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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노인과 노봇

2019.09.25 12:5309.25


“다 왔다. 이 길만 지나면 돼.”
노인이 말한다. 분명 그것은 자신을 뒤쫓아오는 60여 센티미터 남짓한 크기의 오래된 이족보행 로봇을 향한 것이지만, 또 어찌 보면 노인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노인은 지쳤던 것이다. 발바닥은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인공관절이 삽입된 무릎은 시큰거리다 못해 불에 지져지듯 뜨겁다. 그뿐만인가. 호흡은 뭔가가 가슴팍을 꽁꽁 동여맨 것처럼 꽉 막혀 쉬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희망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맹목적으로 노인을 따라 걷는 로봇이 내는 기계 소리는, 수십 년 전 처음 전원이 켜졌을 때와 비교하면 그 옛날의 애들 태엽 장난감 수준도 못하다. 당장 움직임을 멈춘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뭐, 그건 나도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노인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로봇과 함께 살게 된 이후 생긴 버릇이다, 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 게, 원래는 로봇이 퍽 앙칼질 정도로 곧잘 대꾸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로봇은 노인의 말에 반응을 하지 않았고, 결국 노인의 말은 혼잣말이 되어 버렸다.
“그래, 잠깐 쉬자.”
노인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를 둘러보다 욕설을 지껄인다. 요즘 것들은 휴식이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하나같이 방한용 바지보다 조금 큰 기계를 입고 이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 위를 붕 떠다니니 휴식 같은 거 알 이유도 없겠지.
“비켜요!”
소리와 동시에 어떤 놈이 노인 곁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다. 노인은 놀라서 물러서다가 균형을 잃고 뒤로 나자빠진다. 놈도 놀랐는지 속도를 늦추고 노인을 돌아보지만, 이내 다시 속도를 높여 가버린다.
“염병할…….”
노인은 대자로 뻗어 하늘을 보며 숨을 고른다. 어차피 지칠 대로 지쳐 있던 터라 당장은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손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분노는커녕 슬픔이나 좌절 따위의 한가한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노인은 겨우 고개를 돌려 시속으로 따져볼 수도 없을 만큼 느린 속도로 걸어오는 로봇을 바라본다.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것도 퍽 나쁘지만은 않겠다 싶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즈음, 로봇이 멈춰 선다. 노인의 호흡도 멈춘다. 설마? 결국 네가 먼저 가는 거냐? 그런데 로봇이, 걸음 속도만큼이나 느릿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노인은 허, 하고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을 토해낸다. 괜히 울화가 치밀어 노인은 온 힘을 짜내 소리친다.
“놀랐잖아, 이놈아!”
필시 들릴 테지만 로봇은 노인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마지막 수리 때 분명 청각 능력만큼은 온전한 것을 확인했다. 당시 수리 기사도 그 점에 감탄했는데, 그 기사는 아마도 이 로봇이 로봇 시대의 개막과 함께 잠깐 유행한 ‘마음’이 있는 로봇이기 때문일 거라 했다. 공감 능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듣는 거라나 뭐라나. 하기사, 그것도 벌써 수년이나 지난 얘기다.
로봇은 뭔가를 찾듯 끊임없이 고개를 좌우로 돌릴 뿐이다. 나를 찾는 건가? 노인은 숨을 고르고 팔을 무게추 삼아 크게 휘저어 그 반동으로 돌아눕는 데 성공한다. 그다음 엎드린 자세로 팔을 가슴 밑으로 넣어 땅을 밀어내 본다. 잠시 넋 놓고 있던 덕인지 팔에 힘이 제법 들어가는가 싶지만, 이내 힘이 빠져 그대로 땅에 얼굴을 처박는다. 이대로 끝인 건가. 느닷없이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이 메마른 눈시울을 적시니 이것 참 고맙다고 해야 할지.
그때, 노인의 옆에 뭔가가 뚝 떨어진다. 고개를 겨우 들어 보니 어느새 로봇이 곁에 와 있다. 그리고 로봇의 발치에 기다란 것이 떨어져 있다. 아까 노인이 넘어지면서 떨어뜨린 지팡이다. 로봇이 늘 한결같이 단순하면서도 해맑은 표정으로 노인을 내려다본다. 노인은 말라 비틀어진 가슴속에서 북받쳐 끌어오르는 뭔가를 꿀떡 삼키며 지팡이를 움켜쥔다. 그리고 그것에 의지해 기까스로 상체를 일으킨다. 죽을 땐 죽더라도 내 기필코 널 고쳐놓고 죽겠다. 노인은 다짐하며 일어선다.


노인은 수리점 문 앞에 서서 로봇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 김에 숨도 고르는 것인데, 주인장이 오해를 했는지 밖으로 나온다. 말릴 기력이 없어 그냥 먼 산만 바라본다. 머리가 훤히 벗겨진, 하지만 필시 노인보다는 나이가 안 돼 보이는 주인장이 노인을 향해 말을 하려다가 그제야 도착한 로봇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얼어붙는다. 그러다 결국 말한다.
“…오세요.”
흥, 실없기는. 노인은 주인장을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암순응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수리점의 내부를 바라보는 노인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사방팔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들은 도무지 눈으로 봐서는 그것이 본래 어떤 동작을 하는 것인지 알기는커녕 각각의 개체를 구분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는데,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이 창고 같은 곳 전체가 하나의 쓰레기 로봇처럼 괴기스러워 보인다. 그냥 이대로 돌아서서 나갈까 심각하게 갈등하던 노인은 아무래도 카운터이지 싶은 곳(역시나 온갖 기계장치와 수리용 장비가 그득해 정신 사납기는 매한가지지만)에 있는 물건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말한다.
“아이고, 맙소사, 저게 뭐야.”
로봇을 보느라 넋이 나가 있던 주인장이 노인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와 카운터 앞에 선다. 그러고는 카운터 안쪽 작업대에 놓인 사람의 다리처럼 생긴 것을 집어 들고 꽤나 자신감 있는 얼굴로 설명한다.
“의족이죠, 어르신.”
“보면 알아. 내 말은, 저런 게 여적 존재하느냐 이 말이요.”
주인장이 동감이라는 듯 웃으며 의족에 연결된 전선 다발을 정리하더니 그 끝에 달린 전극들을 자기 민머리에 하나하나 붙여댄다. 그것 참 알맞구먼. 곧 의족이 주인장의 손에 들린 채 관절을 접었다 폈다 하는 움직임을 선보인다.
“자네 솜씬가?”
“설마요. 전 수리만 했을 뿐이죠.” 주인장이 겸손과 자부심을 동시에 드러내며 말하고는 다시 노인의 옆에 있는 로봇을 힐끔 본다. “설마 어르신이 맡기려는 물건이, 저건… 아니겠죠?”
노인은 까닭 모를 두려움에 버럭 대꾸한다.
“왜, 안 돼? 그런 골동품도 고치면서 얜 안 돼? 무슨 그따위 경우가 다 있어?”
“어르신 말씀대로 이건 골동품이잖아요. 비교적 손대기가 수월하죠. 구조가 간단하니까. 하지만 그건… 그러니까 그 아이는……. 무슨 말씀인지 아시잖아요.”
노인은 어휴, 탄식을 뱉으며 무릎을 짚는다. 그러자 주인장이 민머리에 전극 다발을 붙인 해괴한 꼬락서니로 냉큼 와서는 어디서 의자 같은 것을 꺼내 놓아준다. 노인은 헛기침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의자에 거의 주저앉는다.
“정말 안 되는 거야? 또 모르잖아, 보기보다 간단할지. 이놈이 보기보다 퍽 멍청한 놈이라고. 요즘엔 시간도 잘 모른다니깐. 그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심각한 거 아니요?”
주인장은 로봇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러네요.”
노인이 반색하려는데 주인장이 그 틈을 주지 않는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예요.”
“뭐야! 내가 그따위 소리 들으려고 저놈을 데리고 여까지 온 줄 알아!”
노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 휘청인다. 주인장이 잡아줘 겨우 균형을 잡는다.
“됐네. 미안했어. 수리 마저 잘하시게.” 노인은 밖으로 나간다. “가자, 이놈아.”
로봇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던 주인장이 조심스레 말한다.
“이건 저도 소문으로만 들은 건데요. 이 근처에 한때 아주 유명한 로봇공학자였던 노인네가 있다는데… 아, 죄송합니다, 제 말 뜻은…….”
노인은 손을 젓는다.
“있는데?”
“그게… 아마 그 사람이라면 저 로봇을 수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참말인가?”
“예. 그런데 문제는…” 주인장이 들고 있는 의족이 경련이라도 난 것처럼 달달달 떨린다. “그 양반 취미가 수집하는 거랍니다. 오래된 로봇을.”


노인은 지팡이질 한 번에 양다리를 한 걸음씩, 그리고 수리점 주인장이 한 말을 떠올리기를 반복하며 무작정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그 사이사이 뒤를 돌아보는 것 또한 잊지 않으면서. 로봇은 잘 따라오고 있지만, 어째 굼벵이 같던 속도가 더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노인은 조급함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가만히 서서 로봇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한눈에 봐도 낯선 곳임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게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이 어지럽다. 이렇게 멀리까지 온 적이 있던가? 더군다나 저놈을 데리고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맥이 풀린다. 망할 놈의 망상이 노인에게 구린내가 진동하는 아가리를 들이대고 속삭이는데, 곧 노인의 머릿속에 들어차는 생각은 이대로 저놈이 맛이 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홀로 남은 노인은 로봇의 사체 옆에서 말라 죽어가는…….
“염병할!”
노인은 허공에 대고 지팡이를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그새 노인을 따라잡은 로봇이 노인을 올려다본다. 언제나 똑같은 표정. 엄밀히 말하면 똑같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더 쨍했고, 역시나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꽤나 다양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놈이었다. 결국은 시간이 녀석의 마음을 앗아간 것이다.
“하긴, 나라고 마음이 말라버리지 않은 건 아니지. 자, 걸음이나 재촉하자.”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 테니.
주변 풍경은 점점 더 변화가 커져 간다. 그런데 그 변화가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향수다. 노인은 묘한 기시감에 찌푸린 눈살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홀린 듯이 그쪽으로 걸어간다. 이것은 벤치가 아닌가? 노인은 퍽퍽한 두 눈을 비벼 보고는 아예 지팡이를 휘둘러 본다. 요새는 하도 가짜가 많아 노인의 흐릿한 눈으로는 좀체 분간이 안 돼 호되게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팡이는 분명 벤치에 닿아 걸린다. 노인은 두어 번 각기 다른 곳을 쳐보고 나서야 화색이 돼서 로봇에게 말한다.
“봐라, 진짜다.”
어차피 로봇도 눈에 이상이 있는 건 노인과 다름없어 그리 의미는 없겠으나 그래도 그렇게나마 봐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노인은 벤치 앞에 자리를 잡고,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일말의 의구심을 안은 채, 조심스레 벤치에 앉아 본다. 차갑고 딱딱한 촉감이 노인의 의심을 책망하듯 분명하게 느껴진다. 노인은 괜히 경건해져 잠시 눈을 감고 그 감각을 음미한다.
문득 눈을 뜬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지는 않았나 싶어 화들짝 놀라 자신의 발아래를 확인한다. 로봇이 없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언정 기다리고 있으면 언제나 노인의 발아래에서 고개를 쳐들고 그 단순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노인을 올려다보던 로봇, 녀석이 없다. 노인은 갑자기 심장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고 가슴을 부여잡는다. 노인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제 다리나 다름없는 지팡이도 나 몰라라 내팽개치고 약통을 찾아 주머니를 더듬는다. 노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돌아보다 엉뚱하게도 로봇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너… 이놈아, 왜 거기 있어!”
로봇은 마치 걸음을 걷다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한 동작으로 멈춰 있다. 잠깐, 시간이 멈춰? 노인은 끊어질 듯한 허리를 최대한 숙여 바닥에 떨어진 지팡이를 향해 손을 뻗어본다. 한참을 꼼지락대서야 겨우 지팡이가 손에 닿는다. 노인은 벤치와 지팡이에 체중을 실어 가며 자리에서 일어나 로봇 쪽으로 간다. 그러고 보니 로봇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 아예 전원이 꺼진 것이다. 수리점 주인장이 퍽 심각한 얼굴로 로봇을 보며 했던 말이 노인의 귓가에 맴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예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예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예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예요, 시간이 얼마…
“염병할!”
…남지않은 거예요, 시간이…….
노인은 로봇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이미 닳을 대로 닳아빠진 무릎이 비명을 질러대지만, 노인은 아랑곳 않고 로봇을 돌려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로봇은 서 있던 자세 때문에 손을 대기가 무섭게 발라당 넘어지고 만다. 그래도 덕분에 등이 훤히 보인다. 노인은 잠시 눈을 감고 로봇의 매뉴얼을 암기한다. 몇 번을 봤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어 그 내용이야 훤하지만, 이렇게 매번 필요할 때마다 떠올리려고만 하면 말썽이다. 자, 천천히. 노인은 암기한 내용을 처음부터 소리 내 말해 본다.
“당신과 마음을 나누는 단 하나의 존재, 하트로이드, 사용설명서, 목차…….”
노인은 미친 사람처럼 웅얼거리며 로봇의 등판을 손으로 두드린다. 두 번, 세 번, 다섯 번. 그러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등판의 일부가 미세하게 벌어진다. 손톱으로 들어내자 노인의 눈으로는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버튼들이 나타난다. 어차피 눈은 필요 없다. 노인은 그 어느 때보다 세심한 손길로 버튼들을 더듬어 머릿속 안내도를 따라 손을 움직인다. 원하는 버튼을 찾아 꾹 누른다. 순간 침조차 삼킬 수 없는 긴장이 노인을 옥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 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노인은 애원하듯 버튼을 두어 차례 더 눌러본다. 역시나 결과는 같다.
로봇이 죽은 것이다.
아니지. 그냥 멈춘 것뿐이야. 수리를 하면 다시 움직일 수 있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 녀석은 로봇이니까. 그 또라이 공학자 노인네만 찾으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인은 자신의 몸을 더듬어 뭔가를 찾다가 허리띠를 풀러 로봇의 몸에 칭칭 감는다. 허리띠의 한쪽 끝을 잡고 당겨 보니 제법 끌 만하다. 노인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로봇의 밑에 깔고 다시 당겨 본다. 훨씬 낫다. 왠지 이대로면 뭐든 될 것 같아 노인은 웃음마저 짓고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쪽 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쪽 손에는 허리띠를 움켜쥔 채 노인은 걸음을 내디딘다. 딱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하늘과 땅이 옆으로 쓰러진다. 아니, 쓰러진 것은 노인이다. 노인은 생각한다. 내가 약을 먹었던가?
아마 아니지 싶다.


노인은 쇠맛을 느끼며 눈을 뜬다. 노인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왼쪽 관자놀이 부근에서 통증이 달려든다. 그 기세가 너무나 갑작스럽고 맹렬해서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이쿠, 신음하며 손으로 머리통을 감싸 쥔다. 그러자 2차로 팔뚝 부근이 욱신거려 또 신음한다. 소매를 걷어 보니 웬 튜브가 팔에 꽂혀 있다. 병원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지만 보이는 거라곤 잿빛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로봇이 없다.
노인은 한 번에 하나씩 다리를 침대 밖으로 떨구고 링거대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이를 악문 것이 무색하게 벌떡 일어나져서 반대로 균형을 잡기 위해 두 손으로 링거대를 붙잡고 버틴다. 지금 몸 안에서 흐르는 이 낯선, 그러나 나쁘지는 않은 느낌의 정체는 무엇인가. 노인은 고개를 들어 링거대에 걸려 있는 정체불명의 약물을 올려다보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찌푸려 초점을 새로 맞춘다. 그저 잿빛 벽인 줄 알았는데 미세하게 경계가 나 있다.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가기가 무섭게 벽이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열린다. 그리고 또 다른 잿빛 벽이 나타난다. 워낙 순식간인데다가 벽과 벽의 구분이 모호해서 꿈을 꾸는 기분마저 든다. 노인은 홀린 듯이 앞으로 가본다.
새롭게 나타난 벽은 가까이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돌아서 보니 노인이 있던 공간은 사라지고 없다. 정말 꿈이라도 꾸는 건가. 노인은 튜브가 꽂힌 자신의 팔을 가만히 쳐다보다 아무 생각 없이 팔에 꽂혀 있던 바늘을 쑥 뽑아낸다. 몸 안에서 뭔가가 빠져 나가는 소름 끼치는 느낌은 분명 생생하다. 바늘 끝에 피가 섞여 주황빛이 도는 액체가 맺혀 똑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다만, 도무지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게 갑갑할 따름이다.
그때, 어디선가 미세한 모터 소리가 들려와 노인은 쉰 목소리로 “로봇?” 하고 돌아선다. 모터 소리는 빠르게 다가오는 동시에 커져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노인이 알던 로봇의 소리가 아니다. 노인은 겁이 나 링거대와 링거 바늘을 움켜쥔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의 정체는… 바퀴…같이 생긴 로봇이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굴러와 멍청히 서 있는 노인의 주변을 웽웽거리며 돌고 또 돈다. 놈이 지나가자 바닥에 떨어진 피가 섞인 액체 방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노인은 몇십 년 만에 ‘로봇청소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고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아니, 요새도 저렇게 용도에 특화된 로봇이 있단 말인가. 불현듯 노인의 귓가에서 수리점 주인장이 속삭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아니, 그거 말고.
이 근처에 한때 아주 유명한 로봇공학자였던 노인네가 있다는데… 아, 죄송합니다, 제 말 뜻은…….
됐고. 바퀴처럼 생긴 청소용 로봇이 또다시 노인 앞을 웽 지나간다. 노인이 들고 있는 바늘 끝에서 액체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인은 바늘을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놓는다. 뭐, 이쯤이야 누워서 식은죽 먹기지.
여전히 노인 곁에서 서성이던 바퀴 로봇이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길래 노인도 뒤따른다. 저런 골동품이 아직도 팔팔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수리점 주인장이 말한 그 또라이 공학자 노인네가 여기 어딘가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길에서 쓰러진 노인과 로봇을 구해준 것이다. 이리 감사할 데가. 노인의 발걸음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정도로 빨라지다가 갑작스레 멈춰 선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잿빛 복도가 끝나고 오래된 성당의 예배당 같은 공간이 문자 그대로 펼쳐지는데, 그곳에서 기도를 하듯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닌 로봇,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로봇들이다. 바퀴 로봇도 그 행렬에 참여하는 것을 노인은 넋을 놓고 쳐다본다. 개판, 아니 로봇판이 있다면 필시 이곳일 터. 작은 광장만 한 공간에 온갖 로봇을 시대와 유형을 가리지 않고 총집합시킨 듯한 장관에 노인은 자신이 여전히 어딘가에 누워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노인은 기도를 하듯 조용히 잠들어 있는 로봇들을 피해 반대편으로 건너간다. 조용히 걷는 한편 틈틈이 로봇들을 훔쳐보기 바쁘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 그 ‘로봇청소기’를 포함해서 최근 들어 볼 수 없던 로봇들이 노인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쯤 되면 노인의 로봇과 같은 기종도 보일 법한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생김새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마음이 있는 로봇은 출시가 예고됐던 때 온갖 추측과 루머, 그리고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이슈가 되었을 뿐, 막상 로봇이 출시하자 사람들은 실망하기 바빴고 결국 로봇사상 최단 기간 만에 단종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것이 전부다. 사람들이 원한 마음이란 무엇이었을까? 컴퓨터 그래픽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에서나 봄직한 사람 같은 로봇? 만약 그들이 원한 게 정말로 그런 거라면, 그래, 실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사람 같은 면모를 제대로 갖추었는지, 젊었을 때의 노인은 소리쳐 묻고 싶었다. 뭐, 그래 봐야 하트 같은 거나 몇 개 받고 말았겠지만.
아무튼, 현실은 사람들의 상상을 따라잡을 수 없음이 명확해졌고, 로봇 개발자들은 그 좋은 머리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당장 수요가 있는 특화용 로봇을 개발하는 데 올인한 것이다. 결국, 마음이 있는 로봇은 한정판으로 출시된 첫 세대 만에 단종되었다. 그것도 어언 수십 년도 더 된 얘기니 세월이란 게 참.
“그쪽도 옛날 생각에 젖은 모양이야.”
노인은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온통 로봇뿐인 광장 끝에 누군가가 서 있다. 그러니까 로봇이 아닌 사람이 말이다. 노인은 반가움에 그쪽으로 가며 간만에 너스레를 떨어 본다.
“이거 참, 이런 곳에서 사람을 보니 사람이 다 좋아 보이네. 안녕하시오.”
허옇게 샌 머리를 쪽지은 또 다른 노인은 한눈에 보기에도 성깔 있어 보이는데 그이는 그저 주변에서 죽은 듯이 모여 있는 로봇들을 꽤나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본다. 곁에 서서 덩달아 로봇판을 감상하던 노인은 뒤늦게 떠오른 것에 놀라서 그이를 쳐다본다.
“설마 그쪽이 그 또라이 노인네?”
그이가 안경 너머로 노인을 힐끔 보고는 흥, 하고 웃는다.
“천재 로봇공학자라는 좋은 표현 뒀다 뭐하려고?”
노인은 자신의 실수마저 뒤늦게 깨닫고 헛기침을 한다.
“아, 내 말은…….”
그이가 뼈만 앙상한 손을 내민다.
“뭐, 사람이 다 반갑다는 말, 그건 나도 동감이네. 피차 이름 같은 건 알아도 쓸모없을 테니. 저 애들은 나를 기사님이라고 불러. 그 뜻은 알아서 갖다 붙이고.”
노인은 얼결에 기사님이라고 불린다는 자의 손을 잡고 흔든다. 좋아,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난 노봇일세. 역시 뜻은 알아서 붙이시지.”
기사가 또 흥, 하고 웃는다.
“왜 웃지? 그렇게 별로요?”
“아니. 그냥, 습관이야. 신경 쓰지 마.”
“근데 왜 반말을…….”
“나보다 오래 살았을 리 없지만 원한다면 존대해 드리고.”
하긴, 이 나이 먹어서 1, 2년 따져봐야 뭐하겠나.
“됐어. 말 짧으면 근력 아끼고 좋지.”
“됐으면 따라 와. 그쪽 로봇이 댁을 찾으니까.”
“뭐야?”
노인은 링거대를 번쩍번쩍 들어가며 기사를 뒤따른다.
“아주 희귀한 녀석을 가지고 있더군. 마음이 있는 로봇이라.”
이번에는 노인이 코웃음을 웃는다.
“다 마케팅일 뿐이야. 하지만 희귀한 녀석인 건 맞지. 내겐 하나뿐인 놈이니까.”
앞서가던 기사가 노인을 휙 돌아본다.
“뭐 하던 인간이야? 말장난을 꽤나 즐기는데.”
“기술의 사건지평선에 가까워지기 전까지 글을 썼었지. 한마디로 로봇한테 일자리 뺏긴 수많은 사람 중 하나라고.”
“뭐, 그 덕에 한가하게 사는 것 같으니 너무 애석해하지만은 마.”
틀린 말은 아니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긴’ 사람들은 그렇다고 굶어 죽거나 빈곤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로봇의 발전으로 인간은 질병과 빈곤으로부터 문자 그대로 해방되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다음 타자가 기다렸다는 듯 마운드에 올랐다. 일 그 자체였다. 인간은 일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아예 DNA 구조 자체를 새로 설계하지 않는 한 그 갈증으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그 정도 기술은 요원한 상태다.
기사가 때마침 열린 벽 틈으로 쏙 들어간다. 마치 나비처럼 팔팔하다. 관리를 잘한 모양이다. 타고났거나. 어쩌면 그 어느 것보다 뛰어난 보조기기의 도움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지. ‘천재 로봇공학자’라질 않나.
노인은 영락없는 수술실 같은 공간에 들어선다. 방 한 가운데에 금속 침상이 있고 그 위에 로봇이 놓여 있다. 로봇이 노인을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노인은 입을 떡 벌리고 로봇을 향해 걸어간다.
“이게 대체……. 아니, 어떻게…….”
“눈물은 닦지그래. 보기가 흉하구먼.”
노인은 재빨리 눈물을 훔친다. 로봇이 노인에게 팔을 뻗는데 표정이 또 바뀐다. 눈은 X 자로, 입은 뒤집어진 아치형이다. 아프다는 신호, 그러니까 수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말은 여전히 못 하는가? 못 고친 거야? 천재라더니, 천재가 다 얼어죽은 모양이지.”
“여기가 무슨 서비스센턴 줄 알아? 배터리가 방전돼 있길래 외부 전력에 연결해놓았을 뿐이야.”
로봇의 뒤로 전선 다발이 연결돼 있다.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배터리가 그 모양이야? 완충을 해도 5퍼센트도 채 안 되니 얘라고 별수 있어? 그러니까 허구언 날 절전 모드로 비실비실. 뭐, 이렇게 작동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만.”
노인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는다. 하지만 그걸 알았다 한들 뾰족한 수가 있었을 리 없다. 배터리를 교체해줄 제조사는 이미 오래 전에 웬 다국적기업에 흡수되었고 그나마 남은 배터리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배터리’라는 개념 자체가 흐릿해진 지 오래다. 요즘 것들은 사람처럼 잠을 자는 것으로 충전이 된다지. 노인은 몸서리를 친다.
“그럼 이제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저렇게 전원에 연결된 채로 살아야지.”
“혹시 배터리를 구할 수 없을까? 당신 능력이면 꼭 정품이 아니어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그건 애도 할 수 있는 거야. 물론 불량률은 크게 다르겠지만.”
“그럼 해줘.”
“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이 녀석이 새 배터리의 전압을 견딜 수 있느냐야.” 기사가 노인의 찡그린 얼굴을 보고는 설명한다. “내가 그쪽의 그 낡아빠진 몸뚱아리에 고농축 합성 단백질을 투여했다고 치자. 아마 그쪽이 깨어나기도 전에 그 방은 그쪽의 묽은 대변으로 범람했을 거야. 그쪽의 그 낡아빠진 몸뚱아리는 기껏해야 식염수 정도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지.”
“거 눈물 나게 친절한 설명이군.”
“고마워할 것까진 없어. 자, 이해됐겠지. 이 녀석의 낡은 회로로는 미세한 전압조차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거지. 저런 커다란 녀석의 도움이 없다면 말이야.”
노인은 로봇에 연결된 전선을 눈으로 좇는다. 전선은 벽 한쪽을 차지한 대형 컴퓨터 어딘가에 연결돼 있다.
“이 녀석의 전기적 면역력을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최적의 전압을 계산하는 동시에 그에 맞게 전력을 조절해 공급하고 있지.”
“저런 건 얼마나 하나?”
기사는 흥, 웃는다.
“글쎄. 경제활동을 안 하고 산 지 오래돼서 요즘 물가는 모르겠고, 하지만 확실한 건 있지. 지구 위 어딜 가도 저런 건 없다는 거. 왜냐하면 내가 직접 만들었거든.”
노인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로봇을 쳐다본다. 괜히 한 번 로봇을 만져 본다. 한때는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닌 듯 하얗고 매끈거리던 로봇의 피부는 때가 낀 듯 곳곳이 얼룩덜룩하고 스크래치로 우둘투둘하다. 노인은 로봇을 만지던 자신의 손을 새삼 들여다본다. 뭐 묻은 게 겨 묻은 거 나무라고 있구먼.
“제안 하나 하지.”
기사가 말한다. 노인은 기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애를 나한테 넘겨.”
노인은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게 끝이다.
“뭐여, 그게 다야? 그쪽은 뭐 하던 인간인데, 제안이라는 단어의 뜻도 몰라?”
“더 뭐가 필요하지?”
“나. 내가 얻는 건 뭔데?”
“저 녀석의 생명 연장.”
노인은 속절없이 흉통을 느끼고 금속 침상에 몸을 기댄다.
“정말이지 눈물 나게 명징한 위인일세.”
“칭찬으로 듣지.”
기사가 로봇에게 다가오더니 등 쪽으로 손을 뻗는다. 로봇의 표정이 사라진다.
“필요한 후속 조치가 더 있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나가서 해.”
노인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은 채 터덜터덜 걸어 방을 나간다. 문이 소리 없이 닫히더니 요란하게 잠긴다. 잿빛 복도에 홀로 남겨지자 더할 나위 없이 울적함이 밀려들고, 노인은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본 로봇의 표정 변화에 감격하던 감정은 그새 어디로 갔나. 지금 노인은 그저 로봇과 떨어질 일에 대한 걱정만으로 축 늘어져 있다. 로봇이 여기 남으면 적어도 저 또라이 노인네가 살아 있는 한(객관적으로 봐도 기사가 노인보다는 오래 살 것이다) 전처럼 비실거리지 않고 쨍쨍한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더 고민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노인은 뭔가가 다리를 치는 바람에 아래를 확인한다. 로봇청소기, 아니 바퀴 로봇이 노인의 다리에 자꾸만 머리를 박아대고 있다. 주인을 닮아 이놈도 제정신이 아닌가 싶어 링거대로 놈을 밀어내려다가 노인은 링거대를 잡은 손과 링거대가 눈물로 젖어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린다. 어느새 또 눈물을 짜고 있었나 하는 것은 둘째고, 도대체 얼마나 울어댔길래 눈물이 팔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까지 떨어질 수가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이 무슨 펄프픽션에도 나오지 않을 추잡한 상황인가. 하지만 노인은 곧 깨닫는다. 기사가 눈물을 닦으라고 한 이후 계속해서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음을. 그리고 로봇이 지었던 표정이 자기가 아프다는 뜻이 아니라 울고 있는 노인을 향해 어디 아프냐고 묻는 것이었음을.
노인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자신의 다리를 치는 로봇의 머리를 토닥여 본다.
“고맙다.”


기사가 다시 나온 건 30분이나 더 돼서다. 노인은 두 손으로 링거대를 부여잡고 기사에게로 다가가지만, 딱히 뭔가를 묻지는 못한다. 그저 기사가 말을 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긴박한 수술을 마친 의사처럼 지친 동시에 묘한 미소를 머금은 기사가 말한다.
“고민은 다 했어?”
“결정했냐고 묻지는 않는군.”
“결정을 해야 할 문제가 아니니까.”
노인이 표정을 구기자 기사가 노인의 어깨를 두드린다.
“가지. 귀한 녀석인 만큼 보상은 해야지.”
“필요없어. 내가 저놈을 돈 받고 파는 것도 아니고.”
“그럼 선물이라고 해두지. 우리가 이렇게 만난 데 대한.”
기사가 발걸음을 옮긴다. 노인이 문 앞에 서서 있자 기사는 말한다.
“이따가.”
기사를 따라 간 곳은 다른 곳과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우선 잿빛의 요상한 자재가 쓰이지 않아 전체적으로 밝아 보일뿐더러 따뜻하기까지 하다.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고는 기사가 건네주는 컵을 받아든다.
“식염순가?”
기사가 웃는다. 언뜻 사람이 달라지는 듯이 보이는데, 그게 일반적인 표현처럼 사람의 면모가 달라 보인다는 것보다는, 뭐랄까, 순간적으로 나이가 어려져 보였다고 해야 할까. 도대체 뭔 소린지. 노인은 조용히 컵 안의 따스한 것을 마셔 본다. 차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향이 좋구먼.”
“아는 향일 텐데.”
노인은 다시 마셔본다.
“뭐, 듣고 나니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것도 같고.”
“하긴, 이제 와 그게 어떤 잎에서 우러난 향과 같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노인은 괜히 오소소 소름이 돋아 또 한 번 몸을 떤다.
“이것도 자네가 직접 만든 거로군.”
“그냥 취미일 뿐이지. 무용하기 그지없는.”
차를 다 마시고도 컵에 남은 온기를 손바닥으로 빨아들이고 나서야 노인은 정말로 로봇과 헤어질 일만 남았다는 것이 실감이 나고, 그 반응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역시나 몸을 부르르 떠는 일밖에 없다.
그것의 대가인 양 기사가 선물이라고 내어준 것은 지팡이다. 노인이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은. 제조사도 같고, 심지어 바닥의 닳은 정도도 노인의 기억 속 지팡이와 똑같아서 노인은 하릴없이 기사를 쳐다본다. 그러자 기사가 씩 웃더니 노인의 팔에 뭔가를 채우고는 지팡이를 낚아채 휙 던져 버린다.
“불러 봐.”
“뭘?”
“지팡이를.”
“잘도 그런 낯간지러운 짓을.”
기사가 지그시 노인을 바라보는 통에 결국 노인은 한숨을 내쉬고는 지팡이가 있는 쪽으로 서서 중얼거린다.
“이리 와.”
“진심으로.”
노인은 아, 탄식한다.
“이리 와, 지팡이. 어서.”
노인은 곧이어 벌어지는 일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팡이가 또르르 굴러 노인의 발치로 온 것이다.
“허리를 숙이기는 해야겠지만, 적어도 움직일 수 없을 때 가까이 오게는 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어지간하면 새 보조기기를 사는 게 어때? 말한다고 들을 것 같지는 않지만.”
“잘 아는구먼. 이건 고맙게 쓰지.”
노인이 허리를 숙여 지팡이를 집으려는데 기사가 얼른 지팡이를 집어준다.
“자, 이제 인사할 시간이야.”


노인은 로봇과 같은 눈높이로 로봇의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표정을 보며 말한다.
“그동안 고마웠다. 괜한 말은 하지 않을 거다. 너라면 그래도 이해할 테니. 그렇지?”
로봇의 표정은 바뀌지 않는다. 더 이상 절전 모드가 아님에도 로봇은 기본 표정 이외의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것이 이 녀석에게 마음이, 진짜 마음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노인도 별다른 표정 없이 그저 로봇을 바라만 본다. 그거면 충분하다.
미궁 같은 잿빛 복도를 빠져 나오자 쏟아지는 햇살에 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눈이 가려지자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감정이 북받친다. 노인은 고통도 아랑곳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어 버린다. 이때가 아니면 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짓거리를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다.
더 울다간 진이 빠져 죽겠다 싶을 즈음, 노인은 일어서기 위해 지팡이를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난감함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다가 불현듯 팔에 차고 있는 물건을 발견한 노인은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고는 작게 말해본다.
“지팡이야, 이리 와.”
눈을 찌푸리고 주변을 둘러보지만 어디에도 지팡이가 보이지 않는다. 노인은 목을 가다듬고 아까보다 더 크게 말한다.
“지팡이! 이리 와! 염병할, 이게 어디 간 거야?”
그때,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바퀴처럼 생긴 로봇이 지팡이를 물고 문 틈을 통과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여 노인은 기함을 해서 소리 지른다.
“이놈아! 그거 이리 내놓지 못해!”
노인의 말에 반응하듯 지팡이가 들썩이다 바퀴 로봇에게서 떨어지는가 싶더니 한쪽으로 틀어지면서 함께 문을 통과해 버린다.
노인은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문 쪽을 바라만 보다가 바닥을 짚고 일어서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제발… 위태롭지만 결국 두 발로 서는 데 성공한 노인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잠시 지팡이를 잊고 웃음을 터트린다. 지팡이 없이 서본 것이 언제적 일이던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어쨌건, 또 언제 힘이 빠질지 모른다. 노인은 지팡이를 찾아 다시 미로 같은 잿빛 복도 안으로 발을 디딘다.


미궁을 떠올린 것은 참으로 적절한 생각이었지 싶을 정도로 사방이 잿빛뿐인 복도는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다. 노인은 잠시 멈춰서 지팡이를 불러본다. 그러고 나서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쪽으로 또 얼마를 걷다가 지팡이를 불러 방향을 가늠하는 식으로 걸은 지도 벌써 10분은 된 것 같다. 슬슬 지쳐갈 즈음, 또다시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려 노인은 손으로 벽을 짚어가며 조금 더 나아간다. 아니나 다를까, 바퀴 로봇이 또 문에 걸려 들어가지 못하고 벽을 쳐대고 있다.
“이 미련한 놈아.”
아니지, 그 미련함 덕분에 지팡이를 찾은 거나 마찬가지니.
노인은 윽, 소리와 함께 허리를 숙여 바퀴 로봇에게서 지팡이를 빼앗는다. 그러자 바퀴 로봇이 쏙 하고 문 틈을 통과한다. 여긴 또 뭐 하는 덴가 싶어 노인은 고개를 들이밀고 방 안을 확인한다. 그럼 그렇지, 누가 로봇청소기 아니랄까 봐 방에 있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여기저기서 모은 쓰레기를 토해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던 노인의 표정이 굳어진다.
바퀴 로봇이 토해내는 쓰레기 안에 낯익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은 쿵쾅거리며 걸어가 쓰레기 더미를 뒤져 그 안에서 로봇의 신체 일부로 보이는 부품을 찾아낸다. 이… 때가 낀 듯한 스크래치투성이 플라스틱 껍데기가 왜 여기 있는가?
“왜?”
노인은 자기 목소리에 놀라 움찔한다. 의지로 물은 것이 아닐뿐더러 그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는 그 무엇도 이곳에는 없다. 컨베이어 벨트만이 웅웅거리며 로봇 폐기물을 어딘가로 옮길 뿐. 그렇게 옮겨진 폐기물은 소각로 같은 것의 주둥이로 들어가고, 그 뒤에선… 잿빛의 가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따끈따끈한 열기를 뿜어내며.
바퀴 로봇은 할 일을 마치고 유유히 방을 나간다. 노인은 주워 들은 플라스틱 껍데기를 꽉 움켜쥐고 바퀴 로봇을 쫓아 나간다.


바퀴 로봇을 따라 도달한 곳은, 노인의 오래된 직감이 여전히 제대로 작동한다는 가정 하에, 이미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다. 노인의 로봇이 수술을 받은 곳. 노인은 들고 있던 플라스틱 껍데기를 내려다본다. 그래, 원래 수술이라는 것이 폐기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작업이 아닌가. 노인이 알기로는 자신의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받았을 때도 기존의 관절과 연골 같은 것들이 버려졌다. 사실 그것들이 더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 수술인데 그것들을 버리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간 바퀴 로봇이 잠시 후 뭔가를 물고 나오는데 그것은 노인의 로봇의 얼굴이다.
노인은 바퀴 로봇이 그대로 자신을 지나쳐 다시 쓰레기 처리장 쪽으로 가는 것을 그저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아 하염없이 두 손으로 지팡이만 움켜쥐고 서서 두 눈을 뻐끔거릴 뿐이다.
그때, 수술실 안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노인의 정신을 깨운다. 노인은 반쯤은 실성한 사람처럼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수술실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위압적인 기계들이 둘러싸고 있는 금속 침상 위에 로봇이 누워 있다. 아니… 로봇이 아니다. 노인은 뒤돌아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지팡이를 딱딱 짚어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덩치가 산 만한 기계팔들 사이로 보이는 것은… 또라이 노인네, 기사다. 기사가 눈을 뜨더니 노인을 보고 말한다.
“다시 보니 이것 나름 괜찮은 느낌이야.”
기사가 상체를 일으킨다. 기계팔들이 물러나자 기사의 나신이, 정확히는 신체의 내부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 껍데기와 그 안에 들어차 끊임없이 움직이는 미세 부품이 연주하는 기계음은 언뜻 부드러운 느낌마저 줄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다. 기계공학에 미학이 있다면 그 극단은 저 기사의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전해 보인다.
“그쪽도 이것의 아름다움을 아는 모양이야.”
기사의 말에 노인은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현실감각이 돌아오니 뒤따라 느껴지는 것은 공포다. 노인은 플라스틱 껍데기를 쥔 팔을 쳐들고 말한다.
“이게 뭐야?”
“알잖아.”
공포에 공포가 끝없이 내려앉는 느낌에 호흡마저 가빠지는 듯하다. 노인은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며 다시 묻는다.
“로봇은 어디 있지?”
“보면 알아?”
“무슨 소리야? 당연하지. 내가 그놈을 왜 못 알아봐!”
“못 알아보는 거 같은데.”
당최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건지 노인은 알 길이 없다. 결국 노인은 태도를 바꾼다.
“내,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냥 로봇을 데리고 가겠어. 돌려줘.”
“늦었어.”
기사가 자신의 몸, 기계장치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두 번, 세 번, 다섯 번.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고 기사는 자신의 기계 가슴을 열어젖힌다. 그 안에 또 다른 기계장치가 자리잡고 있다. 기사의 말대로 노인은 그것이 정확히 무언지 알 수 없지만, 막연하게 그것이 로봇의 몸 안에 들어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 입을 다물고 플라스틱 껍데기를 떨어트린다.
“눈치는 쌩쌩한 모양이야. 맞아, 이건 그 녀석의 마음이야.”
기사의 말을 가만히 곱씹던 노인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것은 기침 같기도 하지만 웃음 같기도 하다. 노인도 그것이 정확히 무언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참을 수 없다는 것.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노인을 빤히 보던 기사가 말한다.
“실성이라도 한 거야?”
노인은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학학, 뭔가를 쏟아낼 뿐이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노인은 주변을 살피고는 벽 쪽으로 가서 몸을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잿빛 벽을 손으로 쓸어보다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린다.
“로봇의 부품을 분해해서 만든 거였어.”
“공개한다면 노벨상 감이지.”
노인은 또 한 번 발작적으로 기침을 토해낸다. 이번 것은 웃음이 확실하다. 노인은 묻는다.
“도대체 몇 살이야?”
“몰라. 나도.”
“하긴, 나라고 내 나이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군. 그래도 아직 세 자리는 안 돼. 자네는 세 자리가 넘겠지?”
“자릿수가 의미 있는 시점을 넘겼다는 건 분명하지.”
수술실의 문이 열리고 바퀴 로봇이 들어온다. 새 쓰레기를 찾던 바퀴 로봇이 노인 쪽으로 와서는 지팡이를 물고 가버린다. 노인은 팔에 채워진 것도 풀러 던져 버린다. 마음 같아선 이 쓸모없는 다리 두 짝도 떼서 던져 버리고 싶다. 그리고 이 목숨줄도.
“그래, 이제 마음이 생겼으니 기분이 어떠신가그려?”
“아직 펌웨어를 올리지 않았어. 이제 업데이트 할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정말로 마음이 생기는가? 아니, 그 전에, 자네는 지금 마음이란 게 없는 거야?”
기사는 다시 침상에 눕는다. 그러자 사방에서 다시 기계팔들이 달려들듯 모이고 천장에서 기계장치가 내려온다. 기사는 기계장치와 자신의 가슴을 전선 같은 것으로 연결한다. 그러고는 기계에 뭔가를 입력한다. 그러면서 기사가 말한다.
“이제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고.”


[부팅 완료]
[발견된 오류: 1(CODE: DUPLICATION)]
[새로운 장치가 발견되었습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다시 묻지 않기를 원하시면 체크해 주세요.)?]
예.
기사는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옆을 보고 다시 감는다. 몸을 일으켜 본다. 주변을 둘러보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노인을 발견하자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실제로 뛸 심장은 없지만. 심장이, 아니 새로 이식한 마음이 요동을 치고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동시에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 처음 느껴보는 것은 아니지만, 아득히 먼 과거의 감각인지라 마치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낯설고, 조금은 불쾌하기까지 하다.
기사는 열려 있는 몸을 닫고 가운을 걸친 다음 노인에게로 다가간다. 잠이라도 든 건가? 업데이트에 13분 6초가 걸렸으니 잠이 들 만도 하지.
“일어나.”
반응이 없어 기사는 발 끝으로 노인의 다리를 건드려 본다. 반응이 없다. 기사는 노인의 어깨를 잡아 흔든다. 노인이 힘없이 옆으로 쓰러진다.
죽었군.
자명한 사실. 그런데 그게 이상하리만큼 믿기지 않는다. 왜지? 기사는 노인의 죽음보다 그것이 믿기지 않는 것에 적잖이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다 이내 깨닫는다.
이게 마음이야.
정말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기사는 몸속 깊숙한 곳에서 진행 중인 호르몬 단위의 변화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자신이 우습고 한심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지금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에 논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곳곳에서 닥치는 대로 아우성치는 성난 짐승들 같다. 통제해야 해. 그런 생각은 곧바로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니 기사는 서둘러 다시 침상으로 가서 몸을 누인다. 천장에서 빛과 함께 콘솔이 웅,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동안에도 감정의 물결이 거세게 온몸을 때리는데, 마치 끝없이 불어나는 물속에 잠겨가는 느낌에 두렵기 짝이 없다. 실제로 호흡이 달리기 시작하고 시야는 흐려진다. 손을 뻗어 보지만 아직 콘솔에 닿지 않는다. 닿는다고 조작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기사는 팔을 떨구고 산소의 결핍과 머리의 조여옴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이게 마음이었지. 그래서 제거했던 건데. 결국은 되돌아온 것이다. 원점으로. 뭐,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기사는 눈을 감는다. 편안한 마음으로.

최의택

『방황하는 메아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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