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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구원자 - 5.과거

2019.09.08 21:4409.08

-과거- 


 

순간적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듯한 중력의 가속과 시간이 정지된 듯 멈춰있는 기묘한 상태를 체험하는 효진.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무한의 공간. 

용기를 내서 몸을 움직여보는 효진. 자신의 몸이 알 수 없는 어딘가에 두둥실 떠 있음을 깨닫는다.

어느 순간. 다시 실험실 원자 가속기의 인공 블랙홀 밖으로 나온 효진. 자신의 뒤쪽으로 인공 블랙홀이 까맣게 입을 벌리고 있다. 흠칫 놀라 튀어 나오며 자신의 몸을 만지는 효진. 말캉한 살 아래쪽의 단단한 뼈 부분 까지, 온전한 몸의 감촉이 느껴진다. 

 

실험실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앞으로 가서 오늘 날짜를 확인하는 효진. 2038년 6월 2일 수요일, 오후 23시 30분. 

테러 발생 이틀 전이다. 

 

한국 우주연구소 실험동물 격리실. 흰 가운을 입은 임성동 연구원이 차단 유리벽 안 실험용 원숭이 '밍키'의 상태를 마지막으로 한번 살펴본 후 격리실의 조명을 끈다. 

하품을 하는 임 연구원. 갑작스러운 악취를 맡고 손으로 코를 감싸쥔다.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는 임 연구원의 시선에 그 동안의 고생으로 피부가 새카맣게 그을고 안씻어 떡진 머리가 방사능 피폭으로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진 곳이 보이는, 흉한 모습의 효진이 걸린다. 

깜짝 놀라는 임 연구원. 

 

"아니?! 여기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임 연구원, 나 못알아보겠어?"

 

효진이 말하며 조금 다가오자 뒤로 주춤 물러서는 임 연구원. 잠시 정적이 흐른다.

경직된 동작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꽉 잡는 임 연구원. 임 연구원의 손동작을 바라보다 다시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보는 효진. 절박한 채로 임 연구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나.. 육효진이야!"

"네에?!!"

 

휴게실 테이블 위에 놓인 과자와 음료수를 허겁 지겁 먹고있는 효진. 맞은 편에 앉은 임 연구원이 불편한 듯 찡그린 표정으로 효진을 마지못한 듯 보고있다. 자신을 보는 임 연구원의 시선을 느끼고 잠시 먹는걸 잠시 쉬는 효진. 

 

"아~ 이제 좀 살것같다."

"그러니까 박사님 말씀은 내일, 2038년 6월 4일 금요일 점심때쯤 사이버 테러에 의해 세상이 멸망할 때 살아남으셨구요. 길에서 만난 기관총을 든 여고생들에게 잡혀있을 때 만난 친구 분의 도움으로 원자 가속기를 가동시키셨고, 인공 블랙홀에 들어 가신 7월 1일 목요일로부터 정확히 한달 전인 조금전 6월 2일 수요일에 지금 이곳으로 오셨다는 말씀이시죠?" 

"그렇게 못믿겠으면 실험실 보안카메라 영상 확인해봐."

"....."

 

효진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임 연구원. 효진이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항변하 듯 임 연구원을 본다. 효진의 광기어린 시선에 못이겨 눈을 깜빡이는 임 연구원. 

 

"하아.. 네.. 알겠어요. 박사님. 잠깐 저 화장실 다녀올테니까 여기서 이것들 마져 드시고 계세요."

 

임 연구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임 연구원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다가 시야에서 벗어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쫓아가는 효진. 

화장실로 임 연구원이 들어가는 걸 확인한 효진이 뛰어가서 화장실 문에 귀를 갖다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화장실 안쪽. 그러나 곧 임 연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네 수고하십니다. 여기 한국우주연구소인데요, 어떤 정신이상자가 연구소에 무단으로 들어와서요. 아. 네 저는 여기 소속 연구원입니다. 네. 아니요, 좀 상태가 많이 안좋은 분이셔서 제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요.. 아니요 그렇진 않습니다..."  

 

임 연구원의 얘기를 엿들으며 그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 받은 효진. 잠시 비틀거리며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 내린다.   

 

'이대로 가면 아무것도 못해보고 테러범이 세상을 멸망시킬거야. 내가 움직이자.' 

 

어떻게든 해보자는 생각이 떠오르자, 곧바로 연구실로 뛰어가는 효진. 

임연구원의 명패가 놓인, 사용중인 책상을 뒤져 자가용 드론 키를 집어들고 밖으로 뛰쳐 나간다. 

연구소 주차장으로 효진이 뛰어 들어오며 드론 키의 버튼을 누르자, 주차 돼 있던 임 연구원의 드론에 조명이 들어오고 프로펠러가 돌며 차 문이 열린다. 

드론의 조종석 모니터 화면에 서울 집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 버튼을 누르는 효진. 드론이 순식간에 밤하늘로 날아올라 불빛을 번쩍이고 있는 가이드라인 항로를 따라 쏜살같이 서울로 날아간다. 

 

*

 

'띡띡.띡띡띡띡. 띠리릭~'

 

새벽 3시의 어둠 속. 효진의 집 거실문이 소리없이 열리고, 모두가 깊이 잠 든 집안으로 효진이 들어온다. 

살금 살금 샤워실로 들어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부터 하는 효진. 

그렇게 한달간의 찌든 때를 씻어내고, 수건을 몸에 두른채 거울앞에 선다.

듬성듬성 머리가 빠지고 핼쑥하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효진.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듯 눈물을 글썽이며 절망한다.

샤워실에서 나온 효진. 자신의 옷방으로 들어간다.

오토바이를 타려는 듯 가죽바지와 가죽 자켓을 입고 헬멧과 고글을 챙기는 효진. 그리고 서랍장 맨 아래쪽 깊숙한 곳에 있는 상자를 꺼내고, 그 안에 있던 묵직한 오토바이 열쇠를 주머니에 넣어 챙긴다.

모든 준비를 마친 효진. 자기 자신과 호준이 자고 있는 침실 문을 열어보려다 관두고 호동이가 자는 방 문을 열어본다. 

구름 한 점 없는 여름 밤. 유난히 크고 환한 달빛이 창문을 통해 잠든 호동의 얼굴을 비춘다. 문 옆에 기댄 체 사랑스러운 호동의 잠든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효진. 

그리고, 소리없이 호동의 방을 나와 현관문을 나선다. 

 

지하주차장. 구석쪽 자리에 숨겨져 있듯 서 있는 커버가 덮힌 육중한 물체. 

효진이 덮혀있는 커버를 벗겨내자, 두카티 디아벨 1260 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빠 육완영 교수가 효진이 대학생이 되던 스무살때 사준, 그야말로 말도 안되던 아빠의 깜짝 선물이다.

키박스에 열쇠를 꼽고 시동을 걸자 육중한 엔진의 배기음이 주차장에 가득 찬다. 

오토바이 헬멧을 뒤집어 쓰고, 망설임 없이 능숙하게 오토바이를 출발시켜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효진. 

 

깜깜하던 밤 하늘이 동쪽부터 조금씩 희미하게 밝아지기 시작한다. 

새벽의 아무도 없는 텅 빈, 멸망한 도시같이 황량한 서울 거리를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효진. 

그렇게 효진이 탄 오토바이는 도로표지판의 오산 방향쪽을 따라 나아간다. 

 

*

 

맑은날 오후 두시. 오산 미군기지 근처 외진 시골길을 미국산 구형 허머(Hummer) 한대가 달린다.

우거진 수풀만 시야에 들어오는 시골길의 코너를 돌자, 창고형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  

건물 입구에 '재키스 슈팅 레인지'(Jacky's Shooting Range) 라고 써진 간판이 보인다.  

실내 사격장을 가장한 재키의 무기밀매 창고다.

차에서 내린 재키, 사격장 출입문에 기댄 채 세상모르게 자고있는 효진을 보고 다가간다. 

잠든 효진의 어깨를 흔드는 재키. 

 

"어이~ 봐요~"

"어! 어어! 뭐야! 누구야!"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쓰고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재키가 효진에게 되묻는다.

 

"고것은 나가 할소리요~ 어떻게 오셨오?~"

 

*

 

사격장의 휴게실 소파에 앉아 효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재키.  

 

"빈말 헐 사람같진 않는디~ 나으 이름 꺼정 아는 걸 비면 보통 인연도 아니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효진을 보며 사격장의 문을 열어보이는 재키. 

 

"나도 쪼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항께, 내일, 아니 내일 시상이 멸망한당께, 이따 즈녁띠 다시 여그로 오소~ 너무 섭섭케 생각 말으요~"

 

자신을 믿지 않는 재키의 태도에 절망을 느끼며 고개를 푹 숙이는 효진.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마지막 수를 짜 내 본다. 

그때. 효진의 기억속 재키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르던 노래가 떠오른다. 

자리에서 일어나 재키를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효진.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노래하는 효진을 보는 재키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지며 관리가 안된다. 

 

"아니.. 으떻케.. 그 노래를... 울 엄니가 항상 아부지 생각날때 부르는 노랜디.. 아이구 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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