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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여름방학이 시작된 오늘, 전국의 소아과가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거실 티브이에서 저녁 뉴스가 흘렀다. 소아과 의사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부모님들께서 다양한 증상을 호소했지만, 대부분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입시 경쟁이 일찍부터 시작되면서 어린이 스트레스가 점점 극심해지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

 

은유가 뉴스를 끄고 새별이를 불렀다.

 

"아들, 밥 먹어!"

 

오늘도 은유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학원 끝나고 집에 올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퇴근했다. 퇴근 직전에 넘긴 파일이 최종본이 아닌 것 같다며 회사 동료가 계속 톡을 보내오고 있다. 회식을 잔업이라 여기는 남편은 육아에 있어선 없느니 못하다. 녹초가 된 상태로 은유가 간신히 저녁을 차렸다. 집에 와 아들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새별이가 느물느물 방에서 나와 흐느적거리며 식탁에 앉았다. 흙탕물에 빠졌다 나온 쥐새끼처럼 아들 몸에서 악취가 퍼졌다.

 

"어머, 너 어디서 이러고 온 거니? 어쩐지 집에 들어올 때 구린 냄새가 나더라니! 밥 먹기 전에 먼저 씻어야겠다.“

 

새별은 은유의 말은 듣지도 않고 밥상에 코를 파묻더니 게걸스럽게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며칠 굶은 것처럼, 얘가 왜 이래? 야, 당장 안 일어나!“

 

은유가 새별의 팔을 잡았다. 새별이 그 손을 거칠게 팽개치고는 밥과 반찬을 입안에 꾸역꾸역 끌어넣었다. 먹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고양이처럼 이상한 소리마저 내고 있었다.

 

"흐웅 흐업 흐웅....."

 

은유는 아들의 모습에 살짝 소름이 끼쳤지만 이성을 발동시켰다. 걸신이 들렸다는 게 이걸 말하는 건가, 고양이 귀신에 쓰였나? 어제까지 멀쩡하던 아들이 오늘은 똥통에라도 빠진 몰골을 하고 눈만 허옇게 번뜩이고 있다. 평소에도 먹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오늘은 접시까지 씹어먹겠다는 듯 기괴한 식탐을 보인다. 시간이 늦었는데 응급실에 데려가야 하나, 아니면 날을 잡아 굿을 해야 하나. 아까 뉴스에서 말한, 이른 입시 경쟁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가 원인인가? 학원을 하나 줄여야 하나? 은유는 냉장고에 등을 기댄 채 그런 생각을 하며 새별이가 일단 식사를 마치길 인내하며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엄마의 중요한 역할이라 믿으며.

 

초등학교 3학년인 새별은 성적이 특출나진 않지만, 아주 영리한 애였다. 아니 객관적으로 말하면 영악한 애다. 고집이 세고 말이 좀 거칠다. 다른 어른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너 참 똑똑한 애구나, 라고 말할 때 은유는 민망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휘도 잘 구사했고 딱 부러진 말도 곧잘 했다.

 

"그렇게 사는 게 고생이면 애초에 나도 낳지 말고, 집도 사지 말고 결혼도 하지 말았어야지. 참나."

 

어른들을 놀리는 데에 특히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은유는 종종 아이의 거친 말에 깜짝 놀라곤 했다. 새별이가 늙은이처럼 말할 때면 남편은 웃어넘겼지만, 은유는 새별이의 말버릇을 따끔하게 고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딩 주제에,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널 위해서가 아니면 엄마가 뭐하러 이렇게 힘들게 맞벌이를 하겠니?“

 

"그러니까 애를 낳지 말고 맞벌이도 하지 말았어야 한......“

 

은유는 딱 소리가 나도록 새별이의 머리를 타작했다.

 

그랬던 새별인데 오늘은 걸신에 들렸다. 이건 또 뭘 따끔하게 교육해야 하는 상황인가.

 

바쁜 생활 속에서도 아이를 위해 헌신한 평균적으로 성실한 엄마라 자부해 왔는데 아이가 덜컥 병이라도 걸리면 어쩐담? 만약 심각한 자폐나 정신적인 문제라면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은유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병리적 문제와 경제적 부담이었다.

 

은유는 애써 자신을 달랬고, 작정한 듯, 아무 문제 없는 듯 침착하게 아들을 대하기로 했다. 남편에겐 새별이가 오늘 이상하다며 빨리 좀 오라고 카톡을 보냈고, 한참 후에야 회식 때문에 늦을 것 같지만 되도록 빨리 가겠다는, 상투적이고 의미 없는 답이 왔다.

 

새별이가 밥을 다 먹었다. 가난한 나라 난민 아이가 저런 모습일까? 축구공처럼 불룩 배만 튀어나온 채, 새별이가 식탁 밑에 그대로 쓰러졌다. 김치며 멸치 조림이며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것까지, 싹싹 긁어먹고 새별은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은유는 아들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야, 도둑 고양이니? 엄마 할퀴려고 하더라?"

 

"도둑 아니야아아아악!!!"

 

새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은유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훔치지 않았어!"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불렀다고 새별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건가? 진짜로 사나운 고양이 같았다. 고양이를 혐오하는 사람이 새끼 고양이에게 시멘트를 부은 꼴이랄까. 시멘트를 뒤집어쓰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곤 있지만, 곧 딱딱하게 굳어 죽어 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알았어, 미안해. 도둑고양이 아니고, 길고양이라고 부를게.“

 

은유가 침착하게 말하자 그제야 새별이도 잠잠해졌다. 은유는 새별이를 달래 목욕탕에 들어갔다. 새별은 목욕탕에서 몇 번 구토하며 저녁 먹은 걸 쏟아냈다.

 

'얘가 언제 이렇게 더러움에 절어 있었지?'

 

더러움을 벗겨내는 데에 무려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얼굴을 꼼꼼하게 씻겨주며 은유는 눈을 감은 아들의 얼굴을 구석구석 들여다봤다. 틀림없는 아들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쏙 들어간 눈 밑, 날카로워진 눈빛, 세상 다 산 듯 맥없이 벌어져 지쳐 보이는 입매가 영 낯설었다.

 

'엄마한테 불만이 있으면 말해줘, 새별아.‘

 

은유는 아이를 꼼꼼히 씻기며 기도했다.

 

목욕을 마친 뒤 우유를 건넸더니 새별이가 컵에 붓지도 않고 벌컥대기 시작했다. 은유는 새별을 달래고 얼렀다. 더 맛있게 해주겠다며 초코 파우더를 넣고 전자렌지에 덥히자 새별이 가만히 은유의 동작을 지켜보았다.

 

새별이 머그 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데운 코코아를 후후 불어가며 신중하게 마셨다. 다 들이킨 뒤에야 한숨 돌린 듯 바닥에 누웠고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은유는 아이를 들어 제 방 침대에 눕혔다. 체중이 한참 가볍게 느껴졌다.

 

'길고양이 귀신이 쓰인 게 분명해. 학원은 어떡하지? 막 줄여버리면 집에서 게임만 할 텐데.'

 

동시에 아이의 변화를 못 알아챈 자신이 섬뜩했다. 아무리 바빴다지만 애가 저렇게 될 동안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했다니? 귀신 들린 건 아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결국은 무능한 엄마였을 뿐이라 생각하니 서러움이 몰려왔다.

 

자신보다 더 무능한 아빠는 결국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기어 들어왔고, 눈 뜨자마자 일찍 출근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새별이를 위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을테지만, 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완벽한 스위트 홈은 아닐지언정 이곳은 지켜야 할 공간이다. 점점 아비라는 직함을 잊어가는 한 사람을 보며,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은유는 그렇게 믿는다.

 

은유는 팀장의 온갖 싫은 소리와 짜증 섞인 목소리를 견디며 금요일 연차를 썼다. 주말이면 병원 찾기가 더 복잡해진다. 미리 좀 말하라고 싸늘하게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미리 말했으면 팀장의 짜증 섞인 소리를 미리 들을 뿐이었을 거라고 쏘아붙이려다 참았다.

 

뉴스에서 듣긴 했지만, 동네 소아과는 어리둥절할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원인을 찾고 싶은 엄마들이 남의 집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애가 어제부터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했어요. 물건을 막 집어 던지고, 한 번도 안 했던 행동을 하는 거예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증상은 제각각이었지만, 이전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점이 공통적이었다. 전국에서 초등학교 여름방학이 시작된 어제 날짜, 전국의 어린이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게 엄마들의 추측이었다.

 

한 시간이 넘어가는 대기시간을 거쳐 10분 남짓 간단한 문진을 끝내고 은유는 새별이 손을 잡고 병원을 나왔다. 하늘이 노랬다.

 

"극심한 영양실조입니다. 음식을 한꺼번에 주지 마시고 천천히 나눠서 주면서 회복시켜야 합니다.“

 

맞벌이 때문에 하루 중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영양실조라니? 엄마 자격 상실을 선고하는 충격적인 진단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문진 10분 사이, 진료실에서 은유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펑펑 울었다.

 

아이는 고분고분했고 지쳐 보였다. 소아과 옆 편의점에 들러 바나나 우유와 빵을 하나 사서 건넸더니 허겁지겁 먹는다. 다 먹고 두 손이 비자 새별은 다시 엄마 손을 꽉 잡았다.

 

은유는 죽을 끓이고 과일을 잘게 자르고 자극이 강하지 않은 병원식 같은 음식을 만들었다. 결국 휴가를 냈고, 새별이의 회복에 집중했다. 꾸준히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 아이는 음식량이 적어 못마땅했지만 엄마가 하루에도 여러 번 다양한 음식을 내오자 만족해했고, 뭐든 먹을 때마다 행복해했다.

 

"오랜만에 엄마랑 붕붕 카트 게임 할까?“

 

"붕붕 카트? 그게 뭐예요?“

 

남편은 접대 중독, 아들은 게임 중독이었다. 그만 좀 하고 숙제하라고 매일 소리를 질렀는데, 붕붕 카트가 뭐냐고 묻다니? 영양실조는 진단받았지만 기억 상실을 진단받진 않았다. 휴가를 더 내 정신과 진료까지 받아야 할 모양이었다.

 

삼계탕을 삶아 놓고 오랜만에 게임기를 켰다. 한번 시작하면 몇 시간이나 무아지경으로 열중했던 애였는데, 처음 만져보는 듯 컨트롤러 쥐는 법부터 알려줘야 했다. 게임이 시작되자 아이가 놀라움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어, 우아아아아!“

 

은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부터 새별이는 퇴행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이 같았다. 전문 의료인이 아닌 자신이 봐도 아이가 가진 증세나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편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회의 끝나고 전화하겠다는, 곧 거짓말이 될 카톡이 달랑 날아왔을 뿐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새별이 퇴행 상태를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고분고분 음식을 다 받아먹고 게임에 눈을 빛냈고 책을 읽어주거나 음악을 틀어주면 행복해했다. 놀이터에서 산책할 땐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다.

 

언어적 퇴행은 가장 심각했다. 초등학생답지 않게 얄밉고 입바른 소리를 해서 머리통에 엄마 꿀밤을 부르던 새별이었는데, 모든 어휘를 잊은 듯했다.

 

새별은 초등학교 3학년이라기엔 심하게 뺀질거렸다. 성격이 남편을 닮은 것 같아 은유가 두 배로 화를 낸 적도 많았지만, 일찍 철이 들었는지 자기 생활이 있었다.

 

"어른들만 세상에서 제일 바쁜 줄 알지! 우린 더 바빠!“

 

독립적인 아이다. 늘 엄마의 부족함을 늘 지적해 가슴이 철렁하게 만들던 애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새별이는 하늘하늘하게 간신히 서서는 엄마의 애정만 갈구하는 껌딱지 아이로 변해 있다.

 

"널 너무 독립적으로 키운 바람에, 네가 애기라는 걸 엄마가 잊고 살았네. 그걸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야?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말로 해도 되는데.“

 

은유는 자기 어깨에 기대어 잠든 새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말로 해줘도 모를 거면서. 어른들은.“

 

새별이가 이전에 이렇게 대꾸한 적이 있었다. 어른들을 깔보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은유는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휴직하게 될 경우, 생활비를 어디서부터 절약해야 할지 궁리했다.

 

휴가 기간 동안 집중적인 애정을 쏟자 다행히 새별이의 퇴행적 행동은 조금씩 개선되었다.

 

"엄마, 내 걱정하지 말고 회사 가. 방과 후 여름학교랑 학원 가서 놀다 올게.“

 

일요일 밤에 새별이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은유는 아이가 드디어 돌아온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은유는 자주 가는 맘카페를 검색해봤다.

 

아이가 달라졌어요

 

어딘지 내 아이가 아닌 것 같아요

 

아이가 갑자기 아파요

 

심지어 정반대의 변화도 있었다.

 

말썽도 많고 문제만 일으키던 애였는데 애가 반듯해졌어요.

 

얘가 갑자기 영어를 하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뭐랄까, 새로운 영혼이 깃든 것 같아요.

 

아무리 봐도 우리 연이가 틀림없는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요?

 

아이들이 단체로 귀신에 씐 걸까요?

 

외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대요.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두 머리를 싸맸지만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다. 평소대로 삶은 그저 진행되고 있었다.

 

월요일 퇴근 후, 새별이가 놀고 있는 돌봄교실에 들렀다. 엄마를 보자마자 며칠이나 못 본 강아지처럼 반가워하자 어쩐지 은유는 짠했다. 오는 길에 사 온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아 건넸다. 새별이가 쭉쭉 들이켰다.

 

방과 후 교실을 나와 집으로 가려는데 허름한 옷을 입은 어떤 애가 말을 걸었다.

 

"아줌마, 나도 바나나 우유 하나 사주면 안 돼요?“

 

새별이와 비슷한 나이대의 낯선 아이가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요즘 애들은 무례하고 위협적이다. 인터넷이 애들을 망치고 있다니까. 짜증이 솟았다.

 

"얘, 네 엄마한테 가서 사 달라고 해.“

 

요즘엔 다들 너무 제멋대로 키우다 보니 남에게도 함부로 하는 애들이 너무 많다. 이런 애일수록 엄하게 대하는 것이, 세상의 부모 된 도리다.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나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쳇.“

 

은유는 어딘지 맘에 걸렸지만, 그 아이를 위해서, 라는 마음으로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가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걔, 진짜 아줌마 친아들 맞아요? 하나도 안 닮았어요. 푸하하핫!“

 

은유가 뒤를 돌아 껄렁한 애를 노려봤다.

 

"얘, 너 왜 그러니?“

 

껄렁한 애가 은유와 새별이 걸음을 멈추고 서 있는 자리를 앞장서 지나갔다. 그 애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새별과 껄렁한 아이가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했다.

 

"아는 애야?“

 

은유가 새별에게 물었다.

 

"얼굴은 처음 봤어."

 

새별이 애매하게 말했다.

 

"나쁜 애들이랑 어울리지 마.“

 

은유가 단호하게 말하자, 새별이 기쁜 듯 말했다.

 

"응!“

 

은유는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이란 작자에게 이혼 선언 메시지를 보냈다. 주말에도 일한다는 핑계를 대고 어디론가 사라진 남편은 은유와 새별이 지금 악마와 싸우고 있어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전부터 결심했던 일이다. 마음속 서랍에 담아두었던 예정된 미래였다.

 

이혼을 결심한 날 밤, 은유는 새별을 데리고 친정을 찾았다. 방학 동안 외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를 맡아줄 수 있을까 상의하려 했다. 상황이 어렵다면 이혼하겠다는 결심만이라도 전하려고 했다.

 

"누구세요?“

 

빼꼼히 현관에서 고개를 내민 은유의 모친이 겁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나야. 새별이랑 같이 왔어."

 

현관은 열리지 않았다. 모친이 겁먹은 얼굴로 부친까지 데리고 현관으로 나왔지만 두 노인은 단호한 자세로 은유와 새별이의 출입을 불허했다.

 

"당신이 어떻게 우리 손자 이름을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엄마, 왜 이래. 나야 나."

 

그 자리에서 은유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친이 은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눈앞 여자의 손 위에서 핸드폰이 울리자 노부부는 더욱 겁을 먹었다.

 

"우리 은유를 어떻게 한 거야? 왜 은유인 척하는 거요?"

 

"여보, 빨리 경찰 불러!"

 

"아빠, 나는 몰라보더라도 새별이는 손자잖아? 새별이는 알 거 아냐?“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얘는 우리 새별이가 아니오!“

 

완고한 두 사람을 보고 은유는 기가 막혀 현관 앞에서 발을 돌렸다.

 

"안녕히 계세요.“

 

새별이가 두 어른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경찰이 찾아왔고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경찰은 요즘 이상한 신고가 많다며 짜증을 감추지 못한 표정을 보이며 돌아갔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노부부들이 집단 치매에 걸린 것 같다는 괴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노년층 부모들이 갑자기 자녀들을 못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보면 어쩌자는 거야!"

 

몇몇 친구에게 카톡으로 물어보았다. 각자의 상황은 미묘하게 달랐고 대응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한숨만 쏟아졌다. 소파에 앉아 불안해하는 은유에게 새별이 다가와 물었다.

 

"엄마, 내가 진짜 아들이 아니래도 지금처럼 사랑해줄 거야?“

 

"뭐라고? 얘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어디서 이상한 말 들었니?“

 

징그럽게 이상한 가정법을 늘어놓는 새별이가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말해줘.“

 

"당연히, 넌 내 아들이야. 배 아파서 낳은 아들이라고."

 

새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유는 아이의 쓸쓸한 눈을 바라보다 덧붙였다. 무언가 다른 답을 원하는 것처럼 들렸다.

 

"만약에 네가 진짜 내 아들이 아니라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서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난 영원히 네 엄마야."

 

"정말?“

 

"만약 병원에서 아기가 바뀐 거라면, 진짜 아들도 찾긴 찾아야겠다. 그치? 그럼 우리 셋이 다 같이 살지 뭐.“

 

"걔한테도 엄마가 있을 텐데?“

 

"그럼 그 엄마한테도 물어봐서, 다 같이 살자고 할까?“

 

은유가 이렇게 대답하자 새별이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은유는 아들의 얼굴을 주의 깊게 들여다봤다. 세상이 끝나도 지켜야 할 단 하나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은유는 아들의 잠든 얼굴을 소중하게 두 손으로 감쌌다.

 

새별이를 재운 뒤 뉴스를 켰다. 섬뜩한 뉴스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은유는 볼륨을 낮췄다.

 

"초등학교 3학년 소년이 친부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속적인 폭력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학대받던 아이가 친부를 살해했다.

 

'겨우 초등학교 3학년. 새별이랑 같은 나이인데.'

 

남자는 부엌칼로 추측되는 날카로운 흉기에 의해 자상을 입었다. 아이에게 매일 가정 폭력이 행해졌다는 이웃의 신고가 여러 차례 있다 했다. 아이는 추운 날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길에서 서성였단다. 집에 먹을 것도 없는지 쓰레기통 뒤지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고 이웃들은 증언했다.

 

인터넷 검색어에는 방금 뉴스에서 보도된 친부가 사망 전날 올렸다는 인터넷 게시물 캡쳐가 떠돌았다. 살해당한 순간 라이브 방송을 했다는 소문도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은유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단 몇 번의 클릭으로 죽은 폭력 아빠의 인터넷 게시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들내미한테 귀신 붙음

작성자 : 텁후가이

4일 16시간 전

 

님들 내 얘기 좀 들어 줘

어젯밤 집에 왔더니 아들내미가 귀신에 씌어 있었음

평소엔 먹을 거나 찾고 빽빽 울기나 하고 길거리에서 휴지통이나 뒤지던 모자란 애였음

어젠 칼을 들고 아비에게 호통을 쳤음

너 같은 아비는 죽어야 한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음

드디어 애가 미쳤다고 생각했음

그래서 아비로써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고 생각해 손찌검을 좀 했는데 내 팔을 잡는 힘이 장난 아니었음

술을 좀 먹어서 힘이 좀 없긴 했음

 

그러더니 애가 나한테 스프레이를 쐈음

어디서 구했는지 눈에 맞고 완전 오줌 지리고 그대로 쓰러졌음

그 새끼 완전 귀신 쓰인 것 같은데 어디 가서 굿을 해야 함?

그 새끼가 오늘 밤 날 죽일 것 같음

 

댓글 7개

캔디왕 12.25.12. 16:23 신고

이거 나비 효과 영화에서 본 장면인데? 트라우마가 발생했던 시점으로 시간 여행을 와 아빠를 죽이려는 거로군.

 

부산간당 12.25.12. 18:34 신고

이렇게 빌런이 탄생하고

 

호두과자증후군 12.25.12. 21:12 신고

빙의 무끼 신내림 선녀 치유 클릭 > mudang1234.xyz

 

비트콩인 12.25.12. 23:48 신고

라이브 오픈해 봐

 

skyy29 12.29.12. 11:43 신고

뉴스 떴음. 아동 학대 친부 사망, 이 사람이군

http://www.now-ilbo.com/news/articleView.html?portal=248154

 

y91k56 12.29.12. 16:43 신고

진짜로 라이브 했네?

https://youtu.ve/cKGGIymuOUE

 

은유는 섬뜩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영상을 조심스레 재생했다. 확인하고 싶었다. 새별이를 둘러싸고 있는 묘한 불안감의 정체를 찾고 싶은 마음과 똑같았다.

 

부엌 구석에서 아이 친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영상 속 아이가 소리쳤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말해줬는데도 몰라요. 어른들은!“

 

은유는 심장이 철렁하는 소리를 들었다. 새별이가 농담처럼 하던 말과 똑같은 표현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새별인 집에 있는데."

 

은유는 새별이 잠든 방을 여러 번 확인했다.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새별의 표정엔 이전에 알고 있던 장난스럽고 고집스러운 기운이 지워져 있다. 이번 여름방학 시작하면서 갑자기 차분하고 순진해졌다는 점이 영 마음에 걸렸다.

 

"새별이는 철이 든 거야. 나이가 들었잖아."

 

은유는 다음 날 새별이가 먹을 영양식을 밤새 준비하고 아이의 교재를 들여다보았다. 홈 스쿨링도 고려했다. 아이가 착해진 건 반가운 일이었지만 지적 능력이 이전보다 떨어진 것 같아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새별이는 어리광이 점점 더 심해졌다. 숙제를 하다가도 엄마 무릎에 올라오거나 옆구리에 얼굴을 파묻고 칭얼댔다.

 

"윤새별! 너 3학년이잖아. 언제까지 아기처럼 굴 거야?“

 

아들의 칭얼대는 눈에서 은유가 발견한 건 애정에 목마른 버려진 강아지의 눈빛이었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갈구하는.

 

은유는 아이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하루 종일 끌어안고 뽀뽀하고 무릎에 앉힌 채로 밥을 먹였고 쉬지 않고 간식을 먹였다. 식탐이 줄어들 줄 몰랐는데 오늘은 사과 한 쪽을 엄마에게 불쑥 내밀었다.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이는 살이 올랐고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찾았다. 엄마랑 하는 게임을 좋아했고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들으며 깔깔댔고 색칠공부도 시작했다. 은유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홀가분하게 떠났다.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였는데, 사랑스러웠던 시절의 남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개학을 앞둔 전날 밤, 새별이 침대에 누워 은유에게 말했다.

 

"엄마, 고마워요.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줘서 나 살아났어."

 

은유는 얘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피식 웃었다.

 

"엄마가 매일매일 맛있는 거 해줄게. 내일도 모레도 평생 해줄 테니까, 우리 새별이가 학교 졸업하고 결혼해도 매일 매일 새별이네 집에 가서 맛있는 거 해줄게. 네 신부가 미친 시어머니라고 욕할 테지만, 새별이랑 어렸을 때 약속했다고 꼬박꼬박 가서 약속 지킬 테니까. 네 신부가 제발 네 어머니 쫓아내라고 할걸?“

 

새별이가 깔깔대며 웃었다.

 

"나 결혼하는 거야?"

 

"당연하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멋진 여자를 만날 거야. 엄마처럼!“

 

"내가 다른 데로 가도 만나러 와 줄 거야?“

 

"그렇다니까. 너도 나보고 그만 좀 오라고 소리칠 테지만, 엄마는 꿈쩍도 안 할걸?“

 

새별이가 또 까르르 웃었다. 그러더니 문득 슬픈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엄마, 새별이 내일 올 거야. 나는 이제 혼자야."

 

"네가 왜 혼자야?“

 

아이가 쓸쓸하게 말했다.

 

"난 내일 고아원으로 갈 거야.“

 

"무슨 소리야. 여기 이렇게 엄마가 있는데 어딜 간다고 그래?“

 

은유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아이의 옆구리를 간질이려던 순간,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은유는 아이를 달랬다.

 

"그럼, 고아원으로 엄마가 갈게. 매일매일.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 싸 들고 갈 거야. 그만 좀 오라고 할 때까지 갈게."

 

"정말?“

 

새별이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을 보였고, 눈물 자국을 남긴 채 잠들었다. 은유는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새별 옆에 누워 아이를 안았다. 아이를 양팔에 안고 조용히 몸을 기대고 있으니 지금까지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확신이 솔직하고 명료하게 솟아올랐다.

 

'얘는 우리 새별이가 아니야. 왜 난 얘를 철석같이 새별이라고 믿고 있는 걸까? 얼굴이 똑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그럼 진짜 우리 새별이는 어딜 간 거야?'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새별은 아주 이상하게도 이전의 새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이 씨, 죽을 뻔했다고!“

 

아이는 말이 거칠고 고집스러운 아이로 변해 있었다. 잠깐 귀신에 쓰였다가 돌아온 걸까? 원래대로 돌아온 것에 안도해야 할 텐데, 은유는 불안감을 놓을 수 없었다. 그 애는 어떻게 된 거지?

 

"너 똑바로 말해. 어떻게 된 거야? 어디 갔다 온 거야?“

 

새별은 차갑게 말했다.

 

"아 몰라. 몰라. 어차피 말해줘도 듣지도 않을 거잖아. 됐어. 됐어. 그냥 무시해. 그래야 속 편해.“

 

은유는 새별에게 독촉했다.

 

"야, 이 똥고집 아들아! 네가 이제야 제자리로 온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걔는 어디로 간 거야? 응?"

 

은유는 방학 내내 함께 지냈던 새별이를 아예 제삼자로 언급하고 있었다.

 

"걔야 고아원 갔지.“

 

새별이 능글맞게 웃었다. 섬뜩할 정도로 가슴이 철렁했다.

 

"어느 고아원? 너 알고 있는 거 제대로 말 안 할래?“

 

"알아서 뭐 하려고? 데려와서 입양할 거야? 이혼할 거라며? 엄마 월급으로 애들 둘 키울 수 있어?“

 

은유는 자신이 없어졌다. 하지만 지난밤, 쓸쓸한 새별이의 눈을 보며 쏟아낸 그 많은 약속을 이제 와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은유가 <행복의 집>이라는 팻말이 달린 고아원에 들어서자 한 아이가 달려와 은유를 반겼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엄마! 엄마! 와 줄 줄 알았어요!“

 

어떻게 된 거지? 은유는 아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깡마르고 키가 작았다. 품에 안았더니 4주 동안 집에서 안고 무릎에 앉혔던 그 몸이었다는 걸 느낀다.

 

"엄마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 맛있는 거 가지고 매일매일 온다고 했잖아. 약속 지킬 거니까."

 

아이가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너 진짜 이름이 뭐니?“

 

"이안이요. 박이안. 근데 새별이라고 불러도 돼요.“

 

"이안이었구나. 미안하다. 엄마가 몰라봐서. 이안이라고 부를게. 이안아, 엄마야.“

 

은유는 아이의 손을 잡고 행복의 집 사무실로 들어갔다. 담당자와 여러 가지 절차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사이 아이는 상담실에서 혼자 남아 엄마가 싸 온 음식을 아주 천천히 먹고 있었다. 다 먹으면 은유가 금방 돌아갈까 봐. 아주 천천히 꼭꼭 씹었다.

 

 

***

 

"우린 부모를 바꾸면서 살고 있어."

 

새별이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들이 자기 자식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다른 애들을 데리고 집에 가기도 하고, 집에 전혀 다른 애가 들어와 있어도 눈치채지 못했다. 특정 세대를 향한 부분적 안면인식 장애라는 분석이 있지만 가설은 대중에 공개되진 않았다. 안면인식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어른들은 아이가 집에 있으면, 아이와 손을 잡고 있으면, 혹은 자신이 믿고 싶은 요소가 하나 있으면 철석같이 자기 아이라 믿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인터넷에서 사이트를 하나 만들었어. 엄마 아빠 교환 사이트지."

 

돈 많은 부잣집에 가고 싶은 애들은 줄을 섰다. 돈이 좀 적어도 엄마 아빠가 착하고 재밌는 사람들이면 그런 부모들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애들에게 인기가 많은 전국 부모 랭킹이 한눈에 쫙 정렬되어 있다고 한다.

 

전국 부모 데이터베이스는 이용자의 리뷰 수에 의해 랭킹화됐다. 부모의 경제력과 정서적 역할 기여도, 부모가 기대하는 자녀의 미래 직업, 아이들의 학습 노동 강도, 그 외 부수적인 의무와 해당 부모로부터 획득하게 되는 미래성과 현물 가치 등이 점수화되었다. 아이들은 랭킹을 보며 자기가 살 곳을 골라 다녔다.

 

"아쉽지만 엄만, 상위 40프로에도 못 들어.“

 

은유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친정에 찾아갔을 때 남 대하듯 현관에서 쫓겨난 것도 떠올랐다.

 

새별이는 이참에 멍청한 어른들을 좀 혼내주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힘들게 사는 애들을 골라서 말을 건넸다. 이안이는 애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 접속도 못 할 정도였고 새별이가 이안이를 찾아갔다.

 

"처음 봤을 때, 걘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 정도였어. 다른 애가 말해줘서 내가 그 애 집에 찾아갔어. 우아, 그렇게 더러운 집은 처음 봤어. 동네 사람들이 여러 번 신고했다는데 아무도 그 집을 들여다본 사람이 없었나 봐.“

 

은유는 새별의 담담한 표정에 소름이 끼쳤다.

 

"설마, 네가 걔 아빠를 죽인 거야?"

 

"원래 알콜 중독이었어. 혼자 착란 일으켜서 자해했어."

 

"정당방위지? 이안이도 괜찮은 거지?“

 

"몰라. 왜 걱정해? 남의 집 앤데?“

 

은유는 그 말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너, 그거 그만해.“

 

새별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바나나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 빨대를 꽂아 쪽쪽 빨며 말했다.

 

"엄마 이거 나 안 주더라? 너희 엄마한테 가서 말하라고 하던데?“

 

은유는 까무러칠뻔했다. 길거리에서 차갑게 쏘아붙였던 건들거리던 아이가 진짜 새별이었다고?

 

"다음엔 어디 갈까?"

 

아이들에겐 부모 데이터가 있고 네트워크가 있었다. 아이들 사이의 거래가 이뤄진다면 생활 환경을 바꿀 수 있다.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다. 은유는 아파트 놀이터로 뛰어갔다. 아이들의 얼굴이 다 똑같이 보였다. 새별이의 얼굴 외엔 그냥 남의 아이일 뿐이다.

 

"말해줘도 어른들은 몰라.“

 

새별이가 또 사라진다면 제 발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찾을 수 있을까?

 

은유는 새별이에게 사정했다. 자기 아들도 못 알아봤다는 걸 생각하니 아이를 훈계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위험한 곳으로 혼자 가면 안 돼. 꼭 가고 싶으면 엄마가 같이 갈게.“

 

새별이가 애매하게 동의했다. 은유는 누구 애인지도 모를 이안이의 안부가 궁금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음날 은유는 새벽같이 새별이가 말해준 고아원으로 향했다.

 

"엄마, 내일도 올 거예요?“

 

이안이가 빈 도시락통을 은유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니, 내일은 안 올 거야.“

 

이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엄마가 매일 찾아온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진짜 새별이가 집에 돌아온 이상, 그걸 지키긴 어려울 거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가끔 와 주면 안 돼요?“

 

은유가 이안을 보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가끔 오는 것도 안 할 거야.“

 

이안이 울 것 같은 표정을 보였으나 담담하게 눈물을 참았다.

 

"알았어요."

 

"왜냐하면...“

 

이안이 떨구었던 고개를 들고 은유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지금 바로 우리 집으로 같이 갈 거거든.“

 

이안의 얼굴이 환해졌다. 방방 뛰며 짐을 챙겨 나왔다.

 

이안과 새별을 키우면서 은유는 더 바빠졌다. 이런 식으로, 아들이 둘로 증식할 줄 몰랐다. 개학 후 학교는 패닉 상태가 되었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얼굴을 구분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이름표 착용이 중요한 학칙이 되었다. 아이들은 가끔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선택적 인지 능력 안면 인식 장애'가 <세상에 이런 일도> 같은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지만 어쩐지 금세 잦아들었다. 어른들은 애매했지만 자기가 믿는 것만 지키려 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좀 더 활기찼다.

 

은유가 혼자서라도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불태운 순간부터 새별이와 이안이 둘 다 은유에게 쌍둥이처럼 보였다. 엄마 껌딱지가 이안이라는 걸, 똥고집 아들이 새별이라는 걸 은유가 기억할 뿐이다. 종종 이안과 새별마저 전혀 다른 아이로 느껴질 때가 있지만 눈치챌 수 없다.

 

자기 아이조차 제대로 보는 눈이 없는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캐릭터 키우듯 부모를 키우고 있다. 여러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한 부모를 담당한다. 부모는 여러 얼굴의 아이들을 경험하며 부모로 성장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눈앞의 존재가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이라 굳게 믿는 것이었다.

 

"허읍헙 짭짭짭...."

 

은유의 눈앞에서 두 아이가 더러운 하수구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다. 이러다 가족이 두 배씩 느는 게 아닐까?

 

은유는 2의 제곱수를 세어보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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