여 있다. 나는 재빨리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놓인 꽃무늬 튜브가 눈길에 닿는다. 이게 왜 여기 있지. 나는 튜브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식칼을 가져온다. 튜브를 찌른다. 바람이 푸슈숙 소릴 내며 빠져나간다. 껍데기만 남은 튜브는 그저 플라스틱 덩어리에 불과했다. 희수를 찾은 거야. 9는. 아내도 찾고. 9는. 그래서 날 버린 거야. 9는.

이 튜브가, 플라스틱 덩어리가 9가 찾던 거야. 난 아무 것도 아니겠지.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으나 입을 열면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문다.

 

경찰에 연락하기를 그만두었다. 어느 날은 지구대에서 먼저 전화가 와 아무 일 없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괜찮다고, 얼른 9의 나머지 시신을 찾고 싶다고 말한 뒤 끊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렇게 살가죽과 뼈만 남아 마침내 나뭇가지로 생을 마감한. 물을 마시지 않는다. 목이 마를 때마다 편의점에서 포카리스웨트를 사와 마신다. 씻지 않는다. 냄새가 난다. 이 모든 것들은 9 때문이다. 9가 나를 망친 것이다.

 

산을 오른다. ‘나는 산에 있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9는 꿈속에서, 어쩌면 현실에서 분명 그렇게 말했다. 산에 있다고. 나는 뒷산을 다시 오른다. 등산객들이 더 많아졌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도 더 다양해졌다. 그래, 정상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또는 뒤로 가는 길은 없다. 사람들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찾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 길을 만들긴 싫었다. 나는 정상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곳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이유 모를 확신이 선다. 걷고 또 걷는다. 올라가고 잠시 내려가다 다시 올라간다. 재미도 없고 성취감도 없다. 목이 탄다. 그러나 미적지근한 물 몇 방울이 전부다.

멀리 벤치가 보인다. 나는 그쪽으로 발을 놀린다. 아이가 앉아있다. 여섯, 일곱은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간다. 아이의 눈길이 나를 향한다. 이름이 뭐니? 나는 묻는다. 아이는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 ‘히수’요, 대답한다. 히수? 희수? 나는 재차 묻는다. 아이는 전과 같이 ‘희수’요, 말한다.

여기 왜 혼자 앉아있니?

.......아빠를 잃어버렸어요.

아저씨랑 같이 정상 가볼래? 잃어버린 엄마아빠도 찾고.

아이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

낯선 사람 아냐. 아빠 친구야.

그런 사람 더 조심하랬어요.

아이가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진짜 아빠 친구라니까.

그러나 아이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빠 친구라고. 왜 안 믿어?

우리 아빤 친구 없어요.

아이의 눈꼬리가 조금씩 떨린다.

왜 없어? 친구 없는 사람이 어딨어. 나랑 가자. 정상에 데려가줄게. 아빠 찾는 거 도와준다니까.

아이는 머리를 가로젓는다.

희수야, 희수야....... 내 말 좀 들어. 너 여기 있으면 이상한 사람들이 해코지 할지도 몰라. 그런 꼴 당하고 싶어?

아빠가 가지 말랬.......

네 아빤 죽었어. 죽었다고. 죽었어. 죽었어, 죽었단 말이야. 너 나 아니면 같이 살 사람도 없어. 나랑 같이 가자. 응? 배고프지 않아? 목마르지 않아? 아, 목마른 건 나지. 물 있니? 있으면 몇 모금만 마시자, 응? 아저씨가 과자도 사주고 밥도 사줄테니까.

전 물 안 마셔요.

세상에 물 안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어?

짠 물은 싫어요.

그 순간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내게로 달려든다. 개는 나를 넘어뜨리곤 팔을 문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난다. 개 주인은 사과를 하곤 쌩하니 지나가버린다. 나는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없었다, 아이는. 나는 희수야, 소리친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럼에도 나는 희수를 부른다. 그 애를 찾으면 9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희수는-또는 히수-나타나지 않는다.

희수였을까, 히수였을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게 희수였다.

 

7

1408호의 문은 잠겼다. 나는 문고리를 몇 번이나 돌리고 돌린다. 꿈쩍하지 않는다.

나는 15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앉아 몇 시간이고 1408호의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는다.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건지, 아니면 오늘은 이만 철수한 건지 알 수 없다. 문을 열면 9가 서있을 것 같다. 만나면 뭐라 해야 하지. 첫 사랑에게 첫 고백을 준비하는 것처럼 온 몸이 떨리고 긴장으로 초조해진다. 가만히 두 손을 마주잡는다. 눈을 감는다. 기도를 한다. 아무 신에게나, 지금 내 기도를 들어줄 수 있는 신, 아무나. 그러나 응답은 없고 신은 바쁘다. 제 말에 반하는 동성애자의 연인 따위를 구해줄 리 없다고 나는 결론 내린다.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꿈을 꿨습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그대로 4층으로 내려온다. 경찰에게선 연락이 없다. 개에게 물린 팔의 상처에 연고를 바른다.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지만 무시한다. 나는 창고를 뒤지기 시작한다. 30분 정도가 흘렀다. 나는 오래된 튜브 하나를 찾아낸다. 바람을 빼고 접어서 상자에 넣은 거라 부피는 작았다. 나는 그것을 꺼낸다. 바람을 넣을 입구를 찾는다. 입구에 입을 갖다 댄다. 그리고 숨을 불어넣는다. 오직 그 행위만을 반복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튜브는 여전히 주름이 인 채 쪼그라든 모습이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들숨날숨이 뒤섞여 호흡곤란이 올 것만 같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든 부풀겠지, 막연한 희망을 품으며 다시 입구에 입을 갖다 댄다. 숨을 헙 들이키고 내쉬는. 얼결에 발목이 채인 바람 한 줌을 마시고 튜브 안으로 밀어넣는다. 헛구역질이 난다. 입이 마르고 푸석푸석한 혓바닥은 이제 숨의 맛을 느낀다. 숨이 맵고, 숨이 덥고, 숨이 차갑고, 숨이 뜨겁고, 숨이 달았다. 9가 옆에 있다면 달랐을 텐데. 튜브는 성인용 튜브다. 아마 9가 썼던 것일 터였다.

그럼에도 튜브엔 어떠한 변화도 없다.

나는 튜브 안으로 들어간다. 살가죽만 남은 튜브를 나는 꽉 붙잡는다. 베란다로 나간다. 창문을 열고 방충망도 열어젖힌다. 베란다 너머를 바라본다. 바다가 보인다. 감출 새 없이 민낯을 드러낸 바다는 그간 쌓인 파도를 무심히 뭍에 내다버린다. 그것은 그것대로 쌓여 언젠가 절벽이 되고 모래 알갱이가 되어 사람들의 발자국을 뒤쫓을 것이다. 나는 난간 위에 걸터앉는다. 천천히 몸을 앞으로 굽힌다. 나는 베란다 너머 집안을 돌아다본다. 날 붙잡을 이는 아무도 없다. 9도, 희수도 없다. 날 붙잡을 그들도 없고 그들을 붙잡을 나도 없다.

바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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