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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밤 하늘의 유령

2019.09.20 12:0409.20


나는 누나네 집 초인종을 누르려다 멈칫하고는 백팩을 벗어 안을 뒤졌다. 흡사 던전 입구에서 최종적으로 장비를 확인하는 용사의 심정으로 백팩 안에서 꺼내든 것은 가로 약 15센티미터×세로 약 23센티미터×폭 약 5센티미터의 물건이었다. 가히 ‘우주적’이라 할 만한 이것이, 저 문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 고난과 역경, 어쩌면 굶주림까지도 막아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높이 쳐들고 (속으로) 외쳤다. 오, 나의 영웅이시여! 보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부디 당신의 영혼을 들고 있는 제게 당신의 지혜를 조금만, 아주 조금만—설사 고전적인 물리법칙은 쌈 싸먹는 아원자적 단위일지라도 제 지혜의 총량보다는 나을 테니—나눠주세요. 오, 위대하신 칼 세이건이시여! …그렇게 내가 서점에서 특별히 2천 원이나 더 주고 포장까지 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쳐들고 생쇼를 할 때였다. 옆에서 누가 말했다.
“누구세요?”
나는 너무 놀라서 그만 나의 영웅의 영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얼른 주웠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지 싶었다. 불길한 징조가 틀림없었다.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키가 내 3분의 2나 될까 싶은 아이가 뭔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심드렁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외치길 천만다행이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연 내 앞에 나타난 이 꼬맹이를 관찰했다. 아이가 장착하고 있는 책가방과 신발 주머니가 특히 내 주의를 끌었는데 그것들을 수놓은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만화 캐릭터가 아니었다. 별이었다. 이거, 보통 상대가 아닌데. 좋아, 너를 나의 적수로 인정한다.
“아저씨, 백수예요?”
녀석이 처음부터 세게 나오는 바람에 나는 내상을 입고 말았다. 내가 어딜 봐서 아저씨인 거지? 물론 이제는 당당히 술과 담배를 살 수 있게 됐지만, 아직 신분증 없이는 그 어느 곳에서도 성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애기 페이스의 소유자인 이 내게, 아저씨라니? 그리고 백수라니?
“그건 뭐예요?”
나는 포장된 『코스모스』를 슬쩍 뒤로하며 말했다.
“모르는 사람한테 그렇게 함부로 말 거는 거 아니야.”
“위험해서요?”
“예의가 아니잖아.” 나는 괜히 민망해서 덧붙였다. “뭐, 그래도 호기심이 많은 그 태도는 매우 바람직하지만.”
그때까지도 하찮은 미물 따위를 상대하는 신의 권태감 같은 것으로 가득차 있던 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일순 빛이 일렁였다. 나는 작은 빅뱅을 목격한 것과 같은 황홀경을 맛보았는데, 그 정도로 아이의 표정 변화는 극적이었다. 한순간에 활력을 되찾은 아이가 책가방 끈을 움켜쥐고 들어올리고 하면서 소리쳤다.
“정말이에요?”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뭐, 뭐가?”
“호기심이 많으면 바람직한 거예요?”
“그럼.”
아이는 날아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까치발을 섰다.
“엄마는 귀찮아하던데.”
“무슨 그런…….”
나는 내가 뭔가를 물어볼 때마다 머리를 쥐어박던 누나가 떠올라 버럭 말했다. 내가 겨우 턱걸이로 물리학과에 입학한 건 다 누나가 내 뇌세포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 엄마가 누군지 아주… 좋지 못한 사고방식의 소유자구나.”
또 옆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게. 도대체 그 엄마가 누구야?”
“그게 바로 제가 궁금한 거죠.” 하면서 내가 고개를 돌리고 보게 된 것은 던전의 보스… 아니, 누나였다. 그때 나의 적수, 아니 꼬맹이가 다시 신의 권태감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누나를 향해 “다녀왔습니다” 하고는 그대로 누나네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네가 왜 그 위험한 곳엘……. 누나가 팔짱을 끼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포장된 『코스모스』를 방패처럼 쳐들었다.
“뭐야, 이건?”
“책… 코스모스… 누나 아들이… 별 좋아한다길래… 헉.”
그럼 그 꼬맹이가 이 던전의 후계자… 어쩐지. 어떻게 이 정도로 몰랐을 수가 있었나 싶게 모든 것이 척척 맞아들어가서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야, 특별판?”
“어, 그걸 어떻게…….”
“집에 있는 거보다 작아서.”
나는 『코스모스』를 든 팔을 떨구고 말았다.
“그럼… 양장본?”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돌아서면서 말했다.
“괜찮아. 네가 베고 자면 되니까. 아직 새 침구 못 샀거든.”
과연, 누나다웠다.


나의 적수, 아니 꼬맹이, 아니 아니 나의 하나뿐인 조카 혜성이는 그 이름에 걸맞게도 별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거실 전체가 별과 관련된 물건으로 가득했는데, 입을 헤벌리고 한 바퀴 둘러보니 그야말로 우주가 따로 없었다. 말하자면 혜성이만의 소우주인 셈이었다. 사랑, 그래,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의 품에 안긴 채 응애, 하고 우는 대신 누나한테 이렇게 말했을지도. ‘나의 몸, 나의 영혼을 빚어낸 나의 창조주 위대한 어머니시여, 나는 별을 사랑하오니, 부디 나에게 별의 이름을 하사하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거리는 동안 혜성이는 이름처럼 자기만의 흔적을 남기며 소우주를 유영하기 바빴다.
“온혜성, 어지럽히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뭐야, 쟤도 온씨? 누나 성을 딴 건가? 온씨 성의 혜성이가 하던 행동을 멈추더니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다 버려 버린다고 했어.”
그러고는 뒤돌아 물건들을 정리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공포로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제 꼬리를 갈무리하는 혜성이라니 어딘가 괴기한 상상이었다.
“그래서,” 누나의 말에 나는 차려 자세를 취했다. “계획이 뭐야?”
사실 그런 거 없었지만 나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지껄였다.
“장학금을 모조리 갖다 바치겠습니다.”
“네가?”
어, 그건 좀 아팠다. 하지만 무계획으로 이 집에서 쫓겨나 대학 외곽에서 느슨하게 부유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퇴출돼 외로이 방황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전략을 선회해 혜성이한테로 가서 『코스모스』를 들이밀었다.
“걔 그거 있다니까.”
흥, 나한테도 믿는 구석이 있다고. 혜성이가 『코스모스』에 관심을 보이며 우리 사이의 거리를 재듯 시선을 움직였다. 나는 『코스모스』를 바닥에 두고 나한테서 멀리, 그러나 사정권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로 떨어뜨리고서 혜성이한테 바톤을 넘겼다. 혜성이가 누나의 눈치를 봤다.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이미 가지고 있는 거지만 감사합니다, 하고.”
훗, 과연 그럴까?
혜성이가 배꼽인사를 하며 앵무새처럼 누나가 시킨 말을 하더니 갈증을 느끼는 강아지처럼 『코스모스』의 포장을 뜯었다. 물론 익숙한 표지를 보고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때를 놓치지 않고 다가앉았다. 그리고 『코스모스』 특별판의 표지를 넘겼다. 칼 세이건이 아내 앤 드루얀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구절을 잠시 뒤로하고 다시 페이지를 넘긴 뒤에 책을 혜성이한테 건넸다. 혜성이가 제목을 읽었다.
“한국어판 서문, 칼 세이건의 빈 의자?”
한국어판 서문은 특별판에만 실린 것으로, 앤 드루얀이 칼 세이건 서거 10주년을 맞아 쓴 글을 특별히 허락 받아 실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혜성이 같은 아이한테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내 의도를 증명이라도 하듯 혜성이가 책을 들고 구석으로 가서 배를 깔고 누워 독서를 했다. 나는 승리감에 누나를 보았고, 누나는 제법인데 하듯 웃었다.


대학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거듭 말하지만 너무 달랐다. 캠퍼스 커플과의 교정 내 연애 같은 낭만이야 기대한 적도 없지만, 나에게는 유니버시티나 콜리지 같은 어휘에서 전해져 오는 모종의 환상이 분명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수학을 자연의 시라고 생각하고, 온종일 사색에 잠겨 길을 걷다 아예 교정을 벗어나고, 연구실을 폭발로 날려 버리고, 은둔자처럼 사람들을 피해 숨어다니는, 소위 ‘또라이’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오지…는 않더라도, 하다못해 학생이라는 개체들이 조금은 개성을 갖고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학도 그냥 학교였다. 물론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그저 ‘고등’학교가 ‘대’학교가 된 것 정도의 변화만이 있을 뿐이었다.
반면, 걱정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누나네서의 생활은 흡족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누나 때문은 아니고, 혜성이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혜성이는 수업을 마치면 별다른 방과 후 수업 없이 곧장 집으로 왔는데, 학교 준비물이다 알림장이다 할 게 많을 텐데도 좀처럼 뭔가를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소우주를 마음껏 유영할 뿐. 도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재밌게 하나 싶어 내가 소우주에 진입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스케치북에 별을 그리는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혜성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적지 않은 행복이었고 위로였다. 내가 품고 있던 반짝반짝 빛나는 환상이 다름 아닌 이곳, 눈앞에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만큼.
나는 어떻게든 혜성이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녀석에게 나는 삼촌이라는 이름의 소행성에 불과하다는 듯 그닥 관심을 주지를 않았다. 결국 내가 택한 전략은 다시 코스모스였다. 내가 거실 구석에 삐딱하게 누워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한량처럼 건들거리며 말했다.
“혜성.”
녀석은 반응이 없었다. 뭐, 여기도 우주는 우주니까, 하고 내상을 치유하려 했지만, 상처가 좀 깊었다. 나는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코스모스.”
별을 그리던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렇지.
“형아가… 아니지, 삼촌이 코스모스 보여줄까?”
혜성이가 날 한 번 보더니 고개를 척 돌렸다. 녀석의 시선은 많고 많은 별과 관련된 물건들 중 정확하게 코스모스 책들이 꽂혀 있는 쪽을 향했다. 워, 박수.
“저거 말고. 너, 다큐멘터리가 뭔지 알아? 다-큐-멘-퉈-뤼.”
그러자 혜성이가 벌떡 일어났다. 녀석의 눈이 또 번쩍했는데, 처음 만난 날의 그 작은 빅뱅이었다. 나는 살짝 놀라서 턱을 괴고 있다가 몸을 휘청거렸다. 질 수 없지. 나도 일어나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좋아, 오거라.
내 예상과는 다르게 혜성이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봤다. 바탕에 나선 은하가 프린트 된 아날로그 시계였다. 대체 저런 건 어디서 구하는 건지. 누나한테 저런 디테일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혜성이의 나머지 지분 절반을 소유한 사람을 상정케 했다. 혜성이의 아빠. 그러고 보니 매형이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삼촌.”
혜성이가 간드러지게 날 불렀다. 큭, 처음부터 세게 나오는 전법은 한결같구나. 내가 졌소.
“왜?”
“엄마 오려면 시간 남았어.”
“그래? 근데?”
“따라 와 봐.”
혜성이가 향한 곳은 누나 방이었다. 나는 결계라도 쳐진 것처럼 문 밖에 서서 혜성이를 지켜봤다. 녀석은 옷장 앞에 서서 날 돌아보더니 손가락으로 옷장 꼭대기를 가리켰다. 옳아, 저기 있는 것을 누나가 숨겼다 이거지. 그러니까 지금… 누나가 오기 전에 저걸 꺼내달라는 거야? 나는 말문이 막혔고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했다.
“삼촌.”
혜성이가 말꼬리를 가지고 현란한 기술을 부렸다. 윽, 녀석은 과연 보스의 피를 물려받은 타고난 고수였다.
“누나… 엄마 언제 온다고?”
“오늘은 4시 30분.”
맙소사, ‘오늘은’이라니. 나는 몸을 떨고 말았다.
“확실하지?”
“응.”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옷장 앞에 섰다. 내 훤칠한 176센티미터의 키로도 그곳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이였다. 너무 쉬우면 재미없지. 그때 옆에서 끙 소리가 나더니 의자가 내 옆으로 밀려왔다. 녀석의 간절함이 가슴을 울렸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저것을 가져다 주겠어. 나는 의자 위로 올라서서 커다란 종이상자를 두 손으로 잡아끌었다. 생각보다 묵직한 느낌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먼지가 끌리는 것을 보자 슬슬 후환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조급함에 얼른 상자를 빼서 땅으로 복귀했다. 혜성이가 정말이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아니 상자를 쳐다봤다. 이봐, 그걸 들고 있는 나는 보이지 않는 거야? 암흑물질이 이런 심정일까.
“삼촌, 빨리.”
나는 “어, 어” 하며 상자를 들고 혜성이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거실 바닥에 상자를 놓자 혜성이가 『코스모스』의 포장을 풀 때처럼 다급하게 뚜껑을 열었다. 도대체 뭔데 그래, 싶어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헛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상자 안에는 『코스모스』 DVD 풀 패키지가 들어 있었다. 그것도 두 개나. 세상에, 저것은 내가 지구상에 존재하기도 전에 전파를 타고 전세계에 방영된 칼 세이건의 오리지널 코스모스였다. 오, 나의 영웅이시여.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휴대용 DVD 플레이어의 10인치 남짓한 화면에서 펼쳐지는 우주의 향연에 우리는 도취했다. 1부가 끝나고 나도 모르게 다음 CD를 꺼내려고 하는데, 고사리 같은 손이 날 저지했다.
“엄마 올 때 됐어.”
정신이 번쩍 들었고, 부끄러웠다. 나는 부리나케 우리의 일탈을 수습하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지? 코스모스를 본 것이 이토록 죄책감과 공포감을 느낄 일이란 말인가. 나는 혜성이한테라도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보다 더 야물딱지게 물건을 정리하는 녀석을 보면 그냥 입을 다물게 됐다. 상자를 다시 봉인한 뒤에야 한마디 할 수 있었다.
“커밍 순.”
혜성이가 알아들은 건지 수줍게 웃는 것을 보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모로 네가 짱이다. 네가 삼촌 해라. 그때부터 나는 혜성이를 이렇게 불렀다.
“조카님.”
녀석은 그 호칭에 조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녀석, 끝까지 세구나.
“배 안 고파? 시켜 먹을까?”
“엄마는 시켜 먹는 거 싫어해.”
“…날 시켜 먹으란 말이었어.”
나는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인 반찬을 꺼내 상을 차렸다. 식사 중에 들어온 누나가 우리를 기특하다는 듯 봤다. 내가 누나 밥을 푸려고 일어나니까 누나가 말렸다.
“나 채점 밀렸어. 참, 장학금 얘기 잊지 않았지? 기대하고 있을게.”
누나가 스산한 피리 소리 같은 휘파람을 불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조카님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장학금과 관련해 조금의 고비는 있었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누나라는 이름의 새로운 계에 안착했다고 여겨질 즈음, 나의 위대한 조카님, 혜성이에게서 이상 현상이 발견됐다. 그것은 마치 행성이 자전을 멈춰 버린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녀석이 별을 그리지 않는 것이었다. 제 몸만 한 크기의 새하얀 종이를 거실 바닥에 펼쳐놓은 채 그 옆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는 혜성이의 모습에 처음에는 새로 그릴 은하의 분포도를 미리 시뮬레이션 해 보기라도 하는 건가 했다. 하지만 그러기를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가도록 혜성이는 색연필을 잡지 않았다. 꼭 무언가에 시위하는 듯한 맹렬한 정적은 누가 누나 아들 아니랄까 봐 나 같은 볼품없는 소행성은 금방이라도 녀석의 사건지평선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맞이할 것만 같아 가슴이 조여왔다. 나는 혜성이의 반대편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조카님, 뭐가 문제야? 이 형아… 아니, 삼촌이 도와줄게.”
방학이라 집에 있던 누나가 부엌으로 가며 날 쳐다봤다. 근데 방금 고개를 가로저었던 것 같은데……. 나는 누나를 향해 입 모양으로 ’뭐’ 하고 물으며 검은색 색연필을 집어 은하의 중심부 초거대 블랙홀을 표시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혜성이가 성난 고양이처럼 달려들어 내 손을 쳐냈다. 그러고는 날 쳐다보는데, 처음 보는 그 눈빛에 나는 그만 얼어붙었다. 누나가 와서 날 잡아끌었다.
“별 그리는 거 아니야. 무슨 별을 하얀색 종이에 그리냐? C 학점인 거 티내?”
누나가 날 부엌으로 데려가 식탁 앞에 앉히고는 커피포트 전원을 켜면서 말했다. 거기서 학점이 왜 나와? 그리고… 0.1점만 더 맞았어도 B였다고.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나의 C 학점 따위가 아니었다.
“그럼 쟤 뭐 하는 건데?”
누나는 날 힐끔 보더니 말없이 커피를 따랐다. 누나가 내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읊조리듯 말했다.
“가족신문.”
나는 얼굴을 구겼다.
“뭐? 가족신문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아니.”
“아니, 요즘도 그런 걸 해? 왜? 도대체 의의가 뭐야, 그건? 그건 그렇고, 나는 안 줘?”
“네가 갖다 먹어.”
나는 그렇게 했다. 내가 따뜻한 것으로 속을 진정시키는 동안에도 나의 위대한 조카님은 뚱한 얼굴, 삐딱한 자세로 새하얀 종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시위 ‘같은’ 게 아니었다. 시위 그 자체였다.
옆에서 누나가 킁, 하며 웃었다. 날 보고 있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
“응. 네 표정 봐.”
누나가 핸드폰을 건넸다. 불 꺼진 액정에 비친 내 모습은 과연 코웃음칠 만해 보였다. 나는 핸드폰을 돌려주며 시치미를 뗐다.
“그러고 보니까 너도 그랬잖아. 입은 대빨 나와가지고 하루 종일 종이만 내려다보고. 닮아도 왜 네 그런 걸 닮냐. 유전자의 장난이란.”
“나라고 뭐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그게 다…….”
내가 말끝을 흐리자 누나가 뒤를 이었다.
“아빠는 없고, 엄마랑 누나는 너무 늙어서?”
“아니… 늙은 것까지는 아니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할머니, 엄마였지, 뭐.”
사실이었다. 마지못해 만들어 간 가족신문을 보고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생님까지 엄마를 할머니로, 누나를 엄마로 봤다. 나는 억울한 마음에 정정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학창시절 내내 놀림거리가 되어 버렸다. 헤성이에게 할머니 같은 엄마와 엄마 같은 누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빠가 없다는 것, 그것은 분명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고, 그 ‘이상함’이 저 어린 아이에게는 상처가 될 터였다.
나는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 용기 내 물었다.
“혜성이… 아빠… 그러니까 매형은… 어디 있어?”
누나는 못 들은 척을 하는 건지 커피만 홀짝였다. 나도 얘기한 적 없는 것처럼 커피나 마시려는데 누나가 불쑥 말했다.
“없어, 그런 거.”
누나는 담담했다. 너무 담담해서 이게 화가 나서 흔히 하는 표현인지, 아니면 정말로 생물학적인 부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만약 후자라면 누나는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연구소에 있어야 할 터였다. 근데 누나가 날 보고 말했다.
“네가 할래?”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농담의 차원이 너무 높은데? 오일러도 이해 못 할걸?”
“하여튼 너스레는. 그냥 아빠인 척 사진 좀 쓰자고.”
나는 음, 하고 다시 핸드폰 액정에 내 얼굴을 비춰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랬다간 애들이 놀릴걸. 네 아빠 너무 동안이라고, 형 아니냐고.”
누나가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너,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거 같아.”
“어떻게 알았어, 그거 내가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인 거.”
누나가 체념한 듯 시선을 거두고는 거실에 대고 말했다.
“그만하고 숙제해야지. 안 그러면 거기 안 데리고 갈 거야.”
그때까지도 망부석처럼 한 자세로 종이만 노려보던 혜성이가 청천벽력이라도 맞닥뜨린 얼굴로 이쪽을 돌아봤다. 그러고는 날 향해 SOS를 쳤다.
“거기가 어딘데?”
내가 말했다. 대답을 한 건 혜성이었다.
“우주쇼.”
“가만, 8월이잖아! 페르세우스 유성우?”
혜성이가 반색해서 벌떡 일어섰다. 누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것들이 쌍으로. 안 돼, 방학숙제 다 끝내기 전에는. 분명히 얘기했어.”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깟 초등학생 방학숙제쯤이야 싶었고, 그것은 다시는 해선 안 될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다.


괜스레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산길은 고요하면서도 반복적인 벌레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그 때문인지 혜성이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자꾸만 주변을 기웃거렸다. 결국 녀석이 말했다.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별이 더 잘 보일 거야. 나만 믿어.”
나는 혜성이 손을 잡고, 과거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오르던 길을 올랐다. 하지만 아주 인적 드문 곳은 아니어서 산을 오르는 동안 등산객을 몇 지나쳤다. 그리고 시간과 고도에 비례해 등산객이 아닌 듯보이는 사람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도 별을 보러 왔을까. 나는 미리 지정된 장소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가 아닌,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길을 나아가는 개척자 같은 그들의 존재에 묘한 위로를 느끼며 힘 있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목적지 부근에서 삼각대를 설치 중인 사람이 우리 쪽을 보고 미소로 인사해 주었다. 나 역시 웃으며 응답했다. 조카님은 다소 긴장한 듯 땅아래를 살피며 걷느라 미처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업어줄까, 조카님?”
“아니.” 되었노라, 자못 근엄하게 혜성이가 대답했다.
“거의 다 왔어.”
울창한 나무 밑 캄캄한 곳을 걸어 들어가자 눈에 익은 평지가 우리를 하늘로 안내했다. 마치 산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듯한 이곳은 아는 사람만 아는 명당이었다. 나무를 가림막 삼아 그 사이로 올려다보는 하늘은 꼭 유성우가 아니더라도 볼 만한 것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옮겨가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중 한 곳에 돗자리를 폈다. 그리고 혜성이를 데려가 함께 드러누웠다. 나는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삼촌이 이런 사람이야.”
혜성이는 이미 우주에 빠져 있었다. 나도 손깍지로 머리를 괴고 하늘을 감상했다. 십여 분이 지나자 복사점으로부터 분명하게 빛이 떨어졌다. 나는 나대로 감동을 집어먹고 헉 숨을 참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별을 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아니, 하늘 자체를 올려다본 적이 최근에 있던가? 그러지 못한 이유야 당연히 학업 때문이었지만,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왠지 그러지를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다. 어쩌면 반짝반짝 빛나지 않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던 게 아닐까? 그런 내가 이렇게 다시 반짝반짝 빛나게 해준 혜성이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마워, 조카님.”
“뭐가?”
“어?” 사실대로 말하기엔 너무 장황하고 무엇보다 창피한 얘기여서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덕분에 땡땡이 치고 있잖아.”
“그럼 뭐 하나 물어봐도 돼?”
혜성이가 날 돌아봤다.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꼭 이렇게 묻는 듯했다. 자네, 감당할 수 있겠나? 나는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당연하지.”
“시간여행이 정말로 불가능해?”
“어?”
내가 못 들어서 그런 줄 알고 또박또박 “시, 간, 여, 행” 하고 말하는 나의 위대한 조카님을 보며 나는 미소 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반대로 내 반응에 혜성이의 미간은 오그라들었는데, 문득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그때의 나도 이런 표정을 지었을까? 나는 혜성이의 미간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펴며 말했다.
“엄마가 그래?”
“응.”
하여튼, 감성이라곤 먹고 죽을래도 없지.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게 누나였다.
내가 혜성이만 했을 때, 나는 누나를 처음 보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기억을 하지 못했고, 기억이라는 것이 있을 때에는 누나가 내 곁에 없었다. 엄마는 날 앉혀놓고 허구한 날 서울 유학 간 누나 얘기를 했다. 엄마가 얘기해준 누나는 그야말로 위인과도 같았다. 서울대학교 수석 입학은 엄마의 레퍼토리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정말이지 믿기 힘든 얘기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바, 엄마의 믿기 힘든 얘기 중 사실이 아닌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제일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그런 누나가, 내가 혜성이만 할 때 갑자기 눈앞에 딱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정말로 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가슴 졸이며 누나한테 인사도 생략하고 물었었다.
“빅뱅 전의 우주 바깥은 어떻게 생겼어요?”
태어나서 처음 만난 누나한테 대뜸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 역시 지금 돌이켜 보면 기억 왜곡을 의심하고 싶을 만큼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핑계겠지만 나한테 누나는 길을 걷다 마주치면 한눈에 알아보고 친구한테 하듯 안녕, 하고 손을 흔들 수 있을 것처럼 익숙했는데, 물론 엄마의 레퍼토리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때의 나에게는 빅뱅 이전의 우주 바깥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보다 더 궁금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어른마다 옷자락을 붙잡고 물어댔다(“빅뱅 전의 우주 바깥은 어떻게 생겼어요?”). 일부는 감사하게도 어떻게든 나의 블랙홀처럼 무시무시한 호기심으로부터 어린 영혼을 구원해 주려 했지만, 대개는 귀찮아했고 심지어는 화를 내기도 했다. 누나는, 아예 내 블랙홀을 소멸시켜 버렸다.
“그걸 아는 사람은 없어.”
그 이상 완전한 대답은 있을 수 없지만, 그 대답이 내게 상처 아닌 상처가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생명의 탄생이라는 성스러운 것 이면에 가려진 성적인 것만큼이나 충격적이었고, 그로 인한 변화는 불가역적이었다. 훗날, 그때의 충격을 영화에서 다시 마주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영화의 제목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매트릭스.
그랬던 누나가, 이렇게 또 하나의 블랙홀을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나는 사뭇 비장하게, 그러나 진심으로 나의 위대한 조카님을 향해 말했다.
“시간여행은 가능해.”
혜성이는 약간 혼란스러워하며 날 멀뚱멀뚱 쳐다봤다. 일단 엄마의 답이 틀릴 리 없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소행성한테 물어본 걸 텐데 냉큼 원하는 답변이 돌아와 당황한 것이었다.
“코스모스 리메이크판 4부 기억나?”
부제, ‘밤 하늘의 유령’. 빛의 속성과 그로부터 아인슈타인의 의해 도출된 시공간의 특성을 다루는 편으로, 특히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과 그의 아들 존 허셜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영화적이다. 윌리엄 허셜은 유령의 존재에 대해 묻는 아들 존에게 별을 가리키며 빛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가 별빛을 본다는 것은 머나먼 과거를 보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미래로의 시간여행자인 것이라고. 아버지처럼 천문학자가 된 존 허셜은 ‘사진(Photography)’이라는 명칭을 제안하고 청사진을 개발하는 등 사진술 연구에 매진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시간여행의 또 다른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때마침 유성우가 떨어졌고 나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혜성이가 말했다.
“과거로는 못 가는 거잖아.”
역시나 같은 편에 나오는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로 갈 수 없다. 블랙홀과 화이트홀, 그리고 웜홀 등의 머리 터지는 가설들은 많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그런 것에라도 매달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꿈꿔야 할까? 나는 옆으로 돌아누워 혜성이의 반짝거리는 눈을 들여다봤다.
“과거로 가고 싶어? 왜?”
“…아빠 보려고.”
나는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으로 안간힘을 써 표정 관리를 했다.
“조카님이 아빠가 보고 싶구나.”
“삼촌은 아빠 본 적 없어?”
“응…” 아니, 잠깐만. “너 생일이 언제지?”
혜성이가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느냐는 듯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다음주 금요일.”
유성우가 쏟아져 내리는 와중에 나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했다.


“빅뱅 전의 우주 바깥은 어떻게 생겼어요?”
어린아이 하나쯤은 안에서 먹고 자도 될 것처럼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들어온 누나가 이건 뭐야, 하듯 날 내려다봤어. 과연, 엄마가 입이 닳도록 칭찬한 대로 누나는 어린 내가 봐도 보통은 아니다 싶었지. 나는 드디어 내 영원과도 같던 갈증이 해소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 옆에서 엄마가 말했어.
“많이 컸지?”
누이, 부디 이 어린 것의 한을 풀어주오, 하고 서서 누나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누나가 말했어.
“누구랑 같이 왔는데…….”
그러면서 누나가 날 눈짓했고, 나는 곧장 방으로 치워졌지.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고, 그저 그 신속한 처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느껴질 뿐이었어. 그 정도로 누나는 대단한 사람이었니까. 나는 방에 틀어박혀서 내 질문을 갈고닦았지. 쉼표를 붙였다가 다시 떼는 심정으로 말이야.
집중력이 한계에 도달할 즈음 집 안이 너무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어. 나는 조급함에 방 문을 살짝 열고 동태를 살폈지. 아무도 없는 거야. 나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어.
“엄마!”
내 목소리가 집 안에 메아리쳤어.
“엄마!”
곧 있으면 울겠다 싶은 순간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야. 나는 왠지 모를 설움에 엄마한테 달려가 울먹이며 “누나”를 찾았지.
“누나 안 갔어.”
겨우 진정하고 보니 그제야 누나의 캐리어가 눈에 들어오지 뭐야. 그래도 안심이 안 됐던 걸까. 나는 그 캐리어 옆에 딱 붙어서 누나를 기다렸어. 그러다 잠이 들었는지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렸을 땐 엄마가 닫힌 문에다 대고 뭔가를 말하고 있었지. 처음에는 화를 내는 줄 알았어. 하지만 엄마 목소리는 그동안 내가 들어본 적 없는 떨림을 갖고 있어서 괜히 나까지 심장이 콩닥거렸어. 나도 모르게 “엄마…” 하고 부르니까 엄마는 흠칫하더니 입을 굳게 다물고는 내 쪽으로 왔어. 그러고는 천 원짜리 지폐를 셋이나 내 손에 쥐어줬지.
“하드 사 먹어라. 어서.”
때는 바야흐로 1월. 게다가 어린애 혼자 돌아다니기엔 늦은 시간이었어. 하지만 그런 것까지 고려할 상황은 분명 아니었지. 나 역시 막연하게나마 그걸 감지했고, 그래서 그냥 집 밖으로 나갔어. 나 무서웠다. 캄캄한 밤 때문이 아니라 집 안에 흐르던 묵직한 기운 때문에. 그렇게 나왔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거는 게 아니겠어.
“꼬마야.”
나는 고개를 쳐들고,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서 있는 남자를 보려 애썼어.
“이 집 살아?”
나는 질문에는 대답을 해야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 뭐, 그때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대답했어.
“네.”
“너… 온주란 알아?”
“우리 누난데요.”
“그래?” 남자가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척 내밀었어. “이것 좀 누나한테 전해줄래?” 그러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것처럼 지갑을 꺼내 벌려 보고 아, 탄식했지. “미안… 지금은 돈이 없네.”
남자의 굽은 실루엣과 달달달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어린아이를 향한 조심스러운 태도 같은 것들이 마음 쓰였던 모양이야. 나도 모르게 천 원짜리 지폐 하나를 남자한테 내민 거야. 남자는 당황한 듯 한 발 물러서더니 이내 지폐를 받아 들었어.
“사실 집에 어떻게 갈까 고민했는데……. 그럼 고맙게 받을게.”
결국 나는 나머지도 남자한테 다 주고 집으로 들어갔지.
집은 텅 빈 것 같았어. 나는 덜컥 겁이 나서 방으로 뛰어들어갔어. 엄마가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는데, 소리에 놀랐는지 움찔했어.
“왜 벌써 들어왔냐.”
“추워서…….”
엄마는 응? 하고는 축 처진 얼굴로 날 돌아봤어. 그러고는 자책하듯 어휴, 하며 날 향해 팔을 뻗었어.
“이리 와.”
나는 달려가 안겼어. 따듯했어.
“하드가 웬 말이야.” 엄마가 혀를 차더니 물었어. “근데 이건 뭐냐?”
나는 남자가 준 비닐봉지를 엉덩이로 깔고 앉으며 시치미 뗐어. 딱 꼬집어 이유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이 아닌 누나한테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나는 그것을 내 보물상자에 넣어두고 잠이 들었어.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누나를 찾았지만 없었어. 엄마는 누나가 없다고만 할 뿐 어디에 가서 언제 오는지 같은 건 알려주지 않았지.
나는 보물상자에 넣어둔 비닐봉지를 꺼내 보았어. 안에는 봉투가 여럿 들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아는 거였어. 편지를 넣을 때 쓰는 봉투였거든. 나는 괜히 뒤를 살피고는 편지 봉투를 꺼내 읽기 시작했어. 일반적인 편지는 아니었어. 그보다는 뭐랄까, 시… 같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인상을 쓴 채로 읽고 있는데 누나가 들어온 거야.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 편지만 달랑 등 뒤로 숨기고 누나 눈치를 살피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꼭 다 알고 있으니까 당장 실토하라는 눈빛처럼 보였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편지를 내밀었고. 누나는 또 이게 뭐야, 하듯이 편지를 보더니 경악을 해서 낚아채고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
조금 있으니까 통곡 소리가 들려서 나는 꼭 내가 누나를 울리기라도 한 것 같아서 미안했고 두려웠어. 누나한테 준 게 뭐냐고 묻는 엄마도 모른 척하고 나는 그 문제의 비닐봉지를 가지고 집을 나섰지.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그걸 없애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하지만 쓰레기통 같은 데 버리는 건 또 안 내켜서 그걸 들고 온 동네를 싸돌아다녔지. 그러다 진정이 되니까 이 대책 없는 호기심이 또 발동을 하는 거야. 결국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나머지 물건을 확인했어.
그중 하나는 사진이었어. 누나가 어떤 남자와 함께 찍은.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나는 오래된 사진을 식탁 위에 놓고 누나 쪽으로 밀었다. 내가 읊조리듯 오랫동안 말을 하는 동안 누나는 단 한마디도, 움직임조차 없이 그냥 앉아서 소우주를 유영하는 혜성이를 바라만 보았다. 과연 내가 한 말을 듣기는 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것 나름도 괜찮지 싶었다. 사실 마음 속에는 괜한 얘길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다 지나간 얘기니까. 나는 누나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사진을 내 쪽으로 가져오려 했다.
“둬.”
나는 머쓱해서 팔을 허공에 휘휘 저었다. 누나가 사진을 흘끗 보더니 역시나 읊조리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간결한 이야기였다. 그날, 그러니까 내가 처음 누나를 만나 대뜸 우주의 기원 같은 걸 물어본 그날, 누나는 정말로 혼자가 아니었다.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서서 나한테 편지를 건넸던 남자와 함께 왔던 것이다.
“결혼할 생각이었어.”
서울 유학에 가서 누나가 떨쳤던 건 천재적인 재능뿐이 아니었다. 올바르되 고지식하지는 않은 누나는 누구나 사랑할 법한 불가해한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그런 누나가 선택한 관계 치고는 결과가 다소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 또한 누나의 선택이리라.
“그런데 우리가 생각한 결혼의 의미가 같지 않았던 모양이야.”
늘 지적으로 충만해 있던 누나는, 엄마가 들었다면 기함을 했겠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정을 꾸릴 생각이었다고 했다. 듣는 나도 뭐? 하고 되묻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계획이었다.
“몰라. 지쳤었나 봐.”
반면, 내 매형이 될 뻔한 사람은 이제 막 공부하는 것의 재미를 알기 시작해 원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내가 방으로 치워져 질문을 갈고닦는 동안 엄마한테 인사를 드리고 다시 나가서 사분의자리 유성우를 보러 갔다.
“그 사람도 별을 좋아했거든. 좋은 자리 있다고 꼬셔서 집까지 갔던 거지.”
모든 게 스위스 시계공의 작품처럼 완벽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누나가 고백을 하기 전까지는.
“임신 얘기가 나오자마자 사색이 되는 거야. 무슨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것처럼.”
누나는 잘도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그냥 과거의 해프닝 듣듯 할 수 없었다. 그 ‘시한부 선고’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죽어 없어졌다. 슬픔이나 분노는 품을 시간도 기회도 없었다. 누나는 그 사람과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역시나 ‘혼자’는 아니었다.
“무모했어. 모든 게. 하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도 누나…….”
“너라면 후회가 되겠어? 쟤를 보면서?”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혜성이를 돌아보았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나는 편지와 사진과 함께 들어 있던 또 다른 봉투를 식탁 위에 놓았다.
“또 뭐야?”
“이게 마지막. 봐 봐.”
딱 봐도 돈봉투였지만 중요한 건 왜 돈인가 하는 점이었다. 누나가 눈빛이 돌변해서 봉투 안을 살피더니 헛웃음을 웃었다.
“백만 원도 아니고 98만 원은 뭐야? 네가 그랬어?”
“날 뭘로 보는 거야?”
“하긴, 네 간땡이로는 어림도 없지.”
“그 사람, 그게 전재산이었나 봐. 그래서 돌아갈 걱정을 했던 거지. 3천 원이면 집에는 잘 갔겠지?”
누나가 어이없다는 듯 날 보더니 박장대소를 했다. 그 소리에 혜성이가 이쪽을 돌아봤다. 나는 놀라서 얼른 혜성이한테 다가가며 말했다.
“조카님, 정말로 갖고 싶은 거 없어? 말만 해.”
혜성이는 관심없다는 듯 다시 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직도 완성하지 못해 늘어놓은 가족신문을 힐끔 보는데,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저거, 완성해 줄까?”
소행성이 무슨 수로, 하듯 혜성이가 날 쳐다봤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헝클며 “그리고 있어” 하고는 다시 누나 앞에 앉았다. 이미 사태 파악이 끝난 누나가 사진을 손으로 덮었다.
“안 돼.”
“안 될 게 뭐야? 조카님 생일인데!”
“그거랑 그거랑 뭔 상관이야?”
“많지. 화학적, 유전학적, 생물학적, 물리학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학적으로. 자기의 근원에 대한 거잖아.”
“애쓴다.”
“누나, 좀. 간단하게 생각해. 혜성이한테 아빠는 그냥 하나의 관념에 불과해. 불안정하다고. 그런 아빠의 실체를 알고 나면 모르긴 몰라도 헤성이한테 도움이 되지 않겠어?”
“그 반대면?” 누나의 눈빛은 내가 아는 누나의 것이 아니었다. “알고 나서… 더 불안정해지면? 그럼 어떡해?”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너무 내 관점에서만 접근한 것일까? 말로는 조카님, 하면서 정작 제3자의 입장에서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닐까? 결국 나는 스르륵 가라앉아 식탁에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미안. 내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누나는 사진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성이가 쓱쓱 별을 그리는 소리를 들으며 거실에 누워 햇살을 쬐다가 파란 하늘을 두둥실 떠다니는 뭔가를 발견하고 내가 외쳤다.
“잠자리다.”
나는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가 방충망을 열어 젖히고 손을 뻗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깨닫기도 전에 잠자리가 내 손 위에 앉았고 그 감각이 과거를 불러왔다. 그것은 가을이었다. 플라스틱 채집 도구를 들고 코스모스가 펼쳐진 들판을 뛰놀던 나의 과거. 나는 시간여행을 체험하고 들떠서 혜성이를 돌아봤다.
“잠자리야.”
혜성이가 별을 뒤로하고 다가오더니 정작 코앞에서 주저했다.
“날개를 집어 봐.”
그때 누나가 날 불렀다. 나는 혜성이 손에 잠자리 날개를 쥐어줬다.
“보고 보내줘.”
누나는 안방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그 옆에 낯익은 종이 상자가 있었다.
“어, 그거…” 나는 아차 싶어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뭘까아?”
“개수작 부리지 말고 앉아.”
나는 “넵” 하고 화장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다.
“네가 이 상자를 왜 아는지는 일단 넘어가고.”
“그러시죠.”
“헤성이가… 별을 보러 가서… 시간여행에 대해 물어봤다고 했지?”
나는 얼어서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그러자 누나가 웃었다. 체념의 웃음이었다.
“정말 야박해. 안 그래?”
“좀 그렇지. 애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이렇게 사놓고 안 보여주는 건… 야박하지.”
“그거 말고.” 누나가 눈을 부라렸다. “이걸 보고 하는 소리가 어쩜 그렇게 똑같냐고. 지 아빠랑.”
“시간여행? 아… 그래서 못 보게 한 거야?”
“꼭 그거 때문은 아니고. 자꾸 이것만 보려고 하잖아. 뭐, 덕분에 애 길들이긴 한결 수월했지만.”
이 감동파괴자 같으니라고.
“뭐야, 그 표정은? 심히 불량한데.”
나는 시치미 떼고 딴 소리를 했다.
“근데 그 사람도 과학도 아니었어? 왜 그런 소리를… 혹시 그 사람도 아빠를 보고 싶어 했나?”
내 말에 누나의 안색이 굳어졌다. 나는 누가 뒤에서 의자를 잡아 뺀 것처럼 철퍼덕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냥 입을 닫고 있는 게 낫지 싶었다. 누나는 거친 한숨을 내뱉고는 사진을 담배처럼 집고 흔들었다. 누나와 그 사람이 행복한 모습으로 나부꼈다.
“네가 해줘야 할 게 있어.”
“뭐든 시켜만 주십쇼. 장학금 타는 것만 빼고.”
누나가 실소했다.
“혜성이 생일 파티를 할 거야. 네가 준비해.”
“당연하지. 혹시 생각해둔 컨셉이라도?”
누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여행자를 위한 파티.”


미래의 물건인 듯한 휠체어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모습으로 더 유명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비밀리에 파티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파티가 끝나고 호킹은 파티를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파티를 위한 장식으로 꾸며진 하얀 공간에 호킹이 있었다. 혼자서 말이다. 그리고 파티가 끝나서야 호킹은 공식적으로 파티 초대장을 배부했다. 〈시간여행자를 위한 연회 초대장〉이었다.
호킹 특유의 재치가 돋보이는 그 파티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간단한 실험이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미래의 누군가 호킹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 시간여행을 통해 파티에 참석하리라는 추론을 전제한 것이었다. 물론 호킹의 파티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완전히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여행 중 과거의 사람을 만나면 안 되는 법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미래의 사람들에게 호킹의 파티가 그다지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을(할) 수도 있으니까.
어쨌거나 그 파티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즉, 호킹의 파티는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나는 거실 소파 위에 서서 ‘시간여행자를 위한 파티’ 플래카드를 고정하며 궁시렁거렸다.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아, 결국 또 한 명의 꿈과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건가요.”
“삐뚤잖아. 똑바로 안 해?”
나는 돌아서서 높이의 이점을 살려 항명했다.
“이건 완전 희망고문이야. 차라리 그냥 평범하게 친구들 초대해서 왁자지껄 놀고 잊어버리는 게 낫지 않아? 뭐야, 설마 조용하게 넘어가려고 이런 기획을… 아니겠지. 누나가 아무리 악마적이어도 그건 아니겠지. 아니어야 돼. 그렇지? 제발 아니라고 해줘.”
“시간여행자는 우리고 우릴 위한 파티고 혜성이는 원하는 걸 얻을 거고.”
나는 소파 아래로 사뿐히 내려갔다.
“사진 주게?”
“그래. 그렇게 해서 더 안 좋아진대도 지 몫이지. 거기까진 내 몫이 아니니까.”
“역시 강해.”
“뭐, 그 덕에 네 말대로 생일 한 번 날로 먹고.”
나는 존경의 박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간 없어. 빨리 저거나 마무리해.”
집으로 돌아온 혜성이는 새로워진 소우주를 보고 다소 놀란 듯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호킹 버전이 아닌 새롭게 각색한 ‘시간여행자를 위한 파티’ 시나리오를 혜성이한테 설명해 줬다. 별건 아니었다. 그저 미래의 일이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시간여행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누나 표현대로라면 대책 없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바로 그렇게 도약해 왔질 않나. 이후에 또 다른 혁명으로 세상이 또다시 뒤집어지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을까.
혜성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보며 내 얘기를 경청했다. 나는 조금은 과장해서, 또 약간은 연기하듯 이야기하며 이렇게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역시 누나가 들으면 대책 없기 그지없다 하겠지만.
혜성이가 내 얘기를 큰 아량으로 수긍한 뒤에 우리는 다함께 코스모스를 관람했다. 특별히 준비한 빔 프로젝터가 거실을 정말로 우주로 만들어 주었다. 그 속에 앉아서 나는 아이가 되어 무한하지만 유한한 시공간을 감각했다. 반짝이는 혜성이를 감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감각했다. 그 감각들은 내 안에서 영원할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혜성이가 잠이 든 후에 나는 가족신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족신문의 컨셉은 혜성 달력이었다. 혜성이의 삶을 달력으로 압축한 것으로 12월부터 9월까지는 초등학교 생활이 담겨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서 유치원 행사와 누나와의 여행 등을 거쳐 혜성이는 점점 더 작아져 갔다. 3월에는 걸음마를 떼고 2월에는 포대기에 쌓여 있는 혜성이. 그리고 1월은… 비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누나와 혜성이 아빠가 웃고 있는 사진을 붙였다. 그러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나.”
내가 불쑥 부르자 주방에서 지켜보던 누나가 대꾸했다.
“아, 깜짝이야. 왜?”
“왜, 어렸을 때 내가 물어봤던 거 있잖아.”
“빅뱅 이전의 우주?”
“그때 내가 알고 싶어 했던 기원이 사실은 우주에 대한 게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게 아니었을까?”
“다 붙였으면 허튼소리 그만 하고 자라.”
훗, 역시 누나라니깐. 누나가 방으로 들어가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2학기도 그 모양이면 짐 싸야 할 거야.”
훗… 나는 방으로 도망쳤다.

최의택

『방황하는 메아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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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 단편 나는 좀비를 이렇게 만들었다 비나인 2019.09.17 0
2502 단편 샌디크로스-0-3 비에러 2019.09.10 0
2501 단편 구원자 - 6.활극 알렉스 2019.09.09 0
2500 단편 구원자 - 5.과거 알렉스 2019.09.08 0
2499 단편 구원자 - 4.모험 알렉스 2019.09.06 0
2498 단편 구원자 - 3.도래 알렉스 2019.09.05 0
2497 단편 구원자 - 2.멸망 알렉스 2019.09.05 0
2496 단편 구원자 - 1.가족 알렉스 2019.09.03 0
2495 단편 샌디크로스-0-2 비에러 2019.09.01 0
2494 단편 별 헤는 밤 백곶감 2019.08.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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